마르키온
“2세기의 다른 어떤 이단보다 기독교에 위협을 주었던 것은 마르키온(Marcion, 160년 사망)과 그의 추종자들이었습니다. 마르키온은 성경을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자로 명성이 나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죠. 아무튼 그가 쓴 작품들은 현존하지 않지만 그를 비판한 자료들을 통해 그의 사상들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터툴리안의 작품에서 잘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르키온은 약 85년에 폰투스의 시노페(흑해 근교)에서 부유한 선박주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감독의 아들이었고 그 자신도 역시 감독이었습니다. 성스러운 처녀를 미혹했다는 혐의로 부친은 그를 교회로부터 추방시켰습니다. 그는 135~140년에 로마를 방문해 그 곳에 있는 교회에 200,000 세스테르세스(sesterces)를 헌납합니다. 그는 자신의 신학을 발전시키면서 영지주의 교사 케르도의 사상을 구체화시켰습니다. 그에게서 그는 이사야 39~66장의 말씀 해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 즉 마르키온들을 거느렸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장로들에게 의심을 받아 144년 출교를 받습니다. 하지만 계속하여 자신의 가르침을 널리 확산시켜 나갔습니다. 대체로 이단자들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단체가 벌을 내릴 때 분파하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분파하는 자들을 모두 이단자로 보아서는 결코 안됩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도 봐야죠. 마르키온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 아니라고 가르쳤고,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그리스도가 그의 아들이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존경받는 서머나 감독이며 순교자인 폴리캅은 어느 날 마르키온을 만났습니다. 그 때 그를 가리켜 ‘사탄의 맏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마르키온은 약 160년경에 죽었지만 그를 추종하는 자들은 3세기까지 지속됐고, 4세기에 이르러서는 마니교에 연합되었습니다. 어거스틴도 마니교에 한동안 심취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마니교는 우리가 자칫하면 빠질 수 있는 거짓사실들이라 하겠습니다. 간략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원론’이라는 것입니다.”
“마르키온의 사상은 영지주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사상을 몇 가지로 살펴보면,
첫째, 그는 구약성경 자체를 포기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은 유대인들의 역사이고 조물주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바울만이 진실한 사도이기에 그가 쓴 디모데 전후서와 디도서를 제외한 서신들만 성경으로 봐야한다고 했습니다. 또 그는 누가복음만이 유일한 복음서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의 인용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는 하나님이지만 높으신 하나님과는 구별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것 외에는 그 높으신 하나님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조물주는 공의의 하나님이지만 매우 엄격하고 힘들게 하는 신이라 합니다. 이에 반해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새로운 왕국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며 조물주가 행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일들을 수행했습니다. 그는 계속하여 말하기를 조물주를 믿는 자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의도한 것이었으며, 그렇게 해야만 조물주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그들을 구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성육신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했기 때문에 가현설주의자임을 자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랑의 하나님과 조물주, 복음과 율법을 대치시키는 그의 이원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셋째, 육체의 부활은 없고 최후의 심판도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반드시 엄격한 금욕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결혼을 해서는 안됩니다. 심지어 결혼했던 자가 있으면 헤어져야만 한다고 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에도 절제를 강조했으며 순교하기를 즐겼습니다.”
마르시온의 주장
마르시온(Marcion, AD 84-160)은 성경에 '본도'라고 나오는 폰투스(Pontus) 지방의 시노페(Sinope, 흑해연안에 위치한 현재의 sinop)에서 태어난 부유한 선주이며 상인이었다.
그는 135년-140년에 로마로 여행을 했는데 그곳에서 200,000 세스터스(sesterces;고대 로마의 화폐단위, 은화, 후에는 동화(銅貨). 1/4 denarius)를 교회에 희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영지주의적 선생이었던 세르도(Cerdo)를 만나 영향을 받았는데 교회는 그의 돈을 되돌려주었다.
마르시온은 144년 교회로부터 최종적으로 출교되기 이전에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을 모아 그룹을 형성했다. 그의 메시지는 로마에서 점점 확산되어 갔다.
그는 육체는 악한 것이고 영은 선한 것이라는 극단적 이원론에 빠져있었다. 그런 생각때문에 구약의 하나님이 육체를 창조한 것은 악을 창조한 것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예수님은 육체로 오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그리스도는 가현적 현시를 통하여 자비의 신으로서의 하나님을 계시하였다고 하였다. 즉, 구약의 하나님은 물질세계인 악을 창조한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이중적 하나님이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또한 구약성서의 하나님은 히브리인들의 하나님으로서 악을 창조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구약의 하나님은 율법의 하나님으로서 복수심이 가득찬 전쟁과 심판의 야훼이며 악한 세계인 우주를 창조한 저급한 데미우르고스(Demiurgus,영지주의에서 우주창조의 신을 일컷는 용어)이지만 신약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을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여 구약을 거부하였다. 그에게 있어 구약은 유대교의 경전일뿐이으나 그리스도는 '알수없는 하나님'을 이 세상에 알려준 분이다.
그는 오직 바울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 가르침을 이해했다고 믿어 바울의 목회서신(디모데전-후서, 디도서)을 제외한 10개의 서신들과 누가복음만을 기독교인의 성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위 '마르시온의 성경'에서 여덟 개의 바울서신들은 현대의 성서와 같고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는 완전히 수정하여 사용했다. 마르시온의 갈라디아서는 1:18-24(예루살렘에 있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교류한 바울의 모습)이 빠져있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언급하고 있는 3:6-9, 그리고 2:6-9a; 3:1-12,14a,15-25; 4:27-30 등을 배제하였다. 로마서에서는 1:17b, 1:19-21, 3:31-4:25, 8:19-22, 9:1-33, 10:5-11:32와 15장, 16장 26장 전체를 빼고 사용하였다. 또한 마르시온의 누가복음은 1:1-2:52의 예수님의 탄생기사, 3:1b-4-15에 있는 세례요한에 대한 기록, 예수님의 족보, 그리고 사탄의 유혹을 받는 기사를 제거한 것이었다.
저스틴(Justin Martyr,110-165), 이레나이우스(Irenaeus,120-202), 에피파누스(Epiphanius, 315-403) 그리고 특별히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145-220) 등의 교부들은 마르시온의 이단적 주장에 반박하는 글을 써서 교회의 신앙을 수호하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마르시온을 추종하는 무리들은 5세기까지 동방지역에 잔존하였다.
마르시온주의와 그 영향
마르시온은 흑해 연안에 있는 희랍의 상업도시인 시노페에 있는 경건한 한 감독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나름대로 새로운 통찰력을 얻은 후 로마에 가서 새로운 교회를 창설하였다.
이는 최초의 교회분열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마르시온은 일반교회들의 가르침이 정통기독교 교리와 근본적으로 대치된다고 생각했다.
유대교와 율법주의 그리고 물질세계에 대한 깊은 반감을 지니고 있었던 마르시온은 항상 반유대적이고 반 물질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전쟁과 유혈 그리고 잔인한 행위를 많이 행했다.
그는 그와 같은 유대인들을 구약을 통해서 알게되었다.
마르시온은 모든 것을 극단적인 이원론으로 이해하려고 했다.
구약과 신약, 창조의 신과 자비로운 신, 율법과 복음, 물질과 정신, 육체와 영혼을 대비시켜 양자 간에 긴장이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악과 고통의 문제에 충격을 받은 그는 이세상의 신과 그리스도에 의해 계시된 자비의 신을 대립시키는 극단적인 이원론적 교리를 주장하였다.
그는 눈에 보이는 세계는 악한 것이므로, 창조신 역시 악하거나 무지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온 인류의 아버지이신 성부하나님과 구약에 나타난 유대인의 신 야훼 하나님은 동일한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성부하나님은 본래 오직 영적인 세계만을 만들고자 했으나 야훼가 무지 혹은 악한 동기로 이 세계를 만들고 그 속에 인간을 배치시켰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영지주의 자들의 가설을 보다 단순하게 만든 이론이었다.
마르시온에 따르면 구약에 나타나는 유대인의 하나님인 야훼는 모든 인류들 가운데 특별히 히브리 민족만을 선택한 독선적인 신이었다.
자신에게 대적하거나 불순종하는 자들을 모조리 엄벌하는 복수의 신이었다.
히브리 경전들은 성부하나님이 아닌 유대인 야훼에 의해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가현적으로 나타나 이제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자비의 하나님을 계시하였다.
기독교 신자들의 아버지이신 성부하나님은 야훼 하나님 보다 훨씬 우위에 계시는 분이시다.
성부하나님은 야훼의 피조물인 인간을 불쌍히 여겨 구원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
마르시온은 구약성경을 기독교 경전으로 사용되는 것을 부인하였다.
그는 유대인의 관점에서 쓰여 진 경전들을 모두 제하고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그리고 히브리서를 제외한 바울서신들과 누가복음 등을 모아 정경을 만들려고 했다.
이 책들 중에서도 구약의 하나님과 관련된 구절들은 모두 삭제하였다.
마르시온은 복음이 우리를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을 주었고 신앙만이 의롭게 만든다는 것을 이해하였다.
그는 교회가 도덕주의로 몰락해 가는 위험을 보고 바울신앙의 부흥을 바랐다.
그러나 바울의 가르침과 마르시온의 사상은 원리적으로 달랐다.
마르시온은 율법과 복음 사이에 긴장을 두 종류의 신에 의해 설명하므로 이 긴장을 없애려고 하였지만,
바울에게 있어서 율법의 하나님은 곧 은혜의 하나님이었다.
마르시온에게 구원이란 물질계를 만든 저급한 신 야훼와 저급한 피조물 세계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
그는 영지주의 자들 처럼 물질을 악하게 보면서 금욕생활을 강조했다.
마르시온 사상은 영지주의자들 처럼 창조, 성육신 그리고 부활 등의 교리를 부인하면서, 구약과 구약의 하나님을 비판하였다.
당시의 로마 제국내에 고조되고 있었던 반유대주의 운동에 힘입어 유대인 율법주의에 항거하는 명분으로 행해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마르시온 교회는 독자적으로 성경을 갖추고, 교회를 설립하고, 감독들을 세웠기 때문에 영지주의자들 보다 교회에 더 위협적이었다.
마르시온 사상은 독일의 히틀러에 의해 표현된 반유대주의에 잘 나타났다.
이러한 이단들에 대한 교회의 대응은 신약경전(Canon) 확립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신약 27권이 정경으로 확정된 때가 아니다.
특히 마르시온의 이단적 성경편집으로 인해서,
그 당시 교회가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성경들을 정경으로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했다.
중요한 것은 이 당시 교회가 정경/가경을 결정한 게 아니라, 그 당시 이미 정경으로 수납하고 믿고 고백하던 것을 다만 확인했을 뿐이다.
성경은 교회(혹은 교회 권위)의 산물이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초대 교회는 처음부터 신구약 66권을 성경으로 받아들여 전수했다.
그 후 신조(creeds)의 완성으로 대중적 조직신학,
이단을 논박하려는 초대교회의 범 교회적 결정이 사도신경으로 고백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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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르키온이 영지주의자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이유는 당시 영지주의는 개념이 남용되어 조선시대의 사문난적이나 일부 정치권의 종북몰이 처럼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가톨릭에서도 의견이 갈리는데, 영성사 학자인 전영준 신부 등은 그의 강의에서 "영지주의자라기 보다는 교계에 반한 독자적인 교단을 세우려 했다"고 주장하고, 반대로 방효익 신부 등은 그의 저서 <영성사>에서 마르키온은 분명히 영지주의자였다고 말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영지주의자가 아닐 것이라는 설이 대세지만 영지주의자가 맞다는 설도 적지 않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2. 마르키온파(Marcionism)
마르키온은 유대교의 타나크와 동일한 내용인 구약성경을 배척하고 신약성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함으로써 기독교와 유대교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시키고 유대교와 전혀 관계없는 완전히 새로운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마르키온은 독자적인 신약성경 정경인[1] '복음과 사도' 를 만들기도 했다.[2] 마르키온은 구약의 신과 예수를 보낸 신약의 신이 서로 다른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는 구약의 신은 분노에 가득찬 존재이고 악의 창조자이며 이 신은 이스라엘만 사랑하고 다른 민족은 파괴하고자 하는 유대인들만의 열등한 민족신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신약의 신은 구약의 신과 달리 모든 인류를 사랑하고 포용하는 은혜와 사랑의 근원으로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자신을 계시했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신약의 신이 구약의 신을 이겼으므로, 구약과 신약간의 연속성을 적극 부정했다.
마르키온의 이런 주장은 테르툴리아누스를 비롯한 당대의 교부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제1차 니케아 공의회 이래로 확립된 정통 교회에서는 신약과 구약간의 연속성을 정통 교리로 채택함으로써 마르키온파는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이단으로 지정된 이후 기독교권에서는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지만 의외로 근현대 들어서 성경에 비판적인 세속주의와 무신론 진영에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신약에도 문제가 없는건 아니지만 현대사회에 맞지 않는 율법이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학살이나 전쟁 등 논란이 되는 부분이 대부분 구약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구약을 신랄하게 비판한 마르키온의 주장이 성경 비판론자들에 의해 재조명받기 시작한 것이다. 성경 비판론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구약의 구절들 상당수는 사실 마르키온이 구약을 비판하면서 철저하게 깠던 구절들이기도 하다(...).
현대 들어서 이러한 마르키온의 구약에 대한 비판에 주목하여 일부 이신론 성향의 기독교인들이나 진보적인 기독교인 중에도 마르키온의 주장에 동조하여 폭력적이고 현대 사회에 맞지 않는 구약은 버리고 신약만을 정경으로 따르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는데 이러한 주장을 신마르키온주의(Neo-Marcionism)라고 하기도 한다. 당연히 종파를 가리지 않고 이단이기 때문에 주류는 아니다.
마르키온, 마르키온 주의(Marcion, Marcionism)
(1) 신학: 신학에 있어서 마르키온의 주요 주장은 율법과 구약의 의의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 즉 그 가장 중요한 속성이 선함 또는 사랑하심과 친절함이신 하나님과는 무관하거나 그보다 열등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두개의 분리된 신성에 관한 관념은 케르도를 통하여 영지주의에서 온 듯하다. 따라서 이런 사실은 다음과 같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마르키온에 대한(달리는 모호하기만 한) 기록과 연관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바실리데스와 발렌티누스와 '동시대 인물인' 마르키온은 "마치 한 나이 많은 사람이 젊은이들을 데리고 있듯이 그들과 함께 있었다"고 하였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마르키온의 신학은 영지주의자들의 신학과 달랐다. 즉 '아이온'의 이론이 전혀 없다거나, 유대 및 기독교의 경전을 해석함으로써 나올 수 없는 어떤 요소도 배제하고 있다는 것 등이 그러하였다. 마르키온의 가르침은 이교도적이라고 전혀 말할 수 없었다.
[Antitheses]라고 이름이 붙었던 마르키온의 지금은 유실되고 없는 저술은 마르키온의 신학의 증거를 기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신학이란 구약의 하나님에 관한 사항과 나란히 그에 반대되는 신약의 하나님에 대한 예수와 바울의 가르침을 적어 놓은 것이었다.
마르키온이 영지주의와 더욱 더 달랐다는 점은 그가 하나의 완전히 체계적으로 사변적인 신학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르키온은 서로 대조가 되는 신 관념을 제기만 하였지 그 관념들을 더 높은 차원에서 조화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마르키온에게 있어 두 개의 archai(아르카이: 힘, 주권 등의 뜻)는 신약성경의 하나님의 도덕적 우월성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별개였고 또 별개인 채로 그렇게 남아 있었다. 이러한 마르키온의 입장이 가지고 있는 논리적 약점은 테르툴리아누스에 의해 잘 지적되고 있다. 한편 하나님의 개념에로의 수, 즉 복수의 도입은 참된 신성의 본질과 어긋났다. 그리고 또한 다른 면에서 볼 때, 다른 신이 창조하고 소유하고 있는 세계에 선하신 하나님-즉 '낯설은 하나님'-이 개입한다는 것은 분명히 이해에 있어서 장애물이 되었다.
(2) 기독론: 마르키온에 따르면 선한 하나님에 의하여 사용된 자기 계시의 양식은 "티베리우스 통치 제15년에 그(예수 그리스도)는 갈릴리 지방 도시인 가버나움에 강림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이것은 창조주의 하늘로부터 그가 내려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 선한 신은 이미 전에 그 자신의 하늘로부터 창조주의 하늘로 내려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자신의 아버지이신 선한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계는 아들이라는 관념 이외의 다른 것으로는 정의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스도의 인간적 체험과 고난에 대하여 마르키온은 전혀 가현실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마르키온은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복음서의 기사를 부인하면서 예수께서 29년에 그리스도로 갑자기 나타났다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이는 전적으로 새로운 현상이며 과거 역사에 어떤 근거가 되는 점이 있었다거나 혹은 사람들이나 인류 종족에게 관계되어지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르키온은 그리스도의 땅 위 생애 및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힘을 인간 구원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라고 보면서도 우리 주님은 외형상으로만 고난을 받았다고 믿었다. 다른 한편 마르키온은 그가 순수한 것으로 믿었던 제3 복음(누가복음)의 여러 부분에 기사화되어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받아들였으며 또한 당시의 기독교인의 신조에 나타난 다른 여러 믿음들을 같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마르키온은 그리스도께서 하데스에 내려가셨고, 거기에 갇혀있는 이전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설교를 하셨다는 것에 대해서 매우 강조를 하였다.
마르키온은 두 분의 하나님을 믿고 있듯이 또한 두 분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있었다. 마르키온의 이론에 의하면, 구약에 나타난 메시야적인 예언들은 참된 예언들이었다. 그러나 그 예언들이 언급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구약성경의 의로우신 하나님의 사자로서 후에 나타나게 되어 있던 그런 다른 메시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메시야의 활동에 대한 마르키온의 설명은 구약 예언서의 그 메시야에 대한 이야기에서 별로 더 발전된 것이 아닌 것 같다.
(3) 성경 비평과 주석: 마르키온은 성경을 취급함에 있어서 구약성경을 한 역사적인 문서로서 그 객관적 진리성을 높이 평가하고 신약성경에 대해서는 놀랍고도 대담하게 주관적인 비평을 가하여 신구약 양자를 연결시켰다. 그런데 이 신약.구약을 다루는 그의 자세는 그의 입장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점에 크게 좌우되고 있었다. 구약성경의 신학들과 자기가 느끼는 것처럼 신약성경의 핵심이 되는 진실한 신학 사이에는 근본적인 불일치가 있다고 확신한 마르키온은 자연적으로 구약성경에서는 기독교의 관념에는 반대가 되며 유대교적인 것만을 얘기하고 있다고 보여지는 모든 이야기, 설교 심지어는 구절 등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마르키온이 구약성경을 다루는 방식에는 적어도 한가지의 장점이 있었다. 즉 그는 영지주의자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우화적 해석 방식을 전혀 취하지 않은 것이다. 마르키온은 구약 역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그 역사의 뚜렷한 특징들을 아주 강조하였다. 한편 신약성경을 다룸에 있어서도 또한 우화적인 해석 방법보다는 문자 그대로의 해석 방법을 더 좋아하기는 하였으나 그러면서도 마르키온은 대담무쌍하게 사실을 보는 자신의 견해에 어긋난다고 생각되는 성경의 책이라든가 또는 책들의 부분들을 과감하게 삭제해 버렸고 어느 정도 자기의 주관적인 근거 위에서 그 성경의 본문들을 과감하게 재편집하였다.
제3복음서인 누가복음이 전체적으로 보아 자기의 신학에 최고로 잘 들어맞는 책 같이 보이자, 마르키온은 이 책을 비록 잘라내고 상당히 변경시킨 상태로이기는 하였지만 신약성경 내에 있는 역사적인 작품 중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부분으로 선택하였다. 마르키온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도들 중 유일한 참 사도였다고 보았으며 그리고 마르키온은 제3 복음서가-마르키온은 이것을 누가복음서라고 부르지 않았다-바울의 감독 아래에서 집필되어진 것이며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바울의 견해를 담고 있는 책이라고 믿었다.
마르키온은 다른 복음서 기자들이 12사도 가운데에서 발전되고 있던 거짓된 유대전통을 썼다고 보았다. 따라서 마르키온은 그들의 복음서들을 '전적으로' 거부하였다. 나머지 신약성경의 책들 중에서 마르키온이 받아들인 것은 단지 열개의 바울 서신들뿐이었다.
그는 사도행전도 배척하였고 바울의 목회서신들도 거부하였으며, 마르키온이 알고 있던 바 나머지 신약성경 모든 책은 거부되었다. 그리고 마르키온이 받아들인 열개의 서신들 가운데에서도 자기의 견해에 어긋나는 문장이 있다면 마음대로 거부하거나 변조시켜 버렸다. 마르키온이 신약성경을 어떻게 다루었나 자세히 알려면 테르툴리아누스의 [adv. Marcionem] 제4권과 제5권을 읽어 보면 가장 잘 알 수 있다.
(4) 신앙의 실제생활에의 적용: 기독교의 전통 및 성경에 대해서 마르키온이 아무리 변덕스럽고 주관적인 태도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때의 마르키온의 중심되는 목적은 사변적이거나 이론적인 데에 있지 않고 신앙적인 면과 실제 생활적인 면에 있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마르키온이 어떤 더 높은 단계의 종합같은 것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러면서 그가 죽을 때까지 창조주와 신약성경의 하나님 사이에 도저히 화합할 수 없는 대립관계를 그냥 두고만 보았다는 사실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마르키온에게 구원의 수단들이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 있었다. 이 신앙은 인간 생존조건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창조주가 만든 피조물을 멸시하고 거부하는 금욕생활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따라서 독신자만이 세례를 받도록 허용되었다. 이러한 태도로 인해 더욱 심화되어 나타난 결과로서 마르키온은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였고, 또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영과 혼에만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마르키온 공동체의 도덕적인 진지함은 이 공동체의 전도의 열심과 또 이 공동체 가운데에서 수많은 순교자들이 나왔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
(5) 예배의식: 마르키온의 목적은 하나의 학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교회를 세우는 데에 있었다. 따라서 예배의식에 관하여 마르키온은 정통 교회의 관례를 대부분 따랐다. 그러나 정통교회라는 달리 교회의 예배시에 세례지원자들도 세례받은 사람들과 똑같이 취급했다. 그러나 성찬 예배시 포도주 사용은 금하였다. 마르키온파 중의 동방 지역에 있던 분파가 행하던 독특한 몇몇 관례적 의식을 에즈닉은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마르키온은 세례를 단 한번만 받도록 제한하지 않는다. 연달아 세번 죄를 범하였을 때, 그리고 세례지원자가 세례 전에 죽었을 때는 누군가가 대신하여, 다시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마르키온은 여자가 세례를 베풀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담성도 가지고 있었다-이것은 다른 어느 분파에서도 시행하지 않던 일이다-그러나 여자가 두번째나 세번째의 세례를 집행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르키온은 (감히) 여자가 사제가 되도록 허용하지는 않았다." 마르키온의 추종자들은 마르키온을 주교의 반열에까지 (적어도 실질적인 면에서는) 떠받들어 올렸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마르키온 분파의 교회 조직은 주교제도였던 것임이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 뚜렷한 증거는 많지 않다.http://cafe.daum.net/cgsbong
마르시온 주의는 헬레니즘과 영지주의에서 나온 이단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예수님의 인성(人性)을 부정하는 가현설(現, Docetism)도 헬레니즘과 영지주의에서 나온 이단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마르시온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지 합니다. 마르시온주의는 마르시온이라는 사람이 주장하여 그 사상을 세운 것입니다. 이 마르시온주의는 2세기 중반 초기교회에 가장 위협이 되는 이단이었습니다. 성경전체를 인정하지 않고 신약성경만 따로 재편집하여 정경이라고 주장하는 등 마르시온이 죽은 후에도 마르시온주의는 그의 추종자들을 통하여 수세기동안 남았습니다.
마르시온주의(Marcionism)
마르시온주의는 2세기 중반에 나타난 가장 위협적인 이단이었다. 마르시온이 쓴 작품들은 현존하지 않지만 터툴리안을 비롯하여 그를 비판한 교회 지도자들의 자료들을 통해서 그의 사상을 잘 엿볼 수 있다.
마르시온은 85년경 흑해 연안의 항구 본도(Pontus)에서 부유한 선박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
다. 그는 성스러운 처녀를 미혹했다는 혐의를 받았고, 교회의 감독이었던 그의 부친은 그를 교회에서 추방시켰다. AD 140년경 그는 쉬프스리더(Schiffsreeder)의 초청을 받고 로마로 건너가 그곳 교회에 거액을 헌금하여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가려 하였다. 로마에서 그는 크레도(Credo)라는 사람의 영지주의에 크게 영향을 받았고, 유대교와 물질세계를 증오했던 그는 자신의 신학을 발전시키며 크레도의 사상을 구체화시켰다. 그가 이단적 가르침을 시작하자 교회에서는 144년 그를 출교했다. 마르시온은 곧 독자적으로 교회를 세워 많은 추종자를 얻었으며, 마르시온 교회는 거의 1세기 동안 활발하게 활동했다.
마르시온은 극단적인 바울 추종자였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유대주의자들로 여겨 사도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오직 바울만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한 진정한 사도로 여겼다. 그리고 그는 구약과 신약을 분리시켜서 구약 성경은 유대인의 역사서요, 율법일 뿐이라고 여겼다. 또한, 구약의 신(神)은 지고한 하나님이 아니라 무지와 분노와 복수의 마음을 지닌 열등한 창조 신에 불과하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으로 충만한 참 하나님으로 우주적 구세주인 그리스도를 보내신 분으로 보았다. 마르시온이 정경(正經)으로 인정한 것은 바울의 10개 서신과 누가복음의 편집본이었다. 이것을 가리켜서 ‘마르시온의 정경(Marcionite Canon)’이라고 부른다.
마르시온은 영지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육체를 지니지 않은 영적 존재라고 가르쳐 그리스도가 ‘참 인간’이었음을 부정하는 가현설을 주장했다. 그는 육체의 부활은 없고 최후의 심판도 없다고 했다. 또 물질과 육체는 악한 것이므로 육식이나 부부생활을 금하는 엄격한 금욕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시온은 160년경에 죽었지만 마르시온의 추종자들은 이후에도 여러 세기 동안 활동했다.
마르시온의 성서 편집에 자극을 받은 초기 교회는 성경의 정경화(正經化) 작업을 촉진했고, 393년 북아프리카의 히포 회의와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27권의 신약성경 정경 목록을 확정했다. .blog.naver.com/sangda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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