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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회사

칼케톤 회의와 그리스도

by 은총가득 2022. 6. 12.

칼케톤 회의와 그리스도

 

Ⅰ. 서 론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는 수많은 이론과 논쟁의 결과로 451년 칼케톤 회의에서 어느 정도 분명한 결론에 이르렀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한 사도 베드로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된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는 칼케톤 회의에서 완전한 형태로 정립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교회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오해들이나 이단들과의 피나는 싸움의 연속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를 이성적으로 완벽하게 이해함에는 많은 어려움들이 뒤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의 형성 과정은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모든 것이 분명하게 정리되어진 현대의 우리들 가운데도 그리스도에 대한 온갖 혼란스러운 주장들이 여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전1:9)고 한 말씀은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와 관련된 온갖 주장들에도 적용이 되어 질수 있다. 오늘날에 새롭게 제기되는 것처럼 보여지는 주장들이라고 하더라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초대교회 때부터 있어왔던 주장을 반복하거나 변형시킨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의 발전과정과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진리를 분별함에 있어 매우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본 소고에서는 칼케톤 회의가 열리게 된 배경과 칼케톤 회의 그리고 칼케톤 회의 이후의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Ⅱ. 칼케톤 회의와 기독론의 확립

 

1.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의 확립

 

그리스도의 존재 양식(Mode)과 본질에 관한 신학 논쟁은 니케아공의회(325)에서 시작하여 칼케돈공의회(451)에서 일단락되었다. 신학논쟁의 중심 주제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였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인가? 아니면 완전한 인간인가? 완전한 사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처럼 실제로 성장의 과정을 거치면서 고난을 받기도 하고 성적인 욕망을 지녔다는 뜻인가? 그 분은 하나님이셨는가? 그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어떤 양식으로 존재했는가? 신성과 인성이 부분적으로 결합된 형태였는가 아니면 혼합된 형태로 존재했는가?

기독론 논의는 5세기에 이르러 두 학파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아타나시우스, 아폴리나리스, 키릴로 이어지는 알렉산드리아학파와 데오도레, 네스토리우스, 데오도렛으로 이어지는 안디옥학파이다. 전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고, 신비적이며 초자연주의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후자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고, 그리스도의 역사, 윤리, 인격 면을 중요하게 여겼다.

 

논쟁의 기선(機先)은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잡았다. 에베소공의회는 안디옥학파의 대변자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그러나 기독론 논의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양식과 본질에 대한 논의는 칼케돈공의회(451)가 극단의 헬라사고 양식을 배격하고 지금까지 논의되어 오던 건전한 요소들을 받아들임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며 아울러 완전한 사람이며, 두 본성은 나누어지지 않고, 분리되지 않으며, 변하지 않고, 혼합되지 않는다고 천명했다.

 

기독론 논의는 그 뒤에도 단일의지론, 단성론의 등장과 더불어 계속 교회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점차 칼케돈공의회의 결정이 정통신앙으로 수납되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중, 어느 한쪽을 부정하는 것은 마땅히 이단이라고 불리어져야 할 과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인정하더라도, 그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 역시 큰 잘못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주장들을 살펴봄으로써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를 확립하게 되는 과정을 알아보려한다.

 

1) 아리우스 주의(Arianism)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장로이었던 아리우스는 그리스도께서 창세전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심을 인정함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아리우스는 성자가 성부에게서 출생하신 분이기 때문에 시작이 있으므로, 성자는 성부보다 열등한 제2격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다.

아리우스는 오리겐의 종속설을 극좌파적으로 수용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아리우스에 의하면, 신적 존재 즉 실체는 유일하고 초월적이며 나뉠 수 없으므로 공유되거나 교통(交通)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의 교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창조의 행동에 의해서 무로부터 생겨난 것이어야 한다. 아들은 하나님과 세상을 중재하는 위치를 차지한다. 아리우스는 성자가 성부에게서 낳아졌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그는 ‘낳아졌다’(γεννη θέντα)라는 용어를 ‘성부에 의해 피조되었다’는 말과 동의어로 간주했다.

종속설이라고 불려지는 그의 주장은 영원의 개념을 오해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여기에서 영원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는 시간의 연장뿐만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무시간의 상태가 더욱 강조되어야 할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우스 주장은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대 집사이었다가 후에는 감독이 된 아타나시우스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서 AD 4세기 초의 교회는 큰 논쟁(아리우스 논쟁)에 휩싸였다. 이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소집된 니케아 회의(325)는 아리우스의 주장을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2) 아폴리나리스 주의(Apolinarianism)

아폴리나리스(Apolinaris)의 기독론은 한 마디로 말하면 아리우스주의를 계승하는 것이었다. 아폴리나리스는 그리스도가 진정한 중보자가 되기 위해서는 참 하나님인 동시에 참 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인정할 경우 제기될 위험을 경계하려 하였다.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이 인간이 되셨다면 그의 무죄성은 보장될 수 없고 그의 속죄 사역도 보증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한 인격체 안에 선성과 인성이 똑 같이 존재할 경우 변하기 쉽고 죄짓기 쉬운 인간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와 조화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폴리나리스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있어서 인간의 영혼 대신 ‘로고스’를 대입함으로 구세주로서의 자격을 부여하고 의지의 통일을 기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진정한 인성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아폴리나리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에 따라 인간을 몸(Body), 영혼(Soul) 그리고 이성(Rational mind)으로 구분한다.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에 있어서 인간의 영혼 대신 로고스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차지함으로서 우리와 다른 죄 없는 인간이 되셨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알렉산드리아의 로고스 기독론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정리해서 말하면 아폴리나리스는 그리스도의 인성은 완전한 인성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나시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에 따르면 아폴리나리스의 이단적인 주장은 주후 약 352년경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안디옥학파의 양성론(dyophysitism)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출발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약화시킴으로서 단성론(monophysi-

tism)으로의 출발을 인도한 결과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주장은 대 바실(The Great Basil), 닛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 그리고 힐라리우스(Hilarius) 등으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 회의(381)는 아폴리나리스를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3) 네스토리우스 주의(Nestorianism)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감독이었던 네스토리우스(Nestorius)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모두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신성과 인성이 연합한 결과, 통일된 하나의 인격을 이루셨음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에베소(430) 회의는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A. 양성논쟁

325년에서 381년을 거쳐 오면서 그리스도안의 두 본성의 관계가 무엇인가에 집중되었다. 이제 기독론의 문제는 신성과 인성의 동시성 규명에 있었다. 또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

속에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동시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것은 안디옥학파와 알렉산드리아학파의 논쟁이었다. 다시 말하면 안디옥학파를 대표하는 네스토리우스(Nestorius,? -451)와 알렉산드리아학파를 대표하는 시릴(Cyril, 376-428)간의 논쟁이었다.

 

B. 안디옥학파와 네스토리우스의 주장

이 논쟁의 시초는 안디옥학파의 데오도(Theodore of Mopsuestia, 350-428)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신인 양성의 구별에 중점을 두고 양성의 합치는 처음부터 완전한 것이 아니며 점진적인 것으로 보았다. 네스토리우스는 일성론자(一性論者, Monophysites, 일성론자란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의 본성만을 가졌으며 신성이 인성을 흡수하였다는 주장)들과 대항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두 본성, 인성과 신성을 각각 강조한 나머지 마치 그리스도가 두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듯한 교리를 주장하였다. 즉 이들은 신인 양성의 관계를 설명할 때 신성과 인성의 분리를 강조하였다. 안디옥학파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신자의 마음속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경우와 같이 예수님의 신성은 인간 예수의 몸을 성소(聖所)로 삼아 내주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로고스는 그리스도의 육체를 거처로 채용한 뿐이므로 로고스와 육체 곧 신성과 인성은 혼동될 수 없는 별개의 품성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두 품성은 진정한 결합을 통해 인격의 통일을 이룬 것이 아니라 조화된 의지의 일치를 통해 도덕적으로 결합된 것뿐이라고 했다. 결국 예수는 두 본성을 지닌 두 인격으로 보았다.

 

이 때 문제가 된 것은 데오토코스(θεοτοκος, Theotokos)라는 용어였다. 네스토리우스는 인간 마리아에게서 난 것은 인간이고 신성이 아니라고 했으며 마리아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anthropo-tokos, Christotokos)이고 예수님의 신성의 어머니가 아니므로 마리아를 신모(神母, 데오토코스)로 부를 수 없다고 하였다. 그것은 그가 마리아에게서 난 자를 처음에는 단순한 인간으로 본 것이요, 다음에는 하나님이신 말씀을 별도로 생각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양성을 두 인격으로 본 것이다. 이것이 네스토리우스의 이단적 견해였다.

 

C. 알렉산더 학파와 시릴의 견해

네스토리우스주의의 가장 유력한 반대자는 알렉산드리아의 씨릴(Cyril of Alexandria)이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교리적 입장은 알렉산더, 아타나시우스에 의해 대표된다고 할 수 있다.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강조하고 신인 양성이 분리될 수 없도록 결합되어 한 인격을 이루었다고 주장하고 이러한 그리스도를 낳은 마리아는 신모, 곧 하나님의 어머니(θεοτοκος, Theotokos)라고 하였다. 이 입장은 카파도키아 교부들에 의해 확립되고 시릴에게 와서 완성되었다.

시릴은 412년부터 이 도시의 감독이었는데 양성의 결합을 강조하였다. 그는 하나의 물리적인 결합 및 ‘사랑이 되신 로고스의 하나의 성(性)’에 대해 말하였다. 양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된 후 사실상(de facto) 하나의 성, 즉 신인적(神人的) 성(性)만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작열하는 석탄에서 불과 석탄이 오직 하나를 이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성과 인성도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되어 있다는 비유를 하였다(후에 유티커스는 이 점과 관련시켜 그의 이단적 단성론을 주장하였다.) 시릴의 기독론을 다시 설명하면 시릴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선재성을 전재로 하여 인성을 입으신 후에도 그리스도의 신성은 손상되거나 변화가 없다고 한다. 두 성품의 결합을 통해 신적인 동시에 인간적인 오직 한 성(性)만이 있을 뿐이라고 본 것이다. 즉 one person of two natures를 말했다.

 

4) 유티케스 주의(Euthycianism)

콘스탄티노플의 늙은 수도사 유티케스는 네스토이루스를 반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하나의 인격을 가지셨다고 했다. 그러나 신성도 인성도 아닌 제3의 성(tertium quid)으로 변했다고 주장했다.

이 점을 그는 다음과 같은 예로 설명하였다. 인성은 마치 바다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다에서 녹아 버리듯 인성은 신성에 의해 완전히 흡수되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성은 폐기되었고 실제로 인성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사실 이런 점을 우려했던 것이 네스토리우스의 생각이었다) 즉 성육신 이후 그리스도는 오직 한 품성만이 가지게 되었다 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와 동일하지 않다고 하였다.

 

2. 강도회의

 

이렇게 시작된 논쟁을 유티커스논쟁이라고 하는데 448-451년까지 계속되었다. 이때는 시릴은 죽고(444) 없었다. 콘스탄티노플 지방대회(448)는 유티커스의 단성론은 그리스도의 양성을 혼합한 이단이라고 정죄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디오스쿠루스(Dioscurus, 444-451)는 이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알렉산드리아 세력을 펴는데 유리하다고 보고 유티커스를 지원하였다. 그리고 데오도시우스 황제를 설득하여 449년 8월에 에베소에서 교회회의를 소집하였다. 디오스쿠루스가 의장이 된 이 회의에서는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였고 반대자들을 협박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두 성품의 조화를 주장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인성은 우리와 다르다고 하는 유티커스의 단성론을 정통으로 결정하고 그리스도에게 두 성품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는 둘로 쪼개라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이 회의는 정식회의가 되지 못하였다. 로마 감독 레오 1세는 이 회의를 ‘강도회의’(Latrocinium)라고 부르고 회의의 합법성을 부인하였다.

 

3. 칼케톤 회의

 

강도회의 이후에도 유티커스논쟁이 계속되었다. 450년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죽은 후 그의 사위 마르키안(Marcian, 450-457)이 황제가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양성을 주장하는 로마감독 레오(440-461)의 입장을 지지하고 451년 10월 8일 제 4차 교회회의를 칼세돈에 소집하였다. 가장 규모가 큰 교회회의였던 이 회의에는 약 600명(350 ?)의 감독들이 참석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유티커스 등 단성론자들을 파변하고 그리스도의 양성교리를 확립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칼세돈 신조가 작성되었는데 이 선조는 니케야신조 만큼 중요하다.

 

회의의 결정사항은 다음과 같다.

A. 교회는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가지신 것을 고백한다.

B. 교회는 한 인격체인 그리스도 안에 양성이 존재하며,

C. 이 (신,인) 양성은,

* 혼동이 없고((without confusion)

반 유티케스(Contra Eutyches)

* 변함이 없고(without change)

* 분리가 없고(without separation)

반 네스토리우스(Contra Nestorius)

* 분할이 없다(without division)

 

정리해서 말하면 그리스도는 본질상 하나님과 동일하고 또한 인간이 되심에 있어서 우리와 동일하다고 하는 그리스도의 양성교리를 교회의 정통교리로 확립한 것이다.

그러므로 칼세돈회의에서는 안디옥학파적 요소와 알렉산드리아적 요소가 합쳐졌다고 볼 수 있다. 즉 안디옥학파의 두 본성 의 나뉘어짐(unity in two natures)과 알렉산드리아의 두 본성의 통일성(unity)을 조화시켰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의 시릴의 주장처럼 두 본성으로부터(of two natures) 한 인격체가 되었다기보다는, 안디옥학파의 주장이 포함된 두 본성 안에(in two natures) 한 인격체로 통일을 이루고 있음( Communicatio idiomatum)을 고백하게 된 것이다.

 

이상에서 논의한 기독론 논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325년 나케아회의를 통해 그리스도의 신성이 확립되고,

381년 콘스탄티노플회의를 통해 성령도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점과 그리스도의 참다운 인성이 확립되었고,

431년 에베소 회의를 통해 그리스도의 인격이 하나임이 확립되었고,

451년 칼케돈회의를 통해 그리스도의 양성론(兩性論)이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4. 칼케톤 신조 본문

 

이 공의회(451)는 디오스코루스와 유티케스를 정죄하였고, 2년 전(449)에 있었던 ‘강도회의’ 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을 사면시켰다. 급기야 이 공의회는 레오의 문서를 읽었고, 이것이 바로 자신들의 신앙을 표현했다고 선언했다. 이 편지의 요점은 ‘한 위격 안에 두 본성’이라고 하는 몇 세기 전의 터툴리안의 주장이었다. 결국, 이 공의회는 신조라기보다 ‘신앙의 정의’(Detïnition of faith)에 해당하는 문서를 내놓게 되었다. 이 칼케돈신조를 잘 읽어 보면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의 양극적 입장은 물론 유티케스의 입장까지 배격하면서 니케아공의회(325년), 콘스탄티노플공의회(381년) 및 에베소공의회(431년)의 결의내용을 재확인하게 된다. 칼케톤 신조의 본문은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교부들을 따라서 우리 모두는 한 분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 하도록 가르치는 일에 하나가 되었다. 그는 하나님으로서 또한 사람으로서 완전하시며,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시며, 이성적인 영혼과 몸을 가지고 계신다. 그는 신성으로는 아버지와 동일본질이시고, 인성요로는 우리와 동일본질 이시다. 그는 만사에 있어서 우리와 같으시나 죄는 없으시다. 그의 신성은 시간 이전에 성부에게서 나셨고, 그의 인성은 마지막 날에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성자의 어머니 (theotokos)이시다. 우리는 유일하신 한 분 성자시요, 주시요,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를 고백한다. 그는 두 본성으로 인식되지만, 두 본성은 혼합이나 변화나 분할이나 분리가 되지 않음을 인정한다. 인격적인 연합은 각 성의 특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양성은 각 본성의 특이성을 보존하면서 하나의 품성과 자질로 연합되어 있다. 두 품성은 분열되거나 분리되지 않고, 한 분이시고 유일한 독생자이신 로고스 곧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다. 선지자들이 이렇게 증거 하였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와 같이 가르치셨으며, 교부들이 우리에게 이와 같이 가르치셨고, 교부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신조도 우리에게 이와 같이 가르치셨다.

 

위의 정의’ (definition)는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나를 정의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한계를 그으려는 것이었다.

 

 

Ⅲ. 결 론

 

칼케톤 회의 이후의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에 대하여 정통 교회들은 종파나 교파를 막론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칼케톤 신조에서 밝힌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18세기 계몽사조(Enlightenment)로 말미암아 등장한 인본주의의(Humanism) 풍조는 또 다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나섰다. 인본주의에 물든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형태의 권위주위에 강한 거부감을 가졌다. 따라서 영광과 권위와 관련이 깊은 그리스도의 신성보다는 우리들과 동일한 차원의 인성에 치중을 했다.

 

우리가 교회사를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초대교회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논쟁이 항상 있어왔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바른 답은 언제나 이미 성경에 다 나와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신이고 참 인간’이다.

우리는 신성과 인성의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되며, 또한 혼돈 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신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그리고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자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경고 한다.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4:2~3).

그러므로 우리는 오류에 빠져들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만이 하나님의 진리가 왜곡,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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