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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산책

에스겔 17장 주석

by 은총가득 2021. 7. 17.

에스겔 17장 주석

 

경: [겔17:1]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여호와의 말씀이...가라사대 - 15:1;16:1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겔17:2]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수수께끼 - 이의 히브리어 기본 어근은 '히다'(*)이며 '후드'(*, 매듭을 묶다, 수수께끼를 내다, 삿 14:12)에서 유래된 말로 '은밀한 말', '난해함' 등을 뜻한다. 이것은 그 본래의 의미를 애매 모호하게 숨기고 비유적인 표현을 통해 사물의 실체를 나타내는 것을 가리킨다. '히다'가 민 12:8에서는 '은밀한 말'로, 왕상 10:1에서는 '어려운 문제'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ꃨ 비유 - 히브리어로 '마솰'(*)은 '잠언' 또는 '비유'등의 뜻을 갖는다. 이는 어떤 유사한 사건이나 상황 또는 일 등을 비유적으로 나타내어 그 본질적인 교훈을 전달하는 말이다(잠 1:1).

성 경: [겔17:3]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채색이 구비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 - 본 구절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견해 차이를 보인다. 칼빈(Calvin)은 '날개', '깃', '털' 등을 당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정복하고 다스린 피정복 지역과 족속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쿡(Cooke)은 아마 에스겔 선지자가 바벨론의 우상 신전의 벽에 있는 다양한 색깔의 양각 부조(陽刻浮彫)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추정한다. 그렇지만 랑게(Lange)나 왓트(Watt)와 같은 학자들은 큰 '날개'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다스리는 통치 영역을, 긴 '깃'은 잘 훈련된 막강한 군사력을, 숱한 '털'은 그의 휘하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그리고 다양한 '채색'은 그의 제국이 언어, 관습, 의복 등이 다양한 복합 민족임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본 구절의 묘사가 수수께끼와 비유(2절)라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마지막 견해가 무난하다. 레바논은 팔레스틴의 북부 지역에 위치한 거대한 산맥으로서 북과 동은 시리아에, 서는 지중해에, 남은 이스라엘에 접하고 있다. 성경에서 이곳은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영토의 일부로 묘사된다(신 11:24;수 13:5).

 

특히 이곳은 백향목 산림으로 유명하며 이곳의 나무로 솔로몬 성전이 건축되어졌다(왕상 5:5-12;6:9, 10, 15, 16). 본 구절에서 비유된 레바논에 대해 혹자는 성전이 레바논 백향목으로 지어졌다고 하여 예루사렘 성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며(Hamieson, Brown), 다른 사람은 유다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Calvin, Cooke).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Lange, Watt, Dyer).


ꃨ 백향목 높은 가지를 취하되 - 백향목은 고대 근동의 레바논에서 자라는 소나무과의 상록 교목으로서 힘(욥 40:17;시 29:5), 번영(민 24:6;시 92:12;104:16), 아름다움(아 5:15) 등을 상징한다. 여기서는 다윗 왕가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본 구절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쳐들어와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사로잡음을 상징한다(왕하 24:10-12).

성 경: [겔17:4]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장사하는 땅...상고의 성읍 - '장사하는 땅'은 바벨론을 가리키며 '상고의 성읍'이란 바벨론 중에서도 상업이 번성한 성읍을 가리킨다. 바벨론은 유브라데 강과 페르시아 만을 통한 상업이 성행했으며 그 나라 자체에서도 수공업과 상업이 활발하였다고 한다(Watt). 계시록에서도 바벨론은 화려한 무역업을 하는 곳으로 묘사된다(계 18:10-20).

성 경: [겔17:5]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또 그 땅의 종자를 취하여...심되 - 이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사로잡혀간 여호야긴 왕 대신에 그의 숙부 시드기야를 유다 왕으로 세운 사실을 가리킨다(왕하 24:15, 17;대하 36:10).
ꃨ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가에 삼더니 - 수양버들은 그 속성상 물가에 심겨질 때 물을 흡수하여 푸르고 싱싱하게 잘 자란다. 따라서 이 비유는 느부갓네살이 시드기야를 유다 왕으로 옹립하되 어느 정도 번성하고 풍요를 누리도록 정치적인 권력과 함께 경제적인 부의 풍성함을 부여하여 선처한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Calvin).

성 경: [겔17:6]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그것이 자라며...포도나무가 되어 -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옹립된 유다 왕 시드기야가 어느 정도 경제적인 부와 정치적인 권력면에서 성장하고 탄탄하게 번성한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번성은 본 구절의 '높지 아니한'이라는 말이 암시하는 바 그 힘과 영향력에 있어서 한계성을 띠는 것이었다(Taylor).
ꃨ 그 가지는...독수리의 아래 있었더라 - 유다 왕 시드기야는 그 권면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이것은 시드기야가 유다 왕으로 옹립되긴 했으되 유다가 온전히 바벨론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뜻한다.

성 경: [겔17:7]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또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 - 3절의 '큰 독수리'와는 또 다른 '큰 독수리'로서, 당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보다는 못하나 고대 근동에서 어느 정도 세력을 떨치며 커다란 민족을 형성하고 있는 애굽의 왕을 가리킨다.
ꃨ 그 포도나무가...가지가 퍼졌도다 - 본 구절은 유다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반역하고 대신 그 정치, 경제적인 도움을 위해 애굽 왕 바로를 위뢰한 사실을 비유하고 있다(왕하 24:20;렘 37:7;44:30).

성 경: [겔17:8]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그 포도나무를..하려 하였음이니라 -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유다왕으로 옹립된 목적을 보여준다. 즉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로 하여금 번성하여 충실한 열매를 맺는 번영의 상태를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 그를 유다의 왕으로 옹립시켰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신 바, 이방 왕 느부갓네살을 통하여 유다 백성들을 번영과 평강의 상태에 거하도록 계획하셨음을 암시한다.

성 경: [겔17:9]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이 독수리가...그 뿌리를 뽑으리라 -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를 반역한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왕국을 침입해 파멸시킴을 예시한다. 이는 B.C. 586년에 그대로 이루어져 시드기야 왕이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고 유다 왕국이 패망케 되었다(왕하 25:1-7).

성 경: [겔17:10]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동풍이 부딪힐 때에...마르리라 하셨다 하라 - 팔레스틴 지역에서 '동풍'은 흔히 시로코풍(sciroco)으로 불리우기도 하는 바람으로서 아라비아 사막이나 가나안 땅 남동 지방 사막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열풍을 말한다. 이는 주로 봄에 많이 불어 오고 심할 때에는 많은 사진(砂塵)을 동반하여 불어옴으로 사람과 곡물들에게 많은 악영향을 끼친다. 이런 바람이 바벨론 제국에 비유된 것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유다 왕국이 멸망하게 됨을 암시한다.

성 경: [겔17:11]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여호와의 말씀이 또...가라사대 - 이는 1-10절의 비유적인 말씀에 대해 그 본질적인 의미를 말씀하기 위한 도입 구절이다.

성 경: [겔17:12]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너는 패역한 족속에게...못하겠느냐하고 - '패역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리' (*)는 동사 '마라드'(*, 반역하다)에서 유래되었으며 '반역'의 뜻이다(2:3). 이는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 숭배가 하나님에 대한 반역 행위였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그분만을 섬기며 살아야 했으나 우상을 왕으로 삼았기에 반역 행위를 한 것이다.


ꃨ 바벨론왕이...끌어가고 - 이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시드기야 왕 이전의 유다 왕 여호야긴이 B.C. 597년 '그 모친과 신복과 방백들과 내시들과 함께'(왕하 24:12)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사실을 가리킨다(왕하 24:8-10). 이때에 본서의 저자 에스겔도 제사장 신분으로서 포로로 잡혀 갔었다(1:2).

성 경: [겔17:13]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그 왕족 중에 하나를...맹세케 하고 - 이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로서, 선왕(先王) 여호야긴의 숙부가 되는 시드기야를 유다 왕으로 세운 것을 가리킨다(왕하 24:17;대상 3:17;대하 36:10). 특히 본 구절은 느부갓네살이 시드기야를 유다 왕으로 세우되 자기에게 복종과 출성할 것을 맹약케 했다. 이런 관습은 고대 근동에서 점령국의 왕(suzerain king)이 식민지의 왕(vassal king)에게 충성을 요구하는 대신 그 나라를 보호하겠다는 종주권 계약에서 비롯된 것이다.


ꃨ 그 땅의 능한 자들을 옮겨 갔나니 - '능한 자'란 히브리어로 그 기본 어근이 '야일'(*)로서 '힘', '힘센 자', '우두머리'등을 의미한다. 이는 정치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자들이나 부유층 사람을 가리키는 것 같다. 14절과 연관해 볼 때 아마 느부갓네살은 유다 왕국이 그에 대한 반역을 도모하지 못하도록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자들을 사로잡아 갔던 것 같다.

성 경: [겔17:14]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이는 나라를 낮추어...하려 하였음이어늘 - 이는 앞절(13절)에서 느부갓네살이 취했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즉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유다 왕국으로 하여금 그를 의뢰하며 그의 권력 아래에 존속하도록 하였다. 이런 현상은 고대 근동의 종주권 계약의 일반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성 경: [겔17:15]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그가 사자를...형통하겠느냐 - 이는 유다 왕 시드기야가 그를 왕위에 옹립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배반하고 애굽 왕 바로를 의뢰한 결과 곧 바벨론에 의해 쇠패할 것을 예시한 말이다(7, 9절). 당시 느부갓네살과 그의 군대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우주적 경륜을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로서 유다 왕국이 그에 부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는데, 시드기야와 유다 왕국이 이를 거역하고자 한 것이다(렘 27:10, 11;43:10). 그러므로 시드기야가 애굽과 동맹한 것은 느부갓네살과 맺은 종주권 계약을 파기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기도 했다.


ꃨ 피하겠느냐...피하겠느냐 - '피하겠느냐'란 말이 반복 표현된 것은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침공과 그로 인한 멸망을 모면할 길이 없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성 경: [겔17:16]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 5:11 주석을 참조하라.
ꃨ 그 왕의 거하는 곳...죽을 것이라 - 하나님은 유다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잡혀간 바벨론에서 죽을 것임을 선언하신다. 이는 B.C. 586년 유다 왕국이 패망한 후에 그대로 성취되었다(왕하 25:4-7;렘 39:7;52:11).

성 경: [겔17:17]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대적이 토성을 쌓으며 운제를 세우고 - '토성'은 히브리어로 '솔렐라'(*)인데 동사 '살라'(*, 쌓아 올리다)에서 유래되었으며 '언덕', '군사적인 방벽' 등을 뜻한다. 이것은 고대 전쟁의 공성법(功成法)의 한 수단으로서(왕하 19:32;25:1) 상대방의 성을 포위 공략하기 위해 그 성벽보다 높이 밖에서 흙을 쌓아 올려서 그곳에서 성을 정복하는 것을 가리킨다. '운제'에 대해서는 4:2 주석을 참조하라.


ꃨ 바로가...그를 도와 주지 못하리라 - 바벨론 군대들이 B.C. 588년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했을 때(왕하 25:1;렘 32:2) 시드기야 왕이 애굽의 바로에게 도움을 청해 바로의 군대가 그를 도우러왔다(렘 37:5). 그러나 바로 군대는 유다의 시드기야 왕에게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이내 본국으로 돌아갔으며 결국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 함락되었다(왕하 25:1-7;렘 39:1-10).

성 경: [겔17:18]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그가 이미 손을 내어 밀어 - 이는 당시 고대 근동 사회에서 계약에 대해 증언할 때 손을 내미는 일반적인 관습을 따른 것으로서(Calvin), 곧 충성된 서약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Delitzsch).
ꃨ 맹세를 업신여겨...피하지 못하리라 - 15절의 반복적인 표현이다.

성 경: [겔17:19]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그가 내 맹세를...배반하였은즉 - 유다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맺은 '맹세'와 '언약'을 본 구절에서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의 '맹세'와 '언약'으로 간주하셨다. 이에 대해 혹자는 당시 시드기야가 그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의뢰하여 맹세하고 언약한 것으로 해석한다(Carley). 실제로 당시 근동 지방에서는 그들이 믿거나 숭배하는 하나님 또는 우상등으로 맹세하고 언약하는 경향이 있었다(창 31:53;왕하 3:14;5:16;대하 18:13;암 8:14;습 1:5). 칼빈(Calvin)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땅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맹세나 언약은 단순히 그들 사이에서만 맺어지는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곧 이 땅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신뢰와 성실성이 유지되어지기를 바라시며 그것들이 위반될 경우 징벌하시는 공의의 심판주 하나님 앞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맹세나 언약은 곧 하나님 당신 자신의 맹세나 언약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본 구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을 징벌하시기 위한 도구로 바벨론을 선택하셨고 선지자들을 통해 바벨론에게 항복하라고 선언하셨던 사실에 근거하여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이 바벨론 군대에 항복을 하면 70년 후 다시 가나안 땅으로 회복시킬 것을 약속하셨으나 그들이 그것을 어겼던 것이다.


ꃨ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 - 9:10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겔17:20]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내 그물을...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 '그물'이나 '올무'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수단 또는 도구를 나타내는 비유적인 표현이다(12:13 참조).
ꃨ 그 반역을 거기서 국문할지며 - '국문할지며'란 히브리어로 '솨파트'(*)로서 '심판하다', '판결을 선고하다'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본 구절은 시드기야 왕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따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결국 그곳에서 죽게 됨을 암시한다(왕하 25:7).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 죽는 날까지 감옥에 갇혔다(렘 52:11).

성 경: [겔17:21]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ꃨ 그 모든 군대에서...엎드러질 것이요 - 12:14과 유사한 표현 방법이 사용되었다. 이스라엘 족속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 진멸되었으며 살아 남은 자들은 사방으로 도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피난처로 생각했던 애굽으로 피하여도 결코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경고대로 애굽에서도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렘 42:16).

성 경: [겔17:22]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백향목의 새 가지 비유]
ꃨ 백향목 꼭대기 - '백향목'은 레바논 산지에서 자라는 뛰어나고 곧은 목재인데, 여기서는 다윗 왕가를 상징한다(3절 참조).
ꃨ 높은 새 가지 - 다윗 왕가에서 나오는 한 새 왕을 가리키는 말로서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분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성령에 의해 잉태되어 오셨으나(마 1:18, 20), 육신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는 다윗의 후예로 오시어 다윗의 위(位)를 잇는 분이시다(눅 1:32, 33;롬 1:3).


ꃨ 연한 가지 - 이는 메시야의 육신적인 측면의 모습, 곧 겸손하시며(빌 2:5-8) 천한 모습으로 오실 것(사 53:2;눅 2:7)을 예시하고 있다. 높고 빼어난 산이란 일반 평지보다 높은 곳으로서, 땅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백향목 가지가 심겨진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왕으로서 모든 것을 통치하심을 암시한다. 그리고 위클리프(Wycliffe)에 의하면 이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아래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뜻도 함축하는 것 같다.

성 경: [겔17:23]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백향목의 새 가지 비유]
ꃨ 이스라엘 높은 산 -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산'으로서 곧 시온 산을 가리킨다(20:40). 시온 산은 다윗 왕이 여부스 족속을 정복한 후, 하나님이 그들을 다스리시며 통치하시는 이스라엘 왕권의 중심지로서 간주되었다(삼하 5:7;시 9:11;48:1, 2;149:2). 그리고 이산은 후에 임하실 메시야가 그 왕권을 세우시고 통치하실 중심 지역으로 묘사되기도 한다(시 2:6;146:10;사 2:2;미 4:2;슥 8:3;계 14:1). 그런데 혹자는 이를 단순히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지만(Lange) 큰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ꃨ 각양 새가...그늘에 거할지라 - 메시야 왕국이 임할 때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없이 많은 민족들이 그분을 믿음으로 구원받으며 그분의 은총과 축복 아래에서 보호받으며 안식할 것을 암시한다(마 11:28). 칼레이(Carley)는 이와 관련하여 부언하기를, 모든 피조물들을 보호해준다는 큰 나무에 대한 묘사는 고대 근동 지방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표현이라고(31:1-18;단 4:10-12;마 13:32) 진술한다.

성 경: [겔17:24]
주제1: [패망을 예고하는 두 독수리 비유]
주제2: [백향목의 새 가지 비유]
ꃨ 들의 모든 나무가...알리라 - '들의 모든 나무'란 이스라엘 주위에 있는 이방 열국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어 낮추시되 또한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는 회복하시고 높이신다(Plumtre).

성 경: [겔18:1]
주제1: [책임과 회개]
주제2: [개인적 범죄와 심판]
ꃨ 여호와의 말씀이 또...가라사대 - 이는 전장의 시드기야 왕의 불의와 패망과 메시야 예언에 대한 말씀과는 달리 하나님의 심판이 불공정하다고 하는 이스라엘 족속들의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면서 개인적인 죄에 대한 심판을 언급하는 도입 구절이다.

 

 

비유와 그 설명을 한 눈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이 모든 구절들을 함께 다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서로를 설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1. 예언자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수수께끼를 베풀라" 는 명을 받는데(2절), 이는 삼손의 수수께끼가

블레셋인들에게 베풀어진 것처럼, 그들을 골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또 그들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감추어 모호하게 하거나, 그들로 그것에 대하여 불확실하게 놔두어서, 흔히 수수께끼를 풀어

설명할 때 보통하는 것처럼, 하나하나를 추측하게 하려는 것도 아니다. 아니, 그는 즉시 그들에게

그 의미를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라" (고전 14:13).

그러나, 그는 그들이 그것을 더 주지하고, 스스로 그것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고, 잘 기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메시지를 수수께끼나 비유의 형태로 전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흔히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 예언자들을 통해 비유를 쓰셨고, 그리스도는 스스로

비유로 그의 입을 여셨다." 수수께끼나 비유들은 우리들 자신에게 한 오락거리로, 우리

친구들에게 한 흥미거리로 쓰여진다. 그러나 이 예언자는 이 비유를 말하는 중, 하나님의 일들이

경솔한자들의 마음속에 인식되고 수용되는지를 살피기 위해서 비유를 사용해야 한다. 사역자들은

잘 받아들여지는 말들을 찾아내려고 공부해야 하며, 선을 행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교화를 위해 생각해 볼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한 친숙한 것을 그들의 설교에

이용하신, 그들의 설교를 일상 담화로 엮어서, 간혹 그렇듯 강단에서 하는 말과 밖에서 하는 말

사이에 큰 불일치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주목하자.

 

2. 그는 이 수수께끼를 "패역한 족속에게 해설하라" 는 명을 받았다(12절). 비록 "패역" 하였으므로,

무식 속에 버려두어 보거나 듣고 깨닫지 못했도록 하는 것이 옳을지 모르나, 사태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너희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겠느냐?" 그 줄거리를 알고 이제 초래되는 변동을

아는 자들은 이 수수께끼의 소임을 재빨리 추측할 것이나, 아무 핑계를 대지 못하게 하려고,

예언자는 저들에게 쉬운 말로써, 은유를 벗겨야 한다. 그러나 그 수수께끼는 먼저 그들이 잠시

동안 연구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그들의 친구들에게 전달하도록 하기 위해서 선포되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탐구하고 얼마 후에 올 해답을 기대하도록 하려 했다. 이제 이 메시지의

주제가 무엇인지를 보도록 하자.

 

Ⅰ. 느부갓네살은 얼마 전, "여고니아" 라고 불리우는 사람과 동일 인물인 여호야긴을 나포해 갔다.

그것은 그가 고작 18세 되던 해 또 겨우 "3 개월" 동안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였을 때이고, 그때

그와 그의 방백과 대신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왕하 24:12). 이것이 비유에서는

백향목" 의 부드러운 가지 끝을 꺾어서, "장사하는 땅, 상고(商賈)의 성읍" (3,4절)으로 운반해

가는(이것은 12절에서 설명된다) 독수리로 상징되었다. "바벨론 왕" 은 "예루살렘의 왕" 을

잡았는데, 그 예루살렘 왕은 연한 가지는 그 가지를 꺾어 "그 둥지" 를 만드는 데 쓰려고 하는

힘센 맹금과 싸울 수 없듯이, 바벨론 왕에게 저항할 수가 없었다.

다니엘의 환상에서는 느부갓네살이 짐승의 왕인 "한 사자" 로 나타났다(단 7:4). 거기서 보면

그에게는 "독수리 날개" 가 있고, 그로 인해서 그의 동작이 신속하며 그의 정복이 매우 빨랐음을

나타냈다.

 

여기 본장에서는, 그가 새 중의 왕인 "독수리," 그것도 강포와 늑탈로 살아가며, 그 어린 새끼들도

"피를 빠는" (욥 39:30) "큰 독수리" 로 상징되었다. 그의 지배는 독수리의 거대하고 길다란

날개처럼 자신을 멀리, 그리고 널리 확장한다. 백성은 수가 많으니, 그것은 "털이 숱하다" 고

말했다. 그 궁정은 화려하니, 그것을 "채색이 구비하다" 고 말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수놓은

것" 과 같이 보인다. 예루살렘은 레바논, 곧 집들의 숲이며, 매우 즐거운 곳이다. 왕가는 "백향목"

이다. 여호야긴은 그가 꺾은 가는 "가지 끝, 곧 연한 가지 끝" 이다. 바벨론은 그 정착된 곳에서

장사하는 땅" 이며 "상고의 성읍" 이다. 그리고 유다의 왕, 곧 다윗 족속은 스스로 불명예와 큰

치욕을 당하여 장사꾼들 중에 거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사태를

이용해야 한다.

 

Ⅱ. 바벨론 왕은 그를 바벨론으로 잡아갈 때, 그의 삼촌 시드기야를 그의 자리에 대신 앉혔다(5, 6절).

그의 본 이름은 "마타니아" -곧 "여호와의 선물" 인데, 이를 느부갓네살이 시드기야-곧 "여호와의

공의" 로 바꾸었다. 이 사람은 "그 땅의 종자" 로써, 본토인이요, 외국인이거나 그의 바벨론 방백

중의 하나는 아니었다. 그는 예루살렘이 아직도 존재했으므로, "옥토에 심겨" 졌다. 그는 "큰

물가에 심어졌는데," 거기서 "수양버들" 처럼 자랐다. 그러나 빨리 성장하고 습한 땅에서 가장 잘

자라지만, 정정한 나무로 여겨지지는 못한다.

 

그는 조심성있게, "용의주도" 하게 "그것을 세웠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읽는다). 그는

현명하게도 그것이 자라도록, 그러나 너무 크게 자라지는 않도록 영양을 공급했다.

"그는 그 왕족 중에 하나를 택하여" (이처럼 13절에 설명된다), 만일 바벨론의 조공국으로 남아서,

자기에게 의존하고 책임을 지고 있는 한 왕권과 왕의 직위를 누리게 하겠다고 "그와 언약을 맺었다

" 그는 "그로 맹세케 하였다." 그 자신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에게 대한

충성을 맹세케 하였다(대하 36:13).

 

그는 또한 "그 땅의 능한 자들을 옮겨 갔다." 즉 전쟁에 능한 사람들 중 우두머리를 데려가,

일부는 언약의 수행에 대한 인질로서, 또 일부는 그 땅이 그로 인해 약화시킴으로써 유다 왕이 더

무능해지게 하고, 따라서 동맹을 깨뜨릴 유혹에 덜 빠지도록 하였다.

 

우리는 그가 무엇을 꾀했는지를 여기서 본다(14절). 명예로나 국력에 있어서 "나라를 갖추고,"

그의 힘센 이웃의 경쟁이 되지 못하게 하고, 그의 약한 이웃에게 공포가 되지 못하게 하며, 과거에

그래왔듯이 바벨론 왕국과 경쟁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일으키지 못하게" 하고 혹은 바벨론에

종속되어 있던 불쌍한 속국들 모두를 꼼짝 못하게 누르려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언약을 지키면

능히 서게하고" 한 왕국으로 지속하게 하려로 꾀했다. 이리하여 저 건방진 권세자의 교만과 야망은

만족되었으니, 그는 "지고자와 같이" (사 14:14). 그 주위 사람 전부를 그에게 굴종시킬 목표를

세웠었다.

 

이제 여기서 다음을 살펴보자.

1. 죄가 유다 왕가에게 가져다 준 변화는 얼마나 비통했던가 ! 주변의 모든 나라가 이 나라의

조공국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외국들에 대한 그 통치권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하나의 족속이 되었다. "정금이 어찌하여 그 광채를 잃게 되었는고 !" 나라들은 죄로

말미암아 그들의 자유를 팔아먹고, 제왕들은 그들의 작위를 팔아먹으며, "죄가 그들을 땅에 던져

그들의 왕관을 더럽힌다."

 

2. 필요가 그를 그렇게 이끌었을 때, 얼마나 현명하게 시드기야는 그 자신을 위해서 비록

불명예스러웠으나, 이 약정을 받아들였는가 ! 사람이란 비록 그가 이전처럼 중요한 구실을 감당치

못하고 전과 같이 중요한 인물이 되지 못해도, 매우 안락하고 만족스럽게 살 수가 있다. 나라는

비록 종종 그 왕국이 그래왔듯이 영예로이 서지는 못해도, 견고하고 안전되게 설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족도 그럴 수가 있다.

 

Ⅲ. 시드기야는 바벨론 왕에게 계속 충성하는 한편, 매우 잘 처신했다. 만일 그가 단지 그의 왕국을

개혁시켜 하나님과 그에게 대한 의무로 돌이키려고 했다면, 더 잘 행했을 것이며, 그로 인해 곧

그의 이전 위엄을 회복할 수도 있었으리라(6절). 이 식물은 자랐고, "수양버들 가지처럼 심겨"

졌다. 그에 대해 별로 설명이 없으나,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되었으니,

이는 그 자신의 나라에 큰 축복이었으며, 그의 열매들은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그리고

높지 아니하나 퍼지는 포도나무가 되는 것이 아무 쓸 데없는 높은 백향목이 되는 것보다는 낫다.

그 가지들이 그들 향해 돌이켰고" (한글 개역과 다름, 6절), 느부갓네살 왕을 벽 위에

포도나무처럼 의지했으므로 느부갓네살은 만족했으며, 이 포도나무의 자기 몫을 차지하였다.

거기서 나오는 뿌리도 그의 아래 있었고" 그의 마음대로 되었다.

 

그래도 유대인들은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었으니, 이는 그들이 자신의 포도나무 아래 앉아, 그것이

"굵은 가지와 잔 가지를 낳고" 좋은 전망이 있어 보이는 사실을 목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격분을 야기하는 이 못된 백성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천천히 임하는가 ! 또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심판을 연기해 주며, 회개할 여지를 남기셨는가를 보라. 하나님은 그것을 한

왕국이 못되게 멸망하기 전에 스스로 겸손해질까 하여 시험해 보려고 "나라를 낮추어" 보았다.

아직 그들에게 쉽도록 해 주어서, 그에게 돌아오도록 그들의 마음을 줄 수 있을지, 경고된 환난이

예방될 수 있을지를 시험하셨다.

 

Ⅳ. 시드기야는 자기가 번영했던 때를 몰랐고, 바벨론 왕의 조공국이 되는 치욕에 못마땅하여, 그것을

피하려고 애굽 왕과 은밀한 동맹 관계에 들어갔다. 그는 바벨론 왕이 그에게 어떤 새로운 곤란을

부과했거나 그에게 불리한 점을 증가시켰거나 또 그가 그의 나라를 학대하고 탈취했다고 불평할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예언자는 그의 반역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미 말한 바(6절)를

다시(8절) 말한다. "그는 큰 물가 옆의 옥토에 심겨졌다." 그의 가문은 충분히 확립될 수 있었고,

그의 국고도 단 시일 내에 채워질 것 같았다. 만일 그가 신실하게 대처했다면 "선한 포도나무" 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애정을 품고 신뢰하였던 "또 한 마리의 큰 독수리" 가 있었으니 곧

애급 왕" 이었다(7절). 저 두 주권자, 바벨론과 애굽의 왕은 단지 큰 두 독수리요, "맹금" 이었다.

이 큰 독수리 애굽은 "큰 날개" 를 가졌다고 이야기되나, 바벨론 왕처럼 "긴 것을 가지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비록 애굽 왕국도 강했으나, 바벨론 왕국이 가졌던 저 막대한 영토를

차지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 큰 독수리는 "많은 턱" 을 가졌다고 했는데, 이는 시드기야가 주요한 수비대로서 의존했으나,

실상은 "많은 깃털" 에 불과했던 큰 부와 많은 군대였다. 시드기야는 스스로에게 자유를

기약하였으나, 미련하게 그의 주인을 갈아치움으로써 애굽 왕의 신하가 되었다.

 

이제 "이 포도나무" 는 은밀하고 비밀히 저 거대한 독수리 애굽왕을 "항해 그 뿌리가 발했으며,"

잠시 후에 공개적으로 "그 가지를 그에게로 펴서," 그와 동맹맺기를 탐하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그 나무는 "큰 물가에 심겨져" 있었으므로, 그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았는데, "이

독수리에게 물을 받으려고 그 심긴 두둑에서" 뻗어 나갔던 것이다. 이 사실이 15절에서 설명된다.

시드기야는 "사자를 애굽에 보내어" 그들에게 "말과 군대를" 줄 것과 그로 바벨론 왕과 상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을 바람으로써, 바벨론 왕을 모반했다. 죄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준 변화가

무엇이었는가를 보라 !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바다의 모래같이 수 많은 백성이 되리라고

약속하셨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왕에게 많은 사람이 필요해지자, 애굽에게 군대를 요청해야

했다. 그들은 죄 때문에 "수가 감소하여 비천하게 된" 것이다(시 107:39). 또한 스스로를

개선하려고 애쓰는 것이 오히려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마는, 이 불평꾼들의 어리석음을 보라.

그들은 만일 단지 "현재의 일을 최선으로 이용하려고만" 하면, 충분히 안이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가 있었던 터였다.

 

Ⅴ. 여기서 하나님은 시드기야와 그의 나라의 전적인 멸망을 경고하신다. 그에 대해 못마땅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바벨론 왕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려는 그의 모반에 대해 심판을 내리시는 것이다. 이것은

비유 속에 나타나 있다(9, 19절). 즉 "뿌리를 뽑고, 실과를 따며, 잎사귀를 마르게 하니," 그들이

푸를 때(욥 8:12), 즉 스스로 시들어지는 가을이 시작되기 전에 "그 연한" 잎들이 마르는 것으로써

비유되었다. 그 계획을 바람에 날려버리리라. 그것은 "완전히 말라" 버리리라. 이 배신적 군주의

매사는 회복할 가망이 없을 정도로 파멸될 것이다. 동풍이 휩쓸러 간 포도나무처럼, 그것은 오직

땔감으로만 합당하며(15장 4절의 비유에서도 이런 것을 발견한다), 아무리 물을 잘 줄지라도

자라나는 두둑" 에서조차 마를 것이다. 그것은 뽑아 던질 큰힘이나 많은 사람없이" 멸절될 것이다.

포도나무 하나를 뽑는데 군대를 일으킬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큰 수고없이도 큰

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자. 그는 그의 목적을 효력있게 하는데 큰 힘이나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만일 그가 원하시면 한 몸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는 아무 곤란없이 죄된

왕과 백성을 멸망시킬 수 있다. 우리가 땅을 망치는 나무를 뽑을 때 쓰는 힘 이상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그 비유의 설명에는, 이 선고가 매우 자세히 지록되어 있다. "그가 형통하겠느냐?" (15절) 그가

악을 행하고도 잘 될 줄로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그러한 악한 일을 행한 자가 "피하겠느냐?

그가 "언약을 배반하고도" 그의 배반에 마땅한 심판인 저 보복으로부터 "건짐을 받겠는가?" 아니다.

그가 악을 행하고도 재앙을 당하지 않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그가 당할 운명을

듣도록 하자.

 

1. 그것은 하나님의 맹세에 의해 비준된다(16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그것으로 인해 죽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 범죄를 크게

책망하시며 가혹한가를 암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시편 95편 11절에서 하셨듯이, "노하여

맹세하신다." 하나님의 약속이 맹세로 확인되어 성도들에게 위로를 주듯이, 그의 경고는 사악한

자들에게 공포를 주기 위해 역시 그렇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복되시다는 점이 확실한 만큼(" 그러한 한" 이라고 덧붙일 수도 있다)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은

죽고 불행하게 되리라는 것이 확실하다.

 

2. 그것은 그가 범한 죄악의 흉악성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1) 시드기야는 "자기를 왕으로 삼고," 보호해 주며, 또 포로로 만들수도 있었을 때에 군주로 삼아

주었던 그 의후원자에게 매우 배은망덕하였다. 친구들에게 불친절하고, 우리를 도와 준

자들에게 발길질을 올려대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죄악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2) 그는 그가 언약을 맺었던 자에게 매우 거짓되이 행해왔다. 이것이 가장 크게 강조되어 있다.

그는 "맹세를 업신여겼도다" 고 했다. 그의 양심이나 친구들이 그 점을 상기시켜 주었을 때,

그는 그것을 묵살하고 담대한 결의를 하고서 "그것을 배반하였다" (15, 16, 18, 19절). 그는

그것을 파기하였고, 그것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여, 교만하기를 마치 오늘날의 대전제

군주처럼 되었다. 그런 자의 표어는, "군주는 자기에게 득이 되지 않는 이상 자기의 말에

노예가 되지 않아야 한다" 는 것이다.

 

시드기야의 배신을 더욱 악화했던 점은 그가 바벨론 왕에게 행했던 속박의 맹세가,

[1]엄숙한 맹세였다는 점 때문이다. 이 점이 강조되어 있다(18절). "그가 이미 손을 내어 밀어"

바벨론 왕과 동맹을 맺었으니, 그의 신하로서 뿐만 아니라 그의 친구로서, 손을 맞잡고

그것을 마음의 결합의 표로 삼았어야 했다.

 

[2]신성한 맹세였던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가 업신여긴 것은 "나의 맹세" 요

그가 배반한 것은 나의 언약" 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엄숙한 맹세에 있어서,

맹세하는 자의 신중함에 대한 증인으로서 간청을 들으시며, 만일 맹세자가 거짓으로

맹세하거나 앞으로 어느 때에 그 맹세를 깨뜨린다면, 그의 배반에 대하여 심판자와

보복자로서 나서게 된다. 그러나 군주에 대한 충성의 맹세는, 마치 그 속에는 다른 맹세보다

무엇인가 더 신성한 것이라도 있는 것처럼, 특별히 "하나님의 맹세'라고 불리워진다(전 8:2)

왜냐하면 군주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우리에게 선을 이루는 자" 이기 때문이다(롬 13:4).

그러므로 시드기야가 맹세와 언약을 파기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머리에 돌릴" 죄이며,

하나님을 반역한 반역" 이니,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국문할" 것이다(20절). 맹세를 깨뜨리는

것은 흉악한 죄이어서 하늘의 하나님을 매우 격토케 하는 것임을 명심하자. 그것은 결코

용서될 수 없다.

 

첫째, 이 맹세를 세운 사람은 왕, 곧 다윗 족속의 왕으로서, 그의 자유와 위엄이 분명히

맹세의 의무를 초월해 있다는 변명은 통할 수 없다. 결코 그럴 수 없다. 비록 왕들이

우리에게는 신들과 같으나, 하나님께는 사람이며, 그의 율법과 심판에서 면제될 수 없다.

군주는 의심할바 없이, 백성이 충성의 맹세에 의해 군주에게 매여 있듯이, 그의 즉위식

선서에 의해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에게 굳건히 매여 있다.

 

둘째, 또한 이 맹세는 이교 군주, 곧 이단보다 더 악하며 로마교회가 "어떤 믿음도 보존될 수

없다" 고 선언한 바벨론 왕에게 한 것이라는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 비록

느부갓네살이 거짓 신들을 숭배하는 자였으나, 참된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경배자 중 하나가

그와의 동맹을 깨드릴 때는 그것을 복수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빛이기 때문이다. 또 만일 참된 종교의 선포자들이 거짓 종교의 선포자들을

불성실하게 대한다면 그들의 공언은 결코 변명될 수 없을 것이며, 의롭다고 인정해 주기는

커녕 그들의 죄를 더 악화시키며, 하나님께서는 더 확실하고 더 엄격하게 징계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여호와의 대적들에게 참람된 말을 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저 마호멧교도 군주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와 맺은 동맹을

파괴했을 때, "오 예수여 ! 이들이 당신의 그리스도인들입니까?" 하고 소리질렀던 것과 같다.

 

셋째, 그 맹세가 한 정복자에 의해 그에게 강조되었다는 사실도 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언약은 신중한 고려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신실하여 바벨론 왕에게 진실한

충성을 다하겠다는 이런 조건으로 그의 생명과 왕관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가

그의 계약의 혜택을 누리려 한다면 계약 조건들을 준수해야 했다. 그로 하여금 "맹세를

업신여기고, 언약을 배반하면, 피하지 못할 것이라" 는 사실을 알게 하라. 또 그러한 맹세와

이와 같은 언약을 멸시하고 깨뜨리는 일도 징계된다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그들이

실행해야 할 것에 "그들의 손을 내어 밀었을" 때), 저 "언약의 피를" 거룩하지 않은 것처럼

발 아래 밟는" 자에 대하여는 얼마나 더 쓰라린 심판이 내려질 것인가? 비교도 안 될 것이다.

 

3. 시드기야가 받을 운명은 여러 모로 세분화되어 나타나 있다. 그 속에서 심판은 그의 죄에 대해

응보하게 되어 있다.

 

(1) 그가 바벨론 왕을 반역했으니, 바벨론 왕은 그의 실질적인 정복자가 되어야 한다. 그는 바벨론

왕과의 "언약을 배반했으니," 그 왕이 "거하는" 곳 바벨론 중에서 그와 함께 있다가 "죽으리라"

(16절). 그는 그의 손에서 벗어날 줄로 생각하나, 실상 예전 이상으로 더 깊이 그의 손에

떨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를 대적하여 바벨론 왕을 편들 것이니, "내 그물을 그

시드기야) 위에 베풀리라" (29절). 하나님께서 딴 마음을 품고 그의 공의로운 심판을 피하려고

생각하는 자에게 그물을 던지시니, 맹세와 언약의 결속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 사로잡히리라.

시드기야는 바벨론을 두려워하였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를 그리로 이끌어낼

것이며, 거기에서 국문할지어다" 라고 했다. 사람들이 죄악에 의해서 도망하려고 애쓰던 바로

그 환난을 당하게 됨은 정당한 처사이다.

 

(2) 그는 "애굽 왕을 의지했으나," 애굽 왕은 아무 효력없는 조력자였다. "바로는 그의 큰

군대로도 전쟁에서 그를 도와 주지 못하리라" (17절). 그는 그에게 편의도 보아 주지 않고,

갈대아 군사의 진행에 통제를 가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토성을 쌓으며 요새를 세워서"

시드기야가 "포위" 되어 있을 때 돕지 않을 것이며, "많은 사람드렸 멸" 함으로써 전장에서

그를 돕지도 않으리라. 모든 피조물은 우리에 대해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대로 존재하며, 그는

보통 우리가 믿고 자신을 의지하는 "인생들" (육체의 팔)을 약하게 하시고 마르게 하신다는

점을 명심하자.

 

이제 다시금 이전의 유사한 경우에 말했던 것이 실현되었다(사 30:7).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들은 그렇게 행했다. 비록 애굽 군대가 접근하자 갈대아인들은 예루살렘의

포위를 풀고 물러갔으나, 그들이 다시 공격하여 예루살렘을 취하였다. 애굽인들은 시드기야를

도울 진심과 충분함 힘도 없이, 마지 못해서 했던 것 같다. 신뢰를 두었던 자를 배반하는

자들은 응당 그들이 믿었던 자들에 의해 배신당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그러나 애굽인들이 시드기야가 의지했던 유일한 나라는 아니었다. 그는 심복 경호단을 그를

위해 두었으나, 그 부대가 비록 정예부대로서 그의 왕국이 가졌던 최선의 군사들이었다고

생각되지만 "도망한 자" 가 되며, 그들의 위치를 버리고 자기 살 길을 찾아가리니, 원수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남은 자는 사방으로 흩어지리라" (21절). 이는 "성읍이 깨뜨려져서 모든

군사가 도망하였을 때" 이루어졌다(렘 52:7). 그 때에 "나 여호와가 이것을 말한 줄을 너희가

알리라." 조만간 하나님의 말씀이 스스로 입증될 것이며, 믿으려 하지 않는 자들은 체험에

의해서 그 말씀의 사실성과 중요성을 발견할 것이다.

 

긍휼의 약속(에스겔 17:22-24)

여호야긴과 시드기야가 사로잡힘으로써 유다 왕가가 황폐하게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을 질문이 일어날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자녀가 영원히 그의 보좌에 않으리라는, 다윗과 맺은 왕권의 언약은 어떻게

되었는가? 다윗에 대한 확실한 긍휼이 이처럼 불확실한 것이 되고 말다니?" 이에 대하여는 그 약속이

조건적인 것이었음을 말해 줌으로써 모든 의문을 침묵시킬 수 있다. 만일 "그들이 내 언약을 지킨다면"

그들은 살아남으리라(시 132:12). 그러나 다윗의 후예는 그 조건을 깨뜨렸고, 그래서 약속을 상실했다.

그러나 인간의 불신앙이 하나님의 약속을 무가치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이 성취될 또

하나의 "다윗의 씨" (자손)를 찾아내실 것이다. 본 대목에는 그것이 약속되어 있다.

 

Ⅰ. 다윗의 족속은 다시 높이 들려지리라. 타고 남은 재로부터 다른 한 마리의 불사조가 일어날 것이다.

경고에서 사용되었던 나무의 은유가 여기서는 약속으로 재현된다(22, 23절). 이 약속은, 다윗집의

한 가지인 스룹바벨이 유다인을 포로 생활로부터 귀화시키고 성읍과 성전을 재건하고 그들의

교회와 나라를 다시 세웠을 때,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이며, 하나님께서 약속에 따라 "그 조상 다윗의 위" 를 주셨던(눅 1:32) 메시야의 왕국에서

완성을 보게 된다.

 

1. 하나님께서 친히 다윗 가계를 다시 살리시고 회복하시는 일에 착수하신다. 느부갓네살은

독자적으로 다윗의 집을 다시 세우려고 시도했던 "큰 독수리" 였다(5절). 그러나 그 계획은

실패했다. 그의 식목은 마르고 뽑혀졌다. 하나님께서 말씀하기시를, "자, 그 다음은 내가 심는

일일 것이다. 내가 또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취하여 심으리라" 하셨다. 인간들이

그들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도 그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나, 그의 계획은

인간의 계획이 날려가 버릴 때에 오히려 왕성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느부갓네살은 자기 마음대로 왕국들을 차지할 수 있음을 자랑했다(단 5:19). 그러나 그 왕국들은

곧 끝날 것이지만, "하나님이 망하지 않을 한 나라를 세우신다" (단 2:44).

 

2. 다윗의 집은 "그 높은 새 가지에서 꺽어낸 연한 가지" 에서 재생된다. 스룹바벨이 그러했다.

그에게 있어서 희망적이었던 것은 단지 "작은 일의 날" 이었으나(슥 4:10), 그의 앞에서는 "큰

산들도 평평하게 되었다." 우리 주 예수는 "백향목 꼭대기의 높은 가지" 요, "뿌리" 로부터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지만(왜나하면 그가 나타난 얼마 후 "다윗의 집" 은 모두

멸절되었으므로), 하늘과는 가장 가까우니, 그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그는 "연한

가지의 꼭대기로부터 취해졌으니," 곧 "그 사람, 그 가지, 연한 식물로서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요" (사 53:2), 의로움의 가지, 여호와가 심으셔서 영광받은 가지였다.

 

3. 이 가지는 "높은 산(22절) 이스라엘 높은 산" 에 심겨진다(23절). 하나님은 스룹바벨이 거기서

개가를 부르게 하였다. 또 하나님은 거기서 그의 아들 예수를 일으키사 "산 중에 흩어졌던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 을 모으러 보내며, 그를 "그의 거룩한 시온산에 왕으로" 세우시고,

시온산" 으로부터 복음을 전파하며 "예루살렘으로부터 여호와의 말씀을 전파하게 하셨다." 거기서,

"이스라엘의 꼭대기," 그의 모든 이웃들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나라로 주목했던 곳에 처음 식목된

그리스도의 교회가 있었다. 유다의 교회들은 가장 원시적인 교회들이었다. 불신적인 유대인들은

그것이 거기 심겨지는 것을 방해하려고 온갖 짓을 다했다. 그러나 누가 하나님께서 심으시려 하는

것을 뽑을 수 있겠는가?

 

4. 거기서부터 그것은 멀리, 또 널리 퍼진다. 유다 나라는 스룹바벨 시대에 매우 낮은 데서

시작하였고, 쉽사리 뽑일 수 있는 연한 가지처럼 세워졌으나, 뿌리를 뻗고 기이하게도 퍼져서,

얼마후에는 매우 확고한 나라로 되었다. 다른 나라들, 곧 "각양 새" 가 그 아랫 깃들였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처음에는 겨자씨 같았으나, 이 연한 가지처럼 큰 나무로 자라나서, 처음에는

작던 것이 끝에가서는 감탄할 만큼 크게 자라났다. 이방인들이 교회로 모여 들었을 때, "각양 새"

(저 맹수와 약한 새도, 마치 "늑대와 양" 이 함께 먹듯이, 사 11:6)가 와서 "이 아름다운 백향목

그늘 아래 거하였다" 는 말이 실현되었다. 다니엘 4장 21절을 보라.

 

Ⅱ. 하나님께서 친히 여기서 영광을 받으시리라(24절). 메시야 왕국을 이 세상에 세우심은 과거 어떤

때보다 더 분명히 "하나님은 온 땅에 왕이심" 을 인생에게 드러낼 것이다(시 47:7). 이러한 진리,

즉 모든 것들이 무한히 지혜롭고 전능하신 "섭리자" 에 의해 다스려진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승귀와 인간 중에 그의 나라를 수립함에 의해서 가장 완전하게 나타났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의 손 안에 모든 심령을 맡기셨고 모든 일들의 처분권을 지니고 계심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들의 모든 나무는 알지니라."

 

1. 하나님께서 "낮추시고 말리려" 하는 나무는, 비록 높고 정정하며, 아무리 푸르고 잎이 무성해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명예나 부, 외적 출세나 내적 재능, 그 어느 것도 낮추시고 마르게

하시는 섭리로부터 인간을 구할 수 없으리라.

 

2. 하나님께서 꼭 높이시고 무성하게 하시려 하는 나무들은, 비록 낮고 말랐을지라도, 높여지고

무성하게 될 것이다. 느부갓네살의 집이 지금 그처럼 거대한 모습을 형성했으나 멸절될 것이며,

다윗의 집은 지금 그처럼 보잘 것없은 모습을 이루고 있으나 다시 유명하게 될 것이다. 또 유다

민족도 지금은 비루해 보이나, 막강한 민족이 될 것이다. 사탄의 왕국은 오랫동안 크게 세상을

지배해 왔으나 파괴될 것이요, 그리스도의 왕국은 업신여김을 받아왔으나 서게 될 것이다.

교회적 특권에서 볼 때 높고 푸르렀던 유다인들은 던져질 것이요, 낮고 마른 나무들이었던

이방인들이 그들의 자리를 대신하여 차지하게 되리라(사 54:1). 모든 그리스도의 원수들은

낮어져서 그의 발등성이 될 것이며, 그의 이익은 확인되고 증진될 것이다. "나 여호와는 말하

(그리스도가 높여져서 모통이의 머릿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공포된 법령이었다), 이루나니," 즉,

내가 그것을 적당한 때에 행할 것이니, 그것은 마치 이미 행해진 것처럼 확실히 될 것이다. 그가

말한 것은 그가 행할 것을 우리가 확신할 수 있으며, 그의 말씀의 일점 일획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으리니, "그는 사람이 아니어서 거짓을 말하지 않거니와, 인자(人子)가 아니어서 경고나 약속을

후회하지 않는다."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에스겔 17장)

[1-6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수수께끼와 비유를 이스라엘 족속에게 베풀어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채색이 구비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취하되 그 연한 가지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에 이르러 상고(商賈)의 성읍에 두고 또 그 땅의 종자를 취하여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가에 심더니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 곧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어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의 아래 있었더라.

하나님께서는 두 독수리와 포도나무의 수수께끼와 비유를 말씀하셨다. 여러 색깔을 가지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많은 한 큰 독수리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가리켰다(12절). 하나님께서는 11절 이하에서 그 수수께끼와 비유를 설명해주셨다. 

 

[7-10절] 또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 하나가 있었는데 그 포도나무가 이 독수리에게 물을 받으려고 그 심긴 두둑에서 그를 향하여 뿌리가 발하고 가지가 퍼졌도다. 그 포도나무를 큰 물가 옥토에 심은 것은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 나무가 능히 번성하겠느냐? 이 독수리가 어찌 그 뿌리를 빼고 실과를 따며 그 나무로 시들게 하지 아니하겠으며 그 연한 잎사귀로 마르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많은 백성이나 강한 팔이 아니라도 그 뿌리를 뽑으리라. 볼지어다, 그것이 심겼으나 번성하겠느냐? 동풍이 부딪힐 때에 아주 마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자라던 두둑에서 마르리라 하셨다 하라.

 

7절의 다른 한 큰 독수리는 애굽 왕 바로를 가리킨다고 보인다. 또 9절에 그 포도나무의 뿌리를 빼고 실과를 따며 그 나무로 시들게 한 독수리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가리켰다고 보인다. 

 

[11-15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패역한 족속에게 묻기를 너희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겠느냐 하고 그들에게 고하기를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왕과 방백을 사로잡아 바벨론 자기에게로 끌어가고 그 왕족 중에 하나를 택하여 언약을 세우고 그로 맹세케 하고 또 그 땅의 능한 자들을 옮겨 갔나니 이는 나라를 낮추어 스스로 서지 못하고 그 언약을 지켜야 능히 서게 하려 하였음이어늘 그가 사자를 애굽에 보내어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니 형통하겠느냐? 이런 일을 행한 자가 피하겠느냐? 언약을 배반하고야 피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그 수수께끼 비유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그 처음의 큰 독수리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가리켰고 레바논은 유대 땅을 가리켰다. 그 바벨론 왕은 유다 땅 예루살렘에 와서 왕과 방백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끌어갈 것이다. ‘연한 가지’는 유다의 어린 왕 여호야긴을 가리켰고, 장사하는 땅과 상인들의 성읍은 바벨론 땅을 가리켰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유다 나라와 예루살렘 성을 침공하여 여호야긴 왕을 사로잡고 그와 여러 방백들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갈 것이다(왕하 24:8, 15-16). 바벨론 왕은 그 땅의 한 씨로 비유된 왕족 중 하나인 시드기야를 택하여 언약을 세우고 그로 맹세하게 하고 그 땅에 재능 있는 자들을 옮겨갔다. 그것은 유다 나라로 하여금 스스로 서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다(왕하 24:17). 

 

그러나 시드기야 왕이 사자를 애굽에 보내어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다. 그가 바벨론 왕과의 언약을 배반하였으니(왕하 24:20; 대하 36:13) 재난을 피할 수 있겠는가?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 왕을 배반하고 친(親)애굽 정책을 취하였기 때문에, 바벨론 왕은 예루살렘 성을 다시 침공하였고 유다는 멸망하게 될 것이다. 

 

[16-18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바벨론 왕이 그를 왕으로 세웠거늘 그가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그 왕의 거하는 곳 바벨론 중에서 왕과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라. 대적이 토성(土城)을 쌓으며 운제(雲梯)[포위벽]를 세우고 많은 사람을 멸절하려 할 때에 바로가 그 큰 군대와 많은 무리로도 그 전쟁에 그를 도와 주지 못하리라. 그가 이미 손을 내어 밀어 언약하였거늘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고 이 모든 일을 행하였으니 피하지 못하리라.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는데, 그가 맹세를 업신여기고 언약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그는 바벨론 왕의 거하는 곳에서 왕과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다. 또한 예루살렘 성을 침공할 바벨론 군대가 토성을 쌓고 포위벽을 세우고 많은 사람을 멸절하려 할 때, 즉 유다 멸망 때, 애굽의 바로와 그 큰 군대와 많은 무리가 그 전쟁에서 유다 왕 시드기야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시드기야가 손을 내밀어 바벨론 왕과 언약했으나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고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므로 그 멸망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19-21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 내 그물을 그 위에 베풀며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나를 반역한 그 반역을 거기서 국문할지며 그 모든 군대에서 도망한 자들은 다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남은 자는 사방으로 흩어지리니 나 여호와가 이것을 말한 줄을 너희가 알리라.

 

시드기야 왕의 배신 행위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맹세를 업신여기고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것이었다. 그것은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에게 맹세시킬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였기 때문이다(대하 36:13). 그 맹세와 언약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것이며 물론 바벨론 왕과도 맺은 언약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시드기야의 그 언약 배반에 대한 죄를 그 머리에 돌리실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를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그 반역을 심문할 것이며 또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에서 도망한 자들은 다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남은 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며, 이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될 것이다. 바벨론 군대에 의한 유다 나라의 멸망은 곧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22-24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또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취하여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빼어난 산에 심되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을 이룰 것이요 각양 새가 그 아래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거할지라.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우고 마른 나무를 무성케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백향목 꼭대기에서 한 높은 가지를 취하여 이스라엘 산에 심으실 것이며 그 가지는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 아름다운 백향목을 이룰 것이요 각양 새가 그 아래 깃들일 정도로 커질 것이다. 그 가지는 열매 맺는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예언 곧 메시아 예언이라고 본다. 이것은 구약의 다른 성경들과 일맥상통한다(사 11:1, 10; 53:2; 렘 23:5; 슥 3:8).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이루시는 주권적 하나님이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바벨론 왕의 유다 침공, 유다 왕이 포로로 잡혀감, 다른 유다 왕이 세움 받음, 그 왕의 배신과 유다 나라의 멸망은 다 주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로 되어진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개인의 생사화복, 가정과 교회의 일들, 우리나라의 흥망성쇠와 세계 역사를 주관하심을 알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치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배반함으로 멸망하였다. 우리가 세례 서약이나 결혼 서약이나 임직 서약에서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저버리지 말고 잘 지켜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배반치 말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의지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회개시키시고 예수님 믿게 하시고 순종케 하신다. 우리는 우리를 죄와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김효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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