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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산책

이사야 45장 주석

by 은총가득 2021. 7. 4.

이사야 45장 주석


여호와께서 고레스를 세우시다


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2.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3.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4.  내가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자 이스라엘 곧 너를 위하여 네 이름을 불러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6.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8.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창조의 주, 역사의 주

9.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
10.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
11.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12.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13.  내가 공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사로잡힌 내 백성을 값이나 갚음이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1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소득과 구스가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남자들이 네게로 건너와서 네게 속할 것이요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하시니라
15.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16.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
17.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받아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너희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18.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19.  나는 감추어진 곳과 캄캄한 땅에서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혼돈 중에서 찾으라고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한 것을 알리느니라



구원을 베푸시는 분은 하나님


20.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아 너희는 모여 오라 함께 가까이 나아오라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구원하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들이니라
21.  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2.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23.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
24.  내게 대한 어떤 자의 말에 공의와 힘은 여호와께만 있나니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갈 것이라 무릇 그에게 노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리라 그러나
25.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


 

 

이사야 45장 주석

 

고레스에 관한 예언 (이사야 45:1-4)

고레스는 (혹자의 말대로) 메대 왕 아스테이지의 혈통을 이은 메대 사람이었다. 이교도 기자들은 그의 혈통에 대한 의견에 서로 일치하지 않고 있다. 혹자는 그가 유아 시절에 버려진 자로서 양치기의 아내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퍽 비범한 자였기 때문에 곧 매우 골목할 만한 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일치되고 있다. 그는 그 왕을 격퇴했을 뿐만 아니라, 유리한 점을 이용하여 매우 용맹스럽게 삽시간에 사데를 빼앗고 부유한 루디아 왕국과 그 당시 거기에 속했던 여러 도의 주인이 됨으로써 복수를 했던 것이다. 이것은 그를 매우 위대하게 만들었고(크레소스는 풍부한 속담거리가 되었다), 그로 하여금 여러 나라에서 계속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그가 그의 삼촌 다리오와 바사 군대와 연합하여 이 유명한 바벨론 공격을 수행했던 것은 거의 십년 후의 일이었다. 이것이 여기에 예언되어 있으며 우리는 다니엘 5장에서 이에 관한 역사를 읽을 수 있다. 바벨론은 당시 엄청나게 부유하고 강하게 되었다. 그것은 둘레가 사십 오 마일 되는 영토였다(혹자는 그 이상으로 말한다). 성곽은 두께가 32피트였고 높이가 100규빗이었다. 흑자는 그 벽이 매우 두꺼워서 여섯 개의 병거가 병행해서 그 위를 갈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 흑자는 그 폭이 50규빗 높이가 200규빗이라 말한다. 고레스는 이 곳의 주인이 되려는 큰 야망을 지니고 있어서 그것을 오랫동안 구상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것을 이루었다. 그것이 성취되기 210년 전인 때에, 여기에 다음과 같은 것이 얘기되어지고 있다.

 

 

Ⅰ. 하나님은 그를 위해 어떤 큰 일을 행하실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능력으로 자신의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을 위해, 고레스는 막강한 정복자와 부유한 군주가 될 것이며, 열방족들이 그에게 조공국이 되고 사람들과 돈으로 그를 돕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위해 행하시기로 여기에서 약속하신 것을 그는 스룹바벨을 위해, 또는 일부의 유대인들을 위해서 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맡기는 것을 거의 합당치 않게 여기신 이 세상 재물과 권세는 많은 올무와 시험이 된다. 그리고 교회의 유익을 위해 그것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감히 그들의 손에 주기 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손에 주시어 그들을 위해 사용되게 하기를 기뻐하셨다. 고레스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기름 받은" 자라 불리우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이 큰 봉사를 하기로 예정되어 자격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는 메시야의 모형이 될 것이었다. 엘리사가 그 왕이 아람 왕에게 활을 쏘려할 때 그 손을 잡은 것같이(왕하 13:16) 하나님은 그를 힘있게 하시고 떠 받쳐 주시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의 동작과 의도를 지시하기 위해서 그의 손을 잡고 계신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지휘 아래 있으므로,

 

1. 고레스는 매우 멀리까지 정복할 것이며, 그에게 가해질 저항을 물리치게 될 것이다.

바벨론은 젊은 영웅이 손대기에는 너무 강한 곳이다. 그러므로 그가 그것을 다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른 정복자들의 큰 도움이 그의 힘에 덧붙여질 것이다.

 

(1) 인구가 많은 나라가 그에게 항복할 것이다. 하나님은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실 것이다. 승리한 경력이 가득할 때, 단번에 그는 열국의 태어남이 허사가 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굴복시키는 것은 고레스가 아니다. 그를 위해 그들을 굴복시키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그 싸움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승리도 그의 것이다.

 

(2) 힘 센 왕들이 그의 앞에서 쓰러질 것이다. "내가 열왕의 허리를 풀리라." 그들의 허리띠를(그들의 능력과 위엄을 빼앗음), 또는 그들의 허리 힘을 풀리라. 그것은 문자그대로 벨사살에게서 이루어졌다. 즉 그가 벽에 손으로 쓴 글자를 보고 공포에 잠겼을 때, "허리(넙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 했던 것이다(단 5:6).

 

(3) 큰 성읍들이 고레스에게나 그들 자신에게 고통을 줌이없이, 그의 손에 항복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 성읍을 지키는 자로 하여금 패역하거나 비겁하게가 아니라, 그와 다투는 것이 소용없음을 확실히 깨달음으로써 "성문을 그 앞에 열게" 하도록 만드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문이 그를 대적으로 여겨 굳게 닫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친구로서 들여보내기 위해 열려질 것이다.

 

(4) 가장 길고도 위험스러운 행군이 그에게는 쉽고 용이하게 될 것이다. "내가 네 앞서 가서" 그 길을 깨끗케 하고 거기에서 너를 지휘하리라. 그때에는 "험한 곳이 평탄게" 될 것이다. 또는 혹자의 해석대로 높은 곳이 낮아져 평탄케 될 것이다. 자기를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지닌 자들은 길이 이미 마련되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5) 그의 앞에서는 어떤 저항도 서지 못할 것이다. 그에게 위임장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못들어가게 잠겨있는 "놋문을 쳐서 부수며," 그것을 걸어맨 "쇠빗장을 꺽으실" 것이다. 바벨론 성읍이 모두 놋으로 된 백 개의 문과 그것에 붙어있는 똑 같은 금속으로 된 기둥과 갈고리를 갖고 있었다는 헤로도투스의 보고가 사실이라면, 이것은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2. 고레스는 그의 금고들을 매우 가득 채울 것이다(3절).

 

"내가 네게 흑암 중의 보화를 주리라." 그 보화들은 오랫동안 자물쇠 아래 갇혀 있어서 여러 해 빛을 보지 못한, 또는 그 성읍이 빼앗기자 그 거민들이 놀라서 땅 속에 묻어두었던 금은 보화들이었다. 여러 민족의 재물이 바벨론으로 들어 왔었으며, 고레스가 그것을 모두 빼앗았다.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 은 나라의 것이든 개인의 것이든지 간에 모두 고레스에게 포획된 것이다. 이처럼 고레스로 하여금 그의 교회에 봉사를 하도록 계획하신 하나님께서는 미리 그에게 그것에 대한 풍성한 댓가를 지불하셨다. 그리고 고레스는 그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매우 정직하게 시인했고, 그것을 생각하여 그 포로들을 놓아주었다. "하나님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를 명하사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다(스 1:2).

 

Ⅱ.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위해 이 모든 일을 행하심에 있어서 무엇을 의도하셨는지를 볼 수 있다. 고레스가 무엇 때문에 전쟁을 했는가는 우리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전쟁을 훌륭히 이기도록 하신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그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명화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으로써, 네가 태어나기 오래 전에 너를 지명하여 부른자가,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고레스가 이사야에게 알려 준 예언을 보고 거기에 자기 이름과 매우 오래 전에 상세히 묘사된 자기 업적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때, 그는 이것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주 여호와, 즉 오직 홀로 살아계신 참되신 하나님이심을, 그리고 그의 이스라엘이 지금은 비록 포로 상태에 있지만 그가 계속 그들을 인정하셨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형통했을 때 이처럼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형통할 때 그를 잊기가 매우 쉽기 때문이다.

 

2. 그것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4절).

고레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우상 숭배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그 참되신 하나님이 그에게는 무명의 신이었다. 그러나 비록 그가 하나님을 몰랐을지라도 하나님은 그가 태어날 때를 알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그를 미리 아셨고, 그를 그의 목자로 증거하셨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고레스" 라 칭하셨다. 아니 그에게 그러한 칭호를 주신 영예 외에 그를 그의 "기름받은자" 라 부르셨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고레스를 위해 이 모든 일을 행하셨는가? 그것이 그에게 알려졌을지라도, 그것은 그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고결한 자였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크세노폰은 그의 저서 키로패디아(Cyropaedia)에서 어떤 훌륭한 군주의 영웅적인 고결함을 묘사하고자 할 때, 실제로 고레스의 이름을 사용했으며 그의 이야기에 대한 많은 사례들을 인용하였다. 그러나 다른 역사가들은 고레스를 거만하고 잔인하며 피에 굶주린 자로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를 발탁하신 이유는 "그의 종 야곱을 위함" 이었다. 여기에서 다음 사실에 주목하자.

 

(1) 나라의 모든 변혁에 있어서, 크고 강한 자의 갑작스러운 몰락과 알려지지 않았던 약한 자의 놀라운 진출 속에서, 하나님은 그의 교회의 유익을 도모하고 계신다.

 

(2)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재물과 권세를 받은 자들은, 그것을 그의 영광을 위해 그의 백성에게 친절을 베푸는 데에 사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고레스는 이스라엘이 해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발탁되었다. 그가 나라를 얻을 것이나,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백성이 자유를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장차 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에서 고레스는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그리스도는 정사와 권세를 이기게 되셨고 하나님의 종들, 즉 그의 택하신 자가 사용하고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헤아릴 수 없는 보물을 위임하셨던 것이다.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엡 4:8), 즉 다른 사람들을 사로잡은 자들을 사로잡고, "갇힌 자들을 놓아 주셨다."

 


하나님의 주권 (이사야 45:5-10)

하나님은 여기에서 그의 단독적인 최고의 주권을 주장하고 계시다. 그가 고레스를 위해 그리고 그를 통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 속에서, 세상에 입증하고 나타내시기로 계획한 것으로써 그것을 주장하고 계시다.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Ⅰ. 위대하신 여호와의 주권에 관한 이 교리가 어떻게 여기에서 다음 두 가지 사실로 진술되어 있는가?

 

1. 그는 홀로 하나님이시며 그 이외에는 하나님이 없다. 이것이 여기에서 기본적 진리로서 가르쳐지고 있다. 만일 그것을 확고히 믿는다면, 그 진리는 세상에서 우상을 폐하게 할 것이다. 모든 사칭하는 자들에게 매우 두려운 명령으로 권위있고 위풍당당하게 도전함으로써 그 위대하신 하나님은 여기에서 그 진리를 세상에 선포하고 계신다. "나는 여호와라," 그리고 "나밖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그 외에는 스스로 존재하고 스스로 충족한 자가 없으며, 무한하고 영원한 자가 없다. 그리고 다시(6절에서)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와 겨루기 위해 세워진 모든 것들은 사이비이다. 그들은 모두 헛되며 거짓된 것이다. 나는 여호와이며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는 것이다" (6절).

 

이러한 사실이 여기에서 고레스에게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그를 그의 조상들의 죄(그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죄이었다)에서 치료할 뿐만 아니라, 승리를 거둔 그의 일부 선조들과 보편적인 군주들의 죄(그것은 자신의 신앙을 신격화하고 우상화하는 것이었으며 혹자는 우상 숭배의 기원을 여기에서 들고 있다)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레스가 이처럼 부유하고 위대하게 되었을 때, 그로 하여금 자신은 여전히 사람에 불구하고, 그 한 분 이외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라.

 

2. 그는 만유의 주이시며, 그가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7절). "나는 고맙고 즐거운 빛도 짓고, 무섭고 불쾌한 어두움도 창조한다. 나는(모든 유익을 위한) 평안도 짓고, 환난도 즉 죄의 환난이 아니라(하나님은 그것의 장본인이 아니시다) 형벌의 환난도 창조한다.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명하고 지시하며 행하는 자니라." 여기서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사람의 자손들에게 일어나는 매우 별다른 사건들. 빛과 어두움은 서로 반대이나 섭리의 과정 속에서 그것들은 때로 아침과 저녁의 미광처럼 서로 섞여 "낮과 밤이 없다" (슥 14:7). 기쁨과 슬픔이 한 컵 속에 같이 섞여 있어 서로를 가볍게 해 준다. 때로 그것들은 정오의 광명과 자정의 흑암처럼 교체된다. 매일의 운행 속에서 각기 제 궤도를 돌며 거기에는 이것에서 저것으로 바뀌는 단기간의 변화가 있는데, 이것은 욥의 경우에서 입증되고 있다.

 

(2) 이 두 가지의 동일한 원인. 그리고 모든 것의 제일 원인이신 하나님. 만유의 근원인 "나 여호와" 는 모든 능력의 근원이다. 자연의 빛을 지으신(창 1:3) 그가 아직도 섭리의 빛을 지으신다. 불화를 일으키던 자손들과 자연의 원리 가운데, 최초로 평안을 지으셨던 그가 사람의 일들 속에 평안을 지으신다. 자연의 어두움(그것은 단순한 박탈에 지나지 않는다)을 허용하셨던 그가 섭리적인 어두움을 창조하신다. 고통과 환난에 관하여 그가 절대적인 명령을 내리시는 것이다. 이처럼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모든 고난을 명하시고 배열하신다.

 

Ⅱ. 이 교리가 여기에서 어떻게 입증되어 있으며 공포되어 있는가?

 

1. 그것은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위해 행하신 것에 의해 입증되어 있다. "나밖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따라서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라(5절). 너를 띠로 동여 이 원정에 나가도록 하고 네게 그것을 행할 권위와 능력을 준 것은, 네가 알고 섬겼던 네 우상이 아니었다. 네 띠를 동인 것은 나였다. 네가 알지 못했고 구하지도 않았던 나였다." "이것" 에 의해, 이스라엘 하나님이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그에게 외인이며 다른 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자들까지도 그가 원하시는 대로 다루시고 사용하신다는 것이 보여지고 있다.

 

2.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그의 섭리에 의해, 그리고 바벨론에서 고난당하는 유대인들의 증거에 의해 온 세상에 공포된다. 따라서 동에서 서에 이르기까지, 해뜨는 곳에서부터 해지는 곳까지 있는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며 그 이외에 다른 이가 없음을 알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하신 이스라엘의 놀라운 구원은 온 세상에 "여수룬의 하나님 같은 자 없으며,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실" (신 33:26) 것이라는 것을 선포해 주는 것이다.

 

 

Ⅲ. 이 교리는 여기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적용되어 있는가?

 

1. 이스라엘의 구속을 진심으로 바라나, 조용히 기다리는 자들의 위로를 위해(8절).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같이 듣게 할지어다." 혹자는 이것을 구원에 대한 성도들의 기도로 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것을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훈시로 받아들이고 싶다. 왜냐하면 그가 "구원을 베푸신다" 고 적혀있기 때문이다(시 44:4). 이제 그 훈시는 일반적으로 왕의 명령이 "모든 관원, 문무관에게" 내려지는 것같이, 하늘과 땅에 지시되어 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서 이 큰 사업을 이루실 때 각자의 위치에서 그것을 성취하는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도우려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들 없이 그것을 성취하실 것이다. 마치 이슬을 하늘에서 내리시고 단비를 풀 위에 내리시는 것같이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하실 것이다" (막 5:7).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이스라엘을 위해 역사될 이 큰 구원의 방법. "의로움" 이 먼저 그들 안에 역사되어야 한다. 즉 그들은 그들의 죄를 회개하며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들의 생활을 개혁해야 한다. 그러면 구원이 그들을 위해 역사될 것이며, 그 이전에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의로움이 없이 구원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함께 움돋으며 여호와께서 그것들을 함께 창조하셨기 때문이다(시 85:9-11 참조).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 가운데 있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셨고, 우리를 의롭고 거룩하게 만드심으로써 우리를 구속해 주셨다.

 

(2) 이 큰 구원의 수단들. 그것이 실패하게 되기는 커녕 그것을 위해 정한 때가 올 때 "하늘이 의로움을 내리고, 땅이 구원을 낼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은 하나님의 개혁에 협력하고, 따라서 그 회복에 협력할 것이다. 의가 내려지는 것은 하늘로부터, 궁창 위로부터이다. 모든 은혜와 훌륭한 은사는 위로부터 오는 것이다. 더구나 성령이 더욱 풍성히 임한 이후로, 그것은 "부어" 내려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이 그것을 받도록 열려져 있다면, 그 소산물은 의로움과 큰 구원의 열매가 될 것이다.

 

2. 이 구원을 방해한 교회의 원수들이나 그것에 낙심한 교회의 동료들을 책망하기 위해(9절)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투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신 자이므로 곧 우리를 지으신 자이시다. 그것이 우리가 그와 다투지 말고 항상 그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1) 교만한 압제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마음을 높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대적하거나, 하나님의 백성이 해방되는 때가 왔을 때 더 이상 그들을 억류하려는 생각을 품지 않게 하자. 바로처럼, 하나님께 도전하며 그 백성이 가지 못하게 하는 무례한 바벨론 사람들에게 화가 있으리라!

 

(2) 압제당하는 불쌍한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포로 상태가 연장되는 것에 대해 마치 그가 그들을 부당하거나 불친절하게 다루시는 것처럼, 또는 하나님의 때가 이르기 전에 그들의 길을 강행하고자 하는 것처럼 낙심 속에서 하나님께 투덜거리고 다투지 않게 하자.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투는 자들은 스스로가 비참한 상태에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하여 마음을 배역하게 갖고서 형통하는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죄 많은 사람은 사실상 싸움을 좋아하는 피조물이다. 그러나 "질그릇 조각은 질그릇과 더불어 다투게" 하자. 사람들은 토기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들은 깨진 질그릇이며, 그들이 서로 다툼으로써 더욱 그렇게 된다. 그들은 서로 부딪쳐 조각난다. 그리고 그들이 다투고 싶다면, 서로 다투게 하라. 그들로 그들의 경쟁 상대와 관여하게 하라. 그러나 그들로 하여금, 그들보다 무한히 높으신 자와 감히 다투지 않게 하라. 그와 다투는 것은 다음과 같이 지각없고 어리석은 일인 것이다.

 

[1] 진흙이 토기장이를 비난하는 것과 같다.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네가 어찌하여 나를 저렇게 만들지 않고 이 모양으로 만들었느뇨 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마치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매우 화가 나서 분노를 터뜨리며 "그는 손이 없다" 고 말하거나 그가 손이 없는 것처럼 서투르게 일한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진흙이 토기장이 보다 지혜로운 척하여 그에게 충고하거나, 토기장이 보다 더 강하여 그를 지배할 수 있는 척하겠느냐?" 우리에게 존재를, 이러한 존재를 부여하신 자는, 그가 원하시는 대로 우리에 관하여 계획하며 우리를 다루실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그에게 지시하는 것은 건방지고 주제넘은 일이다. 우리가 우리를 이처럼 묘하게, 이처럼 훌륭하게 만드신 하나님의 지혜를 비난하거나 그의 능력을 의심하겠느냐? 우리가 우리를 그 손으로 만드시고 그 손안에 우리를 두고 계시는 하나님께 대해, "그는 손이 없다" 고 말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교리는 그의 섭리와 은혜의 방법들에 대한 우리의 모든 불만과 반대를 잠잠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롬 9:20, 21).

 

[2] 그것은 어린아이가 그 부모를 비난하여 그 아비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낳았느냐?" 또는 어미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낳으려고 구로( 勞)하느냐? 어찌하여 내가 인성의 연약함과 인생의 재앙에서 벗어난 천사로 태어나지 않았느냐" 고 묻는 것과도 같다. 사람의 자손들은 다른 사람들이 당하는 것을 당하고 그 공동 운명을 나누기를 각오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라면, 우리가 그의 의지에 복종함으로써 그에게서 받는 명예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격려 (이사야 45:11-19)

포로 상태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환난 중에 하나님의 뜻과 화해했고 그가 그들을 건지실 때를 만족스럽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그들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보장받고 있다.

 

Ⅰ. 그들은 그들의 환난의 결과에 관하여 묻도록 권유되고 있다(11절).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 는 그들이 그와 다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나 다음과 같이 하도록 그들을 격려하고 계신다.

 

1. 그의 말씀에 의논함.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선지자들과 그들의 예언에 의뢰하고 그들이 이 일에 관해 말한 것을 보라. 파수꾼에게 밤이 어떠하뇨? 얼마나 남았느뇨? 하고 물으라." 장래일은 그것이 계시되는 한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한 일이며 우리는 그것에 대해 외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2. 기도로써 그에게 물음,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그것들은 그 아버지의 뜻에, 그 토끼장이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합당하다)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간청하는 식으로 내게 부탁하라. 약속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것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라면, 진지하게 청하고 확신을 갖고 기대하라."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자와 격렬한 원망으로써 다투어서는 안 되나, 충성되고 열렬한 기도로써는 그와 씨름해도 좋을 것이다.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을 내게 맡기라" (혹자는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그들을 내게 데려와 내게 맡기라. 기도의 능력을 보고, 그것이 하나님께 효과 있음을 보라. "네가 소리쳐 부르면, 그는 '내가 여기 있느니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라고 말하실 것이다."

 

혹자는 그것을 책망하는 의문문으로 풀이하고 있다(9,10절). "네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니 내가 네게 답할 의무가 있느냐?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해 네가 내게 명하거나 지시하겠느냐?" 네가 감히 그렇게 하겠느냐? "누가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거나" 법도를 주겠느냐?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들은 사실상 그에 대한 권위를 사칭하는 것이다.

 

Ⅱ. 그들이 매우 비천하게 되고 스스로를 도울 능력이 완전히 없게 될 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도록 격려받고 있다(12절). 그들의 "구원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자기의 영광뿐만 아니라 그들의 위로를 위해서 그것을 언급하고 계신다. 그가 원하신다면, 천지가 교회의 구원에 기여할 것이다(8절). 그가 천지를 창조하셨고 따라서 그것을 모두 명하시기 때문이다.

 

1. "그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다." 즉 땅을 인생의 거처가 되게 하셨던 것이다(시 115:16). 그러므로 그는 이 땅에서 사람들을 다스리고 그가 원하시는대로 그들을 사용하실 수 있는 충분한 권위 뿐만 아니라 지혜와 능력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2. "그가 친수로 하늘을 펴고 최초에 만상을 명하셨다." 따라서 지금도 그들의 모든 운행과 작용을 주관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는 그들의 하나님이 세상의 창조자이시며 통치자라는 이 사실이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Ⅲ. 그들이 무엇을 의지해야 할지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특별히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행하실 것인가가 이야기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그들로 하여금 더욱 영광스러운 구속자와 구속을 기대하도록 인도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의한 고레스와 그들의 구원은 그것의 모형이며 표상이었다.

 

1. 자유가 그들에게 선포될 것이다(13절). 그것을 선포하게 될 사람은 고레스이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그의 손에 능력을 주실 것이다. "내가 의로," 즉 나의 약속을 의거하고 이행하며 정당하나 해를 당하는 내 백성의 사유를 옹호하기 위해 "그를 일으킨지라>" 하나님은 그의 모든 기획이 성공하게 해 주실 것이며, 특히 바벨론을 치는 일을 성공시키실 것이다. "내가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라."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그를 형통케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지시 아래 있는 자들은 틀림없이 잘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위해 사용하시기로 계획한 자들의 길을 평탄케 하실 것이다. 따라서 고레스는 하나님을 위해 다음 두 가지 일을 해야 한다.

 

(1)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읍이나 지금 황폐한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중건해야 한다. 즉 그것의 중건을 명령하고 그것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야 한다.

 

(2)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포로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배상을 요구하거나 그들과 댓가나 보답에 대해 흥정함이 없이, 자유롭고 너그럽게 그들을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고레스가 포로된 유대인들에게 행해야 했던 그것을 포로된 불쌍한 영혼에게 행하시기 위해, 즉 "갇힌 자에게 놓임" 을 전파하기 위해(61:1) 기름 부음을 받으셨는데, 이것은 바벨론에서의 경우보다 더 나쁜 그리고 더 확대된 속박으로부터의 놓임인 것이다.

 

2. 그들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공급 마련될 것이다. 그들은 초라하게 나갔고, 귀항하고 재건할 만한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애굽과 다른 민족들의 수고가 "다 그들에게로 돌아와서 그들에게 속할 것" 이 약속되어 있다(14절). 고레스는 이 나라들을 정복했을 때, 그 노략물로 귀환하는 유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소용되는 것들을 도와주도록 그의 신하들에게 명했다(스 1:4). 그리하여 그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 처럼 빈손으로 바벨론에서 나오지는 않게 되었다.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된 자들은 부양받을 뿐만 아니라 풍요케 될 것이다. 하나님께 그들의 비용을 감당해 주실 것을 의지할 수 있다. 세상에서 그들에게 유익한 것은 그들의 것이다.

 

3. 개종자들이 그들에게로 이끌리어 올 것이다. "장대한 족속들이 사슬에 매여 너를 따를 것이요, 그들이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도다 하리라." 그 땅의 백성 중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들이 되고(에 8:17).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면서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기를 겸손히 청했을 때(슥 8:23) 이것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한 구제는 많은 사람들이 죄를 자각하게 하고 일부의 사람들이 개종하게 하는 수단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당시에 고레스에 의해 정복당하지 않은 많은 갈대아 사람들도 유대인이 득의만면하여 돌아가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에게 가한 모욕과 능욕에 대한 용서를 빌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셨음을, 그리고 그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는 유대인들과 연합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약속은 복음의 교회에서 이루어지기로 되어 있었다. 포로된 자들이 기꺼이 교회로 오는 것처럼(시 110:3) 이방인들이 말씀과 행적에 의해 그리스도의 믿음에 순종하게 되고(롬 15:18) 그 사실에 매이기를 기뻐할 때, 이 교도가 그리스도인들의 공중 예배를 보고 "하나님이 참으로 그들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될 때" (고전 14:24, 25) 그리고 "사단의 회" 에 속했던 자들이 "와서 교회의 발앞에 절하게" 되고(계 3:9) "땅의 왕들과 만국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복음의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 (계 21:24) 이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들과 함께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사슬에 매인 것이라 할지라도 좋은 것이다.

 

Ⅳ. 그들은 그들이 볼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다. 그 선지자는 이 말씀을 그들의 입에 두고 있으며, 그것을 말함으로써 그들을 선행하고 있다(15절).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1. 하나님은 그들을 고통으로 이끄실 때, 스스로

숨으셨으며 "가리우고 노하셨다" (57:17). 하나님이 그의 백성의 하나님이며 구원자이실지라도, 그들이 그를 격노케 할 때는 때로 불쾌히 여기시어 스스로 그들로부터 숨으시며 그의 은총을 보류하시고 그들에게 분노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기다리라" (8:17).

 

2. 그는 그들을 고통으로부터 이끌어내실 때 스스로 숨어 계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며 구원자로서 행하고 계실 때 대부분 "그의 길이 바다에 있다" (시 77:19). 교회의 구원은 사람의 심령에 역사하는 만군의 여호와의 신에 의해(슥 4:6), 연약하고 가망성 없는 도구에 의해, 조그맣고 우연적인 사건들에 의해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이루어지나,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기 전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스스로 숨으실지라도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그 "구원자" 이심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안위시켜 주는 것이다(욥 35:14 참조).

 

Ⅴ. 그들을 우상 숭배자들에 대해 그리고 다른 신을 숭배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개가를 부르도록 지시받고 있다(16절). "우상을 만드는 자는," 즉 그것을 고안해 낼 뿐만 아니라 그것에게 기도함으로써 그것을 신으로 만드는 자는, 그들이 잘못을 깨닫고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오직 참되신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때, 그리고 보호받기를 원했던 그 우상들에게 실망하게 될 때,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그 죄를 변명하거나 그 형벌을 모면할 수 없음을 발견할 때 수치를 당할 것이다(시 97:7). 이처럼 움추리며 그 주장을 포기하는 자는 다른 사람들 보다 더 겁많은 여기 저기에 있는 어떤 사람이 아니고 "그들 모두" 이다. 아니, 비록 그들이 하나로 나타날지라도, 손과 손을 맞잡고 최선을 다하여 서로를 격려할지라도, 그들이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다." 그들을 다발로 묶어 태우라.

 

Ⅵ.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그를 신뢰함으로 인해 결코 수치를 당하게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증받고 있다(17절). 하나님은 이제 그들을 바벨론에서 건지시고자 하시어 그의 선지자를 통해 그들에게 이렇게 지시하고 계신다.

 

1. 하나님을 저희 구원의 장본인으로서 우러러볼 것.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입으리라." 그들의 구원은 그의 능력에 의해 역사될 뿐만 아니라 그의 은혜와 약속으로 그들을 위해 저장되며 또한 확실케 될 것이다. 그들은 그에게 구원을 입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이름은 그들이 피난할, 그리고 그 속에서 안전을 누릴 그들의 견고한 망대이기 때문이다.

2. 이 헌세적인 구원 저너머로 영적이며 저 세상과 관련이 있는 것을 내다볼 것. 즉 영원한 구원, 영혼의 구원, 그리고 영원한 비참에서의 구조와 영원한 축복의 부활이 되는 메시야에 의한 구원을 생각할 것. "너희가 영세에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열심히 믿으라. 그것은 확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우상 숭배자들의 분깃이 될 무궁한 수욕과 부끄러움으로부터 건져질 뿐만 아니라(단 12:2), 영원한 영예와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1] 끝이 없는 세상이 있다. 그 세상은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상태에 따라 우리에게 좋거나 나쁘게 될 것이다.

 

[2] 영원한 구원으로 구원받은 자들은 그것에 대한 소망 가운데 행하거나 고난당한 것으로 인해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기대를 크게 능가하는 풍성한 보상이 되기 때문이다. 귀혼하는 포로들은 "수욕이 그들의 얼굴로 돌아왔음" 을 시인했다(단 9:7, 8).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수치를 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영원히 견고케 되리라는 것을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다.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자로서 욕을 당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믿는자들로서 욕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Ⅶ. 그들은 영원히 하나님께 붙어있게 되고 결코 그를 버리거나 불신하게 되지 않을 것을 보증받고 있다. 앞에서 자주 가르쳐 왔던 것이 여기에 다시 반복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계속 그에게 성실하도록 그리고 그도 그들에게 성실하시리라는 소망을 갖도록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우리가 섬기고 의지하는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두 가지의 큰 빛, 즉 자연의 빛과 계시의 빛에 의해 드러나고 있다.

 

1. 그것은 자연의 빛에 의해 드러난다. 즉 그가 세상을 지으셨으므로 당연히 그것의 경의를 요구할 수 있다(18절). "하늘을 창조하시고 땅도 조성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나는 여호와라. 만유의 주재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이방의 신들은 이렇게 행하지 않았고 또 행하고자 하지도 않았다. 그는 여기에서 하늘의 창조를 언급하고 계시나 땅의 창조에 대해 더 상세히 설명하고 계시다. 왜냐하면 땅의 창조는 우리가 가장 가까이 볼 수 있고 또 우리와 가장 관계가 깊은 창조 부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주목되고 있다.

 

(1) 그가 땅을 조성하셨다. 그것은 조잡하고 엉성한 혼돈이 아니고 무한하신 지혜에 의해 가장 적합한 모양과 크기로 만들어졌다.

 

(2) 그가 땅을 견고케 하셨다. 그는 그것을 만드셨을 때, 그것을 견고케 하셨으며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셨고" (시 24:2) 최초에 그가 무에서 그것을 만드셨던 것처럼 "그것을 공간에 다셨으나" (욥 26:7), 그것을 튼튼하게 만드셨고 단단히 매달아 두셨다. ponderibus librata suis----즉 그 무게로 균형 잡히게 하셨다.

 

(3) 그는 땅을 쓸모있게, 그리고 사람을 돕기에 합당하게 만드셨으며 그것을 사람에게 주시기로 계획하셨다. "그는 그것을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고," 그의 능력을 증거하셨으며, 사람의 자손으로 "거하게 지으셨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그는 거기에서 물을 끌어내셨다. 그 물은 처음에 땅을 덮었던 것이나 이제 "마른 땅이 드러나게" 만들었다(시 104:6, 7). 하나님께서 헛되이 창조하신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그리고 그의 도에 부합되도록 만드셨다는 사실이 여기에서 주목되고 있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영화롭게 하고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헛된 존재로 만들어졌다고 보인다면, 그것은 그 자신의 잘못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사람의 거처와 생계에 쓰이는, 즉 사람의 소용과 유익에 이바지하는 것을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셨다는 사실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의 은총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2. 그 말씀은 계시의 빛에 의해 드러난다. 하나님의 행사가 그만이 홀로 하나님이심을 충분히 증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말씀이 그리고 그가 그 자신과 그의 마음에 관해 알게 하신 것과 그것을 통해 알게 하신 것이 그만이 홀로 하나님이심을 증명한다. 그의 신탁은 이교도 신들의 신탁을 훨씬 능가하며 그의 경영 또한 그러하다(19 절). 그 탁월함이 여기에서 다음 세 가지 사실로 나타나 있다. 즉 하나님이 말끔하신 모든 것은 명백하고 만족스러우며 정당한 것이다.

 

(1) 신탁을 전달하는 방법은 명백하며 공개되어 있다. "나는 흑암한 곳에서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노라." 이교도 신들은 낮고 공허한 목소리로, 그리고 모호한 표현으로 동굴에서 그들의 신탁을 전달했다. 신접한 자는 지절거리며 속살거렸다(8:19). 그러나 하나님은 수천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 앞인 시내산 꼭대기에서 명확하고 잘 들을 수 있는, 그리고 이해 수 있는 소리로 그의 율법을 전하셨다. 지혜는 "광장에서 소리를 높인다" (잠 1:20, 21; 8:1-3). 그 말씀은 달리는 자도 읽을 수 있도록 명료하게 기록된다. 만일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명백히 보이지 않았다면, 그것은 자기들 탓이다. 그리스도는 자기를 변호하는 가운데, "내가 은밀히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다" 고 진술하셨다(요 18:20).

 

(2) 그 신탁은 소용되고 유익을 주는 면에서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나는" 이 신탁에 의논하고 그 다스림을 받았던 "야곱 자손에게" 그 거짓된 신이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한(8:19)그들의 숭배자에게 그렇게 했던 것처럼 "너희가 나를 헛되이 찾으라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상의하는 자들에게와(그의 말씀은 그들에게 진실한 인도자이다) 그에게 기도한 모든 자들에게 주신 모든 은혜로운 대답을 내포한다. 야곱 자손은 기도하는 백성이다. 그들은 "그를 찾는 족속" 이다(시 24:6). 그리고 그들이 그를 찾도록 그의 말씀으로 권고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결코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들을 부인하거나 그들의 믿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셨다. 그는 그들에게, 그들 중 어떤 사람에게도 "나를 헛되이 찾으라" 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가 그들이 간구한 어떤것을 그들에게 주시기에 합당치 않다고 생각하실지라도, 그는 그들에게 그것과 동등한 풍성한 은혜를, 그리고 영혼의 안위함과 만족을 주셨다. 겨울에 대해하는 말, 즉 결코 하늘에는 썩는 일이 없다는 말은 기도에 대해서도 맞다. 하나님은 그를 열심히 구하는 자들에게 은혜로운 대답을 주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풍성히 보답하는 자가 되실 것이다.

 

(3) 그 신탁에 관한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정당했고 그 속에는 죄악이 없었다.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을 고하느니라."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한 영원한 규정과 이치에 일치하느니라. 이교도의 신들은 그 숭배자들에게 인간의 성품을 수치스럽게 하는, 그리고 덕을 근절시키기 쉬운 것들을 구술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를 말씀하시며, 그 자체가 올바르고 사람을 의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을 구술하신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이시며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원 (이사야 45:20-25)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것은 앞에서와 같은 의도를 지니고 있다.

 

Ⅰ. 우상 숭배자들의 죄를 깨닫게 해 주기 위해, 그들을 도울 수 없는 신들을 숭배하고 도우실 수 있는 하나님을 무시한 그들의 어리석음을 보여 주고 있다.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 즉 유대 백성뿐 아니라 고레스에 의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된 다른 민족들은, 와서 우상 숭배에 대해 언급되고 있는 것을 들으라. 그리하여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그 병에서 치료되고, 옛부터 우상 숭배의 모태가 되었던 바벨론이 이제 그 우상의 무덤이 되도록 하자. 피난한 자들로 모여 오게 하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유익한것을 알려 주실 말씀을 갖고 계신다. 그 말씀은 우상 숭배는 다음 두 가지 면에서 어리석고 우둔한 짓이라는 것이다.

 

1. 그들 자신을 위해 거짓된 피난처를 세우는 것이다. "그들은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닌다." 나무가 그 "근본" 이다. 비록 그들이 거기에 도금하고 장식하여 신상을 만들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나무에 불과하다. 그들은 "능히 구원치 못하는 신에게 기도한다." 그 자신은 듣지 못하여 돕지 못하며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신으로서 그들에게 유익을 베풀지 못하는 그것에게 신으로서의 경의를 베푸는 자들은 스스로를 얼마나 욕되게 하고 있는 것인가. 그들을 구조할 능력이 전혀없는 그것에게 도움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자들은 얼마나 자신들을 속이는 것인가! 능력이 없는 신의 은총을 구하기에 이처럼 크게 수고하고, 크게 고행하는 자들은 분명히 무지하거나 아니면 우둔한 자인 것이다.

 

2. 홀로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의 적수를 세우는 것이다(21절). "너희 모두를 호출하라. 하나님과 바알 간의 대소송 사건은 한번 재판되었을지라도 다시 심리될 것임을 그들에게 고하라. 너희는 너희 자신과 너희 우상을 옹호하기 위해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진술하고 또 피차 상의하여 보라. 그것은 앞에서와 같이 이런 논쟁점이 될 것이다. 즉 너희는 언제 너희의 신들 가운데 어느 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처럼 확실하게 미래의 상태를 예언했는가를 말하라. 그러면 그들이 자부할 만한 구실을 갖고 있음을 인정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한 적이 없었다. 그들의 선지자는 거짓말하는 선지자이다. 그러나 나 여호와는 이 일을 예로부터, 그것이 성취되기 오래 전부터 고했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나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1) 하나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다스리기에 합당치 않다. 그는 "공의를 행하는" 하나님으로서 공의로 다스리신다. 그리고 입제당하는 자들을 위해 공의를 실천하실 것이다.

 

(2) 그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도울 능력이 없다. 그는 "공의를 행하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구언을 베푸는 하나님" 이시다. 그는 어느 누구의 도움없이도 구원하실 수 있으나, 그 이외에는 그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따라서 그와 겨루기 위해 어떤 것을 세운자들은 참과 거짓, 선과 악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유익에 대해서도 분별을 갖고 있지 않는 것이다.

 

Ⅱ. 하나님을 성실하게 숭배하는 자들을 모두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22절).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능히 구원하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땅 끝의 모든 백성에게, 비록 그들이 세상의 가장 먼 구석까지 흩어져 잃어버려지고 망각되어진 채 분산되어 있을지라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믿음과 기도로써 오직 나를 앙망하라. 도구들과 제 2의 원인의 위를 보라. 모든 사칭자들에게서 눈을 떼고 나를 쳐다보라. 그러하면 구언을 얻으리라." 그것은 더 나아가 복음의 깃발이 세워질 때, 땅 끝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이, 가장 먼 곳에 있는 민족들이 개종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 되리라." 지팡이 위의 놋뱀처럼, 그리스도께서 땅으로부터 세워질 때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 것이다. 찔리운 이스라엘 사람들이 놋뱀을 바라보도록 권고받았듯이 그들도 모두 그를 앙망하도록 권유받을 것이다. 그리고 믿음의 눈은 매우 강하기 때문에 그것은 거룩한 은혜에 의해 구세주께 이를 것이며 그에 의한 구원을 땅 끝으로부터 끌어올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시며 다른 이가 없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구세주를 앙망하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만족을 주기 위해 여기에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이 약속되어 있다.

 

1. 그들이 이바지하는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향상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모든 백성들에게는 그들과 그들의 이름이 아무리 천하게 될지라도,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으시리라는 것은 희소식이 될 것이다(23절). 우리가 큰 위안을 왔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이것이 맹세로써 확증되어 있다.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하나님은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시다. 히 6:13). "나의 입에서 말이 나갔은 즉" 결코 취소되거나 헛되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의로운" 말로 나갔다. 모든 것을 만드신 자가 만유의 주이셔야 한다는 것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았으므로 그것은 그에게 바쳐져야 한다는 것은 가장 합당하고 정당한 일이다.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고 그가 말씀하셨으니(시 46:10) 그것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언하셨다.

 

(1) 보편적으로 그에게 복종할 것이며 세상 나라들이 그의 나라가 될 것이다. 그들은 그에게 경의를 표할 것이다. "내게 모든 무릎이 꿇어지리라." 그리고 그에게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그들 자신을 속박할 것이다. "모든 혀가 맹약하리라."

이것은 우리 주 예수의 주권에 적용되고 있다(롬 14:10, 11). "우리가 다 그리스도(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그에게 고하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리고 이것이 시편 2편 9,10절에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마음이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그의 권능의 날을 즐거워하게 또한 다면, 겸손한 경의와 찬사를 표하고 그의 명령에 기꺼이 순종하고 그의 겸손한 경의와 찬사를 표하고 그의 명령에 기꺼이 순종하고 그의 시여에 복종하며 이 두 가지에 대한 그의 뜻에 순응하면서 무릎을 그에게 꿇을 것이다. 그리고 혀가 그에게 맹약할 것이며, 그들의 영혼을 영원히 그에게 결속되도록 속박할 것이다. 따라서 정직한 마음을 품은 자는 확신한 것에 대해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2) 보편적으로 그를 구하게 될 것이며, 세상 모든 지역에서 그에게 출원할 것이다. "먼 땅의 사람들은" 그의 은총을 간청하기 위해 "그에게로 나아갈 것이다."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시 65:2). 그리고 그리스도가 "땅에서 들리어졌을 때," 그는 "모든 사람을 그에게로 이끄셨다."

 

(3) 그에게 대항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를 노하는 자는," 그의 맹약과 속박에 노하는 모든 사람---- 그가 크신 권능을 갖고 통치하셨기 때문에 분노한, 그의 율법의 엄격함과 그의 복음의 승리 그리고 그의 나라의 영적인 특성에 노한 열방들---- 그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리라." 어떤 사람은 그것을 회개하는 부끄러움을, 또 어떤 사람은 구제할 수 없는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조만간에 그리스도의 통치와 승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들은 그들의 어리석음과 완고함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우리와 우리의 권익이 어떻게 되든지간에, "여호와께서 영원히 통치하시리라" 는 것을 여기에서 우리에게 확신케 해 주신 하나님을 송축할지어다!

 

2. 그들과 관련되어 있는 영혼의 복락은 매우 안전하리라는 것이다. 반드시 "어떤 자가 말하고" 다른 사람은 그의 본을 배워 똑같이 말할 것이다. 그리하여 성령으로 난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그것을 지지할 것이다.

 

(1)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주실 것을 충분히 갖고 계시며, 그리스도께는 그들의 모든 궁핍함을 채워 줄 수 있는 것이 넉넉히 있다. 그들은 "다 여호와로 의롭다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그는 의로우시며 강하시다. 그는 모든 일을 행하실 수 있으나, 의심할 나위없이 공정하고 공의롭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행하시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를 구하고 그를 의지하는, 그의 섭리의 공의와 그의 은혜의 보화를 의지하는 자들의 궁핍함을 채워 주실 것을 지니고 계신다. 아니, 우리는 "그가 그것을 갖고 계신다" 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포로된 유대인들은 여호와께 의(義) (즉 그들의 고통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에게 구원의 자격을 부여할 은혜)와 그들을 도고 피난시킬 힘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주 예수께 우리에 가한 하나님의 선한 의지에 우리를 추천할 만한 의를, 그리고 우리 안에서의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시작하고 수행할 힘을 갖고 있다. 그는 이 모든 것의 근원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게 이 모든 것을 의지해야 하며, "그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고 주의 의(義)만 진술해야" 한다(시 71:16).

 

(2) 그들은 이 속에서 풍성한 축복과 만족을 누릴 것이다.

[1] 유대 백성들은 사람들 앞에서 여호와로 의롭다 함을 얻고, 그들의 하나님으로 공개적으로 자랑할 것이다. 그 압제자들은 그들을 비방했고 그들에게 중상을 퍼부었으며,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인 양 그들을 압제하는 권리를 지닌 것을 뽐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원을 역사하실 때, 그 축복은 이 혹독한 책망에서 그들의 의로움이 될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그것을 자랑하게 될 것이다.

 

[2] 그리스도께 힘과 의를 의지하는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로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게 될 것이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라.

첫째, 믿는 자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자손, 기도하는 의로운 자손이다.

 

둘째,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는 큰 특권은 그의 안에서, 그리고 그로 인하여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그들에 대해 의롭게 하셨기 때문이다. 의롭다함을 얻은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의롭다함을 얻는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며, 다른 이로써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의롭다함을 얻은 자들은 영화롭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세째,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께 해야 할 큰 의무는 그를 자랑하는 것이며 그를 뽐내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어 "자랑하는 자가 주 안에서 자랑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의도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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