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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1

오순절 메시지: 피조물의 탄식을 들을 수 있을까?

by 은총가득 2021. 5. 23.

 

 

오늘은 오순절, 성령 강림절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왜 성령을 보내주셨을까요?

성령은 무엇을 하실까요?

 

[1]

성시교독: 시 104:24-34, 35b

인도자: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회중: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인도자: 거기에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니이다.

회중: 그 곳에는 배들이 다니며 주께서 지으신 리워야단이 그 속에서 노나이다.

인도자: 이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회중: 주께서 주신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인도자: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회중: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인도자: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회중: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인도자: 그가 땅을 보신즉 땅이 진동하며 산들을 만지신즉 연기가 나는도다.

회중: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인도자: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회중: 죄인들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들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시리로다.

다함께: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시 104편 주해 [월터 브루그만]

창조라는 성경적 믿음의 주제가 현시대에 사용될 때, 설명을 하는 방식들로 편향되어 있다는 점은 큰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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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4편 메시지 [월터 브루그만]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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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도행전 읽기: 행 2.1-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3]

복음서 읽기: 요 15:26-27, 16.4b-15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Creator:Enea Campi (Biblioteca Nacional Digital do Brasil: info; image)

[4]

서신서 읽기: 롬 8:22-27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나" 해의 오순절 성서정과는 기대했던 바와는 다소 의외이다.

통상적으로 성령 강림절은 방언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고 강해하는 편이다.

아니면 보통 성령 강림으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됬고, 교회의 부흥이 일어났다는 식으로 이해한다.

성령이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였다.

남녀 노소를 가리지 않고 임하셔서, 각기 자신들의 시야에 따라 새로운 세상을 상상한다.

그래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받는다.

 

 

하지만 올해 성경 본문은 창조 세계를 향한 오순절의 비전을 제시한다.

시편 104편은 야훼 하나님을 송축하도록 초청한다.

그 근거로 하나님의 창조를 든다.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 경이로움, 관대함, 질서있는 일관성은 시인으로 하여금 찬송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하나님은 창조 세계가 시의적절하게 운행하며 각기 제 역할을 감당하고 열매를 맺도록 질서있게 운행하신다.

창조 세계는 때와 계절을 따라 열매를 맺고, 피조물들에게 양식을 제공한다.

 

 

문제는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 세계의 호흡을 거두시면, 어떻게 되는가?

땅에 죽음이 닥쳐온다.

세상에 죄가 들어와서 죽음이 만연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이 두려움과 염려 속에 살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을 보내시어, 새 창조를 행하신다.

창조 세계의 얼굴을 새롭게 하신다고 선포한다.

땅의 모습을 새롭게 하신다.

 

29~30절은 세계가 하나님의 숨결로 살아가고 있다고 단언한다.

29절에서 “호흡”이라는 용어와 30절에서 “영”이라는 용어는 동일한 히브리어 단어인 ????? (루아흐)이다.

이 두 용어를 병치해 놓는 것은 세계가 순간 순간 야훼의 생명을 주는 현존하심과 능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강하게 주장하기 위함이다. 창조주는 세계가 의존하는 생성의 힘을 견고하게 가지고 계신다. 왜냐하면 세계는 그 자체로 생명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훼가 호흡하신다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안으로 여기고 있다. 이는 야훼의 위대함을 신뢰할 수 있도록 마치 야훼가 강철로 만든 폐를 가지고 있는 듯이 표현한다. 이 단락의 마지막 두 가지 주제, 즉 27~28절의 식량과 29~30절의 숨결은 창조세계가 창조주에게 완전히 의존하고 있음을 입증하여 준다.

월터 브루그만, 시편 104편 주석

 

시인은 마지막 절에서 이상하게 마무리된다.

시인은 영혼토록 창조주 하나님을 송축하기 위해, 기도를 드린다.

죄인들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들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시리로다.

이들 죄인과 악인은 왜 언급되는가?

이들은 토라에 규정되어 있는대로, 창조 세계에 대한 규정들을 어긴 자들이다.

자연 세계를 남용하고, 땅을 착취한 자들이다.

이들은 계시록이 말하는 바, 땅을 황폐하게 하는 자들 (계 11.18)이다.

멸망을 받을 자들이다.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자신들의 탐욕으로 황폐하게 한 자들은 땅을 거주지로 주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땅의 얼굴을 새롭게 하신다는 시편 104편의 예언적 찬송을 따라서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다.

사도행전은 성령이 임할 때, 방언 현상이 일어났다고 전한다.

방언은 무엇을 말하는가?

여기서 방언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방언이 아니다.

이런 방언은 통역이 필요하다.

소통이 되지 않는다.

사도행전 2장에서 말하는 방언은 아람어로 120명이 말할 때, 각 사방에서 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난 곳 방언으로 알아들었다.

소통이 되는 방언이다.

 

 

오순절 사건은 본질적으로 바벨탑 사건의 반전이다.

바벨탑은 한 언어로 소통하게되니까, 하나님께 반역을 꾀하였다.

바벨탑은 한 곳을 중앙으로 만들고, 다른 모든 주변부를 통체하여, 수탈과 착취를 삼아 탑을 쌓아 올리는 제국주의의 상징이다.

하나님이 이 제국을 흩어버리셨다.

각기 언어가 다르게 만들고, 각기 다른 종족과 문화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은 온 세계에 만연해 있는 바벨탑 이데올로기를 반전시키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을 창조하셨다.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 바벨탑 문화와 가치를 대항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낼 택함을 받은 독특한 백성이다.

그래서 바벨론과 같은 상태에 있었던 당시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다.

이는 단지 피신이나 구출이 아니라, 제국에 대항하는 대안적 나라, 즉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오순절에 시내산에서 토라를 받았다.

토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명시적으로 기술하여 놓았다.

랍비들의 전승에 따르면, 이때에 70 민족이 시내산에서 그 율법을 들었다.

그런데 오직 이스라엘만이 그 율법에 순종하기로 결정하였다.

70 민족은 창세기 10장의 노아 후손의 수이다.

성경에서 숫자 70은 열방의 숫자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독특한 백성으로서의 삶에 실패했다.

오히려 제국에 짓밟혔고, 제국을 닮아갔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여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 보좌에 좌정하셨다.

하나님 나라 통치가 시작되었다.

하나님 나라 통치를 위해 이 땅에 그의 백성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다.

오순절 성령은 하나님 보좌 아편에 좌정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통치를 가능하도록 소통하게 하신다.

오순절 방언은 단지 현상이 아니다.

바벨 이데올로기, 즉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반전시키는 하나님의 대안 운동을 위한 지침이다.

 

 

방언은 사투리이다.

중앙의 표준어가 아니라, 각 사람이 사는 사투리로 듣고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든다.

하나님의 뜻이 히브리어가 아니라 사투리로 전해지고 선포해고 해석되고, 표현된다.

중앙이 아닌 지역, 중심이 아닌 변두리, 구심력적 운동이 아닌 원심적적 운동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열방이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이것은 사투리 신학을 가능하게 한다.

사투리로 신학하고, 사투리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해지고 해석되고 표현되도록 하신다.

 

 

베드로는 이 방언 현상을 요엘 3장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해석하여 설교를 한다.

요엘 예언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구원을 얻는 종말론적 사건을 전망한다.

이러한 전망은 남녀노소를 통해서 상상이 된다.

자녀들이 예언하고,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이 꿈을 꾸게 된다.

성령이 임하면, 남녀 종들이 예언적 삶을 살게 된다.

 

이 예언적 삶이 전망하는 바는 무엇인가?

인간의 영혼 구원만을 전망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의 구원만을 말하지 않는다.

모든 피조물의 회복이다.

 

 

이 모든 피조물의 회복을 로마서 8장은 잔망한다.

바울은 로마서의 절정을 이루는 8장에서 삼중적인 탄식을 언급한다.

피조물들이 탄식한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탄식한다.

성령이 탄식한다.

이는 창조 세계의 온전한 회복을 향한 탄식이다.

이들 탄식은 개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탄식이 아니다.

통전적인 구원, 즉 인간뿐 아니라 피조 세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구속을 갈망하는 탄식이다.

여기에 성령도 탄식하신다.

 

 

예수님은 고별담화에서 제자들에게 보헤사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

보헤사는 장래의 일, 즉 하나님의 영광을 말한다.

하늘 보좌에 좌정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알려주신다.

주의 뜻은 무엇인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영혼 구원만이 아니다.

인간의 구원만이 아니다.

내가 만물을 새롭개 하노라!

창조 세계가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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