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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회사

교회사의 대표적인 이단들

by 은총가득 2021. 2. 24.

이단에 대하여 : 초대교회의 이단과 분파운동

 

초대교회의 이단과 분파 운동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순교와 관련된 교회사를 많이 언급했었지만 이번 포스팅에서는 초대교회에 어떤 이단이 나와서 복음을 흐렸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합니다. 초대교회는 외부로부터의 박해와 함께 내부에서의 이단으로 인해 공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당시 이단의 분파는 크게 몇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초대교회 이단에 대한 짧은 요약과 함께 당시 활동하였던 이단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포스팅을 시작하겠습니다.

 

 

초기 교회의 이단들

 

콘스탄틴 황제가 313년 밀라노칙령을 선포하여 기독교를 공인할 때까지, 초대교회는 약 280년 동안 여러 가지 전쟁을 치러나가야 했다. 유대교의 시기와 방해, 교회를 없애려는 로마제국의 탄압, 그리고 이단의 침투와 분파 등에 대한 전쟁이었다. 박해가 교회 외부로부터 오는 공격이라면 이단의 발흥은 교회 내부에서 오는 공격이었다.

 

 

 

 

 

 

 

 

당시 일어난 이단들은 대체로 세 가지 부류였다. 유대 전통에서 나온 율법주의적 이단, 그리스철학과 동방의 이원론(二元論) 사상과 혼합된 데에서 나온 이단, 현실 생활을 무시한 신비주의적 가르침에 치중한 이단 등이었다.

 

유대교적 이단으로는 예수는 신격화 된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에비온주의가 대표적이고, 헬레니즘과 영지주의에서 나온 이단으로는 예수님의 인성(人性)을 부정하는 가현설(現, Docetism), 마르시온주의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리고 종말론적이고 신비적인 이단으로는 2세기 중엽에 등장한 몬타니즘이 있었다. 이들은 초기 교회에 홍수처럼 밀려온 매우 위험하고도 강력한 도전이었다.

 

교회의 신앙을 위협하는 운동이나 가르침이 나타났을 때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것을 반격하고 성경과 사도들의 가르침에 입각해서 정통교리를 정립하려고 했고, 때로는 교회 회의를 개최하여 그들을 정죄하기도 했다. 각종 이단적 교리들이 교회 내에 침투했을 때 교회의 지도자들은 당연히 위기의식을 느꼈으며 힘을 합하여 대처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도 철학자들과 이단자들로부터 교회를 지키려는 노력을 경주했지만 교회들이 연합하여 대처해 나가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기도 했다.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이단 종파 몇 가지를 소개한다.

 

 

에비온파

 

유대인 기독교인들 중에 몇몇은 자신들을 에비온(ebionites)이라고 불렀다. 에비온은 ‘가난한 자’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 말로, 이러한 명칭은 특별히 유대교의 사두개파 사람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성도들이 대부분 가난했던 것을 비꼬아 부른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에비온주의는 사도 시대의 이단으로, 유대교적 율법주의적인 이단이었다. 초대 교회 구성원들 중에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이 많았다.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전에 믿던 유대교적 요소를 버리지 못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유대교의 틀 안에서 견지하려고 했다.

 

그로 인해 에비온주의는 초기 기독교에 많은 혼란과 지장을 주었다.

 

에비온파는 분파를 형성하여 율법의 준수를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율법과 유대인의 전통 위에 기독교를 이식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바울이 예수님의 직접적인 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의 사도성을 부인했고, 바울이 이방인들도 기독교도로 인정했다고 유대교를 배신한 배반자라고 불렀으며, 따라서 바울 서신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함으로써 교회에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에비온주의자들은 한 마디로 유대교적 율법주의자들로, 기독교의 유대주의화를 주장했던 이단이었다.

 

 

영지주의(靈知主意)

 

영지주의는 아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간단히 정의하여 말하기 어렵다. 영지주의(Gnosticism)는 고대 그리스어로 ‘앎, 깨달음, 비밀스런 지식을 소유한 사람’ 등의 뜻을 가진 그노시스(gnosis)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영지(gnosis)는 일반적인 의미의 지식이 아닌, 지성적인 이해를 넘어선 실재(實在)에 대한 통찰력, 혹은 신비한 영역이나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지식을 의미한다. 영지주의적 계시는 이성의 힘으로는 얻을 수 없기에 철학적 계몽이나 기독교의 계시와는 구별된다.

 

1945년, 파코미우스(Pachomius, 292~364)가 최초의 수도원을 설립했던 이집트 북부의 촌락 나그함마디(Nag Hammadi)에서 영지주의자들이 400년경에 묻은 것으로 보이는, 파피루스 코덱스 13권이 들어 있는 밀봉된 단지가 발견되었다. 다량의 이 문헌이 발견되면서 영지주의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영지주의는 대개 1세기 말에 기독교 교리, 지중해 연안의 그리스 철학, 그레코-로마의 신비종교, 동양 종교들의 이론과 사상을 절충·혼합하여 만든 기독교 이단으로, 물질과 육체를 죄악시하고 영(靈)을 높이 평가하는 종교적 철학적 경향 혹은 주의를 말한다. 영지주의는 2세기 초반 비교적 안정된 사상 체계를 가짐으로써 호소력 있는 종교가 되었고, 약 150년간 전성기를 누리다가 3세기 후반부터 쇠퇴하였으며, 4세기 경에는 그 사상이 마니교에 흡수되면서 한 시대를 풍미하던 영지주의는 사실상 사라졌다.

 

 

모든 영지주의자들은 물질적 창조를 악한 것으로 간주하고 구원은 영적인 영역에만 국한된다고 여겼다. 그들에 의하면, 신비한 영역에서 오는 신적 존재의 섬광(spark) 또는 씨앗(seed)들이 구원받기로 예정된 어떤 영적인 개인들의 몸 안에 주입되었다. 이 영적인 자들은 자신의 기원(起源)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불완전한 육체에서 해방되고 지구를 탈출하여 본래 그들이 있었던 천상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일종의 패스워드(password)와 같은 영지가 필요했다.

 

 

모든 영지주의자들은 이 세상을 탈출하여 저 세계로 돌아가는 구원의 여정을 상정(想定)했다. 즉, 구원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특별하고 신비한 지식, 깨달은 자만이 이를 수 있는 그노시스(영적 지식)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지식은 특별한 영적 계급에 속한 사람들만이 소유할 수 있고, 그들만이 최고 신의 빛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이 육체라는 물질세계에 속박된 상태에서 해방되어 영혼이 기원한 빛의 세계, 곧 초월적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구원이라고 여겼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비밀한 지식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예수님을 이 세상에 영지를 전하기 위해 오신 천상의 계시자 정도로 여겼다.

 

 

또한 물질과 육체는 악하다는 신념에 따라 예수님의 인성(人性)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부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육체는 기적적으로 육체처럼 보였을 뿐이며, 예수님의 고난이나 죽음이나 부활은 실재적인 것이 아니다’는 가현설(假現設)을 주장했다. 그들의 사상은 이원론적 헬라 철학을 근간으로 하여 이집트와 페르시아, 동방의 신비 종교 사상을 혼합한 것으로, 2세기 내내 기독교에 심각한 위협이었다. 하나님의 창조,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과 부활 등을 부인했기 때문이다.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할 것을 주장한 것(딤전 4:1~3)이나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주장한 것(딤후 2:16~18),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에 대해 언급(요1 4:1~3, 요2 1:7) 등은 영지주의적 사상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라고 볼 수 있다. 사도 요한은 그들을 가리켜 거짓말하는 자들, ‘예수를 주로 시인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했다(요1 2:22, 4:2~3).

 

 

마르시온주의(Marcionism)

 

마르시온 주의는 헬레니즘과 영지주의에서 나온 이단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예수님의 인성(人性)을 부정하는 가현설(現, Docetism)도 헬레니즘과 영지주의에서 나온 이단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마르시온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지 합니다. 마르시온주의는 마르시온이라는 사람이 주장하여 그 사상을 세운 것입니다. 이 마르시온주의는 2세기 중반 초기교회에 가장 위협이 되는 이단이었습니다. 성경전체를 인정하지 않고 신약성경만 따로 재편집하여 정경이라고 주장하는 등 마르시온이 죽은 후에도 마르시온주의는 그의 추종자들을 통하여 수세기동안 남았습니다.

 

 

 

 

 

 

 

마르시온주의(Marcionism)

 

마르시온주의는 2세기 중반에 나타난 가장 위협적인 이단이었다. 마르시온이 쓴 작품들은 현존하지 않지만 터툴리안을 비롯하여 그를 비판한 교회 지도자들의 자료들을 통해서 그의 사상을 잘 엿볼 수 있다.

 

마르시온은 85년경 흑해 연안의 항구 본도(Pontus)에서 부유한 선박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 다. 그는 성스러운 처녀를 미혹했다는 혐의를 받았고, 교회의 감독이었던 그의 부친은 그를 교회에서 추방시켰다. AD 140년경 그는 쉬프스리더(Schiffsreeder)의 초청을 받고 로마로 건너가 그곳 교회에 거액을 헌금하여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가려 하였다. 로마에서 그는 크레도(Credo)라는 사람의 영지주의에 크게 영향을 받았고, 유대교와 물질세계를 증오했던 그는 자신의 신학을 발전시키며 크레도의 사상을 구체화시켰다. 그가 이단적 가르침을 시작하자 교회에서는 144년 그를 출교했다. 마르시온은 곧 독자적으로 교회를 세워 많은 추종자를 얻었으며, 마르시온 교회는 거의 1세기 동안 활발하게 활동했다.

 

 

마르시온은 극단적인 바울 추종자였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유대주의자들로 여겨 사도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오직 바울만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한 진정한 사도로 여겼다. 그리고 그는 구약과 신약을 분리시켜서 구약 성경은 유대인의 역사서요, 율법일 뿐이라고 여겼다. 또한, 구약의 신(神)은 지고한 하나님이 아니라 무지와 분노와 복수의 마음을 지닌 열등한 창조 신에 불과하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으로 충만한 참 하나님으로 우주적 구세주인 그리스도를 보내신 분으로 보았다. 마르시온이 정경(正經)으로 인정한 것은 바울의 10개 서신과 누가복음의 편집본이었다. 이것을 가리켜서 ‘마르시온의 정경(Marcionite Canon)’이라고 부른다.

 

 

 

 


마르시온은 영지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육체를 지니지 않은 영적 존재라고 가르쳐 그리스도가 ‘참 인간’이었음을 부정하는 가현설을 주장했다. 그는 육체의 부활은 없고 최후의 심판도 없다고 했다. 또 물질과 육체는 악한 것이므로 육식이나 부부생활을 금하는 엄격한 금욕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시온은 160년경에 죽었지만 마르시온의 추종자들은 이후에도 여러 세기 동안 활동했다.

 

 

 

 

마르시온의 성서 편집에 자극을 받은 초기 교회는 성경의 정경화(正經化) 작업을 촉진했고, 393년 북아프리카의 히포 회의와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27권의 신약성경 정경 목록을 확정했다.

 

 

몬타누스주의(Montanism)

 

로마의 기독교박해 중에 2세기 소아시아에서 나타난 이단인 몬타누스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초대교회 이후 밀라노칙령이 313년에 발표되기까지 약 28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기독교는 수많은 박해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상적으로 기독교를 박해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변질시킨 이단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몬타누스주의는 종말론적이고 신비주의를 강조하는 몬타니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몬타누스주의(Montanism)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면서 신앙을 지켜나갔다. 그러나 속히 이뤄지리라 여겼던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자 뜨거웠던 종말 신앙은 점점 퇴색했다. 몬타누스주의는 이처럼 신앙이 약화되고 경직되는 경향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났다.

 


이 운동은 이방 종교의 사제였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몬타누스가 AD 160년경 소아시아 프리기아에서 성령이 자신에게 임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몬타니즘 운동은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자 그리스도를 인정했고, 교리적인 면에서 영지주의나 마르시온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은 성령의 사역에 대한 몬타누스의 잘못된 견해 때문이었다. 몬타누스는 자신의 가르침을 ‘새 예언(new prophecy)’이라고 하면서 방언과 열광적인 엑스터시의 체험을 강조했다.

 

 

몬타누스는 그를 통하여 성령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자신과 그를 돕는 두 여사제 프리스킬라와 막시밀라를 통하여 성령은 말씀하신다고 했다. 그들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프리기아 지방의 페푸자(Pepuza)라는 도시 근처에 서게 되어 있다고 하며,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일에서 떠나 페푸자로 가서 종말을 기다려야 된다고 했다. 그들은 임박한 종말을 대비하면서 결혼을 금하고 금식과 엄격한 금욕생활을 실천하였으며 순교를 장려했다.

3세기에 들어서 몬타누스주의 운동은 큰 힘을 얻었는데, 그것은 후대에 서방 교회 신학의 시조라고 불리는 카르타고의 터툴리안이 이 운동의 엄격한 도덕생활과 금욕주의에 매력을 느끼고 일시 합류했기 때문이다.

 


몬타누스주의자들은 초기 교회의 종말론적 긴장을 되살렸고, 임박한 종말에 대한 확신과 성령의 특별 계시를 강조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소아시아 교회의 감독들은 AD 160년 직후에 교회 회의를 소집하여 177년 몬타누스를 이단으로 정하였고, 교회의 결속을 위하여 감독의 지위와 권한을 강화시켰다. 이것이 교회 역사상 최초의 공회(Symod)였다.

 


그 후 비슷한 유형의 성령 운동이나 예언 운동이 계속 나타났으며, 사도적 신앙을 계승하려는 교회와 계속 충돌하고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교회는 이러한 여러 이단들의 활동으로부터 진리를 수호하고 성도를 보호하려는 여러 움직임을 보였다. 그것은 교회들의 연합, 정경(正經)과 교리의 확립, 이단자들에 대한 정죄와 축출 등으로 나타났다.

 

 

교회사에 남은 참된 인도자

 

교회사에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인도자겠지요. 하나님은 시대마다 참된 인도자를 허락하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나왔던 모세와 여호수아를 비롯하여 수많은 선지자들이 그러했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사도들과 속사도들이 복음의 바톤을 이어갔습니다.

 

참된 복음을 향해 달려나가는 인도자는 그 시대를 개혁하고 복음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다했으며 그를 통해

성도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세우지 않고 하나님을 세웠으며 하나님이 마음의 주인으로

자리잡은 인도자들은 참으로 하나님과 화합하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교회를 이끌어온 시대별 인도자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교회사에서 참된 인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인물 중심의 교회사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이 택하시고 세우신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님은 당신과 마음이 합한 사람들을 찾으셨고,

당신의 일을 하실 때 당신의 사람들을 일으켜서 하셨다. 노아나 아브라함을 통해, 모세나 여호수아를 통해,

사사들이나 선지자들을 통해, 또는 열왕들을 통해 역사하셨던 하나님은 신약 시대에도 베드로나 바울을 들어 쓰셨다. 사도 시대 이후에는 속사도들을 통해 일하셨고, 속사도 시대 이후에도 하나님은 당신이 일으키신 그 시대의

일꾼들을 통해 복음을 나타내셨다.


훌륭한 영적 인도자들이 일어났을 때 그들이 한 시대를 복음의 빛으로 밝게 비추어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져 나갔다. 복음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분투,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분명한 믿음, 한 영혼을 소중히 여겼던 그들의 수고와

기도가 없었다면 생명의 복음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성경은 인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다.

 

 

인도자의 중요성

 

교회사를 공부해 보면 강하게 느끼는 것이 인도자의 중요성이다. 한 사람의 인도자가 복음을 사랑하고 주를 믿는

믿음으로 거짓된 종교, 거짓 선지자, 거짓 교리와 맞서 싸워나갈 때 수많은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고, 사단의 손에

잡혀 있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품안으로 들어와 하늘의 기쁨과 소망으로 충만해졌다. 폴리갑이나 존 후스, 마르틴

루터, 요한 웨슬레가 일어나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고 주님께 영광을

돌렸던가? 반대로 한 사람의 인도자가 자기를 세우고 육으로 흘러갈 때는 멸망으로 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방치하며

교회를 어지럽게 하였다.


세상에서도 국민 한 사람이 잘못했을 때와 국가의 지도자가 잘못했을 때 미치는 영향의 차이는 엄청나다.

네로 황제나 히틀러 등 많은 독재자들이 자신만을 생각하고 사단이 넣어 주는 악한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던가? 반대로 링컨과 같은 지도자들이 일어났을 때는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해냈는가?


인도자가 능력 있는 주님의 손에 붙잡혔을 때, 그 인도자와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일어났을 때 복음의 역사가

왕성하게 일어나고 교회가 힘있게 자라갔다. 그것은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다.

 

 

 

참된 인도자가 세워져야

 

사단은 인도자를 향해 마음을 닫게 하고, 인도자를 불신하게 하며, 인도자의 필요성을 사람들의 마음에서 배제시켜

교회가 성경적인 신앙에서 떠나도록 역사해 왔다. 인도자가 타락했을 때 사단은 인도자 자체를 부인하게 하지만,

인도자를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인도자가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만이 우리의

인도자요 감독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도행전 20장 28절에서 ‘성령이 교회 안에 감독들을 세워 당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사단은 인도자를 타락시키기도 하지만, 그 반작용으로 참된

인도자의 필요성 자체를 배제시켜서 성도들을 교만하게 하고 자기 부인이나 다스림 없이 살게 한다.


예레미야 3장 15절에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고 하였다. 주님은 목자를 주셨다. 그리고 그 목자는 양들의 기준에 맞는 목자가 아니라, 하나님 당신의 마음에

합한 목자를 주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세워진 사람은 목자가 세워져 있다. 반대로

마음에 목자가 세워져 있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세워져 있지 않은 사람이다.


사도행전을 읽어 보면, 그것은 사실 사도들의 행전(行傳)이 아니라 베드로와 바울 같은 사도들의 옷을 입고

일하셨던 성령의 행전임을 알 수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사도들이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령께서 사도의

옷을 입고 그 안에서 행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사도행전 시대에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그 후에도

하나님은 시대마다 당신의 종들을 일으키고 그 안에서 일하셨다. 초대교회 이후 폴리갑, 아타나시우스, 피터 왈도,

위클리프, 존 후스, 마르틴 루터, 쯔빙글리, 요한 웨슬레, 찰스 스펄젼, 디엘 무디 등 많은 복음의 일꾼들이 일어나

주님께 헌신했다.

 

 

 

초기 기독교회의 인도자들

 

최초로 교회사를 기록했다고 알려진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 보면, 초기 기독교 교회의 인도자들 이름과 계보를

기록해 놓고 있다(초대교회의 인물이나 사건 및 일화들에 대해 우리는 유세비우스에게 빚지고 있는 부분들이 많지만,

그의 신앙이나 신학 사상은 별도로 평가되어야 한다). 유세비우스가 교회사를 통해 보여 주는 초대교회의 주요

인도자들은 다음과 같다.

 

 

 

 

교회사에 참된 인도자가 없었다면 저마다 자신을 세우기 바빴을 것입니다. 또한 복음을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위해

살게 되면 그들은 타락하고 하나님의 복음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 뿐 만 아니라 그를 따르는 성도들의 마음까지도 어지르는 비극을 초래할 것입니다. 인간은 사단의 유혹에 빠지기 쉽지만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참된 인도자를 교회 안에 지켜주신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blog.naver.com/sangd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