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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산책

시편 43편

by 은총가득 2021. 2. 2.

 

 

시편 43-44편

43: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순간순간 걱정과 불안, 두려움이 내 마음에 엄습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할 때에 그런 생각과 감정이 든다. 그런 감정이 들 때에 무조건 기도해야 한다. 무조건 주님께 모든 것들을 아뢰야 한다. 그것이 그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다. 모든 상황가운데 나를 지켜주시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구하고 그 분과 동행한다면 근심과 걱정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오늘 하루 그리고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며 주님의 은혜와 인도하심만을 구합니다. 제가 마주한 모든 일들과 사람관계 가운데서 오직 주님께서 일하시기를 간구드립니다. 그 모든 일들을 지나갈 때에 제 안에 감사함과 기쁨이 가득차 넘치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바라오며 이 모든 말씀을 이미 이루심에 감사드리며 이 모든 말씀을 우리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용감한 겁쟁이>

 

낙망 중에 하나님을 바람(시43:1-5)

[1절]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치 아니한 나라에 . . . .

시편 저자는 말한다.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치 아니한 나라에 향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나를 판단하소서”라고 호소한다. 그러한 호소는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고 양심적인 순종 생활 즉 신행일치하는 생활을 하는 성도만이 감히 할 수 있는 호소이다. 불경건하고 불의한 자가 어떻게 감히 공의의 하나님의 판단을 요청할 수 있겠는가? 죄인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시편 저자는 지금 경건치 않은 나라와 간사하고 불의한 자들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공의의 하나님께서 그의 옳음을 판단해주시고 그를 변호해주시고 그를 건져주시기를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이다. 그것은 참된 경건이나 진실과 의의 도덕성이 없이는 성도가 감히 가질 수 없는 담대한 호소이다. 이것은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가 가질 수 있는 담대함이다. 모든 성도는 이런 담대한 신앙생활을 사모하고 실천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4:3-4에 보면, 사도 바울은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말했다. 사도 바울은 자책할 것이 없는 신앙생활을 실천했다. 요한일서 3:21-22에서,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자책할 것이 없는 담대한 신앙생활을 사모하며 실천해야 한다.

 

[2절]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어찌하여 나를 . . . .

시편 저자는 또 말한다.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그는 평소에 하나님을 그의 힘으로 삼고 살았다. 하나님은 모든 진실한 성도들의 힘이 되신다. 다윗은 시편 18편에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고 고백하였다(시 18:1-2).

 

이사야 40:28-31에서,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시편 저자는 평소에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고 살았으나 그는 지금 고난 중에 있다. 성도는 고난 중에 해결책이 보이지 않고 믿음이 약해질 때 낙심하고 힘을 잃는다. 물론 그가 범죄했을 때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일을 행했을 때도 힘을 잃을 것이다. 시편 저자는 지금 원수의 압제로 인해 슬프게 다니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돕지 않으시고 버리신 것처럼 느끼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힘이 되신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3절]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 . . .

시편 저자는 또,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빛’은 지식이나 의나 기쁨 등을 상징한다. 죄는 어두움이다. 사람은 죄 가운데 있으면 바른 길을 찾을 수 없고 바른 길로 갈 수 없다. 또 사람은 의 안에서 성령의 기쁨도 경험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진리의 지식과 의 안에서 바른 길을 갈 수 있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바른 인도하심을 구한다. 인생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미래를 다 아시며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수 있고 또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시며 섭리자이시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빛과 하나님의 진리로 그를 인도하셔서 하나님께서 계신 곳, 하나님의 보호가 있고 그의 기쁨과 평안이 있는 그곳으로 인도해주시기를 구한다.

 

[4절]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 . . .

시편 저자는 또 말한다.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그에게 예배 드리며 주를 찬양하는 것을 귀히 여긴다.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찬양하는 것, 하나님을 섬기는 것,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귀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예배하는 자를 결코 외면치 않으실 것이다. 그는 참된 예배자를 찾으시고 그의 삶을 보장하시고 그에게 모든 좋은 것을 허락하시고 또 장래의 선한 인도하심을 약속하실 것이다. 그는 그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그에게 큰 위로와 격려하심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시며(시 23:1), 우리와 싸우는 자와 싸우시는 하나님이시다(시 35:1).

 

시편 저자는 특히 하나님을 ‘나의 극락(極樂, 지극한 기쁨)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우리의 사랑과 기쁨의 대상이시다. 그는 우리가 마음과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할 분이시다(신 6:5). 또 하늘에서나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모할 자는 없다(시 73:25). 그러므로 성도는 창조자와 섭리자이시며 우리를 죄와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해주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며 기뻐하고 찬송한다.

 

[5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 . . .

시편 저자는 또 말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편 저자는 자신에게 낙심치 말고 불안해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는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고 말한다. 성도는 고난 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해답을 알고 있다. 문제의 해답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에게 기도해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다. 그럴 때 그는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의 도우심을 체험할 것이다. 그의 근심된 얼굴은 기쁨을 얻고 그의 불안한 얼굴은 평안을 얻으며 그의 낙심된 얼굴은 힘을 얻을 것이다.

 

 

본 시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심판자이심을 알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고 살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도우시고 힘을 주실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빛의 인도하심을 항상 구하자. 하나님의 지식과 의만이 우리를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바르게 인도할 것이다.

넷째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만 나의 지극한 기쁨으로 삼자.

다섯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자. 이것이 고난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의 바른 방법이며, 또 승리의 방법이다. <김효성>

 

 

 

시편 43편 매튜헨리 주석

 

Ⅰ. 믿음과 기도로써 하나님을 의지함 43:1-5

다윗은 여기서 믿음과 기도로써 하나님을 자신의 재판장, 힘, 인도자, 기쁨 그리고 소망으로 삼는다.

(1) 그의 재판장(1절) :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그를 고소한 자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에 대해서 피고였다. 여기에는 그가 '경건치 아니한' 혹은 무자비한 '나라'라고 부르는 죄인들의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우두머리인 악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아마도 속이기를 잘하고 불의한 사람으로 다윗에게 아무런 친절도 베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를 아주 불성실하고 부정직하게 대했던 사울이었을 것이다. 다윗의 말한 사람이 압살롬이었을지라도 그의 성품 역시 더 나을 것이 없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죄 때문에 그를 비난하신 것에 대해서 "나를 판단하지 마소서. 판단하시면 내가 정죄를 당하리이다"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그의 원수들이 그를 비난한 것에 대해서는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이는 내가 의롭다함을 받을 줄 알기 때문이니이다. 내 송사를 변호하소서. 내 편을 드시고 주의 섭리 가운데서 나를 위하여 나타나소서"라고 기도한다.

 

(2) 그의 힘, 곧 부족함이 없는 그의 힘 : 그는 하나님을 이렇게 본다(2절).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나의 하나님은 곧 나의 힘이시라. 즉 그에게서 내 모든 힘이 나오고 그 안에서 내가 강해지며 그가 종종 나를 강하게 하셨도다. 그러므로 그가 없으면 나는 물같이 약해져서 그를 위해 어떤 것도 할 수 없고 견딜 수도 없도다." 다윗은 이때 영적인 기쁨을 잃고 슬프게 다니고 있었으나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설령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 위안을 얻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그에게 계속 머무를 수 있으며 우리에게 영적인 기쁨이 없을 때에는 영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것은 다윗이 잘못 생각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들이 자신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 아무리 우울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결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3) 그의 신실한 인도자(3절) :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그의 마음은 가정의 안락함이나 궁정의 높은 자리 혹은 오락에 쏠려있지 않고 '주의 성산과 장막'에 기울어져 있다. 그는 당시 하나님의 장막을 몹시 보고 싶어했다. 그는 그 일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내게 주의 은총의 결실로서 빛을 주시고 주의 약속의 성취로서 진리를 주소서."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빛과 진리를, 곧 빛과 진리의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이 성령은 그리스도의 육체적 임재의 결여를 보충하시어 우리를 경건의 비밀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천국에 이르는 길에서 우리를 지도하시는 영이다.

 

(4) 그의 큰 기쁨 : 그는 만일 하나님께서 그를 주의 장막으로 인도하시고 그에게 이전의 자유로움을 회복시켜 주신다면 그때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4절). 그리고 그는 할 수 있는 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그것을 큰 기쁨, 즉 미래의 복으로 뿐만 아니라 현재의 기쁨으로 알고 또 평범한 기쁨이 아니라 크나큰 기쁨, 즉 감각적이고 현세적인 모든 기쁨을 훨씬 뛰어넘은 기쁨으로 알고 나아가야 한다. 원문에서 그 구절은 매우 강조되어 있다. 즉 '나의 기쁨의 기쁨인 하나님께' 혹은 '나의 승리의 기쁨인 하나님께'라는 뜻으로 표현되어 있다.

 

(5) 결코 쇠하지 않는 소망(5절) : 여기서도 다윗은 앞에서처럼 자기의 의기소침과 낙담에 대해 꾸짖는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그리고 나서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과 더불어 영광을 즐거워하는 일에 대해 ('그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이시라') 자신이 품었던 신앙적인 기대 속에서 자신을 진정시킨다.  <cafe.daum.net/correctthe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