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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산책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우상 숭배 이해

by 은총가득 2021. 1. 21.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우상 숭배 이해

 

인간의 오랜 역사는 군사적으로 승리한 국가가 문화적으로는 피정복국의 수준 높은 문화에 의해 오히려 지배당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보여 준다. 로마는 그리스를 정복했으나 그리스의 찬란한 문화를 이어 받았다. 중국의 경우, 만주족은 명(明)나라를 정복하고 청조(淸朝)를 세웠으나 오히려 문화적으로는 한족의 문화에 흡수 동화되었다. 이스라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과의 정복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그러나 정복의 마무리 단계에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을 다 몰아내지 못하므로 그들과 뒤섞여 살게 되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당시 문화적으로 월등한 수준을 지니고 있던 가나안족들에게 점차 흡수 동화되어 갔다. 특히 종교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대 가나안 족속에의 동화 현상은 우상 숭배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과 가나안 입성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적들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능력을 직접 체험한 민족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자마자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에서 떠나 가나안 땅의 우상들을 섬기게 되었을까? 또한 우상 숭배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를 거듭 경험하고서도, 마치 마약에 중독된 환자처럼 또다시 그 땅의 신들을 섬기는 죄에 반복하여 빠지게 되었을까? 우리는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탓하기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쉽게 또 자주 가나안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된 배경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우상 숭배에 대한 배경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스라엘이 하나의 국가의 체제를 갖춘 후 아람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국가 등과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의 범위는 보다 넓어지게 되지만, 여기서는 가나안 우상 숭배의 문제만을 제한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구체적으로 가나안 우상들에는 어떤 종류가 있었는지, 가나안 우상 종교의 특징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우상 숭배에 빠졌던 이유는 무엇인지와 더불어 이스라엘의 가나안 우상 숭배의 문제가 현대인들에게 주는 교훈 등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1, 가나안 우상들의 종류

먼저, 성경과 우가릿 문헌에 나타나는 바알 신화 등을 기초로 가나안에 있었던 신들의 종류를 도표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2, 가나안 종교의 특징

위의 도표에서는 가나안 우상들의 종류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면 이러한 우상들을 섬기는 가나안 종교의 몇 가지 특징들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1) 다신론

가나안에서는 지역에 따라, 그리고 종족에 따라 각기 다른 많은 신들이 섬겨졌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의 기록 뿐만 아니라 1929년 시리아 북쪽 연안 라스 샤므라에서 발견된 우가릿 (Ugarit) 문헌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즉 가나안 종교는 상당히 초기부터 매우 발달된 체계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위의 도표에서 나타난 것처럼 우가릿 문헌의 바알 신화는 수많은 신들의 이야기가 얽혀 있으며, 일단 가나안의 만신전(Pantheon)에 언급된 것은 모두 신으로서 대접을 받게 되었다. 또한 가나안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우상 뿐만 아니라 일찍부터 인접한 에돔과 모압, 그리고 암몬족의 우상들까지 받아들여 함께 숭배하였으므로 후대로 내려갈수록 신들의 수효는 더욱 많아졌다.

2) 형상 숭배

기독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방 종교들은 형상 숭배(Iconola try)를 특징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가나안의 종교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가나안의 종교는 그들의 신을 형상화하여 나타내는 데 열중이었다. 예를 들어, 가나안의 모신(Mother-Goddess)으로 알려져 있는 아세라는 나체의 여 인상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가나안의 대표적인 신인 바알은 그의 아버지 신인 엘(El)처럼 힘을 상징하는 동물인 황소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가나안에는 이러한 형상들을 모신 신당이 각지에 수없이 산재하였다.

3) 자연 현상과의 밀접한 관련성

가나안 종교에 등장하는 신들과 그 땅의 자연 현상과의 밀접한 관련성을 이해하는 데는 먼저 바알 신화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알 신화를 정확히 원래대로 재구성하는 일은 어렵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줄거리를 갖추고 있다.

폭풍의 신인 바알(Baal)은 바다와 강의 신인 양(Yamm)과 땅의 주인이자 왕의 자리를 놓고 서 대결을 벌인다. 이 싸움에서 바알이 승리하는데, 이는 흔돈과 무질서의 세력을 제압하고 질서와 평화를 세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승리한 바알은 자기의 누이이자 아내인 아낫(Anat), 혹은 아스다롯(Ashtaroth)의 도움으로 자신이 거할 궁전을 건축한다. 그러나 바알의 질서와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바알이 왕위에 오른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여름 가뭄의 신이자 지하 세계의 죽음의 신인 못(Mot)이 바알을 대적하여 지하에서 바알과 전쟁을 벌인다. 그리고 바알에게 죽음의 빵을 먹여 그를 죽이고서 지하 세계에 가두고 만다. 바알이 죽자 비는 멈추고 땅은 메말라 갈라지기 시작하며, 신들 역시 바알의 죽음을 애도한다. 바로 이 때 바알의 누이이자 아내이며 전쟁의 여신인 아낫이 바알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그를 간절히 찾는다. 바알이 못의 수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낫은 못과 격렬한 전쟁을 벌인 후 그를 죽인다. 여름 가뭄의 신이자 죽음의 신인 못이 죽자 바알은 부활하여 다시 왕좌에 오르게 되고, 바알과 아낫이 결합하자 지상에는 다시 비가 내리게 된다.

여기서 바알은 봄의 번식력을 상징화한 것이며, 못은 식물을 죽이는 파괴력을 상징화한 것이다. 자연에는 봄과 여름, 비와 가뭄, 생명과 죽음과 같은 주기적인 현상이 반복되는데, 바알 신화는 이러한 자연의 변화들을 신들의 활동과 연관시킨 것이다. 즉 가나안 종교는 자연의 요소와 그 요소 배후에 있는 어떤 세력을 구별하지 않은 것으로서, 결국 단순히 자연 현상의 변화와 신들의 활동을 동일시하는 관점을 드러내 준다.

4) 도덕적 요구나 신과의 인격적 관계성이 없는 기복 종교

가나안인들은 위에서처럼 자연 현상의 변화 배후에는 그것에 영향을 주는 신들의 활동이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농업을 주된 생업으로 하고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 변화무쌍한 자연에 전적으로 수동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연 현상의 배후에 있는 변덕스러운 신들을 달래고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으며, 바로 이러한 그들의 필요성을 충족시켜 주는 기능을 종교가 할 수 있다고 간주한 것이다.

가나안인들은 자연을 주관하는 신들을 단순히 달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들의 활동에 가능한 많은 영향을 주어 이용할 수 있기를 바랬다. 토양의 풍요로운 결실이 바알과 아스다롯(아낫)이라고 하는 부부신의 성적 결합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던 그들은 그 신들의 성적 활동을 자극하기 위해 신전에서 소위 ‘신성한 매음(sacred prostitution)’을 자행하였다. 신도들과 제사장, 혹은 신전의 창기 사이에서 행해지는 이 종교적 제의에서 남자는 바알의 역할을 하고, 여자는 아스다롯의 역할을 하여 신들의 행동을 모방함으로써 토양의 풍요로운 결실을 보장받고자 한 것이다.

결국 가나안 종교에 등장하는 신들은 자기 기분에 따라 인간에게 유익을 주거나 해를 가하는 변덕스러운 존재이며, 그 신들을 숭배하는 인간들은 단지 그들의 필요에 의해 신을 섬길 뿐이며 할 수만 있다면 신마저 통제하여 이용하고자 하였다. 당연히 가나안 종교에는 신과의 인격적인 관계나 거룩한 도덕적 요구란 있을 수 없었다.



3. 이스라엘이 가나안 우상 숭배에 빠져든 원인

이상에서 가나안 우상들의 종류와 그 우상들을 섬기는 가나안 종교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간 초기부터 가나안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는지 그 주요 원인을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가나안의 풍요의 원인에 대한 관심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삶의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반(半)유목민이었던 위치에서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정착한 농민의 위치로 바뀌게 되었다. 광야에서의 오랜 유랑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살면서, 그들은 곡식과 가축의 다산 등 그 땅의 풍요로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에 없던 안정된 생활과 풍요로움을 맛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의 풍요를 가능하게 한 배경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으며, 바로 가나안의 종교를 그 원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2) 가나안의 신화적 세계관의 영향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들 삶의 방식 또한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업에 종사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연히 곡식 재배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강우량이나 계절의 변화 등 자연과 관련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기상의 과학적인 원리를 잘 알고 있는 오늘날의 농부조차도 풍부한 수확을 산출하는 토양의 생산력 등 자연의 신비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더구나 현대에 비해 자연력에 전적으로 의 지하여야 했던 고대의 생활 배경 가운데 자연의 신비가 종교적 관점에서 해석되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자연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농업에 종사하게 되면서, 신이 배후에서 자연의 변화를 주관한다고 믿는 가나안의 세계관에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고대에는 현대와 달리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 신화적(神話的)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마치 오늘날 사람들이 과학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처럼, 고대 농경 사회에서 자연의 배후에 그것의 변화와 순환을 지배하는 신들이 존재한다는 사고 방식을 무시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이스라엘은 역사 속에서 그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체험하였지만, 자연의 순환을 지배하는 신들의 영향을 인정하는 당시 가나안인들의 세계관이 어느 사이에 이스라엘의 사고에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3) 종교적 혼합주의

가나안의 풍요 속에서, 그리고 그 배후에서 그 풍요를 주관하는 신들의 존재를 믿는 가나안의 세계관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스라엘의 여호와 유일 신앙은 많은 도전을 받게 되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과 언약을 맺은 여호와 하나님께 완전히 둥을 돌리려 한 것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신앙의 도전 속에서 하나의 절충점을 찾으려고 시도하였다. 마치 많은 현대인들이 종교와 과학을 별개의 영역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그들은 여호와 신앙과 가나안 농경 사회의 종교적 풍습을 별개의 영역으로 수용하였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코 양자 택일의 관점에서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을 택하는 식의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것과, 그 땅의 풍요의 신 바알 을 섭기는 것이 상호 배타적이거나 모순된 것으로 생각지 않았고, 여호와를 섬기는 것과 바알을 섭기는 것이 병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타 종교의 제의와 교리에 대해 수용하는 자세를 종교적 혼합주의 (Religious Syncretism)라고 하는데, 이러한 종교적 혼합주의에 의하여 여호와 신앙과 가나안 종교의 요소들은 끊임없이 뒤섞여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은 어떠한 경쟁자도 용납하지 않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여호와의 주권은 절대적인 것으로서 생활의 전반에 걸친 것이었다. 따라서 여호와와 바알을 동시에 섬기는 것은, 실제로는 여호와를 버리는 배반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는 여호와를 섬기느냐 바알을 섬기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여호와만을 섬기느냐 바알도 함께 섬기느냐 하는 문제였다. 여호와와 바알 사이에 어느 하나를 분명히 택하지 못하는 종교적 혼합주의야말로 일찍이 “너희 섬길 자를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고 한 여호수아와, 이후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 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쫓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쫓을 지니라"(왕상 18:21)고 한 엘리야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도전의 핵심이었다.

 


4. 현대인들에게 주는 교훈

지금까지 가나안 우상들의 종류와, 가나안 종교의 특징 및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된 원인에 대해 살펴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우상이 만들어지게 되는 배경이나, 사람이 우상을 섬기는 동기에는 크게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미지의 영적 존재들이 인간의 삶에 개입하고 있다는 사고 방식은, 삶의 안정과 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동기와 맞물려 인간으로 하여금 각양 각색의 우상들을 만들어 섬기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지 구체적인 동기들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근본 원인은 인간이 타락하여 진리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누가 진정으로 자연을 포함한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지, 또 그 절대자가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지 못하는 영적 무지에서 인간의 우상 숭배는 비롯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가나안 우상들의 종류 및 특징과 그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의 문제점들을 통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기독교의 본질은 기복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살펴본 바대로, 가나안 우상들은 인간에 게 어떤 도덕적 요구도 하지 않으며, 인간들 역시 농작의 풍요를 원하는 현실적 동기에 의해서 그 신들을 섬길 뿐이었다. 우상의 특징은 인간에게 어떠한 종교적 도덕적 요구를 하지 않으며 단지 자기를 섭기면 현실적 복을 준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에게 먼저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의를 행하는 삶을 요구하신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복을 주시며 또 실제로 인간 생활 전반에 걸쳐 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시지만, 그분이 주시는 복의 특징은 순종과 믿음의 인격적 관계성 속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순종하며 의를 행하는 삶을 살기 이전에 복을 구하는 것은 우상 숭배자들의 행태를 그대로 본받는 것에 불과하다.

둘째, 당대의 불신적 세계관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나안인들은 신화적 세계관을 가지 고 있었다. 그들의 신화적 세계관이란 자연의 배후에는 자연의 변화를 지배하는 신들이 있으며, 결국 그 신들의 활동 여부에 따라 인간의 용요와 운명이 좌우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 세계관은, 자연 만물은 물론 온 땅과 우주를 다스리고 지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의 신앙과는 상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세계관을 극복한 것이 아니 라 오히려 영향을 받아 그 신화적 사고에 따라 우상들을 섬기고 말았다. 이는 마치 일부 현대의 그리스도인이 성경적 창조론을 버리고 가설에 불과한 진화론을 신봉하는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오늘날은 과학이 유토피아를 이루어 주리라고 하는 과학 만능주의(Scientism), 경제적 풍요와 안정을 제일의 가치로 여기는 경제 지상주의(Economism), 그리고 인간이 의식의 도약(a reap of consciousness)을 통하여 영적인 존재로 진화할 것이라는 것을 믿는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이 새 천년기의 세계관을 형성해 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당대의 불신앙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기독교적 가치와 세계관을 형성하기 위해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한다.

셋째, 종교적 혼합주의의 극복이다. 종교적 혼합주의의 본질은 하나님과 다른 것을 겸해서 섭기는 것이다. 가나안 종교는 하나님을 완전히 버리라고 강요하지 않고 다만 바알도 함께 섬기라고 유혹한다. 이러한 혼합주의적 유혹은 현대에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현대는 종교 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 의 시대이다.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 하면서 타종교에 대해서도 관용의 태도를 보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은 마치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일신 여호와를 믿는 신앙이 편협하고 배타적인 것으로 느끼도록 만들며, 타종교와도 교류하고 연합하도록 유혹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마 6:24)고 분명히 못박고 있 다. 아무리 문화적 관용과 포용성의 이름으로 포장한다 하여도, 혼합주의적 시도는 여호와 종교에 대한 악의에 찬 유혹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유형적인 우상 숭배를 하지 않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맺는 데 힘써야 한다. 우상의 본질이 하나님과 다른 것을 겸해 섬기는 것이라면, 우상은 꼭 형태를 지닌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식이나 명예욕 둥이 우상이 될 수 있으며, 특히 현대에는 황금 만능주의로 인한 물질에 대한 집착이 대표적인 우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속에 우상이 없는지 늘 살펴보아야 하며, 마음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신 6:4).  출처 : 옥스포드 주석


가나안 종교 (canaanite religion)

 

 

(가나안 금송아지상) (바알, EL) (바알, EL) (아세라)

 

역사상 이 특별한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을 주신 이유 중 하나는 가나안 족속들의 “죄악”이 “관영 하였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그 땅에 대한 그들의 주장을 박탈하였다는 것이다. 가나안의 종교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묵인하여 오셨고 최종적으로 이스라엘 족속으로 하여금 근절하도록 명령하셨다는 사실이다.

 

가나안 족속들은 다른 근동 문화처럼 다신론자들이었다. 가나안의 신들은 인격과 기능에 있어서 유동적이지만 그들의 만신에 대한 개념은 얻을 수 있다. 그들의 주신(chief god), 엘(EL)은 두 강의 근원에 멀리 떨어져 살았던 모호한 존재였다. 그는 인간과 신들의 아버지로 생각되었으며 “아버지 황소”(Father Bull)로 불렸다. 엘은 아마도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그의 기력을 없애버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죽였으며, 딸의 머리도 잘랐고 또 다른 아들을 자기의 죽은 아버지에게 희생제물로 바쳤다. 엘이 유혹하였는지 아니면 유혹받았는지 확실치 않지만 그의 아들을 낳은 두 여인은 후에 사막으로 쫓겨났다.

 

엘의 아내는 아세라였다. 그녀는 주로 풍요와 연관되었으며, 성스러운 기둥 혹은 나무가 그녀의 상징이었다. 모세는 여러 차례 이스라엘 족속에게 그들이 땅을 점령하면 아세라의 기둥들을 없애버리라고 명령하셨다(신 7:5; 16:21). 엘과 아세라의 많은 아들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신 바알(Baal)은 비를 주관했고 그러므로 식물을 주관하였다. 바알은 폭풍의 신이었고, 그의 목소리는 뇌성이었다. 바알의 아내요 누이였던 아낫(Anat)은 사랑과 비옥의 여신이었으나, 또한 전쟁의 여신이었다. 가나안 족속들은 그녀를 창녀이자 처녀(virgin)로 생각하였다. 한 본문(text)에서 그녀는 자신이 죽였던 예배자들의 피로 들어갈 때 기뻐한다고 한다.

 

가나안 족속들은 자신과 신을 보다 친밀하게 만들어 주는 외적인 의식 행위에 관심을 더 가졌다. 가나안 족속들은 알지 못한 자들에게 설명하여 주고 회우하기 위하여 자신의 신들의 역사를 발전시켰으며,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맹렬한 시도를 하였다. 가나안 족속의 희생 제사 의식은 이스라엘의 그것보다 더 다양화되어 있었다; 보다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드려졌으며, 가끔은 인간 제사도 요구되었다. 가나안 신들이 자기 백성이 따라야 할 도덕법을 하사해 주었다는 어떤 암시도 없다. 사실상, 가나안 족속은 외관상으로 그들의 신들보다 휠씬 더 도덕적이었는데, 신들에게 특별히 아첨하고 있지 않는 도덕 준수였다. 가나안인들엑 풍요는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이었으며, 남녀 성전 창기가 널리 퍼져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러한 행위들에 대해서 미리 경고하도록 모세를 경고하셨다(신23:17-18).

 

 

(가나안 신전, 거룩한 장소의 전형) (가정용 우상, 드라빔) (가정용 우상, 드라빔)

 

팔레스타인은 가나안 산당들, 성스러운 나무들, 그리고 정교한 신전들로 산재해 있었다. 보존된 문서와 제의 대상들은 성관계에 대한 강력한 집착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종교와 가나안 종교 사이에 조재한 커다란 격차를 보여준다. 윌리암 올브라이트(William F. Albright)는 가나안 문화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났던 정착성을 가진 문화는... 모든 가나안 역사 가운데서 가장 낮은 종교적 수준을 나타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 참을 만큼 참아오셨었다. 가나안 백성들은 아브라함 당시에도 악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나타내 보이셨다. 가나안 족속들도 아브라함의 증거를 받았었고 그의 재담을 보았었으며, 족장들이 섬기던 하나님의 능력도 인정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자신들의 모조품들을 버리지 않았다. 또 다른 기회와 진리의 흔적도 있었으나, 가나안인들은 그것에 대해서도 무지하였다. 가나안인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그리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길을 잃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하여 징벌이 그들에게 내려졌던 것이다. 그 후 여러 세기 동안 선지자들은 “내일이면 너무 늦으므로 오늘 회개하라”고 듣는 자들에게 호소하였다. 주전 14세기 말경의 가나안 족속들에게 미래는 없었다.

 

 


 

가나안의 토착신, 바알 성서에 보면 예언자들이 "야훼냐? 바알이냐?" 하면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바알(Baal)은 어떤 신인가? 바알은 본래 풍년신으로서 가나안과 페니키아에서 많이 숭배했던 우상이다.

가나안 사람들은 특히 바알이 비를 지배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비가 오지 않을 때 이들은 바알을 섬겼다. 바알은 '주인' 혹은 '소유자'란 뜻을 가진 토지의 주인이며 풍요를 주관하는 신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바알을 섬기는 방법은 특이했다. 낮에는 바알을 섬기는 성녀들이 밤에는 창녀로 변하여 신전에서 참배자들과 음행을 하면 바알신이 성적으로 흥분하여 그의 아내와 성관계를 가질 때 비가 내린다고 믿었다.

 

 

이처럼 가나안의 토착민들이 믿고 있는 종교는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가나안 사람들은 하늘, 땅,폭풍 등 자연현상을 신격화한 존재들을 신으로 믿었다. 그런데 이들의 종교는 이스라엘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왕국이 형성된 때까지 약 200년간을사사시대라고 부른다. 이 판관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유목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정착하고 자유로운 연합체에서 하나의 통일왕국 체제로 넘어가는 갖가지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위에 있는 가나안 여러 종족들과 싸움에서 살아 남아야 했다. 그리고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는 가나안의 농경문화를 뒷받침하고 있는 가나안 종교와 이스라엘 야훼 종교간 갈등 문제였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남는 문제는 가나안 종교와 싸움에 달려 있었다. 이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듯이 종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삶 전체에 걸려 있는 문제였다. 가나안 토착민들의 예배는 마술로써 신들에게 영향을 끼쳐 땅의 비옥함과 풍작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유목 생활이 중심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토지의 비옥함에 직접 의존하거나 풍요와 연결된 농업적 향연과는 거의 무관하게 살아왔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농사의 성공을 가져오게 하는 바알 종교의 매력에 끌렸고 많은 유혹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예언자들은 야훼냐, 바알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백성들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가나안의 바알 종교와 이스라엘의 야훼 신앙은 인간과 신에 대한 이해가 전혀 달랐다. 이스라엘 신앙에 따르면 하나님의 힘은 역사를 통하여 나타난다. 하느님은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놀라운 힘으로 자기 백성을 노예 생활에서 구원해 내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특히 바알과는 달리 야훼 하나님은 성적 의식을 통하여 경배받지 않고 풍요의 주인이시기는 하지만 자연 세계의 변천 과정에 종속되는 풍요의 신은 아니다. 그러나 바알 종교는 사람이 신들을 마술로써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사람들은 야훼 하나님에 대한 돈독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경험하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버리고 그 주변 백성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는 행동을 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는 근본적으로 외부 적군의 군사적 압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도덕적, 영적 상태가 부패한 데 있었다. 이스라엘은 신앙이 약화되고 도덕적으로 부패하게 될 때는 항상 적군의 침략을 받아 고통을 겪게 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알을 섬기면서도 하나님 야훼로부터 떠나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야훼 하나님을 군사적 위기에 도움을 주는 분으로 생각했으며, 바알은 농사의 성공을 이루게 하는 신으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야훼와 바알을 나란히 섬기는 데 큰 갈등을 느끼지 않았다. 이것은 사사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혼합주의 경향을 잘 반영해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혼합주의 종교 형태는 오늘날에도 가장 위험하고 유혹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렵고 힘든 상황일수록 미신과 우상에 대한 유혹이 강하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왕국이 형성된 때까지 약 200년간을 사사시대라고 부른다.

 

이 판관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유목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정착하고 자유로운 연합체에서 하나의 통일왕국 체제로 넘어가는 갖가지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위에 있는 가나안 여러 종족들과 싸움에서 살아 남아야 했다. 그리고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는 가나안의 농경문화를 뒷받침하고 있는 가나안 종교와 이스라엘 야훼 종교간 갈등 문제였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남는 문제는 가나안 종교와 싸움에 달려 있었다.

 

 

        이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듯이 종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삶 전체에 걸려 있는 문제였다. 가나안 토착민들의 예배는 마술로써 신들에게 영향을 끼쳐 땅의 비옥함과 풍작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유목 생활이 중심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토지의 비옥함에 직접 의존하거나 풍요와 연결된 농업적 향연과는 거의 무관하게 살아왔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농사의 성공을 가져오게 하는 바알 종교의 매력에 끌렸고 많은 유혹을 받았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는 근본적으로 외부 적군의 군사적 압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도덕적, 영적 상태가 부패한 데 있었다. 이스라엘은 신앙이 약화되고 도덕적으로 부패하게 될 때는 항상 적군의 침략을 받아 고통을 겪게 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알을 섬기면서도 하나님 야훼로부터 떠나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야훼 하나님을 군사적 위기에 도움을 주는 분으로 생각했으며, 바알은 농사의 성공을 이루게 하는 신으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야훼와 바알을 나란히 섬기는 데 큰 갈등을 느끼지 않았다. 이것은 판관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혼합주의 경향을 잘 반영해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혼합주의 종교 형태는 오늘날에도 가장 위험하고 유혹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렵고 힘든 상황일수록 미신과 우상에 대한 유혹이 강하기 때문이다.

드라빔 (teraphim)
가족 신이거나 우상. (창 31:30, 34) 복수형이기는 하지만 “드라빔”이라는 명칭?은 단일 우상?에게 적용?될 수?도 있다. 이 우상들 중 적어도 일부는 크기나 모양이 사람과 같았을 것이다. (삼상 19:13, 16) 그보다 훨씬 작은 것들로서, 여자용 안장 광주리 안에 들어갈 만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창 31:34) 전조를 구하는 데 드라빔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겔 21:21; 슥 10:2.

 

 

메소포타미아와 그 인근 지역에서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것을 보면 드라빔 형상을 소유하는 것이 가족의 상속 재산을 누가 받을 것인가와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누지(Nuzi)에서 발견된 어느 서판에 따르면, 가족 수호신들을 소유한 경우 특정 상황에서 사위가 법정에 나와 사망한 장인의 토지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고대 근동 문헌」Ancient Near Eastern Texts, J. 프리처드 편, 1974년, 219, 220면 및 각주51)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라헬은 아버지가 자기 남편 야곱을 속였기 때문에 드라빔을 가지고 가는 것이 정당하다고 추리하였을지 모른다. (31:14-16비교)

 

 

상속권과 관련하여 드라빔이 중요했다는 사실을 볼 때, 왜 라반이 형제들을 데리고 칠일 길이나 되는 거리를 기를 쓰고 야곱을 쫓아와서 드라빔을 다시 찾으려고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1:19-30) 물론 야곱은 라헬이 그렇게 한 줄을 전혀 몰랐고(31:32) 또 야곱이 드라빔을 사용하여 라반의 아들들에게서 상속 재산을 얻어 내려고 했다는 암시도 전혀 없다. 야곱은 우상과 관련이 전혀 없었다. 야곱이 집안사람들에게서 넘겨받은 타국 신들을 모두 세겜 근처의 큰 나무 밑에 숨겼을 때, 늦어도 이때에는 드라빔이 처분되었을 것이다.35:1-4.

 

 

이스라엘에서 드라빔을 우상 숭배에 사용하는 일은 재판관 시대에도 왕들 시대에도 있었다. (17:5; 18:14, 17, 20; 3:4) 하지만 하느님이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분명히 명령하신 것을 볼 때 이스라엘에서 드라빔을 상속 재산 용도로 사용하였을 것 같지는 않다. (20:4) 또한 예언자 사무엘은 괴이한 능력과 병행하여 드라빔에 대해 말하였으며, 그 두 가지를 사용하는 것을 주제넘게 나서는 것에 비하였다. (삼상 15:23) 그리고 드라빔은 충실한 왕 요시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없애 버린 우상 숭배 부속물 중에 있었다. (왕둘 23:24) 그러하기에 다윗의 아내 미갈이 드라빔 형상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은 미갈의 마음이 여호와께 온전하지 않았음을 시사하며, 미갈이 드라빔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다윗이 몰랐거나 아니면 미갈이 사울 왕의 딸이기 때문에 다윗이 그것을 묵인하였음을 시사한다.삼상 19: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