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가 낳은 최고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디 세르 피에로 다 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1452-1519) 는 아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근대적인간의 전형이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예술가다. 다빈치는 이탈리아의 자존심일 뿐 아니라 인류가 낳은 최고 천재 중의 한 사람이다.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가 2007년 11월 인류 역사를 바꾼 천재 10명을 선정해 순위를 매겼다. 그중 1위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다.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기술자,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다.
그는 호기심이 많고 창조적인 인간이었으며, 어려서부터 인상 깊은 사물, 관찰한 것, 착상 등을 즉시 스캐치하였다.
다 빈치는 1452년 4월 15일 토스카나 지방의 산골 마을 빈치에서 유명한 가문의 공증인인 피에로 다 빈치(Ser Piero da Vinci)와 가난한 농부의 딸인 카타리나(Catarina)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는 르네상스의 만능인으로 어릴 때부터 수학·음악·회화 외에 모든 학문에 있어서 다재다능함을 보였다.
다빈치는 14살쯤 피렌체로 이사를 가 안토니오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 공방에 들어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20살이 되어 베로키오의 그림 <그리스도의 세례>에 조수로 참여해 꼬마 천사 두명을 맡았다.
그는 30세 부터 밀라노의 스포르차 귀족 가문의 화가로 초빙되어 약 12년 동안 화가로서 뿐만이 아니라 조각가, 건축가 등 다방면에 걸친 천재성을 발휘한 것을 필두로 피렌체, 프랑스 등에서 과학, 사상, 예술 등 여러 분야에서 지칠 줄 모르는 연구와 광범한 업적을 쌓으며 활동하다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대표적인 미술작품으로는 그리스도의 세례,수태고지, 동굴의 성모, 흰 담비를 안은 여인,음악가의 초상,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암굴의 성모, 성 안나와 성 모자, 세례자 요한 등이 있다.
다빈치는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으나 여기서는 그의 미술작품을 위주로 다뤄 본다.
♣ 자화상
1510-1513작품, 33.3x21.3cm, 이탈리아 토리노 왕립도서관 소장
이 자화상은 다빈치가 예순살에 그린 작품이다. 깊은 사색에 잠긴 노인의 눈빛이 인상적이다.
소묘로 그려진 레오나르도다빈치의 자화상은 이미 자신의 탁월한 재능을 세상에 펼쳐 보인 인생의 정상까지 살아온 노인의 모습이다.
깊게 패인 주름에서 다빈치의 삶과 내면세계에 맞닿아 있는듯 느껴진다. 성공한 천재 화가일뿐 아니라 다방면에서 당대에 인정받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얼굴에서는 세월이 남긴 깊은 주름과 함께 당당한 기품이 느껴진다
♣모나리자
모나리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가치있는 미술품으로 알려져 있다.
가로 53㎝, 세로 77cm 유채(油彩) 패널화이며,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완성 시기는 1503~1506년경으로 추정된다. 모나리자라는 이름을 보면 모나는 부인이고 리자는 이름으로 즉 리자부인이란 뜻이다.
모나리자 남편은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라는 실크 사업가였고, 리자부인은 몰락한 귀족가문 출신이다.
이 그림은 정면을 응시하고 미묘한 미소가 특징이며, 볼이나 손, 가슴, 미소는 마치 살아있는 여인을 보는 듯하다. 또한 여성의 미를 돋보이게 하는 어떠한 장신구도 걸치지 않았다.
다빈치는 배경 풍경을 그리면서 사물간 관계를 기하학적으로 계산해 배치하는 당시 일반적이던 선원근법을 쓰지 않고, 색채 조정을 통해 공간감을 표현하는 '대기원근법'을 사용했다. 대기 원근법은 가까운 풍경은 붉은 색조로 명확하게, 먼 곳은 청색조로 윤곽을 흐릿하게 묘사해 작품 속 공간이 뒤로 물러나는 듯 보이는 효과를 보여준다.
특히 보는 방향마다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지는 신비한 미소도 수수께끼다. 다빈치는 윤곽을 그리지 않고 손이나 헝겁으로 문지르듯이 나타내는 '스푸마토(Sfumato) 기법'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스푸마토는 '자연에는 빛과 어둠이 있을 뿐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다빈치는 이 작품을 주문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그가 죽을 때까지 지니고 있을 정도로 아꼈다.
♣ 최후의 만찬
1495-1498년 작품,
최후의 만찬은 다빈치가 그의 후원자였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의 요청으로 그린 벽화이다. 그림은 밀라노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식당 벽화로 그려진 것으로, 가로 880cm, 세로 460cm 작품이다. 대부분의 작품이 미완성이라고 불리는 다빈치의 그림에서 몇 안되는 완성된 작품의 하나이지만, 가장 손상이 심한 그림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그림은 예수가 체포되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제자들 가운데 배반자가 있음을 말하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이다.
그림은 기묘한 현실감을 가지고 있다. 이 장면에는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라는 말씀에 제자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표시하여 거기에 심한 동요가 일어난다. 예수의 왼편에 있는 요한이 슬픈 표정으로 베드로 쪽으로 머리를 기울이고, 흥분한 베드로는 식탁의 나이픠를 들고 누구를 찌를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베드로 앞에 앉아있는 유다는 오른 손에 돈자루를 들고 놀란 표정으로 예수를 처다보고 있다. 그리스도는 흥분한 주위에 휩싸이지도 않고 초연한 사람처럼 평온하다. 열두 사람들의 제자들은 세 사람씩 네 그룹으로 갈라져서 안정적인 비례와 구도를 만들고 있다.
이 그림은 훼손이 심하여 대규모 복원작업을 했다. 1977년 복원작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그림이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고, 복원기간은 22년이 걸렸다.
현대 기술로 재현한 상세도
최후의 만찬. 그리스도의 모습
♣ 그리스도의 세례, The Baptism of Christ
1475년 작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승인 베로키오의 작품이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은 예수가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왼편의 천사 부분은 당시 베로키오의 제자였던 다 빈치가 그려 넣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로키오는 그가 다 그리지 못한 그림을 다빈치가 완성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베로키오가 그린 요한과 다빈치가 그린 천사를 비교해보면 배경과 분위기가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배경 속 풍광과 예수 그리스도도 다빈치가 그린 것으로 보는 주장도 있다.
♣ 세례자 요한
1513-16년 작품, 목판에 유채, 69 x 57cm,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마지막 걸작이다. 어두운 검정을 배경으로 오른손 검지는 위를 향하고, 왼손은 가슴에 댄 채 십자가를 들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이다.
암흑의 공간에는 마치 자체발광 하는 듯 신비롭고 은은한 빛을 발하는 세례자 요한이 있다. 그는 몸에 낙타털로 된 망토를 두르고 아름다운 갈색 곱슬머리에 입가에 신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으며,
오른팔을 들어 손끝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그는 곧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실 거라는 기쁜 소식을,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기적은 바로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 일으킨다는 진리를 전해주고 있다.
세례 요한은 보통 중년 남성으로 그려지곤 했는데, 다 빈치는 그를 젊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젊은이로 표현하였다.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이 모호할 정도의 아름다운 외모와 모나리자를 닮은 오묘한 미소가 매우 인상적이다.
이 작품엔 다 빈치가 평생에 걸쳐 연구한 스푸마토와 키아로스쿠로의 테크닉이 함께 사용되었다. 검은 배경으로 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젊은이의 표정은 모호하고, 얼굴 표현은 섬세하다. 머리카락과 털옷의 표현 또한 스푸마토와 키아로스쿠로를 극대화함으로써 뚜렷한 선은 보이지 않으나 입체감을 보여주는 동시에 어둠 속에서 인물이 베일에 싸여 떠오르는 듯한 인상을 느끼게 한다.
왼쪽 작품은 바쿠스 혹은 세례 요한(Saint John the Batpist - Bacchus)이고, 오른쪽은 세례 요한(Saint John the Baptist)이다. 성서 속 인물이나 신화속 신들의 모습은 각각의 특징이 있어 그 인물에 대한 표현 심볼이나 제스쳐만 알고 있어도 그림속의 인물이 누군인지, 혹은 어떤 신인지 쉽게 알 수가 있다.
세례 요한의 몇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세례 요한은 예수의 6촌으로 6개월 먼저 태어난 형입니다. 따라서 어린 예수를 표현하는 그림에 어린아이 두 명이 나왔을 때같이 나오는 인물이 세례 요한이다.
▶ 항상 손가락으로 예수를 가리킴('이 사람이 구세주다'란 신호)과 하늘을 가리킴
-늘 다소 헐벗은 복장으로 작은 십자가를 막대기처럼 들고 다니는 모습이다.
♣ 수태고지 ,The annunciation
‘수태고지’는 피렌체 우피치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초기작 중 하나로 피렌체의 산 바르톨로메오 아 올리베토 교회의 제단화로서 그려진 것이다.
수태고지는 다빈치가 단독으로 그린 초기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1472년쯤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가로 98㎝ 세로 217㎝에 달하는 비교적 큰 작품이다.
그림의 주제는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의 집으로 찾아가 그녀가 성령의 아이를 잉태했음을 알리는 순간이다.
수태고지의 주제는 기독교 미술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으로 대부분이 앉아있는 성모 앞에 무릎을 꿇은 대천사 가브리엘을 그리고 있다. 예수의 잉태를 천사가 마리아에게 알리는 ‘수태고지’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그려진 주제 중 하나이다.
이 때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건넨 첫 마디,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를 그림에 쓰거나 백합, 흰 수건 등을 그려 넣어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하였다.
다 빈치는 수태고지의 주제를 가로로 긴 화면에 그리고 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을 연상시키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정원을 배경으로 하여 집 앞에서 책을 읽고 있던 성모 앞에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무릎을 꿇고 말을 건네고 있다. 세 손가락을 들어 올린 가브리엘의 손짓은 은총의 표현이며 마리아의 살짝 들어 올린 왼손에서 처녀인 자신이 아이를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을 읽을 수 있다. 다빈치는 다듬어진 돌을 쌓아올린 건축물의 외벽으로 투시원근법을, 화면 멀리로 희미하게 보이는 호수와 산의 풍경을 통해서 대기원근법을 잘 표현하고 있다.
토스카나 지방을 연상시키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정원을 배경으로 하여 집 앞에서 책을 읽고 있던 성모의 앞에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무릎을 꿇고 말을 건네고 있다.
그림 속 마리아의 표정을 보면 가브리엘의 말에 대해 놀라는 기색이 전혀 없다. 표정뿐만 아니라 자세도 지극히 안정적이다.
♣광야 속의 성 제롬
1480년에서 82년 작품으로 추정되며 바티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광야 속의 성 제롬'은 성 제롬이 시리아 사막으로 퇴각해 은둔자로 살던 모습을 묘사했다
왼쪽으로는 안개에 둘러싸인 산과 호수의 풍경이며, 오른쪽에는 바위 사이로 보이는 교회 스케치가 남아 있다. 성 제롬은 바위산에 무릎을 꿇은 채 십자가를 응시하고, 오른 손에는 속죄의 행위로 가슴을 치는 돌맹이를 들고 있다. 발아래는 성 제롬이 발바닥에 박힌 가시를 빼준 후 그의 충직한 동반자가 된 사자가 앉아 있다.
목과 어깨의 근육 묘사에는 다 빈치의 해부학적 드로잉의 기법이 보여진다. 다빈치는 이 그림을 골격, 힘줄, 근육 등을 해부학적인 방식으로 상세하게 묘사했다. 엎드린 사자의 실루엣은 윤곽선 너머에 입체감이 없어서 특히 강력하다. 황량한 바위산을 배경으로 노쇠한 성 제롬과 그 앞에 엎드린 사자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광야 속의 성 제롬”은 1480년에 제작하였는데 19세기 중반에 뒤늦게 로마의 어느 가계에서 책상보로 사용하고 있던 것을 기적적으로 발견하였다고 한다.
19세기 초반 스위스 화가 안젤리카 코프만의 유언장에 의해 처음 다빈치의 작품이라는 것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 동굴속의 성모
1485년경 완성된 작품, 판넬에 유채, 122 x 199 cm,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소장
‘동굴 속의 성모’는 중앙에 성모가 있고, 앞 쪽에 아기 예수가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있는 세례자 요한에게 축성을 내리고 있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축성은 여러가지 뜻이 있지만 기독교에서는 "사람이나 물건을 하느님에게 봉헌하여 거룩하게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중앙에 성모가 있고, 왼쪽에 두 손을 모아 경배를 드리는 아기가 세례자 요한이며, 그 맞은편에서 축성을 내리고 있는 아기가 바로 예수이다. 오른쪽에서 손가락으로 요한을 가리키고 있는 여자는 천사다. 어두운 동굴로부터 빛을 가득 받고 드러나는 인물들의 조용한 자태, 천사의 의미 있는 몸짓, 아이들이 노니는 모습, 이 모든 것이 잘 조화되어 있는 작품이다.
어슴푸레한 동굴 속에 있는 인물들과 여러가지 식물과 괴이한 바위들, 그리고 동굴 저편에 보이는 어슴푸레한 빛의 모습이 신비롭게 그려져 있으며, 아기 예수와 세례자 요한은 섬세하고 미묘한 빛과 어둠의 대비로 그려졌다.
이들 인물들은 희미한 배경 속에 묻혀 있어서 그 누구도 형태가 뚜렷하지 않다. “어둠 속에서는 경계를 구분할 수 없다.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그리고 싶지 않다면 또렷한 윤곽선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빈치의 메모에 적혀 있는 말이다.
♣ 카네이션의 성모
1478~80년 작품, 패널에 유채, 62 x 47,5 cm
뮌헨의 알테 피타코텍 갤러리 소장
카네이션을 붙잡으려고 버둥대는 아기 예수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보는 성모 마리아의 얼굴에는 신비로운 미소가 감돈다. 그런데 그 미소에 가냘픈 슬픔이 느껴진다. 성모가 아기를 안고 꽃을 내미는 이 장면은 정겨운 장면이지만 슬픔의 예고이기도 하다. 중세 유럽에서 붉은 카네이션은 순수한 열정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 핏빛 때문에 수난을 상징하기도 했다.
이 카네이션은 앞으로 그리스도가 감내해야 할 십자가의 수난과 어머니로서 그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마리아의 고통을 상징하기도 한다.
♣ 리타의 성모
1490년 작품, 42cm x 33cm, 상트 페테를 부르크 예르미타시 미술관 소장
아기 예수에게 젖을 물리는 성모의 그림이다.
이 그림은 밀라노를 통치했던 비스콘티 자작을 위해 그려졌는데
이후 이탈리아 리타 가문에 인계되어 장기간 보관되었다가, 1865년 러시아 외교관 리타 백작이 에르미따쥐 박물관에 기증해서 리타의 성모라 불리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다빈치가 완성한 것이 아니고 다빈치가 스케치한 것을 제자들이 완성했다는 추측도 있지만 그의 취향을 표현하고 있다. 성모의 젓을 빨면서 쥐고 있는 예수님의 오른 손목 아래 방울새 한 마리가 숨어 있는 데, 이 새는 바로 수난의 상징이다.
창밖의 평화로운 풍경을 배경으로 행복한 표정으로 아들에게 젓을 먹이는 어머니, 젖을 통해 어머니의 사랑을 만끽하며 포만상태에 있는 아기 예수와 성모님 사이에 약간 어둡게 그려졌기에 자세히 보아야 확인되는 방울새는 그가 겪어야 할 장래 수난을 암시하고 있다.
♣ 실패를 든 성모 Madonna with the Yarn-Winder
1501-1507년 작품, 50x35cm, 미국 개인소장
'실패를 든 성모'는 세계에 40여개의 작품이 존재하고 있다. . 모두 진품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 작품이 진품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십자가 모양의 실패는 앞으로 닥칠 고난을 상징하고 있다.
♣성 안나와 성모자와 어린 양
1501-1519년 작품, 168x130cm, 파리 루브를 박물관 소장
다 빈치의 몇 점 안 되는 완성 작품의 하나다. 1501년부터 1519년까지 그린 이 작품은 여유 있는 다빈치 특유의 필치가 느껴진다.
성안나와 성모자의 그림은 많은 이탈리아 화가들이 그린 주제인데, 표현방법에는 주로 성 안나가 성모의 뒤쪽에 앉아 있는 모습과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있다.
이 작품은 성안나가 성모 뒤쪽에 앉아 있는 모습인데, 성모 마리아 어머니인 안나의 얼굴은 다른 작가의 작품과는 달리 특이하게 젊게 표현되어 있다 . 다른 작가들은 안나는 얼굴에 주름살로 가득 찬 할머니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지만 다 빈치의 그림에서는 안나의 얼굴이 마리아보다 겨우 몇 살 위인 언니 같은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앞에 있는 어린 예수는 어린 양과 함께 성모의 품에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이를 말리듯이 성모는 두 팔을 길게 뻗어 예수를 품으려 하고 있다. 안나는 이러한 장면을 바라보며 웃음짓고 있다.
다 빈치는 이 그림의 배경으로 그려진 날카로운 바위와 험준한 산들을 스푸마토 기법으로 화면 속으로 사라지듯 멀어져 보이게 표현하고, 인물의 윤곽선을 마치 안개에 쌓인 듯이 살짝 번지도록 그렸다. 그래서 배경과 인물이 서로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화면을 만든다.
구도는 전체적으로 삼각형의 형태를 지녀 매우 안정적이다. 안나의 시선과 성모의 시선, 예수와 어린 양의 시선이 삼각형의 한 변을 이룬다. 예수의 왼발, 마리아의 오른발, 안나의 발이 화면에서 삼각형의 밑변을 이뤄 안정적인 피라미드 구도를 보여준다.
모나리자의 얼굴을 닮은 듯한 안나는 상냥하고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다. 서로에게 사랑스러운 눈빛을 나누는 이들의 모습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로서 성안나에 대한 신앙은 15세기에 이루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
‘살바토르 문디’는 1506년에서 1513년 사이 프랑스의 루이 12세를 위해 그린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옷차림을 한 예수가 오른손을 들어 축복을 내리고, 왼손으로 크리스탈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모습을 가로 45㎝, 세로 66.5㎝ 크기의 캔버스에 담은 작품이다. 살바트로 문디는 라틴어로 구세주라는 뜻이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행방불명되었다가 2017년 11월 15일 뉴욕의 크리스티스 경매에서 4억 5,030만 달러에 낙찰되어 사상 최고액을 달성하면서 세계의 화제가 되었다.
이는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이다. 경매 수수료만 500억이라고 한다.
'살바토르 문디'를 고가에 사들인 구매자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바데르 왕자이다. 하지만 실소유주는 사우디의 실세인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작품은 프랑스 출신 헨리에타 마리아 왕비가 1625년 영국의 찰스1세와 결혼하면서 영국 왕실로 넘어갔다. 찰스1세의 소장품이던 이 그림은 1763년 경매에 처음 등장했다가 1900년께 영국의 그림 수집가 프레더릭 쿡 경(卿)이 구입할 때까지 행방이 묘연했다.
1958년 프랜시스 쿡의 후손이 소더비 런던 경매에서 단돈 45파운드에 팔았고, 2005년 뉴욕의 딜러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약 1만달러에 구매 한 후 3년에 걸친 복원작업을 하며, 결국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진품으로 판명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지속적으로 진위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스푸마토 기법과 곱슬머리의 표현, 세밀한 손가락에서 드러나는 해부학적 지식 등이 전형적인 다빈치의 작품이라는 것이고,
가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작품 수준이 다빈치의 다른 작품에 비할 바가 못되고 다빈치가 부분적으로 손을 댄 스튜디오 작품이라는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미술사학자 매슈 랜드루이스 교수는 다빈치는 작업에 20~30%만 참여하고 대부분은 제자 베르나르디노 루이니가 그런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 손상이 워낙 심해 대대적인 복원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부분이 본래의 작품인지 가늠하기 조차 힘들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여인 드로잉
1508년 작품, 27X21cm, 이태리 파르마, 나치오넬레 갤러리 소장
헝커러진 머리 여성, 다빈치는 많은 작품을 드로잉 했지만 그 중 몇 점 만을 소개한다.
♣ 여인의 두상
1508년 작품
♣ 남자의 두상
1503-1505년 작품
♣지네브라 데 벤치
38cm x 37cm, 유성페인트, 워싱턴 국립미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유럽 대륙 밖에 있는 유일한 다빈치 그림이다.
다빈치는 약 15년의 간격을 두고 대표적인 여인 초상화 세 점을 그렸다. 세 여인은 바로 지네브라 데 벤치(1474~1478), 체칠리아 갈레라니(1489), 모나리자(1503~1505)다. 그 가운데 지네브라 데 벤치는 이 초상들 중 가장 먼저 제작되었으며, 미국에서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다 빈치 작품이다.
이 작품의 모델인 지네브라 데 벤치(Ginevra de' Benci)는 15세기 피렌체의 부유한 은행가 아메리고 데 벤치(Amerigo de' Benci)의 딸로서 아름다움과 지성을 겸비하여 많은 예술가들에게 흠모의 대상이었다.
이 초상화는 1474년 17세인 지네브라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그려졌다.
빛을 환하게 받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티 없이 깨끗하고, 이마로부터 양 갈래로 내려오는 곱슬곱슬한 금발의 머릿결은 윤기가 흐른다. 그러나 표정에서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찾을 수 없으며, 앞을 바라보고 있지만 시선은 공허하고 알 수 없는 몽환적인 기운이 그녀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그림에는 지네브라의 머리 위쪽으로 화관처럼 노간주나무 가지를 드리워 졌다.
노간주나무는 이탈리아어로 지네프로(ginepro)인데, 이는 초상화의 주인공인 지네브라의 이름을 연상시킨다. 또한 노간주나무는 ‘순결’을 상징하는 식물이기도 했다. 다 빈치는 그림과 식물의 이미지를 통해 미와 덕의 관계를 보여주고 지네브라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있다.
♣흰 담비를 안은 여인
이 그림은 '흰쪽제비를 안은 여인'으로도 번역되고 있는데, 담비는 원래 쪽제비과에 속하는 동물이라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담비가 정확한 표현인듯하다.
1489년에서 1490년 사이에 그린 작품이며, 일명 "에르마인을 안은 숙녀"라고도 불린다. 르네상스 시대 초상화의 걸작으로, 현재 폴란드 크라쿠프의 차르토리스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의 모델은 체칠리아 갈레라니인데 밀라노 공작인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애인이다. 이 그림은 다빈치가 그린 네 점의 여성 초상화 중 하나이다. 표면은 많이 문질러졌고, 배경은 검은색으로 덧칠해졌다. 좌측 상단 구석은 수리되었고, 모델의 머리 위에 있는 투명한 베일은 사치스러운 머리모양으로 바뀌었고 손가락에 심하게 가필되는 등의 많은 손상을 입었음에도, 다 빈치의 작품들 중에서는 양호한 상태에 속한다.
초상화에 등장하는 흰담비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다.
담비의 털가죽은 귀족이나 왕족들의 옷에 쓰인 귀한 소재이기 때문에, 상류계층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흰 담비는 모피가 더럽혀지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는 속설이 있었기 때문에 체칠리아의 순수하고 청정함을 드러내려 했다는 분석도 있다.
모델의 머리카락은 실로 엮어진 그물 베일 아래로 꽉 묶여 있고, 쭉 뻗은 손은 매우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담비를 쓰다듬는 세실리아의 손가락과 손톱의 윤곽선, 손가락 관절과 힘줄의 움직임은 마치 살아 있는 손을 보는듯 하다.
이 그림은 1708년 아담 예지 차르토리스키(Adam Jerzy Czartoryski)의 손에 들어가1800년 차르토리스키(Czartoryski) 가문의 콜렉션에 편입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는 나치 독일에 약탈되어 베를린의 프리드리히 황제 박물관에 소장되었다가 1940년 나치독일의 폴란드 총독 한스프랑크가 자신의 집무실에 장식하기 위해 이 그림을 총독부가 있는 크라쿠프로 가지고 돌아왔다. 이후 이 그림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한스 프랑크의 집에서 발견되어 폴란드에 반환되었고, 원래 자리인 차르토리스키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 음악가의 초상
1490년 작품인 음악가의 초상은 다빈치가 그린 유일한 남성 초상화다. 현재 밀라노 암브로시니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다빈치의 기법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오직 얼굴 주변 뿐이며,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악보다. 작품의 제작 연도는 1490년 전후로서 모델은 레오나르도의 친구인 프랑키노카 프리오라로 알려져 있다.
이 음악가는 1482년 이후 밀라노 대성당의 합창단장을 맡고 있었고, 그의 저서인 '음악의 실제'(1496년) 목판 삽화를 다빈치가 그렸다.
♣라벨 페르니에르의 초상
라 벨 페로니에르(La belle ferronniere)는 다빈치의 4대 여인 초상화 중 하나이며,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모나리자만큼이나 아름다운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밀라노에 머물렀을 때 그린 그림이다. 왼쪽 어깨를 앞쪽으로 두고 있는 구도가 모나리자와 유사하다.
그림의 '별명은 알 수 없는 여인의 초상'(portrait of an unknown woman)이며, 작품 속 여인이 누군인지 명확하지 않다.
라 벨 페로니에르 라는 이름은 17세기에 붙여진 것이다. 라 벨(la belle)은 불어로 아름다운 여인, 페로니에르(ferronniere)는 이마에 두르는 줄에 달린 철 장신구를 뜻한다.
그림의 주인공이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설은 그림 속 여인이 이탈리아 최고 권력자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애인 <루크레시아 크리벨리 Lucretia Crivelli>라는 설이다.
원래 루크레시아는 밀라노 공작 부인인 베아트리스의 시녀였다. 자신의 시녀인 루크레시아가 남편과 사귀는 것을 알고 화가 난 공작 부인은 두 사람 사이를 갈라 놓으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만다.?
밀라노 공작은 루크레시아 말고도 체칠리아라는 여성과도 연애를 했는데 체칠리아는 다빈치의 그림 <흰 담비를 안은 여인>의 모델이 된 인물이다.
공작은 루크레시아와 체칠리아 두 사람 모두에게 사랑의 기술자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고 한다.
♣ 젊은 약혼녀의 초상(라 벨라 프린치페사)
1998년 초, 젊은 여자의 옆모습을 양피지 위에 유색 초크로 그린 초상화가 맨해튼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다.
작가와 그림 속 인물은 알려져 있지 않았고, 카탈로그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스타일을 모방한 19세기 초 독일인의 작품이라고만 설명되어 있었다.
이 작품을 구입한 수집가 피터 실버먼은 이 그림이 르네상스 시대 거장의 작품이라 확신했다. 그는 우연히 만난 큐레이터 니콜라스 터너에게 그 초상화의 사진을 보여줬다. 터너는 레오나르도 작품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인 왼손으로 그린 해칭을 지목하며 레오나르도가 이 작품을 직접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후 그는 경매의 전문가, 큐레이터, 미술사학자 등 여러 감정인들을 만나고, 디지털?적외선 분석까지 하며 이 그림의 가치를 찾아주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그 결과 중요한 과학적 증거를 찾았다. 고해상도 이미지를 스캔한 결과 초상화의 윗부분에서 지문을 발견했다.
2009년 타임지는 “마치 셜록 홈스의 소설 같다. 연구자들은 500년 된 지문을 추적해 이 초상화를 그린 예술가를 밝혀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BBC는 "손가락을 통해 발견된 새로운 다빈치 작품"이라고 보도했다.
실버먼이 약 2만 달러(약2,400만원)에 구입한 이 그림은 현재 1억 5000만 달러(1,854억원)으로 추정된다.
♣ 이사벨라 데스테의 초상
1500년작 , 루브르박물관 소장
이사벨라 데스테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최대의 미술 수집가이자 예술 후원자였다. 그녀는 만토바 후작 프린체스코 2세 곤차가의 아내이자 그 시대 여성들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유명한 사람이다.
그녀는 다빈치가 자신의 초상화를 완성해주길 바랬지만 그는 이사벨라 데스테의 초상 드로잉 한장을 남겼다. 다빈치가 이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이유는 데스테가 지나치게 고압적이라 다빈치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다빈치는 원래 착수한 작업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었다. 이 그림도 끝까지 완성하지 않고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종류에 속한다. 스케치로만 남아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루브르박물관에서 상설 전시를 하지 않는다.
다빈치의 표현을 다음과 같다. " 초상화 주인공의 시선은 상당히 단호하고, 그 속에는 지적인 깊이가 느껴지도록 묘사돼 있다. 이사벨라 그녀는 모든 장르의 예술에 관심이 많고 조예가 깊었다. 정치적 영향력과 함께 문화·예술적 부분에서 탁월한 견해까지 더해져 당시 전체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기도 했던 그녀를 당시 사람들은 ‘유럽에서 가장 우아한 여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녀는 여러 종류의 화장품은 물론 고급 사교계에 어울리는 다양한 복장들을 만들어낸 패션 리더이기도 했다.”
그녀는 다빈치에게 주문해서 자신의 초상화가 완성되기를 바랐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그림은 그냥 스케치로 남게 됐다. 더구나 남편 곤차가는 자신의 부인을 너무 못 그렸다고 생각하고 이 그림을 다른 사람에게 그냥 선물로 주고 만다.
16세기 초상화의 거장 티치아노가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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