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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산책

열국에 대한 심판 예고( 렘 46-49장)

by 은총가득 2020. 12. 15.

예레미야 46장

 

 

Ⅰ. 애굽의 멸방에 대한 예언〔1〕46:1-12

본장의 1절 말씀은 인접국가들에 관한 말씀으로서 이 부분의 제목의 구실을 하고 있다. 열국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1절). 우리는 구약에서 "이방 국가들을 치는 여호와의 말씀"을 대하게 된다. 반면에 신약에서는 "이방 국가들을 위한 여호와의 말씀"을 대하게 되는데 이는 곧 멀리 있던 자들이 가까워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먼저 애굽에 관하여 말한다.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의 오랜 압제자요 최근에는 이스라엘을 미혹시키는 자 노릇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예레미야는 '여호야김 제 년에 바로느고의 군대'가 느부갓네살의 의하여 패배하리라는 것을 예언한다. 이 패배로서 바로느고는 사년 전에 앗수르 왕에 대하여 정복 전쟁을 일으키고 요시야왕을 살해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것이다(왕하 23:29). 애굽에 대하여 승리한 이 사건은 본문에 득의양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예레미야는 그 사실을 즐거운 어조로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요시야의 죽음이 바로느고에게 보복되었기 때문이다.

(1)애굽인들은 이 침략 전쟁을 위하여 막강한 준비를 한데 대해 책망을 받는다.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최선을 다해 보라고 힐난하다. 너희는 큰방패 작은 방패를 예비하고 나가서 싸우라(3절). "그처럼 전쟁 무기를 준비하는 데 만전을 기해 보라"(3절). 애굽은 기병전에 능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 기병이여 말에 안장을 지워 타며 투구를 쓰고 나서며 창을 갈며 갑옷을 입으라(4절). 하나님께서는 이 토벌을 나일강의 범람에 비교하신다(7,8절). 저 나일의 창일함과 강물의 흉용함 같은 자 누구뇨, 애굽이 나일의 창일함과 강물의 흉용함 같도다. "그 세력이 모든 인접국가들을 위협하며 두려움에 떨게 하는도다." 애굽인들이 일으킨 군대는 진정 무적의 군대였다. 선지자는 그들을 선동하여 부추킨다. 말들아 달리라 병거들아 급히 동하라(9절) 또한 그들의 동맹국들 역시 함께 나오라고 도전한다. 구스인과 붓인과 활을 당기는 루딤인이여 나올지니라. 구스인들은 애굽인들과 같은 조상의 후손이었다(창 10:6). 또한 애굽인들은 애굽 서편 아프리카에 위치하고 있는 동맹국들인 붓인과 루딤인들을 그들의 보조 군대로 삼았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헛된 것이었다. 그들은 수치스럽게 패배할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적하여 치실 것이기 때문이다(잠 21:30,31).

(2)애굽인들은 이 토벌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데 대하여 책망을 받는다. 그들은 자기들이 생각을 알았고 하나님도 그들의 생각을 아셨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께서 '곡식단을 타작마당에 모음같이' 그들을 모으신 뜻을 알지 못하였다(미 4:11,12). 애굽은 "내가 일어나 땅을 덮겠고 나른 막을 자가 아무도 없으리라. 나의 가는 길에 어느 성이 가로놓여 있든지 내가 그 성을 멸할 것이라"고 말한다(8절). 또 모세를 추격하던 바로 왕처럼'내가 추력하여 그들을 따라 잡으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날이 자신의 날이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그 날은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대적에게 원수갚는 보수일이라(10절). 그날은 여호와께서 애굽인들을 넘어뜨림으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실 날이다.

(3)애굽인들은 겁을 먹고 도망한 데 대하여 책망 받는다(5,6절). " 내가 그들을 보았도다. 그 들은 모든 막강하고 막대한 준비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갈대아 군대와 대면하자 낙담하여 도망가며 마음이 동요하여 정신이 하나도 없었도다." 자기의 위치를 사수할 자들이라고 생각되던 용사들까지도 살기에 급급하여 한 사람도 남김없이 혼란 속에서 도주하였다. 그들은 뒤돌아볼 시간도 그럴 마음도 없었다. 왜냐하면 '두려움이 그들의 사방에 있었기'때문이었다. 그들에게 피할 길이 없었다. 그들은 도주하다 '넘어질 것이며' 그들의 적국인 '북방을 향햐여 넘어질 것이다.' 곧 그들은 너무나 당황하여 고국으로 도주하지 못하고 엉겁결에 적진을 향해 나아갔던 것이다.

(4)애굽인들은 그들이 입은 타격을 복구하지 못하는 전적인 무능력에 대하여 책망을 받는다(11,12절). 큰 자만과 긍지를 갖고 살던 처녀인 '애굽의 딸'은 패배로 쓰라린 상처를 입었다. 그리하여 이제 그들은 '길르앗의 유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패배로 잃었던 것을 복구하기 위하여 현자들이 처방해 주는 모든 약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허사이다. 그들은 다시는 이렇게 강력한 군대를 전쟁터에 보낼 수 없게 될 것이다. "너의 영광과 힘을 인정하던 '열국이 너의 수치에 대하여 듣게 되리라.'얼마나 수치스럽게 너희가 패배하였으며 그 전쟁의 타격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그들이 듣게 되리라." 네 부르짖음은 땅에 가득하였나니(12절). 이는 그들이 참으로 큰 혼란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Ⅱ. 애굽의 멸망에 대한 예언〔2〕46:13-28

1.느부갓네살의 침략에 관한 경고(13-26)

본장 전반부에 기록된 예언이 성취되었으므로 이제 애굽인들은 다른 국가들에 대하여 어떤 시도도 도모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은 자기 나라를 보존할 여력이 있었으므로 인접 국가들이 감히 그들을 넘보지 못하였다. 본문의 예언의 범위는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속히 와서 애굽 땅을 치리라'는 것이다(13절). 이 일 또한 이전과 마찬가지로 느부갓네살와의 손에 의하여 성취되었는데 그것은 여러 해 후에 이루어졌다.

(1)전쟁 경보가 애굽에 울려 퍼졌다(14절). 적들이 가까이 이르렀다. 그리고 인접인들이 적들을 방어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이 예언은 애굽의 전 지역 특히 '믹돌과 놉과 다바네스'에 전파되었다. 왜냐하면 특히 이 지역에 유대의 난민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정착해 있었기 때문이다(44절). 이것은 이들 유대인 들에게 애굽이란 곳이 그들에게는 여느 곳이나 다름없이 안심할 수 없는 피난처임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2)본문에는 애굽인들이 돈을 주고 고용한 외국인 군대들이 퇴각하리라고 예언되어 있다 상당수의 이 군대들이 애굽을 방어하기 위하여 변방을 지키고 있었지만 그들은 거기에서 침략자들에게 격퇴당하여 도주하였다. 너희 장사들이 쓰러짐은 어찜이뇨 그들이 서지 못함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몰아내신 연고니라(15절,참조. 잠 28:3) 그러므로 그들 중의 아무도 자기 위치를 지켜낼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갈대아인들을 통하여 그들은 몰아 내신다. 그가 많은 자로 넘어지게 하시매 사람이 사람위에 엎드러지며(16절). 그들 각 사람의 칼은 그의 동료를 치게 될 것이다. 또한 '애굽의 고용군' 즉 애굽이 자신을 위하여 사들인 군대는 '외양간의 송아지 같아서' 자기 욕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들은 잘 훈련되어 있었으므로 적들을 대적하여 자기 맡은 바를 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싸우는 대신 '돌이켜 함께 도망하였다.' 그들은 모두 자기의 고국을 향하여 발길을 옮겼다(16절). 그들은 "일어나라 우리가 우리 민족에게로 돌아가자. 닥치는대로 도륙해 버리는 갈대아인들의 '무서운 칼을 피하여' 거기서 편안히 살자"고 말하였다. 위급할 때에는 돈으로 고용된 용병을 신임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바로를 원망하였다. 그들은 바로가 서툴게 군대를 통솔했기 때문에 패배한 것이라고 하였다. 바로는 용병들을 전선에 배치하면서 위급한 시기가 오면 자기가 정예부대를 직접 인솔하여 그들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실망시켰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 위치를 버리고 '애굽왕 바로가 망하였도다. 그가 시기를 잃었도다' 라고 외치며 달아났던 것이다(17절).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3)갈대아 군대의 막강한 세력이 그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고 표현되어 있다. 만군의 여호와라 일켣는 왕이 가라사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그가 과연 산들 중의 다볼같이 해변의 갈멜같이 오리라(18절). "바벨론 왕과 그의 군대가 정복하리라. 그들의 군대가 벌목하는 자같이 도끼를 가지고 올 것임니라(22절). 그러므로 애굽은 산림이 벌목하는 자의 도끼에 벌목당하여 쓰러지듯 더 이상 그들에게 저항치 못하고 쓰러질 것이다.

(4)애굽의 황폐 곧 그 비옥하던 나라가 황무하리라고 예언되어 있다. "지금 '애굽은 아름다운 암송아지 같아서'(20절) 살이 찌고 윤기가 흐르며 굴종스런 멍에에 익숙하지 아니하도다." 이렇듯 애굽은, 영양분이 있는 것을 잔뜩 먹은 살찐 송아지처럼 방종하였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그들이 숭배하는 소의 신 아피스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들로부터 이스라엘 자손들이 금송아지 숭배를 배웠던 것이다. 애굽은 여신처럼 아름다웠다. 그럴지라도 '북에서부터 멸망이 이르렀고 이르렀느니라'(20절). 과연 갈대아 군사들이 와서 '아름다운 암송아지'를 죽이고 난도질 할 것이다. 그리하여 '딸 애굽은 수치를 당할 것이요'(24절). 놀라 어쩔 줄을 몰라할 것이다. 애굽의 소리가 뱀의 소리 같으리니(22절) 즉 그들의 소리가 기어들어가는 소리 비굴한 소리가 될 것이다. 그들은 정복자들에게 잔인하다고 큰 소리로 불평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가난한 자처럼 공손하게 탄원하며 살려달라고 애걸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적국에 포로로 사로잡혀 갈 것이다(19절). "애굽에서 평안하게 멋을 부리며 '살던 애굽의 딸들아 너희는 포로로 사로잡혀 갈 준비를 하라'. 적으로 하여금 너희를 벌거벗기고 싶은 충동이 들게할 사치한 옷 대신에 소박하고 따뜻한 옷을 입도록 하라. 고난을 잘 견딜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련시켜라." 애굽인들은 달아날 준비를 해야 했다. 그들의 성읍들이 유린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놉이 황무하여' 거민이 없을 것이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이 살던 곳이라 불리우던 곳이 벌을 받아 거민이 없으리라'(나3:8). 그들이 서로 손을 붙잡고 도망하려 하지만 피하지 못할 것이요 무리들 가운데서 벗어나리라 생가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바로도 넘어질 것이요 '그를 의지하던 자들 역시' 모두 넘어질 것이다(25절). 특히 하나님보다 바로를 신뢰하여 바로가 다스리는 나라로 온 유대인들이 넘어질 것이다. 이들 모두가 '북방 백성의 손에 붙임을 입으리로다'(24절).

(5)시간이 경과하면 애굽이 다시 회복되리라는 암시가 주어진다(26절). 그 후에는 그 땅이 여전히 사람 살 곳이 되리라.

2. 이스라엘의 평안(27,28)

본문에는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위안과 평안이 기록되어 있다(27,28절) 이 말씀은 바벨론에 있는 포로들에게 주어진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위하여 자비를 예비해 놓으셨으며 더 나아가 하나님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베풀 자비를 예비해 놓고 계신다. 이는 가장 어려운 시기, 곧 하나님의 심판이 열국을 향하실 때 그들로 용기를 얻게 하기 위함이다. 땅에 있는 악인들은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 종 야곱아 두려워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27절)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28절에서 또다시 '야곱아 두려워 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나약한 백성으로 있도록 내버려두시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비록 멀리 있을지라도 찾아내어 모아질 것이다. 악인은 쉼이 없이 요동하는 바다와 같이 될 것이며 궁지에 몰릴 때 추격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품을 고향으로 삼는 야곱은 평안히 쉴 것이며 누구도 그를 두렵게 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두려움이 그를 엄습할지라도 그라 하나님을 의지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민족이라도 오래 존속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적 이스라엘인 복음의 교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세상끝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예레미야 47장

 

 

Ⅰ. 블레셋의 운명 47:1-7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애굽인들은 위선적인 친구 노릇을 하며 해를 끼쳐 왔었다. 마찬가지로 블레셋도 이스라엘의 숙적이었다. 또한 이스라엘에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블레셋은 그 위험에 있어서 애굽보다 더 하였다. 그들은 다윗 시대에는 무력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이 그들을 인접 국가들과 함께 멸하기까지 그들은 다시 기세가 등등해졌던 듯하다. 여기에 블레셋의 멸망이 예언되어 있다. 이 예언이 주어진 시기는 바로가 가사를 치기 이전이다. 애굽 왕이 가사를 친 때가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여호와의 이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한 것은 블레셋이 어떤 적으로부터도 위협을 받지 않던 강성한 때였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들의 파멸을 예언하였다. 그 예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갈대아 군대가 그들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물이 북방에서 일어나(2절). "북방의 차가운 기후에서 발행한 무서운 폭풍우가 닥쳐 오리라. 곧 갈대아 군대가 홍수처럼 그들의 땅에 밀려오리라."

(2)이 침략으로 블레셋인들은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그 놀라움이 극심하여 그들은 달아날 기력도 없을 것이다. 그 땅 모든 거민이 애곡할 것이라. 그러므로 각처에서 오직 통곡소리만이 메아리칠 것이다. 죽이고 살해하는 일이 있기 전에 '굽 치는 소리와 달리는 병거 바퀴의 울리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 놀람이 하도 커서 부모가 자녀들에 대한 본능적인 애정까지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부모가 그 자녀를' 안전케 하기위해 '돌아보지 못하리라.'

(3)블레셋 땅이 약탈을 당하여 황폐하게 될 것이다(4절). 두로와 시돈은 강하고 부유한 도시 국가들이었다. 그들은 블레셋이 궁지에 몰릴 때 블레셋을 돕곤 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도 공동의 파멸에 봉착하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의 남아있는 조력자들까지도 다 끓어버리실 것이다. '갑돌섬에 남아있는 자들'이 누구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갑도림족은 블레셋인과 가까운 친족이었다(창 10:14). 이들은 아마 조국이 망하자 그 친족인 블레셋인들과 함께 정착했던 것 같다. 본문에는 몇몇 특정 지역의 명칭이 나타나 있다. 그곳은 '가사'와 '아스글론'이다(5절). '이들 지역이 삭발을 당하리라.' 침략자들이 그들에게서 모든 귀한 것들을 빼앗아갈 것이며 그들을 칼로 칠 것이다. 선지자는 평소의 부드러운 어조로 먼저 그들에게 묻는다(5절). "네가 극도의 노여움과 슬픔에 잠긴 사람이 하듯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여기서 선지자는 결과로부터 원인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스스로를 베는 것'은 여호와의 검이 그들을 베는 것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6절). 그는 여호와의 칼리 칼집에 꽂히기를 간청한다. 이것은 전쟁이 종식되기를 바라는 선지자의 간절한 염원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그들이 비록 블레셋인 들이라 할지라도 연민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선지자는 불평을 삼간다(7절). 여호와께서 이를 명하셨은즉 어떻게 쉬겠느냐. 일단 칼이 뽑히면 그 목적이 이루기 전에는 그것이 결코 칼집에 꽂히지 아니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듯 그의 막대기와 검도 하나님이 보내신 바 목적을 이루고야 말 것이다.

예레미야 48장/메튜헨리 주석

 

 

Ⅰ. 모압의 멸망에 대한 예언 48:1-13

(1)모압을 멸망시킨 주권자는 '만군의 여호와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1절). 그는 여기에서 이스라엘을 민족을 항상 괴롭혀 온 백성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간청을 들으시고 모압이 옛 이스라엘에게 행한 불의에 대하여 처벌하고자 하신다.

(2)'파멸하는 자가 각 성에 이를 것'이다(8절.) 그들은 '추격하는' 칼을 가지고 올 것이다(2절)."내가 모압에게 방랑자들에게 보낼 것이라(12절, 한글 개역에는 '그 그릇을 기울일 자'로 되어있음-역주). 그들은 집시처럼 찾아 올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모압으로 하여금 유랑하게 하리라." 그들은 모압을 모해한다. 그들이 목적하는 바는 바로 모압의 멸망이다. 와서 그를 끓어서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하자(2절).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략자들에게 모압을 철저히 유린할 것을 요구한다(10절).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이것은 하나님을 위한 사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원칙이다. 즉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 또는 게을리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3)모압의 성읍들은 황폐할 것이다. 그것들은 노략질 당할 것이며(1절), 끊어지고(2절), 황무하여져서(9절) 거하는 주민이 없어질 것이다. 촌락도 폐허가 될 것이며 '골짜기는 훼파되고 평원은 파멸될 것이다'(8절). 평원을 뒤덮으며 골짜기를 기쁨에 충만케 하던 곡식과 양떼들도 모두 먹히우고 짓밟히며 약탈될 것이다. '제사장들과 방백들이 함께 포로되어 갈 것이다'(7절). 그들이 섬기던 신 신 그모스 또한 멸하여질 것이다. 그의 신전들은 재가 될 것이며 그의 신상들은 다른 전리품들과 함께 노략질당할 것이다 그 결과로 큰 수치와 혼란이 닥칠 것이다. 기랴다임이 수치를 당하여 점령되었고 미스갑이 수치를 당하여 파괴되었으니(1절). "헤스본에 대한 모압의 칭송이 없어졌도다"(2절은 이렇게 읽어야 옳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신들에 대해서 더 이상 자랑하지 못할것이다(13절). 그들은 '그모스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인 바 이스라엘 집이 베델을 의뢰하므로 수치를 당한 것같이' 당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벧엘은 금송아지를 세웠으나 그 금송아지는 그들을 앗수르인들의 손에서 구해줄 수 없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모스도 갈대아인들로부터 모압 족속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언덕에 올라가 보아도 골짜기로 내려가 보아도 어디에나 울음바다일 것이다(본문에는 '울고 울며'라고 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눈물에 젖어 있어 눈물 없는 눈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 부르짖을 것이다.

"어서어서 서둘러 도망하여 네 생명을 구원하라(6절). 전력을 다해 달려서 너의 안전을 도모하라. 비록 네가 '광야의 떨기나무'나 귀뚜라미처럼 또는 말라 비틀어진 관목처럼 맨발로 달아나는 형편이라도 생명의 안전만을 꾀하라. 너희는 오히려 불모의 광야에서 안식처를 구하라. 위험은 갑자기 신속하게 닥칠 것이라." 그러므로 다음의 권고가 주어진다. 모압에 날개를 주어 날아 피하게 하라(9절).

 

(4)하나님이 이제 모압을 심판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제까지 태평 무사하여 그들의 부와 힘만을, 곧 그들의 '공작과 보물을 의뢰'하였기 때문이(7절). 그들은 오직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였다(시52:7). 그들은 오랫 동안 침략 당한 적이 없었다. 모압은 예로부터 평안하고(11절). 모압은 이스라엘이 있기 전부터 존재해 온 오래된 나라였고 비록 작은 나라일지언정 태평 성대를 누려 왔다. 모압이 동요된 적은 없었고 포로로 잡혀간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압은 우상을 숭배하는 사악한 민족이요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자를' 치려고 공모하는 자들 가운데 하나였다(시 83:3, 6).그들은 오랫 동안 부패해 있었고 돌이켜 본 적도 없었다. 모압은 그 찌끼와 함께 그대로 보존된 포도주와 같았다(11절). 그는 평안을 누리며 번영에 도취해 있었다.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치 아니하였도다. 즉 그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악하였다.

 

Ⅱ. 멸망의 원인 48:14-47

여기에는 모압의 파멸이 보다 광범위하게 감동적인 언어로 예언되고 있다. 이 예언이 목적하는 바는 그들을 각성케 하여 개인적인 회개를 일으켜 거족적인 회개를 통하여 고난을 방지케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 이 예언은 인간 생활의 비참한 상태와 패역한 민족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힘을 깨우쳐 주고 있다.

(1)본문에 경고되어 있는 파멸은 급작스럽고 놀라운 것이다. 그들은 아무리 강력한 적일지라도 싸워 물리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전쟁에 대하여 막강하게 대비되어 있다고 여겼다(14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이 이르렀을 때 모압은 그 재난을 격퇴할 수 없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그가 독수리같이 날아와서 모압 위에 그 날개를 펴리라(40절). 즉 원수의 군대가 모압을 치고자 모압에 진을 칠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도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모압의 요새들은 겁결에 점령될 것이며(41절). 그로 말미암아 모두 낙담하여 넘어지게 될 것이다. 이 갑작스런 두려움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려면 범상치 않은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2)모압에 내린 파멸은 철저한 파멸이다. 모압이 황폐되었도다(15절). 모압이 패하여 수치를 받나니(20절). 이제 모압은 국가로서의 위엄과 권위를 상실하였다. 모압의 뿔이 찍혔고(25절). 즉 공격과 방어에 있어서 힘과 위력을 자랑하던 뿔이 꺾인 것이다. '모압의 군대는 패하여' 다른 나라를 공격할 수고, 자기에게 닥치는 공격을 막을 수도 없게 되었다(25절). 모압의 젊은이들이 전쟁에 나가 승리를 얻고 돌아오자고 스스로 다짐하였으나 하나님은 그들이 내려가서 '살육을 당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원수된 자들은 빠른 시일에, 또한 철저하게 멸하여질 것이다.

 

(3)파멸은 애통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기쁨을 무거운 슬픔으로 변하게 할 것이다. 선지자도 이 파멸 때문에 애곡한다. 내가 모압을 위하여 울며(31절). 또한 그가 십마의 포도나무를 위하여 곡할 것이며(32절). 그의 마음은 모압을 위하여 피리같이 소리할 것이다(36절). 죄인들의 파멸이 하나님께 기쁨이 될 리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것을 안타깝게 여겨야 한다. 이 장의 다른 말씀들처럼 본문의 말씀은 이사야의 모압에 대한 예언과 상당히 일치되고 있다(사 15:16). 이사야의 예과 예레미야의 예언은 양자 사이에 상당한 시대적 격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한분 같은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모압은 스스로의 파멸로 곡하게 될 것이다. '영광 가운데', 부와 쾌가 가운데 앉았던 자들이 '메마른', 곧 물로 위로도 없는 메마른 땅에 '목마른 채 앉아 있게 될 것이다.'(18절) 지방의 가장 외진 곳에 있는 모압인들은 도망치는 사람들에게 '일이 어찌되었는가'(19절).라고 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통한에 잠겨 울며 부르짖을 것이다(20절). 그들은 성읍을 떠나 바위 사이에 거하며 거기에서 울음에 잠겨 지낼 것이. 그들은 '비둘기처럼'(25절). 곧 '골짜기 비둘기처럼'(겔 7:16) 더 이상 노래하는 새가 아니라 우는 새가 될 것이다. 모압이 기뻐하던 것은 달콤한 과실들과 풍부한 포도주였다. 곧 이러한 관능적인 기쁨이 그들의 기쁨의 전부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소산물을 빼앗기고 그들의 정원과 포도원이 파과당함으로써 '그들의 모든 쾌락도 끝이 났다'(호 2:11,12). 기쁨과 즐거움이 옥토와 모압 땅에서 빼앗겼다(33절) 관능의 기쁨은 쉽게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기쁨을 자기의 주된 기쁨으로 삼는 자들은 가장 큰 슬픔이라는 폭군에게 자기를 예속시키는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으로 즐거움을 삼는 자들은 '비록 무화과 나무에 꽃이 피지 않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더라도' 기쁨을 잃지 아니한다. 모압의 모든 인접 국가들은 모압과 함께 애곡하며 파멸당할 모압을 위로하도록 요청받는다(17절). 그의 사면에 있는 모든 자여.... 그를 위하여 탄식하여. 어떤 민족도 자신의 강함이나 아름다움을 자랑하거나 신뢰해서는 안된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어떠한 안전함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4)이 파멸은 수치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로 인하여 그들은 경멸당하게 될 것이다. 모압으로 취하게 할지어다(26절).

(5)이 파멸은 모압인들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위에 임할 것이다. 그들의 여름 실과와 포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재물도 소실될 것이다(36절). 그 모았던 재물이 없어졌음이니라. 재물이란 우리가 제 아무리 그것들을 주의깊게 손아귀에 쥐고 있어도 먼지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나쁜 것은 신앙이 잘못된 자들이 무엇보다도 재물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본래 재물이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위험물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모압 산당에서 분향하는 자를 그치게 하실 것이다'(35절). 제사 드리던 언덕들이 파괴되겠고 제물을 소출해내는 밭들이 황폐해질 것이다. 또한 '그 신들에게 분향하는' 제사장들은 살해당하거나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이다.

(6)이 파멸은 받아 마땅한 것이었으며 죄로 인하여 자초된 것이다.

1)그들이 지은 가장 악한 죄는 교만이었다. 이 사실은 여섯 번이나 지적되어 있다(29절).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 있는 것이 훨씬 더 광범위한 것이다. 모압의 교만에 관한 두 가지 실례가 본문에 나온다.

①모압은 하나님을 향하여 무례하게 행하였다. 모압은 '여호와를 거스려 자만하였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해 마땅하였다(26절). 모압 족속은 여호와보다 그모스를 더 좋아하였다. 그리고 그모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겨룰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②모압 족속은 이스라엘이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이스라엘을 경멸하는 행위를 하였다. 그러므로 모압이 같은 곤경에 빠지며 같은 조소거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네가 이스라엘을 조롱하지 아니하였느냐(27절). 이렇듯 모압 족속은 그들의 즐거움을 공공연히 선포하였으며, 곤경에 처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의기양양해 하며 그들을 비웃었던 것이다.

2) 이 죄들 이외에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여 악행한 죄와 그들과의 거래에서 속이는 죄를 범하였다(30절). 그들이 망했다고 기뻐하며 말하던 그 나라가 다시 일어날 것이다. 44절은 죄인들이 일반적으로 당할 운명에 대한 말씀이다(참조.사 24:17,18) 두려움에서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떨어지겠고 함정에서 나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그러나 여기서 이 말은 특히 모압의 죄인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또한 이 상징적인 표현이 45절에서 다음과 같은 실제로 적용되어 있다. 즉 적의 군대가 무서워서 마을을 벗어나 도망하던 자들이 '헤스본 그늘 아래'서서 이제 안전하겠지 하고 생각하지만(이는 오늘날에 때로 군대가 후퇴하여 대포로 장비된 요새로 몸을 피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결국 헤스본에서도 낙담하게 된다. 왜냐하면 '함정에서 나오는 자가 올무에 거리듯이' 그들이 안식처라고 여겼던 헤스본이 전에 모세가 예언했던 것처럼 그들을 삼켰기 때문이다(민 21:28). 이장을 그들이 '만일에 포로에서' 돌아오게 되리라는 짤막한 약속으로 결론지어져 있다. 그들을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하나님께서 '모압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47절).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 이상으로 모압 족속들을 다정하게 대하신다. 비록 모압 족속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다투지 않으시며 항상 노하지 아니 하신다.' 모압에 관한 이 긴 예언은 여기에서 끝이 맺어지며 그것은 위로로 끝난다. 모압을 심판하는 말씀이 이에 그쳤느니라.

 

예레미야 49장

 

 

Ⅰ. 암몬에 대한 심판 49:1-6

이어서 모압과 같은 혈통이며 그 인접 국가인 암몬 자손에 관한 예언이 나와 있다. (1)하나님의 이름으로 암몬 자손에 관한 한 소송이 본문에 제기되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들에 인접되어 있는 땅인 갓 지파의 유업을 불법으로 소유한 것에 대한 고소이다(1절). 앗수르왕이 길르앗 자손들을 사로잡아 가자 이 땅은 거의 백성들의 남아있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다음 침략자에게 손쉬운 먹이가 되고 만 것이다. "유산을 마땅히 물려받아야 할 갓 자손이 없었단 말이냐? 설령 없었다 하더라도 너희보다 더 가까운 친족인 이스라엘 자손이나 유다인의 남은 자들이 없었단 말이냐? 어찌하여 너희의 왕이 버려진 재산의 상속자인 것처럼 행새하느냐? 또한 너희의 우상인 말감이 이 땅을 자기의 숭배자들에게 처분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갓을 점령하며',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 중 그 지파에게 주어져야 할 성읍들에 거함은 어찜이뇨?" '그들이 스스로 커서 그 경계를 침범하고'(습 2:8) 그 땅이 자기의 것이라고 자랑하였다. 자기가 손을 대는 것은 무엇이든지 자기의 것이 될 줄로 생각하는 자들은 자신이 큰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재산은 그 소유자가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 그가 죽으면 당연히 상속자가 물려받아야 하는 것이다. 상속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잘 모른다 해서 또는 어떻게 유산을 상속받는지를 모른다고 해서 횡령하는 것은 큰 죄이다.

(2)이 횡포에 대한 심판이 암몬 자손에게 내려진다. 하나님께서 '전쟁 소리로' 암몬인들의 수도이며 매우 강한 요새인 '랍바에 들리게 할 것이다'(2절). 그들의 성들은 파멸에 처하게 될 것이다 . 그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마을들이 황무할 것이다.(4절)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돌아선 데 대하여 문책을 받는다. 그들은 의인 롯의 후예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었고 완고하였도다."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을 버렸고 그리하여 '그들의 골짜기를 자랑하였다'. 그들은 이 골짜기를 폭력으로 이스라엘에게서 탈취하였다. 그들은 접근하기 어렵도록 산들로 둘러싸인 그들의 난공 불락의 골짜기를 자랑하였고 그 소출들을 자랑하였다. 그들은 그 땅이 주는 즐거움이 결코 방해받지 아니하리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속였다. 그들은 '내일도 오늘과 같이 무사 하리라'고 말하였다. 이같이 그들은 하나님과 그의 심판을 무시하였다. '그들의 왕과 방백들이' 그리고 그들의 신 말감과 '그의 제사장들이 다 사로잡혀 갈 것이다'(3절). '각 사람이 쫓겨서 바로나갈 것이요' 전력을 다해 도주할 것이다(5절). 또한 '도망하는 자들을 모을 자도 없을 것이며,' 그들을 맞기 위해 문을 열어 줄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암몬 자손의 땅은 남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중에 넘겨지게 될 거이다(2절).

(3)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에 모압에게 그랬던것처럼 이들에게도 긍휼을 베풀어 주시겠다는 약속이 주어진다(6절).

 

Ⅱ. 에돔에 대한 심판 49:7-22

다음으로 에돔 자손들이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그들의 운명에 대한 선고를 받는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의 숙적이었다. '에돔에 관한' 이 예언에 사용되어 있는 말씀 중에는 많은 것이 '에돔에 관한' 오바댜의 예언에서 유래하고 있다. 그 이유는 모든 선지자들이 한분 같은 성령에 의하여 영감을 받기 때문이다.

(1)에돔 나라가 황무하게 되겠고 폐허가 될 것이다.

에서의 재난을 그에게 임하게 하여(8절). 이는 에돔의 옛 죄 때문에 받아야 하는 재난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방문하시어 송사하실 때가 이르렀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은 칼을 피하여 도망하며, 전쟁에서 달아나며 은폐된 굴에 은거하여 몸을 숨기게 될 것이다. 그들이 가졌던 모든 것은 정복자들이 약탈해 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파괴하는 자들은 만족을 모를 것이다(9,10절) 에서로 적신이 되게 하여. 약탈자들은 에돔 자손에게서 그 가진 바 전부를 벗겨 갈 것이다. 그의 형제 모압 자손도 그의 이웃인 블레셋도 에돔처럼 노략을 당하여 에돔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으며 피신처조차도 주지 못할 것이다. 네 고아들을 남겨 두라 내가 그들을 살려 두리라 네 과부들은 나를 의지할것이니라(11절). 갈대아인들은 하나님의 이 말씀이 그이 백성에게 이루어지게 하였다. 즉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재난을 당한 에돔 자손과 구분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을 다음과 같은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너 이스라엘 집이여 ! 너희 고아들을 너희가 아주 잃어버리지 않으리니 내가 그들을 보호하고 너희 과들이나 나를 의지할 것이니라. 에돔 자손들의 과부들이나 고아들이야 어찌 되든 내가 너희 이스라엘 과부와 고아들을 돌아보리라." 에돔 족속은 힘있는 자의 행세를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열방 중에서 작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같이 하나님의 백성을 멸시하는 자들은 오히려 사람들 가운데서도 멸시를 당하게 된다(15절;옵1:2) '에돔이 이같이 황폐하므로' 경계의 대상이 될 것이며 '기거하는 사람도 없게' 될 것이다(18절).

(2)에돔을 파멸시킬 도구는 매우 가혹하고 막강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에돔이 황페하게 되도록 정하셨다. 또한 그는 에돔을 황폐케 할 자를 속히 오게 하셨으며 강력하게 힘을 더해 주셨다. 본문에서 예언되고 있는 도구는 바로 느부갓네살 이었다. 그는 '사자처럼' 성난 모습으로 미친 듯이 쳐들어 올 것이다. 즉 요단강 물이 범람하여 물가의 거처를 좀 더 높은 데로 옮길 수 밖에 없게 된 성난 사자처럼 그렇게 닥칠 것이다(19절).양떼의 어린 것들을 그들이 반드시 끌어가고(20절). 즉 느부갓네살의 수행원 가운데 가장 비천한 종마저도 그들을 굴복시켜 갈 것이다. 느부갓네살이 백수의 왕인 사자처럼 닥칠 뿐만 아니라 조류의 제왕인 독수리같이 임할 것이다(22절). 그는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독수리처럼' 그렇게 빠르고 힘차게 들이닥칠 것이다. 그리하여 용사일지라도 상대방이 도저히 싸워 이길 수 없는 적수임을 알고 낙담케 될 것이다.

(3)에돔 자손들이 믿던 것은 그들이 고통을 겪는 날에는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다.

1)그들은 자기의 지혜를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을 수호해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바로 이것이 에돔이 침략을 당하는 예언에서 그 첫째 대상으로 등장한다(7절). 그들 국가는 지혜로 명성을 떨치곤 했다. 그리고 그들의 정치가들은 정치에 뛰어난 것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

런데 그렇게 뛰어난 그들이 그 모든 경영에 있어서 잘못을 저지름으로써 그들의 모든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에돔 자손이 어찌된 일인가?"라고 물을 것이다. 데만에 다시는 지혜가 없게 되었느냐(7절). 하나님께서 한 백성을 멸하고자 하시면 인간의 모든 지혜는 이렇게 허사가 되고 만다. 하나님은 멸하고자 하는 자의 얼을 빼놓신다.(참조. 욥 12:20). '그들의 지혜가 없게 되었느냐.' 이 말씀에 대해 어떤 이는 "다 소진되고 말았는가?"라고 해석하며 "지혜가 쓸모없이 되었는가?"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2)그들은 자기의 힘을 믿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들에게 아무 도움이 도지 못하였다(16절). 과거에 그들은 인접한 모든 국가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웃 국가 중 누구도 감히 그들과 분쟁을 일으키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세계에서 자기를 당할 나라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의 국토는 험한 산악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많은 통로를 가지고 있어 그들은 침략자를 방어하기에 더 없이 좋다고 생각하였다(참조. 옵 1:3,4,8장).

(4)그들의 파멸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1)그들의 파멸의 결정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12절) 그는 그것을 맹세하셨다(13절). 그들은 '두려움의 잔을 마셔야 한다.' 이 잔은 모든 인접국가에게도 주어진 것이었다.

2)온 세상이 그들의 파멸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21절). 그 넘어지는 소리에 땅이 진동하며 또한 열국이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 부르짖는 소리는' 에돔의 해안을 따라 '홍해에 들릴 것이다.' 또한 그 소리는 홍해에 정박 중인 선박들에게도 들릴 것이다(왕상 9:26).

 

Ⅲ . 다메섹에 대한 심판 49:23-27

가나안 북박에 위치한 수리아 왕국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종종 괴롭히고 하였다.

다른 두 도시 하맛과 아르밧도 지명되어 있다. 또한 벤하닷이 세운 그의 궁전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이 27절에 기록되어 있다(참조 암 1:4). 다메섹의 심판은 두려움과 절망을 몰고오며 시작된다. 그들은 '흉한 소문을 듣는다.' 즉 바벨론 왕이 그의 온군대를 끌고 그들을 향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었다. 그들은 이 소식에 당황한다. 그들은 마음이 녹아내리며 낙담에 빠진다. 그들은 '쉼 없이 요동하는 바다와 같이 되었으며'(시 107:20), 바다 가운데서 폭풍을 만난 사람들처럼 두려움에 빠진다(시 109:26). 또한 성 안에서 시작된 슬픔이 바닷가까지 퍼진다(23절). 다메섹이 피곤하여(24절). 해산하는 여인이 닥친 산고와 씨름하는 것이 무익하듯이 그들도 자기에게 닥친 운명과 싸우는 것이 무익하다고 생각한다. 다메섹은 '찬송의 성읍' 이었다(25절). 그러나 하나님을 찬송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메섹은 스스로를 찬양하였으며 그곳을 방문하는 나그네들에게 그 영화로움을 자랑했던 것이다. 다메섹은 또한 '기쁨의 성읍'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성이 슬픔과 두려움으로 압도 당하고 있다. 그 성은 무서운 몰락과 화염 속에서 종말을 고한다. 그 주민들은 살해당할 것이다(26절). 성을 방어해야 할 젊은이들이 자기가 살던 거리에서 칼에 쓰러질 것이다. '성이 재 가운데 누울것이다(27절). 성을 포위한 자들이 놓은 불이 성벽에 붙고 그 불이 벤하닷 궁전을 삼킬 것이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치려는 많은 음모가 획책되었다.

 

Ⅳ. 게달에 대한 심판 49:28-33

본문은 느부갓네살과 그의 군대가 게달 백성과(게달은 이스마엘의 아들 게달의 후손이며 아라비아의 바위투성이의 땅에 거하였다) 하솔의 거민을 멸하리라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다. 하솔은 그 주민의 대부분이 가나안 자손들로 이루어진 나라로서 가나안 북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왕은 야빈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에서 쫓겨난 아라비아 사막에 정착하였다. 그들은 '장막'에 거하였는데 그 장막은 벽 아닌 '휘장'으로 만들어져 있었다(29절).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요새화된 성도 없었고 '성문이나 문빗장도 없었다'(31절). 그들은 유목민이었고 따라서 보물도 없었다. 그들은 돈도 없었으며 다만 양떼와 약대만이 있었다. 그들은 침략자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홀로 거하였기' 때문이다(31절). 그들에게는 군대도 없었다. 그들은 교역도 하지 않고 재물도 없었으나 본문에는 그들이 '평안하고 염려없이 거하는 백성'이라고 일컬어져 있다. 참으로 부유한 사람은 생필품이 넉넉하면 그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왕이나 제후들의 보물이나 상인들의 현금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부유한 국민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들은 '장막에 거하는' 유목민의 생활로 만족하였다. 그곳을 치기로 결정한 바벨론 왕은 많은 난공 불락의 요새를 깨뜨린 그가 '장막에 거하는' 자들을 정복치 않고 그대로 두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독수리가 파리를 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우습잖은 꼴이었다. 이 백성들은 인접 국가들을 괴롭히지 않고 살아 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희는 일어나 게달로 올라가서 동방 자손들을 멸하라'고 말씀하셨다(28절). 하나님께서는 감사할 줄 모르는 이 백성을 바로잡으시고자 그렇게 명하신 것이다. 갈대아인들의 침략으로 그들은 놀라고 대대적인 파괴가 그들 가운데 행하여진다. 너희는…그들을 향하여 외치기를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 할지니라(29절). 변방에서 거하던 자들이 전국 각처로 그 경고를 전달할 것이다. 이 경고로 대혼란이 야기된다. 하솔 거민들은 "두려움이 사방에 있도다. 우리가 적에게 포위되었도다"라고 외치며 아무도 적에게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29절).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는 말이 사방으로 적에게 포위되어 있을 때처럼 실감있게 들리는 적도 없을 것이다. 갈대아인들은 그들의 휘장과 모든 기구를 취하여 갈 것이다. 그것들이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갈대아인들은 노략질을 위한 노략질을 할 것이다. 너희는 그 장막과 약대를 취하며(29절). 약대는 다만 장화를 만드는 데 소용이 될 뿐이나 그들은 그것을 탈취할 것이다(32). 그들 중 살래된 자가 있다는 말은 본문에 없다. 이는 그들이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살려 주는 보상으로 장막과 양떼를 갈대아인들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흩어져 각처에 거하게 될 것이다. 그들 나라에는 거민이 없어질 것이다. 외지에 있고 또 이방인들을 유혹할 만한 성이나 땅도 없기 때문에 아무도 이 땅에 와서 살고자 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솔은 영원히 황무하게 될 것이다(33절).

 

Ⅴ. 엘람에 대한 심판 49:34-39

이 예언은 시드기야 통치 초기에 선포된 것이다. 엘람 자손이란 셈의 아들 엘람의 후손으로 곧 바사 사람을 가리킨다(창 10:22).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람이 단지 유다에서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바사의 한 지역을 뜻할 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곳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이스라엘을 정복하려고 '전통을 메고' 있었다(사 22:6). 그러므로 그들도 다른 국가들처럼 하나님의 진노의 계수하심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엘람으로 그 원수의 앞 그 생명을 찾는 자의 앞에서 놀라게 할 것이며 내가 재앙 곧 나의 진노를 그 위에 내릴 것이며(37절). 그들의 군대는 무력하게 될 것이다. 엘람 자손들은 궁술로 유명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엘람의 활을 꺾을 것이다'라는 말은(35절) 그들의 궁수들이 전멸되리라는 것, 곧 '엘람의 으뜸가는 힘'이 끝장나리라는 것을 가리킨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장 신임하는 것이 우리를 실망시키도록 일을 정하시며 우리가 으뜸되는 힘으로 삼는 것이 정작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함을 입증시키신다. 엘람 백성들은 각처로 흩어질 것이다. 곧 세계 만방에서 그들을 대적하는 적들이 몰려와서 그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각처로 흩어질 것이다. 곧 세계 만방에서 그들을 대적하는 적들이 몰려와서 그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각처로 끌고 갈 것이다(36절). '사방 바람'이 그들에게 불어올 것이다. 폭풍우가 때로는 이쪽에서 때로는 저쪽에서 불어 닥칠 것이다. 그들의 왕족이 멸망할 것이요 정권이 교체될 것이다(38절). 내가 나의 위를 엘람에 베풀고. 즉 느부갓네살이 엘람의 보좌를 차지하든지 아니면 엘람을 먼저 정복했던 고레스가 그 보좌를 차지할 것이라는 뜻이다. 혹 그것은 하나님께서 엘람에 보좌를 정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뜻일 수도 있다. 엘람 왕은 예전에도 유명했었다(창 14:1). 그돌라 오멜이 바로 엘람의 왕이었고 또한 당대의 용사였다. 짐작컨대 그의 후계자들도 상당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엘람 왕도 하나님앞에서는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엘람의 멸망이 영구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39절). 끝날에 이르러는 내가 엘람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리라.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하고 제국을 다시 바사 사람들의 것으로 복구시켰을 때 틀림없이 엘람 자손들도 개선하여 조국에 다시 정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약속의 완전한 성취는 메시야의 날에야 이루어졌다. 성령께서 임하셨을 때 엘람인들 중 몇 사람은 '하나님의 큰 일이 자기 나라 방법으로' 전파됨을 들었던 것이다(행 2:9,11).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포로들에게 있어서 가장 바람직한 귀환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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