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몇년동안 매년 여름방학이면 성지순례를 다녀 왔다.
주로 이스라엘쪽과 사도바울의 행적을 추적하며.....
그중에서 오늘은 사도 바울과 사도요한이 함께 관련된 에베소의 유적지를 담아보고자 한다.
당시 에베소는 세계 3대 도시 중에 하나였다고 한다....또 바울의 두란노 서원과 당시 세계적인 도서관이 있었다.
나중에 이 도서관의 책들이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도서관으로 옮겨 졌다고 한다.....
*필자는 이곳에 두번 다녀왔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가고 싶은 마음이다.....
*여기에 실은 글과 사진은 필자의 것은 아니지만 잘 소개하고 있기에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옮겨 보았다.
터키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인 에페소스(Ephesus, 에페스) 유적을 돌아보는 중이다.
성모 마리아 교회를 둘러보고 다시 원형극장이 보이는 곳으로 돌아왔다.
발길 닿는 곳 어디나 도시의 건물들을 짐작할 수 있는 석조 자재들이 흩어져 있다.
다시 안내판 하나가 등장한다.
아까 본 항구 목욕장과 대비되는 '극장 목욕장'.
'Gymnasium'이라고 하면 당연히 체육관을 뜻하는 말이지만 로마시대에는 체육시설과 목욕장이 함께 있는 경우가 많아
목욕장이라고도 번역될 수 있겠다.
요새로 치면 초대형 헬스장+목욕탕이라고 할 수 있는 극장 목욕장(체육장) 유적.
무슨 무대 비슷한 것 뒤로는 당시 극장에서 항구까지 일직선으로 뻗어있었던
아르카디아(Arcadia) 거리가 나타난다.
길이 500m, 폭 11m의 이 아르카디아 거리는 도시의 생명선이자 가장 중요한 시설인 항구와 극장을 잇던 도로로
동로마의 아르카디우스 황제(Arcadius, 재위 395~408)가 재건한 까닭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가로등도 있었고,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가족들의 석상도 서 있었단다.
아르카디아 거리 극장 방향.
아르카디아 거리 항구 방향.
저 길 끝에 로마 시대에는 바닷물이 들어왔고, 항구가 있었다.
옛 항구까지 걸어가보고 싶었는데 출입 금지였다.
대신 당시의 에페소스 항구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지금은 한참 내륙이지만 어쨌거나 3세기까지는 수로를 통해 바다와 연결되어 있던 항구였다고 한다.
이제 원형극장을 향해 걸어가는 찰나.
갑자기 요란한 팡파레 소리가 들린다.
뭔가 로마시대 이벤트가 시작되려는 것 같다.
장군과 무희들 등장.
아, 저 무대는 이 이벤트를 위한 장치였구나.
무희들 뒤에 병사들과...
로마 황제-황후 등장.
황제와 황후가 고위 관료들을 거느리고 무대에 앉았다.
주변에는 상인들도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다.
펼쳐질 이벤트는 바로 검투사 경기였다.
검투사 경기를 바라보는 로마 군인들.
경기가 끝나고 검투사에 대한 처분을 내리는 로마 황제.
관광객들에게 인사하며 퇴장하는 황제와 황후.
저 황후는 아무래도 클레오파트라 이미지로 분한 듯.
좀 어설픈 이벤트였지만 그래도 황제의 보랏빛 토가 등 고증은 제법 신경써서 한 것 같다.
로마제국 아시아 속주의 주도 에페소스 거리에서 장사하는 상인들.
어쨌거나 머나먼 동쪽 나라에서 온 이방인을 위해 이런 이벤트를 준비해 준 터키인들에게 감사를. ^^
헬레니즘 시대에 만들어진 분수대.
원형극장으로 들어왔다.
이 거대한 극장은 기원전 3세기 헬레니즘 시대에 지어졌고, 기원후 1세기 로마 시대에
아시아 속주 주도의 격에 걸맞게 크게 증축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지름 154m, 높이 38m의 규모에 수용인원 2만 4천명을 자랑하는 거대한 극장이다.
페르가몬 아크로폴리스의 원형극장처럼 위압적인 느낌은 없지만 어쨌든 거대하다.
지금도 1년에 한 번은 특별공연이 열린다고 하는 에페소스 원형극장.
극장 객석에서 바라보는 아르카디아 거리와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옛 항구.
남쪽에서 바라보는 무대와 객석.
극장 밖에는 복원을 위해 수집된 석재들이 쌓여 있었다.
극장 아래에 남북으로 뻗은 상업지구 아고라.
항구에서 하역된 물건들이 아르카디아 거리를 거쳐 이곳에 실려와 거래되었을 것이다.
극장에서 도서관으로 향하는 대리석 거리.
대리석 거리에서 내려다보는 상업지구 아고라의 폐허.
저 회랑 아래로 수많은 상인과 손님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풍경을 상상해 본다.
켈수스 도서관으로 향하는 대리석 거리.
거리 한켠에는 요런 여인의 모습과 발바닥 모양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바로 유곽을 안내하는 이정표이다.
이 발보다 큰 사람만 출입할 수 있다는, 한 마디로 '미성년자 출입금지' 표지이다.
훨씬 노골적인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의 이정표.
'소위 즐거움의 집'이라는 유적 안내판.
오랫동안 즐거움의 집(뭐지? 유곽?)으로 잘못 알려져 왔으나, 실은 세 개의 개인 주택이었다고 한다.
즐거움의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의 집이었다.
실내였는지 실외 정원이었는지도 짐작이 안 갈 정도의 모습이나
그나마 상당히 복원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이제 에페소스의 가장 대표적 유적인 켈수스(Celsus)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오른편 아래의 복원상상도가 인상적인 켈수스 도서관 안내문.
서기 100년에서 110년 사이에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퀼라(Gaius Julius Aquila)라는 사람이
그의 아버지이자 전직 아시아 속주 총독이었던 원로원 의원,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켈수스(Tiberius Julius Celsus)를 기념하여 건립한 것이다.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로 전성기에는 1만 2천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었다는 이 유명한 도서관은
270년의 지진으로 붕괴된 후 다시는 재건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볼 수 있는 건물은 1970~1978년에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파사드를 자랑하는 켈수스 도서관의 정면 모습.
정면 파사드의 벽감에는 지혜, 덕성, 학문, 지식을 상징하는 네 여인상이 새겨져 있다.
위 사진 왼쪽 여성상 아래의 그리스어를 로마자로 바꾸면 'SOPHIA', 즉 지혜라는 뜻이 된다.
도서관 입구의 기둥과 파사드 사이 회랑 공간.
입구를 통과해 도서관 내부로 들어섰다.
아까 안내판에서 봤던 복원상상도와 겹쳐지는 정면 벽감이 도서관 정면 벽에 만들어져 있다.
이곳의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었을 양피지와 파피루스의 두루마리들을 상상해 본다.
도서관을 정면으로 보고 오른편에는 두 개의 쌍둥이 아치문이 서 있다.
상업 아고라의 남문에 해당하는 마제우스(Mazeus)와 미트리다테스(Mithridates)의 문으로
왕실 노예였던 그들이 해방노예 신분이 되면서 감사의 뜻으로 도시에 기증한 문이라고 한다.
기원전 2세기의 건축물로, 1982~1988년에 걸쳐 복원되었다고 한다.
조각상이 서 있었을 문 안쪽 벽감에는 지금은 관광객들이 그늘을 찾아 쉬고 있다.
에페소스 유적은 나무가 전혀 없어 그늘도 별로 없으므로 땡볕의 여름에는 그늘에서 쉬어 주는 것도 체력 유지를 위해 좋다.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 문에서 바라보는 켈수스 도서관의 아름다운 모습.
문을 통과하면 펼쳐지는 상업 아고라.
터키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인 에페소스(Ephesus, 에페스) 유적을 돌아보는 중이다.
켈수스 도서관 앞에서 바라보는 내가 앞으로 갈 길.
동남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은 쿠레테스(Curetes) 거리이다.
길 위에 바글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2천년 전에도 지금처럼 사람들이 북적거렸을 것이라 상상해 본다.
대리석 거리와 쿠레테스 거리가 만나는 켈수스 도서관 앞에 기둥만 남은 문이 서 있다.
서기 117년에 세워진 하드리아누스(Hadrianus) 문인데, 켈수스 도서관과는 달리 270년의 지진 후에 복구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그리스 아테네에 위 문의 본래 모습을 추정할 수 있게 해 주는 하드리아누스 문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 아테네의 하드리아누스 문이다.
에페소스의 것은 아테네의 것보다 한 층 더 높다고 하니 서기 2세기에는 에페소스가 아테네보다 도시로서 번성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안드로클로스의 헤론(The Heroon of Androklos)'이라는 집 유적 앞의 인산인해.
긴 그리스어로 된 비문이 새겨진 대리석이 보인다.
그 앞에는 그 비문을 영어로 번역한 듯한 안내판이 서 있다.
로마 황제 발렌티니아누스(Valentinianus), 발렌스(Valens), 그라티아누스(Gratianus)의 포고문 같은 것인가 보다.
세 황제는 모두 4세기 후반에 재위했던 황제들이다.
공중화장실 입구.
로마 문명권의 도시들은 어디를 다녀도 굉장히 동질성이 크다.
이 판박이같은 공중변소를 봐도 그런 것이 느껴진다.
당시에는 화장실에 칸막이가 없었고 일을 보는 사람들은 옆의 사람과 대화도 나누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도 중국 화장실이 저랬다고 하나 나는 그런 화장실은 딱 한 번 봤다.
화장실에서 바라보는 대리석 거리의 원기둥들.
이제 본격적인 복원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테라스 저택을 보러 들어간다.
입구에는 당시 모자이크를 복원해서 깔아 놓았다.
에페스 유적 입장료와는 별개의 입장료를 따로 받는 곳이다.
복원되는 동안 지붕을 둘러쳐 보호하고 있다.
복원된 대리석 기둥 위에 목조 대들보를 얹은 모습만 봐도 범상한 건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런 것은 아마도 수도를 집안에 끌어들이던 시설일 것이다.
6번 주거단위의 개인 욕실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넓은 홀이 나타나는데...
벽면의 대리석 마감재가 마치 현대의 건물을 방물케 할 정도로 고급스럽다.
열심히 복원작업 중인 고고학자.
복원을 위한 갖가지 도구들이 널려 있다.
더우니 선풍기도 틀어놓고.
높다란 아치형 천정이 있는 공간.
본래의 건축재를 찾을 수 없는 경우는 저렇게 복원해 놓았다.
통로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다.
산비탈을 그대로 이용해서 계단식으로 건축된 건물이었다.
이렇게 다 무너진 모습을 보면 초라해 보이지만 실은 바닥의 화려한 모자이크화와 벽면의 대리석 마감재가 다 떨어져 나가서 그런 것이다.
실상은 대단히 고급스럽고 화려했을 것이다.
7번 주거단위라는 안내판이다.
주거단위(dwelling unit)라는 이름이 붙은 걸 보니 일종의 고급 연립빌라 정도 되는 곳이었는지...
혹은 로마의 아시아 속주 총독 관저쯤 되었던 곳인가 싶기도 하다.
벽면을 장식하던 벽화들 일부가 보인다.
여기도 흰색과 붉은색이 조화를 이룬 심플한 벽화들이 보인다.
집에 벽지 대신 벽화를 그렸나 보다.
이곳 테라스 주택지의 벽화들을 소개하는 안내판.
저 벽화들과 바닥 모자이크화에서 당시 최상류층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계속해서 탐방로는 오르막길이다.
이런 구조를 보니 왜 테라스 저택(Terrace house)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이해가 간다.
제법 잘 보존된 혹은 잘 복원된 바닥 모자이크.
딱 봐도 최고급 주거형태이다.
2번 주거단위에 관한 안내.
이곳의 바닥 모자이크는 색깔을 많이 쓰지 않고 심플하니 무게감이 있다.
계단식으로, 혹은 테라스식으로 차곡차곡 쌓인 듯한 형태의 집단 고급주택.
견고한 흙벽돌 겉에는 회반죽으로 마감을 하고 그 위에 벽화를 덧칠한 벽체구조이다.
1번 주거단위 안내판.
로마의 고급주택 구조를 볼 때 아마도 여기는 지붕이 없이 뚫려 있고 저 아래는 야트막한 저수조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테라스 주택지 뒤쪽 출구로 나와 다시 아래쪽 쿠레테스 거리로 내려가는 길.
상업 아고라와 대리석 거리가 나란히 뻗은 것이 보인다.
으으, 사람들 봐라.
테라스 저택과 쿠레테스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있던 유적.
공중화장실 뒤편에 해당하는 곳이다.
쿠레테스 거리를 따라가면 왼편으로 보이는 하드리아누스 신전.
하드리아누스 신전은 로마 오현제의 세 번째 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us, 재위 117~138)를 모시는 신전으로
사비누스(Sabinus)라는 사람이 지어서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코린트식 기둥과 더불어 정면 아치에는 행운의 여신 티케(Tyche), 그 너머 내부 정면에는 두 팔 벌린 메두사가 장식되어 있다.
아치 양편의 석조 대들보에는 에페소스의 창건설화가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에페소스(Ephesus, 에페스) 유적을 관람 중이다.
쿠레테스 거리 왼편, 하드리아누스 신전 위쪽에 자리한 스콜라스티카(Scholastika) 목욕장 터.
2세기에 지어진 3층짜리 목욕장이며 4세기에 수백명 수용 규모로 증축되었단다.
여느 로마시대 목욕장과 마찬가지로 냉탕과 온탕, 난방시설을 갖추고 있었는데
위 사진은 아마도 탕 아래쪽의 급탕시설이 아니었을까 싶다.
욕탕에서 바라본 쿠레테스 거리 쪽 출입구 방향.
욕장 유적 일부분.
본래의 모습을 그리려면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하드리아누스 신전 뒤편에서 바라보는 쿠레테스 거리.
오른쪽 보호막 덮인 곳은 아까 들어갔던 테라스 거주지 유적이다.
그리고 북쪽으로 바라보는 풍경.
켈수스 도서관과 대리석 거리의 열주(列柱)들.
고급 주택 유적이었던가... 이제 여행 다녀온지 두 달이 넘으니 기억이 가물가물.
바리우스(Varius) 욕장.
2세기 전반의 건물이란다.
트라야누스(Trajanus) 샘을 안내하는 안내판.
오현제의 두 번째 황제인 트라야누스(재위 98~117)에게 바쳐진 인공 샘으로
서기 102~114년 사이에 지어졌다고 한다.
트라야누스 샘 전경.
여러 신상과 황족의 석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는데 현재 실물은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저기가 물이 흘러나오던 곳일까.
그러면 저 바로 위가 트라야누스 석상이 발을 딛고 있었던 곳일 것이다.
계속해서 쿠레테스 거리를 따라 오르막을 올라간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 모습.
멀리 켈수스 도서관은 여전히 보인다.
쿠레테스 거리의 동남쪽 끝, 헤라클레스 문에 다다랐다.
본래는 6개 기둥의 2층짜리 문이었으나 지금 남은 것은 위의 것이 다다.
사자 가죽을 두르고 있으면 헤라클레스이다.
헤라클레스 문을 들어서면 펼쳐지는 풍경.
쿠레테스 거리에 대한 안내판이 이제야 나타난다.
헤라클레스 문과 가까운 곳에 있는 멤니우스(Memnius) 기념묘.
멤니우스는 유명한 로마의 독재자 술라(Sulla, 기원전 138~78)의 손자였다고 한다.
그 맞은편에는 관광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니케(Nike) 여신 부조가 있다.
승리의 여신으로, 한 손에는 승리자를 상징하는 월계관을, 다른 손에는 밀 다발을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앞에서들 기념촬영 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제 도미티아누스 신전이 보이는 곳으로 왔다.
왼쪽은 폴리오 기념물 및 도미티아누스 샘, 오른쪽이 도미티아누스 신전이다.
도미티아누스 신전의 본래 모습이 나와 있는 안내판.
도미티아누스 황제(Domitianus, 재위 81~96)에게 바쳐진 신전으로
생전에 악평을 얻어 사후에 기록말살형(damnatio memoriae)에 처해지는 바람에 기록 다수가 없어진 불운의 황제이나
그가 속해 있던 플라비우스(Flavius) 일족에게 바쳐진 이 신전을 보면 로마인들의 관용을 엿볼 수 있다.
이 신전은 로마의 기독교화 이후 완전히 허물어져 이나마 복원되기 전까지는 거의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고 한다.
폴리오 기념물 앞에서 바라보는 도미티아누스 신전 터.
멋진 아치가 인상적인 폴리오 기념비와 도미티아누스 샘이다.
폴리오 기념물과 도미티아누스 샘 안내문.
가이우스 섹스틸리우스 폴리오(Gaius Sextilius Pollio)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서기 1세기 전반에 건설된 것이며
그 남쪽에 붙어 있는 도미티아누스 샘은 서기 92~93년에 지어졌다고 되어 있다.
도미티아누스 광장에서 남쪽으로 올라가는 거리.
관광객은 거의 없다. 저수조가 있다는 저곳은 날씨도 덥고 하여 포기.
이제 바실리카를 향해 올라가는 길을 향한다.
'로도스 열주랑(列柱廊)'과 시청사(Prytaneum).
왜 하필 로도스 섬의 이름이 여기서 등장하는지는 설명되어 있지 않았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 재위 기원전 27~기원후 14) 시대에 지어졌다는 시청사이다.
여기가 아시아 속주 총독이 업무를 보던 곳일까.
이제 시청사를 왼편으로 보며 계속해서 바실리카(Basilica: 공회당)를 통과한다.
시청이 있고, 바실리카가 있던 도시의 중심부이다.
이제 바실리카 한켠에 있는 오데온(Odeon) 앞으로 왔다.
여기가 오데온이다.
공연장이자 정치적 의사결정을 하던 의회 역할도 하던 곳이다.
오데온에서 내려다보는 바실리카. 그 너머는 아고라(Agora)이다.
저곳에는 상인들이 장사를 하던 상점가도 있고, 아이들을 가르치던 학교도 있었으며,
정치적인 의사표현이나 철학을 논하는 사람들, 손님을 호객하는 변호사들이 몰려서
시끌벅적했을 것이다.
오데온에서 내려다보는 시청사와 바실리카.
도미티아누스 광장도 보일락 말락.
오데온 무대 뒷편의 복도.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본 풍경.
오데온을 지나도 기둥이 늘어선 바실리카는 이어진다.
바실리카 동쪽 끝에서 장축으로 바라보는 바실리카.
바실리카에 관한 안내판은 바실리카 맨 끝에 있었다.
서기 11년에 앞서 언급한 폴리오가 지어서 시민에게 기증한 공공시설로
67개의 원기둥이 늘어선 열주 회랑이었고, 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시설이었다고 한다.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오데온과 바실리카, 아고라.
바실리카 끝에는 아치들이 잘 남아 있는 건물 터가 있는데
여기가 내가 가진 가이드북에는 바리우스 욕장으로 되어 있었으나
바리우스 욕장 안내판은 이와 동떨어진 쿠레테스 거리에 있었으니 이게 뭔지를 모르겠다.
에페소스 유적 남쪽 출입구.
여기서는 대중교통으로 셀축으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하여 다시 북쪽 출입구로 돌아가기로 한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헤라클레스 문 앞에서 쿠레테스 거리를 다시 한 번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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