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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서 연구

마태복음 6장 원어 강해

by 은총가득 2020. 9. 18.

마태복음 6장 원어 강해

 

마 6:1~4 구제에 대한 가르침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준수해야 할 구제의 방식과 의의

본문에서 저자는 참된 구제의 전형을 외식적인 구제와 비견해 설파함으로써 진정한 구제는 그 본질에 있어 '하나님 앞에서'(Coram Deo)라는 신앙적 동기에 기인되어야 함을 주지시키고 있다. 실로 유대인들에게 있어 '구제'는 그들의 종교적 삶에 있어 지속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중요한 신앙적 관행의 하나였기에(신14:2924:19-21;26:12), 본문에서 재삼 참된 구제의 전형이 제시된 것은 곧 당시의 종교적 정황이 극단적인 외식주의로 흐르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한편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참된 구제의 모본으로 제시한 바 있다(고후8:9).



1. 형식적 의에 대한 규정(1절)

본절은 실제적으로 18절까지 이어지는 참된 구제, 기도, 금식의 내용을 포괄하는 전체적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곧 본절에서 저자는 유대인들의 종교적 삶 전반에 걸쳐 편재해 있던 극단의 외식주의적 행태(5:20)를 보편적인 시각에서 비판함으로써 참된 의의 실천 방식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

 

1) 외식적 의에 대한 규정
(pro;" to; qeaqh'nai aujtoi'"프로스 토 데아데나이 아우토이스, 1a절)
본문에서 데아데나이(qeaqh'nai보이려고)는 제1부정 과거 수동 부정사로 특별한 목적을 강조하는 말이다. 따라서 본문은 그 보이려고 하는 목적의 궁극적은 대상이 바로 사람들이란 점에서, 외식하는 자들의 전반적인 행위가 자기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에 준거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실로 이러한 사실은 유약한 인간에게 있어 필연적인 위선의 결과를 낳기 때문에 그러한 위선과 가식의 극복은 오직 모든 행위의 내적 동인(動因)이 곧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에 기인할 때 가능한 것이다. 한편 '데아데나이'는 '연극적', '과장된'이란 뜻의 영어 theatrical의 어원이기도 하다.

2) 외식적 의에 대한 경고
(Prosevcete 팪e;■th;n dikaiosuvnhn uJmw'n mh; poiei'n e[mprosqen tw'n ajnqrwvpwn프로슈케테 텐 디카이오쉬넨 휘몬 메 포이에인 엠 프로스덴 톤 안드로폰, 1b절)
혹자는 본문의 디카이오쉬넨(dikaiosuvnhn의)을 2-4절의 구제와 연관시키나(신6:25) 여기서는 18절까지 이어지는 '구제', '기도', '금식'등 당시 유대인들이 준수하는 보편적인 종교적 관행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따라서 본문은 '항상 생각하다', '(그 일에) 집중하다'란 뜻의 프로세케테(prosevcete주의하라)란 경고적 낱말(욥7:17)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종교적 삶이 사람들의 이목을 중시하는 외식주의적 행태가 되어서는 안되며, 오직 항상 '하나님 앞에서'라는 신앙적 동기에 근거해야 함을 지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Carson).

3) 외식적 의의 결과
(eij de; mhv ge, misqo;n oujk e[cete para; tw'/ patri; uJmw'n tw'/ ejn toi'" oujranoi'"에이 데 메게 미스돈 우크 에케테 파라 토 파트리 휘몬 토 엔 토이스 우라노이드, 1c절)
본문에서 파라 토 파트리 휘몬(para; tw'/ patri; uJmwn너희 아버지께)이 원문상 '너희 아버지 옆에'란 뜻을 가진다는 점과 '상'이 원어상 미스돈(misqovn)으로 '보상', '삵'이란 뜻을 가진다는 점에서 본문의 '상'은 곧 하나님 옆에서 받을 보상을 가리킨다. 이는 참된 내적 동기에 의해 시행되는 현세적인 의의 결과적 상급이 종말론적으로 있을 하나님의 보상의 성격임을 암시해 준다. 따라서 외식주의자들이 그러한 상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그들이 고의적인 외식적 행위로 말미암아 세속적인 존경과 칭찬을 그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받았기 때문임을 보여 주며, 나아가서는 그러한 외식적 행위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범죄 행위이기에 하나님께 받을 보상이 없음은 물론 엄중한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준다(삼상15:22,23).



2. 외식적 구제에 대한 규정(2절)

유대인들의 종교 관습 중 먼저 '구제'가 언급된다(토비트12:8,9). 본절은 특별히 구제의 본질적인 동기와 정신을 망각하고 진정한 신앙 정신에 의거하지 않은 채 자기 과시의 방편으로 악용되고 있는 당시 유대인들의 왜곡된 구제관을 경고한다. 한편 본절 초두의 불변사 '운'(ou|n그러므로)은 '일례로', '그러한 사례 중의 하나라'란 뜻으로 1절의 '의'가 곧 '구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1) 외식적 구제의 목적
($Otan ou&n poih'/" ejlehmosuvnhn ... e[mprosqevn sou, w{sper oiJ uJpokritai; poiou'sin호탄 운 포이에스 엘레에모쉬넨…엠프로스덴 수 호스페르 호이 휘포크리타이 포이우신, 2a절)
본문은 먼저 '~인 체하다', '가면을 쓰다', '가장하다'란 뜻의 휘포크리노마이(uJpokrivnomai)에서 파생된 말로서 '배우', '흉내내는 자'란 뜻을 가진 '호이 휘포크리타이'(oiJuJpokritai외식하는 자)란 말을 통해 위선과 가식으로 점철된 '외식하는 자'들의 실체(7:5;15:7;24:51)를 규정한 다음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란 구절로 그러한 자들이 행하는 왜곡된 구제의 궁극적인 목적을 명시한다. 곧 여기서의 '영광'(doxasqw'sin독사스도신)이 성경의 일반적인 용례로서의 신적 영광의 의미보다는 '명예'(honor), '명성', '평판' 등의 세속적 의미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외식하는 자들이 행하는 구제의 목적이 자신에 대한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정욕의 충족에 있음을 알게 한다. 실로 오늘날에 있어서도 참된 신앙적 동의없이 행해지는 대부분의 자선과 구호에는 결국 자기 과시나 배면의 이득을 꾀하는 악의적인 동기가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계해야 한다. 한편 본절의 초두에 언급된 호탄 운 포이에스 엘레에모쉬넨({Otan oupoih'/" ejlehmosuvnhn구제할 때에)의 불변사 '호탄'은 가정법 현재 시상과 함께 쓰여져 '~한다면'이란 '조건'의 의미보다는 '언제든지, ~할 때마다'란 반복의 의미로 쓰여졌다는 점(막13:11눅12:11)에서, 성도들에게 있어 구제가 조건적 의무가 아닌 필연적이고 당위적인 신앙 행위란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다.

2) 외식적 구제의 전형
(mh; salpivsh/" ... ejn tai'" sunagwgai'" kai; ejn tai'" rJuvmai", o{pw" doxasqw'sin uJpo; tw'n ajnqrwvpwn메 살피세스…엔 타이스 쉬나고가이스 카이 엔 타이스 흐뤼마이스 호포스 독사스도신 휘포 톤 안드로폰, 2b절)
'회당'(sunagwgai'"쉬나고가이스)은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경건한 자세로 기도하는 곳을 '거리'(rJuvmai"흐뤼마이스)는 원어상 '좁은 골목길'이란 뜻으로 당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이 은밀하게 다니던 뒷골목을 가리키는 말이다(눅14:21). 한편 메 살피세스(mh; salpivsh"나팔을 불지 말라)란 말에 대해 혹자는 이를 문자적 의미 그대로 당시 예루살렘 등지에서 구제물을 헌납받기 위해 또는 헌납한 뒤에 실제로 나팔을 분 것으로 보며(Bonnard, Calvin), 또 혹자는 구제물을 받기 위해 마련된 성전의 13개의 헌금궤(눅21:2)가 뿔피리 모양이었던 데서 이 말이 기원했다고 주장한다(Vincent, Jeremias). 본문에서는 '나팔을 분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알린다는 의미에 합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한다는 상징적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듯하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에게 자기 과시를 위해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경건의 모습을 드러내는 곳과 궁핍한 자들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자신들의 구제의 모습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외식주의자들의 전형을 주지시킴으로써 그러한 악의적인 전철을 따르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3) 외식적 구제의 결과
(ajpevcousin to;n misqo;n aujtw'n에페쿠신 톤 미스돈 아우톤, 2c절)
여기서의 '미스돈'(misqo;n상)은 문맥상 1절의 '상'(하늘 상급)과는 달리 현세적이고 세속적 의미의 보상을 가리킨다. 또한 '아페쿠신'(ajpevcousin받았느니라)은 상용어로 '영수증을 받다'란 뜻을 가지는 바(눅6:24빌4:18), 본문은 외식주의자들이 구제 행위에 대한 보상이 give and take 형태의 세속적 방식으로 이미 확고하게 주어졌으며, 그 받은 보상이 결코 철회되거나 소멸될 수 없는 확증적인 것임을 시사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그러한 세속적 보상의 확증에 따라 그들이 결코 하나님 앞에서는 그들 행위에 대한 보상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실로 그들이 받은 이러한 세속적 보상은 인간의 유한성에 비추어 가시적이고 한시적인 헛된 것이었다.

 


3. 참된 구제의 방식과 결과(3,4절)

본문에서는 자기 과시나 이기적 정욕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외식적 구제와는 달리 진정한 신앙 정신과 신적 사랑에 의거해 시행되는 참된 구제의 자세와 그로 인해 얻게 될 종말론적 상급을 피력한다. 곧 본문은 참된 구제는 구제하는 자의 내적 동기 여하에 달려있는 것임을 주지시키고 있다.

1) 참된 구제 실천의 비유
(mh; gnwvtw hJ ajristerav ... hJ dexiav sou메 그노토 헤 아리스테라…헤 덱시아 수, 3절)
'모르게 하여'란 구절은 원어상 부정을 나타내는 불변사 메(mhv)가 첨가되어 직역하면 '알지 못하게'이다. 이러한 어투는 곧 그 말이 지니는 의미의 정도를 더욱 강조하는 표현이다. 또한 왼손과 오른손이 결국은 한 지체에 속한 것이란 점에서, 본문의 비유는 자신이 행한 구제 행위에 대해 결과적 보상을 바라지도 말며(Luther), 심지어는 나중에라도 결코 기억하지 말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실로 이러한 참된 구제는 사람들의 안목과 평판을 초월하여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내적 동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롬11:36).

2) 참된 구제의 전형
(o{pw" h/ sou hJ ejlehmosuvnh ejn tw'/ kruptw'/호포스 헤 수 헤 엘레에모쉬네 엔 토 크뤼프토, 4a절)
크뤼프토(kruptw'/은밀하게)는 원어상 '숨기다', '감추다'란 뜻으로서 참된 구제의 전형은 자신의 구제 행위가 남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숨어서 비밀스럽게 행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는 곧 2-2)에 언급된 외식적 구제의 전형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서 이러한 은밀한 구제는 결코 사람들에 의한 보상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며 오직 '하나님 앞에서'라는 진실한 신전(神前)의식의 결과로 발원됨을 나타내고 있다.

3) 참된 구제의 결과
(kai; oJ pathvr sou ... ajpodwvsei soi카이 호 파테르 수…아포도세이 소이, 4b절)
미래형 '아포도세이 소이'(ajpodwvsei soi갚으시리라)는 '주어야 할 것을 주다', '되돌려주다, 보상하다'란 뜻으로 미래적 보상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한편 공인본문(Textus Receptus)과 KJV는 이 구절과 6절에서 '엔 토 파네로'(ejn tw'/ fanerw'/드러내놓고)란 말을 첨가해 그 보상이 공개적으로 주어진다는 의미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후대의 삽입으로 성경 어디에도 본문과 같은 은밀한 경건에 대한 공개적 보상이 언급된 바가 없다는 점과 은밀한 구제의 보상이 곧 하늘 상급이란 점 그리고 동일한 문맥인 18절에서는 이러한 문구가 삽입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특별히 본문은 소유의 형태인 호 파테르 수(oJ pathvr sou너의 아버지)란 말을 통해 그러한 보상의 대사인 구제자를 부자간의 관계를빌어 하나님의 소유로 언급함으로써 은밀하게 행해지는 참된 구제의 배면에 있는 현세적인 기쁨과 위로 그리고 종말론적으로 있을 확정된 상급의 소망을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Broadus).


마 6:5~15 기도에 대한 가르침

하나님 나라 백성의 참된 기도

당시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오전9시, 정오, 오후3시) 정규적인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눅18:9-14행3:110:9). 그러나 일부 외식주의자들은 이 시간에 고의적으로 사람들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자신의 경건함을 과시하려 했고, 본문은 그러한 외식주의자들의 가식적인 기도와 잘못된 기도를 경고하는 동시에 참된 신앙 정신에 근거한 올바른 기도의 원형을 제시하고 있다. 실로 기도는 기도자와 하나님과의 은밀한 인격적 만남과 교제의 행위로서 성도들의 신앙적 삶의 영위에 필연적인 것이므로 참된 기도는 그 내적 동기가 온전히 우리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만을 향한 것이어야 한다.

1. 외식적 기도와의 비교를 통한 참된 기도의 실제(5-8절)

본문에서 저자는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경건성을 과시하려는 목적에서 의도적으로 드리는 외식적 기도 그리고 입으로만 행해지는 잘못된 기도의 형태를 제시하고 경고하는 동시에 참된 기도의 방식을 교훈하고 있다. 곧 본문을 통해 전하는 단순히 기도의 외적 방식만이 아닌 참된 기도의 내적 동기와 목적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5절초두'기도할 때에'(o{tan proseuvchsqe호탄 프로슈케스데)의 시간을 나타내는 불변사 호탄은 2절의 '구제할 때에'와 동일한 형식으로 반복의 의미를 내재하고 있어, 규칙적인 기도의 생활을 암시하는 것이다.

 


1) 외식적 기도와 참된 기도의 전형
(kai; ejn tai'" gwnivai" tw'n plateiw'n eJstw'te" proseuvcesqai ... ei[selqe eij" to; tamei'ovn sou kai; kleivsa" th;n quvran sou 카이 엔 타이스 고니아이스 톤 플라테이온 헤스토테스 프로슈케스다이…에이셀데 에이스 토 타메이온 수 카이 클레이사스 텐 뒤란수, 5,6절)
외식적 구제와 마찬가지로 외식적 기도의 전형이 먼저 제시된다. 여기서 특별히 그 기도의 장소가 '회당'외에 엔 타이스 고니아이스 톤 플라테이온(ejn tai'" gwnivai" tw'n palteiw'n큰 거리 어귀에)으로 언급된 것은 일반적으로 그곳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상거래를 하거나 정보의 교환이 쉽게 이루어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외식주의자들이 의도적으로 공개된 기도를 통해 자신의 경건성을 많은 사람들에게 과시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 이는 곧 외식적 구제를 행할 때 찾았던 '거리'(좁은 골목)와 함께 그들의 기회주의적 면모를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서 그들의 종교 생활 전반이 곧 자신의 이기적 정욕과 세속적 명예의 획득에 그 목적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사실은 지속적인 동작의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 시상의 과거형 헤스토테스 프로슈케스다이(eJstw'te" proseucesqai서서 기도하기를)와 함께 그들의 외식적인 기도 행위가 이미 습관화되어 있음을 시사해 주며, 그들이 행하는 기도의 불순한 동기를 암시케 한다. 한편 6절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참된 기도 자세의 전형을 보여준다. 여기서 타메이온(tamei'ovn골방)은 '단절하다, 자르다'란 뜻의 템노(tevmnw)에서 유래한 어근 탐(tavm)이 첨가된 타미아스(tamiva"청지기)의 파생어 타미에이온(tamieivon)에서 i가 탈락된 후기 형태의 단어이다. 이는 하나님의 청지기가 그 주인 되신 하나님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듯 세상적인 모든 것과 단절한 상태에서 하나님과 은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곳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은 단순한 기도의 장소를 지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상징적으로 참된 기도의 방식과 의미를 지침해 주는 말로 이해할 수 있겠다. 실로 참된 기도는 세상의 안목에 구애됨 없이 기도자와 그 기도의 유일한 대상이신 하나님과의 은밀한 만남과 인격적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2) 잘못된 기도의 전형
(de; mh; battaloghvshte w{sper oiJ ejqnikoiv데 메 밧탈로게세테 호스페르 호이 에드 니코이, 7절)
5절이 기도의 외식적인 행태, 곧 불순한 동기에 의한 기도를 비판한 것인데 반해, 본문은 종교적 무지에 기인한 잘못된 기도의 관행, 곧 기도의 내용적 측면을 지적한 것이다. 여기서 에드니코이(ejqnikoi;이방인, 32절;5:47)의 삽입은 이방 지역과 연접한 갈릴리 지역의 특성상, 잦은 이방인의 출입으로 인한 이방적 관행의 편만함을 염두에 둔 것이다. 곧 밧탈로게세테(battaloghvshte중언부언)란 말은 같은 말을 더듬어 반복하는 것이나 허튼 말의 반복을 가리키며, 헹 테 폴뤼로기아(ejn th'/ polulogiva말을 많이 하여야)는 무익한 말의 수다함을 가리킨다. 또한 그 말은 이방의 종교적 관행상 제의적 주문의 반복(왕상18:26,28행19:34)이 자신들의 요구를 신에게 전달할 수 있는 최선의 방편이라고 여기는 이방적 관념을 지시한다. 본문은 그러한 이방적 요소에 기인한 잘못된 기도의 관행을 경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Bruce). 실로 참된 기도는 기도의 길고 짧음 여하에 관계없이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께 대한 진솔한 내면의 신앙적 고백에 근거한 것이어야만 한다(사65:24히11:6).

3) 참된 기도의 전제가 되는 신지식
(oiga;r ... aijth'sai aujtovn오이덴 가르…아이테사이 아우톤, 8절)
오이덴(oi아시느니라)이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사귀어 안다'란 뜻으로 단순한 이론적 앎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관계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체험적이고 인격적인 앎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본문은 우리들의 기도 이전에 항상 우리의 삶에 개입해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이미 알고 계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의 제의적(祭儀的) 주문처럼 허튼 말의 수다함에 자신의 뜻을 변경시키는 분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모든 정황을 아시기에 우리에게 가장 합당한 계획을 준비해 놓으신다. 한편 이러한 표현이 왜곡되어 전해질 때 이는 기도의 필요성 자체를 무시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실상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인 분으로 우리와의 인격적 교제를 기뻐하시며 이로 인한 믿음의 형성을 바라신다는 점에서, 진솔한 내면의 고백에서 우러나오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 당신의 계획을 실행하기를 원하신다(Hill).



2. 참된 기도의 모본으로 제시된 주의 기도(9-13절)

외식적 기도, 잘못된 기도의 전형과 참된 기도의 전형을 대비시켜 진정한 기도의 내적, 외적 동기와 자세를 피력한데 이어 본문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직접 참된 기도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눅11:2-4과 병행을 이루는 본문은 십계명의 경우(제1-4계명:대신적 의무 규정;제5-10계명:대인적 의무 규정)와 마찬가지로 참된 기도에 있어서 세 가지의 수직적 요소(9,10절)와 네 가지의 수평적 요소(11-13절)를 포괄하고 있다(출20:3-17). 곧 본문은 기도의 정형적인 틀을 문자적으로 제시한 것이라기보다는 9절 초두의 부사 후토스(Ou{tw"이렇게)가 암시해 주는 것처럼 참된 기도의 모델, 곧 기도자가 행할 참된 기도의 방법론과 거기에 내재된 신앙 정신을 제시해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1)대신적 기도의 요소
(Pavter hJmw'n ... wJ" ejn oujranw'/ kai; ejpi; gh'"파테르 헤몬…호스 엔 우라노 카이 에피게스, 9,10절)
본문은 하나님의 신성과 절대 주권을 찬양하고 고백하는 대신적 내용이다. 먼저 하나님 호칭의 전제로 나타난 호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oJ ejn toi'" oujranoi'"하늘에 계신)란 말 중 복수로 표현된 '하늘(들)'은 하늘이 3층천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어 온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이 반영된 것이다(시33:14사63:15). 이것은 하나님의 신적 속성(전능성, 편재성, 영원성)을 강조하는 말이므로(왕상8:27사66:1), 하나님의 절대적인 신성과 주권을 시인하는 이 말은 기도의 대상인 그분을 향한 기도자의 기도를 통한 응답의 소망과 절대적인 확신을 갖게 한다. 한편 대신적 기도 요소의 첫 번째인 하기아스데토 토 오노마 수(aJgiasqhvtw to; o[nomav sou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에서 오노마(o[nomav이름)는 히브리 개념상 '이름'이 그 존재의 전인격과 속성을 대변하는 것이란 점에서 하나님 자신을 지칭한다. 따라서 그 말은 '의식적인 목적에 합당하도록 구별하고 분리한다'는 뜻의 미래 수동형 하기아스데토(aJgiasqhvtw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와 함께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일한 신앙과 경외의 대상이 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두 번째 요소인 엘데토 헤 바실레이아 수(ejlqevtw hJ basileiva sou나라이 임하시옵시며)에서 헤 바실레이아 수(hJ basileiva sou나라)는 이미 도래하였으며 종말론적으로 온전하게 성취될 하나님의 나라(12:28,29;19:28;눅17:21)를 지칭한다. 곧 헤 바실레이아 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적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그 나라의 조속한 성취에 대한 갈구를 표현한다(계11:1722:20). 기도의 세 번째 대신적 요소인 게네데토…에피 게스(genhqhvtw... ejpi; gh'"뜻이 하늘에서…이루어지이다)에서 델레마(qevlhmav뜻)는 여기서 특별히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모든 섭리와 계획을 포괄하는 말이다(롬12:2). 이 구절은 하나님의 그러한 뜻이 지금 우리가 속한 땅에서 조속히 실현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앞서 언급한 '나라이 임하옵시며'와 마찬가지로 온전한 하나님 나라의 조속한 성취를 원한다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2) 대인적 기도의 일상적 요소
(To;n a[rton hJmw'n ... shvmeron 톤 아르톤 헤몬…세메론, 11절)
4가지 대인적 기도 요소 중의 첫 번째 것이다. 에피우시온(ejpiouvsion일용할)은 원어상 에피(epiv)와 우시아(oujsi")의 합성어로 '우리의 매일의 생존에 필요한'이란 뜻으로, 본문은 문자적으로 육적 생존의 필수적 요소인 '양식'(a[rton아르톤)과 함께(막3:20살후3:12약2:15) 우리들에게 매일 필요한 삶의 요소들에 대한 간구를 지시하고 있다. 혹자는 이를 모두 영적 양식과 연관시켜 해석하나(Jerome), 그 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 측면뿐 아니라 우리의 육적 삶의 문제에까지 세심한 배려를 하신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한 듯한다(Luther). 이는 곧 12,13절이 우리 삶의 영적 측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조화를 이룬다. 한편 세메론(shvmeron오늘날)은 원어상 '오늘, 지금'이란 뜻으로(눅4:21행4:9) 육적 필요에 대한 기도가 바로 그 날에 국한된다는 사실을 말함으로 기도에 있어서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인간의 이기적인 탐욕의 배제를 암시한다.

3) 대인적 기도의 신앙적 요소
(kai; a[fe" hJmi'n ... ajpo; tou' ponhrou'카이 아페스 헤민…아포 투 포네푸, 12,13절)
11절에 대비시켜 기도자의 영적(신앙적) 측면의 요소를 언급한다. 곧 대인적 기도 요소 중 두 번째 것인 본문에서 나타나는 '죄'란 말이 동일한 내용을 다룬 누가복음에서는 신약의 일반적 용례인 하마르티아(aJmartiva)로 나타나나(눅11:4), 여기서는 '부채, 빚'을 뜻하는 오페일레마타(ojgeilhvmata)로 쓰여졌다. 이는 '죄'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종교적, 도덕적으로 당위적인 일을 행치 않은 사실이 곧 필연적인 갚음(용서)을 요하는 빚진 것과 같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18:30, Vincent). 한편 '사하여 준 것 같이', '사하여 주옵시고'에서 전자 아페스(a[fe")는 제2과거형이며, 후자 아페카멘(ajfhvkamen)이 제1과거형이기에 특별한 시제상의 차이를 발견할 수는 없으나 사건의 배열에 의거한 동작의 우선 순위에 따라, 본문에서 우리의 대인적인 용서 행위가 곧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사하여 주다'란 말이 원어상 '포기하다, 버리다' 등의 뜻을 가진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용서는 곧 빚(죄)의 완전한 탕감과 소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18:27). 세 번째 기도 요서(우리를…들게 하지 마옵시고) 중 '시험'(peirasmon페이라스몬)은 '유혹'의 의미라기보다는 특별한 연단과 고난을 가리킨다(Vincent, Scotts). 따라서 이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행한 예수그리스도의 기도 중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26:39)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이 구절 뒤에 이어지는 '다만'(ajllav알라)은 보다 강한 뜻의 반의적 불변사로 이하 문장이 별도의 또 다른 내용, 곧 본문에 나오는 기도의 네 번째 요소임을 입증시켜 준다. 곧 전 문장이 시련받지 않게 해달라는 소극적 자세였던 데 반해 이 문장은 제1과거 명령형으로 '(항상, 언제나) 구출하소서, 보존하소서'란 뜻을 지닌 흐뤼사이(rJu'sai구하옵소서)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악의 세력, 곧 사단의 세력으로부터의 지속적인 구원과 보존을 강렬하게 원하는 적극적인 기도의 자세를 보여준다(엡6:16요일3:12). 한편 투 포네루(tou' ponhrou'악)는 남성 소유격으로 성경의 용례상 단순한 악의 세력이 아닌 '사단'을 지칭한다(살후3:3요일2:13,14). 마지막 구절(나라와…있사옵나이다)은 원전에는 없는 구절로서 주의 기도를 정형화하기 위한 후대의 삽입으로 보여진다.



3. 참된 기도를 위한 삶의 전제(14,15절)

참된 기도의 모본으로 제시된 주의 기도 뒤에 특별히 용서에 관한 내용이 별도로 첨가된 것은 참된 기도의 전제로서 행해야 할 신앙적 삶의 실천적 측면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

1) 대인적 용서
(!Ea;n ga;r ajfh'te ... ta; paraptwvmata aujtw'n에안 가르 아페테…타 파랍토마타 아우톤, 14a절)
12절 내용('우리가 우리에게…준 것 같이')과 동일한 맥락이다. 한편 여기서 심각한 종교적 도덕적 범죄를 의미하는 하마르티아(Jhamartiva) 대신에 완곡하게 '실책'의 의미를 지닌 파랍토마타(paraptwvmata)가 쓰여진 것은 12절의 오페일레마타(ojfeilhvmata)와 마찬가지로 대인적 용서의 가능성이 있는 일상적인 범죄를 가리키기 위함인 듯하다.

2) 용서의 결과
(ajfhvsei kai; uJmi'n oJ path;r uJmw'n oJ oujravnio"아페세이 카이 휘민 호 파테르 휘몬호 우라니오스, 14b절)
12절의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와 동일한 의미로 진정한 실천적 신앙의 삶을 암시한다.

3) 용서치 않음에 대한 결과적 경고
(eja;n de; mh; ajfh'te ... oujde; oJ path;r uJmw'n ajfhvsei ta; paraptwvmata uJmw'n에안 데 메 아페테…우데 호 파테르 휘몬 아페세이 타 파랍토마타 휘몬, 15절)
14절과 동일한 내용을 '만일…아니라면' 이란 뜻의 가정법 현재형 에안 데 메(eja;n de; mh;)를 사용하여 역설적인 경고형의 어투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곧 대인적 용서의 현재적 실천을 특별하게 강조하려는 의도에 기인한 것이다. 실로 우리의 종교적 행위에는 먼저 신앙적 삶의 실천적 자세가 전제되어야 한다.


마 6:16~18 금식에 대한 가르침

참된 금식의 목적과 정신

앞서 언급한 구제와 기도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참된 금식은 하나님을 향한 자기 죄의 고백(시35:13사58:3,5)과 적절한 간구(삼하1:21에4:16), 곧 하나님과 금식자간의 올바른 관계 정립에 그 목적을 둔 것이다. 본문은 이러한 금식의 목적과 정신을 외면한 채 자신의 종교적 경건성을 과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행하는 외식즉 금식의 과실을 지적함으로써 금식의 본래적인 정신을 회복하고 그에 합당한 실행을 촉구하고 있다.

1. 외식적 금식의 전형(16절)

원어상 금식(nhsteiva네스테이아)이 '음식의 철저한 절제'란 측면에서 '자신의 영혼을 괴롭히다'(vp,n< hn:a;아나 네페쉬)란 구약적 의미(레16:29)를 가지는 데, 이는 종교적 경건의 훈련으로서의 금식을 지시하는 말이다. 본문은 이러한 금식의 본래적인 정신을 망각하고 외적 표현을 통해 자신의 금식 사실을 의도적으로 사람들에게 공개함으로써 자신의 경건성을 과시하려는 당시의 외식주의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비판한다.

1) 외식적 금식의 외적 표현
(mh; givnesqe wJ" oiJ uJpokritai; skuqrwpoiv메 기네스데 호스 호이 휘포크리타이 스퀴드로포이, 16a절)
신약성경 중 오직 여기와 눅24:17에서만 나타나는 스퀴드로포이(skuqrwpovi슬픈 기색)는 '뾰루퉁하다'란 뜻의 스퀴드로스(skuqrov")와 '얼굴'이란 뜻의 오프스(ojy)합성어로서 당시 외식적인 금식자들이 그들의 금식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극도로 침울한 표정을 가장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이는 과거로부터 계속되는 동작의 반복을 지시하는 미완료형 기네스데(givnesqe드러내다)와 함께 그들의 외식적 행위가 금식 때마다 습관적으로 되풀이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곧 본문은 금식의 의미보다는 금식을 통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가식적인 고통의 모습을 자신의 경건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 사실을 경계하는 것이다.

2) 외식적 금식의 목적
(ajfanivzousin ... o{pw" fanw'sin toi'" ajnqrwvpoi" nhsteuvonte"아파니주신…호포스 파노신 토이스 안드로포이스 네스튜온테스, 16b절)
아파니주신(ajfanivzousin흉하게 하다)은 원어상 '알아보지 못하게 하다, 보기 싫게 하다'란 뜻으로 금식할 때 일반적으로 먼지나 재 등을 뒤집어 쓰고 자신의 본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게 한 전례(삼하15:30겔24:17)에서 유래된 표현이다(McNeile). 한편 특별히 유사한 발음의 파노신(fanw'sin보이려고)을 이 말과 병행해서 쓴 것은 그들의 불의한 금식 목적을 강조하여 지적하기 위한 헬라어의 문학적 표현 양식으로 볼 수 있다. 곧 본문은 금식의 모습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그 행위에 깃든 그들의 불의한 목적을 비판한 것이다.

3) 외식적 금식의 결과
(ajpevcousin to;n misqo;n aujtw'n아페쿠시톤 미스돈 아우톤, 16c절)
외식적 구제, 외식적 기도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금식 목적이 사람들의 인정과 자신의 종교적, 사회적 명예의 획득에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가식적인 행위로 얻고자 하는 것을 이미 획득한 그들에게는 더 이상 받을 하늘의 상급은 없다는 뜻이다.

 

 

2. 참된 금식의 자세(17절)

본문은 여자적인 참된 금식의 외적 자세 뿐만 아니라 상징적으로 금식의 참된 목적(18절 강해 참조)과 정신을 교훈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신앙인들이 그들의 모든 삶의 자리에서 겸비해야 할 참된 신전 의식(Coram Deo)을 주지시키고 있다.

1) 너는 금식할 때에
(su; de; nhsteuvwn수 데 네스튜온, 17a절)
개역성경에는 생략된 불변사 데(de그러나)의 첨가로 내용의 반전을 강조한다. 한편 네스튜온(nhsteuvwn금식할 때에)은 현재 분사형으로 '금식하면서'란 뜻을 가지므로 16절의 '금식할 때에'(O{tan de; nhsteuvhte호탄 데 네스튜에테)보다 금식의 내용적 측면에 더 강조를 두고 있는 말이다.

2)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a[leiyaiv sou th;n kefalh;n알레이프사이수 텐 케팔렌, 17b절)
왕권이나 신적 권위의 위임 때 행해지던 '기름 부음'(삼상10:116:12,13)과는 달리 유대인들에게 있어 자기 스스로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행위는 곧 단정한 몸치장을 위한 것이었다(룻3:3삼하12:20). NIV는 이를 '기름을 붓다'(anoit) 대신에 '네 머리에 기름을 붓다'(put oil on your head)로 번역함으로써 그 의미를 잘 살리고 있다. 따라서 부정 과거 명령형인 알레이프사이(a[leiyaiv기름을 바르고)가 여기에 쓰여진 것은 곧 금식 중에 특별하게 단장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금식 중에라도 일상의 생활과 다름없이 행동하라는 뜻이다. 이는 금식이 하나님과 자신과의 바른 관계 정립의 한 방편이라는 점에서 자신이 금식한다는 사실을 사람들 앞에 특별하게 드러내 보이지 말라는 의미이다.

3) 얼굴을 씻으라
(to; provswpovn sou nivyai토 프로소폰 수니프사이, 17c절)
니프사이(nivyai씻으라)는 '스스로 얼굴을 씻는다'는 니프토마이(nivptomai)의 부정 과거 명령형으로 이 역시 '기름을 바르고'(a[leiyai;알레이프사이)와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행동의 연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금식 중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는 말씀이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금식자의 내적, 외적 자세를 지침한 것이란 점에서 이는 금식뿐만이 아닌 우리 신앙인들의 전반적인 삶 전체에 적용될 수 있다.

 


3. 참된 금식의 목적(18절)

'사람에게 보이려는'(16절) 것이 외식적 금식의 목적인데 반해 본 문단은 그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참된 금식의 목적을 설파한다. 곧 본문은 금식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정립을 위한 행위의 한 방편이라는 점에서 그 목적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자신의 전인격적 변화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1) 사람에게 보이지 않음
(o{pw" mh; fanh'/" toi'" ajnqrwvpoi"호포스 메 파네스 토이스 안드로포이스, 18a절)
외식적 금식의 악의적인 목적을 재삼 언급함으로써 이하 전개될 참된 금식의 목적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1-2 강해 참조).

2)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보임
(ajlla; tw'/ patriv sou tw'/ ejn tw'/ krufaivw/알라 토 파트라 수 토 엔 토 크뤼파이오, 18b절)
이는 실질적인 참된 금식의 목적이자 정신이다. 크뤼파이오(krufaivw은밀한)는 미완료형 중간태로 '감추다, 보이지 않다, 알 수 없다'란 뜻을 가지는 이 말은 하나님께서 숨어 계신다는 뜻이 아니라 진정한 신지식의 획득과 하나님과의 교제는 이전부터 그래왔듯이 궁극적으로 전인격적인 자기 헌신 속에서 이루어지는 극히 개인적 특성의 것임을 암시한다(4절 강해 참조). 한편 그 '보임'의 궁극적 대상인 하나님이 '네 아버지'(patriv sou파트리 수)로 표현된 것은 참된 목적과 정신을 기억하고 금식하는 자에게 주어질 위로와 소망을 암시해 주기 위함인 듯하다(4b절 강해 참조).

3) 참된 금식의 결과
(oJ pathvr sou ... ajpodwvsei soi호 파테르 수…아포도세이 소이, 18c절)
참된 구제, 기도의 결과(4b,6절)와 내용상 의미상으로 동일하다. 한편 본문 역시 공인 본문(Textus Receptus) 등에서는 그 말미에 '공개적으로'라는 뜻의 엔 토 파네로(ejn tw' fanerw')를 첨가시키고 있다.


마 6:19~23 보물을 하늘에 쌓음

신앙적 가치관의 정립

1-18절까지의 내용이 사람들의 종교적 삶에 관한 경고의 신앙적 지침이었던 것에 반해 이제부터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한다. 먼저 눅12:33,34과 병행을 이루고 있는 본 단락은 세속성, 가시성, 임의성을 상징하는 땅과 거룩성, 불가시성, 영원성을 상징하는 하늘과 대비시키고 있다. 이것은 비유적으로 이기적 탐욕의 충족을 위한 세속적 가치 추구의 무상함과 확고한 영원성, 안정성이 보장된 신앙적 가치 추구의 결과를 명확하게 대조시킴으로써 이중적 가치 추구의 불가함을 설파한다. 이는 곧 사람들이 현세적인 삶 속에서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제시해 주는 한편 여기에 의거해서 성도들로 하여금 이러한 극단적인 두 가지 추구에 대해 전인격적 결단을 통한 단호한 신앙적 선택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1. 세속적 가치 추구의 폐해와 신앙적 가치 추구의 유익(19-21절)

눅12:33,34과 병행을 이루는 본문은 현세적인 삶의 안주와 이기적 탐욕의 충족만을 위해 보이는 것, 곧 일시적이고 임의적일 수밖에 없는 세상적 소유의 탐닉이 가져다 주는 결과적인 허망함을 '땅'(th'" gh'"테스 게스)이란 상징을 통해 피력함과 동시에, 이와는 대조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히11:1)에 의거한 신앙적 가치 추구의 온전한 유익이 하늘(ouvranw우라노)이란 상징 속에서 기술된다.

1) 세속적 가치 추구의 폐쇄
(Mh; qhsaurivzete uJmi'n qhsaurou;" ejpi; th'" gh'", ... kai; o{pou klevptai dioruvssousin kai; klevptousin메 데사우리제테 퓌민 데사우루스 에피테스, 게스…카이 호  클레프타이 디오뤼쑤시 카이 클레프투, 19절)
여기서 '보물'(qhsaurou;"데사우르스)이 가치 추구의 대상물을, '땅'(th'" gh'"데스 게스)이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세속적 가치의 속성을 각각 상징하고 있는 것이란 점에서 본문은 부정사 메(Mh)의 반복적인 동작을 명령할 때 사용되는 현대 명령법이 결합된 형태의 메네사우리제테(Mh; qhsaurivzete쌓아 두지 말라)와 함께 중지할 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쌓기를 그만 두라;Turnur). 한편 여기서 휘민(uJmi'n너희를 위하여)은 20절(너희를 위하여)와 동일하게 개인적인 이익을 가리키는 여격 인칭대명사로 자신에게 있어 궁극적이고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가를 이하 문장과 함께 암시하는 전제의 역할을 한다(Wycliffe). 세스(sh;"좀)와 브로시스(brw'si;"동록)는 성경의 용례상 흔히 세상적 가치의 불완전성과 일시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등장한다(사51:8약5:2,3). 이는 곧 원어상 '보이지 않게 하다', '사라지게 하다'란 뜻의 아파니제이(avfanizei해하며)와 함께 세상적 가치 추구의 결과적 헛됨과 무상함을 적절하게 표현해 준다. 또한 '구멍을 뚫다'(dioruvssousi디오뤼쑤시)는 원어상 '흙을 파내다'란 뜻으로 당시 대부분의 집벽이 흙으로 되어있던 사실에 근거한 비유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헬라어는 '도적'(kleptai)을 '흙을 파내는 자'란 뜻의 토이코뤼코스(toivcoruvco")와 병행에서 사용한다. 따라서 본문은 세속적 가치의 내적 위험(좀, 동록)과 외적 위험(적)을 함께 내포하고 있기에 이러한 내적, 외적 위험의 경고는 세속적 가치의 불완정한 속성을 잘 반영한 것이다. 실로 본문은 배금주의와 물질 만능 사상이 팽배한 오늘의 상황 속에 영원을 사모해야 하는 성도들 각자의 삶의 자리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지향하고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의 실상임을 암시하고 있다.

2) 신앙적 가치 추구의 유익
(qhsaurivzete de; uJmi'n qhsaurou;" ejn oujranw'/데사우리제테 데 휘민 데사우루스 엔 우라논, 20절)
세속적 가치의 상징인 '땅'과 대조적으로 '하늘'(oujranw'/우라노)이 갖는 거룩성, 불가시성, 영원성의 상징을 통해 신앙적 가치 추구의 완전한 유익과 절대적인 안정성을 19절과 동일한 문맥에 부정불변사 우테(oujte)와 우(ouj)의 반복적 삽입으로 강조하고 있다.

3) 가치 판단의 결과
(o{pou gavr ejstin oJ qhsaurov" sou ... hJ kardiva sou호푸 가르 에스틴 호 데사우로스 휘몬…헤 카르디아 휘몬, 21절)
여기서 장소를 나타내는 불변사 호푸(o{pou)는 19절의 '땅'과 20절의 '하늘' 모두를 지칭한다. 이는 곧 '마음'(kardija카르디아)이 전인격적인 좌수로서 인간의 삶의 질과 행동 양식을 규정한다는 당시의 사상에 비추어 세속적 가치 추구와 신앙적 가치 추구의 결과가 극단적으로 상반된 삶의 양태로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러한 상반된 삶의 양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과, 완전한 구원과 축복이라는 또 하나의 상반된 결과를 노출시키게 되는 것이다.

2. 몸의 등불로서의 성한 눈(22절)

눅11:34-36과 병행을 이루는 구절이다. 먼저 눈이 상징적으로 인간의 도덕적 행동 양식을 결정하는 마음을 가리킨다는 점(philo)에서 본문은 23절, 19-21절과 내용상의 연관성을 가진다. 곧 그 마음이 지향하는 바가 세속적 가치인가 신앙적 가치인가에 따라 그의 도덕적 삶의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은 먼저 올바른 눈(마음)이 지향하는 결과를 밝히고 있다.

1) 몸의 등불인 눈
(JO luvcno" tou' swvmatov" ejstin oJ ojfqalmov"호 퓌크노스 투 소마토스 에스틴 호 옵달모스, 22a절)
'눈'(ojfqalmov"옵달모스)은 유대인들의 관념적 내적 감정이 외적으로 표출되는 장소란 점에서 '마음의 창'으로 여겨져 왔다. 따라서 여기서의 '눈'은 인간의 도덕적 양식을 결정하는 '마음'에 대한 상징으로 쓰여진 것이다. 그러나 문자적 의미에서의 '눈' 또한 그 보는 것에 따라 마음의 상태를 결정짓는 동인(動因)이 된다는 점에서 본문의 '눈'은 문자적, 상징적 의미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의미의 '눈'이 인간의 내적, 외적 행동을 규정하고 지칭한다는 점에서 '눈'은 '몸', 곧 그의 전인격과 전삶에 대한 등불로 비유될 수 있는 것이다.

2) 성한 눈
(eja;n de; oJ ojfqalmov" sou aJplou" h/게안데 호 옵달모스 수 하플루스 헤, 22b절)
여기서 '성하면'(aJplou"하플루스)은 원어상 '접힌 곳이 없는'이란 뜻에서 파생된 말로 '순수한'(KJV, Slngle), '단순한'(Simple), '명확한'(Clear), '건전한'(Sound) 등의 다양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성한 눈'이 문맥상 그의 전생애에 내적, 외적 유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그러한 유익을 줄 수 있는 '건강한' 눈이나 마음의 상태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겠다(RSV, Sound;NIV, good). 곧 이 성한 눈은 전문장과의 연계하에 오직 신앙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마음의 상태를 밝히는 것이다. 실로 이러한 상태만이 영원한 유익인 하늘의 상급을 받게 하는 근거가 된다.

3) 성한 눈을 소유한 결과
(o{lon to; sw'mav sou fwteino;n e[stai흘론 토 소마 수 포테이논 에스타이, 22c절)
앞 문장에서 언급한 성한 눈을 소유한 결과로써의 유익이 언급된다. 여기서 '온 몸'은 이미 언급된 바 있듯이 사람의 전인격과 전삶을 상징하는 것이다. 따라서 '밝을 것이요'(fwteino;n ejstai포테이논 에스타이)가 종교적, 도덕적 올바름의 상징적 묘사라는 점에 비추어 본문은 앞서 언급한 '성한 눈', 곧 신앙적 가치 추구에 전력을 다하는 자는 그 결과로 그의 전인격과 삶이 온전한 종교적, 도덕적, 올바름의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영원한 하늘의 유익을 얻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다. 한편 역설적으로 본문은 그러한 올바른 형태의 전인격을 소유한 자라야만 참된 신앙적 가치를 판별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그 가치 판단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역동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3. 몸의 등불 역할을 하지 못하는 눈(23절)

22절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구절로 신앙적 가치 추구에 전념하는 성한 눈과 대조시켜 본문은 세속적 가치 추구에 전념하는 상태를 묘사하는 '나쁜 눈'과 그러한 눈의 소유로 드러나게 될 절망적인 결과를 피력한다.

1) 등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나쁜 눈
(de; oJ ojfqalmov" sou ponhro;" h/데 호옵달모스 수 포네로스 해, 23a절)
본문에서 22절의 '성하면'과 대조적 의미로 쓰여진 '나쁘면'(ponhro;"포네로스)은 '악한', '악의적인'(evil, KJV)이란 원어상 의미 외에 '병약한', '(재물에 대해) 인색한'(LXX역)등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바, 이는 곧 '성한 눈'의 경우와는 달리 신앙적 가치 추구에만 전념하지 못하고 세속적 가치 추구에까지 미련을 두는 이중적 안목(시관 눈의 경우와 같이)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병든 눈은 결국 진정한 지향점을 찾지 못한 채 영적 소경의 상태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24절).

2) 나쁜 눈을 소유한 결과
(o{lon to; sw'mav sou skoteino;n e[stai홀론 토 소마 수 스코테이논 에스타이, 23b절)
'맑음'으로 언급된 '성한 눈'의 결과적 유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구절로 '나쁜 눈'의 결과가 '어두움'(skoteinov"스코테이노스)으로 나타난다. 곧 여기서 '어두움'(스코테이노스)은 완전한 암흑으로써 지척을 분간치 못하는 상태를 암시하는 말인 바, 나쁜 눈을 소유한 자는 결과적으로 진정한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영적 안목을 상실하게 되며 이로써 그의 전인격과 삶(온 몸)이 무모한 방황 속에 버려지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실로 이러한 자는 그 어두움으로 인해 실족하고 넘어지며 궁극적으로 영원한 사망의 심판적 형벌 속에 던지워지게 되는 것이다.

3) 결과적 경고
(eij outo; fw'" to; ejn soi; skovto" ejstivn, to; skovto" povson에이 운토 포스 토 엔 소이 스코토스 에스티, 토 스코토스 포손, 23c절)
다시 한번 나쁜 눈의 부정적 결과에 대한 경고가 부가적으로 기술된다. 먼저 '네게 있는 빛'(to; fw'" to; ejn토 포스 토 엔 소이)에서 '빛'(토 포스)은 원어상 일반적인 '빛'을 가리키는 말이나 본문에서는 22절에서와 같은 '등불'(oJ lucno"호 뤼크노스)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등불'이 성한 눈, 곧 신앙적 가치 추구의 결과로 주어지는 전인격과 삶에 대한 올바름의 상징적 형태란 점에 비추어 본문은 그러한 올바름을 상실한 채 어두움, 곧 그의 전인격과 삶이 악의적인 동기와 행동이 결과로 표출되고 드러날 때 그 결과가 얼마나 절망적인가를 '대단히 심중함', '대단히 큰', '얼마나 많은'이란 뜻의 상관 대명사(포손;얼마나)와 함께 반어법적으로 강조하여 경고한다. 한편 22,23절을 포함해서 19-21절에 언급된 신앙적 가치 추구의 결과적 유익과 세속적 가치 추구하는 24절과 연관된다. 결과는 오직 단 하나만의 진리를 판별하고 그에 따른 온전한 판단과 실천의 삶을 촉구하는 24절과 자연스러운 내용적 연관을 가진다.


마 6:24~34 하나님과 재물

신앙적 승리의 삶

전 단락(19-23절)은 세속적 가치 추구에 대한 경고와 함께 신앙적 가치 추구에 전념할 것을 촉구했다. 이어 본 단락은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에서 신앙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신앙인들로 하여금 오직 궁극적으로 자신의 소유가 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소유함으로써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본문 초두의 '하나님'과 '재물'이란 극명한 대립적 구도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24절). 이는 또한 19-23절에서 언급된 선택과 결단의 문제를 재삼 확인시키는 것이기도 하다(Stott).

1. 하나님과 재물(24절)

신앙적 가치 추구와 세속적 가치 추구의 비교를 통해 그 결과적 유익과 폐해를 설파한 전 단락(19-23절)에 이어 본문은 좀더 구체적으로 그 실질적인 추구의 대상인 하나님과 재물을 대조시켜 과연 신앙인으로서 선택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가 하는 선택적 결단의 문제를 직설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본 절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언급한 눅16:1-13중 13절과 병행을 이룬다.

1)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함
(Oujdei;" duvnatai dusi; kurivoi" douleuvein우데이스 뒤나타이 뒤시 퀴리오이스 둘류에인, 24a절)
'섬기다'(douleuvein둘류에인)는 원어상 종의 신분으로 예속되어 복종하다라는 뜻이므로, 한 사람은 곧 종의 신분을 가진 자를 지칭한다. 곧 당시의 유대적 개념상 종은 오직 한 주인만을 섬기며 전적으로 그의 명령에 순종해야 했다(Tasker). 두 주인을 섬긴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불가능할뿐더러 악의적인 기회주의자의 면모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었다.

2) 두 주인을 섬기는 사실의 폐해
(h] ga;r to;n e{na mishvsei ... kai; tou' eJtevrou katafronhvsei에 가르 톤 헤나 미세 세이…카이 투 헤테루 파타프로네세이, 24b절)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24a절에 대한 구체적인 비유적 용례이다. 곧 본문은 두 주인을 섬김에 있어 한 편에 충실할 수 없다는 사실을 'h... h...'(either…or…)라는 이중 대비로 강조하고 있다. 먼저 그 첫 번째인 '미움'과 '사랑'의 대립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극단적인 대조적 감정으로 결코 조화될 수 없는 것인바, 한 종이 두 주인에게 헌신하며 동일한 감정을 품을 수 없음을 밝힌다. 한편 '이를 중히 여기며'(eJnov" ajnqevxetai헤노스 안데크세타이)의 안데크세타이는 '달라붙다, 꼭 붙잡다, 몸을 바친다'란 뜻을 가진 안테코(ajntevcw)의 미래형으로 이는 그 말의 접두어 안티(aJnti)와 하나를 뜻하는 헤노스(eJnov")와 함께 다른 편에는 등을 돌린 채 한 쪽에만 전적으로 치중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3) 선택적 결단에의 촉구
(ouj duvnasqe qew'/ douleuvein kai; mamwna'/우 뒤나스데 데오 둘류에인 카이 마모나, 24c절)
비유적 용례를 언급한 앞 문장에 이어 이제 직설적으로 섬길 대상에 대한 선택적 결단을 촉구한다. 먼저 '재물'(mamwna'/맘모나)은 일명 맘몬(Mammon)으로 갈대아, 시리아, 카르타고 등지에서 플루투스(Plutus)라는 재물의 신을 지칭할 때 쓰던 말인데 여기서는 재물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쓰여진 말이다. 한편 '대등하게'라는 뜻의 접속사 카이(kai;겸하여)를 통해 본문은 창조주 하나님과 그 피조물된 재물을 의인화시켜 동격으로 쓰고 있다. 이는 그 본질적 의미(창조주와 피조물)에서 암시되듯이 결코 하나님과 재물이 동등한 섬김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재물이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삶의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섬김을 받으실 유일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2. 신앙적 삶의 영위(25-32절)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님만을 섬김의 대상으로 하며 참된 신앙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신앙인들의 삶 속에서 부딪칠 수 있는 세상적 문제에 연연하지 말 것을 교훈한다. 곧 눅12:23,24과 병행을 이루는 본문은 '이로써'라는 뜻의 디아 투토(Dia; tou'to그러므로)란 말을 통해 이하 문장이 하나님과 재물 중 하나님을 섬김의 대상으로 택한 신앙인들에게 주어지는 교훈적인 삶의 지침임을 시사한다.

1) 세상의 삶을 염려치 말 것
(Dia; tou'to ... mh; merimna'te th'/ yuch'/ uJmw'n ... mhde; tw'/ swvmati uJmw'n tiv ejnduvshsqe디아 투토…메 메림나테 테 프쉬케 휘몬,…메데 토 소마티 휘몬, 티 엔뒤세스데, 25a절)
디아 투토는 문자적으로는 '이것 때문에'이다. 예수님이 후에 말씀하시는 이유를 설명한다. '목숨'으로 번역된 프쉬케(yuch'/)는 일반적 의미에서의 '몸', 곧 소마(sw'ma) 속에서 작용하는 생명의 원리적 측면이다. 즉 생명 또는 그것을 부지하기 위한 생리적 작용을 가리킨다(McNile). 본문에서 이 '프쉬케'와 '소마'가 함께 언급된 것은 인간의 총체적 삶의 속성을 포괄적으로 지시하기 위함이다. 한편 본문에서 '염려'(merimna'te메림나테)는 '흩어지다. 나뉘다'란 뜻의 메리조(mhrivxw)에서 파생된 말로 심각한 근심이나 걱정 때문에 그 마음이 분열되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은 인간이 그 물질적 삶의 유지 때문에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은 자칫 그 마음의 분열로 인해 삶의 진정한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것이다(눅10:40,41).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 염려할 대상은 육적인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일인 것이다(고전7:32빌2:20).

2) 신앙적 확신을 위한 비유적 교훈
(ejmblevyate ... ouj pollw'/ ma'llon uJma'", ojligovpistoi엠블레프사테…우 폴로 말론 휘마스, 올리고 피스토이, 26-30절)
본문의 비유적 교훈의 핵심어는 '보라, 너희는…귀하지 아니하냐'로 요약될 수 있다. 먼저 26절의 '보라'(ejmblevyate엠블레프사테)는 '주목하여 보다, 숙고하다'란 뜻인 엠블레포(ejnblepw)의 부정 과거 명령형으로 28저의 '생각하여 보라'(katamavqete카타마데테)와 동일한 의미다. 그리고 전우주적인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나타내는 천부께서 기르시나니와 함께 자연계의 일반적인 현상들 속에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을 지속적으로 주의 깊게 살펴서 발견하라는 뜻이다. 한편 다음 문장에 있어서 '다르다, 구별되다'란 뜻의 디아페로(diafevrw귀하지)는 비교급 부사 말론(ma'llon더욱더, 오히려 훨씬)과 함께 본 단락에 언급되는 비유의 대상(새, 백함화, 들풀)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사람의 극적인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말이다. 본 단락의 마지막에 언급된 '믿음이 적은 자들'(ojligovpistoi올리고피스토이)은 유약한 신앙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모든 세상적 염려와 근심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된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3) 교훈의 확증
(mh; oumerimnhvshte ... oiga;r oJ path;r uJmw'n oJ oujravnio" o{ti crhv/zete touvtwn aJpavntwn메 운 메림네세테, …오이덴 가르 호 파테르 휘몬 호 우라니오스 호티 크레제테 투톤 하판톤, 31,32절)
31절의 불변사 ou(운;그러므로)은 후치사(後置詞)로 '이미 말한 대로, 따라서'란 뜻을 가진다. 이는 본 단락이 앞서 언급한 비유적 교훈을 다시 한 번 확증하고 있는 것임을 밝힌다. 한편 31절은 25절과 동일한 반복으로 여기서의 '염려하지 말라'(mh; merimnhvshte메 메림네세테)는 부정 과거형으로 25절과 같이 절대적인 금지 사실을 의미하므로 세상적 삶에 대한 염려를 조금도 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32절은 세상적 염려를 극복하고 신앙적 가치만을 추구하려는 신앙인들에게 크나큰 위로와 소망을 준다.

3.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33,34절)

19절부터 이어진 신앙적 가치 선택 촉구의 최종적 결론부인 동시에 5장부터시작된 산상수훈의 핵심 부분이다. 곧 본문은 신앙인들이 추구하는 신앙적 가치의 궁극적인 귀결점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義)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신앙인들이 이 땅 위에서 추구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란 사실을 주지시킨다.

1)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
(zhtei'te de; prw'ton th;n basileivan 퍁ou' qeou'■kai; th;n dikaiosuvnhn aujtou'제테이테 데 프로톤 텐 바실레이안 투 데우 카이텐 디카이오쉬넨 아우투, 33a절)
여기서 '그의 나라'(th;n basileivan 퍁ou' qeou'■텐 바실레이안 투 데우)는 곧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되었으며 종말론적으로 완전하게 성취될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킨다. '그의 의'(th;n dikaiosuvnhn aujtou텐 디카이오쉬넨 아우투)는 신학적 의미에서 칭의(稱義)가 아니라 19절 이하의 내용과 산상수훈 전반에 걸쳐 언급되고 있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적 삶의 구체적인 실천 지침들을 지시한다. 따라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진력하며 최종적으로 성취될 그 나라의 비전을 소유한 채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가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한편 본문은 초두의 부사 '먼저'(prw'ton프로톤)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신앙인들에게 있어 최우선적으로 주어진 급박한 과제임을 암시하고 있다.

2) 구함의 결과적 유익
(kai; tau'ta pavnta prosteqhvsetai uJmi'n카이 타우타 판타 프로스테데세타이 휘민, 33b절)
접속사 카이(kai그리하면)를 통해 본문이 앞 문장의 결과적 사실이란 것을 밝힌다. 여기서 '이 모든 것'(tau'ta pavnta타우타 판타)은 25,31절에 언급된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필요 조건을 가리킨다. 프로스테데세타이(prosteqhvsetai더하시리라)는 수동태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진심으로 구하고 찾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세상적인 필요 조건은 물론이고 영적 안녕과 하늘의 상급까지 더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딤전4:8,Origen).

3) 내일 일을 염려치 말라
(mh; oumerimnhvshte eij" th;n au[rion, ... ajrketo;n th'/ hJmevra/ hJ kakiva aujth'"메운 메림네세테 에이스 텐 아우리온…아르케톤 테 헤메라 헤 카키아 아우테스, 34절)
본절은 본 단락의 부가적 기록으로 모든 인간에게 있어 최종적인 근심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내일'(au[rion아우리온)에 근심스런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어떠한 세상적 근심에도 얽매이지 말고 신앙적 확신 속에 거할 것을 재삼 촉구한다. 여기서도 25,31절과 동일한 부정 과거형인 메 메림네세테(mh; merimnhvshte)가 쓰여졌는 바, 그 근심에 대해 철저한 배격을 촉구한다. 한편 괴로움으로 쓰인 카키아(kakiva)는 문자적으로 나쁜 것, 불완전한 것, 악(도덕적 의미에서의)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견디기 힘든 고충이나 자연 재해로 인한 농작물의 손실과 같은 불행함 등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이는 곧 삶의 자리에서 순간 순간 부딪히는 현실적인 고난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은 충분하다란 뜻의 아르케톤(ajrketo;n족하니라)과 함께 유약한 인간에게 있어 괴로움으로 인한 염려는 그날 하루의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교훈한다. 동시에 내일 일은 모든 시간과 공간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의 섭리하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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