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의 산책

존브라이트 4. 파기된 언약과 새 언약

by 은총가득 2020. 9. 17.

4. 파기된 언약과 새 언약 (1)


앗수르의 몰락과 유다의 마지막 희망

 

오늘날은 그 어떤 때보다 ‘예의’와 ‘따스함’, ‘감정 이해’가 강조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강마에의 독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도 있습니다. 진실을 왜곡시키는 따스함이야 말로 가장 비열하고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기분좋고 긍정적인 거짓말’에 취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각성시키려 한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눈물의 선지자라 불리는 '예레미야'입니다.
다시 남왕국 유다의 역사를 간략히 복습해 봅시다. 북왕국과 아람 연합군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아하스 왕은 이사야 선지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국 앗수르에 손을 내밀게 됩니다. 그 효과는 확실했습니다. 앗수르는 북왕국과 아람을 멸망시켜버립니다. 그러나 잠시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자유를 팔아먹은 꼴이 되어버린 유다는 사실상 앗수르의 속국이 되고 맙니다.
아하스의 뒤를 이은 히스기야 왕은 민족주의 정책으로 독립을 쟁취하려 했으나 이를 응징했던 제국의 말발굽에 나라 전체가 폐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극적인 개입으로 예루살렘만 무사했을 뿐입니다. 위태로운 나라의 상황 가운데 히스기야 왕도 죽음을 맞이하고 므낫세 왕이 즉위합니다.


다시 원점으로, 아니 나락으로 떨어진 유다
예루살렘을 포위하다 뜨거운 맛을 본 산헤립은 결국 암살당하지만, 앗수르는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제국의 위용을 유지했습니다. 특히 B.C 670년경 감행한 애굽 침공이 성공을 거둠으로써 앗수르는 절정의 지배력을 차지하게 됩니다. 애굽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권력의 균형을 맞춰줄 수 있는 유일한 국가였는데, 그 애굽이 꺾여버린 것입니다. 이제 그 누구도 앗수르에 반란을 일으킬 수도, 그것을 도와줄 수도 없었습니다.
히스기야의 뒤를 이은 므낫세 왕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서아시아의 작은 국가가 앗수르의 지배를 벗어난다는 것은 자살 행위였습니다. 유다는 앗수르에 예속되었고 므낫세 치하에서 전례없는 우상숭배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는 앗수르의 봉신으로서, 적극적으로 제국 종교를 도입하였습니다.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파괴하고 없애버린 모든 우상들을 다시 세웁니다. 그리고 북왕국의 가장 악한 왕을 연상시킬 정도로 하나님을 진노케 합니다.

 

 

므낫세는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없앤 산당들을 다시 짓고 바알을 위해 제단들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처럼 아세라 우상을 만들었으며 하늘의 온갖 별들을 예배하고 섬겼습니다.
므낫세는 여호와께서 "내가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둘 것이다"라고 하셨던 여호와의 성전에 제단들을 쌓았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성전 안에 있는 두 뜰에 하늘의 별들을 섬기는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까지도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는 요술을 부렸으며 표적과 꿈을 풀어 점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는 무당과 점쟁이를 불러 의논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악하다고 말씀하신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만들었습니다. (열왕기하 21:3~6, 쉬운성경)


역대하는 므낫세 왕이 앗수르 군대에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건을 다룹니다(역대하 33장 참조). 그곳에서 그는 고통 가운데 회개하였고, 하나님의 자비로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됩니다. 이후 므낫세 왕은 우상숭배 정책을 중단했지만, 그가 통치한 55년의 유다는 더이상 하나님의 멸망 선고를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죄악으로 얼룩져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나 야훼가 선언한다. 나 이제 듣는 자마다 가슴이 내려앉을 재앙을 예루살렘과 유다에 내리리라.
사마리아를 허물 때 쓰던 측량줄과 아합의 궁궐을 허물 때 쓰던 다림줄을 대고 예루살렘을 허물어버리리라. 사람이 접시를 뒤집어 닦듯이 예루살렘 안팎을 말끔히 씻어버리리라.
내가 남아 있는 나의 백성을 버려 원수들의 손에 넘겨주면 모든 원수들이 달려들어 모조리 털어갈 것이다. (열왕기하 21:12~14, 공동번역)

 


사로잡혀 회개하는 므낫세 왕

 


짧고 허무하게 막을 내린 앗수르 제국
앗수르는 그 강력한 힘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으로 신속하게 사라지게 됩니다. 붕괴는 내부에서부터 일어났습니다. 피지배 민족의 반란 진압을 위한 끊임없는 군대 차출로 민심이 흔들렸고, 결국 끔찍한 4년의 내란이 일어나버렸으며(사마쉬-숨-우킨의 반란), 그 결과 제국의 기초가 흔들리게 됩니다.
뒤이어 애굽을 비롯한 피통치 국가들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로마가 훗날 겪게될 것과 같이- 북방의 야만 민족으로부터 공격을 받습니다. 결국 야만족을 이용하여 야만족을 막는 정책이 한계에 다다르자 앗수르는 메대와 바벨론의 협공으로 무너져버립니다. B.C 612년, 메대와 바벨론은 최후의 공격을 감행했고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는 함락되고 맙니다.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제국이 순식간에 멸망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나훔 선지자를 통해 미리 말씀하신 내용이었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너를 피해 가며 비웃으리라. '니느웨가 기어이 망했구나. 누가 가엾게 보아주랴. 위로해 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구나!' (나훔 3:7, 공동번역)

 


「니느웨의 멸망」, John Martin


앗수르가 멸망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네. 유다가 해방을 얻은 것입니다. 제국의 위용에 벌벌떨던 팔레스타인 지역의 나라들은 잠시나마 자유를 얻게 됩니다. 서아시아를 휘어잡을 나라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한편 유다에서는 므낫세가 죽고, 그의 아들 아몬이 즉위하였지만 아버지의 못된 면만 배워 또다시 배교를 시도합니다. 그 가운데 왕궁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아몬의 통치는 2년으로 종결됩니다. 그리고 므낫세의 또 다른 아들인, 소년 '요시야'가 8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릅니다. 앗수르가 멸망하고 유다가 독립을 쟁취한 시기는 그가 성인이 될 즈음이었습니다.

 


유다 최후의 희망, 요시야 왕


저자는 요시야 왕의 개혁에 대해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획기적이고 중요한 사건"이라고 서술합니다. 그는 어둠과 멸망으로 치달아가고 있는 유다를 마지막으로 유턴시켜보려 했습니다. 그의 개혁은 열왕기하 22~23장에 나타나는데, 선대 왕 히스기야가 시행했던 것을 뛰어넘는 수준이었습니다. 간단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모든 이교는 철저히 소탕되었습니다. 성경이 그의 개혁을 묘사하며 사용하는 단어들을 살펴볼까요? "태우다", "재로 만들다", "쫓아내다", "헐다", "부수다", "없애다", "베어버리다".... 이처럼 그는 유다 전역에 퍼져 있는 우상과 미신, 산당들을 박멸했습니다.


율법 중심의 개혁이 시행되었습니다. 요시야가 성전 수리를 지시한 후, 대제사장 힐기야가 그곳에서 율법책을 발견하게 됩니다(추정컨대 신명기 법전). 그 내용을 읽은 왕은, 율법이 선언하는 심판의 단호함과 민족의 죄악상을 실감하고 슬퍼 옷을 찢습니다. 그리고 백성들과 함께 율법을 철저히 지킬것을 서약합니다. 요시야 왕에 이르러 처음으로 유월절을 지키게 됩니다.


종교적 개혁의 범위는 옛 북왕국의 산당까지 이루어졌습니다. 요시야는 제국의 멸망으로 지배력이 약화된 북왕국 영토까지 정화했습니다. 이는 그가 사실상 사마리아의 영토까지 합병했음을 의미합니다.
요시야와 같은 왕은 전에도 없었고 그 뒤에도 없었습니다. 그는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가르침을 다 지켰습니다. (열왕기하 23:25, 쉬운성경)


성전을 수리하는 도중 율법책을 발견하다

 

 


이러한 개혁의 분위기 속에 백성들은 다시금 소망의 끈을 붙들게 됩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신의 운명을 발견했다면, 아니 그들이 살아남고자 한다면 이방신들을 물리치고 오로지 여호와만을 섬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보게 될 예레미야라는 선지자는 바로 아래와 같은 소망이 피어오르던 배경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라는 거인을 멸망시키시고,
이스라엘이 회개할 마지막 기회를 주시기 위해
이 자유의 순간을 허락하셨을지도 몰라!

 

 

 

4. 파기된 언약과 새 언약 (2)
요시야 왕과 선지자 예레미야

앗수르의 멸망으로 인해 유다는 속국의 신분을 벗어버리고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므낫세 왕의 아들 요시야는 어린 나이에 즉위했고, 성인이 될 무렵 유다를 총체적으로 개혁하기 시작합니다. 히스기야가 이루어놓은 개혁을 므낫세는 뒤엎었고, 요시야는 그것을 다시 일으킵니다. 때마침 성전을 수리하다가 신명기로 추정되는 율법서가 발견되고 그 내용을 읽은 요시야 왕은 충격을 받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이 나라는 멸망의 운명을 피해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방의 양식들을 흔적도 없이 제거했고, 율법대로 살기를 백성들과 함께 결단했으며 처음으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의 개혁은 멸망한 북왕국에까지 뻗어갔습니다. 백성들의 마음 가운데서는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실 것이다"는 소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예레미야라는 선지자가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북동부에 있는 동네인 아나돗의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초기 행적은 전혀 알 길이 없고, 그가 갓 소년 티를 벗었을 때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는 그것을 무척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아! 야훼 나의 주님, 보십시오. 저는 아이라서 말을 잘 못합니다." 하고 내가 아뢰었더니,


야훼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아이라는 소리를 하지 마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야 하고, 무슨 말을 시키든지 하여야 한다." (예레미야 1:6~7, 공동번역)
선지자 초기 시절, 예레미야는 이방 종교에 깊은 충격을 받았고 배은망덕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맹렬히 비난합니다. 그가 주목한 이스라엘의 죄는 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어떤 민족과 비교해도 이런 배교를 행한 나라는 없었고, 자신들의 하나님을 이토록 철저히 버린 경우는 없었습니다. 호세아의 영향을 받은 그는 이스라엘을 '음녀'라고 선언합니다.
지중해의 섬나라들에 건너가 보아라. 케달에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아라. 이런 일이 과연 있을 수 있는가를.
어떤 민족이 섬겨오던 신을 바꾸어 신도 아닌 것을 섬기는 일이 있더냐? 그런데 내 백성은 영광스럽게 모실 나를 버리고 아무 데도 쓸모없는 것을 잡았다.


하늘도 놀랄 일이다. 기가 막혀 몸서리칠 일이다. 이는 내 말이니, 잘 들어라.
나의 백성은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생수가 솟는 샘인 나를 버리고 갈라져 새기만하여 물이 괴지 않는 웅덩이를 팠다. (예레미야 2:10~13, 공동번역)
이 땅은 부정을 타서 소나기가 멎고, 봄비도 내리지 않게 되었다. 이마가 뻔뻔스런 창녀처럼, 너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지금도 나를 아비라고 부르기도 하고 젊은 날의 애인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아무렴, 끝없이 화를 내시지는 않을 거야, 언제까지나 진노하시지는 않을 거야.' 이런 말을 하면서 못하는 짓이 없었다. (예레미야 3:3~5, 공동번역)


지금까지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기만 했지, 그것을 경험하지는 못한 채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 모든 멸망의 과정들을 최후까지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예언은 피를 토하는 선포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별명이 괜히 눈물의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항상 죽음의 위협이 그를 따라다녔고, 매국노라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총 세 명의 왕을 지켜보게 됩니다. 우리가 지난시간부터 살펴본 요시야,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여호야김(즉위하자마자 포로로 끌려간 여호야긴은 생략),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그들입니다.
예레미야와 유다의 마지막 왕들
일단 위의 그림을 한 번 주목하고 다음으로 넘어갑시다(예레미야 선지자의 메시지 이해를 돕기 위해 열심히? 그려보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통치에 가장 근접했던 요시아 왕을 시작으로 두 악한 왕을 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당하고 말지요. 우선 첫 왕인 요시야 왕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요시야 왕의 개혁, 그 한계
요시야 왕의 개혁은 분명 놀랄만한 것이었고, 이스라엘과 유다의 몰락한 역사를 지켜보았을 때 눈물겨울 정도의 분투였습니다. 분명 예레미야는 그 개혁을 지지했지만, 한계점도 보았습니다. 선지자는 성전 앞에서 예배드리러 오는 이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이것은 야훼의 성전이다, 야훼의 성전이다, 야훼의 성전이다, 한다마는 그런 빈말을 믿어 안심하지 말고 너희의 생활 태도를 깨끗이 고쳐라. 너희 사이에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여라.
....
너희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데려내올 때, 내가 번제와 친교제를 바치라고 한 번이라도 시킨 일이 있더냐? 나는 내 말을 들으라고만 하였다. 그래야 내가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된다고 하였다. 잘되려거든 내가 명하는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고 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나의 말을 듣기는커녕 제멋대로 악한 생각에 끌려 나에게 등을 돌리고 나를 외면하였다.(예레미야 7:4~24, 공동번역)

 


성전 앞에서 설교하는 예레미야 (예레미야 7장)


이 당시의 분위기를 어떻게 비유할 수 있을까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불량 학생들이 가득한 한 고등학교에 기독교 재단이 들어왔습니다. 이사장과 교장은 적극적으로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고 복지를 갖추며, 학교를 미션스쿨로 만들었습니다. 교사들은 전원 기독교 신자로 교체되었습니다. 유명한 찬양팀을 섭외하여 매주 강당에서 예배와 콘서트를 열었고 수업은 늘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채 여전히 비행을 일삼을 뿐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들의 흥에 맞춰주는 찬양팀의 콘서트에서는 춤추고 뛰며 열광했습니다. 학생들의 삶은 하나도 바뀌지 않은 채 겉모습만 변한 것이지요.
예레미야는 개혁 분위기로 뒤덮인 유다 사회가 이와 같다고 진단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전 안에 짙게 깔린 커다란 덩어리의 분향 연기만 일으키고 수많은 예배자들로 인한 혼잡만 있을 뿐, 참된 하나님의 의도를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사회악은 계속되었고(5:23~29), 성직자는 사람들의 비위에 맞춰 행동했으며(5:30~31), 참된 회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의 가장 큰 오류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평강이 지금 우리에게 있다!"고 선언하는 성직자의 말을 순진하게 믿은 것입니다.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레미야는, 유다를 하나님의 참된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요시야의 개혁 이상이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저자는 예레미야가 느낀 요시야의 개혁을 '히드라의 머리만 자르는 수준'이었다고 표현합니다. 선지자가 보기에도 그 개혁은 -정말 필요한 것이었지만- 허약한 잎들과 가지만 잘랐을 뿐 줄기는 전혀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배와 절기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조차 무시되던 악습이 다행히 개혁되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공예배는 1순위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만 준수한다고 해서 손을 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핵심은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순종하는 백성들만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 속에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중심의 회개를 요청합니다. 선지자는 이것을 '마음의 할례'로 표현합니다.


이제 나 야훼가 유다 국민, 예루살렘시민에게 말한다. 엉겅퀴 속에 씨를 뿌리지 말고 땅을 새로 갈아엎고 심어라.
유다 국민들아, 예루살렘 시민들아, 할례를 받아 나에게 몸을 바쳐라. 마음에 수술을 받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의 사악한 행실을 보고 화를 내어 불처럼 너희를 태우리니, 그 불을 꺼줄 사람이 없으리라. (예레미야 4:3~4, 공동번역)
그러나 예레미야에게 있어 요시야 왕은 분명한 하나님의 선한 도구였으며, 충성된 종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의 통치활동에 혹평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요시야가 북방의 벧엘에까지 개혁의 손길을 뻗쳤을 때 선지자는 그 행동을 예찬했으며, 멸망한 사마리아의 회복을 예언하는 영감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요시야 왕의 죽음
이러한 요시야 왕의 죽음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가장 두렵고 슬픈 사건이었습니다. 앗수르의 멸망 이후 무주공산이 된 팔레스타인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가장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애굽이었습니다. 파라오는 고대 제국을 재건하려는 야망을 실천에 옮기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유다의 종주국을 앗수르에서 애굽으로 교체할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B.C 609년, 애굽의 느고가 바벨론으로 출병할 때 요시야 왕은 므깃도의 통로에서 그를 방해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그 전투에서 요시야는 전사하고 맙니다(열왕기하 23:28~30). 유다의 독립은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급히 왕위에 올랐지만 파라오는 그를 폐위시키고 그의 형제인 여호야김을 왕위에 앉힙니다. 그리고 유다에는 무거운 조공이 지워졌습니다. 애굽의 속국이 된 것이지요.
여호야김은 모든 면에서 그의 아버지를 닮지 않았습니다. 이제 예레미야는 요시야와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여호야김과 싸워야 했습니다. 기울어지는 유다의 운명과 함께 선지자의 예언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었습니다.

 

4. 파기된 언약과 새 언약 (3)
여호야김, 시드기야 그리고 예레미야

요시야 왕의 개혁은 어둠으로 추락하는 유다에 마지막 희망을 주었습니다. 비록 그 개혁이 근본적인 백성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해도, 요시야는 하나님의 통치에 부합하는 왕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애굽과의 므깃도 전투에서 허무하게 죽고 맙니다. 유다의 독립은 15년을 채우지 못한 채 마감되었고 다시 애굽을 주인으로 섬기게 됩니다. 요시야의 뒤를 이은 여호야김은 아버지와 너무 다른, 악한 왕이었습니다.
여호야김의 실정(失政)


여호야김은 경솔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왕으로서는 부적합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었을 때, 애굽은 유다에 무거운 조공을 부담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여호야김의 첫 정책은 새롭고 화려한 궁전을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국고는 탕진되었고 백성들은 강제노역에 동원되었습니다.
여호야김과 예레미야 사이에 화평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선지자는 혹독하게 여호야김을 비난합니다. 화려한 백향목 궁궐을 짓는다고 네가 위대해 지겠냐고, 네 아버지 요시야 왕을 기억하고 배우라고 말입니다.
네 집에 백향목이 많다고 해서 네가 위대한 왕이 되겠느냐? 네 아버지는 먹고 마시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는 옳고 바르게 살았기 때문에 하는 일마다 잘 되었다.
그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의 사정을 들어 주었다. 그래서 하는 일마다 잘 되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 (예레미야 22:15~16, 쉬운성경)
여호야김 치하에서 개혁은 그 최후의 흔적마저 사라져버렸습니다. 왕은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에 관심이 없었고 인격적으로도 미성숙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백성들의 마음들도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개혁에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회개하고 개혁에 동참했는데 복을 안 주시네."
백성들은 인내하지 못했고, 다시 이방 신들을 섬겼습니다. 뇌물을 먹은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걱정하지 마라. 예루살렘과 성전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토록 부패한 국가와 완전한 결별을 선언합니다. 그들이 순종하지 않았기에 이제 더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미 애굽의 속국이 되어 재앙을 겪고 있잖아."
아닙니다! 재앙은 북방에서 내려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무서운 원수인 바벨론을 움직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곧 쑥대밭이 될 것입니다.


야훼의 말이다. 북녘 땅 한 끝에서 한 강대국이 일어나 쳐들어온다. 활과 창을 움켜잡은 잔인무도한 자들이 설레는 바다같이 고함지르며 말타고 달려온다. 수도 시온아, 너를 쳐부수려고 일제히 무장하고 나섰다. (예레미야 6:22~23, 공동번역)
"아니, 이곳은 여호와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인데? 앗수르의 대군도 결국 포위를 풀 수 밖에 없었던 신성한 곳인데? 어떤 적도 하나님이 지키시는 이곳을 점령할 수는 없어."


이에 대해 예레미야는 "절대 아니다"라고 답합니다. 예레미야는 이에 대해 이미 요시야 왕 때 설교한 바 있습니다.
"예전 사사시대의 실로를 기억해 보라. 법궤가 있었던 그곳을 하나님은 쑥대밭이 되도록 내버려두셨다. 너희가 죄악 가운데 있는 한, 지금 이 성전은 너희에게 아무런 보장도 될 수 없다." (예레미야 7장 참조)
예레미야는 이러한 발언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습니다. 신성모독을 범했다는 것이지요. 제사장과 방백들, 폭도들이 그를 수시로 죽이려 했습니다. 요시야 시절 함께 개혁에 동참했던 일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예레미야는 일찍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그때부터 예레미야의 삶은 핍박의 역사였습니다. 조롱거리가 되거나 추방당하는 것은 보통이었고, 심지어 고향사람들마저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예레미야 11:18~23 참조) 예루살렘이 깨진 옹기그릇과 같이 회복 불가능하게 파멸되리라는 예언을 한 후에는, 사로잡혀 밤새도록 착고에 채워졌습니다. 얼마동안 그는 성전 출입조차 금지당했습니다.

 


옹기그릇을 깨뜨리며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는 예레미야, James Tissot

 

 

최후의 기회
B.C 600년 경, 바벨론은 엄청난 제국으로 성장하여 팔레스타인에 손을 뻗칩니다.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은 그 지역의 패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애굽과 피할 수 없는 결전을 펼치게 됩니다. 이것이 갈그미스 전투(B.C 605)이고, 이 전투로 애굽은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느부갓네살이 부친상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바벨론은 황급히 군대를 본국으로 돌리게 되고 서아시아 지역은 잠시의 공백 상태를 맞이합니다.
애굽은 꺾여버렸고 바벨론은 언제 다시 내려올지 모르는 상황... 누구의 편이 되어야 하는가? 어떤 선택이 살 길인가? 여호야김 왕과 방백들은 극도의 혼란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 해 예레미야 선지자는 왕에게 마지막 경고를 가하는데 총력을 집중합니다. 어쩌면 이 극한 상황이, 왕으로 하여금 회개의 자리로 나오게 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내가 온갖 재앙을 내리기로 하였다는 말을 듣고, 유다 가문이 그 못된 생활 태도를 고칠지 아느냐? 고치기만 한다면 나는 그 악한 죄를 용서하여 주리라 (예레미야 36:3, 공동번역)
선지자는 자신의 메시지를 친구인 서기관 바룩에게 대필하도록 했고 바룩은 그것을 대중들 앞에서 낭독합니다. 방백들은 그 예언의 말씀에 놀랐고 깊이 감명을 받았습니다.
"왕께서도 이 말씀을 들으셔야 한다."
방백들은 바룩의 두루마리를 여후디에게 전달하여 왕 앞에서 읽게 합니다. 그러나 삼편, 사편을 낭독했을 때 여호야김은 오만한 태도로 두루마리를 빼앗아 칼로 베어 화롯불에 던져 태워버립니다. 이 일로 예레미야는 국가를 멸망으로부터 구할 의욕을 완전히 상실합니다.

 

 

 

예언의 두루마리를 태워버리는 여호야김 왕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여호야김은 결국 바벨론에 반역했고 예루살렘은 포위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점에 여호야김은 편리하게도 세상을 떠나버립니다) 그의 아들 여호야긴은 항복했으며, 바벨론은 시드기야를 지배자로 세운 후 여호야긴을 포함한 왕족, 관리, 핵심국민들을 바벨론으로 강제 이송시킵니다. (2차 포로)
시드기야 왕은 불안해하기만 한 채 아무 것도 하지 못했으며, 낙관적인 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바벨론의 멍에를 곧 꺾으시고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그것도 2년 안에!) 예언하며 왕과 백성들을 부추켰습니다. 시드기야는 그들의 말에도 귀기울였다가, 예레미야를 몰래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묻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말을 들은 그는 고민만 하다가 끝내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합니다.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예언자 예레미야를 여호와의 성전 셋째 문으로 데려왔습니다. 왕이 예레미야에게 말했습니다. "물어 볼 것이 있으니 아무것도 감추지 말고 정직하게 말해 주시오."
...
그 말을 듣고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말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바빌로니아 왕의 신하들에게 항복해야 한다. 그러면 네 목숨을 건질 수 있겠고 예루살렘은 불에 타지 않을 것이며 너와 네 집이 살아남을 것이다.'"
...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바빌로니아 군대에게 항복한 유다 사람들이 두렵소.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나를 그들에게 넘겨 주면 그들이 나를 학대할 것이오." (예레미야 38:14~19, 쉬운성경)
유진 피터슨이 예레미야에 관해 쓴 책 「주와 함께 달려가리이다」(IVP)에서 시드기야에 관해 서술한 평은 주목할 만 합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생애 전체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사람 중 하나였음이 틀림없다.
요시야는 그의 친한 친구였다.
여호야김은 그의 지독한 적이었다.
그런데 이 왕은 형체가 없었다. 선한 일이든 나쁜 일이든 상관없이 그는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예레미야는 국가의 명운은 확실하게 끝났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한결같이 최악의 재난을 예언하였고, 히스기야 시절의 기적이 다시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백성들을 향해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지금 유다가 아닌 바벨론의 편에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예레미야 21:3~5). 이제 백성들이 살 길은 단 하나,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메고 하나님의 징계를 달게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백성들에게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일로 그는 지하감옥에 던져졌고, 죽음 직전에 한 노예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집니다.
반바벨론 동맹은 다시 시도되었고,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재 포위했습니다. 애굽의 원병은 참패했으며 결국 예루살렘의 운명도 마감되었습니다. 시드기야는 도망을 쳤고, 결국 잡혀 심문을 당하고 아들들이 눈 앞에서 죽임당하는 것을 본 후, 눈이 뽑힌 채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유다가 끝까지 믿고 자랑하던 성읍과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백성들도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이것이 바벨론 3차 포로입니다. 유다는 완전히 멸망한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까지 시종일관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의 관점에서 본다면 예레미야가 한 일은 도대체 무엇일까 의아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에 엄청난 기여를 하였습니다!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나라를 잃어버린 유다 백성들의 마음 속에 남아, "끝났지만 결코 끝나지 않았다"는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는 어떤 소망을 선포한 것일까요?

 

 

4. 파기된 언약과 새 언약 (4)
진정한 소망을 외친 예레미야

 

예레미야의 생애는 그의 별명에 걸맞게 눈물로 점철된 시간들이었습니다. 유일한 소망이라 여겼던 요시야 왕은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고, 여호야김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했으며, 시드기야는 나라의 멸망 앞에서 우유부단한 모습만 보이다가 비참한 말년을 맞이하고 맙니다. 이 모든 과정들을 지켜보며 선지자는 애통하는 심정으로 심판과 멸망의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경고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으며, 나라는 망해버렸습니다. 예레미야에게는 '매국노'라는 딱지가 붙여졌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멸망 후, 그 땅에 남아있던 예레미야는 국수주의자들의 테러에 휩쓸려 애굽으로 끌려가 생애를 마감합니다.
실패로 끝나버린 것 같은 그의 인생... 그러나 그가 던진 소망의 메시지는 오래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크나큰 소망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그 메시지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국가라는 체제를 넘어 바라본 소망
줄곧 멸망을 외쳤왔던 예레미야는 사실 소망을 포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째서 그러할까요? 예레미야에게 있어 유다의 멸망은 끝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거짓 선지자들과 대부분의 백성들에게 유다의 멸망은 종말을 의미했습니다. 그들은 멸망이라는 것을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멸망은 하나님의 패배를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선지자가 그리했듯이- 국가에 소망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냉정히 돌아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가 부강해지고 탄탄한 체계를 갖출 때 신속히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가나안 정복 직후가 그랬고 솔로몬 시대가 그러했으며, 분열 왕국때도 형편이 나아지기가 무섭게 그들은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감수성이 민감해지고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이 돋아날 때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방의 손 아래에 두시거나 흩으실 때였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죄악의 수레바퀴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것도 오히려 귀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국가의 멸망을 원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표적인 메시지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보여주신 무화과 광주리의 환상입니다. 예레미야 24장을 살펴보겠습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처음 포위했을 때, 여호야김이 죽고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릅니다. 여호야긴이 항복하자 바벨론은 그를 포함한 유다의 수많은 왕족과 귀족들, 그리고 엘리트들을 데려갑니다. 젊은 제사장 에스겔도 이 때 끌려갔습니다. 이것이 2차 포로입니다. 당시에는 이동 수단이 두 다리밖에 없었으므로 바벨론까지 먼 거리를 걸어야 했던 포로들의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 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다와 엄청난 거리에 있는 바벨론으로 한 번 끌려가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는 것이 기정 사실이었겠지요. 포로로 끌려가게 된 사람들의 정신적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까요? 반대로 끌려가지 않고 유다에 남게 된 사람들은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까요?
이 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두 무화과 광주리가 나타납니다. 한 광주리에는 싱싱하고 먹음직한 무화과가 담겼고, 다른 하나에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썩은 무화과들이 있었습니다.

 

좋은 무화과 vs 썩어 먹을 수 없는 무화과
하나님은 이 환상을 해석해 주시며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좋은 무화과는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포로들을 의미했습니다.
... 나는 (포로로 끌려가는) 그들을 이 좋은 무화과처럼 잘 돌보아 주리라. ... 나를 알아보는 마음을 주어,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나 야훼인 줄 알게 하겠다. 그리하면 이 백성이 진심으로 나에게 돌아와 내 백성이 되고 나도 그들의 하느님이 되리라. (예레미야 24:5~7, 공동번역)
그리고 썩어 먹을 수 없는 나쁜 무화과는 바로 유다에 잔류하게 되는 왕과 백성들을 가리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유다 왕 시드키야와 그의 고관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살아 남은 자들 가운데 국내에 남아 있는 자나 이집트로 망명한 자는 썩어서 먹지 못할 무화과같이 만들겠다. 나 야훼가 선언한다. (예레미야 24:8, 공동번역)
하나님께서는 끌려가는 포로들을 돌보아 주실 것이며, 회개하는 삶으로 인도하시고 결코 멸망시키지 않으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그들이 그 곳에서 기도할 때 반드시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반대로, 포로의 삶을 면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버릴 것이고 흩을 것이며, 모든 환난과 수욕과 기근과 칼과 전염병을 내릴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당시 유다 백성들의 시각과 완전히 반대됩니다. 아니, 포로로 끌려가는 이들을(즉, 국가를 상실한 이들을) 참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주신다니! 그리고 행운아로 유다에 남은 이들에게 멸망을 선포하시다니!


이처럼 예레미야가 바라보았던 소망의 대상은, 끊을 수 없는 죄악의 시스템 아래에 있는 예루살렘 백성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국가라는 체제를 잃더라도 타국에 끌려가서 연단 받고 스스로를 성찰하게 될 포로들에게서 희망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드디어 하나님께 마음과 귀를 열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부르심에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포로들에게 신앙의 약속과 격려를 말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11~13, 개역한글)
비극 속에서도 신앙을 지탱케 해 준 메시지
저는 예레미야의 메시지가 포로기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신앙을 지켜주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전적으로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국가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훗날 유다가 멸망되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들이 헤어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을 때, 유일한 쿠션 역할을 해 준 것은 예레미야의 예언이었습니다.
유다가 멸망의 초시계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을 때 거짓 선지자들이 외쳤던 메시지가 무엇이었나요? 그들은 하나님께서 강하시고,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사랑하시기에 결코 유다가 망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너희의 상처는 크지 않다. 평강하다 평강하다” (6:14)
“하나님께서 2년 안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꺾겠다고 말씀하셨다”(28:11)
“너희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27:9)
“너희가 평안하리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23:17)


그러나 유다와 예루살렘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나라는 잿더미가 되었고,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거짓 희망에 삶을 의지하던 백성들은 엄청난 멘탈 붕괴를 경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이스라엘의 멸망은 이방 신의 승리이고 하나님의 실패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 가운데, 이 비극을 하나님의 '실패'가 아닌,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도구'라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 예레미야였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속에서 항상 역사의 지배자가 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가장 극심한 재난 속에서도 충분히 살아남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지옥의 밑바닥에서도 늘 진리가 될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지금 자신들 손에 붙들고 있는 것들(예루살렘, 성전)을 가지고 낙관의 말을 지껄였을 뿐입니다. 그들의 메시지는 비극이 닥치면 완전히 힘을 잃어버립니다. 그런 예언들은 역사에 대처할 수도, 살아남을 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오랜 시간동안 이방인으로 살면서도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러한 거짓 소망들을 철저히 박멸시켰던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들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지닌 백성들


저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예레미야만큼 내적, 개인적 측면을 강조한 사람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누구도 예레미야만큼 종교를 내면의 문제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어떤 선지자도 예레미야 이상으로 회개의 내적 본질, 즉 마음의 변화를 강조하지 못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여호야김 왕에 대적하며 "국가에 대한 소망을 버리라"고 주장했던 것은, 국가를 저주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국가를 뛰어넘는 차원의 것이 있음을 알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의 대상은 하나님께서 새로이 창조하실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외적 개혁이 아닌 진실한 마음의 개혁이 이루어진 자들, 내면에 하나님의 법이 새겨지고 그분의 용서와 통치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자들과 하나님께서는 함께하실 것입니다.
보아라. 날이 이를 것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 그 날이 오면 내가 이스라엘 백성과 유다 백성에게 새 언약을 세울 것이다.
그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끌어 내던 때에 세운 언약과 다른 것이다. 나는 그들의 남편이 되었으나 그들은 그 언약을 깨뜨렸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
그러나 내가 그 날 이후에 이스라엘 집과 언약을 맺을 것이니 나의 법을 그들의 마음속에 두고 그들의 가슴에 새겨 두어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예레미야 31:31~33, 쉬운성경)
동시대를 바벨론 땅에서 살았던 선지자 에스겔 역시 동일한 메시지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마른 뼈로 가득한 골짜기로 데려가십니다. 마른 뼈들은 멸망한 국가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당신의 백성들로 재창조하십니다. 이들이야말로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살아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인 것이지요. 하나님은 그들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에스겔 37장 참조)

 

 

「에스겔의 마른 뼈 환상」, 구스타브 도레


4장을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영으로 새롭게 창조된 백성'이라는 놀라운 소망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예언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초청을 받아 새 언약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세상과 미디어가, 그리고 교회 프로그램들이 말하는 많은 희망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궁극적으로 예레미야가 평생을 바쳐 박멸하려 했던 모조품일 뿐입니다. 우리가 붙드는 가장 가치있는 소망은 이 언약입니다.

 


똑같은 방법으로 식사 후에 잔을 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여라." (고린도전서 11:25, 쉬운성경)


이는 -이사야의 예언과 동일하게- 큰 소망의 말씀이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말씀입니다. 예레미야가 강조한 것처럼, 단지 교회 안에 소속었다고 그 백성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마음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요한계시록 7장) 사람들입니다. 진정한 마음의 회심 없이, 립서비스로 신앙고백을 한 사람은 여기에 속할 수 없습니다. 세속의 시스템에 완전히 스며들어 죄악을 양산하면서 예배당에 나가는 횟수만 늘려가는 이들도 하나님과 관계없는 가라지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난 이들은 늘 회개하는(즉, 자신을 하나님께로 항상 돌이키는) 삶을 살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용서의 가치를 알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고 그분의 통치를 능동적으로 따를 것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도 내 양을 알고, 내 양도 나를 알아본다. (요한복음 10:14, 쉬운성경)

 

 

Epilogue : 예레미야의 슬픔과 사명
저자는 예레미야의 메시지 뿐 아니라, 그의 삶에 관해서도 많은 분량을 할애했습니다. 저도 본 장을 마무리하기 전, 조금 더 예레미야에 관해 나눠보려 합니다.
예레미야의 생애가 죽음의 위협과 비난으로 점철된 이유는, 그가 국가에 대해 던진 비관적 메시지 때문이었습니다. 선지자의 눈으로 본 유다 사회는 회복의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거리에서 정직한 사람을 찾아 다녔지만 한 사람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음까지 썩고, 결코 회개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제 피부색을 바꿀 수 있겠느냐?
표범이 제 가죽에 박힌 점을 없앨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악에 젖은 너희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예레미야 13:23, 공동번역)
또한 그는 국가의 위기 앞에서 희망을 가지지 말라고 선포했으며, 오히려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만이 생존만은 보장할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왕과 백성들을 설득했습니다. 항복하자고 말하다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매국노, 반역자로 비난했던 것은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절대 겁쟁이도, 평화주의자도, 바벨론의 스파이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자신이 속한 국가가 더이상 하나님의 편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달은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나라를 끔찍히 사랑하지만, 국가와 결별할 수 밖에 없는 반나치 독일인이나 반공산주의자 러시아인과 같은 처지였던 것입니다.

 


국가의 멸망 앞에 탄식하는 예레미야, E.J.F. Bendemann
그러나 이러한 사명의 과정들이 그에게 쉬운 것이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삶은 늘 자신과 하나님과의 전쟁이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그는 사명을 받은 순간부터 커다란 부담을 느꼈습니다. 그는 수시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픈 유혹을 받았으며, 백성들을 비난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습니다. 예레미야의 고백들을 몇 구절 인용해 보겠습니다.


저주받을 날, 내가 세상에 떨어지던 날,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 복과는 거리가 먼 날.
사내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한 그자도 천벌을 받아라. (예레미야 20:14~15, 공동번역)
이 백성이 저를 비꼬아 말합니다. '야훼가 엄포를 놓더니, 어찌 되었느냐? 그렇게 야단치더니 어디 해보시지!'
제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시라고 재촉이라도 하였습니까? 암담한 날이 오기를 바라기라도 하였습니까? 제가 무엇이라고 아뢰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분명히 들으시지 않으셨습니까? (예레미야 17:15~16, 공동번역)
"야훼여, 저는 어수룩하게도 주님의 꾐에 넘어갔습니다. 주님의 억지에 말려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웃음거리가 되고 모든 사람에게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저는 입을 열어 고함을 쳤습니다. 서로 때려잡는 세상이 되었다고 외치며 주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 덕에 날마다 욕을 먹고 조롱받는 몸이 되었습니다.
'다시는 주의 이름을 입밖에 내지 말자. 주의 이름으로 하던 말을 이제는 그만두자.' 하여도, 뼛속에 갇혀 있는 주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견디다 못해 저는 손을 들고 맙니다." (예레미야 20:7~9, 공동번역)
우리는 여기서 겁 많고 상황을 회피하려는 한 사람을 봅니다. 그는 내면의 소용돌이를 견디지 못해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으며, 스스로 태어난 운명을 저주합니다. 그리고 그는 확실히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오늘날 예레미야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심리치료의 대상이 될 것이다." 분명히 예레미야는 -현대 기독교가 추구하는- 완벽한 인격을 갖춘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외부에는 난공불락의 '놋성벽'이 있었습니다(1:18). 그 누구도, 어떤 위협도 그의 메시지를 중단시키지 못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스스로 선지자로서 자격없음을 몇 번이고 탄식했지만, 하나님은 예레미야야말로 저물어가는 유다에 가장 필요한 선지자임을 증명해내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예레미야는 대중들의 조롱과 왕의 위협에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진실한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조금의 상처에도 쓰려저 버리고, 예상과 다른 기도응답에 헤매곤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파악될 때까지 잠수(?)를 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우리에게 보여준 신앙은, 모든 의문과 질문을 하나님께 던지면서도 (그리고 그 응답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너의 사명을 다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저자의 글을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신앙의 요청은 온전한 인격을 갖추라는 것도 아니고
모든 의문들을 회피하라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두려움과 의문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래서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한 인격의 헌신인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런 측면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죽기까지 순종하였고, 그의 영혼이 갈등과 위협으로부터 도망치고픈 충동을 받았을 때도 "내 원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원대로 하옵소서"(누가복음 22:42)라고 삶으로 말하며 자기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열왕기하 24장.

 

 

13 그가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13 그가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14 그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비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15 그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내시들과 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16 또 용사 칠천 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천 명 곧 용감하여 싸움을 할 만한 모든 자들을 바벨론 왕이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