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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1

지금은 예수님을 바라볼 때

by 은총가득 2020. 8. 24.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우리가 성경을 바라볼 때 흔히 취하는 오류적 태도가 있다. 다시 말해 성경이 누구를 중심으로 쓰였느냐를 두고 볼 때 '나를 중심으로 성경을 보느냐', 혹은 '예수를 중심으로 보느냐'에 대한 차이에서 오는 오류다. 성경에는 분명 이렇게 적혀 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5:39

 

You search the Scriptures, for in them you think you have eternal life: and these are they which testify of Me. John 5:39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요한 5:46

 

For if you believed Moses, you would believe Me: for he wrote about Me. John 5:26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다'는 이 두 표현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우리가 실수하는 것 중 하나가 성경을 읽되 나를 중심으로 읽는다는 점이다. 이런 오류는 성경을 대하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나타난다. 내가 힘들고 지칠 때 성경을 읽는 것도 그 안에서 위로를 받기 위함인데, 그것이 크게 잘못된 태도는 아니나 그러면 그럴수록 나를 중심으로 한 성경 읽기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나의 물고기 속 기도를 보면 전형적인 회계의 기도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죄에 대한 회계의 기도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도 내가 양심이 아플 때 '나도 죄를 지어 요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노라'라고 이 부분을 읽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나의 기도는 전형적인 오실 이의 마음이 담긴 기도이다. 다시 말해 오실 이가 죽음을 당해 사흘 동안 죽음의 경험을 하실 때 나올 법한 기도이며, 또한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하신 그 심정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기도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요나는 분명 예수의 그림자였으며, 요나뿐 아니라 요나 외 모든 선지자도 예수를 가리켜 모든 성경을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요나에 대해 말씀하실 때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태 12:20)"라고 분명하게 요나의 물고기 속 상황을 당신의 죽음의 사흘과 연관 지으셨다.

 

 요나의 기도와 욥기

 

요나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를 단순히 괴팍한 선지자였다로 치부하기엔 요나의 이름은 성경에서 매우 중하게 다뤄지고 있다. 때문에 그를 상고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특히 그의 큰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내용을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다.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찌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물이 나를 둘었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요나 2:2~9

 

 

문학적으로도 이토록 훌륭한 글을 쉽게 찾을 수 없다. 또한 이 기도는 나락으로 떨어진 한 인간의 영혼 속 깊음에서 나오는 신에 대한 존경과 경외의 기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쉽게 요나를 괴팍한 성격과 말을 함부로 하는 선지자로 오해한다. 또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을 거절하고 욥바에서 배 타고 도망가는 자로 판단해 버린다. 그것을 보면서 요나 이 기도를 마치 '회개'의 기도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결코 이 기도는 성경의 여러 정황상 회개의 기도라고 볼 수가 없다.

 

 

이야기를 빗나가서, 가끔 이런 사람을 볼 수 있다. 평소하는 행동과 말투는 거칠고 정이 없는데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사람의 진정성은 나를 아끼고 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평소와 다르게 나를 굉장히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는 순간 이 사람의 평소 행동과 말들이 이해가 가는 경우, 우리는 그 사람을 진정으로 가깝게 느낀다.

 

요나도 마찬가지다. 그는 비록 하는 행동이 거칠었지만 분명히 자신의 존재와 위치를 알고 있었다. 평소에도 두려우신 하나님께 낮아지는 마음을 영혼까지 간직한 사람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욥바에서 배 타고 도망갈 때 강풍이 불었어도 태연했으며 사공들이 제비를 뽑도록 했을 때 자신에게 뽑힌 제비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 것이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I am a Hebrew; and I fear the Lord, the God of heaven, who made the sea and the dry land."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선지자였지 막무가내로 행동하기만 하는 선지자가 결코 아니었다. 그랬다면 예수께서 요나의 이름을 거론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으니라." 마태복음 12:39

 

 

그렇다면 이 요나의 기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회개의 기도?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욥기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욥과 세 친구의 대화를 보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욥은 거만하고, 그의 친구들은 이런 그를 질책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중에는 참다 못해 직접 나타나셔서 욥을 징책하시고 그를 회개케 하신 것'이라고. 하지만 욥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신중하게 읽었다면 이런 말을 하기가 힘들다. 하나님은 오히려 세 친구를 향해 우매하다고 하셨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노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송하지 일곱과 수약 일고블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 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욥기 42장 7~8

 

 

이 말씀을 읽고도 세 친구의 질책이 옳고 욥의 말이 거만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래서 하나님이 욥을 질책하신 거라고 할 수 있는가. 전혀 성경과 딴 소리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하다"라고 확증하셨다. 욥기 내용을 보면 세 친구는 오히려 욥을 '번뇌케 하는 안위자'였다. 그들의 말은 하나님 앞에 정당하지 못했다. 욥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낮아졌다. 문제는 욥이 말하는 그 많은 내용을 보면 단순히 자기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마치 누군가의 마음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예비되었구나. 를 조롱하는 자들이 오히려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 눈이 그들의 격동함을 보는구나." 욥기 17:1~2

 

"하나님이 나로 백성의 이야기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 내 눈은 근심으로 하여 어두워지고 나의 온 지체는 그림자 같구나." 욥기 17:6~7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기롱하는구나. 그들의 아비들은 나의 보기에 나의 양 떼 지키는 개 중에도 둘만하지 못하나 자니라." 욥기 30:1

 

"이제는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녹으니 환난날이 날를 잡음이라. 밤이 되면 내 뼈가 쑤시니 나의 몸에 아픔이 쉬지 아니하는구나.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하여 옷이 추하여져서 옷깃처럼 내 몸에 붙었구나.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로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나 주께서 대답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굽어보시기만 하시나이다." 욥기 30:16~20

 

 

 

욥기에 이런 내용을 찾으면 끝이 없을 정도다. 이 고통과 괴로움의 소리를 들으며 과연 누가 떠오르는가. 신약의 4복음서에는 예수의 행동과 말이 나온다. 예수님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소리는 적혀있지 않다. 심중에 어떠하시다라는 말씀만 있을 뿐이다. 그 분의 그 고통과 괴로움, 인생을 바라보시고, 유대인을 바라보시며 느끼신 그 죄악의 더러움에 대한 참혹스러움. 예수님의 심정이 고통 받는 욥을 통해 고스란히 42장까지 드러난 것이 아니고서는 욥기는 설명되기 어렵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욥기에 적혔다고 봄이 욥기를 올바르게 보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연장선상에서 요나의 기도를 돌아보자.

과연 회개의 기도인가? 그렇게 보기가 너무나 어렵다. 이 기도는 회개의 기도가 아니다. 이 고통 속에서 경외하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깊이가 너무나 깊고 너무나 이해하기 힘든 고차원의 표현이 드러나 있지만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고통 중에 부르짖는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가 요나의 기도에 있다는 점이다. 요나는 이 기도를 통해 예수께서 죽으시고 그 죽음의 어둠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그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찌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물이 나를 둘었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요나의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마태복음 12:40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살으셨다.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그리고 승천하셨다. 심판주로 다시 오실 날을 우리는 기다린다. 그리고 요나를 설명하시며 하신 이 말씀을 기억한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 마태복음 12:41

 

요나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구약의 선지자다. 모든 구약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한 5:39)"을 통해 구약을 이해하는 키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으로서 이해해야 보이기 시작한다.

 

 

이 아래 말씀도 우리는 자세히 생각해봐야 한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누가 24:44~45

 

Then He said to them, "These are the words which I spoke to you which I was still with you, that all things must be fulfilled which were written in the Law of Moses and the Prophets and the Psalms concerning Me." And He opened their understandings, that they might comprehend the Scriptures. Luke 24:44~45

 

이 말씀들을 상고하게 되면 우리는 신약의 말씀뿐 아니라 구약의 모든 말씀까지도 예수를 중심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재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