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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산책

빛(창1:3)에 대한 이해

by 은총가득 2020. 7. 18.

 

 

빛(창1:3)에 대한 이해

 

 

<자료 1> 빛/히브리어 사전

 

( , 光明) [히] r/a ('or), r/am; (ma'or) [그] fw'" (phos) [영] Light 

육안으로 느끼는 비교적 파장이 짧은 전자파.  넓은 의미에서, 눈으로 느낄 수 없는 자외선, 적외선을 포함하는 경우에는, 눈으로 느껴지는 빛을 가시광이라고 한다. 

성서에 있어서는 이 자연적인 빛 외에도 초자연적인 빛, 동시에 상징적인 의미로도 많이 씌어져 있다.구약에는 하나님은 빛이시며(시 27:1, 119:105, 욥 24:13, 3:20), 하나님은 제 1 로 빛을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창 1:3). 인류는 그 마음의 암흑을 비추는 빛을 제 1 로 요구하듯,우주도 먼저 그 혼돈에서 벗어나기 위해 빛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옷입음 같이 빛을 입으셨다]고도 표현되어 있다(시 104:2). 빛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궁극적인 행복을 나타내는 생활과 관련해서도 기록되어 있다(시 36:9).

 

신약에서, 예수는 [나는 세상에 빛이라]하시고(요 8:12, 9:5, 12:46), 또한 I 요 1:5에는, [하나님은 빛이시라](oJ qeo;" fw'" ejstin)고 말해져 있다. 야고보는 하나님을 [빛의 아버지](oJ path;r tw'n fwtwvn), 즉 천체의 창조자로 표현하고(약 1:17), 그리고 [변화나 움직이는 그림자가 없으시다]는 설명을 가(加)하고 있다.

딤전 6:16에는 하나님은 [가까이 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계시다]고 말해져, 시내산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장엄성을 상기케 한다.

 

빛은 자주 [말씀](Lovgo")안에 거하시는 것으로서 말해지고(요 1:3-4), 그것이 사람의 생명으로서 설명되어 있다. 그는 세상에 와서, 무명의 어두움을비추고, 모든 사람에게 빛을 주신다. 그러나 이 [말씀](로고스)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만이 빛의 아들로 되고, 마침내는 거룩한 도성에 들어간다. 그 도시의 빛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계21:23).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에 의해 [말씀](로고스)은 [세상의 빛](to; fw'" tou' kovsmou)으로 되셨다(요 8:12). 제자들은 그의 빛에 비추인 바 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의 뜻도, 인간의 참 모습도 바로 인식할 수있게 되고, 증거하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의 교훈이 참으로 세상의 빛으로서 사람의 영혼을비추는 것은, 예수께서 직접 사람들의 생애 중에 살아 역사(일)하시는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그와의 교제가 절단된 때에는, 모든 영적 생명은 사멸하는 것이다. [잠자는 자여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빛을) 비취시리라](엡 5:14).바울의 회심은, 본질적으로 [하늘로서의 빛](fw'" ejk tou' ouvrnou')과의 만남이었다(행 9:3).

 

죄 많은 암흑의 비늘은 그의 눈에서 떨어지고, 그는 이방인의 빛으로서 파견되기에 이르렀다(행 13:47). 그는이 세상의 암흑의 지배자, 즉 빛의 천사로 의장하는 사단에 속한 힘과 싸우기 위해 빛의 무구로써 무장했다(롬 13:12). 그는 신자에게 빛의 아들같이 행하라고 권한다(엡 5:8, 빌2:15).그리스도인도 세상의 빛으로 일컬어진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 5:14). 사람은 나면서부터 빛의 아들은 아니었다.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엡 2:1)였으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비추어 주심에 의해(엡 5:14), 하나님은 우리들을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기이한)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것이다(벧전 2:9). 그리스도인의 빛은 생래의 특질로서가아니라, 주어진 빛이다. 그것은 달 빛 같은 것으로서, 광원체(光源體)로서의 그리스도의 빛을 반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들이 빛나는 것은 사람의 역사(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시다.

 

빛의 사명은 어두움의 세상에 빛을 발하여 모든 것을 비추는 일이다(마 5:6, 엡 5:8). 등대위의 등불이 모든 것을 비추듯,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두움의 세계에 참 빛을 보여야 할 선교의 사명을 띠고 있다. [사람 앞에 빛을 발하]는 일체의 위선과 작위를 떠나, 가장 자연스럽게 되는 그리스도인의 선한 행위가 아니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언제나 전진해야 할 것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두움 속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게 될 것이다](요 8:12).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전진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한곳에 머물러있지 않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생명의 빛은 소실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도, 그 복음의 진리를 믿는 자도, 빛인 것으로서(요 1:4-6, 행 26:23, 엡 5:8), 빛 가운데를 걷고, 빛의 무기를 몸에 지니고서, 빛을 발해야 할 것이다(1 요 1:5-7, 롬 13:12, 빌 2:15).

 

빛은 어두움에 대한 빛(창 1:4). 천체에서 발하는 빛(시 136:7), 번개 빛(욥 36:32), 햇빛(삼하23:4), 달빛(사 13:10), 별빛(렘 31:35), 화염 빛(사 4:5), 불 빛(겔 1:4), 금 빛(애 4:1)등 직접적으로 사용된 것도 많으나, 비유적으로도 많이 쓰이어, 신앙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인도, 힘, 위로, 하나님과의 교제(욥 22:28, 29:3, 시 27:1), 하나님 그 자체(I 요 1:5, 7),그리스도인의 품성과 생애(시 34:5, 36:9, 마 5:14, 요 3:19, 롬 13:12, 엡 5:8, 딤전 6:16)를 가리켜 보이고도 있다.  

- <슈퍼바이블>

 

 

<자료 2> 빛(창1:2)/히브리어 강해

 

r/a [0216] [ㄹ-오] 'owr (명.남)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光)이 있으라 하시매 빛(光)이 있었고<창1.3>이스라엘 자손(子孫)의 거(居)하는 곳에는 광명(光明)이 있었더라<창10.23>매복(埋伏)하고 밤새도록 종용(從容)히 하며 이르기를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하였더라<삿16.2>그 사람의 집 문(門)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누웠더라<삿19.26>우리가 밤에 블레셋 사람을 쫓아 내려가서 동틀 때까지

(KJV. until the morning light)(직역: 아침의 빛까지) 그들 중(中)에서 탈취(奪取)하고<삼상14.36>아비가일이 밝는 아침까지는 다소간(多少間) 말하지 아니하다가<삼상25.36>수문(水門) 앞 광장(廣場)에서 새벽부터 오정(午正)까지 ~ 읽으매<느8.3>시냇물을 막아 스미지 않게 하고 감취었던 것을 밝은 데로 내느니라<욥28.11>언제 태양(太陽)의 빛남과 달의 명랑(明郞)하게 운행(運行)되는 것을 보고<욥31.26>그가 번개 빛으로 자기(自己)의 사면(四面)에 두르시며 바다 밑도 가리우시며<욥36.30>사람이 어떤 때는 궁창(穹蒼)의 광(光)+명(明)을 볼 수 없어도 바람이 지나가면 맑아지느니라<욥37.21>그것이 재채기를 한즉 광채(光彩)(개정: 빛(광))가 발(發)하고 그 눈은 새벽 눈꺼풀이 열림 같으며<욥41.18>낮에는 구름으로 온 밤에는 화(火)+광(光)으로 인도(引導)하셨으며<시78.14>(복수) 큰 빛(光)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感謝)하라 그 인자(仁慈)하심이 영원(永遠)함이로다<시136.7>왕(王)의 희(喜)+색(色)에(KJV. In the light of the king's countenance) 생명(生命)이 있나니 그 은택(恩澤)이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잠16.15>주(主)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해로 대낮에 지게 하여 백(白)+주(晝)에 땅을 캄캄케 하며<암5.20>여호와는 의(義)로우사 불의(不義)를 행(行)치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간단(間斷) 없이 자기(自己)의 공의(公義)를나타내시거늘(KJV.he bring his judgment to light) 불의(不義)한 자(者)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습3.5>[조명, 발광체’(‘번개불’,‘행복’등을 포함하는 모든 의미에서), 밝은, 맑은, +낮, 빛(번개)]* 복수 !yri/a -히브리어 강해

 

 

 

 

<자료 3>  천지창조이야기(창1:3-5)/김정우 교수

 

(1) 첫째 날: 빛과 어둠의 구별 (1:3-5)

성경에 나오는 첫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 있으라"이다. 이 말씀과 함께 창조의 과정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첫 창조 작품인 "빛"은 창조의 첫 날에 이루어진 것으로 소개된다. 그러나 첫 창조는 하루 종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만들어졌다. 말씀을 통한 창조는 6일 노동의 패턴에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빛이 있으라"는 명령 다음에, "빛이 있었다"는 실행이 뒤따른다. 이 명령이 누구에게 주어졌는지, 누가 이 명령을 실행하는지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명령이며, 그 명령을 따라 창조가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창조한 것은 빛이다. 그러나 16절이 되기까지 태양을 만든 이야기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3절의 빛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에 대해 학자들은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첫째 부류는 이런 "빛"과 "광명"을 다른 실체로 이해한다.

그들은 여기의 빛을 우주 속에 있는 빛으로서, "모든 기본적인 힘 중 가장 미묘한 것" 혹은 "신비로 가득찬 물질" (A. Dillmann), "가장 숭고한 요소", "실재하는 것", "미묘한 물질" (H. Gunkel)로 본다.

"이 빛은 제 4일에 창조된 광명체와는 구별된 것으로서, 신의 영광에 비유될 수 있다"는 김이곤의 입장은 전통적인 입장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 빛을 하나의 실체로 본다면, 측량할 수 없는 우주 속에 있는 빛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태양계 자체도 은하계 (Milky Way)라는 갤럭시에 위치해 있고, 이것은 렌즈 모양의 우주 섬을 이루고 있으며, 약 10만 광년의 거리로 추정된다. 이런 갤럭시가 우주에는 수백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런 시각에서 빛을 보면, 너무나 모호해진다.

 

두번 째 부류의 사람들은 여기의 "빛"을 태양 빛으로 본다 (Sailhammer, Youngblood).

즉 1:2에 처한 땅의 상황, 즉 "혼돈과 공허," 그리고 "어둠이 깊음 위에 있는" 상황에 드디어 태양의 빛이 비친 것으로 이해하는 입장이다. 이 입장의 근거는 (1) 천지 창조 기사는 철저하게 땅을 중심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2) 일반적으로 해와 달과 별들은 모두 "하늘과 땅" (1:1)에 다 포함된다. (3) 만약 우리가 1절을 창조행위로 본다면, 이미 천체는 다 만들어졌다고 보는 점들이다. 그렇다면, 3절은 태양을 만든 것을 묘사하기 보다 태양이 아침의 어둠을 깨고 나오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 동트는 것이 위와 같이 묘사되었다 (창44:3; 출10:23; 느8:3).

 

아마 창세기 저자가 "빛"과 "광명"을 구분했을 때, 그는 의도적으로 "빛"을 모호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둘 사이에는 명백한 유사성이 있지만, 저자는 "빛"의 상징성 때문에, "광명"과 구분하였다고 볼 수 있다.

6일 창조의 틀 속에서 보면, 빛의 창조가 시작에 놓여 있으며, "빛의 창조"를 통해 다음 창조가 가능해진다. 빛은 땅의 시간 구조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빛이 어둠으로부터 구별될 때, 시간의 구별이 생긴다. 빛은 시간적 구별을 위한 것이지 공간적 구별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셔서, 시간과 질서의 기본 싸이클을 만드셨다.

 

이 빛의 상징성 때문에, 이후 이사야 선지자는 빛이 태초의 어둠을 뚫고 하나님의 첫 축복의 여명을 알리신 것처럼, 새 구원의 시대를 빛이 어둠을 부수는 것으로 묘사한다 (사 8:22-9:2; 마 4:13-17; 요 1:5, 8-9). 사도 바울도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빛이 어둠을 깨고 비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고후 4:6; 요일 1:5; 계 21:23 참조).

 

- 김정우 교수/창세기 주석

 

 

 

<자료 4>  창세기 1장의 빛의 존재와 의미/김홍석 목사

 

Point 1. 창조 6일 가운데 제4일에 태양 등 광체들이 창조되기 전의 빛인 창 1:3-5의 빛, 즉 창조 6일 가운데 첫째 날의 빛은 제4일의 빛과 다른가? 

창조 6일 가운데 제4일에 창조된 태양이 있기 전에 지구를 비추던 빛은 태양 빛이 아니었는데 그렇다면 그 빛은 어디서 왔는가? 이에 대하여는 질문으로 답을 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빛이 왜 존재하는가? 그것은 태양이 있기 때문인가?” 결코 그렇지가 않다.

빛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지 태양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강조하시고 가르쳐주시기 위하여 태양을 제4일이 되어서야 창조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제3일까지는 태양이 없이 빛이 존재하여 지구를 비추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태양이 지금 위치에서 지구를 비추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태양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구는 자전을 통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 역시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지 태양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제4일에 이르러 하나님께서는 제1일부터 그때까지 빛을 발산하여 지구를 비추었던 것과 동일한 모습으로 동일하게 기능하도록 태양을 만드시고 달을 만드셨다. 그리고 별들도 만드셨다. 태양이 빛을 냄으로써 지구를 비추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비추어 온 것과 동일하게 기능하도록 나중에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태양에게 일러주셨다. 태양은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도록 땅을 비추라(히.오르, 동사)고 소명을 받아 임직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1:3-5의 빛(히.오르, 명사)은 태양 빛은 아니지만 나중에 만들어진 태양이 바로 이 빛을 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그 기능면에 있어서 동일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여기에는 이유가 있는듯하다! 왜 하나님께서는 태양을 지구와 함께 창조하시지 않고 제4일이 되어서야 태양을 만드셨을까?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통하여 무엇을 교훈 받는가?

 빛, 지구의 자전이나 공전이나 모든 존재와 현상들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만유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와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해주고 계신다고 생각된다.

 

Point 2. 창 1:3-5 빛의 존재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이제 이러한 이해 위에 우리는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박사의 ‘빛’에 대한 이해를 좀 더 깊이 있고 친숙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된다. 헨리 모리스박사는 그의 저서 「The Genesis Record」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빛을 가져왔다! (중략)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6).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요 1:1, 14) ”세상의 빛”(요 8:12)이시며, ”그 분 안에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다”(요일 1:5). 

(필자 주 : 헨리 모리스박사의 이러한 표현은 빛이 존재하게 된 것, 빛의 근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영혼을 밝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하는 영적인 빛도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상기시킴으로써 마찬가지로 물리적인 빛이 존재하게 된 근원 또한 태양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음을 각성하게 한다. 태양이 있어야 빛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빛이 먼저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빛이 나타나자 ”하나님은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다.” 지구에 관한한 어두움은 완전히 제거된 것이 아니라 다만 빛으로부터 분리된 상태였다. 이어서 ”하나님은 빛을 낮(day)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셨다.” 마치 후대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그러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용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이셨던 것으로 생각된다!

처음으로 하나님께서는 '낮'(욤)이란 말을 사용하셨으며 그것을 '밤'이라 칭하는 '어두움'과 구별하시기 위해 '빛'으로 정의내리셨다.

낮과 밤을 구분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첫째 날 사역을 마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필자 주 : 사실 이 첫째 날은 히브리성서의 기록에 따르면 첫째 날이 아니라 하루 one day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하루’라는 시간 단위가 창조되고 정의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하여 다음 날부터 이와 같은 하루하루가 지속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와 동일한 형식의 문구가 6일 간의 역사의 각 결론부에 반복해서 사용되어 있다. 따라서 첫째 날을 포함해서 엿새 동안의 하루하루의 길이는 동일했음이 분명하다.

 

첫째 날에서 시작해서 그날 이후로 계속 낮과 밤이, 다시 말해서 빛과 어두움의 시간이 반복해서 교체되어 나타났음이 분명하다. 그러한 반복적인 낮과 밤의 교체는 땅이 그 축을 중심으로 돌고 있었으며 태양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땅의 한 면에는 태양에 견줄만한 빛의 근원이 있었음을 분명히 암시해준다.  동시에 그러한 날들의 길이는 정상적인 태양일의 길이일 수밖에 없었음이 분명하다.

 

창조된 빛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우선적으로 눈에 보이는 빛을 의미하는데 그 까닭은 어두움과 대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시적인 빛의 파동이 있다는 것은 동시에 필연적으로 전자기 스펙트럼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가시적인 빛 위에는 자외선 및 다른 모든 단파 광선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적외선 및 다른 장파 광선들이 있기 마련이다.(필자 주 : 電磁氣 스펙트럼 electromagnetic spectrum은 전자기파를 파장에 따라 분해하여 배열한 것이다. 일반적인 스펙트럼이 가시광선 영역에 대한 것이라면 전자기 스펙트럼은 보다 넓은 전자기파의 범위에 대한 것이다. 위키백과) 한편 전자기력을 활성화시키자 결과적으로 물질적인 우주의 동력화가 이루어졌다. 우주 내에서 활동하는 모든 유형의 힘과 에너지는 전자기력과 중력 및 핵력으로 구분되는데 이제 이 모든 힘들이 활성화된 것이다.

 

- 김홍석 목사/한국창조과학회 교육목사/합동참모대학 교수

 

<자료 5>[창1:2] 빛이 있으라/호크마 주석

성 경: [창1:3]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빛의 창조 - 첫째 날]

? 가라사대(*, 아마르) - 6일간의 창조 기사에서 10회나 반복 사용된 이 말은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력이 있음을 보여 준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공허하지 않고(신 32:47; 사 55:11; 렘 23:2)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은 곧 그분의 능력(power)이요 행위(Action)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창조시부터 말씀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은 오늘날도 말씀으로 인간들을 권고한다는 점에서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며 아울러 하나님의 인격적인 분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인격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그 크신 능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빛이 있으라 - 하나님의 첫번째 명령은 '빛'과 '존재'(있으라)에 관한 것이었다.'빛'(, 오르)은 때로 열(사44:16), 불(사31:9), 태양(욥 31:26), 번개불(욥 27:3)등 구체적인 발광체 혹은 발광 현상을 가리키기도 하나 본절의 '빛'은 4일째 창조된 태양과는 구별되는 에너지원(Energy源)을 가리킨다.

한편 어거스틴(Augustine) 은 여기 빛을 신적 은사와 능력을 상징하는 영적인 빛으로 보았다.

 

- 호크마 주석/창세기

 

<정리>

1. 두 가지로 대별되는 견해

1) "빛"(창1:3-5)과 "광명"(창1:14-16)을 다른 실체로 이해한다.

2) "빛"(창1:3-5)을 "광명"(창1:14-16)을 동일 실체로 이해한다.

 

2. 소견

빛과 광명은 동일하나 빛(창1:3)은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 가시광 종류이고,

광명(창1:14)은 '태양, 달, 별'이란 형태로 드러난 차이이다.

 ( cafe.daum.net/correcttheolog)

 

<가져온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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