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뎀나무 아래서
다윗이 죽은 후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타락한다. 다윗이 준비한 모든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지만 하나님이 금하신 이방 여인들과 통혼하였으며 그들을 따라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암몬 사람의 가증한 말곰을 좇았고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섬겼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솔로몬에게서 나라를 빼앗아 네 신하에게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다윗을 위해 다 빼앗지 않고 한 지파를 아들에게 주고 네 대에서가 아니라 아들대에서 이 일들을 행하시겠다고 하셨다. 솔로몬이 타락했지만 하나님은 솔로몬에게서 그 일이 일어나게 하시지 않았다. 그것은 다윗을 생각하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솔로몬 왕때에 20년에 걸쳐 성전과 왕궁을 건축하고 예루살렘 성과 국고성과 병거성 마병의 성들을 세우고 바로의 딸을 위해 밀로를 건축하는 일들로 지친 백성들이 솔로몬 사 후 그 아들 르호보암을 찾아와 멍에를 가볍게 해 달라고 하지만 르호보암은 젊은 신하들의 말을 듣고 백성들의 청을 거절하면서 나라는 분열하기 시작한다.
나라를 나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솔로몬은 어떻게 들은 걸까. 그 아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었을까. 그가 말년에 쓴 전도서를 보면 조금은 정신을 차린 것도 같은데 아들에게 그 어떤 경계도 시키지 않은 걸까. 하나님의 경고에도 겸비하기보다 여로보암을 죽이려고 했던 솔로몬에게서 사울의 모습이 보인다. 자기 아버지가 사울에게 쫓겨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 내막을 안다면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이방 여인들에 빠져 눈이 멀어버렸으니 무리도 아닌 것 같다.
나라는 속절없이 나누어졌고 유다지파만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따르게 되고 나머진 솔로몬의 신하 여로보암을 따르게 되었다. 하나님은 여로보암에게도 다윗에 버금가는 언약을 하셨지만,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성전에 이르고자 예루살렘으로 향하다가 자기에게서 마음이 돌아설까 봐 여로보암은 두 금송아지를 세우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한 신이니 예루살렘에 갈 필요가 없다고 선포한다.
그 옛날 출애굽 당시 하나님의 산에 오른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아론을 협박해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조상들의 이야기를 그가 들었을 터이거늘, 인간은 망각하는 존재인가. 유다를 제외한 나머지 지파를 자신에게 돌리신 분이 하나님이시거늘 그는 너무나 쉽게 하나님을 배반한다.
여로보암 뒤를 이어 일어나는 이스라엘 왕들은 하나같이 이 여로보암의 뒤를 따라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섬긴다. 그들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여'이다. 이것은 유다의 악한 왕들에게 붙었던 수식어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와 어쩌면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여러 혼란의 혼란을 거듭하며 왕조가 바뀌던 이스라엘은 6대 (7일 천하로 끝난 '시므리' 모반 포함) 오므리가 왕권을 장악하며 더욱 암흑의 길로 들어선다. 오므리는 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노하시게 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왕상 16:25-26)
그러나 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아버지보다 더 악했으니, 아합은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겨 엣바알(아스다롯 시전의 제사장)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아세라 상도 만들었으니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하나님을 노하시게 했다.
이 아합시대에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가 바로 엘리야이다. 그의 첫 등장은 이스라엘에 수년 동안의 가뭄을 예고하면서다. 먹을 것이 고갈된 땅에서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기거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 그러던 중에 과부의 아들이 죽는 일이 생기고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그를 살리신다.
아직 기근이 심한 때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바알 선지자들을 갈멜산에 모아,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라고 촉구하며 대결을 벌인다. 바알 선지자들이 제단을 쌓고 자해까지 하며 바알에게 부르짖었지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자 엘리야는 그들을 조롱한다. 열두 돌을 취해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통 넷에 물을 채워 번제물에 붓기를 세 번에 걸쳐 반복한 후 엘리야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자 바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 물에 흠뻑 젖은 번제물과 제단과 흙과 도랑을 태워 버린다. 모든 백성이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소리치며 엎드리고 엘리야는 그들을 향해 바알 선지자들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이렇게 우상을 정리한 후에, 이스라엘 온 땅에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신 후에 하나님은 비를 내리신다. 손바닥만한 구름을 보고 왕에게 비를 피하기를 권했던 엘리야는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는 아합 왕 앞에서 허리를 동이고 달려간다.
이때 엘리야의 마음은 어쩌면 하늘을 찔렀을지도 모르겠다. 갈멜산의 엄청난 기적과 수년간 오지 않던 비가 퍼부어대는 땅을 또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마차보다 앞서 달려가던 그는 그대로 몸이 하늘로 치솟을 만큼 가슴 벅찼으리라!
여로보암 이후 이스라엘에 이렇게 하나님이 나타나신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확실하고 분명하게 드러내신 적이 있었던가. 가장 악한 왕 아합의 시대에 이렇게 나타나심이 한편으론 아이러니 하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의 중심에 엘리야가 있다.
그러나 그 후 사신을 보내 자신을 죽이리라는 이세벨의 다짐을 듣고 자기 생명을 위하여 엘리야는 도망한다. 사환도 따르지 않게 하고 광야로 하룻길을 가서 로뎀나무 아래 앉아 죽기를 원하며 하나님께 기도한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사르밧 과부의 집에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하고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셨으며 갈멜산에 크고 확실한 불을 내리신 후 비를 쏟으신 놀라운 이적들을 자신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을 경험했던 그가 두려움과 자괴감에 눌려 스러져있다. 그렇게 충만했던 믿음과 단호했던 단죄와 거침없는 순종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그는 이제 넉넉하다. 죽어도 좋다 생각한다. 더 이상 자신이 할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혼자다. 아무도 없다. 그렇게 중얼거리다 로뎀나무 아래서 그는 잠이 든다.
천사가 그를 어루만진다.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을 준비해 두고 먹으라 한다. 엘리야는 먹고 마시고 또 눕는다. 그에게 아무 의지도 없다. 살아갈 의미도 없다. 아무 힘도 없다. 천사가 또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한다. 천사는 다그치지 않는다. 어찌 그리 무기력하냐고, 어찌 그리 나약하고 믿음이 없느냐고 판단하지도 책망하지도 않는다. (천사는 비방하지 않는다. 유 1:9) 천사의 어루만짐에 엘리야는 일어나 먹고 마신 후 식물의 힘을 의지하며 사십주 사십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른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그는 사십주 사십야를 걸었다. 살아갈 힘도, 의지도 없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만나야 했다. 산에 이른 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나님은 엘리야를 부르신다. 엘리야야... (가끔 하나님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걸 상상하면 눈물이 난다.)
엘리야가 대답한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이었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편에 서서 열심을 내었다. 안정과 안락한 삶을 버리고 광야에서 가죽옷을 입고 석청을 먹으며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따랐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 왕비가 자신을 죽이려 혈안이 된 상황이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내 앞에서 산에 서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지나기시는데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아니하고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후에도 계시지 아니하고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계시지 아니하시더니 세미한 소리가 들린다.
'엘리야가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나님은 엘리야의 상황에 따라 그의 마음 상태에 따라 그를 만나주신다. 그 연약함을 따라 그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신다. 이제껏 엘리야가 만난 하나님은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바람과 지진과 불같은 분이었지만 지금은 조용한 가운데 세미하게 임하신다. 엘리야가 두려움과 자괴감으로 심각한 영적 침체에 빠져 있을 때도 하나님은 만나주신다. 하나님의 질문에 엘리야는 앞서 한 말을 다시 되풀이한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가 할 일을 구체적으로 명령하신다.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왕상 20:15-17)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쐐기를 박듯 확실하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20:18)
엘리야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에게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엘리야는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난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합은 여전히 악을 행하고 이세벨은 여전히 살기등등하고 죄로 인한 백성들의 고난은 끝이 없고 주변국들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힌다. 엘리야는 사명을 다한 후 엘리사가 보는 앞에서 불수레와 불말이 둘을 가른 가운데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간다.
그렇게 크신 하나님을 경험하고도 엘리야는 무너졌다. 상황이 너무 두려워 하나님을 볼 수 없었고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리니 모든 믿음도 끊어졌다. 로뎀나무 아래서의 엘리야의 모습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은 아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같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기뻐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를 탓하시지 않는다. 천사를 통해 그를 어루만지시고 다시 힘을 내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신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켜 걸었다.
누구나 무너질 수 있다. 남다른 믿음의 큰 경험을 했을지라도, 놀라운 말씀을 깨달았을지라도, 열심히,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왔을지라도 내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고, 도무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고, 갈 힘조차 없을 수 있다. 누구나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해야한다.
그럴 때, 누군가 그럴때, 비난하지 않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놀라지 않고 다그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다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어루만짐이 필요하다. 따뜻한 어루만짐과 위로, 조용한 응원과 격려가 필요한 요즘이다. 그런다면 다시 하나님을 찾고 뵙고 그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겠지. 우리들의 공동체가 그럴 수 있길 바라지만 그렇지 못한다해도 어쩌랴.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자신을 찾는 자들을 만나주시며 혼자라 생각하는 이들에게 내가 칠천명을 남기리라고 말씀하실테니!
로뎀나무 아래
이세벨의 분노
왕상19: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왕상19: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왕상19: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아합의 왕비 이세벨은, 갈멜산 영전(靈戰)에서 바알선지자들이 엘리야에게 졌을 뿐만 아니라 엘리야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제단의 송아지가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태워졌고, 삼년반 만에 가뭄이 해소되고 큰 비가 내렸다는 사실보다는 바알 선지자들이 엘리야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 이세벨에게는 더욱 크고 중요했습니다.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사람을 보내 내일 당신을 죽일 것이라고 통보하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갈멜산 승리의 기쁨을 누려 볼 사이도 없이 도망가야만 했습니다.
한 로뎀나무 아래에서
왕상19: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왕상19: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왕상19: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왕상19: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왕상19: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엘리야는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 국경을 넘어 유다의 남부 도시 브엘세바에 도착합니다. 엘리야는 그곳에 자기 사환을 머물게 하고 홀로 광야로 하룻길을 들어가 한 로뎀나무(콩과의 관목, 높이 2~3m) 아래 앉아서 하나님께, 자기의 생명을 거두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는 나무 아래 누워 잤는데, 천사가 와서 깨우며 음식을 제공하였습니다. 엘리야는 그 음식을 먹고 또 잤습니다. 다시 천사가 와서 깨우며 음식을 제공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다시 천사가 주는 음식을 먹고 길을 떠납니다. 엘리야는 40일을 밤낮으로 걸어서 시나이반도 남단의 시내산에 도달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19: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19: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왕상19: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왕상19: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왕상19: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19: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엘리야는 시내산의 한 굴에서 얼마간 지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네가 왜 여기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제단을 헐고 선지자들을 다 죽이고 자기만 남았는데 이제는 자기마저 죽이려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굴 밖으로 나가 산에 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불어 산이 무너지고 바위가 깨지고 땅이 흔들리더니 불길이 주변에서 타올랐습니다. 그리고 불길이 걷히고 잠잠해지더니,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엘리야는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서 굴 입구에 섰습니다. 그리고 “네가 왜 여기 있느냐”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다시 들었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제단을 헐고 선지자들을 다 죽이고 자기만 남았는데 이제는 자기마저 죽이려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네가 왜 여기 있느냐”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엘리야가 거기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엘리야에게는 다른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뎀나무 아래에 있는 그대여!
오직 혼자라고 생각하는 그대여!
힘이 없어 스러진 그대여!
열심히 달려왔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어 허탈한 그대여!
그대가 엘리야처럼 그렇게 대단한 삶을 살지 못했
엘리야를 통해 전하는 하나님의 뜻을
천사를 통해 어루만지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은 그대가 결국은 사명을 이루길 바라신다네
탓하지 않으시고 다그치지 않으시고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지
그리고 기억하게나
그대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걸
구름같이 허다한 예수의 증인들이 있다는 걸
그러니 그대여
인내로서 모든 경주들을 이겨 승리하세나!"
<시: Rose >
로뎀나무는 구약성서에 4번 정도 나오는데
가장 유명한 사건이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와 대결하여 이긴 후
이세벨에게 쫓겨 광야로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간구한 사건 때문에 잘 기억하고 있다.
히브리어 단어 로템은 רותם, 아랍어 단어 retem, 그리고 무어의 retama와 같다. Rotem, retem 또는 retama는 아랍어로 손가락 주위에 묶인 끈을 말한다. 아랍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로템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랍인들이 묶는 리본을 말한다. 그들이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그들이 떠날 때의 그대로 리본이 묶여 있으면, 그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로뎀나무는 영어로 White broom이라고 하며, 중동의 사막과 건조한 지역에서 가장 흔한 식물 중 하나이다.
건조한 지역의 다른 관목과 달리 일년내내 녹색을 유지한다. 다년생 관목으로 높이가 3m에 이른다.
그래서 엘리야가 햇볕을 피해 쉽게 찾아 앉을 수 있었나보다.
로뎀나무는 화려하게 꽃이 피어 아주 인상적이다. 매력적인 흰 꽃 덩어리는 겨울이 끝날 무렵에 피어난다. 1~4월에 피어나는데 꽃받침에는 두 개의 꽃순이 있고 짙은 자주색이며 때로는 화관에도 비슷한 색깔의 반점이 있다. 꽃은 아주 좋은 향기를 품어낸다. 꽃의 향기는 곤충, 특히 꿀벌을 끌어모은다. 각 꽃은 짧고 작은 꽃받침을 통해 줄기에 붙어 있다.
로뎀나무는 빽빽한 실크같은 털로 덮여 있으며 어린 가지는 얇고 가느다란 은빛 녹색이고 성숙하면 짙은 녹색으로 변한다. 뿌리는 건조한 지역에 자라는 나무의 특색으로 땅 깊이 파고들며(일부 주장은 최대 20m) 지표는 바짝 말라도 땅속의 물까지 뻗는다.
나무 가지는 일년내내 잎이 없는 채 있으며, 잠깐 비가 내리는 우기에 키가 크고 날씬한 줄기가 짧은 시간 동안만 작은 잎을 만든다. 잎은 바늘처럼 좁고 길며 길이는 10mm 정도이다. 건기 동안 녹색 줄기는 잎이 없는 대신에 광합성을 한다. 기공은 줄기의 종 방향 홈 내에 숨겨져 광합성 동안 물 손실을 줄인다.
로뎀나무(Juniper)는 히브리어 '로템'으로 한글 개역성경에는 발음대로 로뎀나무 또는 대싸리(Broom, 욥30:4)로 번역했고,
영역본인 AV에는노간주나무(Juniper), RSA에는 금잔화(Broom)로 번역했다.
청소비처럼 생긴 로뎀나무는 가지가 많은 관목으로 높이 1~2m 정도까지 자라며 팔레스타인에서는 남쪽의 구릉지대와 암석지대, 특히
사해 근처에서 많이 자라며 시나이 반도 전역에서 자란다. 따라서 별다른 나무가 없는 이 지역에서는 여행객들에게 귀한 그늘을 제공
한다(왕상19:4참조). 겨울에는 작고 갸름한 피침형 잎과 희고 아름다운 꽃에는 작은 딸기 같은 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한 두 개의 씨앗으로
된 꼬투리이다. 이 나무의 뿌리는 많은 열을 내는 땔감으로 사용되었으며(시120:4), 기근이 심할 때는 그 뿌리를 씹어 먹기도 했다(욥30:4).
엘리야는 이세벨을 피해 브엘세바에 왔을 때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했으며(왕상19:4), 사14:23에서 멸망의 비로 소제한다는 구절은 대싸리
덤불로 만든 손비로서 상징적으로 쓰였다.
"장사의 날카로운 살과 로뎀나무 숯불이리로다" (시120: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
(왕상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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