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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1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by 은총가득 2020. 7. 7.

헬레니즘(Hellenism) 과 헤브라이즘 (Hebraism) 

 

어떤 문화에 대하여 이해하고자 할 경우에는 그 지역 문화의 근간이 되는 정신적인 기조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첩경이 될 것입니다. 서양의 문화는 두 가지의 큰 흐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헬레니즘(Hellenism)과 헤브라이즘(Hebraism) 입니다. 문학 역시 문화의 일부라 할 수 있으므로 다음에 살펴볼 두 기조를 잘 파악한다면 서양 문학을 접근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문학은 철학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탄생시킨 사회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서양 각 나라의 문학은 서양 고대문학을 밑거름으로 해서 발전해 왔습니다. 따라서 서양문학의 바탕과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양문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그리스 문학과 히브리 문학의 근본 사상을 알아야 합니다.

 

 

 헬레니즘(Hellenism)과 헤브라이즘 (Hebraism, 또는 히브리즘)은 서양 정신사의 뿌리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서로 엇바뀌거나 함께 혼합하며 문학사상을 이루어 왔습니다. 헬레니즘이 우세할 때는 고전주의나 사실주의 등의 이름으로 나타나고, 헤브라이즘이 우세할 때는 낭만주의나 상징주의 등의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그 외의 다른 모습과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는 모든 주의와 주장은 이 두 큰 줄기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고, 서양의 모든 문필가는 이 두 사상에 크든 적든 빚을 지고 있습니다.

 

 

헬레니즘(Hellenism)이라는 말은 ‘반도’를 의미하는 ‘헬라스(hellas)’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그곳에 사는 민족, 즉 그리스 민족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서 그들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기원전 334년 동방 원정을 이끌었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리스와 그리스의 숙적이었던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동쪽 인도까지 진출하면서 오리엔트와 그리스 두 세계가 하나로 융합한 신문화가 생겨났는데, 이것을 헬레니즘 문화라고 부릅니다.

 

 

※ 헬레니즘(Hellenism) ~ ‘말하다’, ‘그리스인처럼 행동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hellenizein에서 유래. 그리스 고유의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융합[동서 문화의 융합이라기보다는 세계화한 그리스 문화로 보는 견해도 있다. 폴리스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난 그리스 문화는 세계제국으로 확장해 나갔다. 그 결과 헬레니즘은 세계시민주의(코스모폴리타니즘)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원자화(집단 속에서 개개인이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된 개인을 밑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하여 이루어진 세계주의적인 예술·사상·정신 등을 특징으로 하는 문화대계. 헤브라이즘과 함께 유럽 문화의 근간을 이룬다.

 

 

헬레니즘은 19세기 초 인도의 역사가 J. G. 드로이젠에 의해 정의되었다. 세계사 속에서 헬레니즘은 고대 그리스에서 연원된 독자성을 지닌 역사적 개념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그리스 정신에서 ‘그리스화한’ 문화까지 포함한다. [즉, 그리스 문화가 이집트와 서아시아 지역으로 널리 퍼져 나간 현상을 가리킨다.] 역사적으로는 알렉산드로스 3세의 죽음에서 로마 제국에 의한 이집트 합병(BC 323~30)까지의 대략 3세기에 걸친 기간이며, 지역적으로는 주로 고대 그리스 본토와 알렉산드로스 3세의 뒤를 이은 여러 왕들에 의해 점령되고 지배되어 새로이 헬레니즘화한 땅에까지 이른다. 헬레니즘 문화는 한때 에게 해 주변의 전지중해 세계를 지배하고, 카르타고 등의 다른 나라에까지 확산되었으며 그 영향력이 서쪽은 영국, 동쪽은 인도의 펀자브 지방까지 뻗어갔다.

 

 

헬레니즘(Hellenism)은 본질적으로 그리스적인 사유로서 그것의 가장 큰 특징은 이성적이라는 것과 인간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써서 유명해진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원래 그리스의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올림포스 12신 중 하나로, 제우스와 레토의 아들이며 아르테미스 여신과는 쌍둥이다. 레토는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질투로 출산할 장소를 찾지 못하다가 델로스 섬으로 도망쳐 가 그곳에서 아폴론을 낳았다고 한다. 아폴론은 태양의 신인 동시에 예언의 신이기도 해서 델포이를 중심으로 그의 신전이 세워져, 무녀를 통해 신탁을 받는 일이 성행했다.) 신전에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이성과 지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의문시되는 것에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서 그 해답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질문하고 대화하며 새로운 무엇을 이끌어 내려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고, ‘이성이 이끄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자’라는 플라톤의 철학(철학 포스트 참조) 표어 역시 이성과 지성을 중시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모습을 반영한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인들은 이 세상을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보고 현세의 삶을 기뻐했습니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보통 인간들처럼 사랑하고 질투하고 약탈하고 잔꾀를 부리기도 하는 인간적 정서를 지닌 신들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인들은 예술을 사랑했는데 그 예술은 사물의 본질을 형식화해 파악하고자 하는 이성과 결합된 아름다움이며, 예술의 표현 양식에서 조화, 통일, 균형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미술에서는 조각 같은 조형예술을 추구하게 되고, 문학에 있어서는 드라마, 즉 연극이 발전했습니다.

 

 

헤브라이즘(Hebraism)이라는 말은 ‘건너온 사람들’, ‘방랑자’를 뜻하는 ‘이브리(ibri)’에서 비롯된 말로서 외국인들이 유대인들을 경멸적으로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헤브라이즘은 히브리 민족 특유의 성격, 정신, 문화를 말합니다. 헤브라이즘의 사상은 성서에 요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과 달리 성서에 나타나는 신은 유일신이며 완전한 인격적 존재여서 인간에게 완전한 순종과 완전한 믿음을 요구합니다. 모세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야훼(여호와)가 명한 대로 행하는 것도 그러한 순종과 믿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헤브라이즘에서는 인간적인 자유주의는 배제되고 신에 대한 경배와 신앙이 앞섭니다. 또한 현세의 삶보다 내세를 중시하기 때문에, 육체 및 욕망은 올바른 행위를 방해하는 것으로 배척되어 금욕적인 경향을 추구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물은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객관적 세계의 파악은 사물의 형태에서가 아니라 신과의 영적인 교감에 의해서 파악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신비적인 경향도 보입니다.

 

 

※ 헤브라이즘(Hebraism) ~ 헬레니즘과 더불어 서양사상을 형성해 온 중요한 사조(思潮). 고대 이스라엘인의 종교(구약성서)에 근원을 둔다. 그것은 BC 13세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스라엘 민족의 신과의 계약이라는 전승(傳承)에서 비롯되며, 이어 야위스트(Yahwist:야훼를 신의 이름으로 사용한 사람)나 엘로히스트(Elohist; 엘로힘을 신의 이름으로 사용한 사람) 등의 역사가와 <신명기(申命記)> 율법의 기자(記者),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예레미야 등의 활약으로 점차 뚜렷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으며, 특히 BC 6세기 초기에 남왕국(南王國) 유다가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되고 다수의 선량(選良; 뛰어난 사람으로 뽑힌 인물)이 포로가 되면서, 그 종교사상은 한층 심화되고, 제2이사야의 '고난의 종복'에서의 구제사상(救濟思想)에서 그 정점에 달했다. 이 구제관(救濟觀)은 나자렛 예수에 의해 실현되었다고 그의 제자들에 의해 전파되어, 마침내 그리스도교가 탄생하였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는 헤브라이즘의 전통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으며, 그 형성기에 헬레니즘(唯一人格神)의 역사적 계시와 이에 대한 신앙을 토대로 하고, 여기서 생기는 신에 의한 우주의 창조와 세계사의 주재(主宰), 이 신과의 계약에 의한 인간의 책임을 주장하는 세계관 및 인간을 영육일체(靈肉一體)로서 파악하는 인간관에서 헬레니즘과 대립된다. 즉 헬레니즘이 우주를 신들로부터의 타락 또는 유출(流出)에서 생긴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헤브라이즘은 우주를 신이 만든 피조계(被造界)로서 파악한다. 따라서 헬레니즘에서처럼 인간의 육체나 물질계는 그 자체가 악(惡)으로 취급되지 않고 피조물의 하나로서 의의가 부여된다. 또한 인간은 운명이나 필연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인격적 결단과 책임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역사는 이 인간의 책임과 신의 인도에 의해 명확한 목표(종국)를 향하여 전개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종말관).

 

 

그리스 사람들과 달리 히브리 사람들에게 조각 작품이나 회화 작품이 없는 것은 그것들을 ‘우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적 사유에는 대화가 드물며, 완전한 형식을 갖춘 드라마 역시 없으며,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예술이 중심을 이룹니다. 그리스인이 예술과 과학과 철학으로 세계 문화에 공헌했다면 히브리인들은 신앙과 도덕으로 공헌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며 지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적 사유와 직관적이고 신비적이며 감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헤브라이적 사유는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면서 서양 문학의 바탕을 이루게 됩니다.

 

 

※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비교

 

헬레니즘(Hellenism) 헤브라이즘 Hebraism
인간중심적
- 우주 생명의 궁극적 패러다임을
하늘과 땅으로 봄
- 사람이 사람의 환경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
신중심적
- 인격적, 도덕적으로 완전한 존재인
신에게 복종

객관적
- 우주의 원리를 형식화
- 우주의 의문점에 관한 명백한 답
요구
주관적, 직관적
- 신과의 영적 교감 중시

외향적 내면적, 신비적
- 명상과 묵상을 중시함
현세 지향적 내세적
이성적, 지성적
- 지식의 추구
- 우주의 본질과 인간 행위에 대한
지적 탐구
감성적
- 최종적인 답은 하느님의 수중에
있으므로 설명이 불필요함
- 가슴으로 신의 음성에 귀 기울임
실용적
- 사회적으로 유익한 행동 함양
- 민주주의
신을 즐겁게 하는 제례의식의 다양화
- 강한 지도자에 의한 선민사상
- 권위적 인도자가 요구됨
형식화, 세련된 예술
- 조형미술 추구(조각, 드라마)
- 논리적 사변, 정연한 상상력
- 정제된 언어가 요구됨
무형식, 낭만적 예술
- 언어 예술의 발전
- 신비로운 황홀감, 조자연적 장엄함
- 감동적
낙관주의 비관주의
개성존중
지혜와 기술 존중
집단주의
창조주의 경배와 순종

 

※ 서양문학사(김계영), 문화로 읽는 세계사(주경철), 브리태니커세계대백과사전 등을 참조.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비교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비교


서양 윤리 사상의 문화적 배경
서양 사상의 문화적 배경


서양 윤리 사상의 문화적 배경은 아테네와 예루살렘에 의해 상징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리스 아테네와 이를 계승한 알렉산드로스 대제국을 통해 발전한 문화를 헬레니즘(Hellenism)이라고 한다.한편, 예루살렘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문화는 그리스도교 사상과 관련된 문화로 헤브라이즘(Hebrism)이라 한다.
즉, 헬레니즘을 인간 중심적인 문화라고 한다면 헤브라이즘은 신 중심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헬레니즘
헬레니즘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기원전 323년부터 로마가 이집트를 정복한 기원전 31년경까지의 그리스·로마 문명을 가리킨다. 기원전 3세기경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유럽과 아시아, 북아프리카 간의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졌다. 당시 일어난 고대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의 융합은 헬레니즘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이다. 헬레니즘은 모든 것이 사람에서 시작되며, 모든것의 바탕은 사람이라고 생각 한다. 이때 사람은 '나'라는 개인을 의미하기도한다. 따라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을 중시하며, '나'를 모든것의 근본으로 삼으려고 한다.


→ 헬레니즘 문화는 인본주의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간 중심적인 사유를 지향하며, 개인을 중시하는 특징을 지녔다. 따라서 보편적 인간성에 기초한 세계 시민주의와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했으며, 이는 이성을 통한 개인의 금욕을 강조한 스토아학파와 정신적인 쾌락을 추구한 에피쿠로스학파의 사상으로 구현되었다.

라오콘 군상
헬레니즘 시대의 대표적인 예술 작품으로 관능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을 중시하는 경향이 잘 나타난다.



헤브라이즘
헤브라이즘은 고대 이스라엘 인의 종교와 구약 성서에 근원을 두었으며, 인간이 아닌 신(神), 즉 여호와에게 절대복종하는 것을 삶의 근본이념으로 삼았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모든 삶의 영광을 그에게 돌리는데, 그 속에는 내세에 대한 소망과 영적이고 금욕적인 사고방식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초기 헤브라이즘은 철학적 기반을 바탕으로 중세의 교부 철학과 스콜라 철학 사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 헤브라이즘은 내세적이고, 신본주의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신과 양심의 준엄성에 대해 복종하며, 이를 통해 평안에 도달하고자 한다. 초기 헤브라이즘은 더 많은 사람에게 설득력을 갖기 위해 철학적 기반이 필요했다. 이것을 만족시키면서 중세를 지배한 그리스도교 사상의 원천은 아우구스티누스를 필두로 자리를 잡은 교부 철학이다. 이어서 중세 후기에는 아퀴나스가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철학적으로 체계화하면서 신학과 철학, 신앙과 이성 간의 조화를 추구한 스콜라 철학을 발전시켰다.

토마스 아퀴나스(Aquinas,T., 1225~1274)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철학적으로 논증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하려했던 스콜라 철학의 대표적 학자이다.




헬레니즘과 크리스트교 문화(헤브라이즘)의 비교 설명


1. 헬레니즘


헬레니즘이란 말은 고대 그리스의 뒤를 잇는, 세계 역사상 한 시대를 규정짓는 개념으로서. 그리스인을 의미하는 헬렌(Heien)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헬레니즘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1863년 독일의 드로이젠이 그의 저서 『헬레니즘사(史)』에서 쓰면서부터였다. 이 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있는데, 대체로 그리스문화, 그리스정신을 가리키는 경우가 지배적이다. 또 이 시대의 특징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리스문화의 확대·발전으로 보는 견해와, 반대로 오리엔트문화를 통한 그리스문화의 퇴폐로 보는 등의 견해도 있으나, 그리스문화와 오리엔트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질적 변화를 일으키면서 새로 태어난 문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1. 시대 범위
헬레니즘 시대의 범위에 관해서도 여러 설이 있다. 먼저 그 시작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시아 원정 출발(BC 334)에 두는 설, 페르시아를 멸망시킨 해(BC 330)에 두는 설, 대왕의 죽음(BC 323)에 두는 설 등이 있다. 그 종말도 극단적인 경우는 마호메트의 출현까지로 보는 설이 있다. 그 밖에 로마 제정기(帝政期)를 문화적으로는 헬레니즘시대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BC 330년 알렉산드로스의 페르시아제국 정복에서 BC 30년의 로마가 이집트를 병합하기까지의 300년간이 그 시대범위로 간주된다. 지역적 범위는 마케도니아·그리스에서부터 대왕의 정복지 전역(인더스 유역·박트리아·메소포타미아·소아시아·이집트)까지이며, 서방의 로마도 문화적으로는 헬레니즘 문화권에 든다고 생각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로마는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1-2. 문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정복한 각지에 만든 새로운 폴리스와, 그 뒤 셀레우코스왕들이 영내(領內)에 많이 만든 새로운 폴리스가 중심이 되어, 그리스문화는 오리엔트의 전역에까지 침투하였다. 그리고 헬레니즘 세계에서는 간소화한 그리스어가 공통어로서 사용되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오리엔트적인 전제군주풍의 의례를 채용하고, 페르시아 왕녀와의 결혼, 페르시아 귀족을 친위대로 채용하는 등 이민족 통치의 수단으로서 그리스문화와 오리엔트문화의 결합을 시도하였다. 그래서 앞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헬레니즘문화가 탄생하였다. 이로써 그리스인이 이민족을 야만시한 관념이 희박해지고 세계시민주의가 역설되었다.


그러나 한편 폴리스의 강력한 지배가 사라져가고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안심입명(安心立命)을 꾀하는 개인주의적 철학 사상들이 출현하였다. 제논이 시작한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의 에피쿠로스학파, 디오게네스의 키니코스학파, 아리스티포스의 키레네학파 등이 모두 이 시대의 철학파이다. 이 시대의 조각은 매우 훌륭하나, 전시대의 특징인 이상화는 약화되고 보다 사실적·육감적으로 되었으며, 육체의 운동과 정신의 격동 등을 나타내기를 좋아하였다. 《라오콘》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등은 모두 이 시대를 대표하는 조각들이다. 이 시대의 학예 중심지는 알렉산드리아·아테네·페르가몬 등이었는데, 특히 문헌학·자연과학 등이 발달하고, 창조적인 문학 등은 오히려 쇠퇴하였다. 일반적으로 이 시대에는 그리스문화의 창조성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 시대의 경향을 정당하게 평가하려는 시도가 드로이센에서 시작되었으며 특히 마이어의 말은 그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즉 헬레니즘 문화는 될 수 있는 한 민족의 특성이나 특수한 생활 태도를 무시하고, 그 대신 아름다운 교양을 지닌 민족적 차별이 없는 인류를 이상으로 하였다. 교양은 그리스 민족의 교양을 기초로 하여 나타났으나, 그 민족적 특징을 내던져 버리고, 전 인류의 문화가 되려고 했던 것이다.



1-3. 그리스 철학사상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의 출현은 그리스 철학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알렉산드로스가 건립한 대제국 밑에서 종래의 도시국가(폴리스) 중심의 정치철학이나 도덕철학이 그 의미를 잃고, 세계국가(코스모폴리스)의 성격을 띠게 되어 국가의 문제보다는 개인의 삶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또한, 로마의 J.카이사르의 세계 통일(BC 46)이 이루어진 후, 그리스 철학은 아테네에서 서쪽은 로마로, 동쪽은 알렉산드리아로 옮아갔다. 국운이 쇠잔해진 그리스인들로서는 이론적 추구의 여유가 없어지고 옛 철학이론을 현실에 적응시키는 실천철학으로 바꾸어 놓았다. BC 3세기에 아테네에서는 키프로스 출신인 제논이 창설한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가 대립되었다. 스토아학파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과 ‘무욕의 생활’을 이상으로 했던 키니코스학파(소크라테스 추종학파)의 흐름을 받았고, 에피쿠로스학파는 데모크리토스의 철학과 ‘쾌락이 선이다’라는 키레네학파(역시 소크라테스 추종학파)의 흐름을 받았다.


이 두 학파는 모두 인간의 목적이 행복에 있고, 인생은 자연에 따르는 생활에서 그 행복이 획득된다고 믿었으나, 스토아학파는 그 행복이 금욕에 있다고 보는 데 반하여,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에 있다고 보고 대립하였다. 그러나 스토아학파의 ‘아파테이아’이나 에피쿠로스학파의 ‘아타락시아’는 다같이 인간의 정욕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비슷한 입장이라 하겠다. 한편, 엘리스 출신인 피로가 체계화한 회의론은, 원래 인간이란 사물의 참된 본질을 알 수 없으므로 헛된 판단을 중지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중지’를 내세워, 그것으로 혼의 평안을 얻는 것이 참된 행복이라는 입장이다. 스토아학파는 로마에 가서 네로 황제의 교사였던 세네카, 노예였던 에픽테토스,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의 학자들로 이어졌고, 에피쿠로스학파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어머니 플로티나 같은 신봉자를 로마에서 얻었다. 동쪽 알렉산드리아로 뻗어나간 그리스 철학은 동방의 헤브라이종교와 접촉하여 이른바 ‘구제(救濟)의 철학’으로 나타났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필로은 플라톤 철학과 헤브라이종교의 결합을 꾀하여 인간은 하나님 속에 머무는 행복을 위하여 자기 의식에서의 탈출을 지향하였고, 세계와 하나님과의 중간자로서 ‘로고스신학’을 제창하였다. 신플라톤주의자라고 일컫는 플로티노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교육받은 이집트인으로 후에 로마에 가서 철학을 가르친 사람인데, 그는 플라톤에 따라 최고의 것은 존재를 초월하는 일자(一者)라고 보았다. 태양에서 광선이 비추어 나오듯, 이 일자에서 예지(nous)가 유출되고, 이 예지의 하부에서 영혼이 흘러나오고, 영혼 다음에 감각계가 뒤따라 유출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완전한 것에서 불완전한 것으로 내려오는 길을 보여주었는데, 인간은 기도와 주술의 작용에 의해 반대 방향으로 향할 수 있어 하느님과의 합일을 이상으로 생각하였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에 그리스도교 보호를 선포하고, 유스티니아누스황제가 플라톤의 학원을 폐쇄하자 고대의 그리스 철학은 크리스도교 사상으로 이어졌다.



2. 크리스트교 사상(헤브라이즘 : Hebraism)



헤브라이즘은 헬레니즘과 더불어 서양사상을 형성해 온 중요한 사조(思潮)를 말하며, 고대 이스라엘인의 종교(구약성서)에 근원을 둔다. 그것은 BC 13세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스라엘 민족의 신과의 계약이라는 전승(傳承)에서 비롯되며, 이어 야위스트(Yahwist:야훼를 신의 이름으로 사용한 사람)나 엘로히스트(Elohist:엘로힘을 신의 이름으로 사용한 사람) 등의 역사가와 《신명기(申命記)》 율법의 기자(記者),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예레미야 등의 활약으로 점차 뚜렷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으며, 특히 BC 6세기 초기에 남왕국(南王國) 유다가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되고 다수의 선량(選良)이 포로가 되면서, 그 종교사상은 한층 심화되고, 제2이사야의 ‘고난의 종복’에서의 구제사상(救濟思想)에서 그 정점에 달했다. 이 구제관(救濟觀)은 나자렛 예수에 의해 실현되었다고 그의 제자들에 의해 전파되어, 마침내 그리스도교가 탄생하였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는 헤브라이즘의 전통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으며, 그 형성기에 헬레니즘과 접촉, 이에 영향을 받아 이론적·철학적 성격을 얻게 되고, 이른바 그리스도교 신학을 형성하였다. 따라서 헤브라이즘은 그리스도교에 의해 서양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되었다. 헤브라이즘은 유일인격신(唯一人格神)의 역사적 계시와 이에 대한 신앙을 토대로 하고, 여기서 생기는 신에 의한 우주의 창조와 세계사의 주재(主宰), 이 신과의 계약에 의한 인간의 책임을 주장하는 세계관 및 인간을 영육일체(靈肉一體)로서 파악하는 인간관에서 헬레니즘과 대립된다. 즉 헬레니즘이 우주를 신들로부터의 타락 또는 유출(流出)에서 생긴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헤브라이즘은 우주를 신이 만든 피조계(被造界)로서 파악한다. 따라서 헬레니즘에서처럼 인간의 육체나 물질계는 그 자체가 악(惡)으로 취급되지 않고 피조물의 하나로서 의의가 부여된다. 또한 인간은 운명이나 필연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인격적 결단과 책임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역사는 인간의 책임과 신의 인도에 의해 명확한 목표를 향하여 전개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3. 헬레니즘과 크리스트교 문화의 비교
고대 그리이스인들의 생활의 중심이며 지주였던, 폴리스가 무너지고 오리엔트적 전제 군주제가 등장하자 그리이스인들은 의지할 곳을 잃어버린 처지가 되었고, 개개인으로 흩어져 폴리스를 초월한 세계시민이 된 것이다. 폴리스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관심은 애국심이나 공공정신보다 개인의 행복, 개인의 구원에 있었고, 이러한 개인의 행복 추구나 개인적 구원의 소망에 있어서, 민족적 구별은 있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헬레니즘 사상의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즉 개인주의와 세계시민주의이다.


아울러 인간을 이성의 존재로 파악한 그들의 사고는 자연과학의 발달을 가져왔다. 고대 그리이스 시대의 자연 과학이 주로 철학적 사색의 결과였던 데 비하여 이 시대에는 보다 실제적인 과학 지식이 발달하였다. 특히 천문학 분야에서는 지동설. 지구의 둘레 계산 등의 여러 가지 성과도 나타났다.
이에 반해 신의 창조물로서 인간을 이해한 크리스트 문화에서는 신중심의 사고가 지배적이었고, 신의 은총을 받는 것이 행복의 기준이 되었으며, 신에 대한 숭배와 관련하여 음악, 미술, 건축술의 발달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비교


서론
흔히 우리가 말하는 문예사조란, 문학 예술에 있어 사상적인 주조(主潮)로서 사상의 뚜렷한 흐름이나 주된 경향을 의미한다. 여기서 사조는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문예상의 흐름이며 변천이다. 여러 사조 중에서 그리스-로마 사상(Hellenism-헬레니즘)과 크리스트교 사상(Hebr aism-헤브라이즘)은 서구 문화의 두 정신축이라 할 수 있다.


헬레니즘(Hellenism) 사상은 이성에 호소하는 것으로서, 합리적이어서 철학과 과학을 발달시켰고, 헤브라이즘(Hebraism) 사상은 유태교에서 출발한 종교적 세계관으로서, 감성에 호소하여 신앙심과 예술의 원천이 되었다. 이러한 두 사상은 서로 대립하기도 하고 화합하기도 하면서, 서양 문화와 사회를 지탱하고 발전시키는 데 원동력이 되었다. 이들 두 사상은 위에서 성격을 보아 알 수 있듯이, 서로 상반된 흐름을 가지고 있는데, 문예부흥의 정신과 상통하는 동시에 리얼리즘의 바탕이 되고 종교개혁의 정신과 상통하는 동시에 로맨티시즘의 바탕이 되고 있다. 이 같은 두 개의 이질적인 사조가 서로 충돌하고 투쟁하는 곳에 인생의 고민과 비극이 생기고, 여기에서 보다 역사적인 발전이 주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제부터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사상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본론

1. 헬레니즘(Hellenism) 사상

(1) 정의 : 헬레니즘은 '말하다', '그리스인처럼 행동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hellenIz ein」에서 유래했다. 그리스 고유의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융합하여 이루어진 세계주의적인 예술·사상·정신 등을 특징으로 하는 문화로 헤브라이즘과 함께 유럽 문화의 근간을 이룬다. 그리스 정신, 고대 그리스의 이상(理想), 그리스 문화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며, 그리스인은 자기 나라를 “헬라스”라 부르기도 하였다. 헬레니즘은 19세기 초 역사가 J. G. 드로이젠(1808~1884)에 의해 정의되었다.(『헬레니즘사(史)』) 세계사 속에서 헬레니즘은 고대 그리스에서 연원된 독자성을 지닌 역사적 개념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그리스 정신에서 '그리스화한' 문화까지 포함한다. 역사적으로는 알렉산드로스 3세의 죽음에서 로마 제국에 의한 이집트 합병(BC 323~30)까지의 대략 3세기에 걸친 기간이며, 지역적으로는 주로 고대 그리스 본토와 알렉산드로스 3세의 뒤를 이은 여러 왕들에 의해 점령되고 지배되어 새로이 헬레니즘화한 땅에까지 이른다.



헬레니즘 문화는 한때 에게 해 주변의 전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고, 카르타고 등의 다른 나라에까지 확산되었으며 그 영향력이 서쪽은 영국, 동쪽은 인도의 펀자브 지방까지 뻗어갔다.



(2) 특징과 성격 : 세계주의, 자유주의, 개인주의적인 정신을 표방하면서 인간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이것을 계발, 발전시키려는 삶의 방식 또는 이상이다. 헬레니즘은 인간중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육체적, 본능적인 면의 추구로 볼 수 있다. 또 객관적으로 우주의 원리와 인간 행위에 대한 탐구에 몰두 했고,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밝히며, 그것을 체계화 했다. 헬레니즘은 사회적으로 유익한 행동을 규범으로 삼고 그것을 함양하고 전수했다. 국가관에 있어서는 시민의 참여와 그들의 의견을 중요시 여겼다. 따라서 기술이 뛰어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헬레니즘 문화는 될 수 있는 한 민족의 특성이나 특수한 생활 태도를 무시하고, 그 대신 아름다운 교양을 지닌 민족적 차별이 없는 인류를 이상으로 하였다. 문헌에서도 보면, 사물을 정교하게 분석하며 조리있는 기술, 가공적일지라도 다양한 상상의 세계, 일상사나 남녀간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 등이 담긴 문학 작품을 만날 수 있다.


(3) 철학적 사상 : 알렉산더 대왕은 이민족 통치의 수단으로서 그리스문화와 오리엔트 문화의 결합을 시도하였고, 이로써 그리스인이 이민족을 야만시한 관념이 희박해지고 세계시민주의가 역설되었지만, 폴리스의 강력한 지배가 사라져가고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안심입명(安心立命)을 꾀하는 개인주의적 철학 사상들이 많이 출현하였다. 그중에서도 헬레니즘을 대변할 수 있는 사상은 에피쿠로스(Epicuros) 학파와 스토아(Stoa) 학파이다. 이 두 사상 체계의 공통점은 영적인 것을 부정하는 물질주의 적이라는 점과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보편주의적은 경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사후(死後)의 존재를 부정하며, 인간의 행복은 현세에서 지적 만족, 검소한 생활, 우정 등을 통해 얻어지는 마음의 형정이 최고의 쾌락이며 행복이라고 했고(행복이 쾌락에 있다), 반면에 스토아 학파는 인간의 행복은 이성에 의하여 감정과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완전한 덕을 이루게 된 마음의 상태라고 했다.(행복이 금욕에 있다). 또한 자신을 전 우주적인 질서와 목표에 일치시킴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고, 후에 헬레니즘 사상뿐만 아니라 후에 고대 로마를 거쳐 평등주의, 인도주의등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2. 헤브라이즘 사상

(1) 정의 : 헤브라이즘은 헤브라이 정신, 헤브라이인적인 습관, 문화 사상을 지칭한 것이다.「헤브라이」란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말로「방황하는 자」란 뜻으로 游牧民을 일컫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유대민족이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던 시대의 종교사상, 유일한 전능 신과 중개자인 모세, 그리스도교의 모태(母胎)인 구약성서를 바탕으로 하며, 헤브라이즘 정신은 신 중심적, 윤리적 인생관, 세계관을 그 특징으로 하여 헬레니즘과 서로 대립하는 유럽문화의 2대 원류이다. 넓은 뜻의 헤브라이즘은 품행, 복종(服從), 윤리(倫理)의 이상(理想)을 지상목표로 하는 인생태도로서, 인간이 아닌 신(神), 즉 여호와 의지에 절대 복종하는 것을 생의 근본이념으로 삼았다.



(2) 특징과 성격 : 히브리인들의 유일신에 대한 그들의 신앙과 그 실천으로서의 십계명을 중심으로 하며, 그리스도교의 근간이 되는 구약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 자유로운 인간중심의 삶과 인생관인 헬레니즘적인 사고방식과는 달리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며, 원죄사상, 현세와 내세에 대한 소망과 영적인, 금욕적인 사고방식을 포함하고 있다. 신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영적인 만족을 추구하며, 다신적인 무신론적인 신앙을 배격하며 세속적인 인간중심의 현실 집착의 사고를 경원시 한다. 그래서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대로 순수하고 정결한 모습을 유지하게 되기를 원했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계시를 받은 자를 존경하며, 종교적인, 사회적인 지도자로 섬겼다. 그리고 주관적이며, 이상적인 평화의 세계를 갈망하였고, 예술적인 것에 치중하지 않았다. 문헌에도 살펴보면, 꾸밈없는 진실이나 신비스러운 세계, 때로는 역경과 고난의 한숨, 소박함 등을 찾아볼 수 있다.



(3)헤브라이즘의 본질

서구문명을 형성한 다양한 요소들 중에서도, 헬라철학과 히브리 종교와 로마의 법체계 3가지 요소를 말하곤 한다. 헬라철학적 정신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사유체계 속에서 고전적으로 정립되었고, 히브리적 종교정신은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등 구약예언자들 정신 속에서 원형적으로 정립되었다. 그리고 갈릴리 복음 속에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한번 더 정화 되어 신약성경의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었다.


역사적 종교로서 1세기에 출현하여, 4-5세기경에 그 정통교리적 틀을 정립한 그리스도교는 지중해 연안지역을 풍미하던 헬레니즘의 토양속에 히브리적 정신씨앗이 떨어져 싹이트고 거목으로 자라난 생명나무라고 은유적으로 말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씨앗과 토양은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므로, 헬라철학적 사유체계와 히브리 예언자들의 종교적 영감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그리스도교와 서구문명을 풍요롭게 형성해 왔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갈릴리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과 초대교회 제자들의 복음전파 속에서 무엇이 그들의 중심 혼이며 정열이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단연코 히브리적 사유 곧 헤브라이즘의 정신이었다고 보아야 옳은 것이다. 헤브라이즘의 정신은 구약성경 특히 예언자들의 정신 속에서 활화산처럼 이어왔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경전중에서 구약성경을 제거하면 그리스도교의 핵심적 정신을 그 뿌리에서 단절시키는 것과 같고, 강물의 진원지인 호수를 흙으로 메워버리는 것과 같다.



구약성경 폐기론을 주장하는 것은 구약의 율법주의나 성경해석에서 경직된 문자주의, 그리고 유대 민족주의 선민사상이 끼치는 피해를 경계하는 과장어법이면 모르되, 그의 주장대로 구약성경을 폐기하자는 것이라면 그런 주장은 헤브라이즘의 인류문명사적 의미와 가치를 소홀히 생각하는 매우 잘못된 주장이다. 설혹 과장어법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과장어법은 적절하지 않고 도올의 ‘구약폐기론’ 주장은 철회되거나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헤브라이즘의 본질은 무엇인가?

특히 헬라 철학적 사유체계와 어떤 점에서 다르며, 헤브라이즘이 인류문명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미치는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



첫째, 헬라적 실재관과 헤브라이즘의 실재관이 다르다. 헬라철학적 실재관은 근본적으로 합리주의적 정신을 본질로 한다. 우주와 인간사 모든 것은 어떤 합리적 법칙이나 원리로서 질서지워져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은 그 합리적 질서를 발견하고, 그 질서에 맞도록 인성을 도야함으로서 폴리스 국가처럼 이상적 인류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헤브라이즘의 실재관은 열려진 실재관이며 창발적으로 만물은 새로움을 향하여 전진한다고 본다. 헤브라이즘은 본래 유목생활과 유랑생활을 경험하는 백성이기 때문에, 역사적 실재란 약속이나 비젼이 실현되어가는 ‘과정적 실재’라고 확신한다.


둘째, 헬라철학 정신과 헤브라이즘은 인간이해에서 큰 차이가 난다. 헬라철학의 영향으로 빚어진 헬레니즘의 인간이해는 스토아철학에서 처럼 인간의 본성을 이성 혹은 로고스라고 본다. 이성은 신적인 것이고, 절대적 진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규정하고, 실천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이해한다. 이성적인 것과 신적인 것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헤브라이즘의 인간관에 의하면 이성도 역사적 ? 문화적 제약성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상대적이고 인간자아의 이기심을 위해 복무하는 하인노릇을 한다고 본다. 헬라철학은 인간비참의 원인이 지성의 무지(ignorance)라고 보지만, 히브리적 인간관은 의지의 오만(pride)이라고 생각한다.




다시말하면, 헤브라이즘은 인간의 이성기능을 절대적인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도리혀, 인간의 본질은 ‘유한하지만 자기초월적 자유의지’ 라고 본다. 인간의 자기초월능력은 창조적일 수도 있지만 교만과 허세와 자기과장과 무한 탐욕 속에서 악마성을 드러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타락과 죄의 가능성은 계몽되지 못한 이성이나 생물학적 본능욕구에 자리하지 않고, 매우 역설같지만 인간의 자기초월능력 곧 자기 의지가 행사하는 오만한 자유능력의 남용에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정신의 자기초월능력은 인간이 구상하는 모든 질서? 제도? 이념적 가치체계를 뛰어넘고 심판하며 불안해하면서 자기중심적인 이기적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집단에서 이기적 자기중심성은 기하급수적으로 강화되어 오늘날 미국정권력의 집단적 오만에서 보듯이 평화가 깨어지는 재앙의 근원이 된다.



셋째, 헬라철학자들의 폴리스정치와 헤브라이즘의 예언자사상은 바람직한 공동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견해에서 크게 다르다. 헬라인의 이상공동체 폴리스는 본질적으로 귀족정치이며, 인간들은 이념적으론 로고스를 지녔기에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론 차등있는 것이 당연하고 정의롭다고 까지 생각한다. 그리고, 헬라 법정신은 차등적 폴리스가 혼동과 무질서로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경찰기능 이다. 민주정치는 헬라철학 정신에서 보면 가장 저급한 하등정치체계이다.


그러나, 히브리적 예언자들의 정치사상은 철저히 ‘자유와 평등’이 입맞추는 공동체의 평화실현에 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평등하고 존엄하며, 왕일지라도 평민의 인격존엄성과 권리를 박탈 할 수 없다고 본다. 헤브라이즘의 우상타파 정신은 종교적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구약의 계약사상과 법정신, 모세 율법정신은 강자의 권익을 보장하고 지켜주는데 있지 않고, 철저하게 ‘사회의 약자들’ 보호하고 그들의 생존권과 인간존엄성이 권력이나 이념체계에 의해서라도 침해당하지 않도록 수호하려는데 있다. 민주정치는 정의를 갈망하는 인간능력 때문에 필요하고, 불의에 빠지는 인간의 경향성 때문에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헤브라이즘은 자본주의적 사회의 자유로운 창의성과 사회주의적 이념이 꿈꾸는 정의로운 평등성을 동시에 살려낸 사회를 꿈꾸는 인류의 영원한 유토피아적 희망의 원천으로서 항구적 열정의 근원이 된다.



(3) 철학 사상
 
3.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사상의 비교


결론


이제까지 서양에서 큰 정신 축이라 할 수 있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사상을 비교를 해 봄으로써 두 사상에 대해 알아보았다.

두 사상을 간단히 비교해 정리해 보자면, 그리스 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헬레니즘을 인간중심적ㆍ육체적 본능이라고 한다면, 기독교 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헤브라이즘은 신 중심적ㆍ영혼적ㆍ금욕적으로 지적할 수 있다. 전자가 현실세계에 바탕을 두고 객관적 사고에 의해서 과학의 세계에 진력하는데 비해, 후자는 이상 세계에 바탕을 두고 주관적 사고에 의해서 신앙의 세계에 진력하는 상반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

특히, 헬레니즘은 그리스의 인본주의에서 출발하여 로마의 향락주의, 근대의 르네상스와 인본주의, 계몽주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로 그 맥을 이어갔고, 헤브라이즘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정신과 또 그리스도교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로마의 기독교와 중세, 종교개혁 등으로 그 맥을 이어갔다. M.아놀드(Arnold Matthew, 1822~1888)는 “헬레니즘의 최고 이념은 사물을 존재하는 그대로 보는 일이며, 헤브라이즘의 최고이념은 행동과 복종이다. 이 차이는 도저히 말살될 수 없다”라고 하여 이 말에서도 충분히 두 사상의 특징을 엿볼 수가 있다.


이번에 조사를 하면서 두 사상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었고, 이 두 사상이 현재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스인들과 유대인들이 그들의 사상을 널리 세계에 알렸던 것처럼 현재 우리나라도 한류라고 불려지고 있는데, 그러한 연예분야 뿐만 아니라 그 외에 다른 분야도 널리 알려서 많은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피캠퍼스에서
 


참고 문헌
엄창섭, 문예사조론, 홍익출판사, 2001
고익환외, 서양문화의 뿌리와 흐름, 도서출판 대명, 2001
코플스톤, 그리스 로마 철학사, 철학과 현실사, 1998
김병걸, 문예사조 그리고 세계의 작가들, 두레, 1999
김용직, 문예사조, 문학과 지성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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