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근동의 세계관과 창조기사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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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 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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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 론
II. 본 론
A. 고대 근동 종교의 특징과 히브리 종교의 독특성
B. 기독교인식의 길잡이로서의 유대교 이해
c. 구약의 역사,문화적 배경 연구의 필요성
D. 창조기사의 해석을 위한 바른 좌표
E. 히브리 창조설화(Narraitive)의 고대성및 독특성과 고대 근동의 창조신화의 비교
F. 기독교 신학의 교리 체계의 중요한 위상으로서의 창조 교리
G. 바벨론과 가나안의 창조신화
a. 바벨론의 창조 신화
b. 역사의 신화화
c. 가나안의 창조 신화
d. 바알 신화집의 내용 ) -->) -->
H.이집트의 세계관
a. 이집트의 역사
b. 힉소스 왕조의 등장
c. 이집트 왕조의 복구
I. 메소포타마아 지역의 아카트 문화에서 본 창조 서사시
a. 아모리 왕국과 히브리 문화의 관련성 여부 문제
J. 고대 근동 세계의 종교
K. 고대 근동 신성의 기원
a.동굴
b.액막이
c.신령들
L. 고대 근동의 신성(神聖)의 의미
N. 창조의 개념에 대한 문제
M. 고대 근동 세계 속에서의 지혜문학 운동과 창조신앙
III. 결 론
IV. 참 고 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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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 론
태초부터 사람들은 우주의 “수수께끼”를 해결하려고 무진 노력해왔다 이 우주는 존재했던 것이냐?는 등의 문제가 곧잘 야기되고 있다. 그런데 언제 그런 시작이 있었느냐? 이런 문제를 단순한 과학이나 이성으로는 해결 불가능하다. 진실로 지금 과학은 우주 기원에 관한 문의를 사실상 포기하고 있다. 단지 우주의 기원,기능,발전,그리고 사용에 관한 연구에 만족하고 있는 터이다. 철학은 창조를 송두리째 부인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부인하는 경향으로 설명하고 있다. 때로 고대 바빌로니아 창조 신화가 창조를 말한다고 하지만, 이것 또한 성경적 창조와는 거리가 먼 것임을 알께 된다. 유일무이하게 성경만이 그것도 성경의 맨 초두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라고 권위 있게 진술한다. 성경의 창조이론은 부분적으로 뿐만 아니라, 성경전체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모든 성경적 교리가 다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성경적 창조 교리야말로 모든 교리의 기초라는 점에서 더한 나위 없이 긴요한 것이다. 이 창조 교리가 무너지면,여지의 것들은 사상누각격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창조에 관한 기술은 성경의 맨 첫 부분에 나타나는 점과,그 이후에 나타나는 성경구절들이 그것을 그렇게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있다. 세계창조는 사활적 주제이다. 이 창조계시가 우리에게 알려지는 방법은 “믿음으로”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증거한다. 우주는 인간이 창조해 내거나, 생각해 내거나 사고해 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믿음을 통해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고대근동의 바빌로 창조기사(myths)에도 성경과 유사한 것들이 있다고들 주장해 왔다. 특히,Akkadian Myts and Epics 중에 창조 서사시(The Creation Epic)와 성경의 홍수 기사와 비슷한 것처럼 보이는 길가메쉬 서사시(The Epic Gilgamesh)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 양자는 다같이 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Akkadian 문서를 번역한 자는 E.A.Speiser로 James B. Prichard가 편집한 ANET(Ancient Near Eastern Texts Relating to the Old Testament)가운데 들어 있다. 전부는 다 살필 순 없고, 대체로 성경과 유사하다고 생각되는 곳을 우선적으로 살피면서, 성경적인 것과 비슷한 점, 또는 서로 다른점, 그리고 이것들을 토대로 하여 종합적으로 비교 검토 코자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성서의 배경을 연구하는 구약 학도로 고대 근동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구약성서의 표준 종교들을 이해하기 위해 구약성서의 지리적, 역사적,사회적 및 종교적 배경들을 고대 근동 세계에서 찾아 보는 것이다. 여기서 ‘고대 근동’(Ancient Near East)이라 함은 아직 학자들 간에 히브리 인들의 가나안 정복의 연대가 불일치 함은 사실이지만,편의상 근동 세계 역사의 여명기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침입하였을 때는 이미 1000여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잘 건축된 수많은 성읍들을 발견하였으며, 그 도성들은 그 경내에 위치한 고대 가나안 인들의 거룩한 사당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고대 근동 세계 전역에 걸친 일반적인 정황이다. 우리의 관심사는 히브리 종교 이해이기 때문에 이러한 종교의 성소들은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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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본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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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대 근동 종교의 특징과 히브리 종교의 독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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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종교는 고대 근동의 종교들과는 달리 이러한 면에서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히브리 종교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고대 근동 종교들의 특성과 기능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근동 세계 안에 이스라엘의 구약세계가 놓여 있을 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의 종교적 개념과 형식이 히브리 인들의 그것과 끊임없는 관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브리 종교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고대 근동 종교에 대한 선이해가 있어야 하고 나아가서 종교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지리적,역사적 및 문화적 배경까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고대 근동의 종교란 일반적으로 셈 족의 종교를 일컫는다.셈 족(Semites)이란 아라비아 인, 팔레스타 인,페니키아 인, 시리아 인, 이디오피아 인 그리고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지역의 메소포타미아 인들을 말한다. 오늘날 셈 족이란 셈 어를 사용하는 민족으로 주로 시리아, 이라크, 요르단, 이스라엘, 아라비아,터어키, 레바논 및 북아프리카 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셈 족에서 세계3대 유일신교가 나왔으니 유대교 , 기독교 및 이슬람교이다. 이들 세 종교에 어느 정도의 공통점이 있듯이 이들 셈 족속들 간에는 좋거나 나쁘거나 서로 간에 접촉이 밀접하여 공통된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이러한 문화가 그들 종교의 배경을 이루었다. 따라서 그들 셈 족속들은 제각기 특색 있는 종교로 발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사상, 습관 및 문화의 산물에 의해 얼마간의 영향을 서로 주고 받아서 때로는 그들 종교들 간의 확연한 구별이 어려울 때도 있다. 그리하여 때로는 성서 배경을 연구하는 구약학도가 조금은 곤혹스러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점진적 자기 계시는 ···· 그 계시가 끼친 영향을 물어 볼 수도 있다. 구약 시대는 준비의 기간이었으니 그것 자체로서 끝이 아니고 다음에 올 그 무엇을 가르키고 있다”는 영( Edward J.Young )의 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고대 근동 세계와 구약성서 사이의 관계에도 적용시켜 볼 수 있는 전제이다. 기독교를 참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교를 알아야하고 유대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세의 종교를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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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기독교인식의 길잡이로서의 유대교이해
모세의 종교를 올바르게 이해 하기 위해서는 고대 근동의 종교들에 대한 선이해가 있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오늘날의 기독교인들과 같이 구약의 종교에 대한 많은 오해를 가져 올 수도 있을 것이며,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과 같이 유대교의 골수분자들이 되었으나 유대교를 낳은 모세의 종교에 대하여는 크게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과 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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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구약의 역사,문화적 배경 연구의 필요성
히브리 성서는 어떠한 인간적, 역사적 매개도 없이 곧 바로 하늘에서 떨어진 신탁의 말씀이 아니라 고대 근동 세계라는 역사적 상황 안에서 생겨난 것이기에 그 문화적 배경을 무시 할 수 없다. 만일 히브리 성서가 그것이 기록된 당시의 인간적 환경이나 역사적 배경과는 무관하게 “만일 하늘로부터 떨어진 것”처럼 생각하고 접근한다면, 우리는 구약성서를 적절하게 해석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히브리 성서는 실제로 인간 구속을 위한 신적 계시는 고대 근동의 역사와 문화라는 환경을 통해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고대 근동 세계의 자연과 역사 .생활과 종교가 히브리 성서에 표현된 사상에 미친 환경을 살피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물론 고대 근동 세계의 역사와 환경이 히브리 사상과 구속의 가르침은 이스라엘의 역사적 경험에서 온 것었다. 고대 근동 세계의 자연과 역사, 사회와 종교의 그 문화적 배경들은 히브리 사상의 표현 양식을 형성 하여 주었으나, 그들 종교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특수한‘신-경험’의 산물이었다. 그러므로 구약 학도들이 히브리 성서를 순리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성서에 나타난 신비스런 표현 양식들과 거기에 반영된 사상들을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고대 근동에서 널리 유행되었던 유사한 표현 양식들과 사상들을 통찰해야 한다. 그러면 경우에 따라 너무나 유사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구약성서의 권위를 손상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독자들에게 고무적인 것이 될 것이니 사려 깊은 연구자들은 하나님께서 히브리 성서에서와 같이 근동세계의 역사 안에서도 개입하셨음을 알고 감사할 것이다. 구약성서가 하나님의 특별계시라면, 자연과 역사 이것들은 하나님의 일반계시이다.
고대 근동의 역사가 하나님의 손가락에 끼고 계신 반지라면, 구약성서는 그 반지에 끼워 있는 보석일 것이다. 반지는 보석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그 보석의 빛이 더욱 찬란하게 빛나도록 해 주는 것이다. 그 보석은 고대의 암울했던 밤중에도 빛을 감추지 않고 주위를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던 것이다. 고대 근동 세계의 주민들은 수천,수만의 다신론의 만신전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한 종족들은 염세적인 인생관을 품고 우울한 숙명론에 삶을 맡기고 시시포스의 산을 오르고 있을 때, 이집트를 비롯한 남부 계통의 종족들은 허무의 강가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낙천적인 영원을 손짓하고 있었다. 그들 근동의 주민들이 한결같이 밖으로는 왕권의 전횡으로, 안으로는 죄의식과 정신적 결핍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그 세계의 3중 교차로에서 유일하신 참신을 찾아 교제하고 있는 백성이 있었으니 그들이 곧 히브리 인이었으며, 야훼와 더불어 계약 관계에 들어간 것이 이스라엘 부족 연맹의 탄생이었다. 이 부족 연맹의 중심이 야훼 종교였고, 이 야훼 종교는 부분적으로는 고대 근동 종교의 제의와 유사한 면이 있었으나 보다. 많은 부분에 있어서 배타적이었다. 그 고대 근 동종교의 제의 양식과 의미에 있어서 부분적으로 야훼 종교와 유사한 점들은 야훼 신앙을 위해 어느 정도 이해의 길을 예비하였다. 그러한 예들 가운데 하나로서 고대 근동의 종교들 가운데는 중생의 교리를 가진것도 있으며,의식적인 목욕이나 세례를 행하였으며 그리고 때때로 기념의 의미로 성스러운 식사를 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것들은 야훼 종교가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으나 결코 그 권위를 손상시킬 수는 없없었으며, 하나님의 역사 경륜을 방해할 수도 없었고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를 출현시켰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약성서 배경학을 공부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구약의 신앙이 다양한 이교적 현상들을 선택하고, 그들로부터 넘겨받은 요소들을 어떻게 변화시켰으며,자신의 본질과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배척했는가를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고대 근동 종교 속에서의 이스라엘의 독특성”과 “고대 종교둘 속에서의 이스라엘의 혼돈될 수 없는 단일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될것이다. 고대 근동의 종교들은 히브리 종교의 제의와 축제가 지니고 있는 의미와 형식들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어서 서로 가깝게 나란히 병행시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히브리 종교는 역시 주변의 근동 세계에서는 낯설은 종교였으며, 또한 결코 비교 양립될 수 없는 독특하고 유일한 현상들이 히브리 종교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다. 히브리 종교는 고대 근동 세계의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침몰되거나 동화되지 않고, 당대의 주변 세계와의 밀접한 관계와 계소적인 교류 속에서 ‘살아 있는 생명체’의 현상으로 존속해 왔다. 따라서 우리는 히브리 종교를 고대 근동의 종교들과 비교 가운데서 대조를 구별 가운데서 이해를 다시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성서의 지리적,역사적, 사회적 및 종교적 배경을 고대 근동 세계에서 찾아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구약성서 배경을 연구하는 배경을 연구하는 학도들은 구약성서와 더불어 성서 인명, 지명 사전들을 옆에 두고 함께읽으면서 근동 세계와 관련된성서 본문들에 주목함으로써 연구해 나간다면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이것이 구약성서 배경을 연구하는 가장 안전하고 유익한 방법이다.
D. 창조기사의 해석을 위한 바른 좌표
우리는 바벨로니아의 창조 신화로부터 이 이야기가 신년 축제,곧 전 과정을 통해서 세계의 갱신을 기념하는 역활을 수행했던 어떤 한 축제 때에 암송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두 예는 창조자-창조에 관한 성찰이 원시 신화들의 맥락 속에서 발생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위협적인 세계에서 위협당하고 있는 인간의 성찰이었던 것이다. 결국 창조 신화들은 세계를 보존하고 삶에 안정을 제공해 주는 기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창조자-창조에 관한 성찰에 대해서 시도해 온 지금까지의 해석은 철처하게 수정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그동안 창조 설화들을 “어디로 부터인가?”하는, 즉 세계와 인간의 기원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 간주해 왔다. 첫 원인을 물어 나가는 하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 간주해 왔다. 첫 원인을 물어나아가 것은 지적인 물음이다. 그러나 전승사는 창조 설화들의 경우 후기 단게에 들어서야 지적인 문제들로 전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창조 설화들 속에서 이야기한 존재는 자신의 기원에 대하여 추구하였던 철학자가 아니었다. 그 화자는 바로 자신의 주변 환경에 의해 위협당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이를데면 지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존적인 문제, 이것이 그 배경이었다.
이제 이러한 사실이 창조 신앙에 대한 현대의 논의에 있어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밝혀보도록 하자. 논쟁의 대상은 이것이었다. 이세계는 성서와 교회가 말한 그대로 발생하였는가,아니면 자연과학이 지적하는 대로인가? 하지만 이와 같은 식의 물음 진술은 창조에 관한 성서의 성찰을 잘못 이해한데 기인한다. 공경자도 방어자도 둘 다 그릇된 이해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논쟁을 더 이상 계속할 의도는 없다. 오늘 이 시대에 의미를 갖는 창조에 관한 물음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진술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보수주의 구약학자인 영 박사의 자제인 한 존경받는 지질학자“복음주의 학계는 성경해석과 과학자인 연구 사이이 바른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글을 썼다. 뿐만 아니라 그는 복음주의 학계가 좀더 높고 좀더 확실한 기반을 마련하고 그위에 올라서려는 생각보다는 중상 비방에 몰두하고 애쓰는 듯 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므로 최근 철저한 반 진화론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란 현대적 세계관에 입각한 과학으로 전과학적인(Pre-Scienctic)창조 기사를 왜곡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대의 성서 비평학자들 중에서 문서 가설자들이 범하는 오류와 그 형식 면에서 유사하다.왜냐하면 문서 가설자는 창조 기사를 해석 할때 그들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 전제 즉 세계관이 실증주의를 비롯한 진화론적 철학과 헤켈의 변증법등에 현대적 세계관으로 창조 기사 본문을 현대 문학 비평이 사용하는 도구로 뒤집어 쒸우기내지는 분석과 축소하는 경향으로 왜곡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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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히브리 창조설화(Narraitive)의 고대성및 독특성과 고대 근동의 창조신화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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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신화들뿐만 아니라 남태평양과 아프리카,중앙아메리카 등지의 설화들을 대상으로 초기의 창조 이야기들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는 사람은 누구나 그 이야기들의 무진장한 풍요성과 다양성에 맞닥뜨려 가히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시 좀더 치밀하게 이처럼 풍요한 창조 설화들을 연구하면 할수록 또 다른 인상적인 현상이 분명하게 떠오른다. 즉, 그 많은 설화들에서 동일한 모티브가 지속적으로 되풀이된다는 것이 그것인데, 이 연구를 통하여 우리는 수천년이 넘도록 전 지구상에 생존했던 인간들이 창조 이야기들을 무한이 다양하게 산출해 냈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줄거리는 비교적 몇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와 인간의 기원에 대하여 과학적 설명이 시도되던 시대 이전에는 창조를 진술하는 데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한정된 네 가지 방식만이 있었을 따름이다.
1)만들기나 행위를 통한 창조
2)(생식과) 출생을 통한 창조
3)투쟁을 통한 창조
4)말을 통한 창조
행위를 통한 창조는 완전히 원시적인 그룹에 속하고, 세계 전지역의 원시적 창조 살화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런 표현들 중에서 많은 것들은 여러 고도 문화 단계에서도 계속 보존되어 있을 정도로 상당히 확고 하게 정립되어 있었다. 특히 진흙이나 흙을 가지고 사람을 창조한 예가 그렇다. 생식과 출생을 통한 창조는 다신론적 --신화 그룹에 속한다. 이 둘은 신들의 복수성과 그들간의 대결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 진술에 사용되는 두 가지 모티브들이다. 투쟁을 통한 창조는 바빌로니아의 서사시인 <에누마 엘리쉬> 에서 고전적인 양식으로 나타난다. 마르둑과 티아맛의 몸에서 세계의 창조가 발생한다. 이런 표상은 지극히 널리 퍼져 있어서, 구약성서에 보이는 시들의 은유적 표현에는 나타날 정도이다.
라합을 찢던 이가,용을 꿰찌르신 이가 당신이 아니십니까? (이사야 51장9-10절)
창세기 1장에서 이에 대한 아주 흐릿한 반향을 찾아볼 수가 있는데 1,2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온 심연 위를 어둠이 덮고 있었다.” 여기에서 심연을 가르키는 말인 히브리어 tehom이 아주 희미하게 Tiamat을 떠올려 주는 것이다. 그러나 바빌론의 서사시인 <에누마 엘리쉬>와는 달리 창세기 1장의 성서 기록에는 전혀 투쟁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다. 생식(발생)과 출생(생성)을 통한 찬조는 수메르의 신화들과 이집트의 우주 창조 이야기들이 띠는 특징이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많은 지역에서 역시 발견되기도 한다. 이 이야기들의 전형은 바다, 바람, 땅 등 우주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계속적인 생성(출생)을 통하여 발생한다는 것이다. 창조가 처음으로 계보들에 상응하는 생성(출생)의 대물림으로 나타나는 일련의 뚜렷한 행위들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여기서이다. 창조를 진술하는 이러한 방식은 다시 창세기 1장을 분명하게 상기시켜 준다. 즉, 무엇보다도 먼저, 제관계 작가는 창조의 전 과정을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는다. “이것이 ....하늘과 땅의 족보들, toledot(생성 그리고 유래, 기원들)이다.” 이어서 이 장에는 특이하게 일률적인 양식이 보이는데,계보, 족보들의 양식을 상기시켜 주는 구절들이 동일하게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멤피스의 우주 생성 이야기에 있어서 연속적인 출생을 통한 창조는 신의 말에 의한 창조와 의식적으로 구분지어진다. 이렇게 볼 때 창세기 기록은 이스라엘 밖에 형성되어 있었던 창조 이야기들의 전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또한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 비상한 창조 기록의 유일무이한 독특성은 오직 그와 같은 배경에 입각해서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고 하는 사실 역시 분명하게 드러난다.
F. 기독교 신학의 교리 체계의 중요한 위상으로서의 창조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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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창조에 대한 기독교적인 개념은 창세기 첫 부분의 창조기사와 로마서에 진술된 바울의 신학을 중심으로 창조- 타락-구원이라는 연속적인 교리체계 속에서 이해되어왔다.즉 창조는 타락이라는 항목을 사이에 두고 있는 가운데 구원과는 별다른 상관성을 갖지 못한 개념으로 인식되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창조는 타락 이전의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독립적인 신앙 조항으로 고정되어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무에서 만들어 내셨다는 신앙고백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성서에 나타난 창조 교리는 그 자체로서 독립되어 나타나기 보다는 하나님의 구원 행동과 분리될 수없는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성서의 창조 신학을 그 전체적인 전승의 맥락 속에서 이해 할때 분명하게 드러나며,이스라엘의 창조 신학의 배경을 형성하는 고대 근동 지역의 창조신화의 비교를 통해서 그 특징이 분명히 드러난다. 실제로 고대 근동 문헌에 나타나는 창조 신화들은 우주의 기원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사변에서 비론된 것이 아니라 홍수나 강의 범람, 또는 자연계의 순환에서 발생하는 생존 위협에 대한 신학적인 해답으로 주어진것이다. 이러한관점에서 이 글은 일차적으로 구약의 창조 기사와 평행을 이루는 고대 근동의 창조 기사들을 분석하고자 한다.
그 중에서도 고대 근동인들의 삶을 위협하던 혼돈의 세력과 창조신과의 투쟁을 우주 창조와 관련 시키고 있는 본문들을 중심적으로 연구할 필요가있다. 왜냐하면 거기에 나타나는 신화적인 이원론 즉 창조신과 혼돈 세력과의 투쟁이라는 이원론적인 표상은 구약의 창조 신학의 독특성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이원론과 관련된 신화적 표상은 구약의 창조 신학 전승 속에서 계속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양자의 불연속성에 대한 고찰 역시 이 글의 연구목적에 속한다. 이것은 구약성서가 고대 근동의 창조신화를 유일신적이 야웨 신앙의 관점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변형시켰는지에 대한 연구를 포함한다.아울러 이글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역사의 주시요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하나님으로 동일시하고 있는 이스라엘 창조신학의 특징이 창세기에서 묵시 문학에 이르기까지 어떤 모습으로 전승되었으며, 종국에는 신약의 그리스도 사건과 새창조의 신학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체게적으로 규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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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바빌론과 가나안의 창조신화
a. 바빌론의 창조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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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의 창조신화인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k)는 니느웨에 있던 앗수르바나팔(Ashurbanipal,668 - 630 B.C)왕의 궁중 도서관에서 발견된 서사시 토판으로서 구약 성서의 창조기사에 평행되는 대표적인 창조신화로 알려져 있다. 이 서사시는 모두 일곱 개의 토판에 기록되어 있으며 자료 자체의 실제 연대는 주전 1700년경으로 추정된다. 에누마 엘리쉬는 아무 것도 창조되기 전의 상태를 원시 대양인 압수(Apsu,담수)와 그의 아내 티아맛(Tiamat,염수) 및 이들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뭄무(Mummu,수증기 또는 안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높은 곳에서 하늘이 이름지어지 않았을 때 아래의 굳읃은 땅이 이름붇여지지 않았을 때 그들을 낳은 자인 태초의 압수와 그들 모두를 낳은 뭄무 - 티아밋 외에는 아무도 없고 그들의 물이 한 덩어리로 섞여 있을 때 갈대 오두막집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고 소택지가 나타나기 전 다른 언떤 신도 생겨나지 않았고 이름 불려지지 않았으며 그들의 운명이 결정되지도 않았을 때 바로 그 때에 신들이 그들 안에서 형성되었다.(제1토판1-9행)
압수와 티아맛은 게속해서 자식들을 낳았는데 그중에서도 안샤르(Anshar)와 키샤르(Kishar) 하늘의 신인 아누(Anu)를 낳았고 아누는 지혜의신인 누딤뭇(Nudimmud, 또는 Enki- Ea) 을 낳았다. 그러나 압수는 티아맛과의 사이에 태어난 자손들의 번식과 그들로 인한 소음에 분격한 나머지 그들을 멸절시키기로 결심한다. 이를 알게 된 지혜의 신 에아는 주문을 외워 압수를 깊은 잠에 빠지게 한 후 그를 죽인다. 압수를 죽인 후 그는 자신의 거소, 곧 신전을 건축 하고서 자신의 아내 담키나(Damkina)와 결합하여 폭풍의 신인 마르둑 (Marduk) 을 생산한다. 남편을 잃고 상심하던 티아맛은 킹구(Kingu)의 자극을 받아 복수를 결심하고 에아와 대적하기 위해 킹구를 남편 및 군대 장관으로 삼고서 남편의 죽음을 동정하는 신들의 무리를 소집한다. 이 싸움에서 처음에는 에아가 패배하지만 그의 아들 마르둑이 싸움을 자청하고 나서자 사정이 달라진다. 마르둑은 출전에 앞서 모든 신들에 대한 최고 통치권을 요구하게 되고 주변의 신들은 마침내 마르둑의 요구에 응하여 그에게 최고신의 권세와 전 우주에 대한 왕권을 부여한다. 마르둑은 티아맛과 격렬한 싸움을 벌인 끝에 승리를 거두고 티아맛을 죽인 후 그 몸을 양분하여 상반신으로는 하늘을 하반신으로는 땅을 만든다.
그리고 나서 주 (마르둑)께서 멈춰서서 그녀(티아맛)의 죽은 몸을 보고서는 그 괴물(티아맛)을 분할하여 멋있는 작품을 만들 궁리를 하였다.
그는 그녀를 조개처럼 두 조각 내었다.
그녀의 절반을 세워 그것을 천정 삼아 하늘을 만들고
장대를 끌어내린 후 감시자들을 배치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그녀의 물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제 4토판 135-140행)
그 후 계속해서 마르둑은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들고 티아맛 편에 가담한 신들을 투옥시켜 중노동을 시킨다. 그러나 중노동에 시달린 신들이 그들의 고통을 하소연하자 마르둑은 그들의 짐을 덜고 그들을 섬기게 할 목적으로 킹구를 죽여 그의 몸에서 훌러나온 피를 흙과 혼합하여 인간을 만든다. 아눈나키는 마르둑의 업적을 치하하는 표시로 바벨론 성읍을 건축하고 그를 위하여 에사길라라는 신전을 건축, 봉헌한다. 아눈나키가 마침내 마르둑을 위하여 축하연을 배설하고 그에게 50여가지의 영광스러운 칭호들을 헌사하는 것으로 이 서사시는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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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역사의 신화화
에누마 엘리쉬는 원래 우주 만물의 기원과 그 형성에 관한 우주론적인 관심사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함무라비 대왕의 정치적 부상으로 인한 새로운 세계 질서의 형성을 신화적인 용어로써 해설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창조 신화이다. 즉 일개 지방신에 불과하던 마르둑이 어떻게 하여 바벨론 만신전의 최고신으로 승격되었는가에 대한 우주론족인 설명이 본 서사시의 주요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신화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의 연례적인 범람으로 인한 질서 세계의 위5 및 생존의 위협을 중심 소재로 하여 마르둑이 태초의 혼돈을 상징하는 원시 바다의세력을 정복하므로써 창조신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함무라비왕 시대의 역사적인 현실로부터 유래한 에누마엘리쉬는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역사와 신화사 사이의 긴장을 상실하여 주전 1천년기에 이르러서는 바벨론의 신년 축제인 아키투 축제 안에 흡수됨으로써 그 본래의 역사적인 배경과는 무관하게 철저히 신화화되었다. 이렇게 신화화 된 에누마엘리쉬는 아키투 축제의 네째날에 낭송되고 극화되었는데 이는 창조와 혼돈 사이의 투쟁의 드라마에서 실존족으로 참여하여 현실 세계의 불안으로부터 태초의 ‘위대한 시간’에로 복귀하려는 고대인들의 존재론족인 갈증을 대변하고 있다. 즉 그들은 신화적인 창조의 과정을 신년초의 제의 속에서 극화 함으로써 혼돈의 세력에 대한 승리를 재연하고 세계와 역사를 갱신하는 새창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되풀이와 참여를 통해서 태초의 시간에로 복귀하려는 그로한 시도는 원형적인 사건의 모방을 통하여 시간(역사)과 공간을 탈각한다는 점에서 탈역사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창조신과 혼돈 세력이라는 대등한 두 세력의 투쟁은 결국 신화적 이원론에 귀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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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가나안의 창조 신화
가나안의 우가릿에서 뱔굴된 문헌들은 주전 14-13세기의 가나안을 조명해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히브리어와 유사한 언어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약성서의 여러 관용어구나 문학적 기교, 주제 및 소재 등과 현저한 평행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착 이후 경험해야만 했던 가나안 종교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바알 신화집은 구약의 하나님 개념에 대한 연구와 시편 연구에 커다란 빛을 던져 주었는 바, 창조와 투쟁에 관한 주제 역시 구약성서와 비교될 만한 풍부한 자료들을 가지고 있다.
d. 바알 신화집의 내용
바알 신화집은 풍요를 상징하는 폭풍의 신 바알과 사랑의 여신 아낫이 주요 역할을 수행하는 크고 작은 토판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이 신화집의 주제는 우가릿 마신전의 변두리에 처해 있던 바알이 혼돈의 세력들인 얌 또는 나하르와 모느등을 패배시킴으로써 신들의 왕으로 부상한다는 점이다. 이는 크게 바알과 얌의 투쟁, 바알의 궁전 건축, 바알과 모트의 투쟁 등의 세가지 삽화로 구성되어 있다.
첫 부분에서는 만신전의 최고신인 엘이 신들의 세계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는 양을 위해 기능의 신인 코타르와카시스에게 그의 집을 지어주도록 명령함으로써 양과 ㄹ바알 사이에 긴장이 발생한다. 얌이 전령들을 보내어 무례하게 바알의 인도를 요구하자 엘을 포함한 대다수의 신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바알의 인도를 획책한다. 이에 분개한 바알은 코타르와카시스에게서 야그루쉬, “내쫒는 자”와 아야무르“내모는 자”라는 두 개의 곤봉을 얻어 이 두 곤봉으로 얌을 패배시키고 승리를 거둔다.
두번째 부분에서 바알은 얌에게 승리를 거둔 후 신들이 베풀어준 연회에 참석하게 되고 아낫은 바알에게 대항하는 자들을 모두 처단한 후 바알의 식탁에 초대받아 바알의 신전 건축 의도를 전해 듣게 된다. 그후 아낫은 엘에게 가서 바알을 위해 신전 건축해
달라고 협박하였으나 실패하지만 바알과 더불어 엘의 아내 아세라를 선동하여 마침내 엘에게서 바알의 집을 건축하라는 승락을 얻어낸다. 코타르와카시스의 힘으로 신전을 준공한 바알은 신들에게 연회를 베푼다. 그리고 나서 그는 바다에 있는 얌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한 후 폭풍의 신으로서 절대 왕권을 획득하고 이 사실을 엘의 아들인 죽음의 신 모토에게 알린다. 세번째 부분에서 모토는 전령을 보내어 바알의 왕권에 도전하면서 바알이 얌에게 승리를 거두던 때의 광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네가 날랜 뱀 로탄(Liviathan)을 쳐부수고꼬불꼬불한 뱀
일곱머리를 가진 괴물을 무리칠 때
하늘이 시들어 네 옷의 주름처럼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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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은 모트의 도전에 응하여 지하 세계에 내려갔으나 승리를 거두지 못했으며, 그가 지하 세계에서 죽었다는 서식을 들은 엘과 아낫은 크게 슬퍼한다. 아낫은 태양의 여신 샵슈(Shapsh)와 함께 바알의 시체를 찾아 자폰(Zaphon)의 고지에 장사지내고 기회를 엿보다가 모트를 사로잡아 그를 죽이고 그의 몸을 조각내어 버린다. 모트의 죽음으로 바알은 부활하여 다시 왕위에 오르게되고 칠년 후 다시 살아난 모트는 재차 바알에게 도전하였으나 샵슈의 경고에 굴복하여 바알의 왕권을 인정한다. 이상으로 요약되는 바알 신화집은 정치적인 현실로 부터 유래한 에누마 엘리쉬와 달리 자연계의 순환에 대한 신화적인 해석을 반영하고 있다. 먼저 바알과 얌의 투쟁은 지중해가 거칠어지고 육지의 강물이 불어나는 늦가을의 우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모트와의 투쟁은 태양열로 인한 가뭄이 식물들을 말려 죽이는 여름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다시 살아난 바알이 모트를 정복하는 것은 여름가뭄이 종결되고 다시금 풍요가 약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투쟁 이야기는 농경 문화권에 속하는 가나안의 풍요 다산의 종교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가나안의 가을 신년 축제에서 낭송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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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이집트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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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집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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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세기경의 이집트의 제사장 마네트는 이집트왕조의 목록을 남겼는데, 거의 전설적인 기록이기는 하지만 31개의 완조들의 명단과 군주들의 통치기간을 기록해 놓고 있다. 바로 왕들의 역사는 기원전 300년경에 시작한 제 1 왕조로 부터 기원전 332년경의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으로 끝을 본 제 31 왕조를 마지막으로 한다.
그러나 기원전 663년 이전의 이집트에 대해서는 학자들이 정확한 년대기를 알지 못하고 있다. 왕조의 시작에 대해서도 학자에 따라서 기원전 3200년부터 2830 년 까지 계산하고 있어 그 차이가 심하다. 하여튼 이집트의 전승에 의하면 3200년경에 민족의 통일을 처음으로 이룩했고 소위 피라미드 시대로 알려진 고왕조를 건설하였다. 그것은 맴피스를 중심으로 하여 메네스가 건립하였다. 기원전 2700년경에 찬란한 피라미드 시대를 열었다. 제 3, 제 4왕조기에 물질적 및 예술적 번영의 절정기를 이루었다. 고왕국 왕들이 무능력해지자 지방의 귀족들이 독자적으로 활거하여 독립을 주장하고 왕권을 주장하기 시작하여 중왕국 시대로 접어들었다. 기원전 2100년견에 이집트의 권력 투쟁은 헤라클레오폴리스와 테베의 두 도시 국가들 간의 경쟁으로 좁혀져 기우언전 2500년경에 테베는 헤라클레오폴리스를 누루고 승리하여 중왕국 기간 동안 이집트를 재통일하였다. 이 시기의 재통일 이전에는 안전과 번영이라는 옛가치관들이 붕괴되어 그 반응으로 절망, 향락주의 및 냉소주의가 나타났으나, 재통일 후에는 다시 평화와 안정, 번영이 찾아왔 고 외국과의 무역도 활발하게 재개되었다.
이 시기에 학자들이 월력을 만들고 기하학의 체계를 세우고 상형문자를 발명하였다. 바로는 전권을 장악하고 사제 계급의 제일인자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그 후의 수백년간 이집트 인의 사고와 행위를 규제하게 되는 신학적 견해를 창출해 내었다. 당시 만연하던 다신론 사상에도 불구하고 태양을 신격화한 통일 개념이 존재했었으며,태양은 아툼,라,아몬,호루스,아텐 따위로 불리웠다. 그리고 사후의 생명에 관한 깊은 믿음이 있었다. 이러한 신앙에서 거대한 피라미드가 축조되고 죽은 대한 미라의 관습을 낳았다. 제 12 대 바로 왕은 고전적인 황금 시대를 열었다. 대규모 관개 사업과 농토를 확보하였고 페니키아와 무역을 재개하고 ‘네페르티의 예언’, ‘아멘.엠.헷 2세의 지혜’, ‘시누헤의 이야기’등 문학 활동을 전개하고 시나이 반도에 구리 광산을 개발하였다. 기원전 1850년 이후에 속한 일명 ‘저주 문서들’ 에는 바로의 적들인 아스글로느세겜,라이스,벳세메스,두로 등의 아시아의 통치자들을 저주해서 물리치기 위해 마술적 주문을 기록해 두었다.
b. 힉소스 왕조의 등장
테베의 약화된 통치 체제와 더불어 나일 강 삼각주에 경쟁적인 왕조가 나타나서 이집트가 분열되자 아시아에서 힉소스 족이 침입하여 힉소스 왕조( B.C.1720-1570)를 건립 하였다. 이들 힉소스 족은 셈 계열이었다. 그들은 기원전 2500년대의 대다수의 셈 계열 유목민들과 같은 목양자들이었다. 셈 족속들이 아프리카 영토에서 하는 것처럼 이들 힉소스 족은 이집트를 장악한 후에 가나안,페니키아,메소포타미아의 셈 족속들과 더불어 그들의 근친 관계를 계속하고 있었다.
c. 이집트 왕조의 복구
그 후에 테베의 이집트 인들은 새로운 전쟁 무기를 입수하여 기원전 1580년경에는 타-모세를 중심으로 하여 해방 전쟁을 일으켰다. 카- 모세는 힉소스족을 나일강 삼각주 연안으로 내모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그들을 완전히 축출하고 이집트를 재통합한 왕은 제18왕조를 출범시킨 아-모세 1세였다. 제 18왕조의 지배자들은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지방까지 활동 무대를 넓혀 후리안족의 미타니 왕국, 아나톨리아의 힛타이트 제국 등과 처음으로 격돌하였다. 텃트-모세 3세는 팔레스타인 군사정권에 나서 시리아 북부까지 이르는 이집트 제국을 건설하였고 그의 아들 아멘-호텝 2세는 시리아의 원정을 감행했으며, 두번째의 두 번째의 그의 원정에서 9만명의 아시아인 포로들을 끌고왔는데,그들 가운데 3600명의 아피루가 끼어 있었다. 이렇듯 승리와 힘,부귀가 3대재에 이르는 아멘--호텝 3세는 최고의 황제적 존엄을 누렸다. 그는 종교적 주문 그 밖의 것들은 모은 「죽은 자는 책」을 냈는데, 이 책은 그때 사람들의 사회젓 양심을 마비시키고 도덕심을 잃게 하였다. 이 책에 의하면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마술과 허황된 종교의식에 거액을 드리면 그의 영혼의 미래를 보증한다고 가르쳤다. 그리하여 사원들과 제사장들은 전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구가했고 나라의 부는 그것 때문에 거의 파산되다시피 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고도의 문화도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기원전 1375 년에서 1300 년까지를 소위 아마르나 시대라고 부르는데, 이때의 이집트는 내부적으로 권력 투쟁이 벌어져 바로와 세속 관료 그리고 군사지휘관 및 제사장 간에 권력 장악을 위한 4 파전이 치열했었다. 이러한 권력 투쟁은 후에 아케나톤 으로 개명한 아멘 -호텝 4세에 의해 주도된 아마르나 개혁을 촉진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즉, 평민의 관직 진출, 외국인 들의 자율화, 종교의 유일신화가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은 늦어도 기원전 1220년 이전에 이미 아시아에 존재해 있었다. 그러므로 출애굽과 광야 유랑은 이 아마르나 시대와 관련해서 생각해야 한다. 제 20왕조 3세는 가나안 땅의 영토를 장악한 왕이었고 그의 사후 이집트는 본토 안으로 영토가 중어들었다. 이집트 인들은 나무와 금속을 다루는 데 있어서 탁월하였다. 이러한 기술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유랑하며 이동 신전을 만들 때 필요한 것들이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전의 평면도를 제시하였는데, 그것은 실제로 이집트의 사원과 흡사하여 바깥뜰과 큰 방 그리고 내부에 빛이 들지 않게 차광된 지성소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형태의 사원은 다른 셈 계열의 몇몇 사원에서도 볼 수 있다. 이집트 사제들은 기름 부음을 받았고 육체적 결함이 없어야 했으며, 의식적으로 청결해야만 하였다. 한편 사제 직무는 부자 상속의 형태를 취했다. 고대 근동 지방의 풍습에 관한 최근의 연구는 이집트 인의 모녀 상속제가 히브리의 초기 군주 제도에 끼친 영향을 지적하고 있다. 다윗과 사울의 관계를 곤란케 했던 결혼 문제는 모계적 개념에 기인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왕가의 높은 서열과 결혼한 남자는 왕좌에 오를 수 있는 법정 추정 상속인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전이스라엘을 장악한 왕이 되었을 때, 그는 분명히 자신의 왕국을 다소간 이집트의 방식을 따라 조직 하였다. 따라서 이집트 인들은 솔로몬의 통치 말년에 반란을 일으켰던 여로보암을 숨겨 주는데 깊숙히 관련되어 있었다. 그때 이집트는 리비아 인들이 지배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지도자 시삭은 팔레스타인의 종주권에 대한 이집트의 옛 주장을 입증하려 했었다. 시삭의 처제가 솔로몬의 왕비였으므로 이러한 야망은 한결 더 컸을 것이다. 시삭은 팔레스타인 곳곳을 누비며 원정을 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도성을 유린하고 부를 약탈하였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발생한 국내 문제로 인하여 그는 귀로에 설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의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들은 이집트를 신뢰하지 않았고 따라서 이집트 지지파에 반대하여 예언 활동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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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메소포타마아 지역의 아카트 문화에서 본 창조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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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드 문화는 사르곤 시대에 절정을 이르렀는데, 모세의 성장 설화와 유사한 사르곤의 설화가 있다.아카드 인들은 수메르 인들의 문학을 포용하고 그것을 더욱 풍부한 상상력으로 확장시켰는데, 그 가운데에서 창조의 서사시인 ‘에누마 엘리쉬’와 ‘길가메쉬 서사시’는 유명하다. 이들 서사시는 창세기의 원역사와 유사한 개념과 사상들이 있긴 하지만,문학 구조와 신관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어 성서 기자의 모작이라는 것은 전혀 잘못된 착안이다. 우르 제 3왕조는 계속되는 아모리 인들의 침입을 막지 못하여 그들의 국가는 황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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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모리 왕국과 히브리 문화의 관련성 여부 문제
아모리 족속이란 학문적인 명칭은 널리 퍼졌지만 사실은 별개의 종족으로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아모리라는 표현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서부 지역을 가르키는 지리적 용어이며, 이집트에서는 레바논 산막과 그 주위의 지역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서부 셈 족’이라는 표현니 더 적합하다 하겠다. 우르가 멸망하자 주변의 아모리 인들이 메소포타미아 전 역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에 의해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이 세워졌는데, 그 가운데에서 가장 위대했던 왕이 제 6대인 함부라비이였다. 이때의 수 많은 점토판 문헌들이 발굴되었는데 주로 행정적인 것과 상업적인 것들로서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이주해오기 전 메소포타미아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창세기 원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바빌로니아의 문헌으로부터 차용한 것이 아니라 히브리인들 자신들이 갖고 있던 다른 자료들 속에서 보존하고 있던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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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고대 근동 세계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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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대 근동 세계의 종교들을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고고학적인 접근과 구약성서를 통한 추론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추적할 수 있는 구약성서에 나타난 고대 근동 세계에 만연했던 종교의 흔적들은 다만 구약성서에 나타난 지명과 인명들 그리고 히브리인들의 야훼 종교 이면에 비친 그림자들 가운데서 찾아 볼 수 있을 뿐 이므로 이러한 작업은 추수가 끝난 황막한 들판에서 , 길고도 어두운 엄동이 지난 후에 지난 해의 잔여 이삭을 줍는 일과 비슷한 과정일 것이다. 고대 근동 종교의 그늘들은 구약성서에 나타난 성곽, 도시, 산, 내, 평원, 언덕, 사막, 만, 바다, 사당(성소), 무덤,신의 이름, 찬미와 기도문, 제의, 축제, 법률, 조약, 서사시, 설화, 우화, 역사, 서약의 용어등에 두루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야훼 종교의 이면에 비친 그늘들이 때로는 너무 짙어서 세르게이 토카레프(1899-1985년)와 같은 대표적인 소위 무신론 종교학자들은 산과 언덕, 강과 샘물,나무와 성스러운 기둥들을 가장 초기의 이스라엘 인들이 숭배했으며 이러한 신앙에 대해 구약성서는 자주 언급하고 있다. 고 오해하리 만큼 고대 근동 세계의 셈 종족들의 종교가 야훼 종교의 이면에서 그배경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마치 불교와 유교, 천도교와 샤마니즘 등의 한국의 전통 종교들이 한국 기독교의 문화적 배경을 구성하고 오늘의 한국의 기독교인들의 생활에서 그 흔적을 때때로 나타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문화적, 사상적 유산의 잔존이 오늘의 한국 기독교인들의 교리적인 요소들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착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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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고대 근동 신성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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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동 세계의 신성의 기원은 토착 원주민의 생활에서 비롯되었으니 혈거 생활에서 온 동굴과 부적과 신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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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동굴
석기 시대에 근동인들이 제작 사용한 인류 초기 문화 단계의 유물로는 선돌, 돌기둥, 환열석주, 고인돌, 돌상, 등으로서 이러한 유물들은 오늘날 요르단의 동부 지역내에서도 많이 발견되어지고 있다. 고대 근동의 원시 종족들은 손방아와 맺돌 그리고 부싯돌과, 돌칼,돌창,등을 사용하여 사냥을 하였고 자연의 나무와 경작한 채소와 과일을 먹는 농업과 목축의 비정착된 반유목민로서 석회암 언덕에서 천연적인 동굴과 고대의 인간들이 판 동굴들이 많이 있다.
세일산의 동굴 주민들과 함께 팔레스타인의 원주민이었던 후리 족도 동굴 속에서 살았으며 이러한 유사 이전의 동굴 주민들은 일반적으로 사냥꾼들이었으니, 에둠 족의 조상인 에서도 사냥을 하면서 동굴에서 살았고 모압족과 암몬 족의 조상인 롯도 동굴에서 살았다. 롯에 대한 창세기의 설화는 토착 원주민의 생활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때에는 아직 부부의 개념이 불분명하였다. 그리하여 “롯이--- 산에 올라 거하되, 그 딸들과 함께 동굴에 거하였더니, 그 딸들이 아버지의 아들을 낳아 지칭하기를 ‘벤 아미’라고 부렸다. 그리하여 딸들이 아버지의 소생을 낳은 것을 부끄러하기는 커녕 큰 자랑으로 삼았다. 이것은 아득한 예날 동굴에 거하던 그들에게는 한 개인보다는 한 부족에 대한 관심이 더 지대하였음을 보여준다. 게셀에서의 고고학적인 발굴은 그곳에 동굴 거주자들이었던 초기 비 셈족이 거주했던 흔족을 발견하였다. 그들이 그 곳을 점유하기는 셈족이 그곳을 점령했던 때인 기원전 2500 년경보다 더 이른 시기였다. 셈족은 그들의 종교에 셈 이전 종족이었던 그 혈거인들의 이 성스러운 동굴들을 접수햇고 또한 그후에 히브리 인들이 가나안 인들의 이 성스러운 동굴울 접수했다. 거의 모든 종교에 적용되는 보편적 원칙으로서 가장 원시적인 신성의 특징과 본성을 확대하여 고대인의 삶을 투사하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신에 대한 개념은 인간이 동굴 거주가 된 이래, 그들이 숭배한 신들도 역시 동굴 주민들로 간주 되었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있다.
‘거룩하다,’‘신성하다,’는 칭호를 얻게된 어떤 동굴들은 유명한 영웅의 집이었든가 혹은 어떤 특별했던 신의 현현 때문에 씨족이나 종족으로부터 예배의 장소로 특별히 구별하여 두게 되었다. 이와 같이 구약성서에는 히브리인들이 성스러운 곳으로 간주했던 동굴 중 몇개를 언급하고 있다. 호렙의 동굴에서 모세와 엘리야는 야훼로부터 계시를 받았고 엔돌에 있는 또 다른 동굴에서 사무엘은 사울과 대화하도록 초청을 받았다. 그리고 막벨라 동굴은 히브리 조상이 묻힌 성소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 날까지도 팔레스타인의 거의 모든 거룩한 장소에는 동굴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혀상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페니키아의 동굴벽에서 발견된 아스탈트신 경배의 수 많은 상징들 가운데서 명백히 알 수 있다. 이집트 인들이‘청옥의 여인’이라고 부렀던 한 여신은 시나이 반도에 있는 ‘와디-세라비트-엘-카뎀’에서부터 가라져 나온 한 계곡에 있는 어떤 동굴에서 숭배되어졌었다. 이 동굴은 이집트 인들이 채광 탐험여행 중에 신으로부터 계시를 구하기 위해 성소로 구별하여 믿었던 기원전 2900 년경의 것이었다.
셈 족 세계에 걸쳐 있는 동굴과 움들은 원래부터 저장의 장소였다. 아라비아에서는 움이 ‘가브가브’라고 부리우는데, 거기에는 거룩한 보물들이 저장되어 있고 성소와도 근접해 있다. 이 움은아라비아 인들이 동물을 주여서그 희생의 피를 흘러보낸 구멍이었다. 의심항 여지없이 이와 같은 성격을 가진 것으로서예루살렘의 하람에는 ‘시크라’,즉 ‘거대한 성스러운 바위’가 있다. 이 바위의 표면에는 인공적으로 쪼아낸 원시적인특성 때문에, 어떤이들은 이것이 아주 고대의 성소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이러한 성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구멍에 처음는 제물의 피를 부어오다가 나중에는 물로 대신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어떤 신들이 동굴에 살기를 좋아한다는 생각은 천연적이거나 인공적인 동굴인 페니키아의 가장 오래된 사원들과, 신성한 힌이 발산되어 나온다고 생각했던 그리스의 많은 동굴 성소들에 잘나타나 있다.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는 하다한 셈 종족들의 사원들과 그리스 사원들에 있는 안채나 내부의 어두운 방과 일치한다. 그리스 어로 이것을 메가론이라 하는데, 그것은 동굴을 나타내는 셈에의 메아라흐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와 같이 세계 도처에는 동굴이 땅속에 거주하는 신들을 경배하는 것과 관련된 것을 보여주는 보기들이 많이 있고 동굴 안에서 수행 되었던 인간의 행동들을 그곳이 특별한 신의 능력의 처소로 간주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셈 종족들의 신들은 ‘지하의 신들’로 믿고 있었고 히브리인들들은 ‘오브’,시리아 인들은 ‘자쿠레’, 아라비아 인들은 ‘알- 알-아르드’,즉 ‘땅의 친족’ 등으로 불렸는데, 그들과 더불어 마법사가 교제를 갖고 있었다. 북부의 셈 종족들은 바알을 혈거의 신으로 생각하여 지하와 관련시겼다. 특히 아파카 같은 성소에는 바알의 무덤이 있는데 거룩한 샘 곁에 있다. 대체로 북부 셈 지역은 이러한 거룩한 무덤들이 산재해 있고, 그러한 장소에는 신이나 혹은 반신반인이 혈거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리하여 원래의 성소가 땅에나 있는 ‘깊게 갈라진 폭넓은 틈’이라는 전설을 지닌 훌륭한 셈 족 사원도 있다. 루시안에 의하면 이 틈이 홍수를 삼키어서,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틈에다 물을 붓는 의식이 생겨났다.
크리스천 멜리토에 의하면 이러한 틈이나 우물은 귀신이 자주 나타나는 곳이고, 물을 붓는 것은 귀신이 올라와서 인간을 해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여하간 동굴이나 움은 초기의 성소로 선택을 받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지하의 신들이 바깥 세게와 혈거 지간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장소이고 기도와 에물을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견해를 지지해주는 증거로는 많은 사원에서 발견되는 밀실이나 어두운 내실이 대부분 원래의 동굴이었다는 점이다. 이리하여 심지어 기독교의 선교사들과 중세기의 십자군들이 팔레스타인에 기독교 이전의 이교도의 사당과 성소의 자리에 그들의 교회를 세우고 야훼 하나님의 예배의 장소로 사용했었다. 그러나 그 옛날 고대의 셈 족 종교의 의식의 영향과 분위기는 쉽게 씻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동굴에 거하고 있는 신’에 대한 개념은 고대 근동 원주민들 가운데 발견되고 있는 일반적인 표징이며, 이들 개념은 전 구약 역사를 통해 유대 시대까지 동굴 숭배를 보여주는 많은 시사들 가운데 그것 스스로 잘 명시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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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액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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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동굴에서 발견되는 고대 근동의 유물 가운데서 우리는 그 지역원시 토착민들의 종교의 흔적을 찾아 볼수있으니 곧 셈 이전 종족들이 진흙이나 돌이나 나무나 뻐로서 어떤 동물의 모양을 만들어 몸에 착용한 것이었다. 이것은 부적이나 액막이를 몸에 지님으로서 악령의 범접을 피할 수 있으며 특별히 남근 착용은 재생산을 신의 영향으로 돌리는 고대의 풍속을 나타내 보여 주고있다. 이러한 신앙이 고대 근동 세계의 종족들 사이에 크게 유행되었음을 티그리스, 유프라데스 골짜기에서 발견된 기원전 400 년경의 유물들이 잘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풍습은 전승되어 오늘날 근동 국가의 주민들 대부분을 비롯하여 심지어 세계의 기독교인들까지도 십자가를 착용하는 풍습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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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신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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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신비한 힘이 어떤 것이나 호신부 개념에서 좀더 발전한 것이 신령의 개념이었다. 이들 신령들은 원래 신도 그리고 주어진 일정한 물체에 존재하는 실제로 독립된 정체도 아닌 것으로서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거나 혹은 두려움을 주는 어떤형태의 정령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거하고 있는 한정된 경내의 한정된 주민 집단과의 사이에서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어, 그 지역의 특정한 장소에 관련된 일종의 수호신과 같은역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경내의 땅에 비옥과 다산을 가져오거난 혹은 악마적인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일을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이 거한 성스러운 곳으로 간주되었다.이리하여 하늘, 땅 그리고 물에 있는 모든것이 다 신이 접해 있다고 믿었다. 모든 것이 나타나고, 자라고, 움직이고, 없어지는 것은 신이 하는 일이다. 하늘의 일월성신, 낮과 밤, 부는 바람, 넓은 강, 흐르는 강, 달리는 시냇물, 솟아오르는 샘, 그밖의 모든 삼라만상이 모두 신의 능력의 표명이었다.
심신을 새롭게 하는 맑은 물에도 신성이 있고, 잎이 돋고 꽃이 피어 그늘지고 열매 맺는 풀과 나무에들도 모두 신성의 자기 표명이며 신이 거하고 있는 증거이자 그 처소이다. 만고에 변함없이 끊임없이 생수를 흘러보내는 바윗돌 역시 신의 역활이며 그 거주처였다. 구약성서에는 이러한 모든 것들을 ‘가나안의 바알들’이라는 개념 속에 한 덩어리로 묶고 있다. 이와 같이 모든 자연들이 신비롭고 알 수없는 활동들로 가득차 있을 때, 인간의 상상력을 강력히 호소하며, 두려움과 존경의 감정을 일으키는 자연의 사건들은 쉽게 신적 혹은 귀신적 생명의 현현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러한 초자연적 존재가 신이 아니었으며, 다만 그것들이 인간 집단과의 일정한 관계 속으로 들어올 때 비로소 신의 존재는 인정 받게된다. 아랍 인들의 신앙에 의하면 대 자연에는 신령이나 귀신 같은 초인간의 산 생명체로 가득 차있다.
이러한 신령들은 영적인 존재는 아니고, 육체적 존재들이며, 인간보다는 짐승을 더 닮았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보통 털투성이로 나타나거나 타조 혹은 뱀과 같은 어떤 동물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신체는 환영이 아니다. 만약 한 신령이 죽임을 당하면 딱딱한 시체가 남는다. 그들이 나났다가 사라지거나 둔갑하며 일시적으로 인간의 형상을 취하기도 하는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들이 성이 날때 그들은 질병을 보내거나 미치게 하는 등의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보복할 수 있다. 그들은 거의 모든 면에서 인간들과의 친밀함이나 어떤 정해진 관계도 없고, 사나운 짐승처럼 인간 사회의 경계 밖에 있으며,인간의 친밀한 길로부터는 멀고 황량한 들판이나 메마른 곳에 주로 나다닌다. 이슬람교에서 이방 종교의 신들은 모두 정령이나 신령으로 격하시키는데, 이것은 바로 레17장 7절에서 북부 셈 족의 이교의 신들이 세이림(수염소, 염소, 귀신들)으로 부리우고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이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우상으로 여겨진 것과 같다. 인간 생명과 유사한 생명이 우주의 모든 부분에 스며들어 있다고 상상됨에 따라 이러한 생각의 적용은 생물 뿐만 아니라 무생물에도 쉽게 확장된 것이다. 신들과 신령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는 점이다. 아라비안나이트에는 신령들이 이름과 뚜렷한 개성이 있는 것으로 나오지만, 고대 전설들에서 신령은 짐승 이상의 뚜렷한 개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그러나 이러한 신령들은 토테미즘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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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고대 근동의 신성(神聖)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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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들의 이해에 있어 ‘거룩함’ 혹은 ‘성스러움’이란 윤리적 개념이다.완전한 존재자인 하나님은 거룩함의 모형이며, 인간은 그의 행동이나 성품이 신을 닮았을 때, 부분적인 성품이 신을 닮았을 때, 부분적으로 거룩하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거룩함의 개념은 특별히 이사야서에서 보여지는데, 이것은 히브리 예언자의 경우에나 해당된다. 그러나 이것은 고대 종교의 일반적인 개념이 아니며, 더우기 근동의 셈 족의 종교에서 거룩이란 도덕성이나 삶의 순결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거룩이란 그들의 성품이 선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종교에 대한 선, 기능 또는 단순한 물질적인 상화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고대의 근동 관념에는 종교적인 목적과 세속적인 목적에 따라 엄격한 구분이 있었는데, 신에게 속하고, 신이 사용하고, 그의 사역자를 위해서 남겨둔 것이라면 성소이고, 성전이고, 부속 건물이고, 영토이고, 모두 거룩한 것이었다.거룩은 북방 셈 어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어졌는데, ‘분리’‘제외시킴’을 의미한다. 아랍 인들은 실제로 성전을 신의 개인 전유물로 인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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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창조의 개념에 대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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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가릿 문헌의 바알 신화집에 나타나는 투쟁의 이야기가 바벨론의 에누마 엘리쉬에서처럼 창조의 선행과정으로서 창조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논란이 많다. 왜냐하면 바알 신화집에는 에누마 엘리쉬나 후론할 구약의 여러 본문들에서 언급되는 창조 이야기가 전혀 서술되어 있지 않고 단지 바알과 혼돈 세력 사이의 투쟁,왕권확립, 무질서의 정돈, 신전 건축등의 이야기만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최고신 엘이 종종 ‘피조물들의 창조자’‘신들의 아버지’ 등의 칭호와 더불어 창조신으로 암시되어 있는 반면에 바알은 풍요와 생장의 신이요 창조 질서의 보존자로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에누마 엘리쉬와는 달리 바알 신화집은 투쟁 이전에 이미 세게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우프,카펠루트,고든,모빙켈,드라이버,오버만,그레이,드의 학자들은 바알과 얌의 투쟁에 관한 신화 속에서 창조질서를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이들의 입장을 가장 잘표현해주고 있는 것이 카펠루트의 ‘창조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따라서 혼돈을 질서 잡음은 창조가 아니다’24)라는 정의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에서의 창조’라는 일면적인 창조개념만을 적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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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고대 근동 세계 속에서의 지혜문학 운동과 창조신앙
구약의 지혜문학에 나오는 지혜(hokmah)는 양면성을 지닌다.첫째는 일상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라나는 지혜이며,둘째는 종교적 의미로 이 경험지혜가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이끌어 준다. 이러한 지혜는 하나님의 현존안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며,창조된 세상과도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잠8:22-31) 지혜는 사람들에게 복된 선물이다(잠8:34).19세기 이후로 역사비평학 학자들은 “지혜”가 바빌론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의 독특한 종교 현상이었다고 주장되었으나 (G.von Rad,Wisdom in Israel,SCM,1972,9쪽 이하 참조)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점증하는 성서 고고학의 발굴 성과와 고대 중동 문학 자료의 판독지식의 확대는 이스라엘 주변의 고대 문화권인 메소포타미아와 특히 이집트에서 2000년대부터 일찌기 지혜 문학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접하게 되면서부터 구약의 잠언을 중심한 지혜문학연구는 가히 혁명적인 전환점을 맞게 되었고, 여기서 지혜문학(Wisdom Literature)은 구약 이스라엘 신앙의 전유물이 아니요,고대중동의 한 보편적 문화유산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그 전통도 매우 고대의 것으로서 이집트과 메소포타미아를 중심한 구약시대 국제적인 교차문화권내에서 지혜문학운동과 그 교류의 성격을 연구하기 시작한 결과 오늘날에는 그러한 가설(지혜가 이스라엘의 바빌론 포로기 이후 발생한 독특한 종교현상이었다는 주장)은 완전히 근거가 없음이 입증되었다.
아뭏든 현대의 구약학자들 대부분은 구약의 지혜문학의 차용관계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으며,문제는 외래적 지혜문학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배타적인 야웨신앙의 맥락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느냐고 하는데 관심의 촛점이 모아지고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며,지혜는 모든것에 앞서 창조되었고, 지혜로써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으며, 지혜는 최고의 값진 것으로 행복과 생명 그리고 구원을 보증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잠8:22-34;지혜6:18 참조). 율법과 예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듯이 의인화된 지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준다. 구약성서의 지혜는 3단계에 걸쳐 신학화가 이루어지는데, 첫째단계는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지혜의 시초라는 원리이며(잠1:7 참조),둘째단계는 인간의 담화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한 지혜의 의인화(=인격화)작업이며,셋째 단계는 지혜와 율법을 동일시 하여 구속사(Redemptive History)를 지혜의 영역안에서 해석한다(시편의 일부,욥기와 잠언의 상당부분 특히,집회서)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창조 기사의 두드러진 특징은 지혜가 창조의 역사에 중요한 역활을 하는 인격체로 까지 등장하며 이것이 요한복음 1장1절의 말씀(Logos)의 배경 이라는 면에서 그 중요성이 부각 되는 바 그리스도의 삼중직(왕직,제사장직,선지자직)에 추가되어 지혜자의 직무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성서 신학자들의 견해가 새로이 부각되고있는 이유를 전술한 지혜 문학 운동 속에서도 알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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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결 론
고대 근동 지역의 세계관, 즉 그 당시의(모세 시대) 근동 지역 사람들의 세계관을 살펴보고서 창조의 기사를 살펴보아서 오늘날의 창조기사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바로 잡으며 올바른 해석을 통하여 성경의 기자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저술의 목적을 알고 그 말씀을 우리의 신앙의 기조를 잡는데 그 목적을 두고자하는 의도로 본논문을 쓰게 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적 교리가 다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성경적 창조 교리야말로 모든 교리의 기초라는 점에서 더한 나위 없이 긴요한 것이다. 이 창조 교리가 무너지면,여지의 것들은 사상누각격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창조에 관한 기술은 성경의 맨 첫 부분에 나타나는 점과,그 이후에 나타나는 성경구절들이 그것을 그렇게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있다. 히브리 종교는 고대 근동의 종교들과는 달리 이러한 면에서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히브리 종교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고대 근동 종교들의 특성과 기능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근동 세계 안에 이스라엘의 구약세계가 놓여 있을 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의 종교적 개념과 형식이 히브리 인들의 그것과 끊임없는 관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브리 종교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고대 근동 종교에 대한 선이해가 있어야 하고 나아가서 종교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지리적,역사적 및 문화적 배경까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히브리 성서는 어떠한 인간적, 역사적 매개도 없이 곧 바로 하늘에서 떨어진 신탁의 말씀이 아니라 고대 근동 세계라는 역사적 상황 안에서 생겨난 것이기에 그 문화적 배경을 무시 할 수 없다. 만일 히브리 성서가 그것이 기록된 당시의 인간적 환경이나 역사적 배경과는 무관하게 “만일 하늘로부터 떨어진 것”처럼 생각하고 접근한다면, 우리는 구약성서를 적절하게 해석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히브리 성서는 실제로 인간 구속을 위한 신적 계시는 고대 근동의 역사와 문화라는 환경을 통해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고대 근동 세계의 자연과 역사 .생활과 종교가 히브리 성서에 표현된 사상에 미친 환경을 살피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물론 고대 근동 세계의 역사와 환경이 히브리 사상과 구속의 가르침은 이스라엘의 역사적 경험에서 온 것었다. 고대 근동 세계의 자연과 역사, 사회와 종교의 그 문화적 배경들은 히브리 사상의 표현 양식을 형성 하여 주었으나, 그들 종교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특수한‘신-경험’의 산물이었다. 그러므로 구약 학도들이 히브리 성서를 순리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성서에 나타난 신비스런 표현 양식들과 거기에 반영된 사상들을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고대 근동에서 널리 유행되었던 유사한 표현 양식들과 사상들을 통찰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창조에 대한 기독교적인 개념은 창세기 첫 부분의 창조기사와 로마서에 진술된 바울의 신학을 중심으로 창조- 타락-구원이라는 연속적인 교리체계 속에서 이해 되어 왔다.즉 창조는 타락이라는 항목을 사이에 두고 있는 가운데 구원과는 별다른 상관성을 갖지 못한 개념으로 인식되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창조는 타락 이전의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독립적인 신앙 조항으로 고정되어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무에서 만들어 내셨다는 신앙고백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성서에 나타난 창조 교리는 그 자체로서 독립되어 나타나기 보다는 하나님의 구원 행동과 분리될 수없는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성서의 창조 신학을 그 전체적인 전승의 맥락 속에서 이해 할때 분명하게 드러나며,이스라엘의 창조 신학의 배경을 형성하는 고대 근동 지역의 창조신화의 비교를 통해서 그 특징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올바른 창조 신학의 확립과 창조 신앙의 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무엇 보다도 이 시대의 현대적 세계관에 비추어서 창조기사를 아전인수적으로 해석 할 것이 아니라 고대 근동 세계의 역사,문화,종교적인,맥락(Context) 속에서 이스라엘의 독특한 창조 신앙을 재 발견 해야 할것이다. 그러한 인식 가운데서 졸고는 모색하는 한 단초를 열었을 뿐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연구들이 많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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