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틸리히 신학의 일반적인 특징
첫째로 그의 신학은 현대의 지성인들에게 기독교 신앙 내용을 변증한다. 그의 신학의 목적은 기성 교회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고, 세속 문화에 의해서 무의미성에 내던져진 오늘의 지성인들에게 기독교 종교를 전달하는 데 있다. 그는 신앙을 “궁극적인 관심”, 하나님을 “존재 그 자체”, 죄를 “소외”, 그리고 은혜를 “용납”으로 바꾸어 말함으로써 현대 지성인들에게 기독교 메시지를 전한다.
둘째로 그는 변증적(apologetic)인 목적을 위해서, 일관성 있고 논리적 결합을 지닌 신학체계를 세웠다.
셋째로 그의 신학의 목적은 기독교 신앙의 실체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쪽에서 잘못 해석되고 있는 것을 막는 데 있다. 예컨대 그는 교회가 신앙을 정신의 특별한 능력의 기능(지식, 행동, 느낌)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반대하여 자아의 심연과 전체성에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틸리히는 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 기독교 메시지를 왜곡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성서적 상징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다.
넷째로 그의 신학의 목적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일 존재론적(혹은 철학적) 기반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존재론이란 “실재에 대한 전제들”과 거의 동일시되는 바 , 거의 모든 논술들은 어떤 종류의 존재론을 전제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성서적 종교에도 역시 존재론이 함축되어 있다.(『성서적 종교와 궁극적인 것에 대한 추구』)는 것이다. 틸리히에 의하면 참여를 강조하는 플라톤, 플로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 중세 신비가들 및 쉘링에게서 발견되는 신비주의적 존재론과 판단을 강조하는 더 인격적이고 유명론적이며, 도덕적이고 예언자적인 존재론이 있는데, 이 둘이 바울에게서는 하나로 연합되어 있다고 한다. 틸리히에 의하면 신비적 존재론이 없는 자유주의자들은 종교를 윤리적인 계명들과 동일시하였고, 정통주의자들은 이 신비적 존재론을 결여하고 있기에, 권위주의적이고 율법적이라고 한다.
이상에서 우리는 그의 신학의 특징이 전체적으로 ‘변증적 신학'(apologetic theology vs kerygmatic theology)이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그는 고대 희랍의 변증신학자들에게서 자신의 신학의 뿌리를 찾는다. 예컨대, 순교자 저스틴은 고대 희랍 세계의 지성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로고스’와 구약에서 부분적으로 계시되었고, 신약에 완전히 계시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로고스’ 사이에 접촉점이 있다고 보면서, ‘로고스’라고 하는 공통 분모에 출발점을 두고 성서의 로고스를 변증하려고 했다. 이제 틸리히는 존재론을 공통 지반으로 하여, 오늘의 지성인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려고 한다고 보여진다. 틸리히는 존재론에서 제기되는 질문들이 계시에서 그 대답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전제를 가지고 출발한다. 그의 존재론은 저스틴에게 있어서 희랍 세계의 ‘로고스’에 해당한다.
2. 상관관계(Correlation)의 방법론
신학에서는 인간의 변화하는 상황적 요구보다도 기독교 메시지의 진리 자체(Kerygma)를 강조하는 케리그마적 신학(예컨대, 칼 바르트)과, 믿지 않는 사람들의 가능성과 상황을 중요시하고 이들과의 공통 지반을 전제하고, 이 공통 지반에서 출발하는 ‘변증적 신학’ (apologetic theology)이 있다. 후자는 인간의 이성과 문화가 기독교 메시지와 접촉점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틸리히는 “이성과 계시에 대한 물음”, “존재와 하나님 물음”, “실존과 새로운 존재에 대한 물음”, “역사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물음”에서처럼 “상관관계의 방법론”(the method of correlation)을 1924년에 주장하였다. 예컨대, 소외, 죄책 및 절망에 대한 실존철학의 주장에서 새로운 존재를 향한 물음을 찾고, 새로운 존재(그리스도로서 예수님)에로 연결하는 방법론이다.
이 “상관관계의 방법론”은 틸리히의 학문적 삶 자체를 반영한다. 그는 철학, 예술, 과학, 심층심리학 그리고 신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단순히 철학자로서 신학에 관심을 가진 것이나, 신학자로서 철학에 관심을 가진 것이나, 심층심리학자로서 신학에 관심을 가진 것이나, 예술가로서 신학에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는 각각에 대해서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르네상스 인간이었다. 그는 인간의 모든 학문들이 각각 고립 상태로 있어서는 안 되고, 각각 각자의 온전성을 추구하면서도 상호 연관 속에서 궁극적 실재와 관계를 맺고있다는 사실이 탐구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기독교와 문화는 분리되어서도 안 되고 동일시되어서도 안되며, 혼합되어서도 안 된다고 하였다. 그는 모든 문화의 궁극적 근거는 종교적인 것으로 보면서 그것이 기독교의 구체적인 전제들과 ‘yes'와 ’no'의 관계, 즉 변증법적 관계에 있다고 하였다.
틸리히에게 있어서 신학을 하려는 사람은 먼저 철학자여야 하는데, 여기에서 철학이란 하나의 특정 철학적 입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물음 전반을 말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본질-실존-본질화’의 운동에서 실존 속에 있는 인간에게 부분적으로 본질적인 것이 남았다고 지적하였거니와, 인간은 실존 상태에서 하나님에 대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하나님에 대한 물음을 물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변증적 신학’을 할 수가 있고, ‘상관관계의 방법’을 사용할 수가 있다고 하는 말이다. 틸리히는 신학은 이와 같은 철학의 물음들에 대해서 바른 대답을 줄 수가 있다고 한다. 물론 상당한 정도로 틸리히는 기독교 메시지를 알고 받아들인 사람으로서 물음들을 철학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말이다.
틸리히에게 있어서 철학사 전체를 통해서 축적된 모든 존재론이 중요하지만, 특히 현대의 ‘생의 철학’(Lebensphilosophie)과 ‘실존철학’과 ‘심층심리학’이 가장 중요하다 하겠다. 그는 그의 생애 말기에 극동의 종교들과 문화에 의해서 제기된 물음들에서도 깊은 관심을 가졌지만 말이다. 그런데 틸리히에 의하면 신학은 주로 철학이 제기하는 궁극적인 관심사들에 상관 관계를 하면서, 역사 문제나 과학 문제와 같은 궁극 이전의(penultimate)의 문제들에도 관심을 갖는다. 틸리히에게 있어서 우리의 존재 혹은 비존재를 결정하는 궁극적 관심사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비존재(the Non-Being)요 다른 하나는 존재의 근거(the Ground of Being)이다. 이 궁극적인 관심사는 우리의 유한한 존재의 경계선에 놓여 있다. 이 경계선에서 인간은 비존재의 쇼크 혹은 위험을 경험하며, 동시에 하나님 혹은 존재의 근거와 변증법적 관계(yes and no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이처럼 분열적 실존과 이 실존적 딜레마의 해결책 추구라고 하는 양극화 관계 속에 있다.
끝으로 틸리히에게 있어서 인간의 궁극적 관심 영역은 무엇인가? 틸리히는 이성은 계시를, 존재는 하나님을, 실존은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을, 생은 그것의 애매한 물음 속에서 애매성이 없는 생 혹은 영적 임재를, 그리고 역사는 하나님 나라를 묻는다고 한다. 결구 틸리히는 존재를 하나님, 실존을 그리스도, 그리고 삶을 성령에 상관 관계시키고 있다. 그런데 실존의 물음이 그리스도로서 예수님 안에 있는 새로운 존재에 의해서 대답되는 것이 그의 신학사상의 중심이다. 그는 기독론이 모든 기독교 신학의 중심이라고 하지만, 결국 틸리히 신학은 상관 관계적이고 삼위일체론적이며 그리스도 중심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4) 타종교와의 대화
(1) 틸리히에 있어서 타죵교와의 대화의 역사
틸리히의 세계 종교들에 대한 관심은 1910년까지 소급되며, 그의 쉘링에 대한 논문(The Construction the History of Religion in Schelling's Philosophy : Its Presupposition and Principles)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의 초기 일반 종교에 대한 관심은 1924년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루돌프 오토와의 친분과 대화에서 강화되었다. 미국에 온 이후 출판한 1950년대 그의 『조직신학』에서는 그의 '로고스'개념과 잠재적 영의 현존(Spiritual Presence) 개념이 그의 일반 종교와의 접촉점을 말한다. 1957년과 1958년에, 틸리히는 코네티컷의 웨슬리 대학과 노우스 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세계종교에 대한 공개강좌를 통해서 역시 그의 일반 종교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였다. 그리고 그는 1960년 10주간을 일본에서 보내면서, 일본의 불교와 신도를 알게 되었다. 그는 1961년 콜럼비아 대학의 연속강연(the Bampton lectures)을 Christianity and the Encounter of World Religions로 출판하였는데 엘리아데는 이 책의 불교-기독교 대화라고 하는 한 장(章)에서 틸리히 사상의 새로운 국면이 발견된다고 하였다.
틸리히는 1963년 그의 『조직신학』 제 3권 서론에서 기독교 신학이 타 죵교들과 창조적인 대화에 돌입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가 세계사적 가치를 상실할 것이고 편협한 종교로 전락할 것이라고 하였다.
1964년 틸리히가 시카고 대학에서 엘리아데와 일반 종교들에 대한 연합 세미나를 개설함으로써, 그의 일반 종교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되었다. 틸리히는 시카고에서의 마지막 강의 제목을 “세계 종교의 역사가 조직신학자에게 주는 의미”라고 하였다. 이때에 틸리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세계종교의 역사에로 방향 잡힌 그리고 세계종교와 대화하는 조직신학을 집필하겠다고 하였다.
(2) 종교사 및 비기독교 신앙들에 대한 접근
첫째로 비기독교 종교들은 거짓된 것이고, 인간이 하나님께 도달하려는 헛된 노력이며, 결국 그것은 전혀 계시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 칼 바르트의 입장을 틸리히는 반대한다. 틸리히는 바르트와 같은 기독교 신학자들은 너무 좁은 계시관으로 말미암아 너무 비좁은 입장을 갖게 되어, 세계 종교들 및 유사 종교들과의 만남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틸리히는 기독교와 일반 종교사이를 다리 놓으려고 한다. 따라서 틸리히는 정통 기독교의 배타적인 입장을 거부한다. 둘째로 그는 종교를 세속 속에서 용해시키는 계몽주의적 이성주의 역시 거부한다.
틸리히는 일반 종교들이 신학에 주는 의미를 논하기 전에 5가지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모든 종교들 속에 신적 계시가 부분적으로 나타나 있다고 하는 전제이다. 둘째는 실존 속에 있는 소외된 인간이 제한적이고 일그러진 방법으로 이 계시를 받아들인다고 하는 전제이다. 셋째로 종교들의 역사로 하여금 신비적, 예언자적 및 세속적 비판을 받게 하는 하나의 계시적 과정이 있다고 하는 전제이다. 넷째는 종교들의 역사 속에 하나의 중심되는 사건이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타종교들의 적극적인 결과들을 통합하고, 보편적 의미를 지니는, 하나의 구체적 신학을 가능케 한다고 하는 전제이다. 다섯째로 세속 문화의 창조적 근거요, 비판의 척도이다라고 하는 전제이다. 거룩성(the Holy)은 세속 문화 속에 있다는 것이다.
틸리히에 의하면, 모든 종교들 안에는 ‘거룩성’에 대한 경험 요소들이 있다. 성례전적 요소, 신비적 요소, 그리고 예언자적 요소가 그것이다. 틸리히에 의하면, 모든 고등 종교들은 이 세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거룩성’의 계시적 자기 현현의 본성에 속한다고 한다. 끝으로 틸리히는 이세 요소들은 “구체적 영의 종교”(기독교)에서 연합한다고 한다. 타종교들의 세 가지 요소들이 각각 기독교의 그것을 지향한다는 말이다. 틸리히는 “구체적 영의 종교”가 타종교들 안에 파편적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틸리히에 의하면, 이 “구체적 영의 종교”는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에게서 충만하게 나타났다.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의 나타나심은 모든 종교의 내적인 목적이다. 그는 자체 내에서 특수 종교(유대교)를 십자가에 못박으셨다. 그는 보편을 위해서 특수를 희생시키셨다. 그는 그가 속했으나 그를 버린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지셨다. 그러나 그분 안에 있는 사랑은 종교적 영역과 세속적 영역들을 포용하시는 바, 이 사랑은 자기 자신과 타종교들 및 유사 종교들을 비판하는 표준이다.
(3) 기독교 세계 종교들 간의 대화 방법
고대교회는 타종교와 비기독교적 문화에 대해서 배타적이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의 많은 기독교 학자들은 이 세계의 모든 진선미가 기독교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예컨대 고대 교회는 희랍 세계(예컨대 스토아 학파)로부터 형이상학과 도덕적 원리를 동방의 신비종교들로부터 제의적 구조를 로마로부터 법을 수용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다. 특히, 틸리히는 헬레니스틱 시기의 로고스 사상을 높이 평가한다. 틸리히는 순교자 저스틴 같은 변증신학자의 신학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 이 로고스는 모든 종교들과 형이상학들 속에, 그리고 구약의 종교 속에서 역사하신 분으로, 결정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신약의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인격적으로 성육신하셨다고 하는 것이다. 이 로고스는 역사적 인격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최종적 나타나심을 위한 준비라는 말이다. 틸리히 역시 이 로고스가 기독교의 계시와 세계 종교들 사이를 다리 놓는다고 한다. 바로 이와 같은 로고스론은 기독교와 타종교의 대화를 가능케 한다.
(4) 기독교와 ‘종교’의 미래
틸리히는 기독교가 ‘종교’로 전락하는 경향을 지녀왔다며, 타종교들은 물론 기독교까지도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에 의해서 확립된 표준에 의해서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종교’라는 차원에서 기독교와 타종교들 사이의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종교’로서 기독교는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에게 나타난 표준에 입각하여 타종교들과 대화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틸리히는 종교들의 종합이나, 종교의 종식이나, 한 종교의 타종교들에 대한 정복을 주장하지 않는다. 모든 종교들이 각각의 구체성과 특수성을 지녀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기독교야말로 ‘종교’로서의 자기를 비판하는 정도만큼 길이 살아남을 수가 있을 것이다.
(5)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비록 틸리히가 그의 생애 후기에 가서 세계 종교들에 대한 관심을 크게 나타내고 있으나, 그는 조직신학자로서 기독교 신학에 더 크게 공헌한 것은 확실하다. 그의 대부분의 저서들, 특히 3권의 『조직신학』을 지배하는 것은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의 궁극성이다. 그의 1961년 강연(Missions and World History)은 그의 대부분의 저서들에 반영된 타종교들에 대한 시야를 보여주고 있다. 틸리히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은 역사의 중심으로서 역사의 의미가 완전하게 계시되는 순간이었다. ‘종교’로서 기독교를 포함하는 모든 종교들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에 의해서 비판을 받은 후, 그분 안에서 연합한다. 또한 이 중심에서 역사적 실존의 모순들도 극복된다. 선교란 세계 종교들과 심지어 ‘종교’로서 기독교 안에 현존하는 잠재적 교회를, 그리스도로서 예수님 안에 나타난 새로운 실재에로 개변시키려는 시도이다. 하지만 틸리히 역시 기독교의 우월성을 몇 가지 제시한다. 기독교는 율법이 아니라, 사건이라는 것, 그리스도께서는 무한한 것을 위해서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유한자를 희생시키셨다고 하는 것, 그리고 예수께서 실존을 본질과 재연합시키는, 사랑의 원리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교야말로 그리스도로서 예수님과, 이분 안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가 애매성 속에 있는 세계를 정복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한다. 그러나 동시에 선교사들은 기독교 밖의 종교들과 문화들 속에 잠재적으로 주어진 것을 밝혀 드러내고 완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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