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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서신

로마서 5장 12-21절, 두 세대(Two Age) - 박사학위논문

by 은총가득 2020. 4. 15.


          로마서 512-21, 두 세대(Two Age)"


     서론


    A. 바울의 복음적 변증들에 있어서 두 세대구조

  

바울은 우주 역사를, 특히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구속의 행위의 빛 안에서 해석한다.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속행위는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에 따라서, 모든 역사의 전 과정을 형성한다. 즉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안에서의 그리스도의 우주적 역할은 바울의 서신들의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으며, 또한 모든 바울의 복음적 변증의 대전제를 이루고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구속적 계시의 신비이고 중심이다(1:11-17).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의 신비가 지금 완전히 계시 되었으며, 그리고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역사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이해했다(16:25;26;고전2:7;1:9,10,3:3-5, 1:26,2:2,3, 딤후1:9,10,1:2,3).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1:12), 바울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구원의 성취 안에 있는 그의 실존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부르신 사건이었다. 그 만남을 통해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높임 받은 메시아로,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의 전 생애와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따라서 바울의 관심사는 오로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집중된다.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또 그가 무엇을 하였나에 집중되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을 역사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사적 성취의 계시로, 그리고 위대한 구원시대의 도래로 보았다(4:4). 이 비밀의 계시가 전()바울 복음의 실제적인 내용이며(1:16,16:26), “그에게 맡겨진 사역의 목적이다(1:25,26).


그리하여, 바울의 모든 설교의 근저에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사역, 곧 그리스도의 오심과 공생애, 특히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의 드라마가 이미 실현되었고 또 성취되었다고 하는 사상이 놓여 있다. , 바울의 모든 설교들은 바로 도래한 구원의 알림이고 선포이다. 바울의 설교 자체가 위대한 종말론적 사건을 담고 있다. 그의 중심적 신학사상들은 그것을 기초로 하여 세워지고 있다. 이러한 전제 아래서, 바울은 우주 역사를, 특히, 그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구속의 행위의 빛 안에서 해석한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은,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사역, 죽으심과 부활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새 시대를 위한 구속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 가운데서 현재적인 현실이 되었다.


그로부터, 모든 바울 설교의 초점은 믿는 자가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의 재림, 곧 종말론적 실존의 시작(“이미”)과 이 실존의 마지막 완성(“아직 아니”)사이의 기간 동안에 존재하는 두 세계(“두 세대혹은 두 세상”)의 실재와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에 맞추어 진다(1:21). , “두 세대구조가, 바울의 종말론적 설교의 근본구조를 이루게 되고, 또 바울의 복음적 변증을 위한 논증 방식이 된다: 실제로 바울의 서신들 안에서, 이와 같은, 두 세대(Two-Age) 구조에 관한 논증들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을 들면, 1:21,고전1:20,2:6,8, 3:18,15:45-47,5:14,1:4,12:2 ).그리하여, 바울은 역사 안에서의 믿는 자의 실존을 하나님의 현재의 종말론적인 경계선(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재림)의 전망 안에서 분석하고 비평한다.

 

  B. 바울의 두 세대(Two Age)" 구조의 독특성

  

이세대오는 세대를 대조시키는 바울의 두세대구조용법은 분명히 사도바울 자신으로부터 처음시작된것은 아니고 비종교가들인 고대헬라철학자들에게서 두개의 현존하는 세상 질서의 개념으로서 두 세상에 관한 원리가 나타나고 있다. 바울의 대조적인 두세대 구조안에서도 이와같은 우주론적 구별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플라톤의 높은 영역낮은영역의 이분법이 아니라 하나님중심, 그리스도중심인ㄴ 구속사적 종말론의 전망안에 있으며, 또한 역사적으로 그 각각의 세대들에 속하는 삶의 특징적인 요소들도 그와같은 컨텍스트 안에서 논증되고 있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은,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사역, 죽으심과 부활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새 시대를 위한 구속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 가운데서 현재적인 현실이 되었다. 그로부터, 모든 바울 설교의 초점은 믿는 자가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의 재림, 곧 종말론적 실존의 시작(“이미”)과 이 실존의 마지막 완성(“ 아직 아니”)사이의 기간 동안에 존재하는 두 세계(“두 세대혹은 두 세상”)의 실재와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에 맞추어 진다(1:21). , “두 세대구조가, 바울의 종말론적 설교의 근본구조를 이루게 되고, 또 바울의 복음적 변증을 위한 논증 방식이 된다: 실제로 바울의 서신들 안에서, 이와 같은, 두 세대(Two-Age) 구조에 관한 논증들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을 들면, 1:21,고전1:20,2:6,8, 3:18,15:45-47,5:14,1:4,12:2 ).그리하여, 바울은 역사 안에서의 믿는 자의 실존을 하나님의 현재의 종말론적인 경계선(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재림)의 전망 안에서 분석하고 비평한다.

  

C. 로마서 512-21, “아담-그리스도유형론의 의의 

 

  1. 내용요약  

역사적으로 바울 연구가들 사이에서, 바울 신학에 중심사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계속적으로 논쟁이 되어왔다. 우리는 그에 대한 대답을 바울의 생애와 사역에 대한 관찰로부터 간단하게 발견할 수 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1:12), 바울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구원의 성취 안에 있는 그의 실존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부르신 사건이었다. 그 만남을 통해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높임 받은 메시아로,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의 전 생애와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따라서 바울의 관심사는 오로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집중된다.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또 그가 무엇을 하였나에 집중되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을 역사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사적 성취의 계시로, 그리고 위대한 구원시대의 도래로 보았다(4:4). 이 비밀의 계시가 전()바울 복음의 실제적인 내용이며(1:16,16:26), “그에게 맡겨진 사역의 목적이다(1:25,26).


그리하여, 바울의 모든 설교의 근저에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사역, 곧 그리스도의 오심과 공생애, 특히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의 드라마가 이미 실현되었고 또 성취되었다고 하는 사상이 놓여 있다. , 바울의 모든 설교들은 바로 도래한 구원의 알림이고 선포이다. 바울의 설교 자체가 위대한 종말론적 사건을 담고 있다. 그의 중심적 신학사상들은 그것을 기초로 하여 세워지고 있다. 이러한 전제 아래서, 바울은 우주 역사를, 특히, 그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구속의 행위의 빛 안에서 해석한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은,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사역, 죽으심과 부활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새 시대를 위한 구속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 가운데서 현재적인 현실이 되었다.


그로부터, 모든 바울 설교의 초점은 믿는 자가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의 재림, 곧 종말론적 실존의 시작(“이미”)과 이 실존의 마지막 완성(“ 아직 아니”)사이의 기간 동안에 존재하는 두 세계(“두 세대혹은 두 세상”)의 실재와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에 맞추어 진다(1:21). , “두 세대구조가, 바울의 종말론적 설교의 근본구조를 이루게 되고, 또 바울의 복음적 변증을 위한 논증 방식이 된다: 실제로 바울의 서신들 안에서, 이와 같은, 두 세대(Two-Age) 구조에 관한 논증들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을 들면, 1:21,고전1:20,2:6,8, 3:18,15:45-47,5:14,1:4,12:2 ).그리하여, 바울은 역사 안에서의 믿는 자의 실존을 하나님의 현재의 종말론적인 경계선(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재림)의 전망 안에서 분석하고 비평한다.

  

  2. 로마서 512-21절의 구조와 개요 

 

로마서 512-21, “두 세대구조 논증이 의미를 갖는 세계, 곧 그의 컨텍스트는 바울과 로마에 있는 기독교 공동체의 역사적 상황이다. 바울은 이 논증을 통해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유다인과 이방인 모두를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 새로운 삶을 축하하는 기독교 공동체의 종말론적 고백으로 옮겨놓음으로써, 첫째로, 로마 교회가 당면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불일치와 분리를 해소시키며, 두 번째로 자신의 선교 사역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곧, 이와 같이 새롭게 창조된, 구속사적 종말론의 전망에 참여하는 것으로 변증한다. , 이 논증은, 로마서를 기록하게 된 자신의 전()동기와 목적을 당성하기 위한, 바울 자신의 변증적 고안이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512-21절의, “두 세대에 관한 바울의 논증은 로마서의 각 복음적 변증들을 위한 숨겨진 두 세대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118절로부터 839절까지의 논증의 중심으로 고안되었으며 뿐만 아니


, 그 다음에 이어지는 다른 두 논증들,91-1136절과 121-1533, 역시, 512-21절에서 제시되고 있는 근본적인 전망 안에 있다. 한 마디로, 로마서 512-21절에서의 두 세대구조에 관한 논증은 로마서 전체에 걸쳐서, 바울의 모든 복음적 변증들(설교와 가르침)이 출발점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에서 로마서 512-21절은 로마서 전체의 논증을 위한 표제 본문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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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그리스도 유형론 안에 나타나고 있는 바울 종말론의 두 세대 구조 

 

로마서 512-21절에서, 바울 종말론의 두 세대 구조 논증은  바울 자신이 파악한 아담적 인간의 곤경의 현실에 대한 논의(12-14b)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아담적 인간이 처한 곤경의 현실은,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의 새로운 삶(실존)과 대립적으로 상응하고 있다. 그래서 아마도, 바울의 이와 같은 논증 전개로부터,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의 종말론적 성취(21절에서 나타나고 있는), 인간이 처한 곤경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합당할 지도 모른다. 특히 불트만이 이러한 주장을 정당화 시켰다: 게다가 그는 보다 확대시켜서, 로마서 전체가, 그것을 해결하기에 앞서서, 죄에 대한 논의로 구성되었다고 관찰해내었다: “바울이 인간의 곤경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속사적 행위에 대한 선포가 결정적인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트만의 관찰은 매우 정확하지 못한 것이었다. ! 놀라웁게도 바울의 생각은 인간의 곤경으로부터 그에 대한 해결을 향하여 달려 나가고 있지 않다. 오히려 바울의 생각은 해결책으로부터 곤경의 문제로 진행되고 있다. , 전 로마서에서의 바울의 설교나 복음적 변증들은 한결 같이 하나님이 그와 같은 구세주를 예비해 놓으셨다는 선행적 확신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바울은 예수가 우주적인 구세주였다는 확신을 갖기 이전에는, 그러한 구세주가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바울에게는 구원의 가장 확실한 방도인 율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인간의 요청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로부터 그의 모든 복음적 설교들을 시작한다. 바울은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행위에 대해 말한다(cf.고전15,살전4:14,6:8). 즉 바울 설교의 모든 내용은 그리스도의 강림, 죽으심, 그리고 부활로 말미암아 시작된 종말론적인 구원시대의 선포와 해명으로 요약되어 진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지금 여전히 기다려지고 있지만, 구원의 새 시대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높아지심 안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믿는 자의 ?! ? 실존은 이와 같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구속사의 긴장 안에 있다. , 새로 운 약속의 공동체는 두 세대 사이의 긴장 가운데 현존하고 있다. 그리하여, 바울이, 이미 오셨고 그리고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설교 할 때, 두 세대 구조는 역사 안에 나타난 그리스도에 대한 완전한 계시를 설명하는데 가장 적절한 방식이다.


  한마디로 이 논증의 중심 동기는 믿는 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현재적 통치에 있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 바울의 본래적 의도는 메시아가 종말론적 아담이라는 것을 나타내려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cf.고전15:22,45,3:9,10). 바울은 그리스도를 예정되었던 세상의 통치자로 선포하고 있다. 종말론적 생명은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이미 현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바울은 바로 그러한 삶 자체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므로 여기서 아담과 그로 인하여 야기된 재난에 대한 바울의 언급은 그 자체가 본래의 의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 행위의 결과를 더욱 두드러지게 보이려는 것이다: 바울이 아담을 그리스도의 원형이라고 말할 때, 거기서 아담은 그리스도라고 하는 미래의 탁월한 형상의 예시로서 제시되고 있다. , 이 논증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보편적인 능력으로 하여금 미래로부터 이미 현재 속에서 작용하게 만드는 은혜의 종말론적 풍성함을 설명하는 것이! (18). 그런 의미에서 로마서 512-21, 아담-그리스도 유형론 안에서 전개되고 있는 이와 같은 두 세대 구조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종말론적 성취를 해설하는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이 논증에서 비록 그리스도의 통치가 아담으로 말미암아 야기된 죄와 죽음의 통치와 대립되고 있으며, 그리고 그에 속한 삶들을 각기 설명하고 있는, 여러 가지 개념들이 서로 상응하고 있기는 하지만, 양편의 결과들은 궁극적으로 서로 비교될 수 없다. 그들 사이에는 실제로 무한히 질적인 탁월성의 차이가 있다: 바울은 이 논증에서 그 차이점을 확실히 드러내기 위해서, “더욱 더라고 하는 질적인 차이를 가리키는 수사학적 점층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아담은 각각 그들 세계에 대한 운명의 담지자들이지만 그들의 기능에 있어서는 동일한 비중을 가지지 않는다. , 첫 번째 아담의 세계와 역사는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의 그것에 의해서 극복된다.


  한편, 이 논증에서 바울은 역사의 각 단계가 아니라 역사의 시작과 종말을 나타내는 아담과 그리스도의 특성에, 그러므로 원시간과 종말의 때의 묵시문학적 반립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조상들이 그 후손의 운명까지도 결정지을 능력이 있다고 보는 것이나 집합인격이라는 셈어적 표현은 바울의 의도가 아니다. 그에 대한 적절한 대답으로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조상에게서 후손들의 운명이 확정되었다는 것이 이 본문의 결정적인 동기이다. 그리고 그런 한에 있어서 집합인격의 표상을 기억하는 것은 유용하다. 이 본문에서 결정적인 사실은 여기서 한 세대의 지도자가 비교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심판과 세상의 구원을 가져 온 두 인물을 양극적으로 대립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 그리스도와 아담의 대조는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운명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울의 두 세대론은 본질적으로 우주적이고 보편주의적이다. 죄와 죽음이 우주를 규정하는! 세력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의 자유를 근거 짓고, 그리스도인의 삶에 새로운 생명을 주는 능력으로서의 의 역시 우주적인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 특히 바울의 모든 사람”, “많은 사람의 병행적 용법은 이와 같은 우주적, 보편주의적 성격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러한 유대인과 이방인을 위한 복음은 그들 모두를 죄 아래 있는 사람들로 규정하며, 그들 모두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해방하고 연합시킨다. 그러므로 이러한 논증이야말로, 바울에게 있어서, 결국 유대인과 이방인 기독교인들 사이의 갈등과 분열이라는 로마서의 상황을 해소하고 더 나아가서, 그의 이방선교가 하나님의 전체적인 계획에 얼마나 적합한 것인가를 설득하는데 있어 매우 필요하고 또 유용하다.

  

 이와 같은 바울의 두 세대구조론은, 각각의 두 세대의 출발점과 원천 그리고 그 내용에 있어서 동 시대의 그것들과 구별되며, 다음과 같은 독특성들을 가진다. 첫째로 바울의 두 세대 구조는 본질적으로 (하나님 중심)그리스도 중심적인 구속사적 종말론의 전망 안에 있다. 그리고 또한 역사적으로 그 각각의 세대들에 속하는 삶의 특징적인 요소들도 그와 같은 컨텍스트 안에서 논증되고 있다(cf.5:12-21). 특히 바울이 말하는 장차 올 세상(세대)”로서의 하나님의 나라는 우주론적인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철저히 구속적 하나님 나라, 구속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오랜 사역에 의해 점진적으로 세워지고 풍성하게 됨을 통해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이다. 말하자면 하나님 나라는 그 자체 안에 시간과 역사를 가지게 된 하나님 나라이다.


 , 이 논증에서 바울은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 사이의 심판(정죄)과 구원(은혜 안에서의 의와 영생)의 역사적 현장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역사 속에 있는 인간이 바로창조의 현실이며 또한 구원의 대상이요 구원의 장이다. 그리고 아담과 그리스도가 모두 실존과 세계에 대한 통치를 시작하였기 때문에 양자 사이의 유비관계가 성립된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러한 두 세대의 구조는 인간 실존의 두 가지 형태이며, 두 세계의 질서였다. 뿐만아니라, 여기서 바울은 창세기 3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아담은 전적으로 한 역사적 인물이며 단순히 일반 인간에 대한 신화적 화신이 아니다.


로마서 512-21절에서의 유형론은 근본적으로 역사를 전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종말론적 긴장 가운데서 두 세대 구조 안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면성은 플라톤의 철학적 이원론과 형식적인 유사성의 일부를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그것은 플라톤의,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인, 그리고 우주론적인 철학적 이원론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것의 토양은 형이상학적 사변이 아니라 종말론적 계시이다. 바울에게서는, 역사적인 것이 먼저 오고 그 뒤에 신학적인 것이 있다. 뿐만 아니라, 한마디로, 바울의 두 세대 구조가 일관되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그리스도 안에서의 종말론적 구속사의 성취의 컨텍스트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현재 안에서의 계속성의 본질에 있어서, 일관성이 없고 혼돈스러운 유대교 묵시문학과 그것과도 확실하게 구별된다. 두 번째로, 아담- 그리스도 유형론 안에 분명히 두 세대에 관한 묵시문학적 관념이 시사되고 있다. 그리하여 죽음에의 예속상태와 종말론적 삶 사이의 반립이 우주적인 관점에서 예리하게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묵시문학에서 처럼 두 세대의 연속적인 도식을 취하지 않았다. , 바울은 두 세대에 관한 묵시문학적 교리를 전제하고 변형시키고 있다. 새로운 세대의 출현과 더불어 예서 세대가 단순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옛 세대의 세력이 계속해서 새 세대에 속한 자들을 위협하고 치명적인 시련을 가져다준다. 또 한편으로는 옛 세대야 말로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는 장이 된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출현한 시간 안에서는 두 세대가 유대교의 묵시문학에서와는 다르게 더 이상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 세상은 두 세대가 투쟁하는 장장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옛 구조의 지속과 나란히 두 세상과 두 가지 상태가 공존하게 되는 새로운 구조가 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세대는 곧 끝! 날 것이고, “장차 올 세대는 영원할 것이다. 특히 이러한 관점은 바울 동시대의 유대교적 종말론적 기대의 모든 제 형식들과는 완전히 구별되어지는 독립된 특성이다. 따라서 이러한 독특성은, 바울이 비록 여러 가지 전통적인 술어와 사상을 이용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바울의 종말론의 본질이 묵시문학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것과 정반대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 바울 설교의 두 세대 구조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적 행위에 의해서만 결정되어졌다.


따라서 우리가 바울의 종말론적 설교의 두 세대 구조에 초점을 맞출 때, 그리스도가 단순히 그리고 전적으로 그 중심에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스도 자신이 바울의 두 세대론의 근본적 구조를 제공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의 두 세대론이 바로 이와 같이 그리스도 중심적이라는 점에서, 또한 바울의 유대교나 묵시문학과 다른 독특성을 가진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바울은 로마서 512-21절의 아담-그리스도 유형론 안에서 전개되고 있는 두 세대 논증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된 구원 시대와 그의 종말론적 특성들에 대해서 선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논증에 대한 주석적 분석을 통해서 바울의 종말론적  설교의 분산된 주요주제들을 이해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그들의 통일성과 서로에 대한 관계를 간파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주석적 분석의 과정과 결과 안에서, 나 자신의 사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이제까지 기독교 교회들에서, 전통적으로, 바울적 기독교의 보편적 교리들로 인식해 왔고 가르쳐져 왔던 것들이 정작 바울 자신의 본래적 가르침들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어거스틴 이래로, 기독교의 보편적인, 죄와 죽음의 기원에 대한 유전적 이해나 하나님의 의에 대한 윤리적 개념 등은 바울에게 있어서 매우 생소하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 관해서나, 혹은 그 밖의 모든 주요 관련 주제들에 대하여, 바울이 특히 통치권의 관점에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새로운 사고적 전환을 가져오게 해주었다. 바울에게서 그러한 개념들은 총체적으로 종말의 때의 표징이며, 새로운 창조의 시작의 표징으로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또한 여전히 종말론적 미래의, 성취의 선물로서 기대되는 것으로! 진술되고 있다.


한 마디로 그것들은, 하나님의 왕국의 현재적이면서 미래적인, 상이한 국면을 나타내는 중요한 개념으로 이해되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모든 주제들은, 결국 바울의 복음적 변증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사의 종말론적 성취로서의 복음의 본래적 내용과 그의 본질을 형성하고 있다고 하겠다. 바울은 지금 그의 현실존 안에서 메시아 시대에 이루어질 소망, 하나님의 영광과 그 형상을 회복하리라는 그 소망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고 의롭게 하시는 오는 세대의 능력이 이미 이 세대에 뚫고 들어왔으며 성령을 통하여 현재에도 인간의 구원사역을 계속 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 이 세대를 뚫고 들어온, 하나님의 이 초월적인 능력이 은혜이며, 은혜의 선물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과 은혜에 근거한 바울 복음의 보편적 구원사와 만난다. 이로써 로마서에서의 바울의 복음적 변증들은 다시금, 전적으로 하나님에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구속사의 종말론적 성취 안에서 요약되고 있다. 그리고 두 세대 논증(5:12-21)은 바로 이러한 바울의 구속사적 종말론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다.

 

  결론

  .....

B.현대 교회를 위한 복음적 설교에 있어서, “두 세대구조의 의의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와 같은 바울의 두 세대구조에 관한 논증이 다변적인 현대사회를 위한 교회의 설교, 혹은 복음적 변증을 위해서 어떤 의의를 갖는가? 혹은 이와 같은 두 세대주조의 논증을 통한 복음적 변증의 방법이 오늘날의 기독교의 복음적 변증과 설교에도 여전히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성서적 설교에 있어서, 하나님 자신이 증거하신 성서 안에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 계시야 말로 완전한 신학적, 철학적 체계의 논리적 전개를 구성하는 전 포괄적인 원리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인간의 이성적 능력을 가지고 시작하는 대신에 실존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그의 종말론적 역사 안에서의 직접적인 계시에 근거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시의 기초하여 실존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종말론적 역사 안에서의 그의 직접적인 계시에 대한 전제만이 계속적으로 견지되어야 할 기독교의 설교와 복음적 변증의 단 하나의 논리적인 방법이다. 요컨대, 기독교 교회의 설교와 변증은 성서적 메시지인 종말론으로서의 신학의 내용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종말론은 모든 기독교적 설교와 변증의 출발점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바울 신학은 단순히 그리고 완전히 종말론적이다. 바울의 중심적 관심사는 그 자체가 종말의 실현인 광범위한 종말론적 전망으로부터 나온 현재적 구원론의 실제들에 대한 믿는 자의 경험이다. 그리고 바울 종말론의 구조는 전적으로 구속사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오심에 의해서 형성된다. 그러므로 마지막 되어 질 일들에 관한 교리적 종말론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계시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안에서 자신의 구속사적 계획을 성취하영Trl 때문에 그리스도 중심적 종말론은 기독교 신학의 마지막 항목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기독교 신학 전체 안에 스며들어 있는 원동력이며 동시에 그의 공식적인 출발점이 되어야만 한다. 만일 이러한 관점이 정당하다면, 구원에 이르는 방도는 구속의 역사에 부차적인 것이다. , 구원은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에 의해 성취되고 적용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구속은 구속의 역사의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구원의 방도에 대한 그 어떤 진술도 구속의 역사의 한 구성요소일 뿐이다. 그래서 보스, 리더보스, 가핀은 바울의 가르침의 중심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나 혹은 그 밖의 구원의 방도 가운데 어떤 다른 양상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최우선적인 관심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안에서 종말론적 실현에 도달한 구속의 역사 안에서 발견된다는 점을 지적해 내었다.


  바울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인은 항상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그 초점을 두고 있는 구속의 역사 안에 계시되고 있는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을 파악함으로써, 그의 복음적 변증과 설교를 시작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그리고 그와 우리가 연합함은 우리들의 변증적 설교들에 있어서 현재적 종말론의 구조를 제공한다. , 개인의 현 실존은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이 연합의 측면에서 정의된다. 따라서 만일 그와 같은 성서적 진리의 종말론적 체제를 계속해서 옹호한다면 그것은 두 세대 구조의 컨텍스트 안에서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에 의하면 그리스도와 믿는 자의 하나됨은 그가 살고 있는 구속사적 기간에 의해서 변증된다.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의 재림, 즉 종말론적 실존의 시작(“이미”)과 이 실 존의 완성 사이의 기간 동안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종말론적 사역(행위)와의 연합의 관점에서 그의 총체적인 정체성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현재의 종말론의 경계(죽으심과 부활/그의 재림)의 전망 안에서 모든 비기독교적 사상을 분석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는 이러한 경계 안에 두 세대의 현재적 겹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기독교 설교의 두 세대 변증은 하나님 나라의 전포괄적 왕국에 대해 변증한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기독교 설교에 있어서, 두 세대 혹은 그의 존재 양식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적어도 근본적으로 메시야니즘의 빛 안에 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종말론을 기독교 설교의 출발점으로 이해한다면 그리고 두 세대 구조를 그와 같은 종말론적 변증의 필연적인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그 어떤 혼합적 사고나 종교도 기독교의 절대적인 순수성과 본질을 파괴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기독교 설교자나 복음의 변증자들은 그의 종교의 출발점이 성서에서의 하나님의 자기 증언을 전제함으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는 점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와 같이 기독교 복음 설교자들과 변증자들은 그의 개인적 종교적 경험이나 혹은 복음에 대한 지적인 이해가 아니라 성서의 메시지를 설교하고 변증해야 한다는 s점이 바울의 저작들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기독교 설교와 변증들에서 바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실패했다. 이러한 성서적 설교는 믿는자가 믿지 않는 자들 편에서 그들을 믿음과 회개에로 초청 할 때 필수적이고 유용하다. , 그것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계약적 몸 안에 있는 자신의 현 실존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환기시키는 것이다. 전통적 방법은 바로 이 점을 파괴시켰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개인의 위치를 이해하지 않았다.


기독교의 종말론적 설교에 있어서 두 세대 구조의 의의는 그것이 기독교 설교의 반립적 출발점을 규정하고 있으며, 바울 이후의 모든 기독교 설교의 모범이 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두 세대 구조는 분명히 기독교 설교의 종말론적 입장을 분명히 규정해주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그 반대 입장에 대해서도 규정한다. 로마서 512-21절에서 바울은 두 세대 양쪽 편 모두에 대해서 정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바울의 관심사는 로마의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삶을 그리스도 중심적 종말론의 실존의 측면에서 규정하는 것이다. 모든 점에서 기독교인들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행위에 대한 진리에 항상 초범을 맞추어야만 할 것이다. 기독교 설교는 종말론적 두 세대의 절대적인 반립적 본질?! ? 함께 시작되어야 한다.


 두 세대구조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전포 괄적인 응답을 규정한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그가 어떤 세대에 속하여 있는가의 여부와 관련해서 인간의 실존을 관망할 것을 계시하셨다. 아담에 속한 자인가? 그리스도에 속한 자인가? 거기에는 중립은 없다. 인간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우리는 그의 종말론적 조건 안에서 인간을 보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복종해야 한다. 두 세대 구조는 기독교 메시지의 독특성과 순수성을 지키는데 있어서 훌륭한 자신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바울 메시지의 중심에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따라서 현대의 교회를 위한 기독교의 복음적 변증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사적 메시지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또한 그것으로 끝을 맺어야 한다.


종말론적 설교는 메시야에 대한 설교이며, 그것은 복음의 종말론적 메시지의 충만함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메시지의 충만함은 또한 그에 의하여만물, 하늘과 땅의, 가시적인 것인 것이나 불가시적인 것, 모두가 창조되었다는 개념을 포함한다. 만물이 그에 의해서 또 그를 위해서 창조되었다.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창조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의미의 초점이다. 메시야적 설교는 그리스도를 지! 금 성취되었고 장차 올 세대안에서 그의 계약적 백성에게 계시된 창조의 시작부터 그의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창조의 의미로 변증한다. 설교자 자신이 장차 올 세대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장차 올 세대현재의 악한 세대사이의 현재적 긴장 혹은 드라마 안에서 그가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에 물론 설교자나 변증자의 임무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승리의 그리스도와 그의 성령의 권세와 능력이 현재의 악한 세대에 대한 종국적인 승리를 확신한다.

 

기독교 설교는 아담의 타락에 얽혀 들어간 인간을 규정하는 현재의 악한 세대에 대하여 장차 올 세대를 변증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설교를 결정짓는 종말론적 차원은 현재의 악한 세대에 대항한다. 두 세대 구조는 기독교의 복음적 변증에서 그의 반대자를 규정하고 또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의 현 실존의 반립적 구조를 규정한다. 이러한 바울 종말론의 본질과 또 그의 두 세대 구조는 유대교의 묵시적 종말론이나 혹은 헬라철학의 사변적인 그리고 형이상학적 이원론과 혼합종교화 되지 않으며, 그 자체로서 독특한 진술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설교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 그리고 영원히 천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현 실존 관한 설교이다.


따라서 기독교 설교에 있어서 두 세대 구조는 첫 번째로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이 여전히 신실하심을 환기시킨다. 두 번째 그것은 기독교의 설교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반립적 구조를 개관한다. 세 번째 어떤 이방적 종교나 사상과도 혼합종교화 되지 않은 그의 독특성은 기독교를 그들과 구별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기준을 제공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은 복음 전파의 현장에서 만나게 될 여하한 비기독교적인 체제들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출발점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러한 변증은 거짓된 철학과 과학에 대항하여 성서적 진리의 종말론적 체계를 옹호하는 방도를 제공해준다.


  오늘날 모든 기독교적 설교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빛 안에서 구속사적 종말론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재천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비기독교적인 이방세계에 대한 기독교인의 복음적 변증은 여전히 이와 같은 주권적인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사의 종말론적 성취안에서 그리고 그에 대한 두 세대구조 논증 방식 안에서 보다 활력을 그리고 보다 강력한 설득력을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 논문의 일부만 올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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