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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1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 - [돌아온 탕자]

by 은총가득 2020. 4. 12.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 - [돌아온 탕자]

 

 

 

오 늘  그림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삶을 살았던 대가가 죽기 직전에 완성한 작품인 <돌아온 탕자>입니다. 짐작하시다시피 이 작품의 주제는 신약 누가 복음 15장에 등장하는 철부지 탕자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아들이 둘 있는 아버지가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자기 몫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고, 그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을 따뜻하게 맞아준다는 그 이야기 말입니다.

 

이 그림은 방황의 끝에 결국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작은 아들인 탕자에게 렘브란트가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 그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얼굴을 파묻은 탕자를 보는 순간, 한 때는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지만 온갖 부귀영화가 모두 헛된 것이었음을 깨달은 한 예술가의 초상이 겹쳐 보이기 때문입니다. 렘브란트는 사람들이 이 그림을 어떻게 보아주기를 바랬을까요?

 

작은 아들이 집으로 돌아온 순간 아버지는 아들을 품에 꼬옥 끌어 안았습니다. 큰 아들과 식구들 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리 밝지 않은 표정으로 이 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특히 그들의 시선은 모두 아버지의 두 손을 향하고 있습니다. 빛의 마술사답게 화폭위로 그려 넣은 대조적 빛깔들이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합니다.

 

   따스한 빛으로 충만한 화해의 공간과 시기와 원망이 가득한 차가운 시선의 공간, 밝은 빛으로 강조된 따뜻한 손길과 두 눈을 지긋이 감은 아버지의 

 

 

   매일같이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흰 수염을 기른 늙은 아버지의 눈은 초점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왼손은 힘줄이 두드러진 강인한 손이지만, 오른손은 가늘고 긴 손가락이 부드럽게 등에 얹혀져 있어 마치 안도와 위안을 주는 어머니의 손 같습니다. 모든 빛이 이 손으로 모여있어 화해와 용서와 치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탕자의 머리는 죄수처럼 삭발한 모습이며, 눈을 감은 탕자의 얼굴은 한없이 평온한 아기의 모습입니다. 샌들이 벗겨진 왼발은 상처투성이고, 오른발의 샌들은 뒷굽이 다 닳아있습니다.

   그러나 렘브란트가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방황 끝에 돌아온 둘째 아들의 회개도, 질투에 사로잡힌 큰 아들의 상실감도 아닙니다. 아버지의 얼굴에 비친 환한 빛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허물을 다 용서하는 연민의 몸짓으로 아들을 껴안고 있는 인물 '아버지' 입니다.

 

   용서받고 인정받아야만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인생을 거쳐 이제는 용서를 베풀고 용납하는 삶, 그런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화 려했던 시절이 저물기 시작하고, 겉에서 반짝이던 빛이 퇴색하면서 렘브란트는 내면의 빛에 눈을 떴습니다. 보이는 세계만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절대로 사그라지지 않는 아름다운 빛을 내면에서 찾은 것입니다.

 

비록 렘브란트 자신은 빚에 허덕이고 패배감 가득한 탕자인 동시에 열등감 가득한 큰 아들과도 같은 삶을 살았지만 한없이 그 모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불행한 삶을 위로 받으려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과 세상의 아픔도 따뜻하게 품고 안아줄 수 있는 아버지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삶의 한 자리를 비워놓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짧은 평

 

우리는 두 형제가 안팎으로 방황하는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작은 아들의 방황과 참회의 모습에서 또 큰 아들의 열등감과 시기심, 대가 없는 헌신을 억울해 하는 모습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작은아들이었다가 큰 아들이 되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작은 아들이라 생각하든 큰아들로 여기든 우리는 아버지처럼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면서 더 이상 아들의 신분을 이용해서 아버지가 되기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아들의 지위를 충분히 만끽했습니다. 이제는 저 노인처럼 되는 것을 평생의 소원으로 삼아야겠습니다. 용서를 베풀고 용납하는 아버지와 같이 다른 이의 아픔을 보는 시력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어느 외진구석에 감춰진 상처들을 감지해낼 청력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3. 작가 소개


 

 

빛의 마술사라 불리는 렘브란트는 다른 중세 화가들과는 다르게 생전에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유명세를 떨쳐 많은 부와 명예를 누렸던 화가였습니다.

 

스페인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해 개신교 공화국이 된 네덜란드의 17세기는 전무후무한 황금시대였고, 17세기 최고의 화가로 손꼽히는 렘브란트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 분업을 하는 중산층이었지만 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렘브란트는 형제 중 가장 영특했기 때문에 대학교육까지 받습니다. 이탈리아 유학을 권유 받을 만큼 미술에서 재능을 인정받았던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화가 생활을 시작합니다.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인기 있고 유행을 선도하는 화가였던 렘브란트는 지위와 명성에 연연하고 허세에 가득 찬 생활을 계속하다가 결국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맙니다.

 

시장의 딸이었던 첫 번째 아내가 아들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자, 그는 어린 아들을 돌보아줄 보모를 두 명 고용합니다. 보모, 요리사, 가정부, 모델을 겸하던 농부출신의 젊고 성실한 보모 한 명과 렘브란트는 정식으로 결혼을 하고 딸을 낳습니다.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주제인 '간통한 여자'가 현실에 나타난 이 사건으로 암스테르담 전체가 들썩이게 되고, 엄숙한 칼뱅파 목사들은 렘브란트와 새 아내를 강하게 비난합니다.

누 구보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자신했던 렘브란트는 결국 모든 재산을 잃고 아들과 새 아내, 어린 딸과 함께 유태인 빈민촌으로 이사를 합니다. 그러나 새 출발을 다짐한지 3년 만에 그의 두 번째 아내도 세상을 떠나고 5년 뒤에는 아들마저 결혼 반년 만에 죽습니다. 며느리의 집에서 손녀와 함께 살게 된 렘브란트는 그 다음해 10월 4일 세상을 떠납니다.

계속되는 불행과 가난으로 집과 작품, 수집품들을 처분해야 했고, 자기 그림을 마음대로 팔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던 말년의 십여 년 동안 렘브란트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자화상을 집중적으로 그렸습니다.


출처: [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