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7장 / 죄의 비참함
본 장은 오해가 많은 장이지만 중요한 부분이다. 바울이 왜 6장에서 승리를 다룬 후에 7장의 패배로 이동해 가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성경 연구자들이 많다. 그들은 6장의 승리로부터 8장의 큰 축복들로 건너뛰어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영감을 받는 저자는 더 좋은 방법을 알고 있었다. 7장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 생생한 문제거리를 다루고 있는데, 곧 신자들이 갖는 하나님의 율법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로마서 6장은 신자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자신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죄에 대하여 죽은 것임을 설명한다. 로마서 7장은 “우리가 계속 죄에 거하겠느뇨?”(6:1)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다.
그런데 바울은 6장 15절에서 두번째 질문을 하고 있음에 주목하자.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다고 해서 죄를 지으리요?” 바울은 7장에서 이 질문에 답하여,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하여 죽은 것같이, 율법에 대하여도 죽은 것임을 설명한다(7:4).
바울이 6장 4절에서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다”고 말할 때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The Normal Christian Life)에서 워치만 니 (Watchman Nee)는 이 문제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율법 아래 있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뜻이며,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무슨 일인가를 하신다는 뜻이다. 너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종교적인 규칙들과 규율과 훌륭한 결단들”로 말미암아 짐스러워 하며, 율법적인 거룩함이 불가능한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율법 아래” 있어,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투쟁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비극적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갖는 새로운 위치와 성령 안에서 갖는 새로운 능력(8:3-4)은 우리가 은혜로 말미암는 승리와 축복을 누릴 수 있게 한다. 바울은 일련의 “이중주”를 우리에게 들려줌으로써 7장에서 이를 설명한다.
1. 두 남편 (롬 7:1-6)
우리가 율법에 대해 맺고 있는 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바울은 결혼관계를 사용한다. 바울이 “법”이라고 말할 때 이는 모세의 구약 율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가 죄를 억제하거나 거룩함을 얻으려고 사용하는 온갖 종류의 법률을 말한다.
두 남편이란 율법과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여인이 결혼하고 나면 남편이 죽기까지는 그에게 매여 있으나, 그가 죽은 후에는 다시 결혼해도 되는 자유의 몸이 된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우리는 율법에 묶여져 있었고, 율법으로 말미암아 정죄를 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받았을 때, 율법이 “죽은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의 체계와 “결혼한” 상태가 아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하였으며, 율법은 더 이상 우리를 조절할 수 없다.
7장 4절을 거듭해서 읽고 그 놀라운 메시지에 집중하라. 그 남편이 우리를 조절하지 않으며,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놀라운 새로운 관계에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자였을 때, 율법은 우리의 옛 본성에 “죄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 일로 인하여 죽음을 산출하게 되었다(5절). 이제 우리는 율법에서 구원을 받으며, 옛 문서(“의문의 묵은 것”)로써가 아니라 성령의 새롭게 하심 안에서 섬기고 있다.
6절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순종할 의무가 없다고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의 가족에 속하여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의무는 이제 더 커졌다. 신약의 요구들은 구약 율법보다 더욱 어렵다. 왜냐하면, 신약은 산상 수훈의 예만 보더라도 외적인 행위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마음가짐을 다루기 때문이다.
6절은 우리의 순종의 동기가 달라졌음을 가르친다. 우리는 일단의 규율에 기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율법의 의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영에 대해 사랑으로, 마음으로부터 순종하는 것이다(8:4). 초보적인 피아노 연주자는 악보를 완전하게 연주할 수는 있으나, 숙달된 음악가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노래의 내적인 정신에 사로잡힐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노예가 주인을 두려워하는 것과 다르다. 그와는 달리 신부가 사랑으로 신랑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다.
2. 두 가지 발견 (롬 7:7-14)
그렇다면 왜 거룩함을 산출하지 못할 율법을 주어 괴롭히는 것일까? 하나님은 그 심중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계시는 것일까? 바울은 이 질문에 답이 될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하였다. 곧, 율법 자체는 영적이다. 그러나, 신자는 육적이며 죄 아래 팔렸다는 사실이다. 교만한 바리새인에 비해 얼마나 겸손한 발견인가! 바리새인들의 본성은 영적이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수가 없다.
율법은 죄를 드러낸다(7절). 우리가 율법을 읽을 때 율법이 저주하는 바로 그와 같은 것이 우리의 생활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율법은 죄에 동력을 제공하며(8절), 죄의 동기들은 우리의 본성을 선동하고 있다.
율법은 죄인을 죽이며 죄인을 속인다(9-11절).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표준에 따라 순종하는 데에 얼마나 미약한가를 깨닫게 한다. 마지막으로, 율법은 죄의 죄됨을 드러내며(13절) 밖으로 나타난 행동만이 아니라 안에 있는 육적인 마음가짐의 죄악성도 역시 나타낸다.
신자가 율법을 수단으로 하여 스스로를 거룩하게 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법이 선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의 본성이 법으로 말미암아 조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옛 본성은 규율을 알지 못하나, 새로운 본성은 규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이 얼마나 복된 시간이겠는가!
3. 두 가지 원리들 (롬 7:15-25)
율법과 더불어 패배의 경험을 한 후에 바울은 신자의 생활에 작용하는 두 가지 원리 또는 “법”이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 두 가지는 첫째, 죄와 사망의 법,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8:2 참조)이다.
다음으로 그는 그리스도의 자녀들 안에 있는 두 가지 본성에 대한 사실들을 다룬다.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그 옛 성품을 변화시키거나 정결케 하시는 것, 또는 개혁하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자의 옛 성품은 그가 구원받던 날과 마찬가지로 사악하며 영을 거스린다.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새로운 본성을 주시며 옛 성품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을 뜻한다.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죄를 지을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이제는 거룩함을 위한 욕구를 가지게 된 것이다. 죄를 향한 동력은 아직도 있으나, 욕구는 없다.
1) 죄와 사망의 법-
이는 다시 말해서 옛 본성이 작용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신자가 선을 행하기를 원할 때에도 악이 공존한다. 우리가 육신의 힘으로 행하는 일은 “선한 일”이라 해도 악에 물들어 있다(21절 참조). 여기서 6장의 승리와 7장의 승리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된다. 6장에서는 신자가 육신의 악한 일들을 극복하여 승리를 거두고 있으며, 7장에서는 육신이 율법에 순종하여 행하려는 “선한 일들”을 극복하여 승리한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육신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우리의 육에는 아무런 선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육은 무익하다!” 그런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삶에 어떤 법을 정해 놓고는 거기에 순종하도록 육을 훈련시키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명백하게 말씀하신다. “육신의 생각(옛 성품)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않으며 사실상 순종할 수도 없다”(8:7).
2) 생명의 성령의 법-
죄와 사망의 법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법에 의해 좌절당한다. 우리가 거룩함에서 성장하며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하게 섬기는 것은 외적인 법에 순종함으로써가 아니다. 이 법, 또는 원리는 8장에서, 특히 처음 17절에서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이룰 수가 없다. 성령께서 그의 능력으로 우리를 통하여 성취하신다(8:3-4).
이 모든 문제들은 실제 생활에 어떻게 적용되는가? 간단히 정리하자면, 하나님 안에서의 우리의 새로운 지위는 율법에 대해 죽은 자로서, 우리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어떠한 의무 아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거룩해지기 위해서 마땅히 순종해야 할 어떤 “그리스도인의 법”이 있는 것은 아니며, 하나님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그 아래 속박하시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요구를 성취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6장의 승리를 거둠으로써, 더 이상 육신에게 종노릇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소극적인 면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보다 더한 일, 하나님께 열매를 생산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물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하려고 시작하는 순간, 그는 실패자라는 사실들 발견할 것이다.
말하기는 유감스럽지만, 선의의 그리스도인들이 거기까지 와서 멈추고 영적인 재난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오히려 로마서 7장의 진리, 곧 그는 실패자이며, 율법은 선하지만 자신은 육신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음으로 자기의 생애를 통하여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도록 허락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와 율법에 대하여 죽은 것으로 여길 수 있게 하신다면,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지는 축복된 자유(7장)를 누릴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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