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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연구

히브리서 2장 연구

by 은총가득 2020. 3. 20.


히브리서 2장 연구


완전한 인간이신 그리스도(2:1-18)

 

a. 보다 큰 구원 2:1-4

b. 완전한 인간이신 그리스도 2:5-18

      

2  


a. 보다 큰 구원 2:1-4

 

하나님은 과거에 천사들을 통해 율법을 주셨지만(3:19), 인간들이 이것을 어김으로 인해 징계를 받았다(2:12).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저자는 이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주신 구원의 말씀을 등한히 여길 때 어찌 준엄한 징계가 따르지 않겠느냐고 역설하고 있다(3:16-2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큰 구원이다. 그것은 곧 말씀인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났으며, 그것을 들은 자들이 확정한 것이며, 하나님께서도 함께 증거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표적과 기사로, 여러 능력으로, 성령의 나눠주심으로 증거해 주셨던 것이다.

 

v.1 그러므로 - 여기에 해당하는 “Dia; tou'to 디아 투토, Therefore”는 앞장의 내용 전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것은 '아들인 그리스도가 천사들 보다 우월하신 존재이므로'라는 의미이다.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 “들은 것 ajkousqei'sin 아쿠스데이신, which we have heard”'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시 즉 '복음' 혹은 '케리그마'를 의미한다. 옛 계시는 모세가 '천사의 중재'를 통해 받은 율법이었으나(2:2), 새 계시는 그의 아들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직접 임한 것으로서 옛 계시보다 우월하고 온전한 구원의 복음이다. 한편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perissotevrw" prosevcein 페릿소테로스 프로세케인, we must give the more earnest heed”'더욱 많이 주의하여 숙고하라'는 의미이다.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천사보다 우월하시며, 전해주신 복음이 온전하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더욱더 열심히 복음을 상고해야 함을 강조한다.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 “흘러 떠내려갈까 pararjrJuw'men 파라뤼오멘, lest we drift away”'흘러가다' 혹은 '반지가 손가락에서 빠져나가다'의 의미로 복음에 대한 관심 부족과 부주의로 인해서 진리를 잃어버리는 것을 시사한다. 이것은 성도가 복음의 진리라는 안전한 항구에서 떠나 위험하게 되는 것을 나타낸다.

 

v.2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 이것은 모세가 시내(Sinai)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율법을 암시하고 있다(3:19). 19장과 20장에서는 천사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으나 신 33장에서는 하나님의 출현을 묘사할 때 하나님께서 일만 성도 가운데 오셨다고 선포하고 있으며 70인역에서는 '천사들이 그의 오른편에 함께 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LXX 33:2; 68:7). 1세기의 유대 사가 요세푸스(Josephus)도 율법을 전해준 천사에 대해 설명했으며(Antiq XV. 36), 랍비들도 율법과 관련된 천사들의 사역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천사들이 율법을 전해주는 것으로 전하고 있다. 천사들을 통해 전해진 율법은 하나님의 목적과 바람을 계시해 주었고 율법 안에 제시된 모든 규례들을 엄격하게 지킬 것을 강요하였다.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 “순종치 아니함 parakoh 파라코에, disobedience”은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범죄함'과 더불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의도적(意圖的)인 거절을 내포한다. “공변된 e[ndikon 엔디콘, just”'공의의 판단으로 이루어지는'이란 의미를 갖는다. 또한 보응 misqapodosivan 미스다포도시안, recompense of reward”은 응당히 치러야 할 '보수'라는 뜻으로 율법을 범한 죄인들에게 진리대로 적용하시는 하나님의 필연적인 심판의 행위를 시사한다(2:2-12). 하나님께서 옛언약 아래서 천사들을 통해 전해주신 율법에 대한 범죄와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에 대한 거부는 상응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v.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 "큰 구원 so great a salvation"이란 천사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셨던 율법의 구원 사역과 대조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구원을 시사한다. 한편 "어찌 피하리요 pw'" ejkfeuxovmeqa 포스 에크퓨크소메다, How shall we escape"는 수사적 의문문으로서 '도무지 피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강조한다. 본절은 그리스도보다 열등한 천사를 통해 전해준 율법을 거역해도 그에 상응한 심판을 받는데 하물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구원을 무시하게 되면 율법을 통해 시행되었던 공의의 심판보다 더 큰 보응을 피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 "주로"에서 'dia; 디아, by''...을 통하여'의 뜻을 갖는 전치사이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이루셨다는 의미로 구원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나타낸다.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 '들은 자들 those who heard'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사도들을 포함하여 복음을 들은 모든 사람들로서 복음이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가를 증거해줄 사람들을 가리킨다. 한편 "확증한 바니 ejbebaiwvqh 에베바이오데, was confirmed"는 법률 용어로서 '보증인을 세우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구원의 복음에 대한 확실성을 강조한 말이다.

 

v.4 하나님도...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 본절은 '큰 구원'(3)과 상관된 것으로 하나님께서 큰 구원에 대해 함께 증거하셨음을 나타낸다.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sunepimarturou'nto" 쉬네피마르튀룬토스, bearing them witness”는 예수로부터 복음을 들은 자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여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선포할 때 확증시켜주신 방법은 네 가지이다.

 

표적들 - 이에 해당하는 “shmeivoi"" 세메이오이스, with signs”'표시', '증거', '표적'의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단순히 기적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기적의 의미, 곧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내 주었다. 이러한 표적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기사들 - 이로 번역된 “tevrasin 테라신, wonders”은 가시적(可視的)으로 나타나는 경이로운 기적을 의미하는 것으로 신약성경에서 '표적'과 함께 나타난다(24:24; 13:25; 4:48; 2:19,22,43; 4:30; 5:12; 6:8; 7:36; 14:3; 15:18; 고후 12:12). 이것은 초자연적 현상을 통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역사로서 70인역에서는 하나님의 구속 행위를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여러 가지 능력 - “능력 dunavmesin 뒤나메신, miracles”은 본래 자연적인 현상에서 나타나는 힘을 의미했지만 후에 표적과 기사를 내포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힘(8:13) 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 자체를 의미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초자연적인 이적 현상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계시하기도 하며 또한 계시하신 말씀을 확증하고 보증하시기도 한다.

 

성령의 나눠주신 것 - 본문 ‘gifts of the Holy Spirit'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소유격으로 된 '성령의'를 목적격으로 보아 그리스도인들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성령'을 의미한다는 해석(3:5). (2) '성령의'를 주격으로 보아 믿음의 분량대로 각 사람에게 성령께서 나눠주신 은사를 의미한다는 해석(고전 12:11). 두 가지 해석 중 후자가 타당하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확증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는 전체 문맥으로 볼 때 본절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께서 그리스도인에게 부어주시는 은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b. 완전한 인간이신 그리스도 2:5-18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영광(5-9), 인간을 위한 그분의 사역(10-18)을 들어서 천사보다 우월하신 분임을 논증하고 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낮아지셔서 인간으로 오셨고, 또한 죄인을 구원할 능력과 사랑을 구비한 유일자로써 영광을 받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여기서 예수님의 비하(卑下)를 통해서 대속을 이루었으며, 승귀(勝歸)를 통해서 그 분은 영광을 받으신 것이다.

1) 낮아짐과 영광 5-9

2) 인간을 위한 사역 10-18

 

v.5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 - “장차 오는 세상 th;n oijkoumevnhn th;n mevllousan 텐 오이쿠메넨 텐 멜루산, the world to come”은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좌정하셔서 왕으로 등극하시고 온 우주에 대한 구원을 행사하시는 새창조된 세상을 가리킨다. 천사들은 이러한 세상을 다스릴 권한이 없으며, 이러한 세상도 천사들에게 복종해야 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장차 오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해 전전하신 율법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구속사역을 통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v.6,7,8 본 구절들은 시 8:4-6을 인용한 것이다.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 본문 ‘one testified in a certain place, saying:’은 유대인들의 문어체 표현 방식으로서 저자와 서신의 수신자들이 본절에서 인용된 시편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 '사람 man''인자 the son of man'는 히브리 시()의 병행 법칙을 따른 것으로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인자 곧 '사람의 아들'에서 '...의 아들'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관용구로서 어떤 것의 속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따라서 '사람의 아들'이란 '사람됨의 속성을 지닌 자' '사람'이란 의미이다. 본절에서 사용된 "인자 uiJo;" ajnqrwvpou 휘오스 안드로푸, the son of man"는 본래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사용하신 '인자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와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에서 '인자'를 그리스도에게 적용시켜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인자와 동일시하고 있다. 한편 "생각하시며 mimnhv/skh/ 밈네스케, thou art mindful"는 도움을 베풀기 위해 '기억하신다'라는 의미이며 "권고하시나이까 ejpiskevpth/ 에피스케프테, thou visitest"'조사하다' 혹은 '방문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돕기 위해 기억하시며 돌보기 위해 찾아오시는 분이심을 나타낸다.

 

저를 잠깐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 "천사 ajggevlou", the angels"에 해당하는 맛소라 본문은 '엘로힘'으로서 RSV는 이것을 '하나님'(God)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NIV'천상의 존재들'(heavenly beings)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70인역에서는 명확하게 "천사들 par j ajggevlou" 파르 앙겔루스, than the angels"로 번역하고 있으며 탈굼역(Targum)도 역시 같은 해석을 하고 있다. 저자는 70인역을 따르고 있다. 한편 '못하게 하시며 a little lower'는 맛소라 본문을 따를 경우 하나님보다 잠시 못하게 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저자가 1장에서 그리스도와 천사를 비교한 것으로 볼 때 천사보다 못한 상태 즉 성육신하셔서 '인간'이 되셨음을 시사하는 것이다(2:7).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 “관 씌우시며 ejstefavnwsa" 에스테파노사스, thou crownedst”'왕관을 씌우다'라는 의미로 왕위에 오르심을 시사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죄와 죽음을 정복하신 승리자로서 영광과 존귀로 하나님의 우편 즉 왕위에 오르셨으며(1:3: 4:8),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주권적인 권한을 소유하셨음을 시사한다.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 본문은 1:13의 인용문인 시 110:1과 연결된다. 1:13에서는 원수가 그리스도 앞에 복종하는 것으로 나타나나 본절에서는 '모든 만물 all things'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모든 만물'은 맛소라 본문에서는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으로 되어 있어 만물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영광과 존귀로 왕위에 오르셔서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시므로 모든 만물 즉 온 우주에 대한 주권을 소유하셨으며, 자신의 완전한 주권을 통해 온 우주를 지배하시고 다스리신다. 한편 여기서 '저에게 '가 지칭하는 대상에 대해서 여러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맛소라 본문을 근거로 그것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2) 혹자는 "저에게 aujtw'/ 아우토, him"가 대표적 단수로서 그리스도를 지칭한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를 사람으로 이해한다면 바로 뒤에 이어지는 9절의 내용과 연결될 수 없으며, 저자가 시편을 인용하면서 '인자''사람'을 순수하게 '사람'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인자되신 그리스도'에게 적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6).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 본절은 시 8편에는 없는 구절이다. 본절의 '저에게' 역시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봄이 타당하다. "아직 ou[pw 우포, not yet"'일시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미래에 성취되어야 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그의 모든 주권을 회복하여 만물이 저에게 복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그의 왕국이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공중 권세 잡은 사단이 이 때의 지배자처럼 행세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왕권을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4:8,9; 2:2)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즉 그분의 왕국이 온전히 실현되는 날 보게 될 것이다.

 

v.9 천사들 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 본 구절은 7절의 반복이다.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못하게 되신 것은 오직 잠깐 동안으로 이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가리킨다. 본절에서는 "잠깐 동안 bracuv ti 브라퀴 티, little"7절과 다른 위치에 삽입함으로 이 말을 7절보다 더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

 

(7-8)

한편 "인하여 dia; 디아, for"는 예수께서 ''을 쓰셔서 왕이 되시는 것이 '죽음의 고난'을 통해 이루어진 것임을 시사한다(2:8,9). 더욱이 저자는 여기서 특별히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그의 '인간되심''죽으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 '이를 행하심'이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 혹자는 예수의 죽으심과 영광의 관을 쓰심 모두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나, '죽음의 고난'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예수께서 죽으신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이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uJpe;r panto;" 휘페르 판토스, for every man"에서 '판토스'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판토스'는 중심으로서 '온 우주'를 가리킨다. (2) '판토스'는 남성으로서 '모든 사람 every man'을 가리킨다. 두 가지 해석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저자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인간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기 때문이다(16). 한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cavriti qeou' 카리티 데우, for the grace of God"는 몇몇 사본에 '코리스 데우'(하나님을 떠나서)로 기록되어 있다(Minuscule 1739, Vulgate Codex, Peshitta Codices).


그래서 대부분의 교부들이 본문을 '코리스 데우'로 보아 예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을 뜻하며(27:46; 15:34)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에는 인류의 죄를 대신한 죄인으로서 그의 신성이 상실되었던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본문은 '카리티 데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대부분의 사본들이 이것을 지지하고 있으며 교부들의 견해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구속 사역의 성취는 그의 죽음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아들됨과 영광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섭리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10; 12:15).

 

v.10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 "만물이 인하고 di j o}n ta; pavnta 디 혼 타 판타, for whom are all things"'만물'의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을 의미하며 "만물이 말미암은 di j ou| ta; pavnta 디 후 타 판타, by whom are all things"'만물'이 존재하도록 창조하신 하나님을 의미한다. 이것은 예수의 고난을 통한 구속 사역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시사한다.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 본문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 목적을 나타낸다. "많은 아들 폴로스 휘우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들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구속받을 자가 극소수가 아님을 의미하며 나아가 '아들되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영광'은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구원을 가리킨다.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 본절의 ajrchgo;n 아르케곤, captain”은 신약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 ''(퀴리오스) 즉 만물의 통치자이며 주인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용어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르케곤'은 문자적으로 '맨 먼저 시작하는 자', '개척자'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구원의 주'란 죽음을 통해 구약의 모든 것을 완성하시고 구원의 새로운 길을 이루사 구원받을 모든 후사의 맏아들 되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또한 온전케 하심 teleiw'sai 털레이오사이, perfect”은 본래 모세 오경의 제의 본문에서 제사장이 자신의 직무를 거룩하게 하는 행위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29:9,33; 8:33; 16:32; 21:10; 3:3).


 이런 제의적(祭儀的) 배경을 가진 '텔레이오사이'는 예수께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시고 승귀(勝歸)되심을 시사한다. 이러한 예수의 종말론적인 승귀되심은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똑같은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인간을 구원시키기에 완전한 조건을 구비하셨다는 의미이다.

 

v.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 “거룩하게 하시는 자 oJ aJgiavzwn 호 하기아존, He who sanctifies”는 모세 오경에서 '하나님'을 지칭한다(31:13; 20:8; 21:15; 22:9,16,32). 그러나 본절에서는 예수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피로 그리스도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거룩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온전케 하신다(10:14; 13:12). 또한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 they that are sanctified'은 그리스도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이런 표현은 '하나님의 아들들'인 그리스도인들의 비교와도 같다.

 

다 하나에서 난지라 - 비록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을지라도 양자는 모두 공통된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연합되어 있다. "pavnte" 판테스, all"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을 모두 내포한다. 한편 "하나 eJno;" 헤노스, one"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헤노스'를 중성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이 같은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2) 혹자는 '헤노스'를 남성으로 해석하여 그것이 아담이나 아브라함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3)혹자는 '헤노스'를 남성으로 보면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아들인 그리스도와 아들들인 그리스도인들은 아들의 구속 사역을 통해서 인간을 자녀로 바꾸신 하나님의 은혜에 뿌리를 둔 영적 가족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 '형제 brethren'는 영적인 의미의 형제로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가족 관계를 의미한다(12:49,50; 3:33-35; 8:21; 8:29). 예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형제 관계를 이루며, 가족 중에서 맏아들이 되신다(1:6). 본절의 이러한 확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용기를 준다(11:16).

 

v.12,13 본문에서 저자는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사이의 영적인 형제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 본절은 초대 교회가 메시야 시편으로 해석한 시 22:22의 인용이다(27:26; 15:34; 19:34). 본절의 내용 중에서 1인칭 대명사는 인용문인 시 22편이 메시야 시편이므로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주의 이름 Your name' 곧 하나님의 이름을 그의 영적인 형제들에게 선포하셨다. '이름'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그 사람의 속성과 인격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본질의 계시인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한다.


따라서 '주의 이름'을 선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자신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포하셨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본문의 강조점은 '그리스도의 선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형제'에 있다. 본절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형제가 된다는 사실의 증거 본문이다. 한편 "교회 ejkklhsiva" 에클레시아스, of the church"는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이나(7:38; 19:32,39,41) 신약 시대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집회를 나타내는 특별한 용어가 되었다. '에클레시아스'는 본절에서 '형제들'과 동일한 의미로,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찬양함을 시사한다.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 본문은 사 8:17의 인용이다. 이와 유사한 구절로 사 12:2이나 삼하 22:3을 들 수 있다. 구약의 본문은 이사야가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것이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고난받는 하나님의 아들들 즉 그리스도인들과 형제로서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심을 시사한다.

 

또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 본절은 사 8:18의 인용이다. 이 구절은 이사야가 당시에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고 남아있던 자들인 그의 아들 스알야숩과 마헬살락하스바스와 그의 제자들과 관해 했던 언급으로 저자는 이사야를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보고 그의 두 아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을 자들의 모형으로 해석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가족의 이미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간의 친밀한 관계와 결속(結束)을 강조한다.

 

v.14,15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 '혈육 flesh and blood'은 인간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표현이다. '혈육'에 속한 '자녀들 children'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로 대별된다. (1) 혹자는 '자녀''전체 인류'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2) 혹자는 '자녀''구원받은 자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해석 중 후자가 타당하다. 한편 본절의 자녀에게 해당하는 "함께 속하였으매 kekoinwvnhken 케코이노네켄, partakers"는 완료 능동태로 인간의 본래적인 특질을 나타낸다. 반면에 '그리스도'에게 해당하는 "함께 속하심 metevscen 메테스켄, took part of"은 부정 과거 능동태로 그리스도께서 어느 정해진 시기에 자신의 선택으로 '인간성'(human nature)을 취하셨음을 시사한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목적을 다음 두 가지로 설명한다.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 마귀가 사망을 다스리는 권세를 본래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권세는 인류를 꼬여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해 반항하게 함으로써 얻게 된것이었다(2:17; 3:19; 5:12). 한편 "없이 하시며 katarghvsh/ 카타르게세, he might destroy"'무효화하다'라는 의미로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가 끼치는 영향력을 제해버리셨음을 시사한다.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마귀의 권세를 무효화시키신 방법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through death'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인간과 같이 반역(反逆)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대속의 죽음이었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 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죽음에 대한 심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죽음의 공포는 사람들을 사단의 노예 상태에 있게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권세를 무기력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을 사단의 권세와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롭게 하셨다. 한편 "매여 e[nocoi 에노코이, subject"붙잡혀 있는이라는 의미로 노예 상태를 암시한다. 이는 죽음에 대한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음을 생동감(生動感)있게 묘사한 표현이다.

 

v.16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주려 하심이라 - “붙들어 주려 하심 ejpilambavnetai 에필람바네타이, he took on him”'...을 붙잡다' 또는 '...성질을 취하다'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혹자는 후자의 뜻을 받아들여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천사의 특성을 취하여 천사로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의 특성을 취하여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전자의 의미로 사용되어 '그리스도께서 인간들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NIV). 한편 '아브라함의 자손'에 대한 견해도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아브라함의 후손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한다(RSV, NIV). (2) 혹자는 '아브라함의 씨'로 오신 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KJV). 두 가지 해석 중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 첫 번째 견해가 더 타당하다(3:29).

 

v.17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 “마땅하도다 w[feilen 오페일렌, it behoved him”'...할 의무가 있다' 혹은 '빚지다'라는 의미로 책임을 강조하는 용어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형제들과 같이 되심' 즉 성육신 하심은 반드시 해야 할 일임을 시사한다.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업을 스스로 떠맡으셨으므로(3:16; 10:17) 그의 성육신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 본절에 나타난 예수의 칭호 대제사장 ajrciereu;" 아르키에류스, high priest”은 신약성경에서 본서에만 나타나는 칭호로 예수께서 이루신 구속 사역 속에 구약 시대의 속죄 행위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언약 백성 사이의 중보적 역할을 수행하여 대속을 위한 제사 행위를 주관하며(18:19; 33:20-26),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성결(聖潔)을 보존시키는 일을 하였다(28:38; 18:1). 한편 '자비하고 충성된'에서 '자비'가 먼저 나온 것은 강조의 의미로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역을 이루셨음을 나타내며 '충성'은 하나님께 대한 대제사장으로서의 충성을 시사한다.

 

v.18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 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 예수께서는 성육신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들이 당하는 고통과 유혹을 맛보셨으며(4:1-11; 4:1-13) 그분의 시험과 고난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절정을 이루었다(4:15; 5:2,7-10).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모든 고난과 시험은 앞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에 대한 '충성된 대제사장'임을 입증하는 증거이며, 그리스도께서 친히 고통받는 사람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다는 사실은 앞절에서 제시된 '자비로운 대제사장'이 되심을 입증하는 증거이다.

     < 가져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