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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복
갈 3:13-14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인류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죄와 저주와 사망을 멸하려 오셨습니다.
인류는 죄 때문에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인류가 받은 이 저주는 교육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교양이나, 수양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문화수준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인격이 고매해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이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복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믿고 복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행 3: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그런데 예수를 믿고도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님이 오신 것은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도적은 마귀를 가리킵니다. 마귀를 가리켜 성경은 옛 뱀이라고 지칭합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꾀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게 했던 마귀가
영육 간에 부요와 축복을 빼앗고, 저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사 저주를 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저주가 사라지고 복이 임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복을 사모하고 복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는 우리를 저주에서 해방하게 하고, 아브라함의 복이 임하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아브라함의 복이 영육 간에 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믿음이 우리 속에서
넘쳐나야 합니다. 그래야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에게 미치게 하려면, 우리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롬 4:17-22) 『[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그의 믿는 바 하나님은 1)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입니다.
2)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입니다.
3)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세 가지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우리의 이성의 믿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 충만할 때 이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이 믿음을 가졌으되, 이 믿음을 잘 유지했습니다.
아브라함은 1)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습니다.
2)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3)믿음이 견고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이었습니다.
4)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줄 확신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도 오늘 이런 믿음을 가집시다.
아브라함의 이런 믿음을 소유할 때, 아브라함의 복도 받을 줄 믿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이러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1. “말씀의 사상화”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사상화란 말씀의 의식화, 세뇌화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묵상하고 암송해서
아브라함의 생각이 완전히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육의 생각이 영의 생각으로 바뀌어진 것을 말합니다.
결국 오늘 문제는 생각이 바뀌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령을 통해 육신의 생각이 영의 생각으로 바꿔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묵상하고, 많이 암송하십시오.
말씀을 많이 먹어야 그 말씀이 내 속에서 역사를 일으킵니다.
말씀이 사상화가 되고 의식화가 될 수 있습니다.
(시 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신 6:6-9) 『[6]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9]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찌니라』
2. “말씀의 인격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인격화는 성령충만을 받아야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아서 예수의 마음이 우리 속에 들어와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합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예수 마음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 마음이 무엇일까요? 마 5:1-11의 8복을 말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그런데 예수의 마음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만 합니다. 성령만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전해 줍니다.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의 마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갈 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3. “말씀의 생활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생활화란 말씀대로 걸어가는 삶을 말합니다.
말씀의 생활화를 통해 우리의 행동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브라함의 3대 결단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1)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창12:1-3).
2)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라”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창 21:9-13)
3)독자 이삭을 “드리라”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창 22:2,12)
아브라함의 축복 속에는 아브라함의 이러한 세 가지 결단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삶 속에서 이러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라 할 때, 과감하게 자신이 의존하던 모든 육의 생각과
방법과 수단들을 버리고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쫓아내 할 때, 우리 삶에 깃들어 있는 모든 죄의 습관과
불신앙을 쫓아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드리라 할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드리는 결단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말씀의 사상화, 인격화는 내면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의 생활화는 밖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의 고백을 통해 드러나야 하고,
우리의 말의 권세를 통해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씀을 선포하고, 믿음으로 담대히 행하고 걸어나가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결 론>
하나님의 복을 소유한 인생이 참으로 복된 인생이며, 성공하는 인생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를 저주에서 해방하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소유해야 하고,
아브라함과 같이 말씀의 사상화, 인격화, 생활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도 성령충만 받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대장부가 되어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기시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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