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에 의한 삶(1) 개요
요14:16-18
하나님은 친밀한 관계를 원하십니다.
5가지 사건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의도는 친밀한 관계성으로 우리를 초청함.
1.창조의 사건에서
창1:26-28
창2.3장 관계성에 초점이 있는 가를 보게 됨.
서늘한 곳을 함께 거닐기도 하고, 각종 짐승을 창조하시고 이름을 짓게 하신 것
하나님 옆에 졸졸졸 따라 다니면서 묻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조금만 떨어져 있으면 하나님을 찾고...말하고, 묻고, 의지하고
2.출애굽의 사건에서
출19:3-6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도착. 그곳에서 출애굽한 의도를 말씀하심
5-6절은 벧전2:9과 연결됨.
출19:5-6 ->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우시는 목적이 무엇인가?
벧전2:9 -> 택하신 이면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원함.
택하심과 관련하여 예배가 핵심,
영광을 드러냄 -> 핵심 ->예배
모세가 바로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하나님을 섬길지니라(예배)가 반복적으로 나옴.
출19장에서 이렇게 부르시고 의도를 말씀하시고 24장에서 언약을 배품. 모세 아론, 두 아들 70인 장로들과 언약을 세우시고 그 다음에 뭐가 나오느냐, 성막, 예배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나옴.
그리고 32장 ->우상숭배 진노 ->34장 제 언약 ->다시 성막, 그리고는 레위기 ->제사법 나옴 그대로 순종할 때 불이 나옴(레위기9장)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재하신 사건 ->10장 나납, 아비후 다른 불예배가 멸시되었을 때 하나님이 진노하심.
이사야에서도 선명히 볼 수 있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신 의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그들을 그렇게 세우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 원하는 의도를 가지셨음.
그런데 보세요. 여러분이 출애굽한 백성이라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내게로 인도하였다 하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래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셨지 우리 목적은 하나님이야 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무슨 소리야 우리의 목적은 가나안이야 라고 생각했을까요? 가나안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목적이라는 말은 상투적으로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정말 이 말을 진짜 알아들었다면 그들의 삶은 획기적으로 전환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상투적으로 알아들었어요. 그야 당연히 그렇지...
여기서 우리가 하나 기억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비전을 주셨다면 그때 그 비전이 우리의 초점을 빼앗아 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과 세우심의 사이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였음(요셉, 다윗, 바울)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에 초점을 둠, 약속을 붙잡음->그렇지만 가나안에 2명밖에 못 들어감.
하나님께로 이끄셨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초점이 있어야 그 비전이 이루어짐을 볼 수 있음. 그 비전이 거기서 이루어짐, 그렇게 될 때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심.
여기서 우리는 시간을 고려해야 하는데 주님의 약속이 이뤄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도느냐, 작선코스냐, 못 가느냐가 결정됨.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의도를 놓쳐서는 안 됨. 내게로 인도하였다는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핵심적이 말이었음. 너무너무 중요한 핵심적인 메시지였음. 오늘날도 하나님과의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면 그렇지...그러면서 우리의 관심은 어디로 가느냐, 물질축복, 건강, 문제해결로 감, 결국 그 말을 상투적인 말로 들음.
사역의 궁극적인 자리, 우리의 사역의 최종목적이 어디냐?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께 세우는 것, 즉 하나님과의 관계로 세우는 것(내게로 인도함)
출애굽의 의도, 하나님의 목적을 놓치면 우리의 삶에 생명을 놓치게 됨.
우리도 하나님의 의도를 보아야 함. 교회 비전 주셨다고 비전 좇아가다가는 망하게 됨. 실제 비전을 주셨지만 이루지 못한 사람들 많음 ->엘리, 사울, 이스라엘 백성 (이방인에게 넘어감), 하나님과 관계성에 기초하지 않으면 반드시 왜곡되게 됨. 사실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는데...
3.12제자를 부르심 사건에서
막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막3: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부르신 목적 - 함께 있게 하시고..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사역해야 하는지를 근거를 말씀하심.
친밀한 교제가운데 있을 때 사역자로 세워지고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되어 짐. 따라서 사역이 우선이 아니고 친밀한 교제가 우선임을 말하고 있음.
사역은 친밀한 교제로부터 말미암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음.
더 나아가
마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부탁했고 그 제자들이 또 제자를 삼아 똑같이 부탁을 했을 겁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세례를 베풀고(예수를 믿게 하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그랬죠, 이것을 똑같이 가르쳤을 것입니다. 제자가, 제자를 그 제자가 제자를 그래서 우리까지 온 것이죠. 결과 우리 모두가 이러한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어야 함이 필수인 것이죠.
친밀한 교제 없이 사역으로만 가면 탈진하게 됨.
4.십자가의 사건에서
십자가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도를 알 수 있음.
엡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그때에 - 예수님을 믿기 전에 우리 상태가 이렇다.
19절 -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하나님의 가족이 됨
13-17절 내용이 십자가가 나오는 데 집중적으로 십자가에서 막힌 담을 헐었다. 십자가에서 화목한 관계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음.
엡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그 이유를 말하는데)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 진 것이죠. 에덴동산에서 깨어진 관계로 인간은 죄와 사단과 사망의 종노릇하는 삶을 살게 되었는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죄의 문제가 회복되어 이제는 하나님 앞에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달려 갈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의 가족이 된 친밀한 사랑을 누리는 자리로 이르게 됨.
십자가의 사건이 명백하게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있죠. 하나님과 우리와의 막힌 담음을 허는 그 자리로 우리로 추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보혜사를 보내신 사건에서
보혜사를 보내신 사건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로 인도한 사건입니다.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4-16장 까지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의 내용에는 두 가지 주제가 있음.
하나는 내가 가겠다, 나 간다, 이 말을 듣고 제자들은 매우 근심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내가 가은 것이 유익이라고 하심(요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내가 가면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낼께 하심, 여기서 또 다른 보혜사는 성령 하나님이시죠. 원래 보혜사는 예수님.
보혜사 - 격려한다, 위로한다, 돕는다, 안내한다, 가르친다 ->보혜사가 하신 일
제자들은 안가시고 함께 있는 것이 좋겠지만 만약 안가셨다면 예수님은 시공의 제한을 받음으로 우리가 그 예수님을 한번 만나려면.....그러니 보혜사가 우리에게 오신 것이 유익임.
히브리서에 보면 옛적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고, 예수님이 오셔서 친히 말씀하심,
구약 선지자들의 메시지의 핵심 ->돌아오라(인격체 되신 하나님과의 관계로 돌아오라는 말)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로 돌아오라는 말임.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일을 이루셨다면,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실제와 우리와 동행하심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사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요일4: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 이 말은 친밀한 관계를 말하지요. 친밀한 관계 안에 사는 삶은 성령에 의한 삶으로 이 삶이 가능한 것을 말하고 있음. 그러니까 친밀한 교제의 완성은 성령에 의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하나님이 의도하신 그 친밀한 관계의 실제적인 능력의 삶은 성령에 의한 삶으로 친밀한 교제의 삶을 실제로 누리게 되는 것임.
그래서
요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그 날에 -> 보혜사 성령이 오시는 날,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이것을 알게 될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의 실제가 어디에서 이루어지느냐? 성령에 의한 삶에서 이루어짐. 친밀한 교제의 관계성의 완성, 극치는 성령에 의한 삶을 살게 될 때 실제가 되어짐
여러분은 친밀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성령의 의한 삶을 실제 사는 자리까지 가야합니다.
5가지 사건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도 -> 하나님은 친밀함을 원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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