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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치유

10강 상한 심령의 치유 ②

by 은총가득 2010. 5. 12.

 

하나님백성의 회복을 위한 내면세계의 회복 No. 10                                            상한 심령의 치유 ②


상하고 병든 영혼의 치유와 십자가의 복음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소경, 벙어리, 문둥병, 중풍 등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로 고치신 병들은 모두 한 결 같이 신경질환이었다는 점입니다.


  신경질환은 무엇입니까? 머리에서 내려오고 몸에 분포하는 병입니다. 예를 들어 문둥병을 봅시다. 문둥병은 구약성경에서 가장 저주받은 병중의 하나였습니다. 문둥병은 신경 속에 나균이 들어가면 발병합니다. 나균이 신경 속에 들어오면 먼저 형상이 파괴됩니다. 다음으로 고름이 나고, 냄새가 심하게 나다가 신경이 마비됩니다. 결국 문둥이는 버림받습니다. 버림받게 되면 갈 곳은 동굴 속 뿐입니다. 영화‘벤허’아시지요?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문둥병에 감염되자 어디로 갔습니까? 문둥이들이 사는 동굴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가 되시는데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죄로 인해 끊어졌습니다. 그 결과로 몸에 병이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신경이 단절되고 나면 마음에는 문둥병이 발합니다. 영혼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은 파괴되고 고름이 납니다. 냄새가 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이렇게 파괴되어진 것입니다.


  인간들이 외모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자기 속의 형상이 일그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향수를 왜 뿌립니까? 자기 속에서 냄새가 나기 때문입니다. 왜 악취를 싫어합니까? 내 속에 악취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면 외모에 큰 신경을 안 쓰게 되지요.


  우리가 병든 영혼을 치유 받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속의 병든 마음과 화목해야 합니다. 우리 속의 문둥이를 무조건 혐오하며 멀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한 편 현재 매우 자유 한 것 같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문둥이가 속에 살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후, 우리는 내 속에 있는 문둥이가 더욱 싫어집니다. “너! 어디 감히 밖으로 나오려드느냐?”하면서 속의 문둥이에게 돌을 던집니다. 밖이 경건한 그리스도인이기에, 속의 문둥이를 더욱 싫어하고 저주하고 기어 나오지 못하도록 돌을 던집니다. 그러나 이래가지고서는 절대로 치유 역시 없습니다. 여러분, 손양원 목사님 아시지요? 그는 문둥이의 손을 잡으신 분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속의 문둥이의 손을 잡읍시다. 화목 합시다. 여기에 치유의 지름길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속에 문둥이가 있음을 인정하라고 하십니다. 정말이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지만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인정하셔야만 합니다. 여기에 진리 앞에 동의하는 삶이 있습니다. 말씀의 역할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요, 주님 제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삶을 하나님께서는 무척 기뻐하십니다.


  사람들은 자기 속의 문둥이를 숨기기 위해 돈으로 몸을 치장합니다. 화장을 짙게 합니다. 남들에게 예뻐 보이기 위해서 야단들입니다. 문둥이를 가리기위해 야단들입니다. 내적치유는 우리 속의 버림받은 문둥이 같은 마음을 고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 16절부터 20절입니다.


[16]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마 15:16-20)


  주님은“입에서 나오는 게 더러우냐? 입으로 들어가는 게 더러우냐?”물으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우리 속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러운 것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끔 “참 더러운 세상!”이라는 욕설을 듣습니다. 욕설 같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을 우리의 몸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대변 없는 사람 있습니까? 아무리 잘생겨도, 학벌이 높아도, 아무리 신령해도 대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속에 더러운 그 무엇이 있습니다. 문둥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문둥이가 있다고 해서 두려워하지는 마십시오. 주님의 보혈이 깨끗이 씻어주십니다. 우리 속의 문둥이를 고치시기 위해 주님은 십자가에서 문둥이처럼 버림받으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문둥이가 괴롬당하는 고통입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고 마치 문둥이에게 하듯 침을 뱉고 멸시조롱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속의 문둥이를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치유의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답은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으로만 병든 영혼의 치유가 가능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대신 상하고, 포로 되고, 갇히셨기에 치유를 바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십자가의 복음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다름아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복음 앞에서 우리가 우리 속의 문둥이를 주님 앞에 내어 놓으면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자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추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감춰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바리새인처럼 종교로, 거룩한 것으로, 능력으로, 신령한 것으로 감추지 마십시오. 드러내는 만큼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복음으로 병든 영혼, 곧 아픈 마음을 고치십니다. 그런데 복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하나님 나라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천국이 주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상한심령을 드러내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 곧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지배가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 입니까? 자기 본래의 모습 곧 옷을 벗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세상의 옷을 벗은 자들입니다. 상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가난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과부”와“고아”와 같은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쌓아두고, 모으는 곳입니다. 왜 쌓아야 합니까? 안전해 보이고 위대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커 보이는 것들이 자기 속의 무력감을 위로할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인간들은 쌓고 또 자꾸만 쌓습니다. 그 결과 자기 속은 아프지만 자신이 쌓은 것을 바라보면서 안신해 합니다. 세상을 보면서 즐거워합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자기 속의 문둥이를 감추려고 세상의 옷들로 자기 몸을 돌돌 말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난해지라”는 주님의 말씀은 이 세상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물론 죽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야했듯이 떠나라는 말입니다. 쌓아둔 것을 허물고 그 곁을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쌓아둔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쌓아둔 전통을 허물라는 것입니다. 쌓아둔 것을 포기하면 어떻게 됩니까? 내 속에 있던 무력한 것, 아픔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치유의 기회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분명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온 것은 우리들의 겉이지 속은 여전히 주님 앞에 오지를 못할 때가 많습니다. 겉은 주님과 함께 있지만 아직 속은 도망하고 쓴 물 속에 있고 어두운 가운데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이다. 내게로 오라. 너를 치유하리라.


  여기, 도움이 되라는 의미에서 치유를 기도를 적어 보았습니다.


주님, 저는 그동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릴 때도 있었습니다. 힘쓰고 애쓰면서 믿음을 키우려고 노력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보다는 많은 상처와 아픔만을 남겼습니다. 주여, 이는 내 속에 애당초 하나님의 나라가 없었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먼저 제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내 속에 천국이 이루어질 때 나의 가정과 내 삶과 사역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주여, 제가 사는 이유는 이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제 모든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기 원합니다. 제 속에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옵소서.


주님, 저는 그동안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바쁘게 쌓기만 했음을 이 시간 고백합니다. 주님, 저는 사람들의 중심이 되려고 했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만 했습니다. 주여, 오늘 모두 벗어 버리기를 원합니다.


제가 이 시간 옷을 벗고 외로운 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 시간 이방인이 되게 하옵소서. 이 시간 버림받은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나를 치유하시고 통찰하시는 모습을 보도록 성령님께서 나를 인도하옵소서.


우리의 깊은 곳은 성령님만 아십니다. 이 시간 성령님을 의지하오니 우리의 생각이나 이론으로 치유하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의 치유와 나라가 임하여 주옵소서. 성령께서 우리의 왕이 되옵소서. 성령님께서 우리의 속에서 행하여 주옵소서.


성령님께서 말씀을 내 심령 깊숙한 곳에 떨어뜨려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이 애통하며 찢어지며 십자가 앞에서 깊은 치유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치유를 방해하고 가리는 모든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쳐 주옵소서. 성령님께서 나의 깊숙한 곳을 어루만져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