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바닥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쪼아먹었다.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싹은 곧 나왔지만 흙이 깊지 않아서 해가 뜨자 타버려 뿌리도 붙이지 못한 채 말랐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 가시나무들이 자라자 숨이 막혔다.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맺은 열매가 백 배가 된 것도 있고 육십 배가 된 것도 있고 삼십 배가 된 것도 있었다"(마태13,3-8 참조).
예수님의 유명한 씨 뿌리는 사람에 관한 비유 말씀이다.
이 성서 말씀을 처음 읽을 때 의문이 생기게 된다.
농부는 왜 씨앗을 돌밭이나 길에 떨어뜨렸을까? 우리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이 비유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당시 파종법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전통적 파종 방식을 보면 밭을 갈고 나서 씨앗을 뿌리고 흙을 덮는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쟁기로 갈지도 않고
그냥 씨를 뿌리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씨를 뿌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씨앗을 가지고 나가 바람에 날리면서 한번에 뿌리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씨앗은 길가에 떨어지고 더러는 돌밭 혹은 가시밭 그리고 좋은 밭에 떨어졌다.
다른 방법은 나귀 등에 씨앗자루를 실어 놓고 자루 밑에 구멍을 뚫은 후 나귀를 돌아다니게 했다.
그래서 어떤 씨앗은 길가나 돌밭, 가시덤불에 떨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은 씨앗을 규칙적으로 뿌리지 않았기에 실제로 자기가 어디에 씨앗을 뿌렸는지 알 수 없었다.
씨앗이 가시덤불에 뿌려졌는지 돌밭에 뿌려졌는지도 알 수 없었다.
우리나라 농토를 보면 밭과 길이 분명하게 구분된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 농토는 사정이 달랐다. 이스라엘 밭에는 길이 따로 없는 곳이 많았다.
그리고 이스라엘 밭은 4월 추수 후부터 10월 파종기까지 묵혀두기에 사람들이 밭 사이로 지나다녀 길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또 농부들이 밭갈이를 할 때 길이 나 있으면 굳이 그곳을 갈아엎지 않고 그냥 내버려둘 때가 많았다.
길바닥에 씨가 떨어져도 농부가 흙으로 덮어주지 않으면 새가 와서 쪼아먹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돌이 많아서 경작을 하기 어려운 밭이 있으면 곡식 농사를 포기하고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는 포도나무를 심기도 했다.
또 팔레스타인 지역은 농토가 부족했기 때문에 농사가 가능한 곳은 어디든지 밭으로 개간했다.
또 농부가 밭에 씨앗을 뿌리지만 땅 속에는 돌이 많이 박혀있는 곳도 많고
땅 속에 가시나무 잔뿌리가 남아 있는 경우가 있어서 씨앗이 제대로 자랄 수 없는 곳 또한 많았다.
이 때문에 보통 농부가 뿌린 씨앗 중 무려 4분의 3 정도가 손실되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기에는 3가지의 주제가 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 씨, 토양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씨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능력과 재능을 강조할 것 같습니다.
토양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환경을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씨 뿌리는 사람’입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없다면 씨는 싹이 나지 못할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없다면 좋은 환경에서도 열매를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좋은 결실을 기대하기 때문에 씨를 뿌릴 것입니다.
우리 역시 비록 지금 당장은 희망이 보이지 않더라도, 어려움과 시련이 있더라도
우리 믿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어려움 때문에 포기하고 씨를 뿌리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이십니다.
오늘 복음은 자아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길이 되지 않으려면 겸손하면 되고,
돌밭이 되지 않으려면 절제하면 되며,
가시밭이 되지 않으려면 청빈하면 됩니다.
겸손과 절제와 청빈을 ‘복음삼덕’이라고 합니다. 복음삼덕은 세속-육신-마귀를 이기는 무기입니다. 나 자신 안에서 끓어오르는 교만과 육체적인 욕구와 재물에 대한 탐욕만 줄여가면 자아가 죽고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립니다.
그러면 진리의 말씀이 내 안에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농부가 뿌리는 말씀의 씨는 비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로 우리 마음에 떨어집니다. 그렇지만 교만과 육욕과 탐욕은 그 비유를 이해할 수 없게 우리 감각을 마비시킵니다.
남을 판단하는 것을 멈춥시다.
그러면 교만이 줄어들 것입니다.
육체의 욕망을 절제합시다.
그러면 눈이 열려 비유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어떤 분에게는 길가에 떨어진 씨일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의 싹이 시들어갈지 모릅니다.
어떤 분에게는 돌밭에 떨어진 씨일지 모릅니다.
어떤 분에게는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일지 모릅니다.
락다운(Lockdown)이 조금씩 해제 되면서 다른 것들에 마음이 갔는지 모릅니다.
어떤 분에게는 코로나19가 좋은 땅에 떨어진 씨일지 모릅니다.
집에 머물면서 성경책을 통독하기도 합니다.
내 마음에 기도의 거름은 충분히 주고 있는지,
내 마음에 이웃에 대한 사랑과 배려의 열매는 잘 자라고 있는지,
지금 내 마음에 하나님 은총의 비가 촉촉이 내리는지
아니면 욕심과 이기심의 비가 시기와 질투의 바람과 함께 내리고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열매를 맺는 농부를 이야기 하시는 것 같습니다.
농부가 자갈밭을 옥토로 바꿀 수 있다면,
가시덤불을 뽑아낼 수 있다면,
길가를 밭으로 만들 수 있다면 분명 씨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씨는 그 안에 생명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들 마음의 밭에 뿌려졌습니다.
말씀이 결실을 맺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들 마음의 밭이 비옥해야 합니다.
우리들 마음의 밭에 기도의 비료를 뿌려야 합니다.
사랑의 물을 주어야 합니다.
친절과 온유, 겸손과 나눔의 하우스를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 말씀은 우리들 마음의 밭에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수십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나와 가족은 물론 이웃과 세상을 환하게 밝혀줄 수 있는 말씀의 열매들이 전해 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 마음의 밭을 가꾸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말씀이신 예수님이 한 알의 밀알로 오셔서
길같이 굳은 마음,
돌밭같이 거친 마음,
가시덤불같이 날카로운 마음뿐 아니라
물론 믿음으로 가득한 좋은 땅 같은 마음에도 차별없이 뿌려지셨습니다.
이 한량없는 은혜를 그저 맛보는 것만이
우리가 할 일인 것이죠.
* 도저히 선택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씨앗에 담긴 생명이 이 척박한 내게 조건없이 뿌려졌음을 기억합니다.
그러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장 프랑소아 밀레
씨뿌리는사람
https://blog.naver.com/la8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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