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이 본 짐승 (다니엘 7:1-8)
제7장의 연대는 벨사살의 마지막 해에 있었던 제5장과 다리오의 통치 1년이었던 제6장 이전에 위치한다. 왜냐하면 다니엘은 이 환상을 유대인들의 바벨론 포로기가 거의 끝나가는 시기인, 벨사살의 이름은 원문에서 보면 이전에 사용되던 이름과는 다른 철자로 되어 있다. 이전에는 "벨쉐아살" (Bol-she-azar)이었으며, "벨이 부를 쌓아두는 그 사람이다" 라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에 나온 이름은 "벨에쉐살" 이며, "벨은 적에 의해서 불 위에 있다" 는 것을 뜻한다, 벨은 갈대아인들의 신이었다. 과거에는 벨이 번성했었으나, 지금은 소멸해가고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유대인들을 탄압했던 네왕국에 대한 다니엘의 환상을 볼수 있다. 아래와 같은 사실을 자세히 검토해 보자.
Ⅰ.이 환상의 주위 사정.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몽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다니엘은 그것과 유사한 거룩한 것을 발견하여 스스로 영광을 받는다(1절)." 다니엘이 침상에서 꿈을 꾸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때때로 하나님의 자녀가 깊이 잠들었을 때에 자신과 자신의 뜻을 계시하신다(욥 33:18). 왜냐하면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거의 완전히 물러났을 때, 그리고 감각적인 일에서부터 멀리 떨어졌을 때가 하나님과 교제하기에는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깨어났을 때는, 그 꿈이 잊혀 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 꿈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그 일의 대략을" 그의 형제 유대인들에게 "진술하였다." 그래서 멀리있는 자들, 그 자손들에게도 전해질수 있게 했다. 그 자손들은 이 환상이 실현되는 것을 볼 자들이다.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예언 중 일부를 잘못 이해한 유대인들은, 고향으로 돌아 온후, 완전하고 방해받지 않는 평안을 즐기게 된다고 멋대로 꿈꾸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이 자신을 속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재난이 실망으로 인해 두배나 참혹하게 될 않기 위해서 진술해 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예언을 통해서, 그들은 재난을 겪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번영에 대한 약속은 은총의 왕국의 영적 축복에서 성취 될 것이었다. 마치 그리스도가 그의 제자들에게 박해를 기대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셨고, 그들이 의지하는 약속은 영광의 왕국의 영원한 축복에서 성취될 것이라고 말해 준 것과 같다. 다니엘은 이 일들을 썼고, 또 그들에게 말했다. 그것은 교회가 성서와 사역자의 설교에 의해서, 그리고 쓰여진 말과 입의 말에 의해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사역자들은 그들의 설교에서 "기록된 사건들의 대략" (요지)을 진술해야 한다.
Ⅱ. 열방의 정치적 변동을 예고해 주고 있는 이 환상의 내용을 살펴보자. 여기서 말하는 열방은 이후에 유대인의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나라들이다.
1. 그는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올려 부는 것을 보았다(2절). 그 바람들은 우열을 다투며 불어와 마침내는 홀로 불게 된다. 이것은 제국의 제왕들 사이의 경쟁과 이 경쟁에 의한 나라들의 흔들림을 나타낸다. 어느 편에서 불어오든지 그 바람이 강한 것이라면, 그 바람은 바다에서 거대한 동요를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네개의 바람이 패전을 다툴 때면, 어떤 폭동이 일어날 것인가? 이런 것이 바로 바람들의 전투처럼 시끄럽고 난폭하게 싸우고 있는 열왕들의 전쟁이다. 그러나 가엾은 바다는 얼마나 시달리고 무서울 것인가! 바람들이 서로 패권을 다투고 있으니! 이 세상은 바로 폭풍이 몰아치는 이 바다와 같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이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 것은 교만한 야심들 때문이다.
2. 다니엘은 "큰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오는것" 을 보았다. 열망에 찬 자들이 고기를 잡으려 하는 "성난 바다에서" 나온 것이다. 왕국과 열왕들이 짐승으로 상징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일어나고 유지되는 것은 종종 이와 같은 야만적인 격분에 의해서이기 때문이다. 이 짐승들은 "그 모양이 각각 달랐다" (3절). 이것은 저들의 손에 쓰러지는 나라의 종족과 피부색이 다름을 나타낸다.
(1)" 첫째는 사자와 같았다" (4절). 이것은 갈대아 왕국을 나타냈다. 난폭하고 강하며, 왕이 절대권을 가졌다. "독수리의 날개" 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느부갓네살이 여러 나라를 정복할때 보인 놀랄 만한 속도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니엘 은 곧 "그 날개가 뽑히는 것" 을 보았다. 저들의 군대의 승리가 완전히 종지부를 찍는 것을 말한다. 느부갓네살에게 공물을 바쳤던 여러 족속들이 그에게 항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대적하여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괴상한 짐승, 곧 날개 달린 사자는 "사람처럼 두발로 서게 되었고, 또 사람의 마음을 받게 되었다." 즉 사자의 마음을 잃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유명하던 것이다(영국의 한 왕도 "사자의 마음" 이란 뜻의 이름을 가졌다). 그런데 이제 용기를 잃고,모든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들은 두려움에 싸이게 되었고, 그들이 단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때때로 한 나라의 용맹은 이상하게 가라앉아서 나약해진다. 한 두 세대만에 열국의 우두머리였던 나라가 꼬리가 되어버린다.
(2) "두번째" 짐승은 마치 "곰과 같았다" (5절). 이 짐승은 긴 왕국보다 덜 강하고, 약간은 관대한 그러나 여전히 탐욕스러운 바사(페르샤)왕국이었다. 이 곰은 사자를 대적하여 "자기의 몸 한편을 들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 사자를 정복하였다. 그래서 혹자는 이 구절은 "한 나라를 일으켰다" 고 읽는다. 느부갓네살의 환상 가운데서는 하나의 가슴에 붙어 있는 "두 개의 팔" 이 었던 바사와 메대는 이제 연합 정부를 세우게 되었다. 이 곰은 "그 입의 이빨사이에 세 개의 갈빗대를 몰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게걸스럽게 정복하고 남은 나라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 나라가 더 먹지는 못하더라도 많은 나라를 삼킬 것을 나타낸다. 아직 정복하지 못한 어떤 갈비가 이빨에 끼어있다. 그런데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정복할 수 없는 갈비는 남겨두라. 그리고 쉽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덮쳐라. "방백들이 왕과 백성들을 부추겨서 정복을 계속하자고 할 것이고, 그들 앞에 아무 것도 설 수 없게 할 것이다. 부당하게 취해진 정복은, 육시기 짐승이 먹이를 취함과 같다. 그런데 "이것은" 한층 더 악하니, 짐승도 동족은 잡아먹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짓을 하는 것이다.
(3) 세번째 짐승은 "표범과 같았다" (6절). 이것은 "알렉산더 대왕" 이 세운 희랍 제국이다. 활동적이고, 기민하고, 잔인하기가 마치 "표범과 같다." 그 표범은 "새의 네 날개" 를 가지고 있었다. 사자는 두 개의 날개만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표범은 네 날개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비록 느부갓네살이 그의 정복을 재빨리 해치웠지만, 알렉산더는 느부갓네살보다 더 재빨리 정복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의 통치 6년째에 아시아의 거대한 일부인 바사의 전 왕국을 획득했고, 시리아와 애굽, 그리고 인도와 다른 여러 나라들을 지배하는 지배자가 되었다. 이 표범은 또한 "네 개의 머리" 를 가지고 있었다. 알렉산더의 죽음 이후 그의 왕국은 네 명의 주요 장군에 의해서 나누어졌다. 셀류커스 니카노르(Seleucus Nicanor)는 아시아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페르디카스(Perdiccas)와 그 후계자 안티고누스(Antigonus)는 아시아의 일부를 차지했다. 그리고 카산더(Cassander)는 마케도니아를 톨레미우스(Ptolemeus)는 애굽을 각각 분할하였다. 이 "짐승" 에게 "권세가 주어졌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만이 그런 일을 하신다.
(4) 네번째 짐승은 훨씬 더 무섭고 극히 강하여, 다른 짐승과 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짐승을 잡아먹는 짐승들 중에서도 그것과는 비교될 것이 없었다(7절). 학자들 간에는 이 짐승에 대해서 일치된 견해가 없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로마 제국이라고 생각한다. 로마가 가장 번성했을 때는 열개의 왕국 즉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독일, 영국, 사르마티아, 판노니아(Pannonia), 아시아, 희랍, 그리고 애굽이다. 그후 다른 세 뿔은 뽑히고 다시 생긴 작은 뿔(8절)이 있으니, 그것은 아시아와 희랍, 그리고 애굽에 뒤이어 일어난 터어키 제국이라고 본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짐승이 시리아 왕국이라고 추측한다. 유대인들에 대해 매우 잔인하고 압제적이 었던 셀류키데(Seleucidae) 집안이 세운 나라이다. 이러한 것은 막카비서와 조세푸스(Josephus)의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왕국은 그 이전의 왕국들과 달랐다. 즉 그 이전의 지배자들은 유대인들에게 저들의 종교를 버리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리아의 왕들은 그렇게 강요했고, 유대인들을 야만적으로 다루었다. 시리아의 군대와 사령관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먹고 부숴뜨리는 철 이빨" 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을 발로 밟아 버렸다." "열 개의 뿔" 은 시리아를 지배해 온 당시의 열왕들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그리고 "작은 뿔" 은 열 왕의 마지막 왕이었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atiochus Epiphanes)이다. 그는 갖은 수단을 다 써서 그들 중 3왕을 몰래 해치고, 정권을 잡았다. 그는 대단히 재간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해지고 있다. 그리고 대단히 과감하여 "큰 일을 말하는 입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다음의 예언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다니엘이 본 하늘의 모습 (다니엘 7:9-14)
네번째 짐승을 시리아 제국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하든지, 아니면 로마 제국으로 이해하든지 간에, 이 구절은 박해에 빠질 하나님의 백성을 격려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잇다. 각 시대마다 여러 원수들이 나타나나 저들은 보호를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세계의 종말을 당한 자들에게, 인내와 성서의 위로를 통해서 같은 희망을 가질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쓰여졌기 때문이다. 대단히 고무적인 세 가지 사실이 여기에 발견된다.
Ⅰ. 심판이 가까이 온다. 그리고 하나님이 심판자이시다. 지금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모든 현학자들도 자기의 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늘에 앉으신 주께서 저를 웃으시리니," 그가 "자기의 날이 가까이 옴" 을 보시기 때문이다(시 37:13). 나는 이 짐승들의 보좌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에 반대되어 서 있는(고전 15:24) "모든 지배자, 권세자, 권력자들의 보좌도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9절). 하나님의 나라와 비교해 보면, 그런 것이 세상의 왕궁들의 보좌이다. 그들은 그 보좌가 무너짐을 보리라. 또 어떤 자들은 이렇게 해석한다. "나는" 그리스도의 보좌와 그리스도의 아버지의 "보좌들이 세워지는 것을 보았도다." 랍비 중의 한 사람은 이 보좌들이 "세워졌다" 고 고백한다. 하나는 "하나님" 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다윗의 아들" 을 위해서다. 여기에서 "세워짐은" 사실상 "심판" 이다(10절). 그 심판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나타낸다.
1. 이것은 섭리에 의해서 이 세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의롭고 지혜스러운 통치를 선포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라와 왕국들의 혁명과 격동의 한복판에서도 모든 선한 사람들에게 말로 할 수 없는 만족을 준다. 즉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며" (시 103:19),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이는 하나님" 이라는 사실이다(시 58:11).
2. 또한 그것은 아마 섭리에 의해서 일어날 시리아 제국 혹은 로마 제국의 파멸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 제국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학대하기 때문에 그 멸망이 오는 것이다.
3. 그러나 그것은 주로 최후의 심판을 서술하려고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비록 그것이 네 번째 짐승의 통치 이후 곧바로 이루어지지는 않았고, 또 앞으로도 여러 세대가 지나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모든 세대에 하나님의 백성이 고통에 처하더라도 그것을 믿고 바라면서 스스로를 위안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담의 7대손 에녹이 이미 그것을 예언했었다(유 14). 그 원수의 입도 "큰 일을 말한다" (8절). 그러나 여기에는 주님의 입에서 말해진 더 큰 일이 있다. 장차있을 심판에 대한 신약 성서의 대부분의 예언은 이 환상에 연관된다. 특히 요한의 환상(계 20:11, 12)은 더욱 명백히 그렇다.
(1) 심판자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그분, 하나님 아버지" 이시다. 바로 그의 현존의 영광이 여기에 서술되어 있다. 여기서는 하나님을 "옛부터 계신 분"으로 불렀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는 "태고와 함께 지혜가 있었고" "남들이 말하리라는" 것도 안다. 그때가 되면 모든 육체가 "태고부터 계신 이" (" 직역하면 날들의 태고" -역주. 앞에서 잠잠치 못할 것이다.
심판자의 영광이 여기서는 그의 옷에 의해서 나타나있다. 그 옷은 "눈같이 희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모든 다스림 가운데 있는 광채와 순결함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의 머리카락" 이 정결하고 희니, 마치 "깨끗한 양털" 같다. 그러므로 그는 존경스러워 보일 것이다.
(2) 보좌는 대단히 무섭다. 그 보좌는 "불꽃 같았다." 그 앞에 불려나갈 죄인들에게는 두려움이 되리라. 그리고 그것은 그가 타고 다니는 수레나 병거와 같았다. 그 "바퀴는 적을 삼켜버릴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은 소멸시키는 불" 이시며, "영원한 불" 이 그에게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사 33:14). 이런 사실은 10절까지 확대된다. 하나님의 모든 신실한 친구들에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온다" (계 22:1). 그와 반대로 무자비한 그의 적들에게는 "그의 보좌로부터 불수레 불덩어리가 나온다" (사 30:33). "그 앞에 있는 자들을 삼키는 불" 이다. 그는 재빠른 증인이요, 그의 말씀은 바뀌를 타고 다니는 말씀이다.
(3) 하나님의 수행자들은 셀 수 없이 많고 광채가 난다. 하나님의 엄위에는 언제나 천사들이 대등한다. "천천(千千)이 그를 받든다." "만만(萬萬)이 그 앞에 서 있다." 하나님이 그런 수행원을 데리고 계시다는 것은 그의 영광이다. 그러나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필요로 하시지도 않으며, 그들의 신세를 질수도 없으시다는 사실이다. 천군들이 얼마나 많은 지를 보라!(거기에는 "수 천의 천사" 들이 있다) 또한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께 순중하는지를 살펴 보라! 그들 천사들은 하나님의 의지와 기쁨을 즉각 알리기 위해서, 그리고 그의 목적을 수행할 준비를 갖추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서 있다." 특별히 그들은 최후 심판 때에 그의 법정의 수행원으로 고용될 것이다. 그때에는 "인자가 올 것이요, 모든 거룩한 천사들이 인자와 함께할 것이다." 에녹은 주께서 "수만은 거룩한 자들과 함께" 오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4) 심판의 과정은 공정하고 예외가 없다. "심판은" 공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베풀어진다." 모든 사람이 이것을 의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들이 펴진다." 사람들 사이의 법정 안에서도 소송 절차가 쓰여져 기록되고, 증언이 소개되고, 사건의 진상을 명백히 밝히기 위해서 선서 구술서가 낭독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최후의 심판에서도 책을 펴서 증언하듯이, 그렇게 공정하게 형이 선고될 것이다.
Ⅱ. 하나님의 교회의 교만하고 잔인한 적들은 분명히 멀지않아 심판을 받아 낮아지게 될 것이다(11,12절).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나타나 있다.
1. 네 번째 짐승의 죽음에서. 이 네 번째 짐승과 하나님의 투쟁은 "그 큰 말하는 뿔의 목소리" 때문이다. 그것은 하늘에 대한 도전이요, 신성한 모든 것의 정복을 꿈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어떤 무엇보다도 노하게 한다. 왜냐하면 "적들이 자기 자신을 더 교만하게" 여겼기 때문이다(신 32:37). "그러므로" 바로는 낮아져야 했다. 즉 그가 "여호와가 누구냐." "나는 그를 추적하여 압도할 것이다" 라고 날했기 때문이다. 에녹은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사, "불경한 모든 말을 강퍅한 말임을 확증" 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유15).
위대한 말은 단지 무익한 말에 불과하니, 인간은 저 위대한 날, 곧 심판날에 거기에 대해서 샘을 해야하기 때문임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렇게 위대한 말을 하던 이 짐승이 어떻게 되는지를 살펴 보라. "그 짐승은 죽음을 당하고," "그 시체가 상한 바 되어, 붙는 불에 던진 바 되었다" 고 했다. 안티오커스(Antiochus)이후, 시리아 제국은 멸망당하였다. 안티오커스는 몹쓸 질병으로 죽었고, 그의 가족들은 쫓겨났으며, 그의 왕국은 파르티안인들(Parthian)과 아르메니아 인들(Armenians)에 의해서 황폐하게 되었고, 끝내는 폼페이(Pompey)에 의해서 로마의 환도가 되었다. 그리고 로마 제국 자신도 (만일 우리가 로마 제국을 그 네번째 짐승으로 생각한다면), 기독교도를 박해하기 시작했던 후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여 점차 멸망되었다. "오, 주여! 당신의 모든 적들은 멸망될 것이며, 당신 앞에서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2. 다른 세 짐승의 약화에서(12절). 그들은 "자기들의 권세를 빼앗겼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에게 악을 행할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 생명은" "한 때와 한 계절 동안, "곧 지정된 기간 동안 "보존되었다." 전술한 왕국들의 세력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그 왕국들의 백성들은 비천하고 연약한 상태에서 계속 생존해 있다. 이것은 선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의 찌꺼기를 암시한 것으로 볼 수 있으리라. 사람의 마음들은 타락했다. 그러나 그 생명은 유지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죄의 권세는 물러났다. 그래서 죄는 "그들의 죽을 몸을 지배"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그의 교회의 적들을 취급한다. 때때로 하나님은 그 적들의 이빨을 부수면서도(시 3:7) 목을 꺾지는 않으신다. 그들의 박해를 진압하신다. 그러나 박해자들이 회개하리라는 기대에서 그들에 대한 심판은 잠시 연기하신다. 자기나름의 방법과 시간에 가서 자기의 일을 하심은 하나님에게 마땅한 일이다.
Ⅲ. 메시야의 왕국은 어둠의 세력들의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안에 세워질 것이다. 이방인들로 하여금 저를 마음대로 분노하고 안달하게 하라.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거룩한 산, 시온에 자기 왕을 세우실" 것이다. 다니엘은 환상을 통해서 이것을 본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기대로 자기 자신과 친구들을 위로했다. 이 환상은 느부갓네살이 보았던 환상,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 이 떨어져 나와 우상을 산산조각으로 부수어 버렸던 환상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환상에는 느부갓네살의 환상에서 보다 더 순수한 복음이 들어있다.
1. 여기서는 메시야가 인자(人子)라고 불리운다. "인자 같은 이" 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는 "죄있는 육체의 모양을 따라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며, "사람의 모습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인자 같은 이를 보았다." 때가 되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로 될 자에 대하여 하늘 회의가 결정한 이상(理想)에 정확히 맞는 모습이다. 그는 "인자처럼" 보였지만,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 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가 "인자" 이기 때문에, 또 다니엘이 본 바 나라와 권세를 받을 자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자기에게 심판의 권세를 주셨다" 고 말했을 때(요한 5:27), 바로 이 환상을 염두에 두고 언급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2. 그는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으로 말해진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그의 성육신(成肉身)을 말한다고 본다.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있는 성전을 점령하듯이, 인자는 "하늘의 구름을" 타고, 보이지 않게 세상에 내려왔다는 것이다. 세상의 제국들은 "바다에서 튀어나온" 짐승들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왕국은 하늘에서부터 온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오신 주님" 이시다.
나는 이 구절이 그리스도의 승천을 말하는 것으로 봄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가 아버지에게로 돌아갈 때, 그의 제자들의 눈은 "구름이 그리스도를 가려 제자들이 볼 수 없을 때까지"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행 1:9). 그리스도는 승리를 거두고 윗 세상으로 올라가실 때, 구름을 자기의 병거로 삼으셨다. 그리스도는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시기" 때문에, 언제나 신속하고, 불가항력적으로 당당하게 오신다.
3. 그는 여기서 하늘과 강한 권세를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구름이 그리스도를 감쌈으로 제자들의 눈길에서 벗어나게 하였을 때, 정말 구름이 그를 데리고 갔느지(엘리야 같은 예언자들의 생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즉 그가 어디로 올라갔는지를 묻는 것은 가치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충분한 해답을 얻는다. 즉 "인자는 옛적부터 계신 자에게로 갔다" 고 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아버지,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 인 "그의 하나님이요 우리의 하나님" (요 20:17)이신 자에게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그는 왔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 거기서 하나님과 함게 영광을 받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게 된다. 그가 "이제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간다" 고 말한 것은 그의 큰 기쁨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데 그가 환영받았는가? 물론이다! 그는 환영받았다.
왜냐하면 "천사들이 그를 하나님 앞 가까이로 데리고 갔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천사들의 보호 속에서 하나님의 전으로 나아가게 되었다(히 1:6). 하나님이 "그를 자기에게로 가까이 이끄심은 그를 우리의 변호인으로 삼으시사" (렘 30:21) 우리도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 가까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가 이렇게 옛부터 계신자에게 가까이 나아감은 아버지께서 그가 드린 희생과 속죄를 받으셨다는 증거요, 충족한 기쁨을 받으셨음을 뜻한다. 그는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하심은 우리의 제사장으로서요, 우리를 위해서 지성막 안에 들어가셨다. 그러므로 또한 우리의 인도자이신 것이다.
4. 인자는 이 세상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과 권세를 게진 자로서 나타난다(14절). 그리스도는 그가 아버지와 함께 영광받게 되었을 때, "모든 육체를 다스리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요 17:2, 5). 이러한 건망으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만족하게 된다. 즉 교회의 대적들의 권세가 제거될 뿐만 아니라(12절), 교회의 머리와 최상의 친구되신 자가 "권세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에게 모든 "무릎이 끓어질 것이며," "모든 혀가 그를 고백할 것이다" (빌 2:9, 10). 그에게 "영광과 나라" 가 주어진다. 그 영광과 권세는 그것을 주기에 가장 확고부동한 권한을 쥐고 있는 자가 그에게 주는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기도를 통해서 말씀 하셨던 것을 연상한다. 즉 그러므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아버지께 있습니다" 라는 기도이다. 여기에는 높아진 구원자의 나라가 다음과 같을 것임이 예언되었다.
(1)그 나라는 세계적인 나라이다. 즉 단 하나의 보편적 나라이다.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그를 두려워 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지배 아래 있게 된다. 세상의 모든 왕국이 그의 나라에 속하게 될 것이다.
(2)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다. 그의 지배권은 다른 어떤 계승자에 의해서 계승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나라는 결코 파괴되지 않을 것이다. 지옥 권세도 그 나라를 대적하지 못할 것이다. 교회는 시간의 끝까지 존속할 것이며, 영원히 승리할 것이다.
해몽을 받은 다니엘 (다니엘 7:15-28)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수 있다.
Ⅰ. 환상이 이 예언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환상 가운데서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영광과 만족을 주셨다. 그러나 큰 고통과 당혹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나 다니엘은 근심되도다" (15절). 여기에서 사용된 "몸" 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칼집," 혹은 "덮개"를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몸은 영혼에 비해 칼집에 불과하고, 영혼이 칼이기 때문이다. 영혼이야말로 우리가 근본적으로 돌보아야 할 것이다. "내 뇌 속의 이상이나를 번민케 하였다" (15절)와 다시 28절에서 "번민하였도다." 즉 다니엘을 완전히 압도하였고, 그의 생각은 심히 혼란되어, 정신이 나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일어난 사실들이 다니엘을 놀라게 하였다. 그래서 그가 위엄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되찾을 때까지 다니엘을 당황하게 하였다.
Ⅱ. 그 환상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다니엘은 진지하게 갈망한다(16절)." 내가 그 곁에 모신 자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즉 "인자" 곁에 있는 한 천사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보는 것들의 완전한 의미를 아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그리고 알기를 원하는 자들은 신실한, 그리고 뜨거운 기도를 통해서, 그리고 "부지런히 궁구하여" 물어야 한다.
Ⅲ. 이 환상의 이해를 위한 열쇠가 다니엘에게 주어진다. 천사가 "그에게 말한다." 즉 "그 일의 해석을 알"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한 것이다.
1. 그 "큰 짐승들" 은 큰 "왕들" 과 그들의 나라들이다. 그 짐승들이 "바다에서부터" (17절)올라온 것처럼, 그 나라들은 "세상(땅)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들은 terroefilii-즉 아래에서부터 올라온 것이다. 그들은 땅의 냄새를 낸다. 그들의 기초는 "티끌 속에" 있다. 그들은 모두 지상의 흙에 불과하며, 티끌 속에 기록되어 있으며, 결국 티끌로 되돌아갈 것이다.
2. 다니엘은 첫 세 짐승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안다. 그러나 네번째 짐승에 대해서는 더 많은 정보를 훤한다. 왜냐하면 네번째 짐승은 나머지 세 짐승과는 전혀 다르며, "심히 무섭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네째 짐승은 다른 짐승들을 "먹고 부숴 뜨리고," 발로 밟아버렸기 때문이다(19절).아마도 다니엘을 그렇게 놀라게 한 것은 바로 네번째 짐승이었으리라. 또한 이 환상이 다른 나머지 짐승에 대한 환승보다도 더 다니엘을 걱정케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이 특별히 더 알기를 원했던 것은," 작은 뿔" 이 무엇이며, 머리에 있는 "눈" 은 무엇이며, 또 "큰 일을 말하는 입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짐승의 용모는 "동류의 다른 어떤 짐승 보다 강하여 보였다(20절). 그리고 이것이 그가 가장 알고 싶어하였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이긴 뿔이었기 때문이었다" (21절). 인생들이 서로 싸우고, 서로 승리하는 것만이 암시되어 있을 때에는, 다니엘이 관심을 별로 가지지 아니했다(" 그릇들이 세상의 질그릇들과 더불어 싸우게 하라." 그리고 서로 대적함으로써 조각나게 하라!).
그러나 그들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울 때, "좋은 금과 비교되는 시온의 귀중한 아들들" 이 흙으로 만든 물주전자처럼 파괴되었을 때야말로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할 때이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여호와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포기하실 것인가? 그는 그의 적들을 짓밟아 부수고 승리를 거둘 것인가? 성도들과 싸워 승리를 거두는 이 같은 뿔들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그의 해석자는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23-25절). 즉, 이 "네번째 짐승" 은 "네번째 나라" 이며, 그 나라는" 천하를 혹은 온 땅을 삼켜버릴 것이다." "열 개의 뿔" 은 "열 명의 10 왕들" 이다. 그리고 "작은 뿔" 은 다른 세 명의 왕을 굴복시킬 왕이메, 그 왕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에게 대단히 모욕으로 행할 것이며, 다음과 같이 행동할 것이다.
(1) 하나님께 대해서 대단히 사악하게 행동할 것이다. 그는 "큰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할 것이다." 즉 하나님의 권위와 정의를 모독할 것이다.
(2)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 대단히 거만하게 행동할 것이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을 괴롭힐 것이다. 그는 성도들을 단 한번에 처치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오랜 억압과 끊임없는 학대에 의해서,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죽이고,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함으로써, 말려 죽일 것이다." 사탄의 계획이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억조차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사탄의 계획은 무익한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이 있는 동안은 하나님이 세상 안에 교회를 보존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때와 법을 변개시킬 생각을 할 것이다. 또한 종교의 모든 규례와 제도를 제거하며 인간과 신의 법과 제도를 짓밟으려 할 것이다. 그는 마치 하늘의 규례까지도 변경시킬 수 있다는 듯이, "모든 것을 뽑아버리고, 세우고, 네모를 원으로 바꾸리라." 그리고 이러한 무모한 시도 속에서 그는 잠시 동안 번영하고 성공할 것이다. 성도들은 "그의 손에서" "한 때와 두때와 반(半) 때를" (곧 30년 반을) 잡혀 있을 것이다. 그 햇수는 우리가 요한 계시록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예언적 시간 측량법이다.
그것은 때때로 42개월, 혹은 1260일이라고 불리웠다. 그러나 그 때의 마지막에 "심판이 시작되어, 그의 권세를 빼앗을" 것이다(26절). 이것은 그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시체가 부상당하는것" 을 말한다(11절). 그리고 조셉 미드(Joseph Mode)씨의 12절 해석에 따르면, "나머지 짐승에 대해서," 열 개의 뿔들, 특히 "뽑혀진" 작은 뿔이 그들의 권세를 빼앗겼다고 했다. 이제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즉 "누가 이 원수인가? 여기에서 그 흥망성쇄가 예언된 이 원수는 누구란 말인가?" 해석자들은 이 원수에 대해서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 네째 짐승을 셀류시데(Seleucidae)의 왕국이며, 작은 뿔은 안티오커스(Antiochus)를 나타낸다고 할것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은 마카비서의 역사 가운데서 예컨데 유니우스(Junius), 피스카토르(Piscator), 폴라누스(Polanus), 브러튼(Broughton) 등과 같은 사람들의 역사에서 실현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 네번째 왕국을 로마 제국이라고 보며, 작은 뿔은 시저(Julius Casar)와 그를 계승한 황제들(킬빈), 적 그리스도, 그리고 로마 카톨릭 왕국(미드) 이라 한다. 이들은 "사악한 자" 요, "작은 뿔"로써, "그리스도의 재림의 광채" 에 의해서 소멸될 것이라 한다. 교황은 "때와 법을 변개할" "절대권" 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루터나 바타불루스(Vatablus) 같은 사람들은 그 "작은 뿔" 은 "터어키 제국" 이라고 한다. 나는 어느쪽이 틀린지를 입증할수 없다. 다만 예언이 때로는 여러 가지로 성취되었으므로, 우리는 성서에 모든 자유를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이 예언은 일차적으로는 시리아 제국을 나타내는 것이며, 안티오커스(Antiochus)의 억압 아래서 고통받는 유대인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임을 밝혀두고 싶다. 때때로 이 예언이 우울한 종말에 대한 것을 보여 주지만, 교만한 압제자들의 최후적인 파멸과 이스라엘의 영광을 보여준다. 또한 그 예언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던 이전의 예언에서 보여 주었던 희망, 이 세상 안에서 세워질 메시야의 왕국을 예언한다. 그러나 그 예언은 로마의 교황보다도 오히려, 로마에 있는 이방인과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 세력도 말해 준것이다. 그리고 성요한은 그의 환상과 예언에서, 다니엘의 이 환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여러 번 언급하고 있다.
3. 다니엘도 사람들 사이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의 학대와 종말에 있을 모든 반대 세력들에 대한 하나님의 왕국의 승리에 대한 기쁜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적대자들의 격노와 세력을 예언하는 가운데 이 같은 전망이 갑자기 뛰쳐나왔다는것(18,22절)(이것은 환상의 과정의 한 부분으로 봐야한다26,27절)은 주목할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언급하는 것이기도 하다.
(1) 마카비가 적들을 물리치고 군림하던 시기와 안티오커스의 지배 아래서 난국을 타개한 후에 있었던 유대 교회의 번영의 날을 말해준다.
(2)복음의 선포에 의해서 이 세상 안에 세워질 메시야의 나라에 대해서 언급한다. 왜냐하면 "심판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이 세상으로 오시며," 그의 성령으로 통치하시기 위해서, 또한 그의 모든 성도들을 "하나님을 위해서 왕과 제사장으로" 만들기 위해서 오시기 때문이다.
(3)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하게 될 때, 즉 악마의 나라의 완전한 멸망에서 승리를 거두고 그리스도의 보좌에 앉게 될,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언급한다. 여기에 무엇이 예언되었는지를 살펴보자.
[1]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오실 것이다." (22절). 하나님은 그가 "모든 심판의 권세를 맡기신"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는 그의 억압받는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실 것이다." 또한 세상에 그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서 오실 것이다.
[2] "심판이 열릴 것이다" (26절). 하나님은 "자기가 세상을 심판하신다" 는 사실을 분명히 밝힐 것이다. 그리고 지혜와 공명함으로 그의 백성의 탄원을 들으심을 보이실 것이다. 저 큰 날(심판날)에, 그는 "그가 임명한 사람들에 의해서 의롭게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3] 대적자들은 "지배권을 빼앗길 것이다" (26절). 그리스도의 모든 대적자들은 그리스도의 발판이 될 것이며, 끝까지 "소멸되고 파멸될" 것이다. 이런 말들은 사도들이 죄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사용하던 것이다(살후 2:8). 죄인은 "그리스도의 입의 영에 의해서 소멸될 것이며," "그의 재림의 광채로 파괴될" 것이다.
[4] "심판(원)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에게 주어진다." 사도들에게는 복음의 선포가 위임되었을 때, 그것은 세상을 심판하는 복음이다. 모든 성도들은 그들의 신앙과 순종에 의해서 불신의, 그리고 불순종의 세상을 비난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은 세상을 심판할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마 19:28).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영광을 돌려야 하는 이유가 얼마나 충분한가를 주목해 보자. 성도들이 세상의 눈에 아무리 약하고 비루하게 보일지라도, 그리고 아무리 많은 비난이 성도들에게 쏟아질지라도, 그들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 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가깝고 소중한 자들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 소유로 인정하시며 심판은 그들에게 붙인 바 된다.
[5]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가 나라를 얻으며 그 나라를 영원히 소유하리라는 것이 극력 강조되고 있다(18,22,27절).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권세가 은혜에 기초한다거나 성도라는 것을 구실로 왕권을 찬탈할 근거를 얻는다고 추론하는 것은 천만 부당하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본문이 암시하는 것은 육욕과 타락에 대한 성도의 영적 주권이며 사탄과 그 유혹에 대한 성도의 승리이며 죽음과 그 공포에 대한 순교자의 개선이다. 또한 이것은 복음의 나라가 건립될 것을 약속한다. 그 나라는 빛과 성결과 사랑의 나라요 은혜와 특권과 위로의 나라이다. 하늘 아래서 있을 이 여러 가지는 하늘의 영광 나라의 징표와 첫 열매가 될 것이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화하고 주권자들이 기독교의 수호와 발양을 위해 권세를 사용했을 때 성도들은 나라를 얻은 것이다. 성도들은 성령의 지배와(이것이 바로 믿음의 승리 곧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세상 열국을 그리스도의 나라로 만듦으로써 다스린다. 그러나 완전한 성취는 성도의 영원한 행복에서 이루어진다. 그 나라는 요동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쇠하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구한다. 이런 것이 영원한 나라이며 그런 점에서 그 나라는 크다. 여기에 어떤 강조가 주어지는지 살펴보자(18절). 성도는 그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은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이유는 성도들을 소유하는 분과 그의 나라가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의 나라는 영원하다. 따라서 그들의 나라도 영원할 것이다. "내가 살았기 때문에 너희도 살것이다" (요 4:19). 그의 나라는 곧 그들의 나라이다. 그들은 그의 높임을 자기들의 높임으로 간주하며 모든 권세있는 자가 그들처럼 그를 섬겨 복종하는 것 이상의 명예와 만족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그의 황금 홀에 복종하게 되든지, 아니면 그의 철장으로 파멸이 접하게 될 것이다.
다니엘은 마지막으로 자기가 이 환상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말해 준다. 환상은 그의 낯빛이 변할 정도로 그의 심령을 사로잡았다. 이 때문에 그는 창백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는 이 일을 마음에 감추었다. 마음은 신적 일의 간수와 창고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 주목하자. 우리는 성모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유의했듯이 (눅 2:51)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감추지 않으면 안 된다. 다니엘은 이 일을 마음에 감추었는데 그것은 이 일을 교회로부터 감춘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 감춘 것이다. 이는 그가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것을 백성에게 완전하고도 신실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사역자와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일들을 자기 마음에 쌓아두고 그것을 잘 소화하는 데 관심해야 한다. 필요한 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입으로 즉시 표현하려면 그것을 우리 마음속에 항상 갖추어 두어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수 있다.
Ⅰ. 환상이 이 예언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환상 가운데서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영광과 만족을 주셨다. 그러나 큰 고통과 당혹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나 다니엘은 근심되도다" (15절). 여기에서 사용된 "몸" 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칼집," 혹은 "덮개"를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몸은 영혼에 비해 칼집에 불과하고, 영혼이 칼이기 때문이다. 영혼이야말로 우리가 근본적으로 돌보아야 할 것이다. "내 뇌 속의 이상이나를 번민케 하였다" (15절)와 다시 28절에서 "번민하였도다." 즉 다니엘을 완전히 압도하였고, 그의 생각은 심히 혼란되어, 정신이 나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일어난 사실들이 다니엘을 놀라게 하였다. 그래서 그가 위엄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되찾을 때까지 다니엘을 당황하게 하였다.
Ⅱ. 그 환상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다니엘은 진지하게 갈망한다(16절)." 내가 그 곁에 모신 자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즉 "인자" 곁에 있는 한 천사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보는 것들의 완전한 의미를 아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그리고 알기를 원하는 자들은 신실한, 그리고 뜨거운 기도를 통해서, 그리고 "부지런히 궁구하여" 물어야 한다.
Ⅲ. 이 환상의 이해를 위한 열쇠가 다니엘에게 주어진다. 천사가 "그에게 말한다." 즉 "그 일의 해석을 알"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한 것이다.
1. 그 "큰 짐승들" 은 큰 "왕들" 과 그들의 나라들이다. 그 짐승들이 "바다에서부터" (17절)올라온 것처럼, 그 나라들은 "세상(땅)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들은 terroefilii-즉 아래에서부터 올라온 것이다. 그들은 땅의 냄새를 낸다. 그들의 기초는 "티끌 속에" 있다. 그들은 모두 지상의 흙에 불과하며, 티끌 속에 기록되어 있으며, 결국 티끌로 되돌아갈 것이다.
2. 다니엘은 첫 세 짐승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안다. 그러나 네번째 짐승에 대해서는 더 많은 정보를 훤한다. 왜냐하면 네번째 짐승은 나머지 세 짐승과는 전혀 다르며, "심히 무섭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네째 짐승은 다른 짐승들을 "먹고 부숴 뜨리고," 발로 밟아버렸기 때문이다(19절).아마도 다니엘을 그렇게 놀라게 한 것은 바로 네번째 짐승이었으리라. 또한 이 환상이 다른 나머지 짐승에 대한 환승보다도 더 다니엘을 걱정케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이 특별히 더 알기를 원했던 것은," 작은 뿔" 이 무엇이며, 머리에 있는 "눈" 은 무엇이며, 또 "큰 일을 말하는 입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짐승의 용모는 "동류의 다른 어떤 짐승 보다 강하여 보였다(20절).
그리고 이것이 그가 가장 알고 싶어하였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이긴 뿔이었기 때문이었다" (21절). 인생들이 서로 싸우고, 서로 승리하는 것만이 암시되어 있을 때에는, 다니엘이 관심을 별로 가지지 아니했다(" 그릇들이 세상의 질그릇들과 더불어 싸우게 하라." 그리고 서로 대적함으로써 조각나게 하라!).그러나 그들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울 때, "좋은 금과 비교되는 시온의 귀중한 아들들" 이 흙으로 만든 물주전자처럼 파괴되었을 때야말로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할 때이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여호와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포기하실 것인가? 그는 그의 적들을 짓밟아 부수고 승리를 거둘 것인가? 성도들과 싸워 승리를 거두는 이 같은 뿔들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그의 해석자는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23-25절). 즉, 이 "네번째 짐승" 은 "네번째 나라" 이며, 그 나라는" 천하를 혹은 온 땅을 삼켜버릴 것이다." "열 개의 뿔" 은 "열 명의 10 왕들" 이다. 그리고 "작은 뿔" 은 다른 세 명의 왕을 굴복시킬 왕이메, 그 왕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에게 대단히 모욕으로 행할 것이며, 다음과 같이 행동할 것이다.
(1) 하나님께 대해서 대단히 사악하게 행동할 것이다. 그는 "큰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할 것이다." 즉 하나님의 권위와 정의를 모독할 것이다.
(2)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 대단히 거만하게 행동할 것이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을 괴롭힐 것이다. 그는 성도들을 단 한번에 처치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오랜 억압과 끊임없는 학대에 의해서,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죽이고,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함으로써, 말려 죽일 것이다." 사탄의 계획이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억조차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사탄의 계획은 무익한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이 있는 동안은 하나님이 세상 안에 교회를 보존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때와 법을 변개시킬 생각을 할 것이다. 또한 종교의 모든 규례와 제도를 제거하며 인간과 신의 법과 제도를 짓밟으려 할 것이다. 그는 마치 하늘의 규례까지도 변경시킬 수 있다는 듯이, "모든 것을 뽑아버리고, 세우고, 네모를 원으로 바꾸리라." 그리고 이러한 무모한 시도 속에서 그는 잠시 동안 번영하고 성공할 것이다. 성도들은 "그의 손에서" "한 때와 두때와 반(半) 때를" (곧 30년 반을) 잡혀 있을 것이다. 그 햇수는 우리가 요한 계시록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예언적 시간 측량법이다. 그것은 때때로 42개월, 혹은 1260일이라고 불리웠다. 그러나 그 때의 마지막에 "심판이 시작되어, 그의 권세를 빼앗을" 것이다(26절).
이것은 그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시체가 부상당하는것" 을 말한다(11절). 그리고 조셉 미드(Joseph Mode)씨의 12절 해석에 따르면, "나머지 짐승에 대해서," 열 개의 뿔들, 특히 "뽑혀진" 작은 뿔이 그들의 권세를 빼앗겼다고 했다. 이제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즉 "누가 이 원수인가? 여기에서 그 흥망성쇄가 예언된 이 원수는 누구란 말인가?" 해석자들은 이 원수에 대해서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 네째 짐승을 셀류시데(Seleucidae)의 왕국이며, 작은 뿔은 안티오커스(Antiochus)를 나타낸다고 할것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은 마카비서의 역사 가운데서 예컨데 유니우스(Junius), 피스카토르(Piscator), 폴라누스(Polanus), 브러튼(Broughton) 등과 같은 사람들의 역사에서 실현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 네번째 왕국을 로마 제국이라고 보며, 작은 뿔은 시저(Julius Casar)와 그를 계승한 황제들(킬빈), 적 그리스도, 그리고 로마 카톨릭 왕국(미드) 이라 한다. 이들은 "사악한 자" 요, "작은 뿔"로써, "그리스도의 재림의 광채" 에 의해서 소멸될 것이라 한다. 교황은 "때와 법을 변개할" "절대권" 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루터나 바타불루스(Vatablus) 같은 사람들은 그 "작은 뿔" 은 "터어키 제국" 이라고 한다. 나는 어느쪽이 틀린지를 입증할수 없다. 다만 예언이 때로는 여러 가지로 성취되었으므로, 우리는 성서에 모든 자유를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이 예언은 일차적으로는 시리아 제국을 나타내는 것이며, 안티오커스(Antiochus)의 억압 아래서 고통받는 유대인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임을 밝혀두고 싶다.
때때로 이 예언이 우울한 종말에 대한 것을 보여 주지만, 교만한 압제자들의 최후적인 파멸과 이스라엘의 영광을 보여준다. 또한 그 예언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던 이전의 예언에서 보여 주었던 희망, 이 세상 안에서 세워질 메시야의 왕국을 예언한다. 그러나 그 예언은 로마의 교황보다도 오히려, 로마에 있는 이방인과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 세력도 말해 준것이다. 그리고 성요한은 그의 환상과 예언에서, 다니엘의 이 환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여러 번 언급하고 있다.
3. 다니엘도 사람들 사이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의 학대와 종말에 있을 모든 반대 세력들에 대한 하나님의 왕국의 승리에 대한 기쁜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적대자들의 격노와 세력을 예언하는 가운데 이 같은 전망이 갑자기 뛰쳐나왔다는것(18,22절)(이것은 환상의 과정의 한 부분으로 봐야한다26,27절)은 주목할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언급하는 것이기도 하다.
(1) 마카비가 적들을 물리치고 군림하던 시기와 안티오커스의 지배 아래서 난국을 타개한 후에 있었던 유대 교회의 번영의 날을 말해준다.
(2)복음의 선포에 의해서 이 세상 안에 세워질 메시야의 나라에 대해서 언급한다. 왜냐하면 "심판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이 세상으로 오시며," 그의 성령으로 통치하시기 위해서, 또한 그의 모든 성도들을 "하나님을 위해서 왕과 제사장으로" 만들기 위해서 오시기 때문이다.
(3)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하게 될 때, 즉 악마의 나라의 완전한 멸망에서 승리를 거두고 그리스도의 보좌에 앉게 될,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언급한다. 여기에 무엇이 예언되었는지를 살펴보자.
[1]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오실 것이다." (22절). 하나님은 그가 "모든 심판의 권세를 맡기신"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는 그의 억압받는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실 것이다." 또한 세상에 그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서 오실 것이다.
[2] "심판이 열릴 것이다" (26절). 하나님은 "자기가 세상을 심판하신다" 는 사실을 분명히 밝힐 것이다. 그리고 지혜와 공명함으로 그의 백성의 탄원을 들으심을 보이실 것이다. 저 큰 날(심판날)에, 그는 "그가 임명한 사람들에 의해서 의롭게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3] 대적자들은 "지배권을 빼앗길 것이다" (26절). 그리스도의 모든 대적자들은 그리스도의 발판이 될 것이며, 끝까지 "소멸되고 파멸될" 것이다. 이런 말들은 사도들이 죄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사용하던 것이다(살후 2:8). 죄인은 "그리스도의 입의 영에 의해서 소멸될 것이며," "그의 재림의 광채로 파괴될" 것이다.
[4] "심판(원)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에게 주어진다." 사도들에게는 복음의 선포가 위임되었을 때, 그것은 세상을 심판하는 복음이다. 모든 성도들은 그들의 신앙과 순종에 의해서 불신의, 그리고 불순종의 세상을 비난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은 세상을 심판할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마 19:28).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영광을 돌려야 하는 이유가 얼마나 충분한가를 주목해 보자. 성도들이 세상의 눈에 아무리 약하고 비루하게 보일지라도, 그리고 아무리 많은 비난이 성도들에게 쏟아질지라도, 그들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 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가깝고 소중한 자들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 소유로 인정하시며 심판은 그들에게 붙인 바 된다.
[5]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가 나라를 얻으며 그 나라를 영원히 소유하리라는 것이 극력 강조되고 있다(18,22,27절).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권세가 은혜에 기초한다거나 성도라는 것을 구실로 왕권을 찬탈할 근거를 얻는다고 추론하는 것은 천만 부당하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본문이 암시하는 것은 육욕과 타락에 대한 성도의 영적 주권이며 사탄과 그 유혹에 대한 성도의 승리이며 죽음과 그 공포에 대한 순교자의 개선이다. 또한 이것은 복음의 나라가 건립될 것을 약속한다. 그 나라는 빛과 성결과 사랑의 나라요 은혜와 특권과 위로의 나라이다. 하늘 아래서 있을 이 여러 가지는 하늘의 영광 나라의 징표와 첫 열매가 될 것이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화하고 주권자들이 기독교의 수호와 발양을 위해 권세를 사용했을 때 성도들은 나라를 얻은 것이다.
성도들은 성령의 지배와(이것이 바로 믿음의 승리 곧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세상 열국을 그리스도의 나라로 만듦으로써 다스린다. 그러나 완전한 성취는 성도의 영원한 행복에서 이루어진다. 그 나라는 요동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쇠하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구한다. 이런 것이 영원한 나라이며 그런 점에서 그 나라는 크다. 여기에 어떤 강조가 주어지는지 살펴보자(18절). 성도는 그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은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이유는 성도들을 소유하는 분과 그의 나라가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의 나라는 영원하다. 따라서 그들의 나라도 영원할 것이다. "내가 살았기 때문에 너희도 살것이다" (요 4:19). 그의 나라는 곧 그들의 나라이다. 그들은 그의 높임을 자기들의 높임으로 간주하며 모든 권세있는 자가 그들처럼 그를 섬겨 복종하는 것 이상의 명예와 만족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그의 황금 홀에 복종하게 되든지, 아니면 그의 철장으로 파멸이 접하게 될 것이다.
다니엘은 마지막으로 자기가 이 환상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말해 준다. 환상은 그의 낯빛이 변할 정도로 그의 심령을 사로잡았다. 이 때문에 그는 창백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는 이 일을 마음에 감추었다. 마음은 신적 일의 간수와 창고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 주목하자. 우리는 성모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유의했듯이 (눅 2:51)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감추지 않으면 안 된다. 다니엘은 이 일을 마음에 감추었는데 그것은 이 일을 교회로부터 감춘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 감춘 것이다. 이는 그가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것을 백성에게 완전하고도 신실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사역자와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일들을 자기 마음에 쌓아두고 그것을 잘 소화하는 데 관심해야 한다. 필요한 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입으로 즉시 표현하려면 그것을 우리 마음속에 항상 갖추어 두어야 한다.
글: cafe.daum.net/correcttheology
'구약의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약에 나타난 '작은 뿔'(단 8장) (0) | 2021.07.19 |
---|---|
종말에 등장할 '네 바람'과 '열 뿔'과 '작은 뿔'(단7장) (0) | 2021.07.19 |
'네 짐승’에 관한 다니엘의 환상(단7:1-28) (0) | 2021.07.19 |
간략하게 보는 다니엘서 5-8장 (0) | 2021.07.18 |
간략히 보는 다니엘서 1-4장 (0) | 2021.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