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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쉴만한 물가

루체른의 빈사의 사자상(瀕死의 獅子像, The dying Lion of Luzern)

by 은총가득 2021. 4. 19.

 

 

< 2017년 여름 종교개혁 500 주년 - 종교 개혁지 탐방차 들렸던 스위스, 루체른의 빈자의 사자상>

  

맨 먼저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필란드, 스웨덴,  스위스, 덴마아크, 네델란드, 헝가리, 체코를 거쳐 독일로 갔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 중에 하나가 스위스 루체른의 "빈자의 사자상"이다.(정착 스위스 출신의 거장인  칼뱅이나 쯔빙글리 유적과 동상은 크게 기억에 남지 않지만..)  

 

  당시 너무나 감동 받아 오랫동안 숙연해 했던 "스위스 루체른의 빈자의 사자상"에 얽힌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루체른의 빈사의 사자 상 (The dying Lion of Luzern)은

1821년 세계적인 거장 덴마크인 조각가 '베르텔 토르발드젠(Bertel Thorwaldsen)'이 설계하고

'루카스 아호론'이 회색의 사암절벽에 새긴 조각상이다.

 

빈사의 사자상은 1972년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 곁을 끝까지 지켜냈던 스위스 용병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프랑스혁명 당시 마리앙투아네트가 머물고 있던 궁전을 지키다가 전사한 786명의 스위스 용병의 충성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루체른의 빈사의 사자 상 (The dying Lion of Luzern)은 1333년에 만들어졌다. 길이 200m의 지붕이 있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다리인 카펠교 (Kapellbruecke)를 건너 대성당에서 뢰벤거리를 300m쯤 올라간 거리인 빙하공원 옆에 있는 작은 공원 안에 있다.

 

지금 스위스는 관광대국으로 부유를 누리고 있지만, 당시에는 너무 가난해 용병으로 국가를 꾸려가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루이 16세를 지키던 용병들이 혁명군들을 상대로 싸우면서 도망가지 않았던 이유는 만일  자신들이 도망간다면,

스위스의 후대 용병들이 고용되지 못할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후손들을 위해 명예를 걸고  죽음을 불사하며 끝까지 자신들의 군주를 따르며 싸웠다는 것이다.(한마디로 후대 용병들을 위해  끝까지 피흘려 싸우다 숭고하게 죽은 것이다.) 이들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기 위해, 그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 "빈사의 사자상"이다. 

 

 

 

< 사자상에 대한 설명>

 

빈사의 사자 상 (The dying Lion of Luzern)은 1821년 세계적인 거장 덴마크인 조각가 베르텔 토르발드젠(Bertel Thorwaldsen)이 설계하고 루카스 아호론이 회색의 사암절벽에 새긴 조각상이다.

 

당시 용병 한명이 죽으면서 아들에게 쓴 유서에는  " 내가 여기서 도망하면 누가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다시 용병으로 쓰겠느냐? " 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힘없이 누워있는 이 사자상은 그렇게 프랑스 혁명 당시의 일로 스위스 용병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현재 바티칸시국을 지키는 군인들을 스위스 출신 용병들만 고용한다고 한다. 그들의 충성심과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고 할수 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리라,계 2장> 말씀이 떠오른다.

 

 

사자상의 사자의 표정은 당시 용병들의 고통과 슬픔을 정말 잘 표현해  준 위대한 작품이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숙연하게 만든다.

 

 

 

 

 이 조각상의 전체의 크기는 43피트이며 사자의 상은 30피트 크기로 조각되어 있다.

심장을 뚫고 나온 부러진 창에 만신창이 되여 죽음을 눈앞에 두고 신음하며 누워있는 숫 사자 상, 그 숫 사자는 부르봉왕가의 문장인 흰 백합이 새겨진 방패를 죽어가면서도 발에서 놓지 않고 지키고 있는 슬픈 모습은 마지막 순간까지 왕가를 사수하는 스위스용병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조각상 위에 라틴어로 HELVETIORUM FIDEI AC VIRTUTI라고 쓰여 진 글귀는

'스위스 사람들의 충성심과 용기' 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맨 밑에는 이 싸움에서 희생된 26명의 장교와 16명의 병사가 포함된 순직 병사들의 이름이 라틴어로 새겨져 있다.

지금과는 달리 18세기경 아주 가난한 삶을 살았던 스위스 나라 젊은이들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로 돈을 벌기위해 용병을 가게 되었는데 특히 프랑스 황실의 용병으로 간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1792년 프랑스 대혁명 때 프랑스 근위병들은 모두 도망갔는데, 이들 786명의 스위스 용병들은 수적 열세를 무릅쓰고 루이 16세를 끝까지 호위하며 혁명군과 싸우다 전멸한 충성심과 신의를 지킨 스위스 젊은이들, 이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지킨 충성심과 책임감은 오늘날 까지 스위스 사람들을 신임하게 되어 현재까지도 베드로 대성당의 근위병은 스위스 용병만 쓴다고  한다.

 

 글로베트로터 마르크 트바인(Globetrotter Mark Twain)은 루체른의 사자 상을

"세계에서 가장 슬프고도 감동적인 바위 조각품"이라고 극찬 했다.

Globetrotter Mark Twain described the Lion of Luzern as "the saddest and most moving piece of rock in the world".

 

 

 

 

루체른의 빈사의 사자 상(The dying Lion of Luzern)


 만년설 품은 스위스 융프라우,  산악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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