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영적 리더쉽
서문. 문제는 다시 리더십이다!
이 책의 주요한 목표는 그리스도인 리더들을 돕기 위해서다. 주요한 독자는 전임사역자뿐 아니라 영적 리더가 되고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다. 영적 리더십이란 직업이 아니라 소명이다. 기독교 사업가, 의사, 교육인, 정치가, 부모 등 모두가 영적 리더가 돼야 한다. 즉 ‘세상’ 직업에 있되 영적 리더로서 자신의 소명에 진지하게 임하며 세상에 영향을 행사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야 한다. 하나님은 종들을 찾고 계신다(사 59:16, 겔 22:30).
1. 리더의 도전
소프트웨어 회사의 CEO인 마이크는 30대 초반의 젊고 패기 있고 창의적이며 유능한 남자이다. 게다가 직업윤리가 분명한 헌신된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조금 전 간부회의는 평소와는 달리 곧 신랄한 언쟁으로 불거졌고, 그 과정에서 마이크를 향한, 좀더 구체적으로는 그의 기독교 신앙을 향한 팽팽한 동료들의 적의가 쏟아진 것이다. 마이크의 경영방침이 자신들과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다수가 불신자인 간부들은 일치단결한 듯 보였다. 마이크는 당황했다. 그는 일터에서 그리스도께 순종하려 애썼으나 지금 그는 직장과 신앙이 공존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사임해야 할지도 모른다.
기로에 선 리더십
리더십 혹은 리더십 결핍은 우리 모두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리더로서 남을 이끄는 것은 힘겨운 과제이다. 낙심한 그리스도인 리더들은 자신의 믿음이 부족해 조직이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두려움 때문에 다른 일자리로 옮기지도 못한다. 한편,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 유통량이 급증해 끝없이 쏟아지는 데이터에 최대한 신속히 반응해야 할 중압감에 시달린다. 단 한 번의 잘못된 결정이 조직에 치명타를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리더십
리더에 대한 불신이 표출된 가장 공적인 분야는 정계이다. 세상은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지고 정치적 동맹관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핵과 생화학 테러의 위협이 가공할 만한 현실로 다가왔고, 심각한 경제 침체는 한 나라를 하룻밤 사이에 몰락시킬 수도 있다. 난무하는 폭력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한때 당연시되던 사회 규범은 공공연한 조롱의 대상이 되어 현대사회는 선지자 예레미야 때처럼 사람들이 ‘얼굴도 붉힐 줄 모르는’ 지경으로까지 퇴폐했다. 이렇게 무서운 정치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리더를 애타게 찾고 있다.
기업리더십
재계도 정계 못지않게 간절히 리더를 찾고 있다. 기업 운영 방식은 첨단기술로 쇄신에 쇄신을 거듭하고 있고, 세계 경제 역시 급속히 성장했다. 아시아의 재정위기가 북미 기업체들에 즉각 심각한 영향을 미칠 만큼 국가 경제가 서로 얽혀있기도 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기업 가치관이 자신에 부합하는 회사를 찾으며, 리더를 향한 직원들의 기대도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회사마다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나갈 리더를 애타게 찾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교회리더십
다른 사회 분야와 마찬가지로 리더십 가뭄은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날 많은 자칭 영적 리더들이 저마다 그럴듯한 저서와 이론으로 방송 전파를 장악하고 교회를 덮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짐 존스와 데이비드 코레쉬 같은 파괴적인 거짓 스승 밑에 그렇게 많은 추종자들이 모일 수 있다니 정말 아찔한 일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자칭 메시아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된 요인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리더를 간절히 찾고 있는 것이다!
세상 리더십 VS 영적 리더십
기독교 리더십은 세상 리더십과 동일한가? 많은 그리스도인 리더들이 세상적 접근을 수용하는 모습은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역 추세가 CEO 모델로 바뀌면서 훌륭한 리더십에 대한 교회의 평가도 달라졌다. 역설적으로, 교회가 대중 리더십 원리에 눈뜨고 있는 것과 동시에 세상 저자들 역시 기독교의 만고불변의 진리를 깨우치고 있다. 리더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기독교 방식으로 사업하는 것이 더 유리함을 리더십 전문가들은 터득한 것이다.
하나님 VS 왕
사무엘 당시 이스라엘은 사무엘을 영적 리더로 삼고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데 만족했다. 그러나 사무엘이 나이가 들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대신 왕을 요구했다. 결과는 비극이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신앙문제를 정치 경제 문제와 분리한 이스라엘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성경은 영적 부분과 세상을 나누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오늘날에도 하나님 나라란 교회, 가정, 직장, 이웃을 포함한 삶의 모든 영역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이다. 이 진리를 간과하고 기업이나 정계를 분리해 사고하면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다.
2. 리더의 역할 : 리더는 무엇을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영적 리더로서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깨닫고 하나님이 부르신 일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게 되기 바란다.
리더십의 정의
이 책은 ‘영적 리더십’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할 것인데, 종교 조직과 일반 기업의 리더를 구분하는 의미는 아니다. ‘영적 리더십’이란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람과 조직을 이끌려는 리더를 통칭하는 것으로, 교회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필수다. 영적 리더는 자신의 리더십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안다. 그래서 단순히 사람들을 하나님이 정해주신 방향으로 이끄는 데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이 세대를 향한 목표를 실제로 이루시도록 일한다.
영적 리더십의 새 정의
영적 리더십은 사람들을 움직여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영적 리더십의 독특한 요소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영적 리더는 사람들을 움직여 현재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로 가게 한다. 이것이 영향력이다. 둘째, 영적 리더는 성령께 의존한다. 셋째, 영적 리더는 하나님께 책임진다. 넷째, 영적 리더는 하나님의 사람들뿐 아니라 불신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다섯째, 영적 리더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일한다.
3. 리더의 준비 : 하나님이 리더를 키우시는 법
한 조직의 위대함은 리더의 위대함과 정비례한다. 따라서 조직을 키우는 비결은 곧 리더를 키우는 것이며, 리더십 개발은 곧 개인성장과 동의어이다.
타고난 자질
유명한 리더들의 유년시절을 살펴보면 대개 리더의 소질이 징후처럼 나타난다. 미래의 리더 양성에 관심 있는 교회라면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현명한 교회는 십대 때부터 그들에게 리더십 기회를 부여한다. 많은 리더십 이론서 저자들은 리더는 태어나는 것이자 만들어지는 것이라 본다.
삶의 경험
삶의 경험은 분명 어떤 리더가 되느냐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맏이들이 아무래도 체구나 힘이나 지식 면에서 동생들보다 앞서다 보니 지도력이 좋은 경우가 많다.
가정환경
포트워스 제일 침례교회 목사였을 뿐 아니라 동시에 디트로이트 템플 침례교회 목사로 두 교회 교인 25,000명을 이끈, 당대 근본주의 진영을 주도하던 프랭크 노리스는 설교의 귀재로 통했다. 그러나 노리스의 배후에는 풍파가 많았다. 그의 교회와 집은 화재로 불탔다. 둘 다 노리스 자신이 방화범으로 기소됐다. 그는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만 보면 무조건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끊임없는 논쟁에 빠져들었다. 교회를 고소하기도 했다. 심지어 사무실에서 사람을 쏘아 죽인 적도 있다. 노리스의 현란하고 보복적인 리더십 방식을 이해하려면 그의 어린 시절을 살펴봐야 한다. 노리스는 어려서부터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에게 죽도록 얻어맞았다. 한 번은 갱단 두 명이 노리스 집에 나타나 그의 아버지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는데, 어린 노리스는 칼을 들고 두 악당에게 대항했다. 총을 세 방이나 맞으면서. 노리스의 기구한 과거는 그에게 성공을 안겨준 셈이지만 동시에 그를 파괴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행동 유형으로 몰아가 사역에 오점을 안겼다. 이렇듯 리더십 형성에 있어 좋든 나쁘든 유년기 가정환경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유년기 가정환경의 영향은 절대 과소평가할 수 없는 리더십 개발의 주요 요인이다. 화기애애하고 활기찬 가정환경은 든든한 자존감과 원활한 대인 기술을 길러 주는 반면 역기능 가정에서 자라나 과거의 상처를 안고 있다면, 겉으로 드러난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열등감과 패배의식과 분노는 여전히 남아있다.
실패
실패는 리더를 세우는 강력한 힘이다. 참된 리더들의 경우 실패는 그들을 무너뜨리는 대신 오히려 성품을 자라게 해주었다. 위대한 리더 중에는 어려서 심한 고생과 실패를 겪은 이들이 압도적이다. 어쩌면 그 실패들 때문에 처칠은 성공을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에서 다른 실패로 건너가는 것”이라 정의했는지도 모른다.
위기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위기들도 실패와 같은 영향을 미친다. 위기는 자라나는 리더를 무너뜨릴 수도 있고 오히려 불굴의 의지를 키워 더 큰 인물이 되게 할 수도 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어려서 중증 천식으로 고생했고 학교에도 못 다닐 정도로 약골이었다. 아직 젊은이였던 1884년에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를 한꺼번에 잃기도 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소아마비로 휠체어 신세를 졌다. 마하트마 간디는 수없이 감옥을 드나들었고 암살되기 전에도 여러 차례 암살위기에 직면했다.
개인적 고뇌
놀랍게도 저명한 많은 리더들이 어렸을 때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하지 못했다. 달변가로 유명한 윈스턴 처칠은 어려서 언어 장애가 있었다. 위대한 리더들 중 해리 트루먼은 유난히 부끄럼이 많아 장래 아내가 된 베스에게 용기를 다해 첫마디를 떼는 데 5년이나 걸렸다. 링컨도 여자들 앞에서는 지독한 숙맥이었으며 윈스턴 처칠은 첫사랑의 여인을 다른 남자에게 잃고 다른 두 여자에게마저 청혼을 거절당한 뒤 37세에 결혼했다. 이로써 미루어 볼 때 젊은 날의 고뇌는 리더에게 자신의 초라한 실체를 인식시킴과 동시에 앞으로 중요한 일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을 다져준다고 할 수 있다.
고생을 통한 성공
역사상 위대한 리더들 중에는 커다란 실패와 위기와 실망을 겪은 사람들이 하도 많아 이런 상처가 성공하는 리더십의 선결 조건이라도 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삶의 실패와 성공은 누구나 겪는 일이되, 리더십 개발의 열쇠는 좋은 쪽이든 궂은 쪽이든 경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대한 각자의 반응에 있다. 참된 리더를 구별짓는 특성은 자신의 경험을 배움의 발판으로 삼아 실패를 통해 새로운 동기를 얻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을 주신다
영적 리더의 성장이 세상의 리더십 개발과는 다른 별도의 차원이 있다면, 그것은 곧 리더의 삶 속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다. 영적 목표에 필요한 영적 수단은 성령을 통해서만 주어진다. 영적 리더는 건물을 짓고 사람을 관리하고 돈을 마련하는 비영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을 수행할 때도 자신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성령의 임재가 없다면 리더일 수는 있어도 영적 리더는 아니다.
하나님은 리더의 걸음을 이끄신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개인의 성품 개발과 성장을 이끌어 내실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 뜻에 기꺼이 복종하려는 인간의 자세가 전제된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시지 않는다. 인간의 고통을 무시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치유를 주실 뿐 아니라 최악의 경험에서도 성장을 끌어내신다. 모든 인간관계는 성품을 빚으시는 하나님의 도구이다.
풀러 신학대학원의 교수 로버트 클린턴은 『The Making of a Leader(리더의 요건)』라는 책에서 하나님이 리더를 키우시는 과정을 6단계 모델로 제시했다. 이 모델은 영적 리더십뿐 아니라 일반 리더십 개발에도 적용될 만큼 유익하다.
1단계 주권적 기초 단계(부모의 사랑, 출생순서, 질병, 빈부조건, 안정 불안정한 기복 등)
2단계 내면생활 성장 단계(영적 생활과 성품이 개발되는 시기로, 회심을 경험하는 단계)
3단계 사역의 성숙 단계(영적 리더십을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시기)
4단계 삶의 성숙 단계(영적 리더가 자신의 장점에 주력하여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파악하는 시기)
5단계 수렴 단계(사람과 사역의 경험이 구체적인 직무나 책임으로 수렴, 최대의 효율성을 발휘하는 시기)
6단계 잔광 또는 축하 단계(하나님이 자기 안에, 또 자신을 통해 이루신 일을 축하하면서 보내는 인생의 마지막 시기)
하나님은 리더를 지명하신다
삶의 모든 경험에 건강하게 반응하다 보면 일반적으로 리더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부르시고 그에 맞게 준비되지 않는 한 영적 리더는 될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지명하시고 맡기실 일을 정하신다. 특히 아브라함의 경우는 하나님이 보통 사람을 택하셔서 훌륭한 영적 리더로 변화시키시는 과정에 관한한 완벽한 사례다.
보통사람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나 평생 소와 양을 기르며 살아가려 한 보통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정착 생활이 아닌 유목민의 족장이 되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거룩한 나라의 아비가 되고 그의 삶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적 사례가 될 것이었다. 메시아도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 것이었다. 핵심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뜻을 위해 자기 계획을 버렸다는 점이다.
유업의 계승자
처음 아브라함에게 고향 우르를 떠나라 명하셨을 때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를 통해 그 과정을 시작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유목민으로 부르셨기에 먼저 아비에게 본토를 떠날 마음을 주셨던 것이다.
실패를 통해 자라다
아브라함의 삶에 일어난 모든 사건은 그의 성품을 개발하는 재료였다. 하나님은 그의 실패를 사용하여 리더로 준비시키셨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구체적으로 친척을 두고 가라고 명하셨지만 아브라함은 롯을 가나안으로 데리고 갔다. 하지만 이 실패를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 뜻을 인간이 수정해서는 안 된다는 값진 교훈을 배웠다. 아브라함의 실수는 하나님 뜻에 뭔가를 보태는 것은 하나님 뜻을 거부하는 것만큼이나 잘못임을 보여준다.
예배의 단을 쌓다
아브라함은 인생의 고비를 지나거나 하나님에 대해 새로운 것을 배울 때마다 단을 쌓았다. 그러나 가나안에 지독한 가뭄이 닥쳐오자 그는 애굽으로 떠날 때나 그곳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애굽에 있는 동안에는 단을 쌓았다는 기록은 없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묻지 않고 결정을 내릴 때마다 결과는 비참했다.
하나님의 구속을 경험하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실수하려 할 때 웬만해서 개입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그분은 실패하게 그냥 두시되 늘 구속할 준비를 하신다. 실패와 구속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보다 깊이 체험하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그냥 끼어들어 실패를 면하게 해 주셨을 때보다 더 깊은 차원이다.
경험으로 배우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해는 이론이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책이 아닌 하나님과 만남을 통해서 배웠다. 예컨대 아브라함이 자기보다 우세한 군대와 싸울 때 하나님은 그에게 빛나는 승리를 주셨다. 그때부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자신의 방패로 믿었다. 영적 리더는 자기 삶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활동과 그분의 성품을 연결시킬 줄 알아야 한다.
지름길은 없다
아브라함의 삶은 영적 성숙에 이르는 길이 평생에 걸친 과정임을 보여 준다. 셀 수 없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놀라운 언약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었다. 이 시험의 고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귀 기울이는 대신 사람의 말을 들었으며 아내 사라는 여종 하갈을 취해 자식을 낳으라고 부추겼다. 그 결과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이 고통 받으며 죽어가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릴 자세만 되어 있다면 더 많은 리더들이 자기 삶과 조직에 나타나는 놀라운 열매를 보게 될 것이다.
믿음을 드러내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요구사항은 분명했다. 문제는 아브라함이 순종할 것이냐였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려면 보통 사람들보다 더 깊은 믿음이 필요했다. 아브라함이 특별한 일을 하려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특별해야 했다. 대부분의 경우 그리스도인 리더들의 문제는 하나님 뜻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그대로 행할 의사가 없다는 데 있다.
하나님께 순종하다
순종은 자신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의 성품을 더 깊이 알게 해준다.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시고 하나님은 이삭을 살려주셨다. 이 시험에 통과함으로써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관계가 깊어졌을 뿐 아니라 마침내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 놀라운 지도자로 준비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순종은 장차 올 수많은 세대에도 영향을 주었다.
하나님의 친구
아브라함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신 결과로 그는 경건한 사람이 되었고, 한 민족의 족장이 되었으며,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가 된 것이다(대하 20:7, 사 41:8). 핵심은 그가 하나님을 알게 됐다는 것, 자신을 리더로 빚으시도록 순종하며 하나님께 자신을 드렸다는 것이다.
리더의 준비
하나님은 리더를 지명하신다. 하나님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일상생활의 경험과 위기를 통해 성품을 빚으신다. 구속의 과정을 통해 리더는 자신과 하나님을 더 깊이 배운다. 길고 고된 주님의 리더십 개발 과정에 자신을 바칠 용의가 있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리더로 성장할 잠재력을 갖춘 셈이다.
4. 리더의 비전 : 그 출처와 전달 방법
비전은 북극성과 같다. 리더가 사람들을 끌고 나가는 데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비전은 조직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리더가 비전의 사람이 돼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비전의 리더는 적어도 세 가지 기본 사항을 알아야 한다. 비전은 어디서 오는가? 비전은 어떻게 사람들을 움직이는가? 비전은 어떻게 전달되는가?
비전의 출처
위대한 비전이 위대한 사람과 위대한 조직을 만드는 것이라면 리더의 결정적 과제는 조직에 최대한 거창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월트 디즈니는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준다는 원대한 비전을 품고 오락산업의 정의를 바꾸어 놓았다. 빌 게이츠의 비전은 세상 모든 컴퓨터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의 성공은 가히 전설적이다. 그런데 사람들을 움직이고 단합시켜 큰 일을 이루게 할 비전을 리더는 어디서 얻는가?
① “산이 거기 있으니까”
목표를 이루려는 동기가 단지 눈앞에 기회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필요한 일에 매달리게 하는 것으로, 결국 자신의 수고와 다른 이들의 희생이 무용지물로 끝나고야 만다.
② 성공 따라 하기
비전을 빌려오는 리더들이 있다. 그들에게 비전의 출처는 과거다. 이런 생각 없는 리더십 밑에서는 따르는 이들만 가엾을 뿐이다.
③ 허영심
자신이 얻게 될 성공과 칭송을 기준으로 조직의 목표를 정하는 리더들이 엄연히 있다. 그러나 그 희생은 기껏 리더의 출세나 위한 것일 뿐 다른 숭고한 목표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④ 필요
비전의 보편적 출처는 필요를 인식할 때이다. 그러나 역사상 유명한 발명품 중에는 대중의 필요보다 기업의 창의적 혁신에서 나온 것이 많다. 교회 또한 사람들의 의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함으로 비전을 찾아야 한다.
⑤ 자원에 따른 비전
자원이 비전을 만들어 낼 때도 있다. 즉 무턱대고 자원을 받아들인 뒤 쌓인 자원을 활용하려고 비전을 짜 맞추는 것은 어리석은 리더가 할 일이다.
⑥ 리더가 만들어 낸 비전
비전의 리더가 되려면 조직의 비전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메시지는 분명하다. 리더들이 아무리 뛰어나도 하나님 나라는 그것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사람에게서 나온 꿈과 목표를 강조하다보면, 인간의 논리로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다고 여길 위험의 소지가 있다.
하나님의 계시
앞서 말한 비전의 출처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세상이 비전, 즉 보이는 것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을 따르는 자들이 눈에 보이는 비전이 아닌 하나님의 계시로 살아가기 원하신다. 이 책에 비전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겠지만 그것은 리더가 만들어낸 목표나 꿈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미래에 대해 계시하시고 약속하신 것을 지칭하는 말로 쓰일 것이다. 영적 리더를 움직이는 비전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야 한다.
R.W.베케트 주식회사의 CEO 존 베케트는 위기를 맞았을 때 독특한 해결책을 취했다. 아랍의 석유 수출 금지로 유가가 두 배로 뛰는 바람에 석유 난방제품 매출이 결정적 타격을 입자 경쟁자들은 매출 목표를 낮추고 인원을 감축하는 등 몸을 사리는 예상된 수순을 밟았다. 그러나 베케트는 먼저 자신이 속해 있던 기도 모임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며 회사를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가운데 그들 모두가 동일하게 느낀 것은, 수출 금지가 곧 해제될 것이므로 회사는 정상 운영을 계속할 뿐 아니라 오히려 매출 목표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인도는 통상적 사업 논리와 정반대였지만 결국 진가는 드러났다. 회사는 위기를 통해 전보다 강해졌고 업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두를 점하게 되었다.
비전의 동기화
위대한 비전이 사람들을 움직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리더 앞에 놓인 도전은 비전이 어떻게 추종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평소라면 결코 시도하지 않을 일들을 하게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의 상징으로 기억에 남을 이미지를 사용하신 것처럼 현명한 영적 리더라면 하나님이 조직에 주신 약속을 생생한 이미지로 표현할 것이다.
비전의 공유
리더의 역할은 비전을 정하거나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리더십의 열쇠는 다른 사람들을 주님과의 관계에서 자라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리더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대면하여 하나님이 친히 당신을 계시해 주시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비전이라면 그것이 한낱 야망에 찬 리더의 꿈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생생한 비전의 영상
리더는 자신이 보고 경험한 바를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바로 이미지와 이야기를 통해서인데, 하나님이 미래에 관해 주신 약속을 이미지로 그려보는 것은 유익한 작업이다. 리더가 믿는 하나님의 약속을 담은 이미지는 단순한 말의 힘보다 뛰어나다. 리더는 조직의 사명과 미래를 압축한 이미지를 사용해 효과적으로 비전을 전달할 수 있다.
스토리가 있는 비전
하나님이 하고 계신 일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또 한가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현명한 리더는 하나님이 과거에 일하셨고 현재 일하고 계심을 실화로 들려 주어야하는 것이다. 아울러 리더는 그것을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미래와 연결시켜야 한다. 영적 리더에게 모든 이야기는 하나님께로부터 와야 하며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
어느 캐나다 학교 이야기
1993년 리처드 블랙커비는 캐나다의 한 작은 신학교 총장이 되었다. 당시 학교는 학생들도 별로 없었고 자원도 빈약했고 시설도 모자랐다. 하지만 리처드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이 그 학교를 사용하여 캐나다와 전 세계에 그리스도의 영향을 미치기 원하신다고 느꼈다. 리처드가 학장으로 부임한 지 1년이 되었을 때, 텍사스의 윌턴이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윌턴은 자신이 아는 한 여성을 만나기만 하면 신학교에 강의실 건물을 신축할 상당한 기금이 마련될텐데 문제는 지난 3년간 그분과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두 사람이 함께 기도한 뒤 회의실을 나가려고 문을 여는 순간 마침 복도를 걸어오던 한 여성이 느닷없이 열린 문에 부딪쳐 넘어질 뻔했다. 윌턴이 방금 전 언급했던 바로 그 여성이었다. 그녀가 쾌척한 자금으로 건축사업은 무사히 착공되었다. 리처드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려주었다. 그것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이었다.
커뮤니케이션이 모든 것
의사소통에 약하면서 훌륭한 리더가 될 수는 없다. 그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다시 들려주고 하나님이 하고 계신 일을 전하며 하나님이 하겠다고 약속하신 일을 드러낸다. 리더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증거하는데 어떤 이야기는 몇 번이고 계속 되풀이할 필요가 있다. 조직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익히 알도록 말이다.
리더의 비전
비전은 조직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비전의 출처는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한 당신 자신의 계시다. 하나님의 계시는 대개 약속으로 진술되며 이미지로 생생히 표현된다. 리더가 이 비전을 제대로 전달할 경우 사람들도 하나님이 일하심을 알게 된다.
5장. 리더의 성품 : 남들이 따르고 싶은 삶
영향력의 부당한 출처
① 지위
과거시대 사람들은 대체로 권위나 영향력을 지위에 연결시켰다. 영적 리더는 영향력을 얻기 위해 지위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영적 리더십은 성령의 사역과 성품에 근거한다.
② 파워
힘으로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면 반항을 불러오게 돼 있다. 영적 독재야말로 가장 폭압적일 수 있다. 조직의 인사권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흔들어도 말이 안 되지만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사람들을 조종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③ 성격
사람들은 순전히 카리스마와 호감 가는 성격 때문에 리더를 따르는 경우가 많다. 리더 개인의 성격을 중심으로 세워진 조직은 리더의 기분에 좌우되기 쉬우며 리더가 조직을 떠날 때 불가피한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영향력의 정당한 출처
① 하나님의 인증
영적 리더의 정당성을 가리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하나님의 인증이다. 하나님이 진정한 영적 리더로 인정하시면 증거가 충분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첫째, 하나님은 리더와 그 조직에 대한 당신의 약속을 성취하신다. 둘째, 하나님은 당신이 인정하시는 리더의 명예를 때가 되면 반드시 회복해주신다. 셋째, 리더의 삶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임재로 사람들의 삶이 변화된다. 넷째, 다른 사람들도 리더 뒤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알아본다. 다섯째,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리더는 틀림없는 표지로 그리스도를 닮아 있다.
② 하나님과 만남
영적 리더십은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과 맺는 생생하고 친밀한 관계에서 비롯된다. 삶이 변화될 만큼 깊이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은 영적 리더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삶의 모든 영역을 철저히 당신께 드리는 자들을 지금도 찾고 계시며, 그들을 통해 세상에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신다.
③ 성품/온전함
사람들은 리더의 정직성을 비전, 능력, 업적, 감화력보다 더 중시한다. 또한 온전함이란 불시의 순간을 포함한 어떤 상황에서도 일관성 있는 행동을 뜻한다.
④ 성공의 이력
리더의 신빙성을 더하는 것으로 장기적으로 일관된 성공을 들 수 있다. 성공은 하나님이 한 리더를 복 주고 계시다는 징표일 수 있다. 리더에게는 작지만 성공적인 실적들이 필요하다.
⑤ 준비됨
훌륭한 리더는 사전 준비가 철저하다. 충분히 준비될 때 리더는 확신을 가지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대다수 위대한 리더들은 일에 뛰어들기 전 시간을 들여 자신을 충분히 준비했다.
리더의 성품
리더는 모두 정기적으로 리더십 검사를 실시해야 할 것이다. 영적 영향력은 저절로, 우연히, 쉽게 오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이 리더 안에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6장. 리더의 목표 : 사람들을 움직여 하나님 일을 하게 하라
리더는 목표를 위한 수단과 목표 자체를 혼동하고, 조직이 가고 있는 곳을 명확히 알지 못하면 제 역할을 다할 수 없다. 리더 역할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목표들을 살펴보자.
가치 없는 목표
① 결과 지향주의
피터 드러커는 리더십의 궁극적 척도를 ‘결과’라고 했다. 결과지향적 철학 때문에 목표설정은 리더가 자신의 성공을 측정함은 물론 사람들에게 동기부여하는 인기 있는 방식이 되었다.
② 완벽주의
탁월함을 매사에 완벽하다는 뜻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다. 하나님께 내 최선을 드리는 것과 완벽함을 드리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③ 더 크게 더 빨리 더 많이
서구 사회는 사이즈에 매혹당한다. 대형 교회나 대기업 리더는 자동으로 전문가로 통한다. 그러나 크다고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리더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성공을 평가해야 한다.
가치 있는 목표
① 영적 성숙으로 이끈다
영적 리더십의 궁극적 목표는 사람들을 현재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로 데려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매일 부딪치는 도전들 속에서 하나님의 활동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영적 리더의 책임이며, 사람들을 이런 지평까지 데려간 영적 리더가 리더 역할을 다한 것이다.
② 차기 리더를 키운다
리더들이 범하는 가장 비참한 실수 중 하나는 자기가 없으면 아무 일도 안되게 만드는 것이다. 주변에 리더들을 키우지 않은 대가로 나폴레옹은 제국을 몽땅 잃고 말았다. 많은 유명한 리더들이 여기에서 실패했다. 그렇다면 리더가 차기 리더를 키울 때 지켜야할 원리는 무엇일까? 첫째, 리더는 위임한다. 둘째, 리더는 실수를 허용한다. 셋째, 리더는 타인의 성공을 인정한다. 넷째, 리더는 격려하고 지원한다.
③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기독교 조직이든 세상 조직이든 리더의 최우선과제는 자기 조직을 이끄는 방식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당신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과 조직을 통해 세상에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7장. 리더의 영향 : 사람을 이끄는 방법
남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능력은 말할 것도 없이 리더십의 핵심 요건이다.
리더는 기도한다
리더의 기도생활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첫째, 영원한 의미를 지닌 것 치고 하나님 없이 되는 일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둘째, 영적 리더가 되려면 성령충만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기도의 보상으로 하나님의 지혜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넷째, 하나님이 전능하시기 때문에 기도해야 한다. 다섯째, 기도야말로 최선의 스트레스 해소책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당신 뜻을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리더는 열심히 일한다
리더의 일하는 습관은 조직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리더는 직원들에게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리더의 업무습관이 중요하다. 참된 리더십은 자기 희생에서 온다.
리더는 의사 소통에 능하다
대다수 리더들은 ‘언어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리더가 동일하게 탁월한 의사 소통 기술을 가진 것은 아니다. 훌륭한 의사 소통의 열쇠는 다변이 아니라 명확성이다.
리더는 섬긴다
기독교가 리더십 이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섬기는 리더십’일 것이다. 섬기는 리더십에는 몇 가지 핵심이 나타나 있다. 첫째, 섬기는 리더십은 자기 사람들을 향한 리더의 사랑에서 나온다. 둘째, 섬기는 리더십은 자신을 아는 것이다. 셋째, 예수님처럼 섬김의 대상을 아는 것이다.
리더는 언제나 긍정적이다
비관적 리더란 표현 자체가 모순이다. 좋은 유머감각은 훌륭한 리더십에 필수다. 한편, 영적 리더가 낙관적 태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무엇이든 말씀대로 이루신다는 믿음을 가진 리더에 갈급해 한다.
리더의 영향
영향력이란 위력 있는 것이기에 엄청난 책임이 뒤따른다. 그래서 리더가 도덕적 실패를 겪으면 그 파장이 크기 때문에 리더는 그만큼 책임도 크다.
8장. 리더의 결정
결정을 내리는 일은 리더의 기본적 책임이다. 사람들은 리더가 적시에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주목한다. 결정은 조직의 효율성을 결정하는 시금석이 된다.
리더는 결정을 내릴 때
리더의 결정 하나하나에는 조직은 물론 구성원들과 그 가족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력이 들어 있다. 영적 리더가 결정을 내릴 때 따라야 할 원리를 살펴보자.
① 성령의 인도를 구한다
성령은 기도를 통해 인도하신다. 성령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인도하신다. 성령은 다른 사람을 통해 인도하신다. 성령은 환경을 통해 인도하신다.
② 배우려는 자세를 갖는다
성령은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리더에게 그분의 뜻을 보여주시지만 리더의 현명한 결정에 중요한 부분은 배우려는 자세다.
③ 조직의 역사를 숙지한다
신임 리더가 가능한 임지에 도착하기 전에 해야할 일은 조직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④ 하나님께 책임을 진다
영적 리더는 공적 책임을, 권한과 영향력 남용의 유혹에 대한 예방책으로 오히려 반겨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의 모든 일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고할 날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리더는 결정을 내린 후
리더에게 있어 결정은 중요한 일이지만 아직 과정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남은 절반은 결정에 따라 사는 것이다.
① 결과를 받아들인다
해리 트루먼의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말 속에는 리더로서 결정의 결과를 회피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잘 반영돼 있다. 그는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거듭 이 철학의 모본을 보였다.
② 실수를 인정한다
성공은 중독성이 있어 쉽게 리더의 눈을 멀게 하고 자신의 단점을 보지 못하게 한다. 반면 실수는 리더의 부족한 부분을 드러내 준다.
③ 결정을 밀고 나간다
주도면밀하게 결정하는 리더라면 결정 후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은 훌륭한 리더십의 한 특성이다.
리더가 결정력을 향상시키려면
① 자신의 결정을 평가한다
리더는 남에게 위임할 수 없는 조직의 가장 중요한 결정만을 위해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
② 하나님과 관계를 가꾼다
영적 리더가 결정을 못 내려 고생할 때는 즉시 하나님과 관계를 점검해 봐야 한다.
③ 하나님의 비전을 구한다
하나님께 비전을 받은 리더는 결정의 근거가 될 방향 감각이 분명하다.
④ 하나님의 지혜를 구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리더들에게 당신의 지혜를 구하라 하신다(약 1:5).
9장. 리더의 일정 : 우선순위로 일하기
리더의 효율성은 시간관리 능력에 비례한다. 훌륭한 리더는 시간이 매우 소중함을 안다. 또 영적 리더는 하나님이 주신 시간의 분량이 그분의 맡기신 일을 수행하는 데 충분함을 안다.
리더가 시간을 주도하려면
다음 원리를 실천함으로써 리더는 시간의 노예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①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현명한 리더는 자신의 시간을 차지하려는 모든 사람의 욕망을 전부 채워줄 수 없음을 알기에, 성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활동과 프로젝트에 자신을 투자한다. 즉 하나님 뜻을 구한다.
② 거절한다
건강한 리더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많은 기회를 정중하게 거절한다.
③ 건강한 일상을 가꾼다
현명한 리더는 자기 삶의 일정을 세심히 하나님께 맡긴다.
④ 위임한다
리더의 업무량은 타인에게 업무를 위임할 수 있는 능력에 정비례한다.
⑤ 집중한다
처음부터 꼭 필요한 시간을 들여 집중하면 나중에 시간이 절약된다.
리더가 확보해야 할 시간
현명한 리더는 자신의 달력에 중요한 활동들을 미리 정해두고 최소한 아래의 삶의 영역에서 세심하고도 충분한 시간을 확보한다.
① 하나님과 충분한 시간
열쇠는 리더가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가가 아니라 그 시간이 하나님이 하실 말씀을 다 하실 수 있을 만큼 충분한가이다(사64:4).
② 가족들과 알찬 시간
똑똑한 리더는 가족들과 꾸준히 알찬 시간을 보낸다.
③ 건강관리에 적당한 시간
리더가 건강관리에 시간을 내는 것은 실제적이다.
④ 사람에게 전략적인 시간
리더는 일부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시간을 투자할 때 훨씬 큰 결과를 낳게 된다.
리더가 시간을 낭비하는 이유
훌륭한 리더십에는 시간을 최대한 선용하는 것뿐 아니라 시간 낭비요인을 피하는 것도 포함된다.
① 신기술
신기술은 조직의 필수지만 현명한 리더는 신제품 활용에 들이는 시간을 잠재적 효율성과 비교해 따져볼 줄 안다.
② 인력부족
직원을 적게 두는 리더는 결국 자기 시간을 다른 일에 내주게 된다.
③ 잡담
잡담은 가장 흔한 시간 낭비 요인이다.
④ 과도한 취미생활
취미생활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서적 건강을 회복시키는 건전하고 고마운 출구이다. 똑똑한 리더는 취미의 유익만 건진다. 휴식과 운동을 가족과 알찬 시간으로 연계시켜도 좋다.
⑤ 정리부족
정리를 잘하는 리더는 일정표를 늘 정확하게 새로 다듬어 과도한 업무 수락을 피한다. 현명한 리더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효과적인 기록 관리 시스템을 도입한다.
리더는 자투리 시간을 잘 사용한다
왜 어떤 리더는 성취하는 것이 훨씬 많을까? 물론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한가지 요인은 자투리 시간의 활용이다. 훌륭한 리더는 자투리 시간들을 놓치지 않는다.
리더의 일정
리더의 일정은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리더 자신이 정한다. 현명한 리더는 자신의 일정에서 불필요한 일들을 꾸준히 가지치기하며, 자신의 삶이 의미 있도록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한다.
10장. 리더의 함정
해마다 수많은 리더들이 경솔하고 미련한 선택으로 자신의 직업과 조직과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넣고 있다. 영적 리더를 실패하게 만드는 가장 흔한 열 가지 함정을 살펴보자.
교만
교만은 리더에게 최악의 적이라 할 수 있다. 교만은 살며시 기어들어, 파멸로 몰아넣는다.
① 남의 공로를 가로채다
교만은 리더를 유혹해 조직이 성공한 공로를 혼자 독식하게 한다.
② 배우려 들지 않다
교만은 리더의 사고를 닫아 버린다. 배우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③ 자기 힘으로 다 된다?
자신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들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④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잃다
아랫사람들을 더 이상 불쌍히 여기지 않으며, 이런 매정한 리더들은 결국 몰락한다.
⑤ 넘어지기 쉽다
교만은‘넘어짐의 앞잡이’(잠16:18)라고 잠언 기자는 경고한다.
리더십은 귀한 소명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특권이다. 리더는 따르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기회와 그럴 수 있는 영향력을 함께 받았다. 그러나 조직을 잘되게 하려는 열정을 잃고 대신 자신이 얻을 것에만 한눈을 팔게 되면 더 이상 참된 리더가 아니다. 리더의 삶에 교만이 뿌리내린 한 가지 확실한 징표는 아랫사람들을 더 이상 불쌍히 여기지 않는 것이다. 리더가 아랫사람들의 고생에 무심하다면 그것은 교만으로 마음이 둔해졌다는 징표이다. 직원들에게는 재정 삭감과 고통 분담을 요구하면서 자신은 계속 알짜배기 혜택을 고루 누린다면 그것은 리더십의 권위를 잃는 것이다. 자신의 사사로운 업적에 매달리느라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팽개치는 리더는 리더십의 소명이 합당치 못한 자다.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농부들에게 빵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럼 케이크를 먹게 하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역사는 이런 매정한 리더들이 결국 몰락하는 것을 보여 준다.
성적인 죄
① 책임 감시자를 두라
적어도 두 명의 책임감시자 친구를 미리 확보해두어 그들에게 자신의 도덕적 순결을 꾸준히 물을 수 있는 재량을 준다.
② 자신의 경고에 귀 기울이라
영적 리더는 성적인 죄가 무엇이며 그 결과가 어떤지 아는 자신의 경고를 들어야 한다.
③ 결과를 생각하라
현명한 리더는 성적인 죄를 범할 경우 뒤따를 결과를 늘 심사숙고한다.
④ 건강한 습관을 기르라
신중한 리더는 자신을 성적 유혹에서 지키기 위해 구체적 방안을 세운다.
⑤ 기도하며 또 기도를 부탁하라
가장 실제적 조치는 자신을 흠 없이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냉소
리더는 부정직한 사람, 게으른 사람, 무능한 사람들을 다루는 일로 냉소적이 될 소지가 있다. 하지만 환경과 달리 마음의 태도는 전적으로 자신의 통제 하에 있다.
탐욕
부와 소유에 대한 욕망은 영적 리더를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다.
나태
위대한 리더는 항상 더 나은 리더가 되는 길을 배운다. 배움과 변화에 대한 각오는 리더십 능력을 높인다. 드프리에 따르면 리더란 뭔가 배움으로 변화에 대처하는 사람이다.
과민성
비판을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은 리더십을 넘보지 말 일이다.
영적 무기력
분주한 일상 때문에 그리스도와 만남을 뒷전으로 밀쳐두는 리더는 자신의 생명선을 스스로 잘라내는 것이다. 우선순위가 어긋나 있으므로 그들의 삶은 무의미하다.
가정소홀
리더는 리더십의 책임과 가정에 대한 헌신 사이에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행정 부주의
리더는 조직의 방향과 비전에 온통 집중한 나머지 실제 그 목적지에 도달하는 조직을 만드는 데는 소홀할 수 있다. 리더는 조직을 위해 갈등 해결과 의사소통에 능해야 한다.
장기집권
리더의 약점은 조직의 대표라는 직위에 따르는 신망과 영향력을 흠모한 결과, 직위이양을 꺼리곤 한다. 영적 리더는 조직에 대한 자신의 기여가 끝나는 시점을 분별한다.
리더의 함정을 피하라
리더에게 실패와 불명예를 안겨줄 수 있는 함정을 피하는 길은 그런 함정에 대한 건강한 인식을 키우는 것이다. 세심한 노력과 훌륭한 계획, 또 간절한 기도가 있다면 리더는 리더십을 해치거나 사생활을 위협할 수 있는 함정에 굴복하지 않아도 된다.
11장. 리더의 보상
리더십의 보상으로 가장 확실하고 가시적인 것은 돈이다. 그리고 두 번째 보상이 따르는데 바로 권력이다. 세 번째 눈에 띄는 리더십의 보상은 명예다.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사람들을 이끌 때 기대되는 의미 있는 보상은 다음과 같다.
영적 보상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한 영적 리더는 하나님의 인정과 소명의 성취라는 보상을 기대할 수 있다.
① 하나님의 인정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가 살아온 삶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 때의 감격, 그것을 따를 수 있는 보상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스도에 순종했기에, 나를 반기는 천국과 보상이 기다리고 있음을 아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은 물론 리더들에게 가장 값진 보상이다.
② 소명의 성취
경건한 리더십에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목표를 이룬 데서 오는 만족감이 따른다. 하나님은 몇몇 사람들을 리더로서 당신을 섬기도록 부르신다(엡4:11). 리더 자리로 부르신 하나님은 그들을 또한 리더로 빚으신다.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삶보다 더 보람된 것은 없다.
온전함
먼저 언행이 일치된 참되고 진실한 성품에는 많은 내재적 보상이 따른다. 온전한 삶에 따르는 네 가지 보상을 살펴보자.
① 가정에서 온전함
리더의 참모습을 알고 싶다면 가족들에게 물어보라. 성품이 온전한 리더는 직장에서처럼 가정을 이끄는 데도 목적이 분명하다.
② 일터에서 온전함
온전한 성품으로 직장 일에 임하는 자에게는 큰 보상이 있다. 조직을 이끄는 영적 리더가 연봉을 높이거나 사람들의 칭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이다.
③ 관계에서 온전함
목표달성에 매진하면서도 참된 리더는 타인을 소중히 대하고 관계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④ 스스로에 온전함
품위와 도덕과 신앙원리를 어기면 스스로의 온전함을 잃게 된다.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는 자에게 삶은 커다란 만족을 선사한다.
기여라는 보상
영적 리더가 자신을 도구로 내어드려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주님을 본받게 하는 것은(롬 8:29)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보람이다.
① 사람에 대한 기여
위대한 리더는 주변 사람들까지 훌륭하게 만든다. 리더는 자신의 성품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② 조직에 대한 기여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최선책은 조직에 투자하는 것이다. 리더의 만족은 조직이 처음보다 강해질 때이다.
③ 후임자에 대한 기여
중요하면서도 흔히 간과되는 리더의 책임으로 후임자가 있다. 리더의 참 기쁨은 신중히 단련해온 후임자를 통해 자신의 일이 보존되고 지속될 때이다.
관계의 보상
리더가 누릴 수 있는 많은 보상 중 관계에서 오는 기쁨을 빼놓을 수 없다.
① 가족
가정에 대한 리더십의 보상은 수고한 노력에 정비례한다. 가족들이 순전함을 지키며 하나님을 섬길 때 리더에게는 기쁨과 만족이라는 풍성한 배당금이 돌아온다.
② 친구
리더십은 직위가 아니라 관계다. 친밀한 우정은 리더가 바랄 수 있는 큰 보상이다.
영향력의 보상
리더에게 큰 만족을 줄 수 있는 보상으로 영향력은 리더의 직책이 아니라 사람 됨됨이에 근거한 것이다. 긍정적이고 지속적인 영향력은 리더십을 시작 못지않게 잘 마칠 때 주어진다.
리더의 보상을 바라라
영적 리더십은 고귀한 일이지만 하나님이 맡겨주셔야만 가능하다. 사람들을 움직여 하나님 뜻을 행하게 하는 것은 감격스런 일이다. 훌륭한 리더십은 고된 수고와 꾸준한 배움의 노력이 빚어낸 산물이다. 궁극적으로 영적 리더십은 성령의 사역 결과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리더가 되기 위한 노력에서 하나님과 깊고 인격적인 관계를 가꾸는 것은 필수다.
하나님이 리더를 키우시는 방식은 순차적이다. 만일 우리가 그냥 지나쳐 온 단계가 있다면 반드시 우리를 다시 데려가신다. 그 곳에서 다시 우리를 만지시고 그 다음 리더로 키우신다. 포기하지 말라! 인내심을 가지라. 내 성품을 빚으시도록 하나님께 충분한 시간을 드리라. 하나님이 나를 리더로 부르셨다면 당신이 원하시는 리더로 키우실 능력도 충분하다. 나는 그저 기꺼이 그분께 순종하며 명하시는 대로 행하기만 하면 된다
디모데 전서를 통해 본 교사의 사명
배태현 목사
교회학교의 어린이들이 점점 줄고 있다고 다들 아우성입니다. 잃어버리지 않고 유지만 해도 성공했다고 평가된다면 문제는 심각합니다. 이런 저런 문제의 분석과 대책이 제시되지만 눈에 뜨이는 획기적인 돌파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조심스럽게 '교회학교의 위기'라는 말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지금쯤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교사로서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성경을 통해서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신약성경 가운데 디모데 전·후서는 「목회서신」으로 분류됩니다. 그 이유는 에베소 교회를 맡아서 목회하던 디모데에게 사도 바울이 서신을 통해 목회적 권면과 격려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 때 직접 개척한 교회였고, 약 2년 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목회했던 곳이기 때문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소중한 교회를 바울 자신이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디모데라고 하는 젊은 목회자에게 맡겼습니다. 아직은 미숙한 디모데를 염려한 바울이 그에게 목회적 원리들과 목회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의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오늘날 교사인 우리가 주님께서 맡겨주신 양들을 먹이고 돌보는 작은 목회자이고, 우리가 담당하는 반이야말로 우리 자신의 목회의 현장이며, 우리 자신 역시 어떤 의미에서 작은 디모데라고 한다면 이 디모데서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성경이 될 것입니다. 목회자로서의 교사 자신을 발견하고 귀중한 목회적 원리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교사는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직분(딤전 1:1,2)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에 대한 도전에 맞서기 위해 확고한 소명감이 필요했으며, 편지마다 자신은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가 되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로마서 1:1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고린도전서 1:1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 갈라디아서 1:1에는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서 1:1에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골로새서 1:1에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라고 계속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사도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28에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한 것처럼 교사는 하나님이 교회 안에 직접 세우신 직분입니다. 교회란 하나님이 피로 값을 주고 사신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구석구석 그리스도의 피가 묻어 있습니다. 따라서 교사는 거룩한 피가 묻어 있는 직분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교사로 부르셨다고 하는 천직(calling)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결코 중단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교사로 부르셨다고 하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이 자리는 거룩한 피로 세우신 자리라고 하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조금 섭섭하게 한다고 실망하고, 힘들다고 그만두고, 다른 교사들에게 상처받는다고 낙심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부르신 천직이라고 하는 확신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복음도 증거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요, 오히려 알아주지도 않는 곳에서 힘들게 수고만 하는 가엾은 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교사로 부르셨다는 분명한 소명감이 교사의 영적인 권위이고 사람들을 향한 담대함입니다.
교사는 복음을 위하여 세움(딤전 1:3∼11)
교사는 율법을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복음을 위하여 세움을 받은 자입니다. 바울은 디모데 후서 1:11에서도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고 말했습니다. 복음은 교회 교육의 절대적인 구심력입니다. 세상을 끌어들일 수 있는 힘과 능력이 복음에서 나옵니다. 복음과 만날 때 참된 변화가 있습니다. 교회 교육의 목적은 흥미를 유발하거나 어줍잖은 재미거리를 제공하는데 있지 않고, 어린이들이 복음과 만나서 변화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매주일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처럼 아이들이 신비하게 여길 이야기만 전해서 예수님을 요술쟁이로 만드는 교사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고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관념적인 이야기만 실컷 늘어놓는 교사들도 있습니다. 세상과 구별된다는 의미를 세상은 그저 악한 것이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하는 교사들도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에 관해서 능통한 지식이 있어서 성경은 잘 가르쳐도, 복음이 무엇인지를 일목요연하게 말하지 못하는 교사들도 있습니다. 아니면 성경에 관해서 읽지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면서 마치 잘 읽고, 잘 알고, 잘 깨닫고 있는 것처럼 자신까지 속이고 가르치는 교사들도 있습니다. 그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재미있게 들려주거나 비싼 간식을 사주는 것으로 교사의 의무를 다했다고 만족하는 교사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죄송하지만 바울이 지적했던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하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가? '용서'에 있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을 용서하신 주님은 용서하셨습니다. 율법으로는 마땅히 돌에 맞아 죽어야하는 여인을 예수님은 돌을 던지는 대신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용서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율법보다 더 위대한 법은 은총과 용서의 법입니다. 우리는 용서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사는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용서받은 후의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 대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용서의 기쁨과 감격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것만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보다 세상을 더 많이 알면 세상 이야기를 더 많이 할 것이고, 예수를 더 많이 알면 예수님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안다면 복음을 전하겠지만 모르면 윤리나 도덕을 강의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게 용서의 기쁨과 확신이 있으면 그 기쁨을 전하겠지만 그것이 없으면 율법을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와 복음과 용서의 감격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사의 자기 이해(딤전 1:12∼17)
1. "나는 죄인이다"
교사로서 나는 죄인이었으며 내가 가르치는 자들도 동일한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를 교사로 세우신 것은 나 같은 죄인도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나를 교사가 되게 하신 것은 나는 이미 그 예수를 통하여 그 죄를 사함 받았기 때문에 나 같은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과 어떻게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느냐를 많은 사람들에게 본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16절에 기록된 '본'이라고 하는 것은 '모방'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나를 모방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 모방의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2. "나를 능하게 하신 분은 그리스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0에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겸손한 고백과 함께 빌립보서 4:13에서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교사는 자신의 지식이나 자격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사로서 느끼는 두려움과 주저함은 그리스도가 나를 능하게 하심을 믿을 때에 극복될 수 있습니다. 연말이나 연초에 교사가 부족해서 마땅한 분들에게 교사가 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하면 대개는 "저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능력이 없습니다" "저는 너무 부족합니다"라는 이유로 사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학교의 교사는 지식이나 자격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위로하기 위해서 매번 되풀이하면서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지극히 성경적인 말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도 어느 한 사람 그럴듯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거의가 어부였고, 하나같이 변변치 못한 그렇고 그런 하류층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은 다음에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고, 무지랭이 같은 그들을 통해서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졌으며, 세계 역사를 바꾸었던 것을 본다. 나를 나되게 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지 내가 아닙니다.
3. "나를 충성 되이 여기셨다"
교사는 철저하게 섬기고 봉사하고 충성하는 직분입니다. 이런 분명한 자기 이해가 없으면 실망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교사가 되었다는 것은 사람이 인정하기 전에 이미 주님께서 나를 충성 되다고, 신뢰할만하다고 인정하셨다는 말입니다. 목사인 저도 누가 나를 알아주고 칭찬하고 인정해 주어야 기분이 좋습니다. 남이 나를 모른 척 하고 내 공로를 몰라주면 은근히 화가 납니다. 남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 상하는 일입니까? 대개 주님이 인정해 주시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뭔가 눈에 보이는 상급이나 칭찬이나 인정이 있어야만 만족합니다. 사도 바울이 만약 사람이 알아주기만을 바랬다면 그는 선교에 헌신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서 몰려드는 성도들을 자기 사람이나 만들면서 편하게 목회 할 수 있으니까요. 마치 신처럼 추앙 받으면서 명예와 권위를 가질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미련을 가차없이 다 버리고 떠났습니다. 교사는 주님이 맡기신 직분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한 말씀이 더 붙어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충성 되이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신뢰할만하다고 인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교사가 된 분들은 그만큼 이미 주님께서 인정하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나를 인정하고, 사람이 나를 대접하고, 사람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교사의 직분을 맡기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충성 되이 보셔서 직분을 맡기신 것입니다. 이런 확신이 없으면 우린 주일마다 실망하고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열두 번도 더 그만 두었을 것입니다.
교사는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진다(딤전 4:1∼5)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레위기 11:45에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라고 말씀했고, 베드로 사도도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1:15)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오직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 말씀은 거울과 같아서 내 자신의 죄를 비추어 보게 하고 돌이키게 하며 의로운 길을 가르쳐 줍니다. 그렇게 말씀을 받은 자가 기도할 수 있으며, 그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교사 자신의 영적인 힘과 능력은 거룩함을 좇는 말씀과 기도 곧 경건에 이르는 연습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해진다고 했는데 왜 그렇습니까? 해당되는 성경구절을 모두 풀어서 말씀드릴 테니까 잘 들어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 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불같이 타오르고 망치처럼 바위라도 부숩니다. 우리의 죄를 완전히 불태우고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을 깨뜨립니다.(렘 23:29) 우리는 이런 약속의 말씀을 받았기에 우리의 몸과 심령을 조금도 더럽히지 말고 깨끗하게 지켜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활을 하며 완전히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고후 7:1) 우리가 거듭난 것은 썩어 없어질 씨앗에서 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앗 곧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났습니다.(벧전 1:23)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은 우리 발의 등이요 우리 길의 빛이 됩니다.(시 119:105) 하나님의 말씀은 죄를 깨닫게 하고 책망하시고 자백하게 하고 거듭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의로운 길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는 길인가를 보여주고 비춰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해 집니다. 마치 여자들이 손거울을 들고 다니면서 화장 지워진 곳을 없는지, 이빨 사이에 음식이 끼진 않았는지, 머리가 헝클어지지 않았는지 살피고 바로잡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날마다 우리의 삶의 거울이 되어 바르지 못한 곳을 고치고 무엇인 바른 길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 삶의 방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늘 읽지 않는 사람은 마치 머리가 다 헝클어지고, 얼굴에 때가 묻고 지저분한 모습을 하고도 모른 채 태연하게 다니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래도 말씀의 위력이 안 믿어지는 분을 위해서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김 선생님! 잠시 일어나 주시겠어요"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제가 김 선생님을 움직이게 한 것은 오직 말이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역사하는 힘이 크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기도로 거룩해 진다고 했습니다. 기도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신자의 삶에 있어서 너무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에 근거한다면 삶 전체가 기도라고 하는 편이 옳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설교나 전도하는 법을 가르치신 적은 없지만 기도하는 법은 일찍부터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께 받는 것이지만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받은 사람이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말씀을 받은 사람이 기도할 수 있지 아무 것도 받지도 못한 사람이 기도할 꺼리가 뭐가 있겠습니까? 자신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데 무슨 기도할 마음이 생길 리가 있습니까?
무엇을 구해야할지 알지 못하는데 무엇을 구할 수 있습니까? 무엇을 찾아야할지 알지 못하는데 무엇을 찾을 수 있습니까? 성경을 읽지 않으면서 제대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힌 모험입니다. 말씀을 모르면 열심히 기도는 해도 잘못 구하고, 정욕으로 구하고,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 것을 구하기 때문에 당연히 응답이 없습니다. 한가지 더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한 기도라는 단어는 2:1절에서 사용되었던 '도고'의 기도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중보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이 말은 기도로 거룩해진다고 하는 것이 단지 내가 내 자신이 거룩하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해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기도로 거룩해진다는 것은 나를 거룩하게 해달라고 특별히 구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기도와 간구와 도고의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열심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하나님 뜻에 나 자신을 굴복시키며 기도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결과라는 말입니다.
교사로서 자신을 잘 지켜야 한다(딤전 5:17∼25)
바울은 22절에서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치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고 했다. 이 말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네 자신을 지키는 일이다"라는 뜻입니다. 교사에게 있어서 남을 가르치고 권면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먼저 자신을 지키는 일입니다. 도중에 한 눈 팔다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직분을 잃어버리지 말고 잘 지켜야 합니다. 교사인 우리도 남을 가르치고 권하지만 정작 나 자신을 순결하게 지키지 못한다면 그 모든 수고가 헛것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이런 두려운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약3:1)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딤후 1:14)고 부탁을 하셨는데 저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아름다운 것들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한 눈을 팔았기 때문입니다. 기왕에 주신 것을 온전하게, 순결하게 지켰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기왕에 드릴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렸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지키지 못할 때가 더 많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멸망했는가? 그 답이 사사기 2:6∼10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망한 이유는 왕을 잘못 세웠기 때문도 아니고, 가뭄과 흉년이 찾아왔기 때문도 아니고, 전염병이 돌았기 때문도 아니고, 군사력이 약해서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처음에 여호수아의 지휘를 받고 가나안을 정복했던 세대들이 그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가르치지 않았다는데 있습니다. 가르치지 않아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알지 못하니까 당연히 다른 이방 민족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 세대가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버리게 된 원인은 바로 그 전 세대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그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을 가르치지 못한 것은 그들 자신의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 그것은 분명 하나님 앞에서 죄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선교 초기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한국 교회는 놀랍게 성장했습니다. 장년만 성장한 것이 아닙니다. 초기부터 어린이들에 대한 전도와 신앙 교육에 열정적으로 힘을 쏟았습니다. 그렇게 양육된 아이들이 자라서 헌신된 교사가 되고 또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 그들이 어른이 되기를 거듭하면서 교회는 계속 성장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성장에 있어서 교회학교는 결정적인 공헌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교회마다 훌륭한 교육관과 좋은 시설과 교사들이 있지만 어린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열정과 교회의 관심은 그 때보다 오히려 더 식어버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예전 같지 않다"고 염려하거나 비판할 줄은 알지만 누구 하나 교회학교와 교육을 위해 자신을 드리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당장은 장년이 있으니까 교회가 빈 것 같지 않지만 오늘의 세대가 모두 가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오면 그 때는 이 땅의 교회도 텅 비어서 창고가 되거나 맥주집으로 팔려갈 지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일들을 힘써서 가르치지 않는다면 우리 다음 세대는 쾌락과 정욕의 우상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사들의 어깨에는 교회의 미래가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참된 교사상
1. 배우는 자인 교사
이런 말이 있습니다. " 오늘 성장하기를 멈춘다면 내일 가르치기를 중단한 것이다. " 참된 교사는 먼저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참된 교사는 학생중에 한 사람이라는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참된 교사는 성장하고 변화하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이 둘째 서신 마지막 절에서 "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 (벧후 3 : 18) 훌륭한 교사는 3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
① Faithful(신실하고)
② Available(쓸모있고)
③ Teachable(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것)
하워드 핸드릭스의 이야기
시카고에 있는 무디기념교회(Moody Memorial Church)에서 주일학교 집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미시간 어퍼반도에서 온 83세의 노할머니 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주일학교 학생이 모두 65명인 교회에서 13명의 중등부를 맡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녀의 가르침을 받았던 85명의 학생들이 지금은 모두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2 : 52절에 예수님의 성장과정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성장의 네가지 면
① 지적인 성장 - " 지혜 "
② 육체적 성장 - " 키 "
③ 영적인 성장 - " 하나님의 은혜 "
④ 사회적, 정서적 성장 - " 사람들에게 사랑 "
2. 변화하는 자인 교사
참된 교사는 자신의 성장과 함께 변화하는 것입니다. 효과적인 가르침은 오직 변화된 인격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자신이 변화될수록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더욱 변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될 것입니다.
변화에는 2가지 원리가 있다.
첫째 성장은 변화와 동등하다(Growth equals change)
둘째 변화는 성장을 위해 지불하는 값이다(Change is the pricewe pay for growth)
변화에 필요한 3가지 필수적인 자세
맥스웰(John Maxwell) - Senior Pastor of skyline wesleyan church, San Diege
1. 미래는 과거와 같지 않다.
2. 미래는 자신이 기대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변화는 너무 빨라서 우리가 계획하는 것이 변화가 아닌 것으로 판명하게 된다. Maxwell는 " 우리는 변화를 친구처럼 포용해야 한다. "(We must embrace change as a friend)라고 했습니다.
3. 변화하는 속도가 과거보다 더욱 빠르다.
오늘날 대학생들은 죽기 전에 세번 다른 직업을 갖게 될 것이고, 은퇴하기 전에는 30곳의 다른 회사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100년전에는 미국사람의 50%가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단지 2%만이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자신이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자신의 변화를 위해 문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래지 괍(Randy Pope)은 " 변화는 우리의 적이 아니고 우리 의 친구이다, "(Change is our friend, not our foe) 맥인토쉬(Michael Kirk MacIntosh)는 " 변화란 나의 중간이름이다. 선천적으로 나는 변화를 좋아하낟. "(Change is my middle name. Bynature I like change)교사가 변화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구와독서가 필요하고 계속적인 교육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배움에 대한 가장 단순한 정의는 " 배우는 것은 변화 "라는 것입니다. 배움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사고의 변화요, 느낌의 변화이며, 행위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배운다는 것은 지, 정, 의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ㅓ을 뜻하빈다. 르러므로 배우면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8 : 29절에서 "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본받게 "라는 말은 혁명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 예수 그리스도의 주형에 부어지도록 예정되었다 "는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도록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로마서 12 : 2절에서 바울은 똑같은 단어를 다시 사용했습니다.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필립스( J. B, Phillips)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 너희 주위에 있는 세상으로 하여금 너희를 세상의 주형속에 몰아넣지 못하게 하라 " 이 두가지를 좋합하면 " 모든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틀에 부어지도록 예정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으로 하여금 우리는 세상의 틀에 몰아넣지 못하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두 과정은 완전히 정반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세상으로 하여금 우리를 사로잡아 그 틀속에 몰아 넣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 그 방법은 바로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형됨으로서 세상의 모습에 휩쓸려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때의 변화란 외부로 부터의 변화가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변화를 가르킵니다. "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그리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 여기서 말하는 변화는 근본적인 변화를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들의 형상으로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3. 격려자로서 교사
존밀 턴 그레고리는 " 교사의 참된 기능은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배우도록 최선의 조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참된 가르침은 지식을 전해 주는 것만이 아니라 학생들로 하여금 지식을 얻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이런면에서 가장 적게 가르치는 사람이 가장 잘 가르치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 "라고 했습니다. 참된 교사는 주로 격려하는 자요,동기유발자 입니다. 그는 연주자가 아니라 연주자들을 자극하고 지도하는 지휘자일 뿐입니다. 반면에 학습자는 주로 연구자이며 발견자요 실행자입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교사는 자신이 하는 일에 열중하는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하고 있는 것에 관심을 갖습니다.
참된 교사는 격려자로서 3가지 교육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목표는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연속적으로 변화시키려면 그의 행위가 아니라 그의 생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머리를 넓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목푠느 학생들에게 배우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배우는 것은 언제나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것은 평생동안 계속 진행됩니다. 우리는 사는 동안 계속 배웁니다. 그리고 배우고 있는 동안 살아있는 것입니다. 오늘 배우는 것을 중단해 보십시요. 그러면 내일 사는 것을중단하는것 것이 될 것입니다.
셋째 목표는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참된 교사는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자입니다. 만약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로 있어야 하는 교육이라면 그 학생을 교육상의 불구자 혹은 교육학상의 기형아나 환자로 만들게 될 것 입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4가지 기초능력을 가르쳐야 합니다.
①읽기 ② 쓰기 ③ 듣기 ④ 말하기
4. 전달자로서 교사
교사는 학생들에게 진리를 전달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교사는 학생들에게 좋은 의사전달자가 되어야 합니다. 의사전달 (Comunication)이라는 말은 " 공통의 ", " 공공의 ", " 일반적인 " 등의 의미가 있는 라틴어 컴뮤니스(Communis)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좋은 의사 전달자인 교사가 되려면
첫째로 공통점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접촉점(Contact point)입니다.
둘째는 의사전달의 장벽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의사전달은 인격과 인격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입니다. 다리가 무너지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셋째는 좋은 전달방법을 가져야 합니다. 교사는 개념이나 느낌이나 행동을 언어를 통해서 전달하는데 이 때에슨 두가지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 하나가 준비이고, 다른 하나는 표현력입니다. 준비는 학생에게 가장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하게 해 주는 최상의 방편입니다. 표현력은 교사가 말하고 있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장 적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말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의사전달의 본질을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라는 세가지 개념으로 요약하였습니다. 여기에 에토스는 인격을, 파토스는 긍휼을, 로고스는 내용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에토스는 선생이 신뢰성을 확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뢰받는 인격의 교사가 가장 큰 교육의 힘을 가집니다. 파토스는 교사가 학생들의 마음속에 있는 열정을 어떻게 불러 일으키며, 그들의 감정을 어떤 방향으로 유도해야 하는가에 관계된 것입니ㅏ. 로고스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해야 하는 내용을 의미합니다. 어것은 학생들에게 행동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고, 그들의 행동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이성적인가를 알게해 주는 것입니다.
첫째 교사의 인격은 배우는 자에게 신뢰를 가져옵니다.
둘째 학생들의 동기를 유발하는 것은 긍휼입니다. 교사들의 사랑이 학생들에게 가장 큰 학습의 동기유발이 됩니다.
셋째 학생들이 무엇을 인식하는가 하는 것은 당신이 가르치는 내용에 달려있습니다.
5. 영적인 지도자로서 교사
교사는 영적인 것을 다루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교사는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에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양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눅 24 : 49)고 명령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기전엔 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없는 교사는 생명을 살리는 서이 아니라 생명을 죽입니다. 어떻게 해야 성령님의 권능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합니다. 말씀의 교사, 기도의 교사가 성령님의 도구가 되어 사람을 살리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습니다.(고전 4 : 20). 성공은 인간의 지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에 있습니다.
끝맺는 말
예수님은 "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 (마 9 : 17)고 말씀하셨습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변하지 않은 진리로 반석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될때 이세대의 폭풍을 넉넉히 이기는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교회학교 부흥전략
1.시작하는 말
부흥과 성장이란 단어는 모든 교회의 소망이요,모든 교사들의 기도제목일 것이다.
문제는 최근 우리 교회가 처한 현실은 도시화와 산업화의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세상문화는 정보화 시대를 맞아 급속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반면 교회는 밖으로부터 밀려오는 세속문화를 압도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현상은 많은 교회학교의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으며 우리 아이들은 세상의 놀이 문화에 더 많이 흥미를 느끼고 있으며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문제점은 교회가 사회교육보다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고 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질적 성숙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어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끌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지 않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론 나름대로 다른 이유들을 찾을 수 있겠지만 우리 교회가 계속적으로 부흥하고 성장할려면 여기에 대한 바른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떻게 하면 우리교회학교가 이러한 상황을 딛고 부흥하며 성장할 수 있는 가를 함께 생각해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2.교사가 이루어야 할 사명을 확인하라.
교회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본질을 잊고 그냥 행사나 프로그램 위주로 교회학교가 끌려갈 때가 많음을 경험하게 되는데 교사들이 교회교육의 궁극적인 이루어야할 목표를 확인함으로 교사들의 헌신의 방향을 점검했으면 한다. 우리 교회가 단순하게 어린이들 숫자를 늘리거나 흥미있는 프로그램으로 어린이들을 만족시키자는 것도 아닐 것이다. 특히 여름철이 되면 많은 교육비를 여름성경학교나 수련회를 위해서 과다 지출하게 되는데 교회가 한번쯤 이문제를 고려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왜냐하면 교회교육적 사명에서 우리의 이루어야할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을 위해서 여러 직분을 세우셨다.. "그가 혹은 사도로,혹은 선지자로,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엡4:11) 이처럼 우리를 교사로 세우신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어린양들을 먹이시고 치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세우신 일군들인 것이다. 주님은 우리 교사들을 통하여 이루시고자하는 구체적 목표가 무엇인가를 3가지로 말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어린이로 하여금 온전한 인격이 되도록 양육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이시대에서 우리 어린이들을 어떻게 바르게 세상의 풍류에 휩쓸리지 않고 바른 인격으로 자라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바른 지침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깨달아야 한다. 교사는 우리 어린이들의 인격이 바르고 곱게 자랄 수 있도록을 위해서 세우신 주님의 종들인 것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바른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바른 도덕성과 책임있는 어린이로 자랄 수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직 입시위주의 치우친 교육 때문에 얼마나 이 사회에 문제로 돌출하고 있는가를 보라. 바로 여기에 교회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교사들이 교회 교육을 통해서 청소년들의 바른 모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는,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성숙한 인격으로 어린 양들을 기르는 목자인 것이다.(엡4:12)
한인격 한인격이 말씀안에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잘 길들여진 봉사자로 양육하는데 있는 것이다. 도시화와 핵가족화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기질로 자랄 수 밖에 없는 우리 아이들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아이들로 성숙하게 이끄는 일을 교사가 맡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세상속에서 이웃을 위해 사회를 위해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가도록 바른 삶의 훈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교사의 교육적 사명이 얼마나 크고 중대한 것인지 모른다.
세째로,예수님을 닮아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엡4:12-13)
매주 아이들에게 가르쳐지는 말씀이 어린이들의 삶을 지배하고 변화시킬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과 믿는 일이 하나로 통합되는 체험을 통해서 주님의 인격을 닮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사는 먼저 복음안에서 자신이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날마다 신앙사건으로 말씀이 경험되고 적용되어 주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인격이 성장하고 자라나야 우리 어린이들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교사가 교회교육의 바른 목표를 인식하고 어린이들을 지도하고 가르칠 때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며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말려 요동치 않게 하려함이니라(엡4:14)"
위에서 언급한 것같이 우리 교사들이 교사로서 이루어야 할 목표를 분명히 할 때 교회는 유기체임으로 부흥하게 될 것이며 성숙하게 될 것이다.
3.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원리를 적용하라.
교회학교 교사들은 신앙의 개인차가 많음을 볼 수 있다.
어떤 교사는 많은 교사의 경험과 믿음이 성숙한 교사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교사도 끼게 마련이다. 교회학교는 세상의 교육원리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주님이 핏값으로 세우신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섬기는 교사들의 영적인 자질과 성숙에 그 교회의 성장은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 교사들이 주님의 양들을 먹이고 치는 일에 아래와 같은 몇가지 원리를 적용한다면 더 큰 성장과 부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믿음의 원리를 가진 교사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상주시는 이 임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믿음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의 모든 일을 수행하고 봉사할 때 인간의 계산이나 상식으로 혹은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신뢰한다는 말은 그분의 말씀응 믿고 순종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말씀이 내 생각을 지지하면 따르고 말씀이 "아니다"라고 말씀하면 포기할 수 있는 교사의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교회의 모든 사역은 믿음의 비밀을 가진 교사들에 의해서 수행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배움의 원리다.(딤후3:14)
너희는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라 고 말씀하신다. 교사는 열심히 배우는 자여야 한다. 주님의 제자로서 우리 주님에게 겸손하게 주님을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회에서 시행하는 모든 교사를 위한 교육행위에 참여해야 한다. 어떤 교사들은 배우기를 꺼려하고 등한시 하는 교사들을 보는데 이런 교사들은 좋은 교사가 될 수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많은 열매가 있기 마련이다. 교사의 질적 성숙이 없이는 교회의 성장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교사들이여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배우라. 배우고 확신했으면 어린 양들을 가르치라. 가르치든가 배우든가 선택하라. 가르칠 수 없거든 배우고 배웠으면 양들을 먹이고 치기를 주님이 원하신다.
세째로,동기화의 원리를 적용하라.(요4:7-15)
학습자는 배우고 싶을 때 배운다는 것이다. 우리 어린이들로 하여금 그들이 다음 주에 교회에 올 수 있는 마음과 말씀을 기대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한 교사의 일이란 말이다. 그 좋은 예가 요한복음 4장에 수가성 여인과 우리 주님의 대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예수님:"물좀다오"
여인: 당신은 유대이면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에게 "나에게 물을 달라"라고 하십니 까?
예수님:"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가 물달라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나에게 물을 구하였을 것이고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인:"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생수를 얻겠삽나이까? "
예수님:"이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 르지 아니 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 라"
여인:"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 않고 또 여기 물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일반적인 생수를 대입하여 추상적인 영생의 도리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영생에 대한 이해와 물달라고 하는 이가 메시야인줄 알았다면 여인이 예수님께 물을 구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인이 물길러 온 야곱의 우물은 다시 목마르지만 주님이 주신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수가 된다고 말함으로 이 여인의 내적 동기를 유발하여 이제 생수에 대한 갈급함이 있게 되었다. 바로 이점이다. 우리가 교회학교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공과를 진행할 때 내적인 동기화를 이룬다면 공과 교육의 효과는 극대화 될 수 있다. 주님은 이여인에게 내적인 동기화의 원리를 적용함으로 호기심과 흥미를 더욱 유발함으로 전하고자 하는 진리를 구체적으로 드러나도록 이끌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우리 어린이들이 교회학교에 나올 수밖에 없는 내적 동기를 부여하는 일은 교회성장에서 가장 고려되어야할 원리라고 생각된다. 어린이들에게 동기유발을 일으킬려면 흥미있는 공과공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교회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로 관련성의 원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교사가 가르친 공과 내용이 아이들의 삶과 관련을 맺도록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혹자는 적용이 없는 성경공부는 무효라고까지 말한다. 어떻던 말씀을 어린이들의 삶과 연관지어 그들이 적용할 수 있도록 공과나 설교나 구연동화가 진행되어야 그들의 본질적 삶이 변한다는 것이다. 성경지식만 많아져 결국은 머리만 커진다면 오히려 말씀이 삶에 영향을 키친다는 것이 어렵게 된다는 사실을 장년들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다. 어린이들의 삶 가운데 말씀이 투여되도록 그들이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가야한다는 것이다.
다섯째로 준비성의 원리이다.
교사가 주일 한시간을 위해서 준비한다는 것이다. 은혜받기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해야 한 것처럼 교사들이 자기 자신을 준비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도로 준비하는 일이다. 성령께서 교사를 통하여 일하시도록 그리고 아이들이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닫도록 위해서 기도하는 일은 교사가 준비해야 할 중요한 항목이다. 그리고 공과를 준비하라. 준비한 공과를 통하여 확신있는 말씀을 선언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성령님의 역사와 복음의 능력이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4.교회가 전인교육의 장이 되도록 하라.
첫째로 교사의 질을 높여라.
교육부장님이나 각부서의 부장님은 소관 부서의 교사들의 영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라. 우선 여름철 느슨해지기 쉬운 계절에 수련회를 갖는다든가 혹은 교사강습회를 통해서 교사의 질을 높여가야 한다. 우선 교사들에게 믿음으로 헌신하며 봉사할 수 있도록 해야하겠고 교사의 인격적 감화력이 생기도록 교사 한사람 한사람의 인격적 성숙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말이다. 교사들이 교제를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상호관계를 통해서 더욱 열심히 봉사할 수 있도록 한다.
둘째로 어린이들을 이해하라.
우리 교회학교가 성장하고 맡은 반이 부흥하기 위해서는 대상자를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 어린이들의 개인 개인을 알기위한 방안은 특별하게 없는 줄 안다. 우선 교사가 심방하는 일이다. 어린이들의 가정을 심방하여 그들의 삶의 자리를 안다는 것은 그들을 주님께 인도하는데 매우 유익한 정보가 된다. 이일을 위해서 상담을 할 수 있다. 한사람 한사람 면담을 통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듣을 수가 있다. 어떻던 교사는 내가 맡고 있는 어린이를 잘 이해하고 잘 알 수가 있어야 그들의 욕구와 사정을 도울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을 이해하는데 유익한 것은 함께 놀아주는 것이다. 함께 그들과 어울려 함께할 수 있는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셋째로 예배를 은혜스럽게 드려라.
예배는 기독교 교육에서 빼놓을 수없는 중요한 교육과목이다. 다른 프로그램이 아무리 잘되어 있다할지라도 예배드리는 삶이 없는 교회교육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교사는 예배를 은혜스럽게 드릴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을 구성하는데 관심을 기울려야 한다는 것이다. 주일학교의 예배는 순서와 순서의 간극을 줄여주는 역동적인 예배순서를 계획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예배시간이 효과적으로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교회가 함께 노력하고 어린이로 하여금 예배를 통한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어린이들과 교사들이 함께 참여하는 예배를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배가 끝나고 교회의 문을 나가면서 다음주일에 또 오고싶은 마음을 심어주는 예배의 축제가 계속된다면 분명히 그교회는 성장하게 될 것이다.
네번째로 교사는 작은 목자로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라.
교사들이 그 교회를 담임하고 잇는 목회자와 동력하는 동역의식을 가지고 현장에서 뛰어줄때 그 교회학교는 부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사들에게 그 맡은 업무와 함께 그 책임을 과감하게 위임하는 평신도 지도자들을 많이 세워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필자의 교회는 교회학교의 교역자가 없는 상태에서 평신도들이 목사를 잘도와서 교회학교가 계속 부흥하고 성장하고 있음은 평신도 교사들의 작은목자의식과 그들이 교역자와 동역한다는 강한 사명의식에서 비롯된 헌신의 열매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될 때 목자의 심정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교회를 잘 섬길 수 있음을 보게 된다.
다섯번째로,어린영혼들의 구원을 체크하고 구원을 상담해야 한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싹이 나기전의 농작물에 비료를 잘못주면 그 씨앗이 썩어버리는 경우를 경험했을 것이다. 즉 어린 심령속에 예수의 새생명이 있음을 확인하고 그들 한영혼 한영혼을 복음을 제시하고 구원을 확인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 교사들의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여름성경학교를 통해서 구원의 복음을 확인하고 어린이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교사는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개인적인 구원상담을 통해 모든 어린이가 새생명 예수의 생명으로 충만케 하면 그 교회학교는 부흥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여섯번째로,교회와 가정이 유기적으로 관계를 가질 때 교회가 부흥할 수 있다고 본다.
요즘 사회현실을 보면 아이들의 교육문제가 보통 심각한게 아니다. 아이들의 영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정서적인 문제 학교문제까지도 함께 풀어갈 수 있도록 교회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본다. 교회가 자녀교육문제 부모의 역할 등 필요한 정보와 교육적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교회가 관심을 기울일 부분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교사가 가정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을 때에 간접전도도 될 것이며 어린이들의 정신적인 안식의 터가 교회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제 교회가 전인적인 인격을 형성하는데 어떻게 역할을 해야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일곱번째로,교회의 모든 회의는 짧게하고 짐을 서로 나누어 지도록 한다. 극히 상식적인 말이다.
"누가 그렇게 할 줄 몰아서 못하나? 일군이 없어서 할 수 없어서...." 물론 모든 교회가 일할 자원이 넉넉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교사들이 일하기 위해서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어떻던 교사도 은혜가 늘 충만하면 기쁨으로 교회를 잘 섬길 수 있지만 일에 너무 지치고 너무 일이 과중하면 스스로 넘어지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기에 될 수 있으면 교사들에게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한다든가 혹은 혼자서 힘들어 실망하는 경우가 없도록 교회의 지도자들은 신경을 써야한다고 본다. 교사들의 심령에 부흥에 대한 불길이 꺼지면 교회가 침체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여름철에 교사들의 영적인 재 충전을 위해서도 교회가 충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3.맺는말
교회의 성장과 부흥의 주체는 성령 하나님이심을 믿으면서 우리 교회가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교회학교가 본질적으로 성장하며 부흥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기도하는 일을 빼놓을 수 없다. 무릎으로 기도라며 열심히 자신의 해야할 일들을 준비하며 어린이를 사랑하라. 주님을 사랑하는 고백이 어린 양을 먹이고 치는 사역이라면 더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맡겨준 양들에게 관심을 갖고 함께 놀아주며 양을 치는 선한 목자들이 되기를 기원한다.
<출처: cafe.daum.net/jc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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