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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1

신약신학의 기원과 발전 /신약신학의 방법론

by 은총가득 2021. 4. 12.

신약신학의 기원과 발전

 

이 장에서는 성서 신학의 주류를 19세기 초엽부터 20세기의 첫 세대에 이르는 신약신학의 전개 과정에 강조점을 두어 개관한다. 신약신학은 성서신학에서 파생된 것이므로 이 둘을 함께 연구해야 한다.

 

1. 종교 개혁으로부터 계몽주의에 이르기까지

 

신약 이후의 초기 기독교 교회는 성서신학이나 신약신학을 발전시키지 못했는데 이유는 경전 문서의 내용이 보편적인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었던 교회의 교리에 일치한다는 주장때문이었다. 종교개혁은 성서를 교회의 전승과 스콜라주의 신학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오직 성서로"라는 원칙으로 성서는 더이상 전승에 의해 해석되지 않았다. 전승보다 뛰어난 권위가 성서에 있음이 인정되었고 그것은 성서의 자기해석의 결과를 가져왔다.

 

마틴 루터는 1516년에서 1519년 사이에 새로운 해석학을 전개시켰다. "문자와 영" 사이의 대조를 강조하는 것,"율법과 복음"을 결정적으로 구별하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기독론적인 원칙이 '오직 성서로'라는 루터의 새로운 해석학의 본질을 이룬다. "오직 성서로"라는 원칙은 루터에게

1)그리스도와 성서의 구별,

2)그에 따른 율법과 복음의 구별이라는 의미로 작용한다.

그러나 루터를 비롯한 다른 개혁자들은 "오직 성서로만"이라는 원칙의 해석학적인 결과들을 신학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성서신학의 연구라고 알려진 것을 발전시키지도 않았다.

 

"성서신학"이란 용어를 발전시킨 선구자들은 1530년대 초의 글레이트( O. Glait)와 피셔(A.Fischer)를 중심으로 한 재세례파운동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처음으로 성서신학이란 표현은 크리스트만의 {독일 성서신학}이라는 책에서 1629년에 나타났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서신학 서적은 디스트의 {성서신학}(1643)으로 새로 대두되는 연구의 성격에 대한 최초의 통찰을 보여준다. "성서신학"의 부수적인 기능은 칼로비우스에 의해서 견고히 수립되었는데 그는 이전에 신학적 주석이라고 불렀던 것에다 "성서신학"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성서로 돌아가자는 독일 경건주의의 강조는 성서신학의 방향을 바꾸어 경건주의에서는 성서신학이 빈약한 개신교 정통주의에 반대하는 도구가 되었다. 경건주의의 영향이 성서신학을 가지고 정통주의 교리체계를 반대하는 하이만(1708), 도이취만(1710), 바이드너(1722)등의 저서에 나타나 있다.

 

1745년에 "성서신학"은 분명히 교리(조직)신학과 분리되었고 성서신학은 교의학의 기초로 생각되었다. 이것은 성서신학이 교의학에 대한 단순히 이차적인 역할에서부터 해방되었음을 뜻하며 이러한 분리연구가 가능했던 것은 계몽주의 시대의 합리주의의 영향이라 할만하다.

 

2. 계몽주의시대

 

계몽주의 시대에서는 여러가지 영향아래서 성서연구를 위한 전적으로 새로운 방법이 발전되었다. 그것은 첫째, 합리주의의 반응이었고 둘째는 새롭게 역사적 - 비평방법이 해석학으로 등장한 것이다. 세째는 성서에 대한 철저한 문서비평을 적용하는 것이다. 결국 합리주의는 성서의 영감에 대한 정통주의의 관점을 포기하게 했고 궁극적으로는 성서가 고대 문헌의 하나가 되어 버렸다.

 

경건주의의 부분적인 영향 아래서 합리주의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뷔슁의 저서들(1756 - 58)은 "성서신학"이 교의학의 경쟁상대가 되었음을 처음으로 나타내고 있다. "해석학의 혁명"에 있어서 주요한 촉매적 역할을 한 사람은 합리주의자 제믈러(1725 - 1791)였는데 그의 저서 Treatise on the Free Investigation of the Canon(1771 - 75)에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서는 전혀 일치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결과적으로 성서신학은 전통적인 교의학에 대립하는 역사적인 연구일 수밖에 없다.

 

짜카리애(1729 - 1777)가 쓴 성서신학에 관한 네 권의 저서(1771 - 75)에서 짜카리애는 교의학과 해석학에 새로운 방향을 지시하는 영향 아래서,짜카리애는 신학적 체계를 조심스러운 주석적 작업을 기반으로 수립하려고 했다. 물론 짜카리애도 성서의 영감설을 고수했으며 에르네스티의 성서주석방법을 따랐다. 후프나겔(1785 - 89)의 성서신학은 "교의학을 지지하는 성서의 증거 - 본문을 역사적으로 수집한 것이다.그의 연구는 신약성서를 구약성서보다 높게 평가한 것이며 그것은 4냔 후에 바우어에 의해서 구약성서를 독립적으로 연구하는 첫 걸음이다.

 

가블러(1787 - 1836)의 유명한 정의에 의하면 "성서신학은 성서 저자들이 신의 문제에 관하여 무엇을 생각했는지를 전해주는 역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그 반대로 교리신학은 한 특별한 신학자가 그의 능력과 시간, 세대, 장소, 종파 또는 학파, 그리고 비슷한 다른 어떤 것들에 의해서 신의 문제를 철학화한 가르침으로써 교훈적인 특징을 가진다. 성서신학에 대한 가블러의 귀납적, 역사적, 기술적 접근방법은 본질적으로 세 가지 방법론적 고려에 근거하고 있다.

1. 영감은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생각해야 할 것은 "신적인 권위"가 아니라 "성서저자가 무엇을 생각하였는가"하는 점이다.

2. 성서신학의 과제는 개별적인 성서저자들의 개념과 생각을 주의깊게 수집하는 것이다. 이 과제는 문서비평. 역사적 비평, 그리고 철학적 비평의 도움을 받아서 역사적 비평방법을 일관성있게 적용함으로서 수행될 수 있다.

3. 역사연구로서의 성서신학은 그 정의상 "옛 종교와 새 종교의 여러 기간들 사이를 구분"해야 한다.

 

그 중요한 과제는 어느 사상을 "오늘날 적용하여" 어느 사상이 "우리 시대에 타당"하지 않은가 하는 것을 연구하는 것이다. 순수한 역사적인 성서신학의 목적은 바우어에 의해 최초로 구체화 되었다. 바우어에게 있어서 "성서신학이란 그리스도 이전의 유대인들과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종교적 이론의 발전, 즉 성서저자의 문서로부터 나온 것으로 그 저자들이 반영하는 다양한 시대와 견해와 이해의 측면에서 제시된 발전이다.

바우어는 합리주의의 도움을 받아 역사비평 방법을 일관성있게 적용했다. 그의 기여는 성서증언의 중첩성에 관한 역사 - 비평적 재구성의 문제, 순수한 역사적인 연구로서의 성서신학의 성격에 관한 모든 주제의 논쟁을 제공한데 있다 하겠다. 어쨋든 가블러와 바우어는 성서신학과 신약신학을 독립적인 연구로 만든 창시자이다.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갈릴레이에 의해 증진된 과학 혁명의 영향은 성서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초래하였다. 이제 성서가 과학의 결론들에 의해서 해석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성서의 권위는 감소되었고 믿음과 도덕의 문제에 관련되게 되었다. 합리적 정통주의의 제네바 신학자 투레티니는 "거룩한 성서는 다른 책과 다른 방법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1728년에 주장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게믈러는 성서와 하나님의 말씀을 분리하며 성서의 신적인 내용과 인간적인 형식을 엄격하게 구별함과 동시에 성서에다 결정적인 신성모독의 기본적인 규칙을 일관성 있게 적용한 것은 성서의 본문을 의도적으로 고대 상황에 놓고 현대독자들에게 말하려는 의도없이 고대 시대에 대한 증인으로서 성서 본문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역사 비평주의를 위하여 근본적인 것으로 제믈러는 역사 비평신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었다.

 

3. 계몽주의로부터 변증법적 신학에 이르기까지

 

계몽주의 시대는 신학에 있어서 지속적인 영향의 변화를 초래했다. 성서신학은 기술적인 연구로 변하여 "성서가 의미하는 것"을 기술하는 역사과학이 되었다. 해석은 당시의 유행하는 철학에 의존하여 순수한 역사적인 연구방법을 떠나 적극적인 역사적 연구방법, 종교사적 연구방법, 구속사적 연구방법등이 발전하였다.

가이저의 성서신학(1813 - 1821)에서 그는 "종교사적" 연구 방법을 적용하고 모든 성서적 측면들과 비성서적 측면들을 보편적인 종교의 원칙에다 종속시킨 최초의 사람이다.

드 베테는 1813넌에 {구약과 신약의 성서적인 교의학}에서 칸트철학을 채택하여 성서신학을 철학의 체계와 결합시켰다. 그는 구약과 신약의 실질적인 통일성이 붕괴되었음을 의미하고 신약성서신학은 종교사의 한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드 베테의 시도는 그가 성서신학을 교의적인 관심과 결합시키려고 하였기 때문에 미해결의 방법론적인 문제가 존재함을 지시한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많은 학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으며 그의 연구의 의의는 신약성서의 중심과 통일성의 전 문제성이 표면화되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쾰른의 {신약성서의 성서신학}(1836)은 성서신학의 "순수한 역사적인"성격이란 점에서 가블러와 바우어의 전통에 속한다. 쾰른은 해석의 과제로부터 역사 비평적인 성서신학의 과제를 엄격하게 분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최종 결과는 교의신학을 수정하는 것이라는 메르크의 지적을 받았다. "순수한 역사적인" 신약성서신학에 대한 가블러와 바우어의 연구방법의 결정은 바우르(1792 - 1860)의 저서에 의해 성취되었다.

1835년 그의 제자 슈트라우스(1808 - 1874)는 {예수의 생애}라는 저서에서 예수에 관한 신약성서의 기사를 철저히 재해석하였다. 슈트라우스는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에 의해서 변형되고 확대된 역사적 사실의 기초를 제공하는 복음서기록들을 헤겔적인 변증법을 적용하여 신화적으로 해석하였다.

바우르의 {신약성서신학에 대한 강의}(1864)는 바우르의 사후에 출판되었다. 바우르의 헤겔적인 변증법은 그로 하여금 기독교의 역사를 2세기의 초기 카톨릭주의라는 종합으로 이끄는 유대적 기독교라는 명제와 이방 기독교라는 명제 사이의 투쟁으로 보게 하였다.

 

이에 따라 세개의 기간을 구분하였는데

첫째는 바울 자신의 서신 4개(갈라디아서, 고린도전후서, 로마서),

둘째는 히브리서, 바울서신들, 베드로전후서, 야고보서, 공관복음서, 사도행전을 포함하며

세째는 목회서신과 요한서신들을 포함한다.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은 세 기간 앞에 놓고 "순수한 도덕적인 요소"로 전락시켰다. 즉 예수의 가르침을 신약성서 자체의 신학에 있어서 전역사로 생각하였다.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 긴급한 논제로 남아있다.

 

바우르의 연구 방법 가운에 가장 큰 결점은 헤겔의 변증법을 적용한 것과 초기 기독교에 있어서의 유대교의 영향을 지나치게 강조한 점이다. 19세기 초기의 몇 십년 동안에는 신약성서 학문에 대하여 실정적인 역사적 방향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될 수 있는 학자들이 있었다.로시우스는 "교리들의 - 개념"에 대한 교의학적인 연구방법을 역사적인 연구 방법과 결부시켰다. 그는 신약성서신학의 기술 가능성을 각 신약성서기자를 분리해서 취급하거나, "교리의 개념들"에 대한 조직적인 연구 방법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이 두가지를 결합시키는 것 세가지를 제시하였다. 이 방법은 "실증적인"연구방법에 대한 방법론적인 역전으로 생각될 수 있으며 신약성서 전승에 대한 철저한 비평에 대한 필수적인 반정립으로 볼 수 있다.

바움가르텐 - 크루시우스는 "교리를 위한 기반과 규범으로 사용되고 교리사를 위한 출발점으로 사용될 순수한 성서적인 개념들의 체계를 위해 노력하였다.그는 성서신학에 대한 이질적인 영향을 막기 위해서 종교에 관한 이신론의 과도한 비판을 진지하게 반대하였다. 구약과 신약을 통일시키는 하나님 왕국에 대한 공통된 주제를 근거로 성서의 통일성이 인정된다고 시사하였다.

 

신약성서에서의 통일성과 다양성에 관한 질문은 1832 - 33년에 방대한 두 권의 책을 펴낸 네안더의 연구 방법에서 중요한 문제성을 갖는다. 그는 사도들의 다양한 메시지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생생한 통일성"을 강조하였다. 슈미트는 신약성서에 깔려있는 본질적인 통일성이 신약성서 기자들의 상이한 교리들 안에서 반영된다고 생각하였다. 한(1854), 메스너(1856)등은 다양성 안에 통일성이 존재한다는 것과 신약성서신학은 경전적인 문서들을 문제삼는다는 점에 동의를 하며 적절한 방법은 "역사 비판적인"것이고 교의학으로부터 나온 전통적인 주제 아래서 신약성서의 교훈을 제시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에 동의를 한다.

신약성서신학에 대한 "현대적인 실증적"방향은 튀빙겐 학파의 반대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바우르에 비해 보수적이며 네안더, 슈미트, 한, 메스너보다는 덜보수적인 바이스는 "신약성서의 성서신학은 서로 다른 신약성서 저자들의 가르침이 다양한 헹태임을 묘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이스의 표제적인 선언은 전형적으로 "현대적인 실증적"방향이다. 성서신학은 신약 성서 문서들의 기원에 대한 비판적이고 큭수화된 연구에 관심을 둘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적 - 기술적인 과학일 뿐, 역사적 - 비판적인 과학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약신학에 대한 "순수한 역사적인" 연구방법에 대한 또 다른 보수적인 반응은 멘켄, 베크,호프만과 관련되는 "구속사 학파"에서 표현된다.

 

구속사 학파

1. 말씀으로 표현된대로의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

2. 성서의 영감에 대한 사상,

3.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역사에 관한 결과에 근거하고 있다.

 

호프만은 신약성서를 일반 사상에서 통합시키지 않고 구약성서와의 역사적인 관계, 즉 구원사에 통합시켰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성서를 성서로 해석하게 하라는 종교개혁의 원칙을 역사에 대한 현대적인 이해에 결합시켰다고 지적되고 있다. 호프만의 영향을 받은 찬은 신약성서신학을 종교에 관한 과학적인 체게로 보지 않고 성서에 내포되어 있는 신학의 제시로 보았으며 신약성서신학은 성서의 역사적인 발전에서 파악되어야 하며 "구속사의 단계에 따라 배열되어야 하는 것이다."

쉴라터역시 구속사파에 속하는 학자로 1905년, {신학에서의 무신론적인 방법들}이라는 그의 글에서 현대의 역사적 - 비평 방법에 내재되어 있는 무신론을 거부하였다. 이것은 역사적인 연구방법의 목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쉴라터는 신약성서의 역사와 그것에 대해서 증언하는 말씀이 기독교 존재의 토대가 된다는 사실은 신약성서가 기독교의 경전이라는 사실에 의해 표현된다고 말한다.

신약성서에 대한 "순수한 역사적인" 연구 방법에 반대하는 쉴라터의 비난은 그가 역사적인 탐구에 둔감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쉴라터가 초월성의 여지를 두지않는 원인과 결과의 폐쇄된 연속체로 역사를 이해하는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한편 하나님은 역사 안에서와 역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넘어서서 행위한다는 편협한 정통주의를 비판하는 것임을 의미할 뿐이다. 그의 신약신학 연구는 신약의 증언이 모든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통일되어 있으며, 신앙은 신약 문서의 적절한 이해를 위한 전제라는 확신에서 출발한다.

 

신약성서의 증언의 통일성은 "팔레스틴의 유대인인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의 환경"에 역사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다.고펠트와 크라우스가 쉴라터의 연구 방법에서 구석사적인 개념을 발견한 것은 상당히 정확한 일이며, 쉴라터는 신약신학의 모든 기획의 성격을 주의깊게 사고한 거장으로서 우리 앞에 존재한다.

 

{신약신학의 과제와 방법에 관하여}(1897년)에서 윌리엄 브레데는 "종교사" 연구방법을 제시 이 방면의 개척자가 되었다. 그의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홀츠만의 책 {신약신학의 교과서}에서 홀츠만은 신약을 문화적 환경으로부터 고립시키지 않았다. 신약성서의 전통적인 이름을 보유하였으며 연구의 범위를 신약의 경전적인 문서에 국한했다. 결국 홀츠만은 성서신학의 분야에서의 역사적인 연구는 신학적인 과업이라는 개념을 고수하였던 것이다.이러한 홀츠만의 입장은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신약신학이 가블러와 바우어의 기초로부터 이탈되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와 관련하여 다이스만은 신약신학의 역사적인 성격이 경전적인 문서를 넘어서는 것이므로 "미리 결정된 노선의 현상을 제거하는 것임"을 원칙적으로 요구한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신약신학의 과제는 세가지이다.

첫째는 기독교 세계가 발생한 시대와 기독교의 복음이 지향하는 시대의 종교 - 윤리적 사상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

둘째는 초기 기독교적인 의식의 독특한 형성을 결정하는 것,

세째는 초기 기독교의 전체 의식에 관한 진술을 제공하는 것이다.

 

브레데는 1897년에 쓴 위의 책에서 "교리의 개념"적인 연구 방법을 공박하였다. 그는 다이스만의 세번째 과제를 부인한다.또한 그는 19세기의 역사적인 신학 연구, 특히 바우르의 튀빙겐 학파와 리츨의 신학을 공격한다. 브레데는 역사적 - 비평방법에 대한 일관성있는 적용을 주장한다. 즉 신약문서들은 그 시대의 문화를 기초로 해서만 이해되고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것은 초기 기독교의 역사적인 모습은 역사비평주의, 유비, 그리고 역사적인 과정들의 상관관계로브터 유래될 수 있다는 것도 의미한다. 아뭏든 브레데는 역사적 - 비평 방법으로 일관성있게 연구하는 학자는 초기 기독교 운동의 교리나 신학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며 초기 기독교의 "종교"를 연구하고 제시한다고 주장한, 브레데의 "종교사"적인 방법은 신약신학의 연구라는 명칭에 대하여 새로운 평가를 초래한다. 즉 그는 신약성서에 있어서 교리의 개념 대신에 역사를 주인으로 교체한 것이다. 그러므로 브레데의 프로그램

1)교의학이 제기한 질문과 교회의 관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하게 되는 것,

2)그러한 신학에 무관심하게 되는 것,

3)역사적인 방법론에 일관성있게 전적으로 헌신하게 되는 것,

4)최초의 기독교 종교를 제시하려고 추구하는 것,

5)경전과 무관하게 자료를 연구하는 것,

6)초기 기독교 사상과 인식의 특징을 보여주려고 시도한 것,

7)발전을 지시하는 관점에서 초기 기독교 종교의 "개념들"을 묘사하는 것,

8)종교사적인 연구 방법을 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브레데의 영향은 하인리히 바이넬의 {신약성서신학}(1911년)에서 최초로 나타난다. 그는 "최초의 기독교 종교사가 신약의 성서신학을 대신해야만 한다"고 선언하였다. 기술(재구성)에서 해석(신학)으로 종교사학파에서 옮겨가는 이 운동은 "신앙과 종교에 대한 분명한 개념이 상실되고 있다"는 사실에 궁극적으로 기인된 것이다. 이를 이어 부세트는 {주 그리스도}라는 그의 책에서 바우르가 기독교 종교의 기원과 발전에 관한 정교한 역사를 통해서 명백하게 묘사한 것을 극복한다. 철저한 전승 비평의 적용은 예수의 모습을 최소로 감소시킨다.

이에 대해서는 칼 홀과 고펠트가 질문을 제기한다. "순수한 역사적인"연구방법이 "순수한 객관성" 또는 객관적인 과학과 정확하게 일치되지 않느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은 역사적 탐구는 항상 그 시대의 유행하는 철학에 의해서 한정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요약한다면 20세기의 전환기에서 개신교 신학은 풍성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1)오버베크는 순수한 역사적인 방법론이 그를 "근본적인 불신앙"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그는 순수한 역사적인 연구 안에서의 신학적 과제를 부인한다.

2)일관성있는 역사적 - 비평 방법에 근거한 종교사적 신학의 프로그램을 가진 종교사학파가 있었다.

3)쉴라터는 순수한 역사적인 방법에 대해서 예리한 신학적 비판을 가하고 구속사의 연구 방법에 확고한 관심을 두었다. 이 모든 것이 변증적인 신학이 발생하는 요람의 역할을 하였다.

 

4. 변증법적 신학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진화론적인 자연주의에 대한 신앙이 일반적으로 상실되었고, 역사적인 진리가 순수한 과학적인 "객관성"에 의해 획득될 수 있다는 확신에 대한 반동,또는 이러한 객관성이 정말 획득될 수 있다는 확신에 대한 반동, 계시의 개념으로 복귀하는 변증법적 신학(신정통주의)의 경향, 그리고 이러한 신학에 대한 갱신된 관심등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덴탈은 지적하고 있다.

 

칼 바르트는 해석학과 모든 신학에 있어서 과격한 변화가 있을 것을 암시하였다. 세계 대전을 통하여 자유주의 신학의 부당성을 배우게 된 바르트는 하나님 - 인간의 관계에서 신적인 측면, 즉 계시의 근원으로서의 하나님을 강조하였고 "성서에 대한 비평 이후의 해석"을 요구하며 실천한다. 이것은 성서에 포함된 계시에 관한 증언을 통찰하는 성서의 해석을 의미한다.

 

불트만은 양식 비판과 비신화화 게획을 시작하였고 다른 많은 것들 중에서 역사적 예수에 관한 새로운 질문에 대한 논의에 공헌하였다. 불트만은 "순수한 역사적인" 연구 방향, 즉 종교사학파에 속한다. 또한 그는 당대의 유행한 철학, 즉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그의 정신적인 전제로 채택하였는데 신약의 메시지를 현대인의 사상 세계에로 재해석하는 것이 불트만의 시도였다.

 

이것은 '삶의 행위'와 관련지어서 신약의 신학적인 사상을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불트만은 역사적인 질문을 신학적 질문과 결합시키려고 하였다. 즉 삶의 행위로부터 사고의 행위를 분리함으로써 신학적인 언급의 의도를 인식하는데 실패하는 실수를 피하려고 시도한다.

 

불트만에 반대하는 가장 의의깊은 반발은 관례적으로 후기 - 불트만 학자라고 불리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1950년대에 나타났다(케제만, 훅스, 로빈슨, 보른캄 등). 후기 불트만 학자들은 역사상의 예수가 신앙을 위하여서는 타당성이 없다는 불트만의 주장을 반대하였다. 1960년대 초에 몇몇 후기 불트만 학파들, 특히 훅스, 에벨링, 로빈슨, 풍크는 불트만의 해석학과 특히 불트만이 초기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채택한 것을 넘어섰으며 그들은 언어의 기능 방법에 대한 불트만의 이해를 비판한다.

 

특히 1976년 로빈슨은 {신약신학의 미래}라는 논문에서 브레데와 함께 신약신학은 종말을 맞이하였다고 말했다. 로빈슨은 "신약신학의 교리적인 구조를 넘어서서, 그것을 신학적으로, 존재론적으로, 우주론적으로,정치적으로 확대하여 현대사회에 있는 다른 방도를 통해서 해석될 수 있는 언어의 운동으로 나아갈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후기 불트만 학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스툴마허는 동의의 해석학에 관하여 말한다. 그것은 "성서의 말의 내재적 능력", "신앙의 지평과 교회의 경험", "초월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진리와의 만남을 위한 개방성", "신앙의 가능성을 위한 개방성"을 위한 충분한 여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케리그마적 신학, 경건주의와 성서적으로 지향하는 루터파 사이의 경계에 있는 자"로서 중간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구약학자 폰 라드, 침머리 그리고 특히 게제의 노산을 따른다. 신약성서신학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뿌리 박고 있는 화해의 선포이다. 왜냐하면 "화해의 메시지는 성서 전체의 결정적인 중심이기 때문이다"라고 스툴마허는 말하고 있다.

 

로빈슨과 스툴마허의 프로그램은 구속사에 보다 가깝다. 신약신학에 대한 구속사적인 접근으로 되돌아 가기 전에 로마 카톨릭 학자들에서의 발전과 신약학에서의 현대 실증적인 경향을 대표하는 것으로 분류되는 연구 방법을 주목해야 한다. 프랑스 학자 르모니예의 {신약신학}(1928)은 주제적 연구 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며 마이네르츠의 두권의 {신약신학}(1950)은 신약신학과 교의학의 관계를 논하였지만 신약신학 연구의 기원과 발전을 논하지는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각각의 신약 저자들이 지닌 다양한 신학들을 통일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봉시르방의 {신약신학}(1951)은 신약신학을 통일성있게 제시하는데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신약신학의 과제를 "신약성서안에 게시된 진리를 함께 모으는 것이며 신약저자들이 이해한대로 그 진리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이고 중요성에 따라서 이런 진리들을 분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기독교교리를 위한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현대의 카톨릭의 성서운동은 피우스 12세의 회칙 Divinio Afflante Spiritu(1943)으로부터 시작된다.

1970년대 중반에는 성서 비평 방법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로마 카톨릭 학자들과 비로마 카톨릭 학자들 사이에 차이가 없어졌다. 바이스의 연구 이후 신약신학의 "현대실증적"방향에 속하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는 스타우퍼의 {신약신학}(1941)을 들 수 있다. 스타우퍼는 그의 책을 신학적인 주제를 따라서 체계화하는 조직적인 연구 방법을 택하였다.이 연구 방법은 기본적으로 "구속사적"전망을 가지며 그 방법은 엄격히 기술적이다. 스타우퍼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역사신학"은 옛 성서적 전승위에 세워지며 신약 - 후기 기독교의 신학으로 곧바로 옮겨가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미국인 학자 그랜트는 {신학사상입문}(1950)에서 "신약신학은 신약에 반영된 것처럼 상징하는 기독교 교회의 신학이 없으며 완성된 하나의 산물이 아니라 진행하는 가운데 있는 신학이었다. 따라서 과제는 기록의 과제라기보다는 해석의 과제이다"라고 말한다.또한 신약성서의 다양성은 기본적인 신약신학의 몇몇 사상들을 포함한다는 것은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헌터의 {신약신학입문}은 그리스도의 사실에 기초한 신약성서신학에 대한 역사적 연구 방법을 드러낸다. 이 책은 신약신학자들의 다양성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통일성에 관심을 둔다. 대륙에서는 큄멜, 예레미아스, 로제가 그들의 성서신학에서 "현대 역사적인" 연구 방법을 보다 철저히 사용하였다. 알버츠는 그의 {신약의 메시지}에서 신약에 대한 전통적인 비판적 서론과 전통적인 역사 - 비판적인 신약신학이 철저히 새로운 방법으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고 시사한다. 그는 바우르의 철학적인 연구 방법, 바이스가 사용한 "교리의 개념"의 방법, 하르낙과 다이스만의 종교심리학적 연구 방법, 부세크와 다른 이들의 종교사적 방법, 그리고 스타우퍼와 불트만과 같이 현대의 세계관을 기초로 신약을 해석하려는 시도를 비판한다.

 

따라서 신약신학의 위치는 "신약성서의 메시지의 전개"에 있다고 본다. 알버츠는 고도로 개인주의적 연구 방법을 사용한 것이 분명하지만 이런 모든 것이 알버츠의 연구가 미래의 연구 방법을 위한 시사로 가득차 있으며, 젊은 세대에게 그것을 파악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을 수긍하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데 동의하고 있다.다시 구속사로 돌아가서 구속사 연구 노선은 쿨만의 두 개의 중요한 연구에서 힘있게 연구되었음을 볼 수 있다. 미국의 라드, 또는 레만등을 이와 같은 노선에서 볼 수 있다. 1940년대 이후의 미국에서 일어난 "성서신학운동"에 대해서 차일드는 전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성서신학 운동

1.철학적인 체계에 대한 반대,

2.히브리 사상과 그리스 사상의 대조,

3. 신구약의 통일성에 대한 강조,

4. 주변환경을 배경으로 본 성서의 독특성,

5. 낡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동,

6.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계시와 같은 특징을 지닌다.

 

차일드의 사고에서 "성서신학의 과제란 구약신학과 신약신학과는 다른 연구"라는 것이 확실히 인식되어야 한다. 이것은 구약신학과 신약신학에 각기 타당한 영역이 있다고 이해함을 의미한다. 신약신학은 성서신학과 다른 "주로 기술하는 과제"라고 그는 말한다.

 

이런 대강의 역사적 개관으로 우리는 신약신학의 성격, 기능, 목적 그리고 제한성에 관한 현재의 논의에서 중요한 뿌리를 부상시키고자 하였다. 근본적인 문제들은 아직 미해결로 남아있고 다양한 배경과 학파에 속하는 학자들 가운데서 계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신약신학의 방법론

 

1787년 가블러에 의해 제기된 신약신학의 방법론은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실 방법론의 문제는 복잡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학자를 어떤 기존의 방법에다 할당하는 것은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다.여기서는 4개의 주된 연구 방법을 개관함으로서 방법론의 문제성을 제기할 것이며 각 연구 방법은 한 사람 이상의 연구에 의해 대표될 것이다.

 

1. 주제적 연구 방법

 

1) 앨런 리처드슨

 

앨런 리처드슨은 {신약신학 입문}(1958)의 서문에서 "사도 교회가 공통된 신학을 가졌고 그 신학이 신약문서로부터 재구성될 수 있는지"를 아는 단 하나의 방법은 "신약의 기록에 깔려 있는 신학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그 다음에는 모든 유용한 비판적이고 역사적인 지식에 비추어 본문의 기록에 의하여 그가설을 검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이것은 "역사적, 비판적, 문학적, 언어학적, 고고학적"등의 방법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는 신약신학을 쓰기 위해서는 신앙의 전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어떤 변명도 순수하게 기술적인 학문의 제한성 안에 머무르는 것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그러나 신약신학이 고백적이거나 또는 신조적인 영역에 반하여 그 독자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음을 나타낸다. 리차드슨이 옹호하는 가설은 '예수 자신이, 신약에서 발견되는 구원에 관한 구약의 틀에 대한 뛰어난 재해석자'라는 것이다. 이 가설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신약성서의 신앙 전체에 대한 신약의 자료를 역사적으로 철저히 연구하는 것을 기대하지만 리차드슨은 이것도 실시하지 않는다. 그의 신약신학 구조는 의아스러울 정도로 엉성하여 각 장들의 연결성의 결여, 창조, 인간, 율법, 윤리와 같이 중요한 신약의 주요 주제들의 생략, 특히 주제적 연구 방법을 위한 방법론적인 정당화가 문제된다. 주제적 구조를 가지고 쓰여진 신약신학은 신약성서 자체에서 그 주제들 및 소재 그리고 그들의 상호 연관성을 발견해야 한다. 리차드슨은 이 점에서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2)칼 쉘클레

 

칼 쉘클레는 1968년에 {신약신학}이라는 4권의 책을 출판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제는 "통일된 신약신학"을 제시하려는 것이었다. 쉘클레의 방법론은 "신약을 구성하는 각각의 문서들과 문서들의 실제적인 형성과 의미에 관하여 생각될 수 있은 것을 체계적으로 요약하여 서술하려고 신약에서 좀더 비중이 있는 큰 용어들, 개념들, 그리고 주제들을 추구한다. 그는 그의 신약신학의 방법론, 특징, 그리고 목적에 대한 그의 이해를 제 3권에 와서야 논하며 그는 신약신학의 자료를 경전으로 국한하였다. 쉘클레는 신약신학을 이중적인 기술적 연구 방법, 즉 해석과 기술을 사용하여 기술한다. 쉘클레는 그 형태가 우리와 별로 친숙하지 않은 선포의 형태의 목적과 내용을 추구하는 시도를 통해서 기술적인 측면에 관해 말한다. 해석의 측면은 "신약의 선포들은 우리의 현재적 질문과 시대에 연결"시키려 추구한다. 쉘클레에게 해석은 "신약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또 그안에서 시작된 것을 지속시키고 상관시키는" 신약신학의 측면이다. 그래서 해석은 현대의 질문들과 현대에 관련될 필요가 있는 신약 사상들의 상관성을 포함한다.그는 신약의 통일성과 성서의 통일성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그리스도가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는 신약신학의 부분만이 아니라 바로 중심"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주제적인 연구 방법으로 4개의 주요 주제를 따라 신약신학을 체계화하였다:창조(세계,시간, 인간),역사와 구속사 안에서의 계시(예수 그리스도와 구속; 하나님, 성령, 삼위일체), 기독교인의 생활(신약의 도덕성), 하나님의 지배.교회.완성. 이러한 조직화는 "전통적인 교리적 위치"를 따른 것으로 관찰이 되어왔다. 주제적 연구 방법은 신약의 통일성을 나타나게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방법의 가장 가치있는 측면은 신약의 증언에 있어서 연대기적인 발전 안의 신약의 사상과 주제들에 대한 종적인 탐구이다. 그는 또한 이 사상과 주제들을 구약에까지 소급한 것에 대하여, 즉 신약과 구약의 연관성을 부상시켰다는 의미에서 분리된 성서신학에 대하여 공헌하는 것이다.

 

2. 실존주의적 연구 방법

 

1)루돌르 불트만

 

불트만은 종교사학파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이는 그의 역사적인 뿌리가 역사 - 비판적 연구 방법에 깊이 근거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또한 1920년대의 변증신학, 특히 바르트와 고가르텐에 관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역사와 인간 실존에 대한 이해로 인해서 불트만은 그의 체계 안에서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통합시켰으며 그것을 근거로 그는 "역사적 재구성"을 "실존주의적 해석"과 결합시켰다. 이는 그의 비신화화 프로그램과 밀착되었는데 신약을 비신화화하는 불트만의 계획의 범위와 문헌는 매우 방대하고 복합적이다. 불트만은 "비신화화하는 것은 해석학적 방법, 즉 주석 방법이다. 해석의 방법으로서의 비신화화는 신약의 우주론이 본질적으로 신화적이기 때문"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의 과제는 케리그마를 해석하기 위해, 실존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비평주의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불트만의 "재구성","해석"의 개념은 그의 {신약신학}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이다.신약 문서들을 재구성하는 것은 역사 - 비판 방법과 종교사학파의 규범을 따르나 재구성은 신약의 문서들이 우리에게 말해줄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아래서 그것들을 해석하는데 봉사한다. 해석은 신약의 신학적 사상들을 "삶의 행위"와의 관계에서, 즉 신앙적인 자기 이해에 대한 설명으로 해설함을 의미한다. 불트만의 {신약신학}은 1부;신약신학의 전제들과 주제들로서 예수의 메시지와 최초의 교회의 케리그마 그리고 바울을 제외한 헬라적 교회의 케리그마에 관한 장들을 포함하고 있다. 2;바울의 신학을 취급한다. 그 안에는 신앙의 계시 이전의 인간이라는 장과 신앙 아래서의 인간이라는 장이 들어 있다. 3부;요한복음과 요한 서신들의 신학이며 방향설정, 요한의 이원론, 세상의 심판, 신앙이란 장들을 포함한다. 4;고대 교회를 향한 발전이란 주제로서 교회 질서, 교리, 발전, 그리고 기독교인의 삶으로 나누어진다. 그의 이러한 방법론적 절차는 그가 브레데의 계획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불트만은 그의 신약신학을 "예수의 메시지는 신약신학을 위한 전제이다"라는 선언과 함께 시작한다.불트만의 양식비판 연구와 1926년에 나온 {예수}라는 책에서 예수의 메시지는 비판적 방법론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 즉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한 자에 관한 케리그마로부터 재구성된다.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적 그리스도에 관한 불트만의 견해는 신약신학의 이 분야에서 오늘날 제기되는 논쟁의 기초가 된다. 이러한 불트만의 주장에 대해 후기 불트만 학자들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새로운 탐구에 관여하게 되었다.불트만의 좌파 비평가들은 우리가 비록 하나님이나 초월자를 의미있는 방식으로 말할 수 있다 할지라도, 모든 역사적 사건들의 본질적인 상대성은 우리가 다른 역사적인 인물에 관하여 가질 수 있는 지식과는 종류가 다른 예수에 대한 지식의 관점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확신을 가지고 논쟁에 임한다. 이것은 예수는 모방될 수 있는 오직 최상의 모형이거나 또는 기타 다른데서 알려진 것의 "결정적인 현현"일 뿐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불트만은 바울신학을 그의 신약신학의 중심으로 삼았다.그는 바울을 "기독교 신학의 창시자"로 간주하며 그의 신학은 동시에 인간학이라 말하고 있다. 이런 불트만의 바울이해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바르트는 불트만의 체계에서 인간학이 차지했던 중심에 기독론적인 관점을 놓기를 원한다. 쉴리어는 바울과 요한의 신학과 병행하여 공관복음서의 신학을 제시하는 것을, 또한 초기 기독교의 신앙 고백문을 신약신학의 기초로 하는 것을 제안한다.불트만의 제자 브라운은 신약신학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였다:신약저자들은 인간의 구원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진술을 하고 있으며, 이 둘은 서로 조화될 수 없으나 그 내용은 상호 모순된 것을 진술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 이질성이 증명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은 하나님을 좀더 철저하게 인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순수한 후기 불트만의 신약신학은 페린의 견해에 따르면 표식과 상징의 성격과 기능에 관한 철학적인 연구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 안에서 나타나는 다양성을 통합할 요소는 신약의 불변의 요소인 예수라는 상징적인 인물이다라고 페린은 말한다. 불트만이 신화를 비신화화하는 해석학을 수립하였다면, 페린은 상징을 이해하는 해석학을 수립하였다.

 

불트만의 신약신학의 특징이 신화를 비신화화하는 것이라면, 페린이 제안한 후기 불트만파의 신약신학은 상징을 이해하는 것으로 기대될 수 있다. 신약신학에서 언어철학을 사용하는 것이 실존주의 철학만큼이나 쟁점이 될 것인지의 여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2)한스 콘젤만

 

콘젤만의 {신약신학의 개요}는 1967년에 출판되었다. 서론; 신약신학의 문제, 헬라적 환경과 유대적 환경의 문제를 취급한다.- 1부; 원시 공동체와 헬라적 공동체의 케리그마. 2부; 공관복음서의 케리그마. 3부; 바울의 신학. 4부; 바울이후의 발전과 요한 신학.그의 구조는 뚜렷한 방법론적 중요성을 지닌 주요한 세 변화를 나타낸다. 1. 예수의 메시지의 완전한 생략 - 그의 신약신학의 기초적인 문제는 선포자인 나사렛 예수가 어떻게 선포된 메시야로 하나님의 아들인 주가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더우기 그것은 부활현현 이후 신앙이 왜 승천한 자를 나사렛 예수와 일치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2.초기 교회를 향한 움직임이 퇴보라는 가치 판단을 피하고 바울문헌을 바울 이후 문헌과 바울학파의 존재에 특별히 연결시키며 사도시대와 사도이후의 시대는 신약신학의 구성 요소라는 사실을 이유로 콘젤만은 그의 신약신학을 일관성있게 하려고 마지막 부분의 순서를 바꾸어 놓았다. 3. 공관복음서의 내용을 신약신학개념의 부분으로 포함함으로서 가장 분명하게 불트만을 극복하였다. 이것은 복음서 연구에서 이루어진 편집 비판 연구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콘젤만 자신이 그 선구자이다.

 

콘젤만은 전승사의 방법을 근거로 신앙의 원전, 신조의 가장 오래된 형식을 재구성하려고 추구한다. 또한 초대 기독교의 신조를 추정하나 그것은 그를 불트만파에게로 돌아오게 한다.전체적으로 볼 때 콘젤만에게 있어서도 신학은 하나님과 세계에 관하여 객관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은 인간학이라는 것이 사실이다. 신앙은 새로은 자기 - 이해를 초래한다. 콘젤만은 재구성과 해석의 상관성에서 하나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 변화는 규범적이라기 보다는 역사적인 재구성을 향한 변화이다. 오늘날에는 "역사적인 실증주의와 상대주의를 향한 새로운 경향성"이 존재한다. 콘젤만은 역사실증주의와 상대주의를 지향하는 이 경향성을 "해석", 이를테면 실존주의라는 철학적 매개를 통하여 해석되는대로 재구성이 현대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을 강조한 불트만에 반대하는 방법에 의하여 상쇄하려고 한다. 콘젤만은 "역사적 재구성, 즉 그 시대적 제한성을 지닌 신약의 사상 세계를 제시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불트만파에 있어서의 이 변화는 실존주의 해석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 중에서조차 신약신학이 유동적 상태에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불트만과 콘첼만의 실존주의적 연구 방법이 신약의 전 견해들을 대변치 못하였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불트만과 콘첼만의 실존주의적 연구 방법은 히브리서, 베드로전.후서, 야고보서, 유다서, 계시록과 같은 신약 문서들을 주목할 가치없는 것으로 여기게 한다. 이것은 실존주의 연구 방법의 타당성에 관한 다른 질문들을 제기한다.

 

3. 역사적 연구 방법

 

1)베르너 큄멜

 

큄멜은 불트만 학파에 속하지 않는 대신, 현대의 역사적 연구 방향을 대표하며 콘첼만이 생각하는 신약신학의 기초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한 그것, 즉 "선포자 나사렛 예수와 선포된 메시아이며 하나님의 아들인 주가 된" 그것을 추구하고 있다.그의 방대한 저서 {신약신학}(1969)은 각 문서가 전하는 선포형태에 나타난 통일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1장; 첫 세 복음서들에 따른 예수의 선포로 의식적으로 예수의 메시지를 배치한다. 2장; 부활사건때문에 새로운 빛에서 사물들을 보는 원시기독교 공동채의 신앙을 다룬다. 3장; 바울의 신앙이 팔레스틴 사도적 공동체로부터 그 이후의 이방 기독교 공동체에로의 전환점에 위치한다.큄멜은 바울이 예수에 대한 건전한 증인이며 해석자임을 주장한다. 이것은 핵심적으로 볼 때 그 차이가 단지 지엽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4장; 네째 복음서와 서신들에 있는 그리스도에 관한 요한의 메시지라는 제목으로 취급된다. 요한은 예수라는 인물뿐 아니라 예수에 의해 도래할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적인 구원행위와 결부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와 이 구원을 종말론적 구원의 사건으로 선포한다. 5장; 예수 - 바울 - 요한 : 신약의 심장이란 제목으로 예수, 바울, 요한의 메시지의 통일성에 관해 질문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 사이에 사상의 발전이 있으며 직선적인 연속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나 신약의 주요 증언들이 그들로부터 나온다고 큄멜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신약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약의 통일성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불트만이나 콘첼만에게는 해석은 재구성과 분리되어 실존주의에 의해서 성취될 수 있는 반면에 큄멜은 재구성과 해석을 결합시킴으로서 해석이 재구성과 관련된다. 큄멜은 쿨만의 입장에 때때로 접근하며 해석을 대체로 포기하는 온건한 비판적 재구성을 제공하는 것을 일차적으로 관심한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다.

 

2)요아킴 예레미아스

 

예레미아스는 "실증적 - 역사적"연구 방향을 가장 잘 대표하는 학자이다. 그는 "케리그마 신학"으로 만든 불트만의 연구 방법을 비판하는 대표적인 비판가 중의 한 사람으로 "강력한 역사적 반비평주의"를 전개하였다.그는 역사적인 진리를 제공하고 가현적인 증발로부터 말씀을 보호하려고 한다.

 

1971년에 예레미아스는 {신약신학 :예수의 선포}를 영어와 독일어로 동시에 출판하였다. 1장; 예수의 말씀에 대한 전승이 얼마나 신뢰할 만한가? - 이것은 역사적 예수에 관한 문제에의 관심을 말한다. 예레미아스의 관심은 우리의 자료들이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가지고 예수의 선포의 근본적인 사상을 끌어내기에 충분한지를 조사하는데 있다. 그 가능성이란 부활이전 전승에 대한 역사적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 성취 방법은 1. 일차적으로 비유사성의 척도를 채택하는 비교 방법 - 이것을 근거로 어떤 말이나 또는 주제가 유대교로부터 왔는가 혹은 초대교회로부터 유래하였는가를 시험해 볼 수 있다. 2. 언어와 양식에 대한 검토이다. 이 두 방법은 상당히 분명한 결과를 주며 예수의 말 자체를 재구성하게 한다. 2장; 예수의 선교로 예수와 세례 요한, 예수의 소명, 계시의 진수, 하나님에 대한 호칭으로서의 아바, 선교에 대한 긍정이란 부제들을 가지고 있다. 3장; 구속 시기의 시작, 4장; 은혜의 시기, 5장; 끊임없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신앙의 마지막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을 형성하도록 하는 예수의 메시지의 인간적 매력을 기술한다.

 

6장; 자신의 선교에 대한 예수의 증언에서 그의 방법론이 드러난다. - 독일어 제목은 예수의 통치권 자각으로 예수가 자신을 구원을 가져오는 자로 이해하였음을 보여준다.또한 인자로서, 고난받는 자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미리 선포한 예수를 말하고 있다. 예수의 고난에 대한 가장 중요한 어급들은 성레전적인 말들이라고 한다. 7장; 최초의 전승과 최초의 해석에서 예레미아스는 예수의 선포를 부활절에 관련시키려고 함으로서 예수의 선포를 넘어서고 있다. 독일어 2판에서는 교회의 증언과 예수 선포의 관련성에 관한 자신의 이해를 보여준다.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다중적인 교회의 증언, 세상 앞에서 그를 고백하고 그의 이름을 찬양하는 수많은 입들의 합창은 부르심에 대하여 성령이 역사한 응답이다...부르심은 응답위에 있다. 왜냐하면 예수는 주시며 주(主)는 그의 사자(使者) 위에 있기 때문이다. 위에 계신 주는 기독교의 모든 신학의 시작이며 끝이고 중심이며 척도이다".부활절 이후의 교회는 예수의 부름에 응답하였다. 그러나 이교회는 역사적 예수와 교회의 케리그마 사이의 연관성 또는 어떤 연관성도 실제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부활절 이후의 교회들에 부가하는 그런 종류의 창조 활동에 관여하지 않았다. 역사적 예수와 교회의 선포 사이의 연결을 증명하려고 한 고펠트는 예레미아스의 비교 방법에 의하여 유대의 환경에 관한 유비의 원칙이 예수를 순수하게 유대적인 현상으로 만든다고 통탄한다.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페린으로부터 예레미아스가 채택한 "비유사성의 표준"은 그 자체의 문제를 지니고 있다. 보다 기본적인 방법론적 문제는 예레미아스가 예수의 선포를 신약신학의 한 부분으로 제시하는데 대한 정당화에 관하여 침묵을 지키는데 있다. 예수의 선포가 신약신학의 기초와 토대를 구성한다는 것이 전적으로 자명한가?

 

4. 구속사적 연구 방법

 

1) 오스카 쿨만

 

쿨만은 초기 연구에서 초기 기독교의 신간 이해를 재구성하고, "이미"와 "아직"의 긴장 안에 있는 충만한 시간으로 그것을 해석함으로서 신약의 구속사의 기본적인 개요를 제공하려고 시도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구속사 연구 방법은 "'기독교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추구하는 것"만을 의미한다. 우리는 쿨만이 구속사의 작용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를 묻기 전에 그의 {역사 안에서의 구원}의 내용을 간단히 개관하고자 한다. 1부: "프롤레고메나" 와 2세기의 영지주의, 20세기의 종말론, 구속사와 관련되는 해석학에 대한 연구의 개관과 구속사의 정의. 2부: "구속사적 연구 방법의 기원" - 사건과 해석, 성서 증언들의 신앙, 불변성과 가변성 및 신약에 있는 구속사적인 인용의 통합. 3부: "현상학적인 특징들" - 역사와 신화, 구속사와 역사, 그리고 "이미"와 "아직"의 긴장을 강조. 4부: 구속사에 대한 "신약의 주요 유형들" - 예수와 함께 구속사의 시작. 구속사의 중간 시기, 요한복음, 그리고 구속사를 다룸. 5부: "조직신학과 교리사의 개관으로 구속사와 성서 - 이후의 시기" - 이 개관은 쿨만이 구속사를 신약 증언들의 본질적인 틀로 옹호하면서 불트만과 그의 추종자들이 명시한 바와 같이 신약신학을 실존주의적으로 연구하는데 대하여 도전하려함을 드러내고 있다. 쿨만은 "구속사는 역사 안에서 펼쳐지고 이런 의미에서 역사에 속한다. 성서적 구속사의 통합적인 측면은 역사적으로 취급 가능한 몇가지 사건들이 역사적 연구에 개방되며 한정된 관련성 안에 있는 세속사에 속하는 사건들은 역사 자체에 의해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에 관련된 여러 문제들에 대해 그는 세개의 뚜렷한 측면들을 강조하며 요약한다. 1) 예언자는 목격자가 되어야 하며, 비신앙인들에 의하여 이해될 수 있으나 그 안에서 어떤 계시를 볼 수는 없는, 사건 자체 : 2)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동조하는 예언자에게 그 사건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이 계시되는 것: 3) 이 계시들을 재해석하면서 다른 예언자들에게 부여된 이전의 구속사적 계시와의 관련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이런 점으로 보아 쿨만은 사건과 해석에 있어서 모호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폰라드는 "구속사적 관점이 시작된 과정은 구약의 모든 곳에서 더 이상 완전히 이해될 수 없다. 첫째로 가장 오래된 전승의 기원과 발전의 역사적 계기들을 항상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특히 제사적 고백 형식으로 쓰여진 구두 전승이나 구두 케리그마가 포함되었을 때 그렇다. 단지 위대한 역사적 개념들에서만 구속사적 해석과 재해석의 기원을 우리는 더 잘 알 수 있다"고 말한다.쿨만은 그의 전승사적 방법에 의존하여 그 방법을 이른바 "사건 그 자체"에 대한 변함없는 해석과 "구속사 전승"에 대한 후기의 재해석을 가지고 그의 구속사적 연구 방법에 재활용한다. 이로서 "구속사로부토 역사를 구분하는 것은 구속사 안에서 즉 사건들과 사실을 경험하는 가운데서 그 기사들을 적용하고 신앙을 통해서 그들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계시가 행하는 역할이다. 여기서 사건들은 하나님의 계시로 경험이 되며, 마찬가지로 기사들과 해석도 하나님의 계시로 이해된다"고 쿨만은 강력하게 지적한다. 그에게 있어서 "역사적인 구원 과정은 원시역사와 종말론적 역사를 포함한 모든 역사의 중심"이며 유형론은 "구속사적 관점을 전제"하며 "성서의 틀 안에서의 성취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 구속사와 관련된다."그의 공은 "신약의 메시지의 본질을 대표하는 것으로 구속사의 관점"을 주의깊게 숙고하여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쿨만은 "해석", 즉 구속사에 대한 신약의 종교적인 이해를 현대인들에게 적절한 틀로 변형하거나 해석하는 것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는 불트만과 더불어 하나의 결단이 신약에 의해 촉구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신약 케리그마의 풍부함을 여기와 지금에서의 "점진적인 종말론"으로 붕괴시킴으로써 종말론을 실존적으로 재해석하는 불트만의 비신화화와는 대조적으로 쿨만은 "이미"와 "아직"의 구속사적인 긴장이 신약을 이해하는데 열쇠가 된다고 주장한다."예수의 가르침을 포함한 신약의 전 신학은 이 긴장으로 특징짓는다". 쿨만은 "구속사적 신학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와의 관계성"이라고 상기시키고 신약의 구속사를 실존주의, 플라톤 주의나 어떤 다른 체계에 의해서 현재에로 해석하는 것을 거부한다.

 

2)조지 라드

 

라드는 북미대륙에서 잘 알려진 복음적인 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그의 {신약신학}은 구속사적 연구 방법에 속한다. 라드는 차일드가 전개한 것 처럼 성서신학과 신약신학을 구별하지 않는다. "성서신학은 하나님의 자기 - 계시와 인간의 구원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계시와 구원에 관한 바로 그 사상은 성서의 모든 곳에 내재해 있고 때로는 명시적인 몇가지 전제들을 포함한다. 이 전제들을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죄"라고 그는 말한다. 역사의 특유한 사건들 안에서의 하나님의 활동은 구속사의 일부분이다.라드가 "구속사" 또는 "거룩한 역사"라고 지칭하는 구원사는 일련의 사건들로 이루어지며, 하나님은 그 사건들 외에는 자신을 계시하지 않는다. 기독교 선포의 본질은 이같이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행위를 암송"하는 것이다. 그는 "성서신학은 성서에 담긴 신학을 그 자체의 역사적인 상황에서 그 자체의 형식, 범주, 그리고 사상 형태에서 설명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즉 신약신학은 일차적으로 기술적인 연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적인" 과제는 라드에게 있어서는 동시에 해석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라드의 신약신학은 여섯개의 중요한 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공관복음서들"을 다루어 신약신학의 역사와 성격에 대한 계발적인 장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그는 8장으로 나누어 예수가 설교한 왕국의 측면들을 다루고 5장에 걸쳐서 기독론적인 개념의 측면들을 다루면서 주제적인 단면을 제공한다. 2부: "네째 복음서"를 다루면서 이것이 어느 정도 공관복음서와 유사하거나 또는 유사하지 않은지를 발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3부: "원시교회"라는 제목 아래 사도행전의 신학에 관심을 둔다. 부활, 종말론적 케리그마, 교회에 관한 장들로 사도행전의 신학을 요약한다. 4부: "바울신학"을 다룬다. 라드는 바울신학의 중심을 데이비스와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한 도래하는 구속의 새 시대의 실현"으로 간주한다. 그는 바울 신학을 논의함에 있어서 경전에 있는 13개의 바울 서신 모두를 사용하여 바울 신학을 말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5부: "일반서신들"이란 제목으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유다서와 요한 서신들의 신학을 요약하고 있다. 6부: "묵시록". 5,6부에서는 유감스럽게도 그의 구조에 대한 이론적인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라드의 구속사 연구방법은 몇가지 방법론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의 연구 방법은 실현되지 않은 개념적인 통일성에 치우치고 있으며 그의 관심은 모든 신약의 문서에 미치고 있다. 말하자면 광범위한 어휘연구에 의해서 표현된 대로 중요한 성서적 개념을 취급하였으며 그 연구는 구속사에 통합되어 구속사를 표현하고 있다.

 

3)레온하르트 고펠트

 

고펠트는 그의 {신약신학}에서 현재까지 서술한 모든 신약신학에 관한 "연구의 역사와 문제점"이라는 단원을 쓰면서 특별히 약 1900년 이래의 다양한 입장들을 개괄하고 그 자신이 폰라드와 쿨만의 광범위한 구속사 연구 방법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쿨만의 입장을 반대하면서 신약은 "구속사를 보편적인 역사의 계획으로 이해하지 않고 약속과 성취의 상관성만을 안다고 지적한다." 그는 구속사에 대한 자신의 정의를 일차적으로 약속과 성취의 틀에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 - 비판적 방법을 배제하면서 구속사를 특별히 강조하지 않는다. 그는 "성서연구, 즉 비평주의, 유비, 상관성과 같은 역사적 - 비첥 방법의 원칙들이 신약의 자기 이해와 비판적인 대화를 하도록" 추구한다. 방법론의 측면에서 볼 때 "비판적인 대화"는 역사적인 연관, 말하자면 전승사적인 연관, 종교사적인 연관과 구속사적인 연관을 진지하게 다룬다. 고펠트는 신약신학의 목표를 "신약의 단일 문서나 문서군들로부터 예수의 사역이나 초대 교회의 선포와 가르침에 대한 모습들을 자료적으로 정리하고 연결시키도록" 시도하는 것으로 본다. "신약과 오늘날의 인간은 둘 다 서로 비판적인 대화를 해야 한다. 이러한 비판적인 대화가 해석에 대한 학문적인 다양한 시도들과 그 시도들의 전제들을 제시하는 것이 독자로 하여금 연구의 대화에 참여하여 그 자신의 의견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한다." 그의 저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1권>은 예수의 활동과 신학적인 의미라는 부제를 달고 그 제목이 지적하는 대로의 내용에 전적으로 전념한다. 1장에서 신약신학의 출발점에 대한 문제에 관련된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문제성들을 논한다.

 

 

신약성서의 기반은 예수의 지상활동에 관한 보도였으며 따라서 신약신학은 그 자체의 구도를 근거로 지상의 예수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약자체의 구조를 떠나서는 예수의 지속적인 영향에 대한 유비들이 당시의 인물들에게는 결여되어 있는 사실이 예수의 활동과 길로써 신약신학의 진술을 시작하는 것을 적절하게 만드는 역사적 이유를 제공한다. 예수의 활동에 대한 "역사적 틀"과 세례 요한의 구속사적 출발점에 대하여 간단히 논한 후 고펠트는 8개의 장에 걸쳐서 예수의 선포를 논한다. 2장은 "하나님의 통치의 도래"로 시작하는데 복음서 안에 있는 용어 개념과 그 관련어들을 간단히 기술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들의 배경을 구약, 유대교, 헬레니즘에서 간단히 개괄하면서 연구의 역사도 논의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다른 견해들과 대조되든가 또는 일치되는 신약의 자료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밝힌다. 3,4장에서는 예수의 요구로서 그리고 신적 통치권의 선물로서의 "회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5장은 "종말론적 갱신의 표현으로서 예수의 구원활동"으로 예수 활동의 한부분으로서의 이적을 관심하고 있다. 6장은 메시야적 자의식이 주제로 "예수의 자기 이해"를 다루고 있다. 7장은 "예수의 교회"에 대한 예수의 활동의 목표를 다루고 있다. 8장에서는 수난,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을 포함한 "예수의 최후"를 관심한다. <2권>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도 증언의 다양성과 통일성"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2부의 "초대교회"는 "교회로서의 예수의 제자직"과 "기독론의 시작"이라는 장들을 포함한다. 거기에 작용하는 신학적인 원칙은 "초대교회의 선포와 설교에 있어서 예수 - 전승의 형성과 부활절 - 케리그마에 대한 해설과의 사이의 대화적인 상관성"이다. 3부는 "바울의 헬라적 기독교"로서 헬라적 기독교의 문제에 대한 서론과 바울 신학의전제에 대한 장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바울신학, 특히 기독론, 선포의 사건, 의, 그리고 교회에 중심을 두고 있다. 4부의 "바울 - 이후 문서들의 신학"은 구조적으로 불완전하다. 첫째 장은 "베드로전서에 의한 사회안에서의 기독교인들의 책임"이라는 제목으로 베드로전서의 신학을 다루며, 또한 "요한 계시록에 의한 마지막 때의 기독교 - 이후 사회에서의 기독교인들"이란 제목으로 계시록의 신학을 다룬다. 둘째장은 야고보의 신학, 즉 제국의 신학과 "마태복음에서 예수 출현의 의미"라는 제목아래서의 마태 신학을 함께 다룬다. 3장은 구속사 신학자인 누가가 따르는 히브리서의 신학에 집중한다. 누가복음서의 신학을 사도행전의 신학과 분리해서 취급하는 것이 독특하다. 결론장은 요한신학에 대한 것인데 충분히 전개되지 않았다.결국 그의 책은 마가의 신학, 에베소서를 포함하여 이른바 바울 서신들, 목회서신들, 그리고 베드로후서와 유다서에 관해서도 취급하지 못한 채 끝마쳐졌다.

 

 

5. 결론적인 언급

 

신약신학의 네 개의 주요 연구방법에 대하여 우리는 방법론적 문제에 있어서 지도적인 신약신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추려 보았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주제적인 연구방법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주요 주제들을 종적으로 취급하는 단면적인 방법과 병존한다. 그러므로 이 방법의 주관성은 선택의 문제로 드러난다. 선택의 원칙은 신약학자로 하여금 언약 또는 하나님의 왕국, 기독론적인 원칙 등과 같은 신약이나 혹은 신약과 구약의 중요 주제를 선택하도록 한다. 이런 뚜렷한 제한성 - 선택의 원칙은 어디에 그객관적인 근거를 두는가 / 동질성의 원칙은 선택된 주요 주제나 주제들에 관해서만 작용할 수 있을 뿐이다 / 선택의 원칙이 주요 주제에 관련되지 않는 방법으로 사용된다면 주관적인 근거 외의 어떤 다른 근거에 의해서 어떤 주제들은 포함되며 어떤 것들은 생략될 수 있는가 - 은 중요하게 취급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성서 자료의 풍부한 다양성은 그 자료에 상응하는 연구 방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2) 신약신학의 주요 방법론적인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신약신학 안에서 차지하는 예수의 위치에 대한 질문이다. 기독교 신앙은 실제로 예수 자신에게로 소급되는가 또는 그것이 초대 교회의 산물인가? 이 물음은 앞으로 얼마동안 신약신학자들의 관심을 끌 것이다.

 

3) 방법론적인 문제성은 신약신학과 같은 그런것이 존재하는가의 여부, 또는 신약과 신약의 세계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오히려 "원시 기독교 종교사"로 불려야 하지 않을까의 여부에 관심을 둔다. 1970년대의 특징은 신학으로부터 종교로의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이 문제의 중요한 측면은 신약신학이 경전적인 문서에 제한되느냐에 관한 질문이다. 신약신학은 기술적 연구냐 또는 신학적 연구냐? 이질문으로 인해서 우리는 중심적인 방법론적 문제의 최종의 문제성에 도달하게 된다.

 

4)신약신학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방법론적 문제들 중의 하나는 역사적인 재구성과 신학적인 해석의 문제이다. 역사적 재구성의 문제는 스텐달이 "의미했던 것"과 "의미하는 것" 사이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기술의 방법"이라고 지칭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의미했던 것"에 대한 역사적이고 기술적인 연구 방법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신학적이고 분석적인 연구 방법과 관련되는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탐구 방법이 무엇이든지 간에 "의미하였던 것을 결정하려고 하는 기술적인 방법은 의미하는 것과 일치한다고 간주된다." 둘째 의미했던 것이 해독되고 조직적으로 번역되고 설명될 수 있는 전제와 사상등을 포함하며 이 설명들이 "의미하는 것"이 된다고 본다. 세째 "의미했던 것"은 그 시대와 그 시대의 문화에 의존하는 고대적 표현 방식인데 같은 현상에 대하여 현대적인 표현 방법으로 재기술될 필요가 있으며 이 재기술이 "의미하는 것"이 된다. 네째 그것이 "의미하였던 것둁"은 초대 기독교인들이 성서 본문을 사용했던 방법에 대히 언급하며,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이것이 현대인들에 의해 사용된 방법이다."의미했던 것"과 "의미하는 것", 즉 재구성과 또는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것과 신학적이고 규범적인 것을 구별하는데 대하여 몇몇 사람들이 비판을 하였다. 챠일드는 기술적인 방법을 그 방법의 제한성 때문에 반대한다.듈스는 "성서가 의미했던 것과 그것이 의미하는 것 사이의 철저한 분리에 있어서의 불안"을 언급하면서 성서가 의미했던 것도 규범적인 가치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메켄지, 스삐끄, 드 보가도 유사한 점, 제한된 역사적 강조점을 지닌 비규범적인 기술적 방법에 의하여 어떻게 성서 안의 실재에 도달할 수 있을까를 질문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성서의 실재의 성격을 미리 정의 하는 일 없이 성서 본문의 성격을 그 본문을 넘어서려고 하는 것으로 또 그 의도와 시대를 통한 지능에 대하여 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성서신학의 과제 중 하나겠는가?

 

 

신약신학의 중심과 통일성

 

1. 문제 제기

 

신약 연구에 있어서 중요시되는 것은 신약의 중심과 통일성에 대한 문제이다. 이 질문은 많은 점에서 신약신학의 성격에 대한 현대의 논의 가운데 핵심에 속한다. 궁극적인 질문은 만일 신약신학을 찾아낼 수 있느냐 또는 신약성서에는 어떤 통일성도 식별해 낼 수 없는 다중적이고 다양한 신학을 제공하느냐의 문제이다.

 

가블러는 1787년에 이미 자신의 기준을 근거로 "상이한 저자들과 그들의 시간과 장소에 따라 각각 사용한 독특한 언어 형태들을 구별하는 과제를 촉구"했음을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각 저자들의 개념들을 주의 깊게 수집하여 그들의 장소에 따라 개념들을 정리하는 연구 방법은 오늘날 성행하는 논의의 전면에 나타나 있는 "내용비판"을 요구한다. 이것은 두 전제를 포함한다. 1) 성서의 권위는 계시의 실저적인 근원으로서의 이성에 의해 대치되었다. 2) 어떤 교의학적인 권위없이 절충적인 종합으로 끌고 가는 개별적 저자들의 "개념들"을 묻는 것이 적절하다. 스토그는 신약에 있는 갈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것이 역사적 비판주의의 방법론적인 경항성의 결과라고 상기시킨다. 다양성의 문제는 성서 자체가 경전적인 권위를 주장하는 것을 근거로 이 비판주의에 대한 성서의 저항으로 인해 특별히 날카롭게 된다. 신약의 중심 문제에 있어서 모든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통일성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통합하는 측면으로 나타나는 어떤 것이 있느냐는 문제, 또 신약신학을 위한 조직 원리로서 그리고 여러 형태로 경전 안의 경전을 확언하는 내용 비판의 기준으로서의 중심에 관한 물음으로 이중적인 구별이 가능하다. 내용비판의 기준은 권위: 분열, 전체:선택, 객관성:주관성과 같은 대립 개념을 의미한다.신약신학의 조직과 구성에 있어서 어떤 중심도 "다른 가능성에 대항하는 배타적인 권리를 필수적으로 주장할 수는 없다. 신약신학의 가장 적합한 중심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은 신약신학을 제시하는데 하나의 중심이 필요한가라는 질문과 마찬가지가 된다.

 

2. 신약의 중심에 관한 질문

 

1) 인간론 :신약신학을 진술하는 과제는 불트만에게는 "신앙적 자기 - 이해를 케리그마와 관련하여 명백히 하는 것"을 의미한다. "명백히 하는 이 과제는 바울과 요한 신학을 분석하는데서 직접적으로 이루어진다". 불트만은 하나님에 관한 모든 주장은 동시에 인간에 관한 주장이고 그 역도 성립하므로 바울의 신학은 동시에 인간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신약의 중심으로서 케리그마적 인간학은 너무 제한되고, 너무 협소한 것은 아닌지, 또 그 자체의 방법으로 "경전 안의 경전"으로 이끄는 미리 정해진 수단이 아닌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불트만의 제자 브라운은 신약의 다양성을 완전히 극단적인 불일치까지 밀어붙인 학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로 다른 교훈들과 다양한 층들이 신약의 전체가 아니라면, "본질적인 부분들이 파악될 수 있는 내적 중심점"을 부정하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대답하고 있다. 신약저자들의 "상호 모순"이 브라운의 관점에서는 신학적 인간론을 통하여 극복된다. 그러므로 브라운이 말하는 신약의 "내적 중심"은 신학적 인간론이다. 브라운의 신학적 인간론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언급하는 일 없이 기독교의 성격을 정의하려고 한다. "신앙의 자기 이해라는 상수는 인간론이 아니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앙, 즉 기독론적인 케리그마를 향하고 이 케리그마를 자신의 고백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이다""케리그마적 인간론"(불트만)과 "신학적 인간론"(브라운)은 둘 다 그것이 신약의 중심에 관한 물음에 부딪칠 때 부족하다는 것이 발견된다.

 

2) 구속사 :구속사에 가장 폭 넓게 관여한 학자는 쿨만이다. 구속사를 부상시키려는 쿨만의 시도는 신약의 "역사가 '구속의 역사'이다"라고 말하는 그랜트의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랜트는 다양성 안에 있는 통일성을 인식하고 구원사를 확증하는 한편, 구원사를 신약의 통일적인 중심으로 채택하지 않음으로써 다은 사람들이 한 것처럼 쿨만과는 구별된다. 클만에서 있어서 그리스도는 시간의 중심이지 신약의 중심은 아니다. 쿨만의 {역사 안에서의 구원}에서 그는 구속사에 대한 신약의 주요 유형은 예수, 원시 기독교, 바울, 그리고 네째 복음서에 있다는 증거를 제공하려고 한다. 이것은 "구속사적 관점"이 초대 기독교의 신앙, 사상, 그리고 활동의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쿨만의 사상에서 "구속사"는 구약과 신약의 경전이 의존하는 근거라는 것을 주지하여야 한다. "성서 자체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둁운 "구속사"이며 따라서 경전의 사상과 그 사상의 구현 방법이 모두 성서의 구속사의 중요한 부분이다. 쿨만은 "경전 안의 경전"에 관한 문제, 즉 자료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성서 안의 규범이나 표준의 문제에 관하여 언급한다. 그는 성서의 전 경전성을 진지하게 취급한 데 대해 인정을 받아야 한다. 쿨만은 신약과 구약의 전 성서를 하나로 묶는 주제를 찾기 위하여 시도했던 드물게 보는 유럽 대륙의 신약학자이다. 그는 구속 사관 개념이 어떻게 생각나게 되었느냐는 질문과는 별도로 구속사가 중요한 성서적 개념이라는 것을 논증하였다. 그러나 "구속사가 정말 통합하는 주제인가"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3) 계약, 사랑, 그리고 기타 제안들 :성서의 계약 개념이 최근의 성서 연구의 전면에 나타났다. (로레츠, 펜샴 등) 사실은 신약의 전 분야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게약에 관련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게약 개념은 기껏해야 신약신학을 단면적으로 연구하게 할 수 있을 뿐이다. 신약의 증언들은 단일적인 방법에 의해서 즉 그 방법이 하나님의 통치권,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과 인간의 교통, 부활, 또는 약속과 같은 그런 주제, 개념, 또는 소재들을 통한 것이든지 간에 단일적인 방법에 의해서 정당하게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게 보인다.

 

4) 그리스도론 :라이케는 "그리스도 사건 안에 신약의 실질적인 통일성이 있다"고 시사한다. 로버트슨은 "그리스도론적인 주제"안에서 "신약신학 전체를 통합"할 수 있는 요소를 본다. 무어는 구속사를 신약의 기본 개념으로 강력하게 주장하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중심으로부터 구속사의 선이 계약을 거쳐 창조 너머에로까지 소급되며, 교회와 교회의 선교를 통하여 재림 이후로까지 뻗쳐간다"는 것을 강조한다. 라드는 단일 주직 원리의 관점에서 쓰여진 신약신학은 커다란 손실을 근거로만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약에는 희생되어서는 안될 풍부한 다양성이 존재한다." 쉬라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약의 중심을 반대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약의 중심이라고 말하고 멈추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것이라고 말한다. 헹엘 역시 그리스도론적인 중심을 긍정하나 그것을 서술할 수 있는 공식은 '그리스도로만', '은혜로만', '죄인의 의인'과 같이 다양하다고 시사한다.

 

 

리젠펠트는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였다고 여기는 예수라는 인물을 어떤 점에서 언급한다는 것이 유일한 공통 분모가 되는 신약 안에 있는 믿음의 이질적인 요소들이 이렇게 놀랄만한 짧은 시간 동안에 수집이 되고, 통합되며, 동질적으로 고려된 것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가에 관한 질문을 제기한다. 또한 바일너는 역사적인 예수가 어떻게 고양된 그리스도로 선포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신약신학의 과제라고 시사한다. 바일너와 그의 동료인 쉘클레에게 있어서 이것은 신약의 통일성은 하나의 교회를 근거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스너는 신약에 의해 복음의 중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동터오는 종말론적 구원의 때에 관한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큄멜은 "처음부터 신약신학에 대한 관심은 신약의 다양성과 통일성의 문제와 부닥치게 된다"는 것을 주지한다. 미리 결정된 어떤 중심도 신약신학을 기술하는데 조직 원리로 작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의 주장은 1)공관복음서의 최초의 전승에서 감지될 수 있는 예수의 메시지와 그 인물, 2)공동체의 선포, 3) 이 선포에 대한 최초의 신학적 성찰인 마음의 성찰에서 신약의 중심이 가장 순수하게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 세개의 집단을 근거로 큄멜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다음의 이중적인 측면이 신약의 중심을 구성한다고 시사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종말을 위하여 약속하신 그의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하게 하였으며, 이 그리스도 사건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만났으며, 이 세상의 감옥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시려고 추구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우리와 만나시기를 원하시며 살아있는 사람을 위하여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큄멜은 루터교 신학자로서 "경전안의 경전"이라는 실질적인 원리에 전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준 선택을 정당화 하지 못했다. 로제는 루터의 원칙인 "그리스도를 명시하는 것"을 따르며 "신약의 증언의 신학이 그리스도론에서만 나올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인간론이 그리스도론을 통해서만 규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신약에 있는 다양한 표현의 중심과 통일성은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명시되었던 십자가 위의 일회적인 그리스도 사건에서 발견된다. 케제만은 죄인의 의인에 관한 메시지를 바울 신학의 중심으로 보려고 할 뿐 아니라, "경전 안의 경전" 원칙을 지지하면서 그것이 신약 전체의 중심이라고 시사한다. 신약과 심지어 성서 전체의 중심으로서의 죄인의 의인화라는 "신학적 공식"에 관한 간접적인 반응을 루츠에게서 발견한다. 그는 "십자가의 신학"을 신약의 중심으로 주장한다. 신약은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이 그리스도 중심성은 상호 연관되는 다양한 측면을 소유한다. 다양한 측면들이 상호 관계 속에서 주의깊게 연구되고 설명되고 이해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사실 신약의 중심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는 어떤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약의 중심을 추구하려는 목적 중의 하나는 신약의 통일성의 근거를 제시하려는 것이며, 신약신학의 구조나 체계적인 진술에 근거를 제공하려는 것이라는 사실이 반복하여 주지되어 왔다. 이 전제들은 다양하고 복합적이며 상당히 풍부한 신약의 자료들이 신약의 중심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정돈되고 배열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틀, 공시그 개념, 소재, 또는 사상 중 어떤 형식으로든지 가장 주의깊게 고안된 중심조차도 결국에는 일방적이고 부적절하며 불충분하다는 것이 드러나며, 따라서 그것은 신약의 다양성, 다중성, 그리고 풍부성에 관하여 불가피한 오해를 일으키는 것이다. 우리는 신약의 중심에 관한 질문의 합법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또한 신약의 어떤 중심도 그것이 조직 원리로 사용되는 데 있어서 신약의 전 경전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하게 넓고, 깊고, 광범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약의 역동적이고 통합적인 중심이다. 신약의 그리스도 중심성은 신약신학이 쓰여지는 근거가 되는 구조로 변형되어서는 안된다.

 

 

3.신약의 중심과 경전 안의 경전

 

신약의 중심에 관한 현재의 논의는 경전 비판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루터파의 고백에 속하는 현대의 학자들은 모두 역사 - 비평 방법을 사용하여, 겅전 안의 경전 원칙에도 똑같이 관심하지만, 그들은 신약의 이 중심이 "경전 안의 경전"으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통일성의 기준에 대한 어떤 선택도 주관적이며 임의적일 수 밖에 없다." 큉은 "경전 안의 경전"에 대한 계획에 반대하는데 그 계획은 성서보다 더 성서적인 것, 신약보다 더 신약적인 것, 복음서보다 더 복음서적인 것, 그리고 심지어 바울보다 더 바울적인 것을 요구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전이해가 신약에 근거하지 않고 루터파의 전통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내용 비판과 경전 비판의 목적으로 채택된 "경전 안의 경전"으로 쓰이는 중심에 관한 또 다른 비난은 그것이 불가피한 감소주의라는 것이다. 큉은 신약경전의 전체성으로부터의 선택이 종파의 증가와 이단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신약의 경전을 그 전체서 안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에만 하나의 교회를 기대할 수 있다. 에벨링은 시사하기를 신약의 다양성과 다수성 때문에 어떤 단일한 전승도 "전수되어야 할 전승으로 지적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전수되어야 할 전승이 바로 복음서에 권위를 부여하는 성육화된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라는 인간 자체이다는 결정적인 사실을 지적한다. 신약의 전체성을 적절하게 대변하는 신약신학의 연구 방법은 임의성(큉, 에벨링, 디임), 주관성(쿨만, 마이어), 감소주의(큉)를 허용할 수 없다. 이런 것들은 성서(전승) 밖에서부터 또는 성서 안으로부터 중심의 형태로 선별 원칙을 택하는데 내재해 있는 것이다. 이런 원칙을 근거로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성서의 내용에 관한 가치 판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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