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롭다 함 받음에 대해(롬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 2:13)
로마서 2:13의 ‘의롭다 함을 얻을 것이다’는 표현은 로마서 3:24, 28의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표현과는 가리키는 바 대상이 다르다. 앞의 것은 미래에 마지막 심판 날에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선언 받을 것을 말하지만(cf. 롬 2:16), 뒤의 것은 현재 이 세상에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 받는 것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말한다(롬 5:1).
그러나 둘 다 의롭다 함을 받는 원리와 근거는 같다. 둘 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 받는다.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현재 칭의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 받고, 미래 칭의는 ‘행함’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율법을 행하는 자’란 율법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가 아니라 율법을 듣고 행하는 자 곧 참 믿음이 있는 자를 가리킨다. 참 믿음이 있는 자는 율법을 행하게 된다. 물론 100% 다 행하는 것은 아니지만(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함에 휩싸여 있지만), 최소한 율법을 지켜 행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럴 때에도 의롭다 함을 받는 근거는 그 사람의 ‘행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며(과거), 현재 의롭다 함을 받은 존재가 되었으며(현재), 또 앞으로 마지막 날에 의롭다 함 받을 것이다(미래). 이런 사람이 율법에 대해 가지는 태도를 말할 때에 단지 ‘율법을 듣는 자’가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를 가리켜 말할 때에 성경에서 또한 ‘의인’, ‘의로운 자’, ‘정직한 자’, ‘겸손한 자’, ‘선을 행하는 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에 대해 가지는 내적 관계는 ‘믿음’이며, 눈에 보이는 외적 모습은 ‘행함’이다.
이처럼 우리가 경우에 따라 여러 관점에서 말할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의롭다 함 받고 구원받는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이며, 그 공로를 받는 수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따라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행 15:11; 엡 2:8; 딤후 1:9; 딛 2:11; 3:7; 롬 3:24).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은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게 된다. 100% 다 지킨다는 말이 아니라 지켜 행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이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는 거룩하게 살려는 소망을 가지게 된다. 그 성령이 우리를 도우심으로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대적하고 선한 일을 행하기를 원하게 된다(갈 5:16-17). 따라서 이런 사람은 차츰 차츰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갈 5:22-23). 이것도 순전히 나의 노력으로 맺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맺는 것이다. 따라서 ‘칭의’뿐만 아니라 ‘성화’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게 된다.
그러나 성도가 이 세상에서 맺는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지극히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제114문)은 이렇게 질문하고 답한다. “하나님께 회개한 사람은 이 계명들을 다 지킬 수 있습니까” “아니요. 가장 거룩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는 이 순종의 작은 시작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결코 율법을 다 지켜 행할 수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율법을 다 이루셨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의 공로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의롭다고 칭함 받았다(법적 의미). 우리 자신이 의롭게 변화된 것이 아니다. 법적으로 의롭다고 칭함(선언)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의롭다 함 받은 우리가 성화(聖化)의 노력을 기울일 때에도 여전히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루는 성화는 지극히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화(거룩하게 됨)의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깨끗하게 하신 목적이 우리가 거룩하게 되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救贖)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 2:14) 같은 맥락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한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따라서 성도가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내가 잘 났다는 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정죄가 아니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한다. 우리의 구원과 우리의 조그만 성화도 다 하나님의 은혜요 성령의 역사임을 고백해야 한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건강,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해야 한다. 따라서 교만이 들어올 공간이 전혀 없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행해야 한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10)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삼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 돌리는 삶이 되기를 기원한다. (2014. 12. 30. 말씀나라). 변종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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