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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서신

사도바울의 일생 및 선교 / 밀레도의 고별설교

by 은총가득 2021. 3. 5.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의 일생

 



바울(Paulus: 작은 자)의 일생


길리기아의 다소 출생의 유대인. 이름은 ‘사울’이다.
그는 그리스 문화의 교육을 받고, 로마시민권을 가졌으며 고명한 율법박사 가말리엘의 제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열렬한 바리새파로서 그리스도 교도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던 중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출현을 경험하고,
3일간 실명 상태가 되어 소명을 받고 사도가 되었다.


3회에 걸친 대전도 행으로, 로마에까지 그 발자취를 남겼다.
그 동안 옥에 갇히는 등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도,?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사명을 다하였으며,
그의 높은 학식이 더욱 빛을 발하여 그리스도교의 기초를 굳히는 데 크게 성공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교의 최대의 전도자였고, 또한 최대의 신학자였으며, 오늘의 그리스도교가 있게 한 그리스도교 형성 사상 가장 중추적 인물이다. 그리스도교의 신학은 그에 의해서 틀이 잡혔으며, 후세에 끼친 영향은 헤아릴 수가 없다. 여러 서신 속에 전개된 그의 사상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살아야 할 우리 인간은 우선 죄 지은 인간으로서 죽었다가,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몸소 그것을 실천하였다.


주후 67년경에 황제 네로에 의해 투옥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순교를 당하였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행18:9).


1. 바울의 가정(家庭)
① 유대인으로 길리기아다소에서 출생함(행22:3)
② 베냐민지파요히브리인(빌3:5)
③ 율법으로 바리새인(행23:6)
④ 로마 시민권 있음(행22:25-28)
⑤ 누이가 예루살렘에 살았음(행23:16)
⑥ 생질이 바울을 도움(행23:16).


2. 바울의 성격(性格)
① 바리새인의 입장에서 흠이 없는 사람(빌3:5-6)
② 조상의 유전에 열심이었음(갈1:14)
③ 성격이 급하고 교만하였음(행9:1,15:39;고후12:7)
④ 교회를 핍박함(행8:1,9:1,2)
⑤ 건강이 나쁘고 말이 시원치않았음(고후10:10).


3. 바울의 청년기(靑年期)
① 스데반을 칠 때 옆에 있었음(행7:58)
② 열성적인 교회 핍박자(행9:1-3,22:4)
③ 장막 만드는 일을 배움(행18:3)
④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함(행22:3)
⑤ 율법을 준수함(행26:5).


4. 바울의 1차 전도(傳道, 바나바와 함께) :
① 실루기아 > 구브로 > 살라미(요한 동행, 행13:5)
② 바보(엘루미가 소경됨, 총독 회심함,행13:8-12)
③ 사울을 바울로 개명함(행13:9,13)
④ 버가(마가 요한이 떠남(행13:13,15:37-39)
⑤ 안디옥(전도의 열매 얻음, 쫓겨남,행13:14-51)
⑥ 이고니온(전도열매 맺음, 쫓겨남,행14:1-6)
⑦ 루스드라(앉은뱅이 치유,돌로 맞음,행14:8-19)
⑧ 더베(많은 사람을 제자삼음,행14:19-21)
⑨ 루스드라 >이고니온 > 안디옥(믿음 권면,행14:21-23)
⑩ 밤빌리아 > 버가 > 앗달리아 > 안디옥으로 돌아옴(이방인 전도 보고,행14:24-26)
⑪ 베니게 >사마리아 > 예루살렘(이방인에게 율법과 할례를 강요 않기로 결정,행15:4-15:35).


5. 바울의 2차 전도(傳道, 실라와 함께 함)
① 수리아 > 길리기아(바나바와 헤어짐,15:40,41)
② 더베 > 루스드라(디모데가 합류함,16:1-3)
③ 브루기 > 갈라디아 > 무시아(16:6,7)
④ 드로아(환상을 봄,16:9)
⑤사모드라게 > 네압볼리 > 빌립보(루디아회개,투옥, 간수의 회개, 옥에서 풀려남,16:11-40)
⑥ 암미볼리 > 아볼로니아 > 데살로니가 > 베뢰아(성경 강론,17:1-12)
⑦ 아덴(사람들과 변론함, 믿는자 생김,17:15-34)
⑧ 고린도(환상을 봄, 재판 받음18:1-17)
⑨ 데살로니가 전후서 기록
⑩ 겐그리아(머리 깎음,18:18)
⑪ 에베소(유대인과 변
론함,18:19-21)
⑫ 가이사랴 > 안디옥(18:22).


6. 바울의 3차 전도(傳道)
① 갈라디아>브루기아(제자 굳게 함,18:23)
② 에베소(두란노서원, 은장색들의 소동,19:1-41)
③ 고린도전.후서, 로마서, 갈라디아서 기록
④ 마게도냐 > 헬라(20:1-3)
⑤ 빌립보 > 드로아(유두고 살려냄,20:6-12)
⑥ 앗소 > 미둘레네 > 기오 > 사모(20:13-15)
⑦ 밀레도(장로 청하여 권면함,20:15-38)
⑧ 고 스 > 로도 > 두로(21:1-5)
⑨ 돌레마이 > 가이샤랴(예루살렘 가기를 만류함,21:714).


7. 예루살렘에 돌아온 바울
① 결례를 행함(21:26)
② 유대인들이 죽이려함(21:27-31)
③ 군사들에게 들려감(21:31-36)
④ 바울의 간증(21:37-22:21)
⑤ 로마인임을 밝힘(22:25)
⑥ 공회에서 변론(22:30-23:10)
⑦밤중에 환상을 봄(23:11)
⑧ 유대인의 살해 음모(23:22)
⑨ 가이사랴로 호송됨(23:23-33).


8. 가이사랴에서의 바울
① 헤롯 궁에 갇힘(23:33-35)
② 더둘로가 송사함(24:1-9)
③ 바울의 변론(24:10-21)
④ 2년간 구류당함(24:27)
⑤ 가이사에게 호소 원함(25:7-11)
⑥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론(26:1-29).


9. 로마로 이송되는 바울
① 가이사랴 > 시돈 > 루기아미항(27:1-8)
② 광풍에서 하나님의 보호 받음(27:9-44)
③ 멜리데섬에서 이적 행함(28:1-10)
④ 수라구사 > 레기온 > 보디올 > 로마(28:11-14).


10. 로마에서의 바울
① 군사가 지킴(28:16)
② 전도활동(28:17-31)
③ 에베소서,빌레몬서 기록
④ 빌립보서, 골로새서 기록
⑤ 석방(AD 64-67 ?)
⑥ 디모데전서, 디도서 기록
⑦ 서바나, 그레데에서(딛1:5)
⑧ 아시아에서(딤후4:13)
⑨ 마게도냐에서(딤전1:3)
⑩ 두 번째 체포(AD 67 ?)
⑪ 디모데후서 기록
⑫ 순교(AD68 ?).


11. 바울의 서신(-書信, pauline epilstes)
다소 의견의 차이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다음 13통을 말한다.
1) 바울 한사람의 이름으로 : ① 로마서(주후 60년경) ② 갈라디아서(주후 54년경) ③ 에베소서(주후 64년경) ④ 디모데전서(주후 65년경) ⑤ 디모데후서,(주후 67년경) ⑥ 디도서(주후 65년경).


2) 바울과 디모데 두 사람의 이름으로 : ⑦ 고린도후서(주후 60년경) ⑧ 골로새서(주후 64년경) ⑨ 빌립보서(주후 64년경) ⑩ 빌레몬서(주후 64년경).


3) 바울과 소스테네 두 사람의 이름으로 : ⑪ 고린도전서(주후 59년경).
4)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의 세 사람의 이름으로 : ⑫ 데살로니가전서(주후 54년경) ⑬ 데살로니가후서(주후 54년경),




바울신학(-神學)


1) 그리스도론 : 바울이 개종 직후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또는 그리스도)이라고 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여 친히 깨달은 바이다. 그리스도의 계시 사건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속박'과 하나님의 자유'라고 하는 존재 양태를 갖게 되었고, 여기에서 신학적인 모든 문제를 전개하게 되었다.


2) 구원론 :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속죄함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이다. 이것이 칭의이다. 인간은 악령, 율법의 힘, 육의 지배, 죄의 중압 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속박과 중압에서 인간을 속죄하고 구출하여 그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와 해방을 준다. 이것이 구원이다. 하나님이 친히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 죄를 담당케 하시고 그가 중보자가 되셔서 비로소 하나님과 인간과의 단절된 관계가 회복된 것이다. 이것이 화해이다.


3) 그리스도인의 행위 : ① 믿음은 선행을 발생시킨다. ② 선을 행치 않으면 믿음이 식어진다. ③ 선한 행실 자체가 믿음의 구체적 방편이다.


4) 교회론 :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교회와 굳게 결부시키고 있다. 성도 전체가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옛 율법이 중심이었던 성전에 대립하는 새로운 성전이다. 예배와 함께 세례와 성찬은 중요한 교회의 임무요, 특권이기도 하다.


5) 종말론 : ① 세상 끝날이 이미 왔다는 것이다. ②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최후 승리의 그날이 오는 것은 확실한 것이다. ③ 기독자들의 소망하는 마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다. ④ 기독자들의 천국 생활의 형태는 영적인 몸이 될 것이라 했다. 바울신학에 있어서 또 중요한 것은 참된 종교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는 것이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가 앞서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 사전 [전신갑주]에서 <cafe.daum.net/jclm>

 

 

사도 바울의 일생 노정과 성경의 수(1)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이 바울이다. 바울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에 나타나 있다. 이 책들은 바울의 일대기를 기록함에 목적이 있지 않고, 바울을 통해 진행되는 하나님의 구속 경륜에 초점을 두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바울의 일대기 속에 몇몇 특별한 숫자를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의 숫자는 정확성과 선별의 의미를 갖는다. 한 숫자는 다른 수로 대체될 수 없는 정확한 값을 가지며, 여러 사건 중에 해당 숫자를 선별해서 기록한 것에는 중요한 영적 교훈이 담겨져 있다. 그렇다면 바울의 일생 노정 속에 나타난 숫자들은 어떠한 구 속 경륜을 품고 있을까?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주전 36년 스데반의 순교 사건에서 ‘청년’(헬라어 ‘네아니아스’, 약 30-40세를 가리키는 표현)의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행 7:57-58). 이후 그는 교회를 잔멸하는 일에 열정적인 박해자였지만(갈 1:14, 행 8:3, 9:1-2, 22:19-20, 26:10-11), 같은 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면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행 9:1-19).

 

# 바울의 연단 13년

(1) 아라비아에서의 3년 연단

회심 전의 바울의 악명이 얼마나 높았는지 그가 회심 직후 다메섹에서 예수를 증거하자 사람들은 예수 믿는 자들을 속이려는 계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러 날이 지날수록 바울의 말에 힘이 있고 유대인들이 굴복하게 되자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에 다메섹 성도들은 바울을 성 밖에 달아내려 피신시켰다(행 9:24-25, 고후 11:32-33). 바울은 피신 후 고향으로 가거나 사도들을 만나러 가지 않고 먼저 연단을 받고자 했다. 

 


(2) 다소에서의 10년 연단

주후 38년 아라비아 광야에서 연단을 마친 바울은 곧장 사도들의 대표인 베드로를 만나고자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 사도 외에는 다른 사람들을 보지 못한 채 예루살렘에 15일을 거했다(갈 1:18-20). 예루살렘에 머무르는 동안 바울은 유대인들과 변론하며 예수를 증거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고자 했고, 이 소식을 들은 성도들은 바울을 항구 도시 가이사랴로 데리고 가서 그의 고향 다소로 피난 보냈다(행 9:28-30).

아마도 청년 바울은 다소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사역에 뛰어들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고향 다소에서의 생활은 10년이나 이어졌다.1) 청년의 혈기를 억누르고 복음의 뜻을 펼치지 못한 채 때를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그러나 이 기간은 바울의 영적인 지혜가 깊어지고 열방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때가 차자 주후 47년 안디옥 교회의 설립과 함께 바나바가 찾아와 바울을 청빙했고(행 11:19-26), 바울은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함께 1년간 목회에 힘썼다. 이듬해인 주후 48년에는 성령의 명령과 금식기도 가운데 이방을 전도하는 선교사로 파송 받았다(행 13:1-3).

 

성경에서 13이라는 숫자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등장한다. 창세기 14:4에서 가나안 연합군이 그돌라오멜을 배신한 것도 ‘제13년’이었고, 마가복음 7:20-22에서는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13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13이라는 숫자는 믿음으로 극복해내는 자에게는 도리어 새 역사의 시작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에스더서를 보면 하만의 궤계에 의해 정월 13일에 유다인을 죽이려는 조서가 선포되었고 아달월(종교력 12월)을 제비 뽑아 아달월 13일에 이를 실행하고자 했다(에 3:7, 12-13). 그러나 아달월 13일 바로 그날은 “유다인의 대적이 저희를 제어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제어하게 된 그 날”이 되었다. 바울의 고된 13년 연단은 도리어 그를 정금 같은 모습으로 연단하는 기간이 되었다(욥 23:10).

 

#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 14장소(행 13:1-14:26)

 

1. 실루기아

2. 구브로 섬 살라미

3. 바보

4. 밤빌리아 버가

5. 비시디아 안디옥

6. 이고니온

7. 루스드라

8. 더베

9. 루스드라

10. 이고 니온

11. 비시디아 안디옥

12. 밤빌리아 버가

13. 앗달리아

​14. 안디옥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을 이방 전도를 위한 선교사로 파송했다. 여행 초기에는 마가 요한이 수종자로 동행했지만(행 13:5), 마가 요한은 구브로 섬을 떠나 밤빌리아 버가에 도착하자마자 고된 전도여행에 지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버렸다(행 13:13).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실망하지 않고 비시디아 안디옥(안디옥 교회가 있는 수리아의 안디옥과는 동명의 다른 도시)에서 복음 전파를 시작하여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더베까지 이르렀다. 가는 곳마다 ‘영생 얻기로 작정된 자’들이 다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으며, 안디옥에서 이고니온으로 갈 때는 160km를 육로로 이동하며 4,000m가 넘는 다소 산맥을 넘어야만 했다.

 

우리에게 경계가 되는 것은 다소 산맥을 넘어가며 이동한 것은 바울과 바나바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을 핍박하며 쫓아낸 유대인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한다는 소리를 듣고 다소 산맥을 넘어 이고니온과 루스드라까지 따라와 핍박을 이어갔다(행 14:19). 그리고 결국 더베에서 바울을 만나 돌로 쳐 거반 죽게 된 것을 성 밖에 내쳐버렸다(행 14:19, 고후 11:25).

 

그러나 바울은 일어나 다시 성 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바나바와 함께 복음을 전하며 도리어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고, 앞서 들렸던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안디옥을 재차 방문했다(행 14:20-21). 이들은 바울이 돌에 맞아 죽게 되었다는 말에 심히 근심하였지만 바울이 찾아와 도리어 그들을 위로하며 금식기도에 동참하는 것을 보고 복음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행 14:22-26). 훗날 안디옥으로 귀환한 후 바울은 남부 갈라디아 지역에 해당하는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의 교회를 위해 갈라디아서를 기록해 보내며 다시 한 번 이들을 위로했다.

14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구원의 기초와 밀접히 관련되어 등장한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직전 지켰던 유월절이 정월 14일이며(출 12:25, 27, 레 23:5), 또한 14는 히브리어로 ‘דוד’로 표기하는데, 이는 이스라엘 왕조의 기초가 되는 다윗의 이름과 동일한 표기이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 42대는 14대씩 3기로 이뤄져 있다. 구속사 시리즈 제3권 ‘영원히 꺼지지 않는 언약의 등불’에는 “14는 7의 2배수입니다. 성경에서 7은 성부,성자,성령을 의미하는 하늘의 상징수인 3과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땅의 상징수인 4를 합한 수로, ‘어떠한 뜻이 완성되는 성취의 기간, 가득 채워진 충만, 전체’를 뜻하는 상징수입니다. 그러므로 일곱이면 완전하여 부족함이 없고, 일곱이면 그 자체로 전체가 되는 것입니다. 셈 족 사람들은 7의 두 배인 14를 더욱 무게 있는 수로 보았습니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은 분명 고됨과 핍박의 연속이었지만, 남 갈라디아 지역에 확고한 신앙의 교회들이 생기는 선교의 기초석이 되었다.

글_정디모데 전도사 삽화_박희영


사도 바울의 일생 노정과 성경의 수(2)

 

사도행전의 저자는 인간인 누가지만, 일점일획까지도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서 기록된 책이다(딤후 3:16). 따라서 사도행전의 기록에는 어떠한 오류나 누락이 없다. 사도행전에는 총 12,000km가 넘는 바울의 전도 여행의 모든 행선지가 기록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 가운데 중요한 장소들이 엄선됐다. 설령 잠시 스쳐 지나갔다 할지라도 구속사적 의미가 있으면 선별돼서 기록됐다는 것이다.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 17장소(행 16:1-18:22)

제2차 전도 여행의 배경

바울은 주후 49년 제1차 전도 여행을 마치자마자, 할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안디옥 교회의 대표로 바나바, 디도와 함께 예루살렘 총회에 파송됐다(갈 2:1). 이 총회에서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에게도 세례를 줄 수 있음이 가결됐고(행 15:4-21), 예루살렘 총회는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를 바울 일행과 함께 보내 안디옥, 수리아, 길리기아 지역의 교회에 총회 의결 사항을 전했다(행 15:22-35).

 

수일 후, 바울은 교회들이 의결 사항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바나바와 함께 돌아보기를 원했다. 바나바는 다시 마가 요한을 데려 가자고 제의했지만, 바울은 밤빌리아 버가에서 그가 인내하지 않고 떠난 일을 생각하며, 데리고 가는 일이 옳지 않다고 거절했다. 결국 두 사람은 심하게 다투고,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배를 타고 구브로 섬으로, 바울은 실라와 함께 육로로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향했다(행 15:36-41).

 

이처럼 제2차 전도 여행의 시작은 안타까운 분열로 시작되었다. 바울이 옳은가, 아니면 바나바가 옳은가? 사명을 내팽개친 자를 엄히 대하는 것도, 긍휼로 감싸는 것도 모두 타당한 일이다. 하지만 이 기사의 핵심은 누가 옳은지 판단하는 데 있지 않다. 둘의 분열은 구브로 섬과 마게도냐 내륙 전체에 하나님의 말씀이 편만
(遍滿)하게 퍼지는 수단이 됐다. 또한 바울에게 매섭게 질책 당했던 마가는 바나바의 긍휼 아래 본래의 사명을 되찾아, 결국 바울이 임종 직전 애타게 보고 싶어하는 ‘유익한 자’, 동역자로 인정받았다(딤후 4:11).

1더베 – 2루스드라 – 3무시아 – 4드로아
바울은 먼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가서 1더베와 2루스드라로 향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난 청년 디모데를 제자로 들이게 되고, 그에게 할례를 받게 했다(행 16:1-5). 바울은 새로운 제자 디모데와, 일행들을 데리고 아시아 지역을 전도하고자 했다. 여기서 아시아는 한국, 중국, 일본 등이 있는 동아시아 지역이 아니라, 오늘날의 터키 서부 지역으로서 ‘소아시아’ 지역을 뜻한다. 그러나 바울이 3무시아 지역에 이르렀을 때 예수의 영이 주권적으로 바울의 길을 가로막았다(행 16:6-7). 이에 바울은 항구 도시 4드로아로 가서 해상으로 소아시아 남부로 내려가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드로아에서 잠들었을 때, 마게도냐 인이 나타나 ‘우리를 도우러 오라!’ 외치는 환상을 보게 하셨다. 바울은 이 환상을 보고 동역자들과 의논했고, 동역자들은 바울의 계시가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확신했다(행 16:8-10)

 

5사모드라게 – 6네압볼리 – 7빌립보
바울 일행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5사모드라게와 6네압볼리를 지나 로마가 건설한 에그나티아 대로를 따라 7빌립보에 도착했다. 당시 빌립보는 마게도냐 지역에 들어가는 관문이자 최대 규모의 성이었다(행 16:11-12). 빌립보에는 유대인들의 회당이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소규모로 모이는 기도처를 찾았고, 강가에서 루디아를 만나 그녀의 집에 빌립보 교회를 세웠다(행 16:11-15). 그리고 귀신의 힘으로 점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을 내쫓았고
(행 16:16-18), 이 일로 고소를 당해 투옥됐다
(행 16:19-23). 그러나 바울과 실라가 찬양하는 순간, 큰 지진이 나서 감옥이 깨어지고 옥문이 열렸다. 바울과 실라는 도망치지 않고 도리어 간수를 전도하는 기회로 삼았고(행 16:24-34), 로마 시민권을 제시하여 빌립보에서 해방되었다(행 16:35-40).

 

8암비볼리 – 9아볼로니아 – 10데살로니가 – 11베뢰아 – 12아덴 – 13고린도
이후 바울은 8암비볼리와 9아볼로니아를 지나 10데살로니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바울은 세 안식일에 걸쳐 회당에서 성경을 강론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다(행 17:1-3). 당시 회당 1층은 오직 유대인 남자만 들어올 수 있고, 이방인과 여자들은 회당 2층에 따로 모여야 했다. 회당 2층의 헬라인들과 여인들은 바울과 실라가 전한 말씀을 믿고 따랐지만, 정작 회당 1층에 있던 유대인들은 바울에게 시기를 내며 폭동을 일으켰다(행 17:4-9).

 

이에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은 바울과 실라를 11베뢰아로 보냈다. 바울은 베뢰아에서도 제일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았다. 가는 곳마다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모습은 그에게 넘치는 민족 사랑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베뢰아의 사람들은 ‘더욱 간절하여 말씀을 사모하며 성경을 상고하여’ 바울의 복음을 믿었던 반면(행 17:11-12),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베뢰아까지 쫓아와 소동을 일으켰다(행 17:13). 이에 성도들은 바울을 배에 태워 아덴(아테네)으로 보내고, 실라와 디모데는 베뢰아에 머물며 사역을 정리했다(행 17:14).

 

간신히 생명을 부지해 12아덴에 도착한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의분(義憤)이 치밀었다(행 17:15-16). 바울은 유대인의 회당뿐 아니라,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이 토론하는 저잣거리까지 나가 ‘너희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섬기는 신’에 대해서 가르치겠노라 외치며,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주 하나님에 대해 밝혔다(행 17:17-31). 그러나 철학자들은 죽은 자가 부활한다는 말씀을 듣자 조롱하거나 흥미거리로 여겼고, 이에 바울은 아덴에서 떠나버렸다(행 17:32-33). 단지 몇 사람만이 바울이 전한 말씀을 믿었다(행 17:34).

 

바울은 13고린도에서 글라우디오의 칙령으로 인해 로마에서 쫓겨나 고린도를 찾은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를 만났다(행 18:1-3). 이들은 바울과 마찬가지로 장막 깁는 업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말씀을 강론할 수 있었다. 고린도 활동 초기, 바울은 여전히 회당을 중심으로 말씀을 증거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훼방하자, 바울은 옷에 먼지를 떨어버리고 회당을 떠났다. 그리고 회당 바로 옆,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세례를 받은 디도 유스도의 집과 회당장 그리스보의 집을 교회 삼아 실라, 디모데와 함께 1년 6개월간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했다(행 18:5-11).

 

주후 51년, 바울의 전도 활동에 이를 갈던 유대인들은 아가야 총독 갈리오(주후 51-52년 재임)가 새로 부임하자 바울을 고소했다(행 18:12-13). 그러나 갈리오는 바울의 변론을 듣기도 전에, 종교적인 일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겠다며 바울이 복음을 전할 자유를 공인해주고 유대인들을 쫓아내버렸다(행 18:14-16). 도리어 합법적인 포교권을 공인해주는 꼴이 되어버리자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선동한 회당장 소스네데를 폭행하며 분을 표했지만, 갈리오 총독은 이마저도 무시해버렸다. 바울의 완승이었다.


이후 바울은 고린도에서 더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이 기간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데살로니가전후서). 데살로니가전서는 제2차 전도 여행 중 빌립보의 상황(살전 2:1-2, 행 16:12-40), 데살로니가 방문과 교회 설립 상황(행 17:1-9), 바울이 아덴에 있는 동안 데살로니가에 생긴 문제와 디모데를 파송해 해결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살전 3:1-6, 행 17:15-34). 루스드라에서 바울을 따르기 시작한 20대의 청년 디모데는 2-3년의 전도 여행 기간 동안 한 교회의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할만한 사명자로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역시, 데살로니가전서를 보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14겐그레아 – 15에베소 – 16가이사랴 – 17안디옥
모든 사역을 마무리한 바울은 안디옥으로 귀환하기 위해 14겐그레아로 향했다. 바울은 서원의 성취를 감사하며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 민수기 6:1-21의 서원 규례를 볼 때, 서원을 한 자는 서원의 성취 시까지 머리에 칼을 댈 수 없으며, 서원이 성취되면 머리를 밀어야 한다. 하나님께 서원한 자의 올바른 신앙 태도는 서원을 숨기는 대신 증표로 삼는 삶을 살아야 하며, 서원의 성취를 자랑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함을 가르쳐 준다.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서원했고, 2-3년간 길게 자란 머리를 흩날리며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사명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자, 감사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밀어 ‘하나님께서 나의 서원을 완전히 이루어주셨다’는 것을 외적으로 드러냈다. 겐그레아에서 배를 탄 바울은 잠시 15에베소에 들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머무르게 했고, 간단한 문안인사만을 남기고 에베소를 떠났다(행 18:19-21). 그리고 16가이사랴에 상륙하여 교회를 살핀 후(행 18:22上), 17안디옥으로 귀환하였다(행 18:22下).

 

제2차 전도 여행의 특징

제2차 전도 여행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바울이 성령의 인도 아래 자기 사명을 완수해 가는 여정이었다. 비록 시작은 분열이었지만, 여정의 마침은 오직 승리뿐이었다. 가는 곳마다 함께 사역할 수 있는 동역자들이 등장했다: 실라(행 15:40), 디모데(행 16:1-3), 누가
(행 16:10), 아리스다고(행 17:1-9), 브리스가와 아굴라(행 18:1-3) 등이 그들이다.

바울이 증거하는 말씀도 더욱 심오해졌다. 제1차 전도 여행 때는 주로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증거했다면, 제2차 전도 여행에서는 창조주 하나님, 성경, 심판, 부활과 변화 등 한 차원 높은 말씀을 선포했다. ‘변화’에 대해 바울서신에서 처음 언급하는 데살로니가전후서 역시 이 시기에 기록되었다. 바울이 제2차 전도 여행을 마치며 머리를 미는 모습은 그가 전도 여행에 대해 서원했던 모든 것이 이루어졌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이런 점에서 제2차 전도 여행에서 바울의 행적이 기록된 지명이 총 17군데 나온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17수는 완전수 7과 10이 합쳐져 성도의 완전한 최후 승리를 상징하는 수이다(참고-참평안 2018년 1월호).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도시가 아닌 단순한 지역 이름인 ‘무시아’나, 매우 작아서 큰 의미가 없는 지명 사모드라게, 아볼로니아 등을 생략하고 주요 지역들만 살피지만, 성령의 조명 아래 기록된 숫자는 전도 여행을 통해 나타나는 말씀의 승리를 듣는 귀 있는 자들에게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글_정디모데 전도사, 삽화_박희영

 


사도 바울의 일생 노정과 성경의 수(3)

 

이방인 선교의 사명을 받은 바울은 시대의 거류(巨流) 앞에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았다. 주후 52년경 2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에 도착한 사도 바울은 조금도 쉬지 않고 즉시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으로 떠나 제자들을 굳세게 했다(행 18:22-23). 여기 갈라디아는 갈라디아 남쪽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디아, 더베 등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도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때 교회를 세운 곳이다. 브루기아는 갈라디아 서편 인접 지역으로, 바울의 제자 에바브라를 비롯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진 곳이다(참고-골 1:7, 2:1, 4:11-12, 몬 1:23).

 

 

바울의 제3차 전도 여행 24장소(행 19:1-28:31)

 

1에베소-2빌립보-3드로아(행 19:1-20:5)

바울의 행선지가 구체적으로 언급된 첫 번째 장소는 에베소이다.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한 뒤 3년 동안 세례를 주면서 가르침에 힘썼고 (주후 52-54년, 바울 약 46-48세), 주의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다(행19:1-20).

 

​3년의 사역을 마치며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돌아 예루살렘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로마를 향해 가겠노라 결심했다(행 19:21). 에베소에서 있었던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폭동은 바울을 빌립보로 급히 가게 했다(행 19:23-20:5). 바울이 아가야 지방(고린도, 아덴 등이 위치)을 방문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아마도 빌립보에 머무는 동안 주후 57-58년경까지 아가야 지역을 오가며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참고-행 19:21, 고전 1:14, 고후 13:1, 롬 16:1-2, 23). 이 기간 동안 바울은 로마서를 작성해서 보내며 자신을 소개했다.

 

3드로아-4앗소-5미둘레네-6기오-7사모-8밀레도(행 20:6-38)

바울은 빌립보를 기지 삼아 마게도냐와 헬라 지역 선교를 마친 후 드로아로 이동했다(행 20:13-16). 사도 바울이 3년간 눈물로 헌신했던 에베소 교회와 재회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바울은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 에베소를 지나쳐 밀레도로 향한 뒤, 에베소의 장로들을 밀레도로 불러 잠시 만남을 가졌다. 기쁜 마음으로 달려온 장로들은 바울에게 ‘이제 남겨진 사명 완수를 향해 예루살렘으로 향하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으며, 이제는 다시 여러분을 만날 수 없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인사를 들었다(행 20:17-25). 바울은 자신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전해야 하는 것을 모두 가르쳤으며, 3년간 밤낮으로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하던 사실을 기억하라고 권면했다(행 20:26-35). 바울의 권면과 기도가 끝나자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다시는 바울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장로들을 더욱 마음 아프게 했다(행 20:36-38). 만약 바울이 밀레도가 아닌 에베소로 향했다면 육신적인 정에 끝내 발을 떼지 못하고 구속사를 늦추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바울은 밀레도에서 교회의 대표 장로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이것은 구속사의 중단이나 후퇴가 아니었다. 도리어 그딜이 젖으로 먹이던 어머니 품을 떠나, 배운 바를 실천할 장성한 자로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9고스-10로도-11바다라-12두로-13돌레마이-14가이사랴(행 21:1-16)

 

 

밀레도에서 다시 배를 탄 바울은 인근의 소항구들인 로도와 바다라를 지나 갈릴리 북부 두로에 상륙했다(행 21:1-3). 바울의 제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나아와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종용했다(행 21:4). 이것은 성령이 가지 못하게 명령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바울의 제자들도 성령을 통해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받을 고난을 보았기 때문에 만류했다는 것이다. 두로에서 짐을 선적한 배는 돌레마이에 상륙했다(행 21:7). 돌레마이에서 육로로 가이사랴로 이동한 바울은 이곳에서도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수족을 결박당해 이방인에게 넘김 당한다’라는 아가보 선지자의 예언을 들었고 바울의 제자들 역시 바울을 만류했다(행 21:10-12). 그러나 바울은 에루살렘에서의 순교를 이미 각오했다고 타일렀다(행 21:13-14). 바울은 묵묵히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그대로 좇았다.

 

15예루살렘(행 21:17-23:30, 주후 58년, 바울 약 52세)

한편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는 바울이 모세의 율법을 비방하며 지키지 말라고 전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이에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은 성전에 있는 바울을 붙잡고 바깥으로 끌어내어 죽이고자 했다(행 21:27-31上). 소동이 났다는 소식을 들은 로마 천부장은 바울을 체포해 병영으로 끌고 갔고, 유대인들은 뒤를 따르며 바울을 죽이라고 소리를 질러댔다(행 21:31下-36).

바울의 공개적인 변호가 도리어 유대인들을 더욱 난폭하게 만들자, 천부장은 바울을 채찍질해 폭동을 무마하려 했다. 그러나 바울이 태생부터 로마 시민권자라는 사실을 듣고는 두려워하며 상황을 수습코자 했다. 마흔 사람이 넘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기 전까지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며 결사대를 만들었지만(행 23:12-15) 천부장은 바울을 안전하게 호송하기 위해 보병 이백과 기병 칠십, 창병 이백의 대병력을 준비해 가이사랴로 보냈다(행 23:16-32).

16가이사랴(행 23:31-26:32, 주후 58-59년, 바울 약 52-53세)

가이사랴로 호송된 바울은 먼저 벨릭스 총독의 재판을 받았다. 벨릭스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종교적인 것이며 로마에 반역하려는 사상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재판을 연기하고 바울에게 제한적인 자유를 허용했다(행 24:1-23). 그러나 그는 바울의 복음을 알면서도 그 복음의 핵심인 구원보다 뇌물을 바랬다(행 24:24-26). 그리고 바울을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동시에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자 2년간 무죄한 바울을 감금했다(행 24:27).

 

 

벨릭스의 후임으로 베스도가 부임하자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은 바울을 암살하려는 모략을 세우고 벨릭스를 찾아가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호송해 주기를 재차 간구했다. 로마법에 비추어 볼 때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은 불가했다. 하지만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갈 의향이 있는지를 넌지시 물었다. 하지만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의 정당한 권리로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노라 청구했고, 드디어 로마행이 결정되었다.

17시돈-18무라-19그레데의 미항-20멜리데-21수라구사-22레기온-23보디올(행 27:1-28:14, 주후 59-60년, 바울 약 53-54세)

 

로마까지의 항해 과정은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가이사랴에서 승선한 바울은 시돈과 무라를 경유하여 그레데 섬의 미항에 들렸다. 점차 바람이 거세어지고 겨울이 가까워지며 항해가 위험해졌다. 바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순풍이 불자 뵈닉스로 이동해 겨울을 나겠다며 무리한 항해를 시도했다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고 말았다.

 

간신히 침몰은 면했지만 연장과 짐, 배의 기구들을 모두 포기해야만 했다(행 27:13-19). 3일 내내 광풍이 계속되고 해와 달과 별이 보이지 않자 사람들은 살 소망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행 27:20).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고 오직 배에만 손해가 있음을 말씀하셨다고 담대하게 전했다(행 27:21-26). 폭풍을 만난 지 14일 째 되는 날 드디어 육지를 만났다(행 27:27-38). 다음 날 멜리데 섬에 상륙한 바울은 3일째 되는 날, 안수의 이적을 행하며 많은 사람을 고쳤고 이날 섬의 주민들은 바울의 일행에게 새로운 항해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선물했다. 유라굴로 광풍 사건은 이렇게 17일 만에 종료되었고, 멜리데에서 겨울을 보낸 바울 일행은 다시 항해를 시작해 로마에 도착했다(행 28:11-14).

 

24로마(행 28:14-31, 주후 60-61년, 바울 약 54-55세)

로마에 도착한 뒤 바울은 2년간 가택에 연금됐다. 당시 로마는 기독교를 억압하기 전이고, 유대교의 분파로만 생각했기에 바울을 크게 억압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이 기간 동안 바울은 로마인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복음을 강론하며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증거했다(행 28:30-31). 전승에 따르면 바울은 2년간의 가택 감금을 마치고 석방되어 당시에는 ‘땅 끝’이라고 생각했던 서바나로 선교여행을 떠났다. 이는 일찍이 로마서 15:23-28에서 바울이 꿈꾸었던 세계선교의 비전이었다. 그러나 주후 64년 네로 황제가 로마에 일어난 대화재의 원인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리면서 박해가 시작됐고, 바울은 혹독한 환경에 재투옥되었다(딤후 4:13). 그러나 바울은 옥중에서 옥중 서신과 목회 서신을 기록하며 사명을 완수하고, 주후 68년경 로마에서 순교했다.









제3차 전도 여행의 특징

바울의 제3차 전도여행은 사도행전에서 가장 자세하게 기록된 여행이다. 누가가 처음부터 바울의 재투옥 순간까지 늘 함께했기 때문일 것이다(딤후 4:11). 이 여행에서 바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루살렘을 지나 로마까지’라는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으며, 박해와 순교라는 경고 앞에서도 의지가 흔들리지 않았다. 빌립보서 3:14의 말씀처럼, 세계선교의 비전을 푯대로 삼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달리기를 완주한 것이다. 이런 전 과정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와 승리의 확신이 함께했다. 제3차 전도 여행 기록에는 고린도와 아덴 같은 큰 성에서의 사역을 생략하는 반면, 항해 가운데 들른 작은 어촌들의 이름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성읍의 크기나 신도의 수를 기준으로 정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아래 영적인 기준을 가지고 여행 노정을 기록했음을 보여준다.

3차 전도 여행을 크게 나누자면, 로마로 가기까지 1에베소부터 16가이사랴까지의 16장소, 항해를 시작하여 17시돈에서 23보디올까지의 7장소, 그리고 최종목적지 24로마로 구분할 수 있다. 이는 앞서 제2차 전도 여행에서도 승리의 숫자로 사용된 17이 17의 형태로 사용된 것이다. 유라굴로 광풍으로 인한 난파 사건 때도 17일 만에 구원의 문이 열림을 볼 수 있다.

로마는 바울을 감옥에 가두고 처형하면 그의 꿈이 무산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바울이 흘린 순교자의 피는 마침내 로마를 정복했고 주후 313년 콘스탄티누스의 황제를 통해 신앙의 자유가 선포되었다. 그리고 바울의 꿈은 당시 ‘땅 끝’이라고 생각되었던 서바나를 넘어 대한민국에 도착했고, 구속사의 최종 승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글_정디모데 전도사, 삽화_박희영 blog.naver.com/ms11

 

 


사도 바울의 밀레도 고별 메시지

 

본문: 사도행전 20:17-24

 

 

서론

 

고별이란 떠남을 알린다는 뜻입니다.1) 그러나 우리는 보통 다시 만남의 기약이 없는 작별을 뜻할 때 고별이란 말을 씁니다. 사람은 고별시 보통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응축되게 합니다. 어떻게 보면 유언적 요소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밀레도에서 행한 고별 메시지 입니다.2)

사도 바울은 이제 3차 전도 여행의 막바지에 와 있었습니다. 또한 그의 인생의 여정도 어느정도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그 길고 험난한 목회의 인생의 여정의 막지막 지점에 서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의 대목자 인생의 결론을 말하고자 합니다. 이로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의 유언적 요소가 담긴 그의 목회의 결론입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대목회자의 목회적 결론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목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역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이 말씀 속에서 특별한 교훈과 도전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3) 이 시간 본문에서의 사도 바울의 목자의 삶을 통해 우리의 목회 생활을 돌아보고 목회자의 자세를 새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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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중 새국어 사전. [민중서림 편집국],(서울: 민중서림,1999) 64쪽

2) 25절(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 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에서 바울은 에베소로 다시 돌아올 것을 예상하지 않는다.

3) 신약의 초석II. [랄프 P 마틴],(크리스찬다이제스티,2004) 195쪽

 

 

본론 (본문 주해)

17절: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3차 전도 여행중 본래 바울은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지키고자 배로 헬나에서 수리아까지 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살해 음모로(16절) 육로를 택해 마케도니아를 돌아 앗소,기오 사모를 거쳐 에베소에서 약 50Km 떨어진 밀레도 항구에 도착하였습니다.4)

이처럼 바울이 절기를 지키려고 노력한 것은 비록 그가 유대교를 떠나긴 하였지만, 구약의 전통들을 무작정 무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5)

서둘러 예루살렘에 가고자 한 바울은 3년간 본인이 개척했던 에베소에 들르지 못하고 대신 사람들을 보내어 그곳 장로들을 모두 불러 보았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아마도 시간적인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지만 어쩌면 불편한 문제가 너무 많아서 에베소를 다시 방문하기를 꺼려했을지도 모릅니다.6) 그러나 아마도 에베소 교인 모두에게 인사하기엔 너무나 시간이 촉박했을 것입니다.7)

바울은 이들이 도착하자 지난 에베소에서의 목자 생활을 회고하며 간증식 고별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 바울의 설교는 기독교 공동체에 행한 것으로 유일하게 사도행전에 나타난 것입니다.8) 지금까지 그의 설교는 대부분 비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행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설교는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9)

본문 설교는 세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3년간의 에베소 사역 회고(20:18-21) 둘째, 면한 상황의 기술 (22-27), 셋째, 에베소 장로들의 책임성(28-35).10)

 

18절: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서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나니

18-21절에 나타난 상세한 내용들은, 주로 과거형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서 아시아에서 행한 바울의 사역의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청중들은 "장로"(17절) 혹은 "감독자"(28절)들로서 그의 "거리낌 없는"(20절) 사역에 특별히 감사해야할 이유들을 가지고 있었던 자들이었으므로 그의 설교를 아주 잘 받아들였습니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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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톰슨II 주석성경. (대한기독교서회,1996) 224쪽

6) H. Conzelmann, Die Apostelgeschichte, pp.114f 재인용

7) Invetigare le Scritture. [John F. Walwoord e Roy B. Zuck], p443

8) 신약의 초석II. [랄프P마틴],195쪽

9) 톰슨II 주석성경. 224쪽

10) Invetigare le Scritture. [John F. Walwoord e Roy B. Zuck], p443

11)신약의 초석II. [랄프P마틴],195쪽

 

바울은 에베소에 온 첫날부터 떠나는 날까지 그의 목자 생활은 한결 같았습니다. 만약 갓난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기분이 좋은 날은 우유를 많이 먹이고 기분이 나쁜 날에는 굶긴다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상적으로 성장하기 힘듭니다. 마찬가지로 목자가 기분에 따라 형편에 따라 성도들을 돌본다면 성도들도 기분에 따라 형편에 따라 성장 할 것입니다. 목회자는 기분이 어떻든 형편이 어떻든 한결 같은 마음으로 양들을 섬겨야 합니다.

무엇보다 바울은 말로만 선행을 독려하거나 강론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언행이 일치하는 스승의 호소는 큰 감화력이 있게 마련입니다. 12)

 

19절: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섬긴것

1)겸손

바울은 모든 겸손으로 성도들을 섬겼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현재 60을 바라보는 나이입니다.13) 그는 누구보다 많은 업적을 남긴 대 목회자입니다. 그는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우쭐해 질 수 있고 또 권위를 부려도 흠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겸손으로 주를 섬겼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선배이고 나이가 좀 많다고 성도들에게 주장하거나 함부로 대하기 쉽습니다. 성도들이 좀 무례하게 나오면 '어린것이 건방지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권위를 부리거나 자기 주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어린 성도들을 주님 섬기듯 겸손으로 그들을 존중하며 경외심을 갖고 섬겼습니다.

주님은 하늘 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종처럼 낮아지셔 냄새나는 죄인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14) 진정한 목회자는 양들에게 명령하는 자가 아니라 그들의 종이 되는 자입니다.

2)눈물

바울은 또한 눈물로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그는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 하였습니다.15) 양은 양입니다. 그래서 죽는 줄도 모르고 자기를 고집하며 자기 길로 갑니다. 애써 끌어오면 반발하고 다시 죄악의 길로 갑니다. 잠시 한눈을 팔면 세상 길로 갑니다. 진정 밤낮 쉬지 않고 지키지 않으면 어느새 딴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성도들을 눈물로 훈계했습니다. 눈물은 진실입니다. 성도들은 목회자의 진실을 먹고 자랍니다. 진심이 없을 때 눈물이 아닌 감정으로 훈계할 때 양들은 다른 길로 가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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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톰슨II 주석성경. 224쪽

13) C.M.I 주일메시지

14) 톰슨II 주석성경. 224쪽

15) 행20: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인내

바울은 끝까지 인내하며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동족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모욕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를 바라보며 참고 또 참앗습니다. 목자에게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사람들과 맞부터 싸웁니다. 양들과도 싸우게 됩니다. 그러면 사탄의 시험에 들고 그 양은 실족합니다. 그러나 참고 인내하면 주님의 영광이 들어나고 결국 믿음의 승리를 얻게 됩니다.

야고보서 1:4절은 말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목회자는 성도들에 대해 인내하고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바울은 본래 교만하고 눈물도 없고 참지 못하는 혈기 드드한 자였습니다.16) 그러나 그는 변화되어 대 목자가 되었습니다. 이 비밀은 바로 그의 겸손과 눈물과 인내였습니다. 이를 볼때 대 목회자는 나이가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신앙 업적이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오직 겸손과 눈물과 인내의 사람임을 보게 됩니다.

 

20절: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46절(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을 볼 때 이는 집에서 모임을 통한 교제의 반영인데 만약 이것이 옳다면 각각 장로들은 집에서의 모임의 각각 교회의 책임을 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17)

바울의 목회자 생활의 주된 일은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성도들에게 유익한 말씀은 무엇이든지 거리낌 없이 가르쳤습니다.

 

21절:유대인과 엘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가르침의 분명한 방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게 대한 회개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서뿐만 아니라 창세기를 가르칠 때도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발견하고 회개토록 도왔습니다. 또한 어떤 죄도 회개할 때 사해 주시는 그리스도를 믿도록 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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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행8:1 "사울이 교회를 잔멸 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행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17) Invetigare le Scritture. [John F. Walwoord e Roy B. Zuck]p443

 

목회자 중엔 성도들의 죄를 잘 회개토록 돕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만 시키고 믿음을 심지 못한다면 죄의식과 자기불의 속으로 빠져 실족하게 됩니다. 또한 어떤 목회자는 믿음을 잘 심어주는 분이 계십니다. 그러나 믿음만 심고 회개를 돕지 못한다면 구신자를 만들고 맙니다. 어떤 목회자는 좋은 마음씨로 또는 도덕적 인본적으로 도와 중생할 기회를 막는 분도 있습니다. 진정한 목회자는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서 회개해 거듭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도록 하는 자입니다. 그리스어에 회개와 믿음이란 말은 한부류에 일치된 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의 메시지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그리스인들에게 유용했습니다.18) 유용한 목회자의 메시지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이 회개와 믿음이 같이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22절: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심령에 매임"은 "성령의 매임"과 동일한 뜻으로 아마도 그의 사도의 삶속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반영한 것입니다.19) 바울은 자기 뜻대로 살지 않고 철저하게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부단히 말씀연구와 기도 생활에 힘썻을 것입니다.

22-27절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하나의 선언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당할 모든 위험을 완전히 인식하고서 그곳을 향하여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의 목숨은 이미 상실된 상태였고 다만 그를 부르시고 택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인식할 때 그저 연장되어 있는 것일 뿐이었습니다.20)

 

23절: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가다린다 하니

이제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과 환란이 기다린다는 성령님의 증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왜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애쓰는 것입니까? 이는 24절에서 2가지 일을 마치기 위함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달려갈 길을 마치는 것이고, 둘째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마치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복음 전도자 바울의 불타는 사명감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생애 목표는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였고 그의 주관심은 "오직 그리스도에 관한 것" 뿐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생의 기쁨은 "오직 복음이 확산되고 진보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는 목숨을 위협하는 그 어떠한 환란도 기꺼이 감수했으며 그 어떠한 유익이라 할지라도 미련없이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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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Ibid. p443

19) La Sacra Bibbia, La Nuova Diotati (La Buona Novelli 2003, Italy) p 1231

20) 신약의 초석. [랄프 P 마틴], 196쪽

 

실로 그리스도안에 있는 새 생명을 체험한 바울은 이제 새 생명의 도를 증거하기 위해서라면 일신상의 목숨도 언제 어디서나 바칠 순교의 마음 자세를 늘 갖추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환란과 핍박을 순교의 장소로 자원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는 실로 버림으로써 얻고, 잃음으로써 찾으며, 죽음으로써 사는 기독교의 역설의 진리를 몸으로 실천한 진실된 복음 증거자였습니다. 21)

 

24절: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1)달려갈 길

달려갈 길을 마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는 마치 규칙을 지키며 끝까지 완주한 한 마라토너와 같이 하늘나라에 골인하는 그 순간까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22) 저는 군대에서 1주일에 한번씩 10Km구보를 하였는데 당시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였습니다. 낙오하는 동료를 보면 초기지점에서 포기하기도 하고 거의 다 온 지점에서 쓰러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이는 처음부터 비실거리면서도 끝까지 완주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여유있게 잘 뛰다가 끝내 낙오하는 자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이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초신자 때 일찌감치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학생 때는 믿음이 좋았는데 세상에 나가 세상 맛에 표류하다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떠날 사람 같은데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전혀 떠나지 않을 것 같은데 떠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믿음을 지키는 것을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왜 달려갈 길을 마치는 것을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까? 30년을 잘 달렸어도 믿음을 잃으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일생을 마라톤 경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임종이 눈앞에 닥친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그동안 이룬 업적이나 명성보다 골인점에 이르기까지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것을 가장 감격스러워했습니다. 그는 마치 42.195Km를 완주하고 이제 막 스타디움에 들어온 마라토너와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이룬 업적이나 얻은 명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의 완주였습니다. 세상의 경주는 드수를 따지고 기록을 요구하지만 믿음의 경주는 끝까지 믿음으로 산 믿음의 완주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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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톰슨II 주석성경. 225쪽

22) 딤후4:7,8절에서 사도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 뿐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2)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예수님은 바울에게 복음 증거의 사명을 맏기셨습니다. 이방인의 사도, 곧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는 이 사명을 완성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복음 전파에 누구보다 더 힘썼고 많은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이 주신 사명의 완성을 위해 로마로 가고자 합니다.23) 바울은 달려갈 길을 마치고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완성하는 것을 목숨보다 더 중하게 여겼습니다. 그에겐 주와 복음을 위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는 분명한 생사관이 있었습니다. 이 생사관 앞에 많은 환란, 돌로 맞는 핍박, 심지어 죽음의 위협도 바울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생명이란 고귀한 것입니다. 더욱 하나 밖에 없는 것은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귀한 것을 단지 주와 복음만을 위해 드린다면 좀 어리석고 무모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엔 이보다 더 어리석고 무모한 것에 목숨을 거는 자들이 많습니다. 007첩보원은 비밀 서류 하나를 꺼내오기 위해 목숨을 겁니다. 일본의 가미가제 용사들은 조국을 위해 과감히 적 진지에 자신의 목숨을 던집니다. 이렇게 거창하지 않아도 조그만 회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찮은 것에 목숨을 내 놓는자들은 세상에 부지기수 입니다. 이들도 바울과 같이 사명을 위해 목숨을 드린다는 점은 똑같습니다. 그러나 이땅에 복음을 위해 생명을 드리는 일처럼 더 값지고 귀한 것은 없습니다.

 

바울은 이 복음의 가치를 바로 깨닭았기 때문에 복음 전파자로 큰 자부심과 자세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기 인생관과 사명과 달려갈 길이 분명했습니다. 다시말하면 My life, My mission, My way가 분명했던 것입니다. 바울의 삶은 사명감을 갖고 힘차게 그의 길을 달렸습니다. 바울의 생애는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싸이렌을 울리며 앞으로 힘차게 달려가는 앰블런스와 같습니다.

 

 

결론

1.바울은 아무런 사심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헌신하였습니다.(19절) 그는 대중의 인기나 인간의 영예를 추구하지 않았으며, 복음의 신실한 파수꾼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온 몸과 마음을 집중시켰습니다.

2.바울은 단지 입으로만 심판을 경고하는 냉담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형제의 곤궁을 자신의 것인 양 아파하고 함께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진정 성도들에 대해 애뜻한 사랑을 갖고 있는 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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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행19:21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내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3.그는 성실하고 끈기있는 복음 전도의 열정가였습니다. 바울은 항상 성령의 임재하심과 인도하심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때를 얻는지 못 얻는지 복음 증거에 최선의 힘을 쏟았다. 바울은 세상의 그 어느것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장 고상하고 위대한 것으로 여겼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복음 전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만이 모든 인생들에게 구원이며 교회의 유일한 기둥임을 굳게 믿었고 이 복음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것과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이 사도 바울의 자세를 통하여 이 시대의 교회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새로 거듭나길 기도합니다.     blog.daum.net/k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