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cio
The Calling of the Apostles Peter and Andrew
1308
베드로는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였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평범한 어부였다. 그는 부자도 아니었고, 똑똑하지도 못했고, 성품이 유순한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성경은 그를 단순하고 고집이 세며 성격이 급한 인물로 묘사한다. 하지만 그는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예수님 말씀에 즉각 순종했고 예수님은 그를 최고의 제자로 키우셨다. 그에게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게파)라는 새 이름을 주시고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보여준다.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겠다고 선언한 '반석' 그가 바로 베드로였다. 베드로 역시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존경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순간 칼을 뽑아 휘두르며 그들 앞을 막아선 사람은 베드로뿐이었다.
Gerrit Van Honthorst
Le Reniement de saint Pierre
1620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베드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 예수를 모른다고 화를 냈으며 제자가 아니냐는 말에 그 사람을 본 적도 없다며 짜증을 냈다. 그러나 닭이 울고 예수님과 눈이 마주치자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라는 말씀을 떠올랐고 통곡하며 회개했다. 베드로의 배신에도 예수님은 여전히 그를 사랑하셨다. 부활하신 후 예수님은 베드로 앞에 나타나 그를 회복시키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라"(요한복음 21장 19절)
이 이야기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어떤 인간도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고난 앞에서 때로는 세상의 유혹 속에서 믿음과 신념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한 번 실패했다고 낙오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늘 우리를 칭찬하시고 격려하신다. 물론 꾸짖음도 있지만 그 뒤에는 반드시 용서가 뒤따랐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체포되자 겁이 났을 것이다. 자신도 죽임을 당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돌아왔고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로 거듭났다. 그 후 그는 남은 인생을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라고 고백했던 처음 다짐대로 살기로 결심했다.
El Greco
St Peter in Penitence
1605참회하는 베드로
베드로가 로마에 도착한 것은 AD 63년 네로 황제 때였다.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교의 확장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는 오히려 자신들을 핍박하고 탄압하는 로마를 향해 나아갔고 곳곳에 숨어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그들에게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 승천 역사의 산증인이자 영적 지도자요 복음의 열쇠였다. 당시 로마 시민들은 네로 황제의 폭정 아래 고통받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잔혹하고 엽기적인 행각도 서슴지 않았으며 살아서 신이 되고자 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로마 대화재 사건이 일어났다. 사람들 사이에서 미치광이 네로가 일부러 불을 질렀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도시는 파괴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분노가 황제를 향하고 있었다. 네로에게는 백성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들이 바로 평소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그리스도 교인들이었다.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 박해는 그렇게 시작됐다. 당시 수많은 그리스도 교인들이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다.
Annibale Carracci
Domine quo vadis?
1602
도미네, 쿠오바디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리스도 교인에 대한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던 베드로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베드로의 물음에 예수님은 "네가 나의 백성을 떠나므로 내가 한 번 더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 로마로 간다"고 대답하셨다. 이에 자신의 비겁함을 뉘우친 베드로는 ?로마로 돌아갔고 네로 황제에게 십자가형을 선고받았다. 베드로는 법정에서 ?"감히 주님과 똑같이 십자가에 달릴 자격이 없으니 내 머리가 아래로 오도록 거꾸로 매달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실제로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했다. 나중에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베드로의 무덤이 있던 자리에 성당을 세웠고 그 후 이 성당 자리에 성 베드로 대성당이 세워졌다.
Caravaggio
The Crucifixion of St. Peter
1601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의 <십자가에 못 박힌 성 베드로>는 베드로가 순교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그림 속 베드로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다. 남겨진 기록을 종합해 보면 순교 당시 그의 나이는 일흔을 바라보고 있었다. 베드로의 손과 발에는 이미 굵은 쇠못이 박혀져 있다. 발쪽이 들어 올려지는 것으로 보아 거꾸로 매달리는 중이다. 그의 몸을 지탱해 줄 받침대는 보이지 않는다. 베드로는 오랜 시간 고통받다 죽었을 것이다. 카라바조는 이 장면을 매우 단순하게 처리했다.? 그는 베드로와 신발조차 신지 못한 채 십자가를 들어 올리는 비천한 신분의 인부들만 보일 정도로 화면을 클로즈업했다. 고통을 견디는 순교자의 얼굴, 쇠못을 움켜진 손, 순교자보다 더 고통스러워 보이는 인부의 표정과 흙 묻은 지저분한 발바닥 등 사실성에 대한 절대적인 묘사는 우리는 처형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과장이 없어 더 극적이고 슬프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베드로의 유골
1949년 8월 22일 <뉴욕타임스>에 성 베드로 대성당 대제단 아래에서 성 베드로의 유골이 출토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교황 비오 11세의 관을 옮기던 중 우연히 성당 지하 고대 묘지를 발견한 후 10년 만의 일이었다. 19년 뒤인 1968년 교황청은 동굴 묘소 벽에서 '베드로가 여기 있다'는 그리스어 문구를 찾아냈고 그 해 6월 26일 유골이 성 베드로의 유해임이 거의 확실하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유골을 본래 있던 자리에 정식으로 재매장했다. 그러나 이 유골은 앞서 <뉴욕 타임스>가 보도한 유골과는 다른 것이었다. 과학적으로 의문의 여지가 남아있지만 교황청은 여전히 그 유골이 성 베드로의 유골임을 주장하고 있으며 2013년에는 최초로 일반에 공개하기도 했다.
Masaccio
Crucifixion of St. Peter
1426
Luca Giordano
Crucifixion of St Peter
1660
Francesco del Cossa
St Peter
1473
자신의 상징인 '천국의 열쇠'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 베드로
Guido Reni
The Repentant Saint Peter
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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