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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숲에서 / 숲에 가볼 일이다

by 은총가득 2020. 6. 17.

 

 

 

숲 속에서

숲 속에서는 누구도
무엇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
무엇이 되고자 하지 않는 것들이 모여
누구나 제 이름의 나무로 산다

 

숲 속에서는 아무도
무엇을 닮고자 하지 않는다
무엇을 닮고자 하지 않는 것들이 섞여
어떤 것은 곧고 또 비틀린 채
제각각 잎과 꽃과 열매를 만든다

 

숲 속에서 나는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상수리나무가 그러는 것처럼
마가목이 그러는 것처럼
나답게 살고자 할뿐이다

 

숲 속에서는 나무마다
저를 닮은 나무가 되어 살아간 뒤에
상수리나무가 쪽동백이 되고
마가목이 산딸나무가 되기도 한다.
 -조기조-

 

 

 

 


+ 숲에 가볼 일이다

사는 일이 우울하다면 한 번 가볼 일이다
빗줄기의 지친 어깨 감싸주는 숲에 가면
당신이 한눈 판 사이 꽃 먼저 밀어 올리는
산수유나무 그곳에 있다
마음결 부드러워지는 당신이 서 있다


사는 일이 초라하다면 한 번 가볼 일이다
뱁새부부에게 살림집 세놓은 숲에 가면
햇살 희게 다듬으며 꿈을 키워가는
자작나무 그곳에 있다
마음결 푸르러지는 당신이 서 있다

 

사는 일이 답답하다면 한 번 가볼 일이다
다람쥐 재롱을 받아주는 숲에 가면
걸친 옷 훨훨 태워 소신공양하는
당단풍나무 그곳에 있다
마음결 아름다워지는 당신이 서 있다

 

사는 일이 고단하다면 한 번 가볼 일이다
손 곱은 바람 내쫓지 않는 숲에 가면
옹이진 육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떡갈나무 그곳에 있다
마음결 단단해지는 당신이 서 있다
 - 김장호 -

 

 



나무들 (J. 길머)

 

나는 생각한다, 나무처럼 사랑스러운 시를

결코 볼 수 없으리라고.

 

대지의 단물 흐르는 젖가슴에

굶주린 입술을 대고 있는 나무

 

온종일 하나님을 우러러보며

잎이 무성한 팔을 들어 기도하는 나무

 

여름엔 머리칼에다

방울새의 보금자리를 치는 나무

 

가슴엔 눈이 쌓이고

또 비와 함께 다정하게 사는 나무

 

시는 나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 짓지만

나무를 만드는 건 하나님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