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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서신

로마제국의 산물 2 - 로마 시민권 및 채석장

by 은총가득 2020. 5. 8.

   

 로마제국의 산물2 - 로마 시민권


로마시민권 또한 십자가 형과 함께 로마제국의 산물이다. 로마시민권(-市民權)고대 로마 시민에게 주어진 여러 권리이다. 여성에게는 시민권이 없었으며 로마의 충성하는 외국인이나 10년간의 노예 생활을 한 노예는 자유민 자격을 주었고 그 자식에게 시민권이 주어졌다.


신약성경에 사도 바울도 로마 시민권을 가진 귀족 출신이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대 폭도들로부터 로마제국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1) 권리

로마 시민이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시대마다, 또 출생 장소와 국가에의 복무에 따라 달랐다. 또한 내국민에 대한 분류에 따라 로마법 하에서 달랐다. 여러 법적 계급들은 각 개인이 누릴 수 있는 법적 권리들로 규정되었다. 로마법에서 부여된 시민들의 권리는 다음과 같다

:

 

토가는 로마 남성 시민이 입은 특징적인 의상이었다. 황제들의 동상은 (, 안토니누스 피우스) 종종 토가를 입은(togatus) 것으로 나타난다.

Jus suffragiorum: 로마 의회에서 투표할 수 있는 권리.

Jus honorum: 시민권 관련 또는 공적 직무에 나아갈 수 있는 입후보의 권리와 로마의 군병단이 될 수 있는 권리

죄를 짓거나 시비에 휘말려 재판받을 때 황제에게 탄원할 수 있는 권리. 로마황제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들을 지켜주는 것을 매우 중요한 일로 생각했다.

Jus commercii: 로마 시민으로서 법적 계약들을 체결할 수 있고, 자산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

Jus gentium: 로마의 국제적 업무가 늘어나면서 로마 시민들과 외국인 간의 상황들을 다루게 되면서, 기원전 3세기 로마법에 생겨난 법적 인정권. 그래서 jus gentium은 당대의 국제법을 로마화한 것으로,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해상 무역 국가들의 고도로 발달되고 널리 수용된 교역법에 근거하고 있다. jus gentium으로 주어진 권리들은 모든 인간이 지닌 것으로 여겨졌으므로, 시민권에 따른 권리라기보다는 인권의 개념이다.

 

Jus connubii: 로마시민과 합법적으로 결혼하여, 그 가족의 로마가부장의 법적 권리를 갖고, 그 결혼으로 낳은 자녀가 로마 시민으로 계수되게 할 수 있는 권리.

Jus migrationis: 필적할 만한 수준의 폴리스로 이주하면서 시민권의 수준을 보존할 수 있는 권리. 예로, cives romani의 구성원들은 colonia civium Roman.orum, 즉 법률상 모든 권리를 가진 로마 식민지로 이동할 때, 자신의 모든 civitas를 유지하였다. Latins들도 이 권리를 가졌고, 다른 라틴 국가나 라틴 식민지(Latina colonia)로 이주할 때, 자신들의 jus Latii를 유지하였다. 법적으로 더 낮은 지위의 식민지로 이주해야만 했을 때, 이 권리는 자신의 시민권의 수준을 보존하지 않았다. Latina colona로 이주하는 완전한 로마 시민권자는 jus Latii의 수준으로 낮아졌고, 그러한 이주와 지위 하락은 자발적인 행위여야만 했다.

몇가지 면세와 법적, 특별히 지방 법규의 속박으로부터의 면책

재판정에서 기소하거나 기소 당할 수 있는 권리.

사실심을 할(재판정에 나타나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권리.

판사의 판결에 항소하여 하급심의 판결에 항소할 수 있는 권리.

로마 시민은 고문받거나 채찍질할 수 없었고, 반역 죄가 드러나지 않으면 사형 선고를 받을 수 없었다.

반역의 혐의가 있으면, 로마 시민은 로마에서 심리를 받아야 했고, 사형 선고를 받더라도 십자가형 형벌을 받을 수 없었다.

 

로마 시민권은 로마 군대에 등재되어야 했으나, 이것은 때로 무시되었다. 시민권자가 아닌 사람들이 보조군에 합류해서 복무한 다음 시민권을 얻기도 했다.

기원전 5~기원전 4세기는 그리스 정신을 주축으로 문화가 번영한 시대였다. 이 시대에 그리스는 약 1,500여 개의 폴리스로 이루어졌지만, 발전은 동등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문화적으로 융성한 아테네와 독특한 국가 체제를 가진 스파르타의 격차는 주목할 만하다. 이런 폴리스들은 아고라나 아크로폴리스 같은 다양한 공공시설로 이루어졌지만, 그리스인들은 사람들의 집합체 자체를 폴리스의 본질로 여겼다. 이 시기에 대표적인 폴리스인 아테네에서는 민주정이 무르익어 갔다. 국정을 이끌어가는 권한이 귀족에서 민회로 넘어갔으며, 민회는 귀족정치가를 우두머리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한 시민들로 구성되었다. 민회에서는 엄격한 권력의 감시와 함께 모든 대소사가 처리되기도 해서 변론술이 발달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민회를 중심으로 한 민주정이 발전하면서 관리의 임용도 더 민주적으로 여겨진 추첨제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추락된 귀족적 평의회의 권한은 500인 평의회와 민회 법정, 10인의 장군직인 스트라테고스로 넘어갔는데, 이를 에피알테스의 민주개혁이라고 한다. 에피알테스의 개혁을 이어 받아 민주정을 완성시킨 것은 제국주의자인 페리클레스였다. 외국인의 시민권 취득 자격을 제한하고, 각종 사회 제도의 개혁을 통해 아테네인의 이익을 최대한 추구했다.

 

한편 시민의 권위는 높아졌으나, 이는 아테네의 시민권을 가진 성인 남성에만 국한되었다. 여전히 거류외인, 외국인, 여성의 지위는 매우 낮았다. 그중에서도 여성은 합법적인 지위를 갖지 못했고 교육도 받지 못했다. 또한 사유재산제가 발달한 그리스에서 가족의 재산과 토지에 대해 어떤 권한도 없었으며, 남성에게 종속된 열등한 존재였다.

 

 2) 로마 시민권의 습득

바울처럼 세습되는 것이 경우와 사도행전 2228절처럼 천부장에게 거액을 주고 사는 경우가 있었다.  


행전 22:24-29

“24 천부장이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고 그들이 무슨 일로 그에 대하여 떠드는지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심문하라 한 대 25.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 있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26.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이르되 어찌하려 하느냐 이는 로마 시민이라 하니 27.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시민이냐 내게 말하라 이르되 그러하다

 

28.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이르되 나는 나면서부터라 하 29. 심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시민인 줄 알고 또 그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하니라

 

 

이처럼 로마제국에서 시민권은 거액을 주고 살만한 가치가 있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2. 로마의 산물 -채석장

채석장 또한 로마제국의 산물이다. 로마제국은 가장 큰 죄를 지은 죄인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그 다음 중죄인은 노예를 삼아 광산이나 채석장에서 평생 고된 노동을 시켰다. 스파르타쿠스가 채석장에서 죽음을 무릎쓰고 도망하여 난(B.C. 73-71)을 일으켰을 정도로 채석장은 힘들고 험한 곳이었다.  

사도요한을 밧모섬 채석장에 보낸 것은 로마제국이었다. 사도요한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에 감동을 받고 그리스도인의 최후 승리를 노래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

 

로마 제국 경영 키워드는 관용이었다.

그러나 이 관용은 노예들을 철저히 배제한 귀족 중심의 관용이라는 한계가 있다. 로마 제국 전체의 관용을 가장 중요한 슬로건으로 내걸었고, 그들 스스로 매우 관용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제국과 관용은 처음부터 함께할 수 없는 단어이다 .제국 자체가 이미 속국의 부수어지고 깨진 평화를 전제로 하는데 거기에 어떻게 관용이 들어갈 수 있는가? 로마가 단지 다른 제국들에 비해 수명이 길었다는 이유로 관용의 승리라고는 볼 수 없다.

 

진정한 관용은 십자가의 관용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인간으로 내려오신 바로 그 사실이 관용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의 노예들이 도망가면 본보기로 삼는 사형 틀인 십자가에서 인간들의 죄를 용서받게 하시기 위해 죽으심으로 진정한 관용을 보여주셨다. 사람이 베푸는 작은 자선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관용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큽니다. 관용은 제국이 슬로건으로 내놓는다 해서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