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요20장)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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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온갖 수치와 조롱을 받고 임종을 맞이하셨다.
1. 역사는 “예수님이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성경말씀에서는 “예수님은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죽었다”고 선포하고 있다. 예수님의 죽음은 죽음 자체보다 왜 죽었느냐는 죽음의 이유에서 그 중요성이 나타난다. 또 예수님은 단순히 죽었다고 하기보다 어떻게 죽었느냐고 하는 죽음의 방법에서 큰 의의가 나타난다. 예수님은 해골이라는 뜻을 지닌 갈보리(직역으로는 골고다)라는 예루살렘의 한 낮은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맞이하셨다. 이 장소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볼 수 있는 도로 연변에 있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행하여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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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당시에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사형 틀인 십자가에 매어 달리어 만인이 보는 가운데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 자체는 곧 수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로마의 철학자 시세로는 십자가의 죽음이 결코 로마인에게 행하여져서는 안 되며 로마인에게는 그 참상을 들려주어도 안 되며 보여주어서도 안 되며 생각조차도 못하도록 하여야한다고 말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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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시관을 받고 손과 발에는 못이 박힌 채 물과 피를 쏟으시며 십자가에 매어 달리신 예수님을 보는 유대 백성과 관원들과 로마 군병들은 조롱과 비웃음으로 이 말 저 말을 내어 뱉었다.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라면 이제 자기도 구원할 지어다!”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그들은 예수님의 사명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자들이었다. 만일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신다면 아무도 구원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구원할 필요가 없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매어 달리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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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수님이 매어 달리신 십자가 위에는 빌라도가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명 아닌 죄명을 써서 붙이도록 하였다. 그것도 히브리, 헬라, 로마 언어들로 써 붙이게 하였다. 히브리어는 종교를 상징하며 헬라어는 철학과 학문을 대변하며 로마어는 정치와 제도를 나타낸다. 인간의 모든 조직과 체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죽이고야 말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는가? 예수님은 당신을 배척하고 죽인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는 왕의 사역을 바로 그 십자가 위에서 완성하셨다. 예수님의 구원의 사역은 이 땅에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역임을 저들은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구약의 말씀과 예언대로 십자가의 수치와 조롱을 다 받으셨다. 예수님에게 신포도주를 먹인 일이라든지(시69:21),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며 가진 일이라든지(시22:18),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한 일이라든지(시22:6-8), 예수님을 강도들과 같이 취급한 사실(사53:12) 등등 모든 일들은 예언대로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현재의 우리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계획해 놓으셨고 예수님은 이러한 아버지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와 예수님의 인간 사랑의 실행은 감사와 찬양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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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시간은 오전 9시였다. 그때부터 정오 12시까지 예수님은 밝은 태양 빛이 비추는 가운데 십자가 위에 매어달려 계셨다. 그리고 정오부터 3시간 동안 온 땅이 흑암에 뒤덮인 중 약 3시경에 예수님은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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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이 임종을 거두실 때의 그 어두움은 일반 견해로는 해명할 수 없는 기이한 흑암이었다. 폭풍우가 닥친 것도 아니며 일식 현상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이 흑암은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하기 전 3일 동안 온 땅을 뒤덮었던 바로 그 흑암과 같았다. 그때 그 9번째 흑암의 재앙에 뒤이어 마지막 장자가 희생되는 재앙이 연결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는 희생당한 양의 피로 인하여 죽음을 면했으나 애굽 백성의 장자는 모두 죽게 되었던 역사의 내용이다. 갈보리 언덕위의 흑암은 바로 하나님의 어린 양 독생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죄를 다 지시고 희생되었다고 알려주는 선포였다. 이 흑암의 선포가 어떤 이에게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며 또 어떤 이에게는 심판의 엄한 경고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영적교훈을 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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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흑암이 닥쳐왔을 때 예수님은 3시간 동안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잠잠히 계셨다. 예수님은 흑암 속에서 모든 사람의 죄악으로 인한 형벌과 저주의 쓰라림을 겪어야 하셨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신21:23)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셨던 것이다(갈3:13). 예수님은 흑암이 사라지기 전에 하나님을 향하여 외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지막으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죄 없으신 예수님에게 사람들은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죄악을 다 행하였고 예수님은 그 모든 죄악의 대가인 죽음을 받으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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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세 가지의 놀라운 사건이 발생하였다. 첫째,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갈라졌다(마27:51). 이것은 사람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상징이다(히10:14-26). 둘째,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나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게 되었다(마27:52-53). 예수님의 죽음은 구원과 영생을 약속하는 사건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었다. 셋째, 로마 군인의 백부장이 예수님을 지칭하여 “이 분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고 고백하였다(마27:54). 이 말은 항거할 수 없는 진리를 증거하는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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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은 돌아가신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이 놀라운 사건은 지금까지고 믿을 수 없다고 하여 논란이 되고 있으나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님이 되심을 입증하셨다. 부활사건은 역사적인 실제사실이라는 것을 성경은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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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을 따르던 남녀 제자들은 부활사건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았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인들은 예수님의 몸에 향품을 바르기 위하여 무덤을 찾아갔던 것뿐이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성급하게 취급되었던 예수님의 장례절차를 보완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때는 오후 3시였으며 그때부터 일할 수 없는 안식일이 시작되기까지는 약 3시간 정도의 여유밖에 없었으므로 여러 가지 수속절차로 시간을 쓰고 나서는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동산의 무덤 속에 넣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여인들은 무덤과 시체의 장소를 확인하여 두고 돌아가서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였다가(눅23:56) 안식일이 지난 첫 새벽에 다시 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여인들의 향품은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사용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아셨던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마리아가 옥합의 향유를 예수님에게 부었을 때에 “이 여인이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마26:12)고 해설하여 주셨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완전한 장례절차를 받고 돌아가신 것이었다. 온전한 죽음이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더욱 영광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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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님의 부활은 말씀대로 이루어짐으로써 말씀이 곧 생명이요 빛이요 권세와 영광이 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부활의 첫 새벽에 하늘로써 내려온 천사는 “그는 그의 말씀하시던 그대로 살아나셨느니라”(마28:6)고 일러주신 대로 우리들이 말씀 안에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인격체 안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우리들의 신앙은 부활신앙이다. 우리들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음을 믿고 있기 때문에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일일이 제자들을 찾아다니시면서 말씀으로 다시 그들의 믿음을 불일 듯 일어나게 하여주셨다. 그 후로부터 제자들의 믿음은 반석과 같이 견고하여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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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으로 이루어졌다. 예수님은 몇 시에 다시 살아나셨는지 우리들은 그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으나 말씀하신대로 제3일만에 부활하셨음을 알 수 있다.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무덤의 육중한 돌을 굴려내었다(마28:2). 무덤 문이 열렸다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오시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만천하에 알리시기 위한 배려였다. 예수님의 신비하신 부활의 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완전한 몸이므로 문으로 드나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 예수님이 입으셨던 수의와 머리를 매었던 수건은 단정하게 접어져 있었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부활의 몸을 입기 위하여 전혀 몸부림을 치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질서정연한 가운데 나타났음을 가르쳐준다. 하나님의 능력은 어느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로 만백성에게 나타났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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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눅24:36) 하시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그들을 위로하여주셨다. 또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는 여인들에게 “무서워 말라”(마28:5), “놀라지 말라”(막16:6)고 위로하여 주었다. 성도들은 어떠한 형편에 있을지라도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어두운 세상의 빛으로 늠름하게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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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새벽에 여인들이 무덤에 가서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여 근심할 때에 천사가 나타나서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눅24:5-6)라고 알려주는 말을 모든 사도들에게 가서 알려주었으나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Gr. leros; folly, silly talk; KJV. idle tales; NIV. nonsense)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눅24:11)라고 하였다. 부활(resurrection)은 어느 누구라도 사람의 육성과 지성을 가지고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영어 단어 “silly”의 뜻을 보면 아래와 같다. 또 “nonsense”의 뜻은 “무의미; 터무니없는 생각; 허튼 말[짓]; 시시한 일, 하찮은 것”등이다.
① 어리석은(stupid). [SYN.] ⇨ FOOLISH.
② 양식(良識)없는, 분별없는, 바보 같은(absurd).
③ (구어) 아연(啞然)한, 어이없는, 기절한, 까무러친.
④ (고어) 단순[소박]한, 순진한(innocent); 신분이 낮은(humble).
⑤ 천치의, 저능한(imbec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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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20장에서 “알지 못하더라”(Gr. ouk oida)라는 기록이 4회 나오고 있다.
요20: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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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번 연구에서 “알다”의 두 가지 성경원어를 공부하였다. 그 하나는 “oida”(Gr.) 즉 “초자연적 영적 지식,” 다른 하나는 “ginosko”(Gr.) 즉 “체험으로 얻는 지식”이었다. 2절에서 여인들은 빈 무덤을 보고도 부활에 대하여서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는 것이고, 9절에서 사도들은 부활에 관한 성경의 예언을 배우고도 알지 못하였고, 13절에서는 예수님의 시체를 찾지 못한 낙담의 기록이며, 14절은 예수님을 보고도 알지 못하는 상항을 기록하고 있다. 부활에 관한 하나님의 역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당연한 사실의 기록들이다. “부활”은 인간의 육성과 지성을 총동원하여 규명하려고 해도 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사건이다. 초자연적 영적 계시에 의한 지식을 접수하고 믿을 때에 비로소 믿어지고 받아드리게 된다. 부활은 하나님이 친히 이루신 초자연적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적 사항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영적 각성을 통하여 믿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천사가 영적 정보를 알려주고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시고 성령님이 깨닫게 하여 주실 때에 믿고 알게 되는 “oida"지식(=앎)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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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을 언급하신 예수님의 기록
마22:28.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눅14: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요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11: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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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Resurrection)에 관한 성경원어(Greek)의 해설과 성경구절
1. “anastasis”(Gr.): 죽음의 상태에서 일어서다 또는 일어나다.
가. “첫 열매인 예수 그리스도”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행26: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아그립바 왕 앞에 선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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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에게 속한 자들”
고전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계20: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히11: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요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행24:15. 그들이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눅14: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눅20: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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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gersis"(Gr.): 잠에서부터 깨어나다(waking up) 그리고 일어나다(rising up).
마27: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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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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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은 왜 나를 붙들지 말라고 하셨는가? 제자 도마에게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20:27)고 하신 내용과 비교하여 볼 때 예수님과의 접촉을 만류하신 이유는 무엇이며 반면에 접촉을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정리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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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먼저 부활사건은 철저히 하나님 편에서 모든 것을 진행하고 계심을 알아야 할 것이다. 사람 편에서 하나님(=예수님)을 향한 어떤 인간 주도적인 언어나 행동은 하지도 않았고 할 수도 없었던 것임을 보게 된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해는 철저하게 하나님 편에서 계시를 통하여 알려주고 통보하여주고 깨닫게 하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이 세상으로 오신 목적은 육적인 사람들을 영적인 사람으로 회복하여 하늘백성으로 삼으려는데 있다. 이것은 곧 실낙원에서 복낙원으로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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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를 붙들지 말라”(Do not touch!; KJV, Touch me not!; NIV, Do not hold on to me!)에서 헬라어의 기록은 “me haptou”(Gr.)로 표기되어 있다. “me”(Gr.)는 “no, not”로, “haptou”는 “touch”로, 합하여 “Do not touch!”로 번역된 것이다. 우리말로는 “만지지 말라!,” 또는 “붙들지 말라”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본래 원어 “haptou”(Gr.)의 뜻은 “touch, cling to, take hold of, hold someone or something” 등으로 우리말로는 “매어달리다, 붙들어두다”라는 매우 강한 뜻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애정과 소원을 따라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꼭 잡고 매어 달려서 잡아두게 된다면 하나님의 뜻과 계획으로 진행될 오순절과 성령님의 오심에 대한 진행은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반드시 보내드려야 모든 사람(만민)의 주 예수님이 되신다. 성경의 역사와 진행은 오직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의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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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따라서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나오는 것이다. 역사의 진행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예비하신 순서를 따라서 진행된다. 예수님은 인간의 영성회복의 완성을 위한 축복을 이 자리에서 선포하신다.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이라는 영성회복의 말씀이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는 원칙 아래에서 말씀을 선포하시며 사역을 하셨다. 그 주님의 사역이 이제는 부활의 주 예수님과 함께하는 모든 성도들이 행할 수 있게 하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하나님”을 “나(우리)의 하나님,” “예수님의 아버지”를 “나(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따를 수 있는 축복과 특권을 누린다. 영성 회복의 시작과 발전은 전적으로 하나님(=예수님, 성령님)께 있음을 알고 믿고 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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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이며 이것이 구원의 필수 요건이 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고 한 대로 예수님의 부활은 구원에 이르는 신앙내용이며 기독교의 근본진리이며 복음의 본질적 부분이다(고전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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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어떤 몸일까 살펴보자. 먼저 신구약에는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기록이 있다. 사르밧 땅의 과부 아들(왕상17:17-24), 수넴 여인의 아들(왕하4:17-27), 유대 관원인 야이로의 딸(막5:22-43), 나인성의 청년(눅7:11-17), 나사로(요11:17-44), 여제자 다비다(행9:36-43), 졸다가 떨어져 죽었던 유두고(행20:7-12) 등이다. 그들은 죽었다가 소생(蘇生)했을 뿐 부활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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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의 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먼저 오셔서 보여주신 점에서 분명한 특징이 부여된다.
첫째, 살과 뼈를 가진 몸이지만 현재 우리의 몸과는 다르다(눅24:29, 40). 부활하신 예수님은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못 자국을 보이시며 손가락을 내밀어 창으로 찔렸던 옆구리 상처를 만져 보라고 말씀하셨다(요20:25, 27). 무덤을 찾아왔던 여자들이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였다(마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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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부활한 몸을 가지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음식을 잡수셨다(눅24:41-45). 영은 음식을 먹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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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부활한 몸은 우리가 가진 육체와는 다르나 계속성과 연관성을 갖는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알아볼 수 없었고 동산지기로 생각했고(요20:14-15),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이 동행하신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식별하지 못하였고(눅24:16), 다락방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제자들은 영으로 생각한 것은 몸의 변화가 있었던 것을 가리키고 있다. 흙으로 된 육체는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는다고 하였다(고전15:49). 부활의 몸은 썩지 않고 영광스러우며 강하고 신령한 몸이 된다(고전15: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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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부활한 몸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부활체는 하늘의 천사와 같이 죽을 수 없음과 같다고 하였다(마22:30). 닫혀있는 방에 문을 열지 않고 들어갈 수 있고(요20:19) 동행하던 일행 중에서 갑자가 사라질 수도 있다(눅24:31). 병에 걸려 시달리지도 않고 늙음의 현상이 없으며 이별의 슬픔도 겪지 않는다. 예수님의 재림의 날에는 죽은 자들이 다시 살고 살아있는 성도는 영광의 몸으로 변화를 받으므로(고전15:51-52) 이것은 성도들의 몸의 구속을 받는 복되고 소망스러운 날이 될 것이다. 요20:19, 26에서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에서 “닫았다”(shut, lock, bar)는 말은 “문빚장을 지르고 꼭 걸어 잠그다”라는 뜻이다. 어떠한 곳이라도 어떤 때라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나타나고 사라질 수 있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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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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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후 첫 날 저녁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네 가지 선물 (요20:19-23)
첫째, 평강(Eternal Peace), (21).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Peace be with you!): 이 말씀은 일반적인 인사로 표현되어 있으나 놀라운 약속의 실현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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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사명(Evangelistic Mission), (2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As the Father has sent me, I am sending you!):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기 위하여 “사도”(apostle)로 삼으셨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사도로 보내심과 같은 내용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기도의 응답과 실현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요17:18)라고 이미 기도하셨다. 특히 어두운 “세상”에서 복음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은 두려운 사명이며 고난의 영적 투쟁이다. 그러나 이미 죽음을 정복한 부활의 주 예수님은 정복자(conqueror), 주관자(commissioner), 동행자(companion)로 제자들과 함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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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영력(Spiritual Power), (22).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And with that he breathed on them and said, “Receive the Holy Spirit.”): 이것은 예언의 성취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7: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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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예수님은 영광을 이미 받으셨으므로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마실 수 있게 하여 주셨다. 이것을 일러 “요한의 오순절”이라고 한다. 요한은 누가와 같이 오순절의 때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오순절을 하나로 묶어서 선물로 주신다. “숨을 내쉼”은 때와 장소의 구별이 없이 항상 생명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숨”은 “신령한 숨”(성령님)이며 성령님은 제자들 가운데 항상 계셔서 능력의 사역을 주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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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예수님은 “숨을 내쉬다”(breathed)에서 창세기의 하나님 아버지의 창조를 다시 한 번 새롭게 조명하여 주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7).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의 숨결(=성령님)을 제자들에게 “말씀으로” 불어넣어 주셨다. 또 숨결은 바람이다. 마른 뼈의 부활은 숨결과 바람으로 소생하게 됨을 에스겔서에서 보게 된다(겔37:1-14). 예수님은 에스겔 37장의 예언을 성취하는 차원에서 제자들에게 성령님의 영원한 생명을 불어 넣어주셨다. 이 일이 곧 사도행전 2장에서 확실하게 들어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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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37:9)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7:14).
넷째, 권세(Heavenly Authority),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아래의 구절과 같은 내용이다. 이 권세는 사도들이 어떤 개인의 죄를 용서하거나 그대로 두는 권한을 부여 받았다는 것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의 용서”를 받는다는 선포의 능력을 의미한다. 복음의 선포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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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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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 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Thomas said to him, “My Lord and my God!”)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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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마가 “[당신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8)라고 한 말은 완전한 문장이 아닌 감탄사이지만 “신앙고백”이며 “예수님에 관한 선포”라고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받아드리셨기 때문이다(29). 요한복음은 1:1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고 1:14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면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나타내려고 하였다. 계속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1:29, 36), “하나님의 아들”(1:34, 49), “랍비”(1:38), “메시아”(1:41), 이스라엘의 임금(1:49), 그리고 “인자”(1:51) 등으로 서술하였다. 이제 도마에게 와서 그리스도 선포의 절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제1장에서 서술하였던 예수님에 관한 선포가 제20장 도마의 선포에서 최대 절정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요8:28에서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then you will know that I am [he]” (Greek “I am”)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 들려진 후에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시고 아버지께로 가시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제 예수님은 “주님”(Lord)이시며 “하나님”(God) 되심이 완전하게 나타나고 계시된 것이었다.
* 예수님의 부활이 후에 미친 영향
1. 제자들의 설교가 능력으로 역사하였다. 다시 사신 주 예수님의 영원성과 그 이름의 능력이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고 질명의 치료를 받게 되었고 심령의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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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자들이 자기의 모든 생애를 예수님께 바쳤다. 제자들이 눈으로 보고 만지고 체험한 주님은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구원의 주님 영원한 하나님이 되셨다. 어떠한 박해도 받았고 순교를 할 수 있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나타나신 기록은 다음과 같다. 베드로에게(눅24:34; 고전15:5), 막달라 마리아에게(요20:10-18), 엠마오의 두 제자에게(눅24:13-31), 사도들에게(눅24:36-45), 도마가 없는 사도들에게(요20:19-24), 도마가 있는 사도들에게(요20:25-29), 디베랴 호수의 7제자들에게(요21:1-23), 갈릴리의 500성도들에게(고전15:6), 야고보에게(고전15:7), 승천하실 때 많은 성도들에게(행1:3-11), 스데반에게(행7:55), 바울에게(고전15:8), 다메섹 가는 바울에게(행9:3-6), 예루살렘에서 바울에게(행22:17-21; 행23:11), 밧모 섬의 요한에게(계1:10-19)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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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경말씀의 권위가 절대화 되었다. 바울은 고전15:3-4에서,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하면서 성경말씀의 권위를 절대화 하였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말씀대로 죽고 사시고 현존하신다. 이러한 사실을 사도들은 사도행전 2:24-32에서 더욱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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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2:14-36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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