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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및 요한신학

요한복음의 중요한 단어 " μένω(메노, 거하다)" 대해

by 은총가득 2020. 4. 23.

 

           

                  

 

             요한복음의 중요한 단어  

                          "μένω(메노) : 거하다"에 대해  

 

요한복음 15:1-10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1 γ εμι ἡ ἄμπελος ἡ ἀληθιν καὶ ὁ πατρ μου  γεωργς στιν.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2 πν κλμα ν μο μ φρον καρπν αρει ατό, κα πν τ

 καρπν φρον καθαρει ατὸ ἵνα καρπν πλεονα φρῃ.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3 ἤδη μες καθαροί ἐστε δι τν λγον ν λελληκα μν·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4 μενατε ν μοί, κγὼ ἐν μν. καθς τ κλμα ο δναται

καρπν φρειν φ’ ἑαυτοῦ ἐὰν μ μν ν τῇ ἀμπλῳ, οτως

οδὲ ὑμες ἐὰν μὴ ἐν μο μνητε.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5. ἐγ εμι ἡ ἄμπελος, ὑμες τ κλματα. ὁ μνων ν μο κγὼ ἐν

ατ οτος φρει καρπν πολν, ὅτι χωρς μο ο δνασθε

ποιεν οδν.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6. ἐὰν μ τις μν ν μοί, ἐβλθη ξω ς τ κλμα καὶ ἐξηρνθη

 κα συνγουσιν ατ κα ες τ πρ βλλουσιν κα καεται.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7. ἐὰν μενητε ν μο κα τὰ ῥήματ μου ν μν μεν, 

  ὃ ἐὰν θλητε ατσασθε, κα γενσεται μν.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8. ἐν τοτῳ ἐδοξσθη  πατρ μου, ἵνα καρπν πολν φρητε

   κα γνησθε μο μαθητα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9. Καθς γπησν με  πατρ, κγὼ ὑμς γπησα·

   μενατε ν τῇ ἀγπ τῇ ἐ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0.ἐὰν τς ντολς μου τηρσητε, μενετε ν τῇ ἀγπ μου, καθς γ τς

 ντολς το πατρς μου τετρηκα κα μνω ατοῦ ἐν τῇ ἀγπῃ.

 

 

    μένω 및  복합 동사의 뜻

 

 
μένω(메노): 머무르다, 대기하다
μ-(-): 인내하다
παρα-(파라-): 남다, 견디다
περι-(페리-): 대기하다
προσμένω(프로스메노): 계속 머물다, 함께 머물다
μονή(모네): 머무름, 머무는 장소
πομονή(휘포모네): 인내, 결심
 

 

  1.μένω의 뜻



1) 이 단어는
a. “한 장소에 머무르다”. 비유적으로는 한 영역에 남아있다” ;
b. “반대를 무릅쓰고 참다, 굳게 견디다, 견고히 서다” ;
c. “조용히 머무르다” ;
d. “남아있다, 인내하다, 억지로 머무르다라는 뜻을 갖는다.

 

2) 또한 어떤 사람을 고대하다라는 타동사적 용법도 있다.

신약에서 이 단어는 인간과 땅의 가변성과는 달리 하나님의 영속성과 관계되는 중요한 용어이다.

 

구약에서도 언급되듯이,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으로서, 그의 행위와 말씀은 영원히 거하며(7:7; 14:24; 40:8), 그의 영원하신 성읍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고(14:10; 66:22), 그는 또한 의인들에게 영원한 몫을 나누어 주신다(cf. 112:3,9).

 

신약은 이러한 요지들을 거듭 언급한다. 하나님의 행위는 굳게 서며(9:11), 그의 말씀(벧전 1:23, 25)과 새 언약(고후 3:11)과 믿음, 소망, 사랑(고전 13:13)도 굳게 선다.

 

 요한복음 12:34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계신다고 언급되며, 1:32에서는 성령이 예수 위에 다만 잠시 내려오신 것이 아니라 계속 머물렀다고 증거된다.

 또 다른 사고 체계가 디모데전서 2:15과 디모데후서 3:14에 나오는데, 거기서는 믿음, 사랑, 거룩 안에서와 배우고 믿은바 안에서의 신자들의 견인이 언급된다.

 

요한문헌 내에서는 이 거함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거하심이나 성도들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거하심에 대한 역으로서 그리스도 혹은 하나님 안에 좀 더 인격적으로 거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cf. 6:56; 15:4ff.; 14:10; 요일 2:6,24,27).

이러한 거함 안에서 종말론적 약속이 이미 성취되고 있지만, 거한다는 개념은 신비적 혹은 황홀경적 동일화와는 전혀 다르다.

 

요한문헌에 나오는 다른 용법으로서, 하나님의 말씀 안(요일 3:15), 사랑 안(3:17), 진리 안(요이 2), 기름부음 안(요일 2:27), 하나님의 집 안(8:35), 빛 안(요일 2:10), 교훈 안(요이 9)에 거하는 것이 언급된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어두움(12:46)과 죽음(요일 3:14) 가운데 거한다.

 

 

   2. μένω 복합동사(전치사 + μένω) 

1) ἐμμένω

이 단어는 a. “어떤 것 안에 거하다” ; b. “어떤 것에서 떠나지 않다”,

 예컨대 동의하다라는 뜻을 지닌다. LXX에도 이 단어는 이사야 30:18에서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의미로 나타난다. 신약의 사도행전 28:30에서 이 단어는 한 장소에 머무른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종교적으로는 이 단어가 믿음 안에서의 견인(14:22)과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 머무름(8:9)을 의미한다. 갈라디아서 3:10에서 바울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게 내려지는 심판에 관해 언급한다.

 

2) παραμένω.

이 단어는 a. “어떤 곳에 남다, 견고히 서다, 견디다” ; b. “어떤 사람 곁에 서다” ; c. “어떤 상태나 직업에 머무르다를 의미한다.

 

 * 신약의 고린도전서 16:6에서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자기가 그들과 함께 거하면서 그들 중에서 시간을 바쳐 일할 것이라고 말한다. 빌립보서 1:25에서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보다는 신자들 가운데서 일을 계속하는 편이 더 유익하다고 언급한다. 히브리서 7:23에서는 이 용어의 부정을 사용하여 영원하지 않은 구약의 제사장 직분과 영원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을 대조하고 있다. 야고보서 1:25은 율법 안에 거하는 자(한글개역,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에 대해 언급하는데, 그러한 자는 다만 율법을 흘끗 보고 지나쳐 생활에 아무 변화도 가져오지 않는 자가 아니라, 율법을 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를 가리킨다.

 

3) περιμένω.

이 단어는 기대하다, 고대하다, 기다리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신약에서는 사도행전 1:4에만 나오는데, 거기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명하신다.

 

4) προσμένω.

이 단어는  a. “계속 머무르다” ; b. “함께 머무르다” ; c. “기다리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신약에서 이 단어는 사도행전 18:18에서 a의 의미로, 마가복음 8:2에서 b의 의미로 사용되는데 마가복음 8:2에서는 무리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그의 역사를 보고자 하여 예수와 함께 머무른다.  사도행전 11:23은 예수와 함께 동행함을 언급하는데, 거기에는 반대를 무릅쓰고 견뎌낸다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이렇게 은혜 안에 신실히 머무는 일은 쉽게 요동하는 경솔함과 대조를 이룬다(13:43; cf. 4:17). 디모데전서 5:5에서 의로운 과부는 경박한 젊은 과부들과는 달리, 모든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계속 기도 안에 머무른다고 언급된다.

  

5)  μονή (μένω의 명사형

μονήa. “머무름, 머뭇거림, 거함” ; b. “거하는 장소”,

예를 들어 여관이나 망대를 의미한다.

 

신약에서 이 단어는 요한복음에만 2회 나온다.

14:2에서 이 단어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아버지 집에서 제자들을 위해 마련하시는 영원한 처소(우리의 일시적인 지상의 상태와 대조됨)를 가리킨다.

그러나 14:23에서 그 처소는 땅 위에 존재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아버지께서 신자들에게로 오셔서 저들과 함께 집을 꾸미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사실이 구약에서는 제사로 표현된다(25:8). 이러한 거하심은 끝날까지 계속 되리라고 약속된다(37:26-27). 이 약속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실현되었다.

 

14:214:23의 언급은 모두 보편적이거나 종말론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다. 구원이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신자들 안에 거하시고, 또 신자들을 취하사 그들과 함께 거하게 하심을 통하여 그리스도 및 하나님과 연합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μονή는 그 연합이 파괴되지 못하게 만든다.

의인들이 하늘에 거하게 된다는 사상은 페르샤 문헌들과 이 후에 탈무드 및 만다야 문헌들(Mandaean writings) 안에서 발견된다. 플라톤도 영혼이 돌아갈 하늘의 거처에 대해 언급하였다. 신약에서는 누가복음 16:22; 33:43에 그러한 개념이 반영된다. 내재하심에 관해, 필로는 νουςλόγος, 혹은 실제로 하나님 자신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으로 언급한다.

 

 

6)  ὑπομένω. ὑπομονή

 

  A. 헬라 세계

πομένωa. “뒤에 머무르다, 살아서 머무르다” ; b. “고대하다” ; c. “견고히 서다” ; d. “견디다, 참다, 참고 당하다를 의미한다.

 ὑπομονήa. “견고히 섬” ; b. “기대, 기다림을 의미한다.

 ὑπομένω는 본래 윤리적으로는 중립적이었으나, 용감한 인내라는 의미에서 훌륭한 덕으로 인정되었다. 단순한 인내와는 달리, 이 단어는 비록 반드시 성공적인 저항은 아닐지라도 온 힘을 다하는 적극적 의미를 갖고 있는데, 예를 들어 부상자가 고통을 견디는 것이나, 운명의 타격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것이나, 육체의 매질을 의연히 당하는 영웅적 행위나, 뇌물을 단호히 거부하는 행위에 대해 사용된다.

 

 진정한 πομονή란 외적으로 사람들의 견해나 상급에 대한 소망으로 인해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명예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유발되는 것이다. 스토아 철학에서 πομονήνδρεία(남자다움)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B. 구약과 후기 유대교

 

1.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을 기다림 즉 하나님께 의뢰함.

 

LXX 용법의 특징은 πομένειν을 대격 혹은 여격의 인칭 명사나 대명사와 함께 사용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의미는 거슬러 서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단어는 긴장되고 끈질기고 참을성 있는 기대를 포현하는 히브리 용어들에 사용된다(cf. 3:9; 37:7; 32:4).

 

이와 유사하게 명사 πομονή도 확신이나 긴장된 기대를 가리킨다.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구약에서 의인의 징표이다. 고초나 박해를 당할 때,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며 구원을 기다린다(cf. 37:9; 7:7).


 

 하나님은 그들이 마음 놓고 신뢰할 수 있는 전능하신 언약의 하나님이시다(51:5; 3:8).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14:8), 또한 이스라엘인들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39:7). 오직 악한 자들은 하나님 안에 있는 소망을 저버린다(Sir. 2.4). 최후의 구원은 종말론적인 것이다(2:3).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12:12).

 

여기서 초점은 적대적인 세력이나 내향적인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에 맞춰진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πομονή는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27:14). 이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를 기다림으로써 생기는 힘이다(40:31). 소망과 연결될 때 이 기다림이 약화되지나 않을까 염려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 기다림은 소망을 초점으로 삼으며, 소망으로 귀결된다. 의인을 굳게 붙드는 것은 하나님이 공의를 세우시리라는 소망이다(140:12).

 

2. 세상을 향해: 굳건히 견딤, 인내하고 참음.

악에 대해 굳건히 서는 일은 구약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일이다.

욥이 그 좋은 예인데, 이 책에서 πομονή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여러 히브리 용어들에 대해 사용됨). 인간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견디지 못한다(6:11). 그들은 하나님을 거슬러 설 수 없다(9:4). 하나님은 사람의 기대를 끊으신다(14:19). 하나님께서는 친히 욥에게 어느 누구도 자기를 거슬러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신다(41:3). 그러나 욥은 하나님이 중재하시기를 기다린다(14:14). 후기 유대교에서는 욥을 모델로 삼아 경건한 견인의 사상을 더욱 강하게 발전시킨다. 아브라함도 역시 열 가지 시험을 굳건히 참은 모범적 인물로 묘사된다. 마카베오사는 노아와 선지자들과 마카베오 순교자들의 인내를 찬양한다. 이러한 인내는 스토아 학파의 인물들에게서도 볼 수 있지만, 그 인내는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또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더 고상하다.

 

C. 신약

πομονή는 신약 성도들의 신앙이 종말론적 경향을 지니고 있다는 면에서 볼 때 당연히 그들의 기본적 태도가 된다. 적대적인 세계에 대해 그들은 참고 견디면서 천국의 도래와 자신들의 구원을 확신있게 기다린다.

 그러나 신약은 그들을 구약에서처럼 주를 혹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라고 부르지는 않는데, 이는 아마 믿음과 소망에 중심을 기울이기 때문인 것 같다.

πομένειν은 대개 단독적으로 사용되어 견디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며,

 “기다리다, 고대하다를 뜻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1. 하나님을 향해: 고대함, 기다림.

LXX에서의 용법과 유사한 용법이 데살로니가후서 3:5에서 발견될 수 있는데, 거기서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균형을 이루는 그리스도께 대한 한결 같은 고대가 요점이 된다. 요한계시록 1:9에서도 아마 동일한 의미일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경건한 대망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있어서 가슴 설레는 일이다.

 

2. 세상을 향해: 굳건히 견딤, 견인.

a. 공관복음서

예수께서는 이 용어를 3회 사용하신다. 누가복음 8:15에서 πομονή는 참신자의 특성을 결정해 준다. 여기서 인내는 기어코 열매를 맺고야 마는 적극적 힘이 된다. 마가복음 13:13에서는 사람이 구원을 얻으려면 마지막 때의 시험에서 참고 견디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된다. 누가복음 21:19은 동일한 사상을 능동형으로 표현하고 있다(cf. 14:22).

 

b. 바울서신

바울은 πομονή의 주요 특징들이 그리스도인의 생활태도라고 묘사한다. 인내는 용감성이나 무감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소망에서부터 나온다(8:25). 이는 악하고 불의한 현 시대에서의 견딤을 나타낸다(12:2; 고전 3:7).

 

 ὑπομονή는 능동적으로는 선생을 만들어내며(2:7),

수동적으로는 고난을 참아낸다(살후 1:4; cf. 벧전 2:20).

 

 

악에 대해 수동적으로 참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헬라 윤리와는 달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고난 당함을 위해 부르심을 입었으며(14:22), 모든 부끄러움을 찾음으로써 믿음을 나타내 보여야 한다는 사실(cf. 딤후 2:10)을 알고 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만들어낸다(5:3-4). 이 인내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는 종류가 다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떠한 외부적 압력에도 얽매이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인내는 결코 불평적이며 의기소침한 인내가 아니다.

 

 이는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며(15:5), 믿음 및 사랑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딤전 6:11; 딤후 3:10). 디도서 2:2은 믿음, 사랑, (소망 중에서의) 인내의 세 가지 덕을 언급한다. 소망이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소망의 인내는 고통당하는 현 시대에 나타나는 그 표현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자들에게는 참고 견디면 그와 함께 왕노릇 하리라는 약속이 주어진다(딤후 2:11-12).

 

c. 히브리서

핍박당하는 교회를 향해 쓰여진 히브리서는 πομονή를 강력히 권면하고 있다(10:32,36; 12:1). 그리스도인들의 시선은 친히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신 그리스도께 향해야 한다(12:2). 시험을 참는 것은 하나님의 훈련이 된다(12:7).

 

d. 야고보서

야고보도 역시 시련이 믿음을 굳게 하고 인내를 강화하여 온전함에 이르게 한다고 증거한다(1:3-4). 욥은 그에 관한 훌륭한 예이다(cf. 5:10에서는 선지자들도 예시된다). 욥의 경우에서처럼, 만약 신자들이 굳게 인내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5:11; cf. 1:12; 5:12).

 

e. 요한계시록

순교 당하는 교회의 책인 요한계시록은 πομονή를 신자들에게 꼭 필요하고 합당한 것이라고 격찬한다. 한편으로 이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고(1:9; 3:10), 또 한편으로는 고난과 박해를 참는 것이다(2:2-3,19).

 

 최후의 충돌은 가장 큰 시험이 되며,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큰 인내가 요구된다(13:10; 14:10).  요한계시록과는 달리, 요한복음과 요한일삼서에서 πομονήπομένειν이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거기서는 μένειν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F. HAUCK, , 57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