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포와 복음서의 형성과정
1. 복음서
오늘날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복음서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지만, 예수 스스로가 써놓은 글은 아니다.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복음서는 예수의 제자들이 후세에 글로 남긴 것이다.
글로 기록된 신약성서가 있기 훨씬 전부터 초대교회는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전했다. 예수는 당신 계시의 말씀을 기록 없이 말씀으로 선포했고, 제자들도 口傳으로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글로 쓰여지고 인쇄된 복음서를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복음서라는 책이 생겨났을까? :
이 복음서의 형성과정을 알아보고 살펴본다면 성서의 메시지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배경이나 환경, 성장과정 등을 알 수 있다면 현재의 그 사람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복음서 역시 그 형성과정과 역사적, 사회적 배경 등을 이해한다면 복음서의 메시지를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복음서는 초대교회의 구전적 전승을 수록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성서가 있기 전부터 교회 공동체와 복음선포가 있었다. 따라서 성서는 교회에서 탄생했으며, 교회 공동체를 위한 책이었다. 그래서 성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회 공동체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교회 공동체라고 하는 넓은 밭에서 맺은 열매가 복음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도 성서를 마음대로 이해할 수 없고 실제로 교회라는 공동체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서 해설은 전통적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 공동체를 위해서 이루어져 왔다. 이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알아듣기 위함이었다.
분명한 사실은 예수의 복음 선포와 그분의 행적이 먼저 있었고 이것을 구전으로 전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기록으로 남긴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읽는 복음서라는 점이다.
2. 성서의 靈感
교회는 초창기부터 "성서는 하느님의 영감으로 인간의 손을 빌려 기록된 거룩한 책"이라고 선포했다.
이 성서의 영감은 성서 전반과 그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초점이 된다. 교회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성서는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며, 하느님이 이 책의 원저자이시다" (신앙 헌장, 제2장)라고 선언했다. 하느님의 영감은 인간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개입을 드러내는 신비로운 부분이다.
성서의 영감은 인간의 자유와 개성을 무시하고 단순한 도구로 쓰여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성서의 영감에 대한 가르침은 성서 작가들의 인간적 활동을 무시하거나 제외하는 것이 아니고 그 한계를 결정해 주는 것이다.
성서의 최종 원인과 저자는 하느님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성서 작가들도 분명히 성서의 저자들이다. 성서 작가들은 성령의 도구로 사용되었고 그들의 특성과 개성이 성서 저술에 반영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성령의 영감은 과거에 한 번 있었던 사건이 아니고 항상 지속되는 하느님의 능력이고 효과이다. 즉 성서 작가들의 저술에 하느님은 다양한 형태로 개입하셔서 당신을 계시하신다. 따라서 하느님의 영감은 성서 작가가 저술하는 내용의 이해 여부와 상관없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기록하게 하시는 특별한 하느님의 활동을 가르치게 된다. 그러므로 성서에 저술된 것은 모두가 하느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간의 말이기도 하다.
3. 성서는 의미가 중요하다
신약성서 중 복음서는 예수의 일생을 전해 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예수의 전 생애를 전해 주는 전기는 아니다. 또한 복음서는 그분의 일생을 조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 결론부터 따져보면 복음 작가들에게 그분의 세세한 일생의 전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복음서는 예수의 전기가 아니라 선포의 기록이다.
만약 복음 작가들이 예수의 전기를 쓸 작정이었다면 예수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 등을 빼놓았을 이유가 없다. 복음 작가들의 저술 목적은 예수의 선포였다. 복음서는 의미가 중요하고, 독자들도 글의 메시지를 이해하도록 접근해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서는 역사서라기보다는 철저한 체험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복음서는 意味事이며 體驗事이다.
4. 복음 선포와 청중
오늘날 공관복음서 안에서 나타나는 차이점, 그리고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복음 선포의 청중이 여러 그룹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복음 선포의 본질은 같았지만 선포의 강조점과 방법, 표현 등은 대상에 따라 달랐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복음 선포의 대상이 다르다는 사실은 여러 공동체의 탄생과 다른 복음서의 기록과도 관계가 된다.
복음 선포의 대상은 대략 3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첫 번째 그룹은 팔레스틴에 거주하면서 아람어를 구사하던 유다인들이었다. ②두 번째 그룹은 디아스포라에 거주하던 유다인들과 그들의 영향을 받은 개종자들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던 사람들이었으며, ③세 번째 그룹은 하느님을 알지도 흠숭하지도 못했던 순수한 이방인들이었다.
①팔레스틴의 유다인들 :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팔레스틴 지역의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다인들이다. 하느님이 누구인지, 그들이 믿고 따르는 하느님에 대해서 잘 알았던 사람들이다. 이 사정은 두 번째 그룹도 비슷하다.
이 유다인들은 율법을 준수하고 하느님을 공경하고 경외하는 사람들, 하느님이 주신 율법을 삶에서 구체적으로 구현해 나가면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어 가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사용하던 '아람어'는 옛 히브리어 방언이었다. 물론 당시 사회의 공용어는 '희랍어'였지만 예수님 시대에도 사람들이 쓰던 일상어는 아람어였다.
②디아스포라에 생활하던 유다인들 : . 이들은 기원전 587년에 시작된 바빌론 유배가 기원전 538년에 고레스의 칙령으로 끝난 뒤에, 팔레스틴으로 돌아온 이들과는 달리, 안티오키아나 알렉산드리아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율법을 삶의 근간으로 삼고 살았다는 면에서는 첫 그룹과 동일하지만, 그들의 일상 언어는 자연스러운 희랍어였다. 그래서 그들은 디아스포라의 회당에서도 희랍어로 된 성서를 사용했다.
훗날 기원 후 70년경에 구약성서의 경전이 확정될 때에 이들의 영향력이 강해서 희랍어로 쓰여진 7권의 성서도 경전에 포함된다. 그러나 본토 유다인들은 히브리어로 쓰여진 것만 인정하기에 46권에서 7권의 차이가 난다. 만일 39권만의 성서를 인정한다면,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의 등장 때에 끝난 것으로 보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시는 그 이후에도 지속되었다고 믿기에 46권을 정경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이들 그룹에 속하는 이들로 개종자들과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 개종자는 전혀 다른 지역이 아니라, 디아스포라의 유다인들의 삶을 보고 개종한 이방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③이방인들 : 복음 선포는 팔레스틴 지역을 넘어서서 다마스커스, 안티오키아, 에페소 등으로 퍼져 나갔다. 외국에서 이방인들에게 복음 선포가 이루어졌다. 이들은 헬레니즘, 즉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우선 그들은 희랍어를 쓰고 있었기에 선포 과정에서 통역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청중의 이해력에 맞추다보니 재해석과 수정 작업을 해야 했다. 특히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은 사고 방식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면 性 윤리와 자선 등에서 많은 차이점이 있었다. 또한 이들은 성서도 모르고 하느님이 누구인지도 전혀 모르고 하느님을 경외하지도 않았던 이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하느님이나 예수님을 말하기 이전에 하느님에 관한 설명이 필요했던 것은 당연하다.
이런 세 부류의 사람들 모두가 모여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이룬다. 그러므로 청중의 상황과 처지에 맞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했던 것이다. 복음 선포의 단계에서 첫째와 둘째 그룹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에 대해서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하느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었기에 이들에게는 메시지 자체를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사용하는 구약성서의 내용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받아들이게 하는 근거로만 사용할 뿐이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신자들의 급격한 증가는 위의 세 번째 그룹의 전폭적인 증가 때문에 이루어진다.
5. 口傳 전승의 기록과정
구전이 글로 남기까지는 긴 과정을 거쳤다. 후세의 어떤 제자가 혼자서 예수의 기억을 글로 남겨서 기록한 것이 아니다.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서 기록된 복음서 사이에는 긴 발전 과정이 있었다. 실제로 복음서들은 예수의 공생활과 죽음, 그리고 부활 후에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기원 후 70-100년경에 쓰여졌다고 본다.
네 복음서보다 바오로의 서간(데살로니카 전·후서 50-51년경)이 먼저 집필되었다.
복음서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이 전승 과정을 반드시 숙고해야 한다. 즉 적어도 예수 부활 후 35년 이상 복음을 선포하고 교회의 활동을 한 후 복음 작가들이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①예수께서 공생활 중에 하신 말씀과 행적 :
예수께서는 친히 말씀과 행적으로 기쁜 소식, 즉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복음서에는 말씀과 행적 두 가지가 다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글을 쓰신 적은 없지만 말씀은 청중들을 향해 발설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이라 할 때 우선 예수께서 친히 선포하신 기쁜 소식을 가리킨다(마르 1,14-15). 또한 복음은 사도들이 예수의 신원과 그분의 구원 업적에 대해서 선포한 것을 뜻한다(사도 15,7).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결론은 예수 자신이 기쁜 소식, 즉 복음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분의 말씀은 늘 그분의 행적과 관계성을 가졌다. 만일 예수의 말씀과 행적이 동떨어진 것이라면 그분의 말씀은 무의미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행적은 늘 그분의 말씀에 비추어서 이해되어야 한다. 구약성서에서 보면 하느님도 자기 계시를 말씀과 행적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통해서 하셨다.
그리고 예수는 당시에 흔히 사용되던 가르침의 방법을 이용하여 청중에게 말씀하셨다. 따라서 예수의 말씀과 행동은 예수께서 사신 문화와 역사적 맥락 안에서 알아들어야 한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하나도 빠짐없이 가르치고 다 기록에 남길 수는 없었다. 즉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요한 21,25).
예수가 누구이며, 그분이 무슨 말씀과 행동을 하셨는지를 전해 주고 묘사하는 것이 중요했다. 후에 복음 작가들은 공동체를 대표해서 이 전승들을 기록으로 남겨 전승들을 충실히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②사도들과 그리스도교 공동체 :
예수는 활동 초기부터 제자들을 선택했고 그들은 예수를 따르면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행적을 보았다. "그분은 열둘을 선정하시고 〔사도라고 이름지으셨다〕. 이것은 그들을 당신과 함께 있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여 복음을 선포하게 하며"(마르 3,14).
예수께서는 당신의 구원 사업의 협조자로 제자를 부르신 것이다. 따라서 복음 선포는 제자들의 활동 목적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도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여러분에게 명한 것을 모두 다 지키도록 그들을 가르치시오. 보시오, 나는 세상 종말까지 어느 날이나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마태 28,18-20).
특히 사도들이 선포하고 증언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그러므로 주 예수께서 우리들 가운데서 오가시던 그 시절, 곧 요한의 세례로부터 시작하여 예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줄곧 우리와 함께 다닌 이 사람들 중에서 하나가 우리와 더불어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사도 1,21-22). 그래서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예수의 공생활과 승천하신 때까지를 증언하고 특히 부활 사건을 선포했다.
자신들의 스승 예수가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다면, 제자들은 예수의 선포가 참되다는 것을 증거하는 예수의 부활을 선포했다. 사도들은 예수의 부활과 그분에 관해서 선포했지만, 아직 기록으로 남기지는 않았다. 그때까지는 구전의 시대였다.
기록으로 남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팔레스틴에서 예수의 사건(공생활, 죽음, 부활)은 널리 알려져 있었고 목격자들이 보고 체험한 것을 글보다는 말로 선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고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글로 남길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생생한 체험들이 즉각 말로써 선포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곧 다시 오시리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점점 시간이 흐르자 구전을 기록으로 남길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스도교의 공동체가 성장하고, 목격자들의 세대가 사라지면서 구전에서 기록으로 옮겨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③복음서의 기록
㉮전승이 기록화 되기 시작함 :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성장하면서 구전으로 전승되던 것들이 기록의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처음에는 굳이 예수의 사건을 기록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초기에는 예수의 사건이 팔레스틴 지역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부활의 체험을 생생하게 말로써 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었던 것이다. 또한 주님께서 곧 다시 재림하리라는 기대가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구전의 전승들을 글로 기록하게 된다.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애초에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재림은 즉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예수의 공생활과 부활을 체험했던 목격자들이 하나둘씩 죽게 되자,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잊어버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구전 전승의 기록은 필연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렇게 구전의 과정들을 통해서 단편적으로 전해진 예수의 말씀과 행적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둘 기록되기 시작했다.
구전으로 내려오던 전승이 문헌화되어 복음서로 기록되기까지는 루가 복음서 서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존경하는 데오필로님,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난 그 일들을 글로 엮는 데 손을 댄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2그들이 쓴 것은 처음부터 직접 눈으로 보고 말씀을 전파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사실 그대로입니다. 3저 역시 이 모든 일들을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해 둔 바 있으므로 그것을 순서대로 정리하여 각하께 써 보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4그러하오니 이 글을 보시고 이미 듣고 배우신 것들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루가 1,1-4)
구전으로 내려오던 전승이 처음에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루가에 의하면 이런 기록들의 규모는 대단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복음 작가들의 저술과 편집 : 복음 작가들은 복음 전승들을 글로 기록하게 된다. 구전 전승의 사료들은 구전으로만 내려오는 것, 그리고 이미 기록된 것도 있을 것이다.
복음 작가들은 사료를 모아서 복음서를 집필하게 되고, 구전 전승은 일단락 짓게 된다. 복음 작가의 임무는 우선 사료들을 정돈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교회의 유익함을 목적으로 선택도 하고, 종합도 하고, 교회의 상황도 고려하여 설명하게 된다.
즉 각 복음 작가는 자신의 의도에 맞게 배열하고 설명하였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성서를 읽을 때도 복음 작가가 의도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복음 작가들이 주님의 말씀과 행적의 순서를 바꾸고, 설명을 보충했다 하더라도 복음의 진리는 훼손되는 것이 아니다(복음서의 역사적 진리에 대한 교리 9항 참조).
그렇다고 복음 작가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한 사료들을 자기 마음대로 다루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사료는 교회 전승에서 전해 받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복음 작가들은 교회 공동체의 대필자요 사료의 관리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복음 작가들이 저자의 고유한 것을 추가하였지만 그것은 전승을 보충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과정에 그들은 하느님의 인도(성령의 영감)를 받았다.
그러나 성령의 영감을 받았다고 복음 작가 개인의 개성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도라는 인물을 보는 관점은 복음 작가마다 조금씩 달랐으며 이 과정에 따라 특색 있는 신학을 전개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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