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5: 11-14절 해석/ F.F 브루스
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74)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75)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먹을 자가 되었도다
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76)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1절, 10절에서 시편 110:4을 되풀이하여 언급한 것으로 보아 저자의 주장에 대한 다음의 논리적 순서는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이라는 점이 지닌 중요성을 상술하는 것이 될 것이다. 7:1이하에서도 저자는 이 점을 설명하고 있지만 먼저 그는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77))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려 그의 독자들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 몇 마디의 실질적인 훈계를 하고 있다. 멜기세덱이란 인물과 그의 직책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78) 그의 독자들은 마음이 둔하기79) 때문에 이것에 관해서 그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그는 말한다.
12절, 그리스도인이 된 지가 오래 되었다면 마땅히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80) 그는 계속 역설한다. 그러나 실은 그들 자신이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다. 멜기세덱의 제사장 반차와 같이 깊은 의미를 지닌 불가사의뿐만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계시의 초보81)를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로 전향한 이후 흘러간 시간을 생각할 때 그들은 성인 남녀와 같이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한다. 그렇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그들이 아직도 어린 아이들의 음식인 젖보다 단단한 것은 전혀 소화할 능력이 없다.
이처럼 영적인 의미에서 젖과 단단한 식물을 대조하는 것은 헬라 윤리학에서도 그랬지만82) 초기 교회에서도 흔한 일이었던 것 같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1이하에서 이 말을 쓰고 있는데 여기서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들이 “신령한”사람들이라는 그들의 모든 주장에 대해서 그렇게 취급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서의 그들의 파당정신은 그들이 아직도 “육신에 속한”자들임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적인 어린 아이로 취급되어 초보적인 기독교 윤리라는 “젖”을 먹어야 한다. 영적 성숙에 도달한 사람들에게는 나누어 주어야 할 지혜가 따로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감추어진 지혜이다(고전 2:7).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좀더 성장할 때까지는 지식이나 자선이 아닌 기독교 윤리라는 이런 “고기”는 소화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고린도전서의 이 구절에 영향을 받은 것일까? 만일 영향을 받았다면 아볼로가 고린도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과 바울이 동일한 문맥에서 그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것은 흥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베드로전서 2:2에서는 젖과 단단한 식물이 대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젖”이란 비유법이 사용되고 있는데 여기서 베드로는 그의 독자들에게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영혼의 건강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는”(NEB) 순전한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권면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갓난 아이들”, 말하자면 아주 최근에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그 당시 많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지만 어떤이들은 개종후에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오히려 바울을 대적한 이들도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13-14절, 저자의 편지를 받는 사람들의 미숙, 다시 말해 저자로 하여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대한 그의 가르침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을까하는 의심을 자아내게 한 그들의 미숙은 그리스도인의 길로 전진하고자 하지 않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었다. 현상태에서 더 나아가는 것은 옛 유대를 철저하게 끊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들의 나태한 정신은 그들이 이미 도달한 지점에 안주하려고 하는 경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제사장직과 제사에 대한 옛날 제도가 단연 철폐되고 그 결과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의 직분을 맡아 섬긴다는 설명이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성적인 사람도 마음에 들지 않는 개념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젖”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미숙에 해당한다. 말씀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근본 원리讧) 중 일부는 6:1이하에 언급되어 있다. 이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도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다시 말해서 “의의 원리讨)를 모르는 어린 아이인 것이다. 그리고 “지각을 사용하므로85)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 곧 경험의 과정에서 윤리적 상황이 야기될 때 식별하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의의 원리나 표준을 세운 자들은 윤리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이다. 윤리학에 대한 이와 같은 일반적인 개념은 당대의 작가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이나 본 서신 저자는 이것을 자신의 목적에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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