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서 연구 (로마서 총론)
1. 로마서
연구
(로마서
총론)
글쓴이: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
로마서의
총론(總論)이라는 것은 로마서
책이 존재하는 일반적 의의와 원리를 통틀어서 해설하는 작업이다.
망원경으로 숲을
관찰하는 일과 비교할 수 있다.
로마서는
66권으로 구성된
성경전서 중의 한 권의 책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당신의 뜻을 계시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로마서 자체의
연구는 현미경으로 내부를 관찰하는 작업이므로 심혈을 기우려야 한다.
그러나 총론에서는
외부에서 관찰하면서 로마서의 전체적인 구도와 조직을 연구하는 방법론이므로 큰 틀에서 로마서를 보는 작업이다.
*
로마서를 포함하여
성경본문의 연구는 철저하게 문맥(context)에
의존한다.
문맥이란
“전후관계”를
의미한다.
단어와 단어가
연결하여 문장을 이루고,
문장과 문장이
연결하여 문단을 이루어 결국은 생각과 뜻을 전하는 책이 생기게 되는 것과 같다.
*
성경은 약
40명의 기자들에 의해
약 1,500년 동안에 걸쳐
기록되었으며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헬라)어,
라틴어로
기록되었다.
성경은 실로 방대한
역사를 통해 각자가 서로 만나서 의논하지도 않고 기록했지만 66권의 기록은
놀랍게도 하나의 주제(=인간구원을 위한
하나님계획)를 중심으로 일치가
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성경이 사람의 연구에 의한 기록이면서도 한분 하나님(성령님)의 영감에 바탕을
두고 기록된 것임을 알게 해준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경말씀의 주제는 하나의 큰 문맥(context)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
성경연구는
문맥(context)을 찾아가면서
성경본문을 바르게 이해하는 작업이다.
바른 이해는
원문성경(히브리어,
헬라어)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을 때에 이루어지지만 그럴만한 사람은 귀하기 때문에 학자들이 번역한 성경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사실은
언제나 성경본문을 중심으로 공부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성경의
단어,
문장,
구(句)와
절(節)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야 한다.
*
그런데 성경연구에
있어서 애로사항이 있다.
그것은 원래 고대
헬라어에서는 구두점(句讀點,
punctuation mark)들이 사용되지
않았고 장과 절의 구분도 없이 연속하여 기록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헬라어 신약성경의 모든 인쇄판 안에서는 구두점과 장절이 발견된다.
이러한 현대 인쇄판
헬라어의 구두점들과 장절들은 종종 해석상의 문제를 초래한다.
헬라어는 네 가지
구두점들을 가지고 있다.
쉼표
comma
(,)와 마침표
period
(.)와 콜론
colon
(?)과 물음표
question
mark (;)다.
쉼표와 마침표는
기능면에서 영어와 한글과 같다.
콜론과 세미콜론도
기능 면에서는 영어와 일치한다.
헬라어에는 물음표가
없기 때문에 직접 화법의 시작과 끝이 불명확하게 되므로 구두점의 문제들을 마주칠 때마다 성경학자들은 철저하게 내용을 검토하게
된다.
헬라어 신약성경의
현대 인쇄판은 세 개의 다른 발음 구별 부호들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헬라어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원문이 영어로 번역되었을 때의 정확성이 무엇인가를 알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신구약
성경의 장과 절의 구분은 1555년
스테파누스(Stephanus
Robertus)의 라틴역
불가타(Vulgata)
성경이 출판된 해에
붙여졌다.
그 후
1560년판 제네바 성경의
장절 구분이 보편화 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
한글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성경에는 가끔 쉼표 comma
(,)는 보이지만 마침표
period
(.)는 전혀 찾을 수
없다.
개역성경은
1890년대에 번역되었으며
이것이 개정판으로 확정된 것은 1950년대이다.
한글표기에 있어서
마침표와 같은 구두점(句讀點)이 사용된 것은
1900년대 이후 단편
소설이나 시 등에서 조금씩 나타나다가 신문들이 공식적으로 마침표를 사용하게 되면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여건 하에서
한글개역성경은 마침표가 공식적으로 쓰이지 않았던 시기에 나왔다.
그 당시에는 책이나
신문에서 지면을 아끼고 종이를 절약하기 위하여 마침표를 사용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개역성경은
1890년대에 이수정과
로스가 번역한 것을 토대로 개정한 것이다.
그때는 헬라어에서
직접 한글로 번역할 단계는 아니었다.
헬라어(Greek)
또는
히브리어(Hebrew)를 전공한 한국인
성경학자가 없었다는 뜻이다.
*
“로마서”는
“누가”
“누구에게”
“무슨
목적으로”
기록하였는가를
편지의 서두에서 보여주고 있다.
편지의 내용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문헌은 헬라어(Koine
Greek)다.
헬라어의
독해(讀解)가 쉽지 않으므로
헬라어 성경과 가장 가까운 번역 성경을 찾는다면 단연 NASB(New
American Standard Bible)이다.
NASB의 문장과 우리말
성경을 비교하면서 문장을 정독하고 분석하면 성경 본래의 뜻과 진리가 하나씩 깨달아진다.
이렇게 성경말씀을
직접 대하면서 생기는 질문에 대하여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 성경을 배우는 사람의 진지한 자세다.
다른 사람들의
안내(주석 또는 성경
참고서)는 꾸준히 참고하되
자기가 직접 성경을 읽고 쓰고 분석하고 종합하는 작업을 늘 실천하는 일은 가장 바람직하다.
*
로마서의 서두인
롬1:1-7의 네 가지
성경본문(개역개정,
현대인의
성경,
NASB, NIV)을 읽고 비교하면
문장형식의 독특성이 아래에 열거한 바와 같이 발견된다.
가.
개역개정에는
구두점(句讀點)이 하나도
없다.
이러한 형태의
문장에서는 주문장과 부문장을 구별할 수 없으므로 글 안에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나.
현대인의 성경에는
롬1:1-7에서 마침표가
6개
나온다.
6개의 문장이
나열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어떤 문장이 핵심문장인지 식별해 내기가 매우 어렵다.
다.
NIV성경은
롬1:1-7에서 마침표가
4개 나오며
4개의 문장으로
나누어 기록하고 있다.
NASB의 본래의 기록과
뜻에서 멀어져 있다.
라.
NASB 성경을 자세히 보면
문장의 마침표가 7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오직 한 개 등장하고 있다.
1절로부터
7절까지는 하나의
문장이라는
뜻이다.
원어성경에 가장
가까운 성경이므로 NASB의 무장구조가
올바른 것임을 알 수 있고 여기에서 핵심사항을 인출해야 한다.
*
롬1:1-7에 해당하는
NASB
성경의 문장구조의
특성을 살펴본다.
1절.
Paul, 바울은
★
a
bond-servant of Christ Jesus, 예수 그리스도의
종
★
called
as an apostle,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
set
apart for the gospel of God,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절.
-which He promised beforehand (이
복음은)
하나님이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through
His prophets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선지자들을
통하여
=in
the holy Scriptures, 성경에
3절.
-concerning His Son,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who
was born of a descendant of David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고
+according
to the flesh, 육신으로는
4절.
=who was declared the Son of God with power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by
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according
to the Spirit of holiness, 성결의
영으로는
-Jesus
Christ our Lord,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라
5절.
=through whom we have received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
받아
+grace
은혜
+and
와
+apostleship
사도의 직분을
=to
bring about the obedience of faith 믿어 순종하게
되나니
=among
all the Gentiles, 모든 이방인 중에서
=for
His name's sake, 그의 이름을 위하여
6절.
=among whom you also are the called of Jesus Christ;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절.
to all who are 모든 자에게
(=7절은
6절의
“you”를 수식하고
설명하는 부분)
=beloved
of God in Rome,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called
as saints: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
Grace to you 은혜가
...
있기를 원하노라
and
와(그리고)
peace
평강이
=from
God our Father 하나님 우리 아버지
...
로부터
=and
the Lord Jesus Christ. 주 예수 그리스도와
(Romans
1:1-7).
---------------------------------------------------
*
위에 열거한
문장(롬1:1-7)의 구조에서 그
내용의 핵심을 크게 분류하면,
★
첫째,
주체:
“바울은
.
. . 이라”는 세 가지 신분을
나타내는 부분(1절),
★
둘째,
객체:
“모든
자에게”(복음수용자)라는 편지를 받는
사람들을 나타내는 부분(7절),
★
셋째,
목적어:
“은혜와
평강을”이라는 목적을
나타내는 부분(7절),
★
넷째,
<2-6절
“주체(=바울)가 설명하는 복음의
부분”(2-4절)과
“객체인 복음수용자를
설명하는 부분”(5-6절),
위의 네 가지
부분들은 한 개의 문장 속에 포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성경말씀은 말씀
자체 안에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져 있으므로 말씀 자체를 자세히 살피고 연구하여야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다.
첫째는 성경의
저자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이며 둘째는 성경의 저자를 도구로 삼아 그를 통하여 수신자에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메시가 무엇인가를 아울러
찾아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한 권의 큰
책으로써 방대한 구원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또한 66권의 작은 책들의
모음집으로써 각 책은 구원을 성취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한다.
그리하여 성경의
어떤 본문을 공부할 때에는 반드시 문맥(context)을 따라서
이해하여야 일관성 있는 해석을 하게 된다.
문맥의 전후관계는
문장과 문장과의 관계연구를 시작으로 하여 궁극에는 전체 성경을 관통하는 큰 문맥까지 살핌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를 자세히
살피는 작업이다.
*
로마서를 연구하고
이해하는 방법도 말씀 자체를 연구하여야 한다는 사실에는 이견(異見)이 있을 수
없다.
위의
롬1:1-7은 로마서 서론의
첫 문장이다.
이 긴 문장을
분석한 결과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바울은(1절,
주체)
. . . 모든
자에게(7절,
객체)
. . . 은혜와
평강이(7절,
주체와 객체의
연결고리)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는 세 가지로
집약된다.
이 세 가지 제시는
로마서를 기록한 목적과 내용이 무엇인가를 먼저 선포하고 있다.
서론은 본론의
집약체다.
따라서 서론에서
언급하는 주체(=바울)과
객체(로마에 있는 모든
자)가 무엇인가를
밝혀내면 로마서의 기록동기뿐 아니라 기록목적 내지 내용을 감지하게 된다.
----------------
★
첫째,
1절에서
바울(주체)은 어떤 사람인가를
스스로 자기의 신분을 밝히고 있다.
*
a bond-servant of Christ Jesus, 예수 그리스도의
종
*
called as an apostle,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called to be an apostle, NIV)
*
set apart for the gospel of God,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라는 세 항목으로 바울은 자기의 신분을 정의하고 있다.
(1)
바울이 자기를
소개한 위의 내용을 살피기 전에 먼저 그에 관한 성경사전의 소개를 찾아본다.
로마서는 헬라어
원어성경에서 “바울”(Paul)이란 이름의 표기로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바울이라는 인물은 사도행전에서 “사울”(Saul)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으로 스데반의 순교현장에서 기독교 박해자로 등장하기 시작한다(행7:58;
8:1, 3). “사울”이란 히브리 사람의
이름으로 “위대함,
높음,
큼”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사울은 로마제국의
영토인 소아시아 지역인 “길리기아
다소”가 출생지이므로
로마제국의 언어인 라틴어 이름으로 “바울”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그 이름은
“작음,
낮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가끔 설교자들은
사울이 개종하여 바울이 되었다고 하는데 잘못된 표현이다.
그는 원래부터 유대
이름 “사울”과 로마 이름
“바울”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유대 이름 사울로 통하고,
이방인 속에서는
로마 이름 바울로 통하였다.
바울의 편지들은
모두 이방인들에게 헬라어로 작성하였기 때문에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실제로 사도행전
13:9에서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바예수,
마술사
엘루마)를
주목하고”라는 구절로부터는
계속하여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고 있다.
바울은 로마교회의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의 인사를 간절한 마음으로 전달하고 있다.
(2)
바울은 박해자로
등장하였으나 그는 곧 예수님의 계획하신 “복음
선교”의 뜻을 따라서
“이방 선교를 위한
예수님의 도구(그릇)”이
된다.
바울에게 안수한
아나니아에게 계시하신 예수님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9:15)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이와 같이
부름 받은 자(=사도)의 확고부동한
소명을 가지고 이방선교(=선교사)를 위하여 생애를
바치며 교회를 개척(목회자)
했다.
로마서는 이러한
예수님의 선교의 뜻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책이다.
사도행전
9:1-22의 기록에서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바울이 새롭게 된 상황을 매우 감동적으로 생생하게 전하여 준다.
반드시 읽고 내용을
음미하자.
특기할 사실은
구약학에 능통한 바울은 구약의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된 사실을 자기가 예수님을 만난 체험으로 인하여 확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바울은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루었고 결코 예수님을 한 순간도 떠나서 살지 않았다.
여기에서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과 일체성을 예수님은 친히 바울에게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여 주신 것이다.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그리스도)는 바로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바울은 역설하였고 구원의 도리를 깨우쳐주고 있다.
(3)
예수님께서 바울을
만나주시고 성령님으로 충만케 하여주신 이후로 바울은 성령님의 가르침과 안내를 받아 성령님의 체험을 받은 사람으로써의 사명에 힘을
기울였다.
자기의 외곡 된
유대인의 신학적 차원을 넘어서 유대인적 신앙이 범세계적으로 모든 이방인들이 납득되는 신학과 신앙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놓았다.
이것은 인간 바울의
사고와 노력이 아니며 전적으로 성령님의 사역이었다.
바울은 자기는
감추고 순종의 삶으로 일관하여 예수님과 성령님의 종으로써 최선을 다한 것이다.
로마서는 신약의 첫
서신서이지만 서신(편지)의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리고 역사를
기록한 것도 아니다.
또 기독교의 교리를
정리한 책도 아니다.
로마서에서는 기독교
교리 중에서 중요한 교회론,
성례전,
육체의
부활,
교회정치,
혹은 종말론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이 거의 발견되지 않으며 기독론도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성령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볼 때 로마서는 “성도의 교육을 위한
신앙지침서”다.
신앙의 추구와
신앙의 바른 이해가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로마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신앙인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들 즉 율법,
복음,
죄,
형벌(심판),
은혜,
믿음,
의로움,
그리스도,
하나님,
선행,
사랑,
소망,
십자가,
인간관계,
강함과
약함,
친구와
원수,
등에 대하여
분명하게 서술하며 가르침을 베푼다.
(4)
위의 항목에서
바울은 구약에 능통하다고 언급하였다.
그는 유대인
회당에서 신앙을 키우며 성장하였고 유대문학(the
literature of Judaism)에 정통한
인물이다.
구약의
신앙인물들(아담과
하와,
아브라함과
사라,
야곱,
요셉,
모세와 미리암
등)은 바울의 신앙을
형성하는 근간이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3:5-6)고 자랑하였던 그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구약을 아래와 같이 새롭게 해석하였다.
가.
아담의 타락은
세상죄악의 근원으로 소개하였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잘못 사용하여 두려움과 고독과 형벌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나.
하나님은 언약으로
세상과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개입하셨다.
아브라함과 사라와의
언약은 인간존재의 가치와 축복을 보장하여 주셨다.
다.
율법은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나타내신다.
모든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고 있다.
라.
하나님은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시며 죄악세계의 힘은 하나님의 뜻을 결코 거역하여 개입할 수 없다.
장래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 될 것이 계시되었다.
마.
예수님의 오심은
교회를 설립하셨고 예수님의 재림은 심판의 때를 예견하고 있으며 아울러 새 하늘과 새 땅의 성취를 이룬다.
바울은 신약시대의
인물로써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였다.
즉
아담(인간)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불순종하여 죄악이 세상에 들어와서 죽음을 초래하였으나 그리스도는 믿음과 순종으로 새 생명을 세상에 주셨다는 분명한 논리를 바울은
정립하였다.
아
담
예수님의
오심
예수님의
재림
죄(불의)
의로움의
계시,
복음,
믿음,
생명
구원,
하나님의 가시적
통치
(5)
신약의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도행전은 생생한
역사서들이다.
이
5권의 역사를
신학적으로 설명하여 이해를 돕는 서신서들이 22권
있다.
이 중 사도 바울의
서신서가 13권이고 그 외 사도
및 성도들이 쓴 일반 서신 9권이
있다.
바울의 편지들이
방대한 만큼 바울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수적이다.
저자를 잘 모르고
그의 저서인 편지들을 대하면 명료한 이해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바울의
일반적 이해를 위하여 “서신 속에 나타난
인간 바울”(Paul,
the Man Behind the Letters)이라는
거쓰리(Donald
Guthrie, The New Testament Introduction (신약개론),
IVP: 1970. p. 386-392.)의 기고를
요약한다.
“서신 속에 나타난
인간 바울”
바울서신이 위대한
작품이라고 하여 문학적으로만 연구할 수 없다.
그 서신들은 중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나왔고 또 많은 사람들도 이러한 경험을 체험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바울의 서신은 많은
신학논문을 발표하는 기초가 되었으나 서신 자체가 있게 한 역사적 배경과 상항을 함께 고려할 때에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된다.
특히 먼저 바울
자신의 모습을 다각적으로 고찰하여야 그의 편지가 소장한 특징이 무엇인가 이해하게 된다.
1.
하나님의 부르심에
관한 바울의 의식:
바울이 가진 특성의
열쇠는 “다메섹 도상의
변화”에
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난
경험은 매우 놀라운 사실이며 여기에 중요성이 부여된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롬1:1).
그 하나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주님의 계시를 받고 복음의 사역자로 임명되었고(갈1:12)
복음사역에만
집중하여야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강한 의식과 신념을 가지고 변함없이 일관된 생애를 살았다.
바울은 예수님을
“육의
형태”로 알지 않았고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가진 영원한 실체로 받아드렸다.
이 점은 다른
사도들과 구별된다.
그리하여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독교에 직접 관련시키는 역할을 한다.
2.
바울이 가진
권위:
바울서신을 대할
때에는 편지를 쓴 바울에게 권위가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고린도나 갈라디아
기타 여러 곳에서 바울에게 도전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럴 때마다 결과는 더욱 강렬한 영적 권위가 나타나고 있다.
바울의 권위는
교만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사람들을 지배하는 권력으로도 보여지지 않고 바울 자신의 위대함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바울의 권위는
하나님의 부름 받은 사람의 의식에 기초를 둔 자연스러운 권위다.
하나님께 받은
그대로 가감 없이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표현하는 것뿐이다.
가끔 바울은 자신의
견해와 주님의 명령을 구분하여 언급하는 예를 보게 된다(고전7:6,
10, 12; 고후11:17).
이러한 경우에도
바울의 알고 있는 지식에는 권위가 있음을 보게 된다.
3.
회심자들에 대한
바울의 사랑:
바울의 명령과
권면과 책망과 교정의 교훈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깊은 사랑에서 나오고 있다.
그는 자기를 곤경에
빠뜨리게 한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동적인 태도를 보이며 불편한 관계에 있는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진실한 마음으로 대한다.
그는 사랑의
교훈을(고전13장)
고린도 교회에
전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는 누구도 적대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4.
바울이 확신하는
지식의 근거:
바울이 주님의
백성들을 가르치는 교리나 관습들은 특별한 통찰력을 가지고 이끌어낸 원칙들이다.
유대주의 사상과의
마찰,
주님의
만찬(the
Lord's Supper)의 지역적
분쟁,
교회의 분열 등
제반 사항에 있어서 바울은 자기의 견해를 영적 기반에 두고 피력하였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에서 이루어진 지식과 경험은 모든 가르침의 확신을 제공하고 있다.
칭의,
은혜의
구원,
그리스도의
구속사역,
성령님의
사역,
교회의 중요성 등의
진리는 영적 계시에 의한 결과인 것을 알 수 있다.
5.
바울의
다재다능함: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바르게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스스로
외부의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능가할
수 없는 놀라운 적응력과 기민한 정신력을 가지고 여러 가지의 상항에서 문제들을 정교하게 다루게 된 것에서 그의 다재다능함을 보게
된다.
받은 그대로 바울은
하나님의 필요를 충족한 사람이었다.
6.
바울이 사용한
언어와 문체:
베드로는 바울의
기록에 대하여 벧후3:15-16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바울은 독자의
필요성을 채우기 위하여 편지를 썼기 때문에 다양한 변화와 변칙적인 구문법을 사용하여 이해가 어렵게 된 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문학형식은 동시대의 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문안,
감사기도,
주요 관심사들
중에는 당시의 일반적 구조를 보게 된다.
그런데 바울은
신앙공동체의 필요와 교회의 교화(edification)를 위하여서는
새로운 문학형식을 창조하여 기록한 사실도 발견하게 된다.
7.
바울의 육체적
인내력: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끊임없이 위험을 당하였다.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돌에 맞고 굶주림과 헐벗음을 당했다.
그는 이러한
어려움을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당하였다.
이러한 악조건을
무릎 쓰고 선교를 진행하였다는 사실은 그가 선교사의 놀라운 체격과 건장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가 육체의 가시를
언급하면서(고후12:7)
그의 반대자들이
자기를 업신여기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강인함으로 선교여행을 지속한 것은 사실이다.
오직 선교적
열정만을 가지고 연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선교를 감행하였다는 것은 올바른 평가가 아닐 것이다.
선교사는 신체적
조건이 잘 갖추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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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a bond-servant of Christ Jesus, 예수 그리스도의
종
가.
“종”(a
bond-servant of Christ Jesus; bond란
노예의,
사로 잡힌이란
뜻;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님께 사로잡힌 노예로서의 종을 의미함)이란 말을 먼저
성경의 역사학적 측면에서 살펴본다.
구약에서 보면
위대한 지도자들을 지칭하여 “종”이라고
하였다.
이들 지도자들은
주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다.
모세,
여호수아,
아브라함,
다윗,
예언자들은 위대한
권위를 가지고 주님의 사역을 수행하였다.
수14:7.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수
24:29.
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왕하17:23.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드디어 이스라엘을 그 앞에서 내쫓으신지라
시
89:
3.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20.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내어 나의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도다
이와 같이 바울은
자기에게 권위가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 권위는 인간이
부여한 것이 아니며 구약시대로부터 전수된(derived)
권위임을 증명하고
있다.
구약의 종들이
그랬던 것과 같이 바울은 “겸손한
종”임을 아울러
입증하고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겸손한 종으로써 그리스도의 뜻을 성취하는 자임을 강조한다.
“그리스도”라는 뜻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anointed)다.
“그리스도”의 히브리 동의어는
곧 “메시야”다.
메시야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고 왕과 제사장과 예언자의 직분을 수행하며 백성을 구원하는 사역을 담당한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자”라는
뜻이다.
구원의 예수님
그리스도 메시야의 사역을 바울은 “종”의 자격을 가지고
동참한 사역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기름
부음이란 외관상의 형식을 의미한다.
내용적으로 기름부음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권위”가 그의 생각과
언어와 행동에서 나타난다.
주님은
“권위의
사역”으로
역사하신다.
나.
“종”(slave,
노예)이라는 언어의
실질적인 뜻과 내용을 고찰할 때 심각성을 가지고 적용하게 된다.
바울은 자기가
“종”으로써 팔려져
“주인”(Master)에게 일평생
복종하고 살아야 한다는 철저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종”(노예)는 주인만을
섬기도록 되어있는 주인의 소유물이다.
주인을 떠나면
“종”은 존재의 가치를
상실한다.
“종”은 가진 것도 없고
내세울 것이 존재가치가 전무한(nothing)
도구에
불과하다.
그의 삶과 시간과
활동력은 전적으로 “주인”에게서부터
“주인”으로 말미암아
생긴다.
만일
“종”이라고 불려지지
않는다면 무가치하고 “종”이라고 불려짐으로
감사,
감격한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만일
“예수님”이라는 이름이 먼저
불려지면 예수님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메시야)이시며 만일
그리스도가 먼저 불려지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기름부름을 받은 사람 예수님이시다.
바울은 자기가
이러한 하나님-사람의
“종”이라는 철저한
의식을 가진 사명자로 살았다.
(5)
called as an apostle, (부름
받음,
called to be an apostle)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사도”(apostle)라는 말은
“messenger”(使者,
심부름꾼),
“delegate”(대리인,
파견인),
“one sent on behalf of”(... 때문에 보내진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사도”에게는 무엇인가
전달할 멧세지나 일감을 가지고 있고 무엇인지 사람을 능가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고 반드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목표 수행의
인물”(Goal
oriented person)로
“보냄 받고 여기에
와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부르심을
받아”("called")라는 말은 사람의
자만심(교만)을 꺾고 순복하게
하는 “하나님의
부르심”(divine
calling)을
표현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목적수행을 위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보냄을 받은 사도라는 깊은 내용을 가진 말이 곧 “사도로 부름
받아”다.
바울은
“부르심”(calling)에 대하여 매우
심도 있게 여러 곳에서 다루고 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9: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고전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갈1: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6)
set apart for the gospel of God,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택정함을
입었다“(따로
떼어놓았다,
set apart or separate for the gospel of God)는 말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4회 사용하고
있다.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고후6: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갈1: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갈2: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가.
구약의 기록에서부터
"택정함을
입었다“(따로
떼어놓았다,
set apart)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뜻과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때에 시내산은 별도로 떼어놓은 성별되고 선별된 장소.
출19:23.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산 주위에 경계를 세워 산을 거룩하게 하라 하셨사온즉 백성이 시내 산에 오르지 못하리이다
-그리고 레위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섬기기 위하여 성별하고 봉헌됨.
민8:11.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레위인을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이는 그들에게 여호와께 봉사하게 하기 위함이라
나.
“하나님의
택정하심”(set
apart)은 신약에 와서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나타내고 있다.
-갈라디아서
1:15-16를 보면 하나님은
바울을 태어날 때부터 택정하여(set
apart) 하나님의
아들(God's
Son)을 이방인들에게
나타내게 하셨다고 하였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개종되었으나 실제로 하나님은 바울의 생애의 시작부터 함께하시고 계심을 자각하고 이러한 간증으로 자기의 신앙을 표현하였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영원한 현재로 일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현재적 상항에서 깨닫게 된 것이다.
-사도행전13:2을 보면 안디옥
교회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게 된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라고
하였다.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택정함”(set
apart, 성별함)으로 선교의 사역에
임하게 된 것이다.
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바울이 종(servant)과
사도(apostle)로
“부르심”(calling)과
“택정하심”(set
apart or separate)을 받은 것은
“복음을
위하여”(1절)
이루어졌음을
확신한다.
이런 사실을
갈라디아서 1:15-16,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set
me apart)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call
me)
이가/
그의
아들을(His
Son)
이방에(among
the Gentiles)
전하기
위하여(preach)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라는 기록에서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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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7절에서
“모든
자에게”(to
all who are)라는 편지를 받는
사람들(객체)의 신분을 밝히고
있다.
*
(6절)
whom you also are called of Jesus Christ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
*
in Rome 로마에서
*
beloved of God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
called as saints: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위의 네 항목으로 바울은 편지를 받는 사람들의 신분을 정의하고 있다.
(1)
바울의 편지는 로마
교회가 수신자가 아니고 로마에 살고 있는 “사람들”(to
all)이다.
이 점은 다른
서신들과의 차이점을 들어낸다.
고전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후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갈1:2.
(사도 된
바울은)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살전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로마에는 여러
교회들이 있었고 특별히 가정교회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그곳 사람들 모두를 수신자로 삼았다.
로마서
16장의 성도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음을 보면 여러 가정교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참고.
16:5 에베네도,
10 아벨레,
아리스도불로,
11 헤로디온,
나깃수,
14 아순그리도,
블레곤,
허메,
바드로바,
허마,
15 빌롤로고,
율리아,
네레오,
올름바).
(2)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 (the
called of Jesus Christ)
로마서의 수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자들로 6절에
정의하였다.
바울은 이 편지를
불신자들에게 보낸 것이 아니다.
“부름을 받은
자들”이다.
“불려지다”(called)라는 용어가
4복음에서 사용될
때에는 “초청 받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들이 초청을
수락하였는지 안 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용어가
바울의 서신에서 사용될 때는 초청을 수락하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한글의
개역개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란 표현은 매우
적절하다.
(3)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 (beloved
of God)
예수님께 속하여
있는 자들이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바울은 재차 강조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이 그들의 생활 가운데 나타난다.
예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날마다 성화의 생활로 성숙하는 사람들이 받는 영적 축복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것이다.
(4)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 (called
as saints or called to be saints)
이들은 바울이
“사도로 부름
받아”(called
to be an apostle) “택정함을
입은”(set
apart for) 자기의 상항과 같은
사실을 강조한다.
“성도”(saint)라는 용어는
“헌신된
자”(dedicated),
“구별된
자”(separated),
"하나님에게 속한
자“(belonging
to God"를
뜻한다.
성도이기 때문에
부름을 받은 자가 된 것이 아니라 부름을 받았으므로 성도가 되었고 계속하여 성화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를 따라서 사용되기고 부름 받은 진실하고 순결하고 거룩한 도구로서의 사명이 있다는 뜻이다.
(5)
로마에 있는 자들
(who
are in Rome)
예수님의 소유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성도로 헌신된 사람들이 위대한 대도시 로마(the
great Roman metropolis)에 살고
있다.
그들은 위대한
대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아울러 위대한 자들이겠는가?
그들의 위대함은
“In
Rome"에 있느냐 아니면
”In
Christ"에
있느냐?
당연히 그 대답은
후자에 있다.
로마는 인간 내면에
존재한 각종 죄악의 만연으로 인하여 자멸하였다.
성도로 부름 받은
그들의 수많은 문제들(고난,
슬픔,
시련,
향락,
음란,
유혹,
방탕
등)은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되어야만 하는
숙제들이다.
이들에게는
매순간마다 밀려들어오는 시험을 극복할 올바른 신앙의 정립이 요구되었다.
(6)
로마에 있는 교회가
당면한 문제들
로마서는 우리의
위대한 사도 바울이 주후 56년경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생면부지의 로마교회에 써 보낸 서신에서 비롯된다.
그는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를 오래전부터 방문하기를 원했고,
그 곳을 서쪽 끝
스페인 선교를 위한 기지로 삼기를 원했었다.
마침 그가 고린도에
동역자들과 잠깐 머물면서 이방교회들이 거두어 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헌금을 갖고 예루살렘으로 위험한 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
로마 교회의
답답하고 안타까운 사정을 듣게 되었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각각 민족적?종교적,
혹은
정치적?문화적 우월성을
내세우며 서로를 판단하고 정죄하거나 업신여김으로써 두 그룹 사이의 갈등과 분쟁으로 분열의 위험에까지 직면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가.
바울이 로마서를
집필한 중요한 동기는 로마서 전체에 존재하고 있는 수신자들,
즉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문제점에서
발견하여야 한다.
이것은 성경을
“역사적
문맥”(historical
context of the passage)에서 이해하여야
한다는 중요한 방법론으로 대두되고 있다.
로마서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세기의 상황으로
돌아가서 당시의 로마교회의 상황을 고찰하여야 한다.
나.
로마에는 주전
1세기 말엽부터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시민권을 획득하고 자리를 잡고 살고 있었다.
그들은 기원전
63년 로마의
폼페이(Pompey)
장군에 의해
전쟁포로로 로마에 끌려왔던 유대인들로서 석방 후에도 계속 그곳에 머물면서 로마에서 유대인 사회의 강력한 구성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
바울 당시 로마의
유대인 사회는 아주 다양하고 복잡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팔레스틴에서 이주
해 온 히브리인들의 회당,
헬라 말을 쓰는
헬라파 유대인들의 회당,
또 고린도나
아시아의 각 지역에서 이주해 와서 세운 회당 등 다양한 공동체가 있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언어적,
문화적,
사회적,
신학적,
집단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다양한 유대 공동체였다.
라.
로마서는 로마에
거주하는 성도들에게 쓰여진 편지다(롬1:7,
15). 여기서 로마교회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일반적인 견해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첫 오순절에 로마로부터 왔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후 로마로 돌아가서 처음으로 기독교회들을
세웠다고 추정한다(cf.행2:10).
그러므로 로마교회는
일반 유대인들(=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소유함으로써 세워진 것이다.
마.
로마교회는
“예수님은 곧
그리스도(Christos)이시다”라는 주장에 대하여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불신 유대인들 사이에서 견해 차이로 인한 분쟁과 폭동이 날 정도로 극한 대결을 하였다고 역사가는 증언하고
있다.
(로마 교회에 대한
첫 역사적 증거자료는 역사가 수에토니우스(Suetonius)가 쓴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생애』(Life
of Claudius, 25, 4)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로마에 있던 유대인들 사이에서 크레스토스(Chrestos)때문에 분쟁이
끊이지 않고 항상 폭동을 일어났다고 서술하였다.)
따라서 로마제국의
제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는
칙령(Claudius
Edict, A.D. 49)을 내려 유대인
모두를 로마에서 추방하였다(cf.
행18:1-2,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포함됨).
유대인들이 추방되어
생긴 빈자리에는 이방 그리스도인들만이 남게 되었다.
바.
주후
54년경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가
죽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로마로 귀환하였을 때 이미 교회는 다수의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지도력이나 신학사상에 있어서 주도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없는 사이 교회를 지키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차지한 우세한 위치와 이러한 상황 변화는 당연히 이 두 그룹사이의 갈등을
심화시켰다.
이러한 두 그룹의
갈등 양상은 채식주의와 특정한 날 준수문제를 발단으로 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또는 믿음이 강한 자와 믿음이 약한 자의 대립 양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사.
바울은 이 두
그룹을 때때로 유대인과 헬라인,
유대인과
이방인,
선민과
야만인,
할례자와
무할례자,
심지어는 믿음이
약한 자와 강한자로 다양하게 부르면서 그들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똑같고 아무런 차별도 없음을 논증하기 위해 하나님의 불편부당성을
논증한다(2:11).
그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들 모두는 한때 다 죄인으로 판명되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아래 놓였으나,
그들 모두는 똑같이
하나님의 차별 없는 은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아 구원을 받게 된 복음을 선포한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의 주제와 연관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이방인들은 그들의 양심과 피조물을 통해 스스로를 계시하신 하나님을 올바로 인식하거나 섬기는 데 실패하였고(1:18-31),
유대인들은 율법을
통해서 그들에게 나타내 보이신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데 실패했다(2:1-29).
바울은 이 세상에서
의인은 단 한 사람도 찾을 수 없고,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들 모두는 똑같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고 피력한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선물인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나타나서 그들 모두를 구원하셨다는(3:21-4:25)
논증과정에서
이신칭의(以信稱義)를 언급하고
있다.
(7)
수신자인 로마교회의
상황과 저자인 바울 자신의 주변 환경들을 기초로 하여 바울이 왜 로마서를 기록했는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가.
바울은 스페인
선교를 위해 서유럽 선교의 전략적 요충지인 로마 교회에 자신과 자신의 복음을 바로 소개하여 그들의 도움과 지원을 얻으려 했었는데 이러한 선교적
목적이 가장 직접적인 로마서의 기록 동기가 된다.
나.
로마교회에 있는
이방 그리스도인과 유대 그리스도인 사이의 갈등과 반목이 심화되어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였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로마서를
기록하였다.
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권면하고 믿음을 굳건히 하려고 하는 목회적인 목적에서 로마서를 기록했다(롬1:8-15;
15:15). 즉 바울은 비록
자기가 설립한 교회는 아니지만 자기의 사도적인 사명을 따라서 로마 교인들에게 특별히 그들에게 필요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하여 로마서를 기록하였다.
라.
바울은 로마서를
일차적으로는 로마 교회에 보내기 위해서 쓰고 있으나 보다 폭넓은 역사적 상황에서 보면 이제 곧 방문하게 될 예루살렘 교회에서 신학적인 논쟁을
염두에 두고 로마서를 저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예루살렘
사도회의를 대비한 사전의 준비로 다시 한 번 기독교 복음의 진리를 확인하고 유대교회와 이방교회가 하나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재천명하기
위하여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로마서에서 체계화시켜 요약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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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
7절에서
“은혜와
평강이”라는
인사(축복)의 말을 나누고
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Grace
to you and peace from God our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이러한 인사와
축복의 말씀(greetings)은 신약에서는
바울의 서신에서 8회 사용되고
있다(은혜와
평강:
롬1:7;
고전1:3;
고후1:2;
갈1:3;
엡1:2;
빌1:2;
살후1:2;
몬1:3;
참고:
은혜와 긍휼과
평강:
딤전1:2;
딤후1:2).
가.
“은혜가
너희들에게”(grace
to you): 은혜가 임할 곳은
너희들이라고 선포한다.
은혜를 받을 대상은
너희들이라(to
you)는 인사이면서
축복의 선포다.
“평화”는
“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peace
from God and Jesus)라는 이 인사말에는
동사(술어)가 없이 그대로
단어만 나열되고 있다.
그러나 내용 전달은
분명하다.
“평화”라는 단어는
LXX에
290회 사용될 정도로
귀중한 말이다.
평화란 히브리어의
“샬롬”이다.
히브리인들이
빈번하게 사용하는 인사용어다.
그런데 내용이
다양하다.
평화(평강)이란 평화와
화평,
기쁨,
건강과,
번영,
형통,
온전함과 완전함
등의 다양한 내용을 의미한다.
삼상25:6.
그 부하게 사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Have
a long life, peace be to you, and peace be to your house, and peace be to all
that you have.)
나.
은혜(grace)는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from
God and Jesus) 온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salvation)은 예수님을 통하여
은혜(선물)로
주신다.
은혜를 받은 결과는
평화로 나타난다.
성도는 은혜의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평강의 삶을 누린다.
원인(原因,
the cause)과
결과(結果,
the effect)의 관계를
보여준다.
왜 그렇게
행복한가?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걱정하고
짜증내는가?
은혜를 못 받았기
때문이다.
다.
바울은 하나님을
“하나님 우리
아버지”라고
하였다.
구약에서
히브리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한
아버지를 모신 하나의 가족이라는 사실은 여기에서도 설명된다.
한 몸 된
동고동락의 비밀이 여기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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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째,
2-6절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나타내는 멧세지”가 요약되고
있다.
바울은
1절에서 자기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한 후에
하나님의 복음이 무엇인가를 2-6절에서 설명하고
있다.
본 유인물
2-3페이지의 분석표를
보면 “하나님의
복음”이 무엇인가를
구분하고 있음으로 자세히 살펴보자.
2.
-which He promised beforehand (이
복음은)
하나님이 미리 구약
예언에서 약속하신 것.
3.
-concerning His Son,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신약의 예수님의
생애.
4.
-Jesus Christ our Lord,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라:
신구약의 예수님께
받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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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이 로마서에서
사용하고 있는 예수님의 명칭과 모형
1.
예수
그리스도(1:1),
2. 다윗의
혈통(1:3),
3. 하나님의
아들(1:4),
4. 주 예수
그리스도(1:7),
5. 그리스도
예수(3:24),
6. 화목제물(3:25),
7. 예수(3:26),
8. 예수 우리
주(4:24),9.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9:33),
10. 율법의
마침(10:4),
11. 구원자(11:26),
12. 죽은 자와 산 자의
주(14:9),
13. 이새의
뿌리(15:12).
*
로마서의 전체적
윤곽은 학자들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형태의 제목과 목차를 제공하고 있으나 구약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들이 신약시대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고 하는 신학구조와 성경전체의 문맥(context)에서는 결코
벗어나지 않고 있다.
1.
따라서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구조의 윤곽은 하나님의 복음(The
Gospel of God, 1:1) 또는 하나님의
의로우심(The
righteousness of God, 1:17)을
총제목(Title)으로 삼고 있음이
서론(1:1-17)에 명시되고
있다.
복음(Gospel)과
의로움(Righteousness)을 중심으로
로마서를 전개한다.
실상 바울은
예수님의 핵심 가르침인 “복음과
의”를 증언함으로써
성경의 문맥(context)을 이어가고 있음이
나타난다.
성경학자들이 로마서
개요(목차)의 소제목들을
어떻게 표현하던지 이 범주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롬1:15-17를
본다.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2.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복음(Gospel)과 하나님의
의로움(Righteousness)이
계시되므로(revealed)
말미암아 불의한
인간 편에서는 의인(The
Righteous)이 탄생되며 복음을
믿는 믿음(Faith)이 생기며 이로써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구원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근거가 분명하게 된다.
3.
“의”(Righteousness)를 중심으로 하는
로마서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가.
(롬1:1-4:25)
반드시 필요로 하는
“의로움”은 하나님 편에서
계시하신다.
나.
(롬5:1-8:39)
계시된
“의로움”은
“의의 계시자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를
수용한다.
다.
(롬9:1-11:36)
“하나님의
의”는 배척을 받아도
“은혜”로 주님의 뜻을
이룬다.
라.
(롬12:1-16:27)
“의로움을 받은
백성들”
사이에서는 그
“의로운
삶”이
나타난다.
4.
“복음”(Gospel)을 중심으로 하는
로마서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가.
(롬1:1-4:25)
“복음의
핵심”은
“의로운
계시자”를
“믿음”으로
“의로워짐”이다.
나.
(롬5:1-8:39)
“복음의
불변성”은
“영원한 구원의
소망”이다.
다.
(롬9:1-11:36)
“복음의
포용성”으로 이스라엘과
열방의 불신이 수용된다.
라.
(롬12:1-15:27)
“복음의
능력”은 모든 성도의
신앙행위에 자동적으로 나타난다.
5.
“하나님의
의로움”
또는
“하나님의
복음”은 성경의 용어로
등장하므로 용어를 이해하여야 하는 해석이 요구된다.
그러나
“의로움”과
“복음”은
“하나님의
계시”로 나타난 것이며
실제로는 인격체를 의미한다.
즉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다.
바울은 일평생 끊을
수 없는 “예수님의 사랑의
줄”에 매여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았다.
*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체험으로 복음의 빚 진자의 사명을 완수하였으며 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매자의 역할을 하였다고 스스로
간증한다.
우리들은 각자가
바울과 같은 심정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여야 한다.
고후11:2-3을
참고하자.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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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탁의
말씀: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글쓴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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