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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및 신앙 서적

악한 영적 세력의 활동과 성도의 대비

by 은총가득 2012. 7. 17.

악한 영적 세력의 활동과 성도의 대비

송영목 교수 / 고신대 대학교회 담임, 부경성경연구원장

 

 

‘사단’과 ‘악한 영들’을 신약에서만 총 328회 언급한다. 따라서 성경에서 영적 전쟁은 중요한 주제이다. 이 이유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요일 3:8).

1. 구약의 용례

뱀과 같은 바다의 괴물인 리워야단(욥 3:8-9; 41:1; 사 24:21; 27:1), 라합(욥 26:12), 용(사 51:9)은 강력한 하나님의 원수이다. 하나님이 혼돈의 바다에서 역사하는 리워야단/용을 파쇠하신다(욥 7:12; 26:12-13; 시 74:13-14).

사단(욥 1:6-12; 슥 3:1-2)은 하나님의 백성의 충성을 시험하는 법적인 고발자로 보인다. 욥의 신앙의 연단과 시험에서 볼 수 있듯이 사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며 권한은 제한적이다.

2. 신약의 용례

복음서에서(악하고 더러운) 귀신들(pneumata)은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의 시작을 방해하는 세력이다(마 13:39; 참고. 군대 귀신, 막 5:9). ‘바알세불’(막 3:22)은 폭풍과 다산을 주관한다고 믿어진 ‘바알’과 ‘하늘의 주’를 의미하는 ‘제불’의 합성어이다. 그 외에 ‘원수, 악한 자’(마 13:19, 38-39), ‘시험하는 자’(마 4:3; 살전 3:5), ‘세상 임금’(요 12:31), ‘하늘에 있는 권능들’(막 13:25?)로 불리기도 한다.

바울 서신 중, 빌레몬서를 제외한 모든 서신에 예수님께서 사악한 권세를 굴복시키신다는 사상이 등장한다. ‘사탄’(satanas)은 ‘악마’에 해당하는 헬라어(diabolos; 엡 4:27; 6:11)와 관련되는데, 사람들로 하여금 범죄하도록 하는 존재이다. 고후 2:11절은 사단이 교회 안에서 용서와 사랑을 없애어 사람을 속이려고 한다고 말씀한다. 원시복음(창 3:15)절의 사상을 담아서 바울은 예수님께서 악한 영적 세력을 발아래서 상하게 한다고 말한다(롬 16:20).

 

악한 영들은 교회의 분쟁을 일으킨다(롬 16:17). 사단은 광명(빛)의 천사로 가장한다(고후 11:14). 사단은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을 이용한다(살후 2:9; 참고. 행 2:22). 고전 5:5절에서 바울은 사단에게 성도를 내어 주는 출교와 같은 강력한 치리/권징의 목적은 육신 즉 죄(의 몸)을 멸하고 영혼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다(참고. 딤전 1:20). ‘육체의 가시’ 즉 ‘사단의 사자’(messenger)가 바울에게 역사하여 겸손하게 만든다(고후 12:7). 여기서 사단은 하나님의 의지를 전달하는 대리자이다. 살전 2:18절에서 바울의 전도의 계획을 방해한 세력이 사단이다. 즉 사단은 바울을 박해하도록 사람들을 선동했던 것이다.

 

골 2:15절에서 그리스도 사건은 ‘정사와 권세’를 무장해제한 그리스도의 승리의 사건이라고 밝힌다. 그래서 성도는 흑암의 권세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긴바 되었다(골 1:13). 악한 영적 세력은 그들이 파멸될 때까지 어느 정도 힘을 쓰지만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롬 8:37-39; 고전 15:24-25). 공중 권세 잡은 자(엡 2:2; 3:10; 6:12)가 특별히 불순종하는 자들 속에서 역사한다. 엡 4:26-27절은 사단은 성도가 분을 내는 것을 통해서 역사한다. 마귀는 성도를 향하여 궤계로 교활하게 공격하며 불화살을 쏜다(엡 6:11, 16).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어둠의 세상 주관자인 악한 영(마귀)을 대적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필요하다. 사망의 권세를 가진 자가 마귀이다(히 2:14). 즉 사단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조성하는 자이다(히 2:15). 이 마귀를 그리스도께서 없이 (파괴)하신다(히 2:14). 요일 4:1절에서 요한은 거짓 영들이 세상에 많이 활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영들은 적그리스도 즉 이단을 통해서 교리의 변질을 시도한다(요일 3:8). 유다서 6-7절은 천사 중 타락한 존재가 마귀라고 말한다.

계시록에서 마귀는 무저갱의 사자(angel of abyss)이며, ‘아바돈’ 혹은 ‘아볼루온’으로 불린다. 계 12:9절의 용은 옛 뱀, 마귀, 사단이라고 불리며 이방인과 불신 유대인을 통해서 교회를 박해한다(계 13:1, 11; 20:2). 사단은 천년왕국동안 무저갱에 던져져 있다(계 20:3). 이것은 예수님에 의해 패배 당한 상태이다. 계 20:10절에서 사단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영원한 유황 불 못에 던져질 것이 예언되어 있다.

 

3. 정신병과 귀신들림을 구분하는 법

증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정신병에 의한 정신이상은 뇌의 기질적인 문제에 의한 정신이상이어서 환각과 망상을 위주로 하나, 귀신들림에 의한 정신이상은 귀신이라는 엄연한 실체에 의한 것이기에 꼭 망상과 환각을 동반하지 않는 가운데 정상인과 다른 그 어떠한 이상한 모습을 보인다. 귀신들린 자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쇠사슬을 끊고 (막 5:1-20), 정확하게 점을 치는 것 (행 16:16-19) 등이다. 귀신들린 자는 십자가, 성경, 예수님이라는 호칭 등 신앙적인 것들에 대해 특별히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다.

 

약물로 치료가 가능한 것은 정신병이다. 귀신들림의 경우 정상적으로 생활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나, 정신병은 주로 점진적으로 누적되어 증상으로 나타난다. 일반은총도 은총이기에, 정신병은 정신과 의사에게 맡겨야 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신약 성경에서 귀신들린 자들은 거라사 지역의 무덤 사이에 머물던 사람을 제외하면 정신이상적인 증세를 보인 경우는 드물다. 거의 온전한 정신으로 예수님과 대화한 것으로 보인다(보라. 김진, 2006:163-169).

 

4. 귀신들림과 성도의 정신-영적 건강

다중 인격 환자들과 유사하게, 상하고 상처입고 깨어진 인격의 한 부분이 귀신들릴 수 있는가? 사람을 육체와 영혼과 정신으로 나눈다면, 영적 세계와 정신의 관계에 대한 정확한 구분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마귀의 자녀들인 불신자들은 잠재적으로 귀신들린 자들인가?(고후 4:3-4; 에드 머피, 1999:111, 922).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도는 귀신들림과 관계가 없는가? 성도에게 가위눌림은 없는가?

그러나 영적 전쟁과 귀신을 두려워 말자(눅 10:18-19). 귀신의 힘을 과대평가하지도 말며 과소평가하지도 말자. 귀신에게 빌미를 제공하지 말며 우울해 하지 말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신앙의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살자. 기독교 심리치료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생리적-심리적-생물학적-정신적인 요소와 귀신적 요소를 구별하여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영분별 및 축귀의 능력을 가진 성도와 기독교 정신과 의사는 공조해야 하지 않을까? 생물학적 요소와 귀신적 요소(영적요소)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면 약물과 축귀가 같이 동원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단 숭배적인 문화와 마술, 사주팔자 보고 점치는 것, 외설-폭력 문화 (미국에는 성인 숍이 맥도널드 보다 더 많다), 탐욕, 중독적이고 습관적인 죄악, 자만심과 열등감 등과 관련된 건전치 못한 자아상 등을 멀리해야 한다. 영적 전쟁에서 기억해야 할 원칙은 새가 머리 위에 날아다니는 것을 방지하기는 어렵지만 머리에 둥지를 틀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시 유혹과 죄악은 물리치고 정신적인 순결을 유지해야 한다. 죄악의 연속선은 다음과 같다: 죄악된 생각, 선택, 습관, 자기 통제력 상실, 속박, 악한 영적 세력에게 전적으로 통제를 당하는 상태로 발전한다(에드 머피, 1999:273).

 

성경은 심리학 교재가 아니다. 대신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교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광의의 치유의 원칙을 제시한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여전히 신비로운 여러 가지 의문들이 풀리지 않는다. 축귀를 위해서 안찰이 필요한가? 아니면 기도와 말씀만으로 충분한가? 축귀의 방법은 왜 다양한가? 신앙인도 귀신들릴 수 있지 않을까? 신앙인이었던 사울도 심각한 죄 가운데 거할 때 귀신들렸지 않는가?(삼상 9-31). 사단이 저항하며, 귀신의 이름 즉 정체를 묻고 파악해야 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여 쫓아내고, 회개와 신앙 고백을 하도록 하며, 귀신이 떠난 사람이 말씀과 기도로 지속적으로 충만하도록, 그리고 다른 성도는 귀신들림에서 놓임 받은 사람을 정죄하지 않도록 교회적 차원에서 중보기도하며 배려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