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와 아모스의 대화
사도행전 15:15-17절의 아모스 9:12절 인용
송영목 교수 / 고신대 대학교회 담임, 부경성경연구원장
1. 서론적 진술: 역사적 배경
BC 760년경 여로보암 2세 치하의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 아모스는 부요한 시대에 타락한 언약 백성을 향해 '여호와의 날'이 임할 것을 외친다(상아궁, 암 바산 [살찐] 암소들, 3:15; 4:1; 참고. 호 4:7; 13:6).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아모스에 81회 사용)는 북 이스라엘을 남 유다와 동일하게 회복되어야 할 자신의 백성으로 취급하신다. 아모스 당시 북 이스라엘 백성에게 종교적 열심히 있었지만, 그런 종교 행위의 동기와 중심은 변질되어 버렸다(암 4:4 이하; 참고. 마 23:23).
암 1-2장에서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 암몬, 모압의 '서너 가지 죄'(pesa, 반역, 언약 파기)로 인해서 그들에게 내릴 벌을 돌이키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은 그 종착점인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을 정조준하신다. 여호와는 '특정주의'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보편주의'로 나아가시기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all the nations that bear my name)을 이스라엘에게 주시려고 한다(암 9:12). 여호와는 만국의 창조자, 심판자, 통치자이시다(암 9:2-3).
따라서 장차('그 날에', 암 9:11) 회복될 이스라엘이 열방의 제사장 나라로서 우뚝 설 것이며, 열방은 시온으로 몰려들어 신정국가의 구성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모스 당시에는 부분적으로도 성취되기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아모스의 이 예언이 있은지 200년도 못 되어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패망해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예언은 궁극적으로 종말에 예수님께서 신약 교회를 통하여/위하여 성취하실 사역이다.
2. 야고보와 아모스의 대화
이제 우리의 논의의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암 9:12절의 MT는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이다. LXX는 '얻는다'(yaras)를 '찾는다'(daras)로, '에돔'을 사람(adam)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오독'(misreading)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LXX번역자는 '사람/아담과 만국의 남은 자'를 동사의 목적어가 아니라 주어로 바꾸었다. 그 결과 히브리어 원문이 손상되었으며, 나중에 작성된 헬라어 사본에서는 '찾다'의 목적어로 '나를' 혹은 '여호와를'을 넣었다. 행 15:17절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야고보가 이 나중 헬라어 사본을 인용함으로써 이방인이 하나님을 찾는 예언의 성취로 아모스 본문을 이해했다.
두 말할 필요 없이 야고보의 말씀이 행 15장에 기록된 것은 성령의 영감 아래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따라서 행 15:15-17절은 의미상으로 별 무리는 없다.
하지만 야고보가 MT의 표현을 정확하게 번역하지 않은 LXX를 따른 것은 문제가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결할 것인가? 성령께서 사도행전을 기록할 때 누가로 하여금, 야고보가 아모스서의 구절을 대충 암기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을 부정확하지만 의미만 전달하는 차원으로 사용하도록 하셨는가? 이것은 하나의 가능한 해결책이다. 더 가능성 있는 설명은 없는가? 아모스를 인용할 때 MT가 아니라 LXX을 참고한 야고보가 예루살렘 공의회의 상황에 맞게 의도적으로 아모스의 구절을 변경시켰을 수 없을까?
즉 초대교회의 배경 속에서 행 15장을 이해한다면, 불신 이방인이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구속사의 확장과 전환적 시점에서 이방의 남은 자들이 구원의 하나님을 찾는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사도행전의 표현처럼 '에돔의 남은 자'라는 지역적/민족적인 언급을 '아담/사람'으로 바꾸는 것이 훨씬 낫다고 야고보가 판단했던 것 같다.
3. 야고보와 아모스의 대화에 나타난 언약의 성취
암 9장에는 심판과 회복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회복을 밝히는 암 9:11-12절은 아모스 당시의 북이스라엘도 삼하 7장의 다윗 언약의 수혜자임을 밝힌다. 또 다른 회복 결론 구절인 암 9:15절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으면 조상에게 약속하신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상기시킨다(암 5:4).
구약의 근간이 되는 이 두 언약을 통하여 아모스는 북이스라엘 백성에게 회복을 약속한다. 최초의 교회 공회의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회의에서, 야고보는 복음이 특별히 바울의 선교를 통해서 로마 제국 전체에 확장되는 시점에서 이방 땅에도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왕국이 건설되고,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그 안으로 들어오도록 초청하는 결정을 도출하고 있다.
이것은 다윗과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재창조 사역을 선언하는 마 1:1절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아모스가 외친 여호와의 날과 비교되지 않는 더 굉장한 사역을 이루시는 예수님이 언약들을 성취하사 종말론적인 '주님의 날'을 가져 오셨다(암 5:18, 20). 이것은 아모스가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암 3:13; 4:13; 5:14, 15, 16, 27; 6:8, 14) 행하신 이스라엘의 모세 구원 사건의 원형(prototype)인 출애굽 사건을 들어 설명했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영적 출애굽'이다(암 2:10). 동시에 이것은 모든 심판 사건의 원형(prototype)이라 할 수 있는 '소돔과 고모라의 파멸'의 역전이다(암 4:11).
이제 우리가 야고보와 아모스 사이의 대화에 끼어 들 차례이다. 강력한 주권을 가지고 전사와 같이 대적을 물리치시며 언약을 지키시는 '주 만군의 여호와'의 사역을 이어 받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의 특별한 소유가 된 우리는(암 3:2; 사 43:4) 단순히 종교적인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죄악 가운데서라도 시벌 의지를 돌이키시는 인격적인 여호와를 전심으로 찾아서(암 7:3), 공법과 정의를 행하고(암 5:24), 언약에 신실한 제사장 나라로 살아야 한다. 큰 복을 받은 사람에게는 큰 의무가 따르는 법이다. 이스라엘의 자기만족이나 거짓 안정감을 부추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선지자 아모스가 결코 '이스라엘의 여호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기억하자
'신앙 및 신앙 서적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가 (0) | 2012.07.17 |
---|---|
참된 영성이란 무엇인가 (0) | 2012.07.17 |
중간지도자의 역활 (0) | 2012.07.17 |
하나님의 세가지 뜻 (0) | 2012.07.17 |
목회자는 거룩한 열정에 항상 불타야 한다 (0) | 2012.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