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에 의한 삶(6) 성령을 근심케 하지 않는 것
엡4:30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에 의한 삶
1)성령께 민감해서 그분의 인도를 따라서 사는 삶 - 필수, 하나님 자신, 목적, 길을 알리시는 것
2)성령의 능력을 옷 입는 삶 - 신앙의 모든 면에서 성령의 능력과 기름부음으로 사역을 감당해야하는 부분
성경에 성령님에 대하여 2가지를 하지 말 하고 있습니다.
1)근심케 하지 말라 -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친히 앞서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와 관련.
2)소멸하지 말라 - 성령의 기름부음과 관련이 있음.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하시면서 아울러 그리스도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다.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좀 더 잘 이해하려면 고후1:21을 보면
[고후1::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기름- 성령의 기름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편 되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파했다고 말함.
왜? 스스로 하나님의 언약을 다 지킬 능력이 우리에게 없음
렘31:31 새 언약을 세우실 것을 말씀하심
[렘31: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31: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31: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31: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법을 각 사람 속에 두고 하나님의 법을 각 사람 마음에 기록하겠다 말씀하심, 그래서 각자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고 그들의 죄를 사하시게 될 것이다 말씀하셨는데, 신약시대에 와서 보니까 이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믿는 각 사람의 마음속에 성령을 주시겠다.
그래서 그 성령께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지도하시고, 하나님 명령을 따라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신약은 성령에 의한 삶이다.
[고후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신약은 성령에 의한 삶, 문자는 죽이는 것이요, 성령은 살리는 것이다.
언약의 성취를 말하면서,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하시는데 우리를 견고케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 신데 그분이 이 일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 성령으로 기름부으시고 성령으로 인치셨다. 라고 말씀하심.
FF 부르스: 예수님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 사이는 성령에 의한 시대다.
예수님도 승천 하시면서 책 한권 남긴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실 것이라 말씀하시면서 그분이 오시면 우리를 가르치고 지도하실 것이며 위로하시고,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죄를 깨닫고 책망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심.
신약은 성령에 의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우리로 살아갈 수 잇도록 구약에 약속한 대로 우리 속에 법을 두시고 그 말씀을 우리 속에 기록하시겠다고 하셨는데 그것을 가능케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신일이 성령을 우리 속에 성령을 인치신 것입니다. 성령을 주신 것임. 따라서 우리 신앙의 모든 것은 성령으로 만 가능합니다.
구원, 성화, 믿음, 치유, 예배도 성령님이 주도 하시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예배고 하나님의 뜻도, 이처럼 우리 신앙의 모든 면에서 성령님이 없이는 가능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은 전적으로 성령에 의한 삶이라 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각-초대교회, 예수님의 삶속에서는 성령님이 없이는 개접휴업 상태인데, 오늘날은 성령님이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함, 너무나 심각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신약시대는 전적으로 성령의 시대요, 성령이 없이는 우리 신앙에 어느 것 하나 가능하지 않는데, 이처럼 우리 신앙의 거듭나는 날부터 구속의 날(영화롭게) 까지 우리 모든 신앙생활이 성령으로 가능하고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성령을 감히 근심케 하지 말라하십니다.
왜? 신앙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성령님이 없이는 불가능한데 그래서 하나님이 성령님으로 우리에게 인치셔서 성령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셨는데 반복적으로 근심시키면 무엇이 남겠느냐는 겁니다. 우리 스스로 노력 밖에는 남는 것이 없을 것인데 우리 스스로 노력으로는 절대 승리하는 신앙생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생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절대 불가능 합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구약은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감히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 하심.
이렇게 볼 때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은 우리와 내주하시며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라 - 성령의 기름부음, 성령님의 능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
1.성령님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성령님을 근심케 합니다.
많은 성도들에게 성령님은 축도에나 나오는 용어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말하면 성경이면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충분성은 우리 신앙에 모든 하나님의 지시와 지도를 위해 그 하나님의 진리에 있어서 성경에 나와 잇는 진리는 족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충분성이 성령님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왜? 성경에 나와 있는 진리를 개닫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없이는 성경은 문자에 불과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없이는...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성령님은 축도에나 나오는 하나의 용어에 불과한 그러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후안 카를로스 제자입니까? 예) 교인 심방, 초인종을 눌러도 안 열어줌, 문이 열려 있길래 들어감, 아내는 부억에서 요리, 남편 아이들 TV를 보고 있음, 인사를 해도 들은 척, 본척도 안함, 아는체도 안함, 자들 기리만 애기, 그 다음 주일 교회 오면서 아~~ 목사님 잘 계셨습니까 그랬데요
오늘 날 많은 상도들이 성령님에 대하여 이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교통하기를 원하신 분이십니다.
축도에 나오는 내용을 보세요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교통하심은 교통정리가 아니라 교제다 (펠로우십)
성령님은 우리와 교통하기, 하나님의 듯과 의중, 목적, 길을 알리시기 원하시고, 하나님을더욱더 알리서셔 친밀한 교제 가운데 인도하기 원하시는 데 우리는 전혀 모르는데 관심도 기울이지 않다가 주일날 교회 올때는 오 하나님 하고 오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니 그 비유와 너무 비슷하죠.
부흥 책에 보면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을 말하면 성령님을 강조해요, 많이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성령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전혀 배재하는 것이 문제라면, 다른 일부에서는 너무나 많이 강조하지만 힘이나 감화력 정도로만 인식하면서 자기가 무언가 사용하고 부릴 수 있는 능력으로 인식한,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제이신데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 그분이신데 그것 또한 반대극단 일지 모르지만 여전히 동일하게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령님을 늘 의식하는 것입니다.
[잠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 이 말이 무엇입니까? 모든 일에 그분을 의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3: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성령님에 대하여 수시로 의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시로 의식하는 것은 도 다른 말로 스스로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설교 하면서 눈은 여러분을, 영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안테나를 세우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 눈을 환경을 향하고 우리의 물리적인 귀는 사람을 향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영은 수시로 주님을 의지하여 주님을 바라보는 그 자리에 있는 것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저도 사실 잘 안됩니다.
허드슨 테일러 - 한 순간도 주님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노력 하면 할수록 더 자주 잊어버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우리의 힘으로 하려고 할 때 안 되지요, 더 안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을 알고 오직, 믿음, 은혜의 자리에 서게 하기 위해서 안 되게 하십니다.
이처럼 노력해도 안 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주님을 잊지 않으려는 자신의 노력까지도 내려놓고 주님만을 믿음으로 의지하게 되었을 때 자기 속에서 주님이 내주하시는 삶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하늘의 기쁨을 이 땅에 살면서 경험하게 되었다고 기록함.
사도바울 -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자동이 아님, [엡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 이것을 보면 자동이 아님, 허드슨 테일러의 경우처럼 순간순간 주님을 믿음으로 의지하고 바라는 가운데 그분이 우리를 통해서 앞서 가시며 그분의 인도에 민감해서 그분께 순종하는 그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주님을 의식하는 삶, 그분의 인도에 민감한 삶, 그분을 향하여 열려져 있는 삶, 이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오직 믿음으로 가능함.
우리가 이 삶을 살려고 노력하다 넘어질지 몰라도 허드슨 테일러처럼 그 삶 살도록 주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구하고 주님의 도움을 구하고 지속적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이 삶이 우리 가운데 되어야 합니다.
순간순간 우리가 성령님을 의식하려면 성령님을 의식하고 주님을 바라볼 뿔만 아니라 그분께 수시로 묻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윗 - 잘 물음
여호수아 - 묻지 않음
사사기 - 묻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55: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55:9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고전2] 하나님이 그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은 사람의 지혜로 지식으로 알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으로만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그 모든 것들이 다 옳은 것처럼 판단하고 평가함. 교만의 극치, 목이 곳은 백성
다라서 성령님을 의식한다는 것은 내 생각, 지혜, 명철, 경험을 내려놓고 주님께 묻는 것이 포함됩니다.
[잠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 이 말이 무엇입니까? 모든 일에 그분을 의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3: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우리가 말하기 전에, 행동하기 전에 결정하기 전에 집중적으로 일정기간동안 하나님을 찾는 것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아니라도 말하기 전에 행동하기 전에 판단하기 전에 한 발짝 물러서서 내 지혜와 명철, 지식 내려놓고 하나님의 지혜, 인도를 구하여 묻는 자세가 성령님을 의식하는 중요한 하나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가장 주된 이유는 묻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찬하신 다윗의 경우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가장 잘 들은 자 중하나였는데 하나님에 특징은 하나님께 묻는 자였습니다. 하나님께 겸손히
성령님을 바라보고, 성령님을 의식하고 하나님께 물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생각한 것 이상으로 뜻과 의중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2.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이 뭐냐? 세상 사랑입니다
[약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간음하는 여자들 - 자기 남편 나두고 다른 남자와 바람피우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당연 하겠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간은하는 여자라고 말함 왜?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약4: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4절 - 세상 사랑을 말하고 난 다음에 5절에서 그것이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사랑은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입니다.
세상사랑은 먼저 본문 구절에 보면 영적인 간음입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 부부가 있습니다. 아내가 당연히 자기 남편을 남편으로 여김, 그런데 이 땅에서 자기의 진정한 기쁨, 만족을 가져다주고, 살아야 할 이유를 가져다주고, 삶의 만족을 주고, 사람들 앞에 자신감을 내 세우게 하고... 이러한 일을 하게 하는 것이 다른 남자라면 어떻겠습니까? 그게 간음이지요. 우리가 하나님 백성이라 말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당연히 하나님으로 여기지만 진정한 기쁨을 주는 것도, 당당함을 주는 것도 돈이고, 자기에게 만족을 주는 것도 세상의 돈이고.... 이것이 영적인 간음입니다.
세상사랑에 대해서 말하면서 요일서2장에 보면 15-17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세상 사랑의 특징
1)육신의 정욕과 2)안목의 정욕과 3)이생의 자랑
이생의 자랑 - 이 세상에 있는 것들에서 자부심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전형적인 우상숭배는 혼합주의 신앙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어차피 우상 숭배하며 삽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에게는 혼합주의입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깁니다.
렘7장에 엄청난 헌신을 엄청난 예배를 드렸습니다.
렘23장 - 하나님의 주신 응답이 뭐냐고 입만 벌리면 하나님 이야기했습니다.
렘40 - 심판이 코앞에 닥쳐와도 금식했음. 이들은 이렇게 철저하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바알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들의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 했습니다. 세상사랑은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그러니 성령에 의한 삶(친밀함)은 불가능합니다.
탐심이 우상 숭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어있는데 봉사한다고 기뻐하시겠습니까? 이사야 시대, 예레미야 시대, 예수님 시대 바리세인들을 보세요. 세상사랑은 성령님을 근심되게 합니다. 너희가 성령님을 근심케 하면 성령님에 대한 질투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심판하심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령을 좇아 행하라 - 나를 따라오라는 말, 즉 성령과 교제 없이 그 분을 좇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줄당기기)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 성령님과 함께 보조를 같이하자, 그런데 우리는 축도에나 나오는 것 정도로 생각함.
보조 - 그분의 의중 의도 뜻을 깨닫고 보조를 �추어야함.
육체의 일은 성령님의 인도를 소멸하는데 육체의 일은 다양한 것들이 될 수 있다. 죄가 아니라도, 취미, 바둑 골프, 낚시, 운동, tv시청, 신문 이러한 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디 까지가 옳은 것이고, 과다한 것인가?
고전6, 10장에서 청교도들은 4가지를 행동의 기준으로 삶음
1)유익한 것을 행하야야 한다.
자의 유익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생각, 우상의 제물 먹는 문제,
2)덕을 세우는 것.
족들이 야외 가는 것 중요하다. -
3)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4)아무에게도 제제를 받지 않아야 한다. -오락이 나를 콘토롤 한다면 오락의 제제를받고 있음.
중독의 정의 - 안하면 하고 싶은 것
어떻게 세상 사랑을 이길 수 있는가?
1)십자가를 통해 우리 옛 사람이 세상과 죄에 대하여 죽었음을 인식(갈5;24)
2)죽은 것으로 간주하라 - 손해로 떨어버리라(빌3 -바울이 모든 것을 해로 여김)
3)주님의 일에 힘쓰는 것 -주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함.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 때, 주님께 초점을 맞출 때 세상 사랑을 이길 수 있음
4,다양한 죄들이 성령을 근심케 합니다.
죄
1)도덕적 죄 - 술 취함, 간음, 방탕, 음란, 살인, 거짓말
2)관계의 죄 - 이것은 죄로 생각하지 않는 경우 마노음
-미워하는 마음, 용서치 않은 마음, 상대에 대한 원망과 불평, 판단과 후욕, 서운한 마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①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일만 달란트 비유)
②상대방을 용서하거나 회개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잘 못했을 때는 용서, 내가 상대방을 오해 ->회개
③상대방을 축복해야 합니다. 용서는 의지요, 결단입니다.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그래도 감종 남아 있음, 따라서 마음껏 집중적으로 축복해야합니다.
④상대방에 대하여 최대한 좋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⑤상대방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상대방에 대해서도
3)불순종의 죄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유는 순종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호수아와 군대 장관 - 주도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분이 주권자, 그분이 뜻이 최선입니다.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다면 그 자리에 돌아가야함.
주님 제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다면 순종하기를 원하오니 깨닫게 하옵소서, 주님을 찾고 기다림,
다양한 죄들이 성령을 근심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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