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바라보자
히 12:1-2
인생은 바라봄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바라본다는 것은 꿈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무엇을 집중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집니다. 바라봄으로 그 자신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소리를 들음으로, 말을 함으로, 그리고 행동함으로 자신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외부 환경과 조건이 자신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과 조건을 두고 불평 원망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동물들에게는 보호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외부 환경과 자신을 같은 색깔로 만드는 것입니다. 개구리는 등이 푸릅니다. 늘 풀 속에서 살며 풀만 바라보다보니 색이 푸르게 변합니다. 뻘 속에 사는 낙지는 머리와 발이 까맣습니다. 뻘 속에 살면서 그 색을 닮아갑니다. 발이 하얀 낙지는 어부들이 바다에서 그물로 건져 올린 것입니다. 이런 낙지는 희고 커서 보기는 좋아도 맛은 덜합니다.
결국 사람도 바라봄의 법칙을 통하여 자신이 만들어 지는 것이 창조의 섭리입니다. 성공의 법칙은 예수를 바라봄으로 가능합니다. 행복의 조건도 예수를 바라봄으로 가능합니다. 부자가 되는 것도 예수를 바라볼 때 가능합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도 예수를 바라봄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를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눈을 떼면 그 때부터 문제가 발생합니다. 주변에서 찾아오는 유혹과 시련을 견디지 못합니다. 혹은 자신을 바라보며 낙심합니다. 환경을 바라보며 원망 불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 세계적으로 개를 잘 조련하기로 유명한 곳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조련을 받은 개는 얼마나 훈련이 잘 되었는지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주인의 명령에만 복종했습니다. 그곳을 찾아온 사람들은 개를 시험해보고자 먹음직스런 고깃덩이를 던져주고는 주인의 명령을 따르는지 아닌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과연 고깃덩이를 던져 주어도 주인이 움직이지 말라고 명령을 하자 꼼짝을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한낱 짐승이 굶주린 상태에서 식욕이라는 본성을 이기고 복종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궁금하여 조련사에게 비결을 물었습니다.
“어떻게 고깃덩이를 먹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조련사는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고깃덩이를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개가 먹지 말라는 명령에 복종했지 않습니까?”
“네 고깃덩이를 먹지 않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개가 주인만 쳐다보게 하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조련사는 개로 하여금 어떤 상황이든 명령이 떨어질 때는 주인만 바라보도록 훈련을 했으며, 이것이 바로 세계적으로 훌륭한 개들을 조련하는 비결이었습니다. 개가 만일 시선이 고깃덩이로 떨어지면 그 때는 통제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명령이 떨어지고 주인과 함께 있는 순간에는 항상 개가 주인만 바라보게 훈련했기 때문에 그가 조련한 개들은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복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개는 비록 짐승이지만, 주인만 바라보게 만들었더니 자신의 본성도 이기고 유혹도 이기는 훈련된 짐승이 되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인류의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끊임없이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주님을 깊이 바라볼 때, 모든 유혹과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 바라봄을 통해 성공도 나타나고 능력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바라봅시다.
1.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온전함이란 인격적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인격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이 곧 예수입니다. 예수께서는,
1)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롬 12:20).
용서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2)누구든지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39).
져주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3)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마 7:12). 섬기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4)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33).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구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온전한 인격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용서하는 것, 져 주는 것, 섬기는 것, 먼저 할 일과 나중할 일을 구분하는 것은 온전함에서 나오는 덕목입니다.
(막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만 바라보면 우리도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세상 교육을 통해 인간이 온전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참된 교제 가운데 온전함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예수를 바라보기 바랍니다. 예수께 시선을 고정하고 깊이 바라볼 때, 우리도 주님의 온전함을 닮게 될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부유해지게 됩니다.
(학 2: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신 28: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말 3: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짐으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결국 부유해지는 것도 예수를 바라봄으로 가능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요케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습니다. 주님을 통해 우리는 저주와 가난과 실패와 낙심에서 축복과 부요와 성공과 소망으로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바라볼 때, 가난의 의식, 실패의 의식, 할 수 없다는 생각, 안 된다는 생각이 떠나갑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생각, 부요의 생각, 성공의 의식으로 바꿔집니다.
(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3.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영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은 어떻게 구분합니까?
1)첫째는, 영이 살아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구분됩니다. 영이 죽어 있으면
그는 육의 사람입니다. 반대로 영이 살아 있으면 영의 사람입니다.
2)둘째는, 영의 생각을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구분됩니다. 영의 사람은 영의
생각을 합니다. 반면 육의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①사망입니다, ②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③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롬 8:6-7).
3)셋째는, 영의 기도를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구분됩니다. 영의 사람은 영의
기도를 합니다. 영의 기도는 방언기도를 말합니다(고전 14:2, 14).
하나님은 영의 사람과 동행하십니다. 영이 살아있고, 영의 생각을 하며, 영으로 기도하는 자가 바로 영의 사람입니다. 영의 사람은 영으로 충만합니다. 성경은 말씀이 영이라고 말합니다. 말씀이 진리라고 말합니다. 말씀이 생명이요, 빛이요, 하나님의 지혜요, 우리 인생의 등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영의 사람은 이러한 것들로 충만합니다. 우리가 진정 영의 사람이 되어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이 가득 채워질 때 우리 삶 속에서도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적과 축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기적이 일어납니다.
1)예수를 바라보면 변화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2)예수를 바라보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3)예수를 바라보면 성공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요일 5: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눅 21:15)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
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4)예수를 바라보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꿔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눅 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24시간 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생각하며 항상 주를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를 바라보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실패한 자가 성공한 자로, 가난한 자가 부자로, 죄인이 의인으로 변화됩니다. 예수를 바라보면 우리 육체와 심령과 인격과 삶의 모든 구겨지고 상처난 것들이 치유되고 생명과 평안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예수를 바라보면 안 되는 것이 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닫힌 문이 열려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항상 예수를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 론>
주님을 바라봅시다. 우리 인생은 주님을 바라봄으로 만들어집니다. 주님을 바라봄으로 우리 자신이 만들어지고, 삶이 만들어지고, 행복이 만들어집니다. 사람들은 종종 외부 환경과 조건이 자신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은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성공의 법칙도 예수를 바라봄으로 만들어집니다. 행복과 기적도 예수를 바라봄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항상 예수만 바라보고,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를 깊이 바라봄으로 주님을 닮아가는 삶, 성공하는 삶, 축복의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님께 맡기는 은혜 (0) | 2010.06.06 |
---|---|
당신만의 인생을 만드십시오 (0) | 2010.06.04 |
죠지 휫필드-탁월한 옥외 설교가 (0) | 2010.05.26 |
‘설교 잘하는 방법’ 설교의 거성들의 설교 방법 2 (0) | 2010.05.24 |
현실을 극복하는 신앙 (0) | 2010.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