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서 자유를 얻게함은 ...
보혈의 능력 / 찰스 스펄전 |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 가리니"(출12:13) 하나님의 백성은 항상 안전합니다. 그러나 오직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안전합 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이마에 뿌려진 피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의 보배로우신 피로 이 백성들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 '피'가 이 백성들 위에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들을 해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날 밤 애굽이 있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 때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핏자국이 있는 집집마다 하나님은 해치지 않고 그대로 넘어 가셨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 때 그 피가 유월절에 쓰는 어린 양의 피였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약속해 두셨던 제물(祭物)의 피, 곧 하나님의 어린 양의 보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이 세상에 약속없이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하나님을 크게 기쁘시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친히 그리스도에게 우리 만민의 죄를 지우셨던 까닭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흘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정하신 뜻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택하신 만민의 구세주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비단 하나님의 약속하신 제물이실 뿐만 아니라, 마치 어린 양처럼 흠없고 티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 한 가지라도 죄가 있었던들 결코 우리들의 구주가 되지 못하셨겠지만, 참으로 주님은 죄없으신 분이었습니다. 이 피는 죄사함을 위하여 단 한번 흘리신 것입니다. 유월절에 드리던 그 어린 양은 해마다 잡아야 되겠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번 자신을 바치심으로써 죄를 멀리 하신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신 피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시고 또 장사되셨습니다. 그러나 하늘도, 땅도, 과연 하나님께서 이 제물을 기꺼이 받으셨는지 알 리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무죄 방면(放免)을 하나님께서 승인하실 그때까지, 그리스도께서는 사방의 매는 줄에 묶여져 계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피는 받으신 바 되었고, 죄는 용서함 얻었습니다. 잠깐 십자가 상의 그리스도를 상상해 보십시다. 높다랗게 언덕 위에 세워진 세개의 십자가를 보십니까? 그리고, 그 중앙에 가시 면류관을 이마에 엮어쓰신 그리스도가 보이십니까? 저 저주 받은 쇠같은 나무 위에 꽉 못박힌 저 양손을 보십시오. 그리고, 인생 중 그 어느 누구보다도 상하고 이그러진 저 얼굴을 좀 보십시오. 그리고 사망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가슴 위에 내리뜨리운 저 무거운 머리를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진정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달리신 곳은 실제로 십자가였습니다. 이것을 무슨 헛된 공상이나 이야기로 생각지 마십시오. 진정코 그러한 분이 계셨으며, 또 그 분은 지금 내가 말씀드린대로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잠깐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 지금 내가 목격하고 있는 죽어가는 저 분의 피가 나를 구원하셨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만일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나는 오직 저 분이 날 위해서 쓰라린 죽음을 맛보신 이 사실만을 의지할 것입니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를 넘어가리니"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피 밖에는 아무것도 우리 영혼을 건질 수 없습니다. 만약 그 때 어떤 어리석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코웃음을 치고, "난 우리 집 양 기둥에다 다른 걸 칠해 놓아야겠다."하거나, "우리 집 문 인방은 금은 보석으로 꾸며 놓아야지"하였다 합시다. 그들의 집은 반드시 앙화를 입었을 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 뿌림 외에는 아무것도 그들의 집을 구원할 수가 없었단 말입니다. '이 닦아 둔 것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우리 모두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나의 공로, 나의 기도, 나의 눈물이 나를 건지지 못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 보혈만이 구속할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과 함께 다른 어떤 소망이든지 두어 보십시오. 당신은 반드시 죽습니다. 다른 어떤 것이든지 보혈과 함께 겸하여 의지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멸망할 것입니다. 즉, 어떤 사람이, "물론이죠, 교회의 성례식(聖禮式)으로 내가 구원얻을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그리스도로 구원도 받고, 또, 성례식도 조금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한다면 이 사람을 참으로 소망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그의 영광과 존귀가 제아무리 좋은 것이라 한들 어찌 감히 그 곁에 두어 둘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십 니다. 그리스도를 노엽게 한 그것은 즉시 저주받은 물건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대관절 여러분은 어찌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또 다른 소망을 두는 것입니까? 여러분의 공로, 여러분의 선행입니까? 보세요! 꿈틀거리는 벌레를 가지고 천사와 함께 같은 멍메를 지우려고 하는 것입니까 - 아니, 당신이 감히 수레를 그리스도와 함께 끈다는 말씀인가요? 도대체 당신의 선행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습니다. 그래 그 더러운 넝마조각을 그리스도의 흠없는 의와 한가지로 한단 말입니까? 결단코 그럴 수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께만 매달리세요. 그러면 그대는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위에 또다른 어떤 소망이든지 둘 때에, 그대는 그대 자신의 죄에다 소망을 두는 것 이상으로 영원히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오직 예수 - 아, 우리 구원의 튼튼한 반석이시여! 또,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아, 그리스도를 그와 같이 믿으려면 좀 더 깊은 회개를 경험해야 되겠는데." 보십시오. 당신의 회개는, 마치 못다 채운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을 반분(半分) 해서 채우기 위한 것 같군요. 그리스도의 피는 당신의 눈물을 건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건지기 위한 것이에요. 회개로써 만족말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보시란 말씀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뜻은 당신이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지, 결코 죄 때문에 일어나는 당신의 감정을 의지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보다 그들의 회개를 더 많이 신경을 쓰기 때문에 그러한 큰 영혼의 어려움 가운데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난 믿음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소망이 없어." 이 역시 어느 것에도 못지않은 크게 위험한 생각입니다. 당신에게 효험이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이요, 결코 당신의 믿음의 효험으로써 당신이 구원얻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당신의 믿음에 의지해도 천국은 못갑니다. 자기의 믿음을 의지하는 것은 자기의 선행을 믿는 것보다 오히려 더 기막히게 어리석은 일입니다. 당신의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께 향한 것 이고, 그 스스로는 아무 쓸 데가 없는 것입니다. 지구 덩어리는 제 스스로 의지하고 돌지만, 믿음은 결단코 제 스스로 의지할 수가 없습니다. 마땅히 그리스도께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믿음을 생각하실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믿음이란 것은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함에서 비로소 생기는 것입니다. 나는 사단이 우리 인간의 마음 속으로 어떤 몸트림을 해서 기어 들어가는지를 잘 알 수 없지만은 이것은 한가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즉 사단은, 보혈,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는 이 진리를 항상 미워하고 감추기를 애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혈과 함께 다른 어떤 것에 소망을 두든지 다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사단은 싫어하는 것입니다. "아, 그렇지만 내게도 남과 같이 이러 이러한 놀라운 경험이라도 있으면 믿어 볼 희망이 일어나겠건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친구여, 보십시오. 문제는 당신 경험이 아니라 오직 보혈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의 한 일을 볼 때에…"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 하셨습니다. "아니에요, 내게 좀 더 이러한 미덕(美德)과 장점이 있더라도 내가 이렇게 소망 없지는 않을 거에요" 이렇게도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천만에요,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가 피를 볼 때에' 하셨지, '내가 네 좋은 성품을 생각할 때에' 하셨습니까? 물론 믿음과 사랑과 소망 등, 당신이 누릴 수 있는 한의 모든 좋은 점을 기르십시오마는 아, 결단코 여러분, 응당 그리스도의 보혈을 모실 자리만은 그중 아무 것으로든지 범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보혈은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우리는 다시 한번 외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만족 못할 형편이 세상에 없고, 그리스도의 보혈이 씻지 못할 죄악이 세상에 없습니다. 첩첩이 쌓인 죄악의 천근같은 무게라도 보혈은 옮겨내고, 붙고 또 붙어 진흙덩이 같이 뭉쳐진 악이라도 보혈은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비록 당신의 죄악이 배나 물들인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그리스도의 보혈은 이 모든 것을 한 터럭도 남김없이 다 깨 끗케 할 것입니다. 조석으로 밥먹듯이 주의 이름을 저주한 자도 올 것이요, 주님을 하나님이 아니라고 잘못 안 자도 올 것이요, 주의 종들을 욕하고 핍박한 자들도 올 것입니다. 다 주님 의 보혈로 정결케 하실 것입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바로 생겼든지 찌그러졌든지, 병신이든지 온전하든지, 마귀의 화신(化身)이든지 아니든지, 주의 보혈이 못 씻어낼 자가 없습니다. 마치 지옥이, 한 죄악으로만 빚어낸 사람 덩어리를 만들기 위하여 죄로 다듬고 다듬어 낸 것 같은 흉측한 인간일지라도, 주님의 보혈은 그를 변화시켜 양과 같게 만들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일곱 귀신을 쫓아낸 것도 이 보혈 이었습니다. 귀신들려 미친 증세, 해묵은 문둥병, 모두 이 보혈로 고치셨습니다. 아무리 중한 심령의 병이라도 우리 대의사(大醫士)이신 주께서 못고치실 병이 없습니다. 먹장 같이 검고 마귀 같이 악할지라도 어떤 형편에서든지 이 보혈의 힘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아, 모든 것에 풍성하고 모든 것에 전능한 보혈입니다! 이 보혈에 뿌리움을 입은 자는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구원얻은 자입니다. 그 때,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보호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 중 어느 누구의 머리터럭 하나도, 멸망시키는 주의 사자가 손대지 못했습니다. 그와 같이 지금 보혈을 믿는 자는 모든 악에서부터 구원을 얻습니다. 로마서 8장의 말씀을 잘 대표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는 좋아합니다. 어떤 순교자가 어느날 「보네르」 앞으로 불리워 가서 신앙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네르」가 "너같은 이단자는 정죄를 받아야 마땅하리라"하고 호통을 치니, 순교자는 그 사랑하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그런고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얼마나 복스러운 생각입니까! 그리스도의 보혈로 보호함을 입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 문의 인방과 양쪽 설주에다가 그리스도의 보혈을 뿌립시다. 멸망이 우리를 떠나갈 것입니다. 애굽 백성들 가운데는 멸망시키는 여호와가 있었지만, 그러나 이스라엘 가운데에는 없었습니다. 악한 자에게는 지옥의 멸망이 있지만은, 그러나, 의인에게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고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은 자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빈틈없이 온전히 구속하십니다. 모든 죄를 남김없이 씻어 내십시다. 모든 축복을 아낌없이 부어주십니다. 나는 지금 그리스도의 보혈의 효험에 관하여 말씀드렸습니다마는, 보혈의 그 막대한 값어치를 나는 도저히 이 혀끝으로 형용해 낼 도리가 없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들 가운데 역사하사, 여러분은 단순히, 그리고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시기를 기도하는 마음 뿐입니다. |
보혈의 능력으로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죽음에서 살아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때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영원한 죽음에서 살아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살아난 우리는 오직 예수 오직 그리스도를 외쳐야 합니다. 예수님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오직 나의 죄를 위해서 피를 흘려주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피가 능력이며 죽었던 영혼을 살리는 능력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제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는 날까지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 보혈의 능력으로 (In the power of Blood)!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요일 1:1-10
요절: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7)
요일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요일 1: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요일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요일 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일 1: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요일 1: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10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오늘은 보혈의 복음에 대해 말씀으로 은혜를 나눕니다. 사도 요한이 믿음의 형제가 된 동족 유대인들에게 보낸 요한일서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한 본문을 교독했습니다. 요한 일서는 가장 쉽고 명백하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어서 예수님을 처음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처음 읽으라고 권유하는 책입니다. 어떤 이는 요한 일서를 다 외우기도 합니다. 너무 좋은 말씀입니다. 현재 우리가 읽는 개역이나 개역개정 그리고 현대 역 영어성경에서 삼위일체를 가장 명확하게 전하고 있는 요일 5:7의 말씀을 삭제하거나 왜곡되게 전하는데 개혁자들의 성경에 있는 대로 반드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요일 5:7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는 이가 세 분이 계심이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라.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 또한 이 셋은 하나이시니라. 8 땅에서 증거 하는 이도 셋이 있으니 영과 물과 피라 이 셋도 하나로 일치하느니라 And there are three that bear witness in earth,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se three agree in one.”
7절에서 킹 제임스 성경에서 아버지(the Father), 말씀(the Word), 그리고 성령(the Holy Ghost) 세 분이 한분(Trinity를 “삼위일체”란 표현보다 “삼위 일신”이 더욱 정확함, 몸體를 사용하면 세분의 하나님처럼 들리나 三位一神하면 “세 위를 가지신 유일하신 하나님”(Tri-Union God) 임.) 모두 대문자로 사용하고 있으며
8절에서는 하나님의 삼위가 짝을 이루어 하늘의 삼위일신을 증거 하는 것으로 영(the spirit), 물(the water), 피(the blood)도 셋이 하나로 일치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영과 진리로(worship God in spirit and in truth, 요 4:24) 드려야 하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며(be born of water and of the Spirit, 요 3:5),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ye were redeemed with the precious blood of Christ, 벧전 1:18-19). 이 중요한 삼위 일신과 구원의 서정을 영지주의 영향을 받은 성경에서는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바른 성경번역이냐 아니냐를 검사할 때 요일 5:7-8을 어떻게 번역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도입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며 고통당하실 때 그 현장에 있었던 유일한 사도입니다. 다른 사도들처럼 자신도 순교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때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the beloved disciple)에게 이르시되 “너는 살아있는 순교자가 되어라” 즉 매일매일의 삶이 순교라고 일러주신 사도 요한은 106세까지 살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밧모섬에서 1년 6개월 감옥 생활하면서 받은 말씀이 요한계시록인데 오늘날 터키인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보낸 목회서신입니다. 재림 신앙이 주제가 되는데 다음 주일 재림 신앙을 묵상합니다.
요일 1:1 태초부터 계시던 그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여기에 태초부터(from the beginning, apo arches α?π? α?ρχη??)는 영원무궁토록 계시는 하나님께 속하는 시간을 말합니다. 창세기 1:1의 태초는 창조 시점을 말하고 있습니다(bereshit, “in the beginning”). 즉 창조가 시작된 시간을 말한다(벧후 3:4). “한 처음에” “시작할 때에”로 번역할 수 있으나 태초(太初)가 처음 시간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의 태초에(ein arche)는 하나님의 무궁한 시간을 뜻하며(시 90:2), 창 1:1의 창조 시간보다 훨씬 오래된 시간을 말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말씀이 곧 성육화(incarnation)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데, 요한은 직접 3년 반 동안 주님께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았고 손으로 만진 생생한 체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막연한 신앙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체험적인 신앙 간증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이렇게 믿어야 합니다.
요일 1:2 그 생명이 나타내시매 된지라 우리가 보았고 증거 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그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신 분이심이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도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참으로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4 우리가 이것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요일 일서에서 증거 하는 목적은 독자들도 삼위 일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코이노니아(Koinonia)는 매주일 예배 마지막 순서 축도문에서 듣는 말로 “성령님의 교통 하심이” 할 때 그 교통이란 말이 바로 교제, 코이노니아입니다. 협동 또는 친교를 뜻하는 그리스어(κοινων?α)를 영국식으로 표기한 낱말인데, 이 단어는 초대 교회의 공동체 사귐을 말하며 역사적으로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협동과 모임을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집단이나 존재해야 하는 친교나 모임의 이상적인 상태에서 쓰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하나님과 성도 사이의 친교, 성도 사이의 사귐, 공유, 관계, 교통, 전달, 사회, 동반자을 말합니다. 코이노니아란 말을 많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요일 1: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7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분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모든 현대 역 번역에서 그리스도를 삭제하고 있는데 이는 죄입니다]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빛 되신 하나님 안에 있으면 어두움의 생활에서 해방되며,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과 코이노니아가 이뤄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모든 죄에서 해방을 받아 깨끗하게 됩니다. 보혈은 구원과 용서의 핵심입니다. 이런 행복한 삶이 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죄를 하나님께 모두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죄와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찬송가 250-282장이 보혈의 찬송입니다. 통합찬송가 182-202장이 보혈 찬송입니다. 하루에 보혈 찬송을 반드시 한 장 이상 부릅시다. 재림 찬송과 보혈 찬송은 우리의 잠자는 믿음을 깨우며, 맥 빠진 믿음을 생동감 있게 만들어 줍니다. 보혈의 찬송을 부르면 예수님의 보혈이 내 심령 가운데 흐르고 우리 교회 강단에 흐르고 우리 가정을 보혈로 적셔 주시면 죽음의 사자도 넘어갑니다.
268장(통 202장)은 나이스크(Nyskc, 예배회복운동=새벽기도, 성경애독, 개인전도, 성수주일, 일조전납=십일조)의 주제가입니다. 예배의 본질은 보혈의 능력입니다. 일본 교회에서 집회를 하는데 이 찬송을 여러 번 반복하여 부를 때 침착하고 냉정한 성도들이 뜨겁게 은혜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1.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후렴>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2.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정결한 마음을 얻게 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3. 눈보다 더 희게 맑히는 것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부정한 모든 것 맑히시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4. 구주의 복음을 전할 제목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날마다 나에게 찬송 주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신현균 목사님(염천교회, 성민교회)께서 즐겨 부르시던 찬송이 423장(통 213장)인데 합동 찬송가에는 가사가 “먹빛보다 더 검은... 날래게 뛰 원하며...”로 되어 있었습니다. 보혈로 죄 사함 받고 구원을 얻어 얼마나 기쁜지 강대상에서 춤을 추며 이 찬송을 하신 것이 눈에 선합니다.
1. 먹보다도 더 검은 죄로 물든 마음이
흰눈보다 더 희게 깨끗하게 씻겼네
<후렴> 주의 보혈 흐르는데 믿고 뛰어나아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네
2. 모든 의심 걱정과 두려움이 사라져
슬픈 탄식 변하여 기쁜 찬송 되었네
3. 세상 부귀 영화와 즐겨하던 모든 것
주를 믿는 내게는 분토만도 못하다
4. 나의 모든 보배는 저 천국에 쌓였네
나의 평생 자랑은 주의 십자가로다
하나님께서 인간과의 관계를 언약으로 설정하고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과만 언약을 맺고 역사하시는데,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며, 구원과 영생의 대상임을 나타내십니다. 언약 신학은 행위 언약, 구속 언약, 은혜 언약 등으로 나타납니다. 언약 신학의 교리는 16세기 교회 개혁을 통하여 교회에 크게 공헌해 온 신학적 공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언약 신학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성경의 권위. 이신득의. 이신칭의. 만인 제사장 등과 더불어 기독교의 루터교. 개혁교. 장로교. 회중교 등의 중심 교리들 가운데 하나로서 교회 개혁이래 교리적. 신앙적 전통이 되어 왔습니다.
1) 행위 언약(Covenant of Works)
행위 언약은 하나님이 전인류를 대표하는 아담과 맺은 언약으로서, 하나님은 그가 율법을 완전히 지키면 영생(永生)을 주기로 약속하시고, 불순종할 경우에는 영사(永死)로서 형벌하실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이 언약은 아담이 범죄 하여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이 아담과 맺은 언약으로 이 언약을 행위 언약이라 함은 행위를 조건으로 영생이 약속되었기 때문입니다.
2) 구속 언약(Covenant of Redemption)
구속 언약은 하나님이 성자(聖子) 예수 그리스도와 맺은 언약으로서, 선택한 사람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성자에게 선택한 사람들을 주시어 그들의 머리와 보증이 되게 하시고, 성자는 자원하여 선택한 사람들의 보증으로 그들을 대신하기로 한 언약입니다.
3) 은혜 언약(Covenant of Grace)
은혜 언약은 하나님에게 피택 된 죄인과 맺은 언약으로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영생을 약속하시고, 피택 된 죄인들은 그 약속을 수납하여 구원 영생을 얻는다는 개념에 근거한 신학 체계로 이 언약은 하나님이 피택된 죄인들과 맺은 언약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인들을 회개시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십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하시니라 I am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to repentance(마 9:13)” 마틴 루터와 요한 칼빈이 사용했던 성경대로 읽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에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만 되어 있는데 킹 제임스 성경에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라고 바르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언약적으로 형성되어진 연합(롬5:12-21, 요15:1-11, 엡1:3이하, 롬6:4-8, 엡2:6, 골3:1-4)이며, 또 육체적 연합의 성격도 있습니다(히2:11-17). 그리고 전 포괄적(죽음, 장사, 부활, 승천, 하늘영광 보좌에 이르는 것까지)인 연합이며, 영원한 연합(롬8:31-39), 종말론적 연합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들은 이제 그분 안에서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효력으로 말미암아 그의 말씀과 그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에 의해 실제적으로 또 인격적으로 성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성도는 죄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며,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고후5:17)
성령님의 사역은 객관적인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개개인들에게 적용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론(soteriology)은 또한 성령론(Doctrine of Holy Spirit)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성령님께서 자연인을 중생케 하시며, 칭의, 성화, 양자 등의 영적 축복들을 제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들을 구별하는 기본적인 성격들 중의 하나는 다른 종교들이 모두 자력(自力) 종교인 반면에 기독교만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 구원을 얻게 되는 복음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그리스도의 의를 근거로 주어지는 의로움(칭의)을 받게 되며,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우리의 내적 변화를 가리키는 중생, 그리고 우리의 변화된 외적 신분인 양자됨(요1:12, 롬8:14-16),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거룩해지는 성화,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이 완성되는 영화의 은총을 받게 되는 복음 그 자체입니다. 성도는 성경이 제시하는 여러 가지 진리들, 즉, 우주 만물과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신론), 그리고 그분이 창조하신 인간에 대한 이해(인간론), 인간들이 저지른 죄와 그 결과(인죄론), 그 죄로 말미암아 야기된 문제들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의 성취하신 구속 사역(기독론), 그 성취된 구속 사역을 개개인들에게 적용시키시는 성령님의 구원 역사(구원론),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살아가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와 최종적으로 주님의 재림과 종말에 대한 지식과 믿음에 확신 있게 거할 때, 성도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진리의 터전 위에 굳게 서는 신앙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십자가에서 베푸시는 은혜(골 1:20)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우리는 십자가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과 원수 된 사이에서 화목된 사이로 변화되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피로 화평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십자가 이전에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원수의 담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진노가 사라져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목이 이루어지고 그 증거로써 하나님께서 성령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긍휼 하신 분이시며,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며, 구원하시는 분이시고, 좋으신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예수니께서 십자가에서 증명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와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덮어주시고 용서하여 주셔서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한없는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십자가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엄격하게 율법으로 다스리는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 밖에서의 하나님은 정죄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에 대해 진노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7澍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만 베풀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만 은총을 베푸시지 십자가 밖에서는 진노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이 때문에 십자가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도의 십자가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은혜를 얻었습니다. 오늘 새벽에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대변하여 간절히 기도해 주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계신 이상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죄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가면 죽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주님이 나의 죄를 모두 청산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가서 모든 것을 간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여러 가지 죄와 허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우리를 조금도 미워하지 아니하시고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시고 은총을 부어 주십니다. 이러므로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은 우리의 친 아버지시며,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이시며, 자비와 긍휼과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 앞에 늘 나아가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도 : 사랑의 주님! 저희가 십자가의 공로를 늘 감사하고 자랑하며 가치 있게 살 수 있도록 지켜 주옵소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옵소서. 입으로는 주님의 자녀라고 말하지만 행동은 세상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면서 살았습니다. 입으로 십자가의 능력을 부르짖고 있지만 진정 나의 삶에는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새벽에 주님이 함께 하셔서 입술로만 고백하는 신앙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지는 신앙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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