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Lion)
사자 (Lion)
고양이과에 속하는 동물로써 몸집이 크고 기운이 세기 때문에 “백수(百獸 모든 짐승)의 왕”으로 알려져 있는 사자는 지구상의 넓은 지역에서 서식해 왔습니다. 14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팔레스타인 지역을 비롯하여 시리아와 그밖에 중동 지방에서 서식하였지만 지금은 대부분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남부 지역에서 서식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에는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사자들보다 조금 작은 종류의 사자 수백 마리가 서식하고 있으며, 인도의 구자라트 주에 있는 기르 숲 국립공원에서 엄격한 보호받으면서 살고 있는 동물입니다.
커다란 수컷 사자는 약 3 m의 몸길이에 어깨높이는 약 1 m이고, 몸무게는 약 230㎏정도이고 긴 몸에 비하여 비교적 짧은 다리를 가지고 있고 머리가 크며, 암컷은 수컷보다 작습니다. 털은 짧고 담황색, 암갈색 등의 색깔을 띠고 있습니다.
수컷 사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갈기는 머리 뒷부분, 목, 어깨를 덮고 목과 가슴으로 이어져 배를 따라
술을 이루고 있으며 종류에 따라 갈기 모양의 차이가 있습니다.
사자는 여럿이 모여서 사는 동물로서, 흔히 하나 또는 여러 가족단위를 기본으로 하는 무리를 지어 삽니다. 먹이는 사냥을 해서 얻는데, 거의 모든 동물들이 그들의 먹잇감들입니다. 사냥은 대개 암컷이 하며, 먹잇감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갑자기 빠른 속력으로 돌진하는 방식으로 사냥을 합니다. 사자들은 흔히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데, 몇몇 사자들은 몰이를 하고 몇몇은 잠복을 하고 있다가 달려들어 잡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사자에게는 일정하게 정해진 번식기가 따로 없으며 아무 때나 새끼를 낳습니다. 임신기간은 108일 정도이고, 한배에 태어나는 새끼는 대개 2~3마리정도입니다. 우리에 가두어둔 사자는 보통 매년 번식하는데 비하여 야생상태에서는 2년에 1번 정도 번식을 합니다. 야생상태에서는 8~10년 정도 살지만, 사육된 사자들은 보통 25년 정도 삽니다.
사자는 성경에서 짐승들의 왕으로 인정되었으며, 권력과 권위를 긍정적인 면으로 표현하는데 인용되었는데 그래서 (에스겔 1:10)에서는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서 그분을 보좌하고 있는 살아 있는 생물 중의 하나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에스겔 1:8~11) “생물의 네 면에 달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들이 있었고, 네 생물에게 모두 얼굴과 날개가 있었다. 날개들은 서로 맞닿아 있었고, 생물들이 움직일 때에는 몸을 돌리지 않고 앞으로 똑바로 나아갔다. 생물들의 얼굴은, 앞쪽은 사람의 얼굴,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 왼쪽은 황소의 얼굴, 뒤쪽은 독수리의 얼굴이었다. 그들의 날개는 위로 펼쳐져 있었는데, 두 날개는 다른 생물의날개들과 맞닿아 있었고 다른 두 날개로는 몸을 가리고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를 그가 환상을 통하여 본 그대로를 표현하고 있었던 사도 요한의 기록 중에서도 이와 같은 네 가지의 동물을 표현하는 가운데에도 사자를 인용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4:6) “또 보좌 앞에는 수정과 같이 맑은 유리 바다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보좌 중앙과 주위에는 눈이 가득한 네 생물이 서 있었습니다. 첫 번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두 번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세 번째생물은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네 번째 생물은 날개를 편 독수리 같았습니다.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가 있었는데, 날개 안팎으로 눈이 가득하였습니다. 그것들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 오실 분이다.” 이 생물들은 영원히 살아 계시고 보좌에 앉아 계신 분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 생물들과 함께 이십사 명의 장로들은 보좌에 앉으신 분께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보좌 앞에 자기들이 쓰고 있는 금관을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사자는 정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표상하기도 하고, 어린 사자는 유다 지파에 비유하기도 하였습니다.
(욥기 10:15~16) “만약 내가 악인이라면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설사 내가 의롭다 해도 머리를 들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수치를 당하고 괴로움으로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머리를 치켜세운다면 당신은 사자처럼 달려들어 당신의 힘으로 다시 나를 짓눌러 버리시겠지요?”
(창세기 49:9~10) “유다는 사자 새끼와 같다. 내 아들아, 너는 먹이를 잡고 돌아오는구나. 내 아들은 마치 사자와 같이 웅크리기도 하고 몸을 펴기도 한다. 마치 암사자와 같으니, 누가 그를 깨우겠는가? 유다에게서 왕이 끊이지 않을 것이고 유다에게서 다스리는 자가 끊임없이 나올 것이다. 유다는 참된 왕이 올 때까지 다스릴 것이다. 온 나라는 그에게 복종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사자들을 심판의 수단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압도적 힘과 당당함 때문에 적과 담대하게 싸우는 의인으로 묘사되기도 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3:24~26) “그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나 그를 물어 죽였습니다.
그의 시체는 길에 버려졌으며, 나귀와 사자가 시체 곁에 서 있었습니다. 마침 그 때, 어떤 사람들이 그 길을 가고 있었는데, 그들은 시체 옆에 사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늙은 예언자가 살고 있는 성으로 가서 그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자기 집으로 데려왔던 늙은 예언자도 그 소식을 듣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여호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던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전에 말씀하신 대로 사자를 보내어 그 사람을 죽이신 것이다.””
(잠언 28:1) “악인은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치나, 의인은 사자처럼 담대하다.”
초대 그리스도교도는 마가복음의 첫 부분에서 마치 사자가 포효하는 것처럼 세례 요한의 장중한 외침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사자는 마가복음과 사도 마가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터키의 에베소에 있는 사도 마가의 무덤에는 사자의 문양이 부조되어 있는 비석이 그 앞에 놓여 있습니다.
사자(Lion)라는 말의 히브리어에는 “아리(אֲרִי (ari))”와 “아르예(אַרְיֵה (aryeh))”라는 단어가 있는데 먼저의 것은 “수사자”를 위미하는 것이고 나중의 것은 “암사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케필(כְּפִיר (kefir))”이라는 히브리 단어는 “젊은 사자” 또는 “어린 사자”를 의미합니다.
(시 34:10) “젊은 사자(케필)도 힘이 없고 배가 고플 때가 있지만, 여호와를 찾는 자들은 갖가지 좋은 것들을 모두 얻게 됩니다.”
(시 17:12) “그들은 먹이에 굶주린 사자 같기도 하고, 숨어서 노려보는 무서운 사자(케필)와도 같습니다.”
이렇게 구약 성서에 사자(獅子)와 관련된 문구들이 많다는 것은 당시에 팔레스타인 지방에 사자들이 흔하였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신약성경에서 사자(獅子)라는 단어는 구약에 비하여 많이 언급되지 않고 다만 아홉 번 정도 인용되었는데 이중에서도 일곱 번은 완전히 비유적으로 인용되었을 뿐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비유 중에서도 사자의 사나운 동물의 표현으로는 (벧전 5:8)에 표현되어 있는 것인데, 이와 같은 표현 때문에 “사자(獅子)”를 “마귀”로 보는 주석가들도 있습니다.
로마의 역사에 의하면 로마를 강한 제국으로 세웠던 줄리어스 씨이져(Julius Caesar)는 보통 400 마리의 많은 사자들이 동원되는 게임을 경기장에서 즐기곤 하였으며, 네로 황제도 로마의 경기장에 사자들을 풀어놓고 곰이나 말을 탄 기병들과 싸우게 하는 경기를 즐겼을 뿐만 아니라 황제에 대한 우상 숭배를 거절하는 기독교들을 잡아서 사자들을 풀어놓은 경기장에 들여보냄으로써 처형하기도 하였습니다.
구약에서는 유다 지파를 상징하기도 하고 앞으로 오시게 될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하였던 사자(獅子)를 마귀와 같이 악의 상징으로 표현한 것은, 아마도 초대 교회 시대 당시에 많은 기독교도들이 사자들과 싸우는 경기에 이용되어 죽임을 당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라고 생각됩니다.
(사사기 14: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들어가자, 삼손은 큰 힘을 얻었습니다. 삼손은 마치 염소 새끼를 찢듯이 맨손으로 그 사자를 찢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자기가 한 일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17:34~35) “그러나 다윗이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왕의 종인 저는 내 아버지의 양 떼를 지키던 사람입니다. 사자나 곰이 나타나서 양을 물어 가면, 저는 그놈을 공격하여 그 입에서 양을 구해 냈습니다.그놈이 저를 공격하면, 저는 그놈의 턱을 잡고 때려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3:26) “그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나 그를 물어 죽였습니다. 그의 시체는 길에 버려졌으며, 나귀와 사자가 시체 곁에 서 있었습니다. 마침 그 때, 어떤 사람들이 그 길을 가고 있었는데, 그들은 시체 옆에 사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늙은 예언자가 살고 있는 성으로 가서 그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자기 집으로 데려왔던 늙은 예언자도 그 소식을 듣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여호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던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전에 말씀하신 대로 사자를 보내어 그 사람을 죽이신 것이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야생 사자를 찾아볼 수 없지만, 성경에는 사자(Lion)가 많이 언급되고 있는것을 보면 성서 시대 당시에는 “인도 사자”라고 불리는 사자가 많이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성서의 기록들에는 대부분 상징적인 의미로 사자를 언급하고 있지만, 몇몇의 기록에서는 실제 사자가 나타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사사기 14:6, 사무엘상 17:36, 사무엘하 23:20, 열왕기상 13:24)
두려움과 숭상의 대상이었던 사자는 고대 근동의 예술 작품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고대 바빌론의 “행렬의 길”이라고 불리는 유적에는 유약을 입힌 벽돌로 만든 웅장한 사자 장식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AD 12세기 말에 팔레스타인 지역을 공격화여 왔었던 십자군이 팔레스타인에 서식하고 있었던 사자를 마구 사냥하여 씨를 말렸다고 합니다. 사자는 이 지역에서 기원 1300년 초에 멸종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19세기까지도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의 일부 지역에서 사자가 서식한다는 보고가 있었으며, 심지어 20세기 초에도 이란과 이라크에서 사자가 목격되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욥기 10:15~16) “만약 내가 악인이라면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설사 내가 의롭다 해도 머리를 들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수치를 당하고 괴로움으로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머리를 치켜세운다면 당신은 사자처럼 달려들어 당신의 힘으로 다시 나를 짓눌러 버리시겠지요?”
(창 49:9~10) “유다는 사자 새끼와 같다. 내 아들아, 너는 먹이를 잡고 돌아오는구나. 내 아들은 마치 사자와 같이 웅크리기도 하고 몸을 펴기도 한다. 마치 암사자와 같으니, 누가 그를 깨우겠는가? 유다에게서 왕이 끊이지 않을 것이고 유다에게서 다스리는 자가 끊임없이 나올 것이다. 유다는 참된 왕이 올 때까지 다스릴 것이다. 온 나라는 그에게 복종할 것이다.”
(잠언 28:1) “악인은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치나, 의인은 사자처럼 담대하다.”
성경에서 사자는 상징적으로, 심판하시는 의의 하나님 자신을 표현하시면서 말씀하기도 하셨고, 야곱이 그의 자녀를 축복하면서 어린 사자는 유다 지파에 비유하면서 축복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사자들을 심판의 수단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동물로 표현하기도 하였고 당당하고 압도적인 힘 때문에 적과 당당하게 싸우는 의인으로 묘사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사악한 자를 덤불 속의 사자로 비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재앙을 가져오는 암흑의 세력으로 비유하기도 하였습니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울부짖는 사자는 “그리스도에 의해 죽은 자의 부활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4 복음서 중, 마가복음의 시작에서 표현되는 세례 요한의 소리가 마치 사자의 포효하는 울음소리와 같다고 하여 사자(Lion)는 “마가복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몸집이 크고 힘이 세기 때문에 “모든 동물 중의 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넓은 지역에서 삽니다.
한때는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아시아 지역에서도 서식하였으나 지금은 주로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의 남쪽에 많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근육질로 힘세게 생긴 사자는 긴 몸과 몸에 비해서 짧은 다리, 큰 머리를 갖고 있으며, 크기나 모양이 상당히 다양합니다. 커다란 수컷은 약 3m의 몸길이에 어깨높이는 약 1m이고, 몸무게는 약 230㎏에 이르며, 암컷은 수컷보다 작으며 털은 짧고 담황색 또는 암갈색 등의 색깔을 띠고 있습니다.
저녁에 밤 사냥을 시작하기 전과 새벽에 일어나기 전에 크게 울부짖는 사자의 울음소리와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유명합니다. 사자는 무리를 지어 살고 있는 동물로써 주로 가족 단위로 움직입니다.
먹이는 사냥을 해서 얻는데, 사냥은 주로 암컷이 합니다. 사자는 일반적으로 사람을 피하지만, 먹이들을 더 이상 사냥할 수 없는 늙은 사자들은 사람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사자에게는 일정하게 정해진 번식기가 없으며 연중 아무 때나 새끼를 낳는데 한 번에 2~3 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습니다. 야생으로 살고 있는 사자들의 수명은 대개 10년 정도인데 사육하고 있는 사자는 그 보다는 오래 살아서 약 25년 정도 삽니다.
독수리 (Eagle, Vulture)
독수리 (Eagle, Vulture)
(이사야 40:31)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며, 독수리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듯 올라갈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은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신명기 32:10~12) “신32:10 여호와께서 거칠고 황폐한 광야에서 야곱 백성을 찾으셨다. 그들을 감싸 주고 돌보셨으며 자신의 눈동자처럼 지켜 주셨다. 독수리가 둥지 위를 날며 새끼들 위에서 퍼덕이듯이, 날개를 펴서 새끼들을 받아 날개 위에 놓고 새끼들을 나르듯이, 여호와만이 그들을 이끄셨다. 다른 신은 그들 곁에 없었다.”
(출애굽기 19:4) “너희 모두는 내가 이집트 백성에게 한 일을 다 보았다. 그리고 독수리가 날개로 새끼들을 실어 나르듯 내가 너희를 어떻게 나에게 데리고 왔는가도 보았다.”
성경에서 독수리는 “힘”을 상징하며, 이스라엘을 구한 상징적인 동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표현할 때에도 독수리를 비유로 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가하면 독수리는 하느님 심판을 상징하기도 하였습니다.
(신명기 28:49) “여호와께서 멀리 땅 끝에서 한 나라를 여러분에게 보내실 것이오. 그 나라는 독수리처럼 여러분을 덮칠 것이오. 여러분은 그들이 사용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오.”
예수님은 앞으로 다가오게 될 큰 환난을 예언하시면서 독수리에 비유하셨습니다.
(마 24:28)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여 든다.”
이 말씀은 죽은 고기를 먹는 독수리에 비유하여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한 말씀으로도 유명한 말씀입니다. 즉, 독수리가 먹이를 찾아내듯 영적으로 이미 영적으로 죽어 있는 것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내 파멸시킨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독수리는 하나님 말씀과 지혜의 상징이었습니다. 또한 독수리는 하나님 의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 또는 군대로서 하나님을 대리한 심판자로 비유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가톨릭 성당의 제단이나 설교대를 보게 되면 날개를 편 독수리의 모양을 조각한 것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4:6~9) “또 보좌 앞에는 수정과 같이 맑은 유리 바다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보좌 중앙과 주위에는 눈이 가득한 네 생물이 서 있었습니다. 첫 번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두 번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세 번째 생물은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네 번째 생물은 날개를 편 독수리 같았습니다.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가 있었는데, 날개 안팎으로 눈이 가득하였습니다. 그것들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 오실 분이다.” 이 생물들은 영원히 살아 계시고 보좌에 앉아 계신 분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과 독수리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사도 요한의 환상에 나타나고 있는 4 가지의 동물이 초대교회의 교부들에 의하여 4 복음서의 기자들을 대입하여 각각의 상징이 되는 기원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4 가지의 동물들은 에스겔서에 기록되어 있기도 한 동물들인데, 사자의 얼굴은 “마가”, 수소의 얼굴은 “누가”, 독수리의 얼굴은 “사도 요한” 그리고 사람의 얼굴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천사는 “마태”의 상징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독수리는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고 있는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의 상징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유럽의 여러 가톨릭 성당에서는 그리스도와 요한의 상징으로 독수리 그림이나 조각을 이콘(Icon)으로 장식한 것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또 그런가하면 사람의 얼굴의 모습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탄생”, 수소의 얼굴은 번제의 제물로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희생의 제물이신 그리스도”, 사자의 얼굴은 “부활의 그리스도”, 그리고 독수리 얼굴의 모습은 “승천하신 그리스도”라고 해석되었습니다.
독수리는 높은 곳에 앉아 있다가 두어 번 날갯짓을 해서 조금 올라가게 되면 더 이상 날갯짓을 하지 않아도 멀리 날아 갈 수 있습니다. 독수리의 이런 장시간 비행의 비밀은 독수리의 날개의 깃털에 있다고 하는데, 모든 깃털과 함께 특히 날개 끝에 있는 갈라진 깃털의 역할은, 날개 아래 위의 바람의 속도를 다르게 만들어서 자연 상승력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작은 회오리바람을 만들어서, 독수리의 비행을 거의 무한대로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독수리는 매년 털갈이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일 년간 더러워지고 무거워진 깃털을 털갈이를 함으로써 매년 새롭고 가벼운, 그리고 싱싱한 깃털로, 날갯짓을 하여 높이 올라간 후 오랜 시간동안 날아다니게 되는 것입니다. 독수리의 날개 길이는 약 70~90 cm정도이며 꼬리는 35~41 cm정도로 하늘의 왕자로서 동물의 먹이사슬에 있어서 조류 종류로는 최상위에 있는 새입니다.
유럽의 문화에서 독수리만큼 큰 영향을 준 동물은 없을 것입니다. 푸른 하늘을 높이 날아다니면서 멀리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먹이 감을 발견하면 민첩하게 공격하는 독수리는 하늘을 나는 동물의 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독수리는 유럽의 문화에서 용맹스러움과 위엄, 그리고 자유 등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많은 유럽의 제국들은 그들의 상징으로 독수리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독수리는 중동의 패권국이었던 바벨로니아 이후로 제국의 힘과 권위의 상징이었으며, 로마제국의 상징이었습니다. 로마가 독수리를 황제와 제국의 상징으로 정한 이후 많은 나라나 왕들이 독수리를 지배자의 상징으로 사용하여 왔습니다.
962년 프랑크 왕국의 오토대제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됨으로써 독수리를 정식 문장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후에 신성로마제국(비잔틴) 황제가 독일 황제를 겸하게 되면서부터 독수리는 오늘날까지도 독일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주로 제국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의 국가 문양에 독수리를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황제나 나폴레옹 황제의 문장에도 독수리를 사용하였습니다. 미국에서도 국장이나 대통령의 문장으로 독수리의 문양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많은 제국의 신화와 상징으로써 독수리만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새도 없을 것입니다. 고대 수메르의 신은 사자 머리를 한 독수리였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황제의 시신을 화장할 때 독수리를 하늘 높이 날려 보내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러한 의식을 통하여 죽은 황제의 영혼이 신들에게로 올라가서 그들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둘기(Dove)와 까마귀(Raven)
비둘기(Dove)와 까마귀(Raven)
비둘기와 까마귀가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때는 노아 홍수 시대에 하나님께서 물(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 땅에 물이 빠졌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노아가 까마귀와 비둘기를 방주 밖으로 날려 보냈을 때입니다.
(창 8:8~12) “또다시 노아는 땅에서 물이 빠졌는가를 알아보려고 비둘기를 날려 보냈습니다. 하지만 비둘기는 쉴 곳을 찾지 못하고 다시 노아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노아는 손을 뻗어 비둘기를 맞아들였습니다. 칠 일이 지나자, 노아는 다시 비둘기를 날려 보냈습니다. 그 날 저녁, 비둘기는 뜯어 낸 올리브 나무 잎사귀를 입에 물고 돌아왔습니다. 그것을 보고, 노아는 땅이 거의 다 말랐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칠 일이 지나자, 노아는 다시 비둘기를 내보냈습니다. 이번에는 비둘기가 노아에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땅에 물이 빠졌는지의 여부를 알고자하여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어보내었습니다. 까마귀는 다시 돌아오지 않자, 비둘기를 내어 보냈는데 처음에 땅에 접촉할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고, 7일 후에 다시 내어보냈는데 그 때 물이 빠진 표시로 올리브 나무의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습니다. 다시 7일을 기다린 후 방주 밖으로 내어보냈을 때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방주 안에서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던 노아는 까마귀가 돌아오지 않자, 비둘기를 내어보내며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쁜 소식을 알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노아의 의도대로 비둘기는 처음에는 마른 땅을 찾지 못하자 그대로 주인에게 돌아왔고 두 번째로 다시 내 보내었을 때에는 새로운 땅과 하늘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희망을 보여주는 실질적인 증거로써 올리브나무 잎을 물고 돌아왔습니다.
Rock Dove (Rock Pigeon)
고대부터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 선원들은 비둘기와 까마귀를 함께 승선시켰는데, 이것은 까마귀가 육지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항해를 하던 중에 방향을 잃거나 조난당할 위험이 있을 때, 선원들은 먼저 까마귀를 날려 보내 육지가 있는 방향을 알아내기도 하였습니다.
이때 비둘기는 상륙할 수 있는 곳이 먼 곳에 있는지 또는 가까운 곳에 있는지를 알리는 역할을 했는데, 먼 거리를 날아 갈 수 없었던 비둘기가 다시 돌아온다면 근방에 상륙할 땅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근방에 상륙할 만한 땅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의 감정을 표현할 때, 비둘기를 빗대어 표현하곤 하였습니다. 이사야서나 에스겔서에서는 비둘기가 우는 소리를 “슬피 우는 소리”라고 표현하였고, 시편, 아가서에서는 비둘기를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여러 번 표현하였으며, 마태복음에서는 “순결함”의 상징으로 표현했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나오실 때 임하였던 성령의 상징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레위기에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에 대해서 설명하여 주셨을 때 부정한 새의 종류에 까마귀 이름이 가장 먼저 언급되었습니다. 부정한 새로 분류된 까마귀를 먹을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번제의 제물로사용될 수 없었지만, 정결하여 깨끗한 새의 종류로 구분된 비둘기는 번제의 재물로 사용되었는데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드리는 제물로 사용되었으며, 집비둘기나 산비둘기의 새끼들이 사용되었습니다.
까마귀는 잡식 조류로써 곡식과 씨앗이나 열매 등을 먹어버리기 때문에 농부에게 해를 입히기도 하였지만 그 이외에도 곤충, 작은 포유류, 죽은 동물, 새의 알과 둥지 속의 새끼 새까지 잡아먹기도 합니다. 이런 까마귀의 특징 때문에 노아가 방주에서 처음에 날려 보낸 새가 까마귀였는데 방주를 떠나 날아갔던 까마귀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신약 성서에서 “죄”를 표현하는 헬라어가 대표적으로 아디키아(Adikia)와 하마르키아(Hamatia), 이렇게 2 개의 단어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인 “하마르티아(Hamartia)”는 히브리어에서 죄에 해당하는 여러 단어 중에 하나의 단어인 “하타(Chattah, 하나님의 기준이 미달 됨, 과녁을 맞히지 못 함)”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노아가 비가 멈춘 후에 물이 모두 빠졌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까마귀를 내 보내었는데에도 불구하고 까마귀는 홍수로 인하여 죽은 물고기와 같은 동물들의 시체를 먹는 일에 팔려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였던 것을 상징하여 홍수 이후에 가장 처음으로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서 벗어난 사건(하마르티아)이 되어 죄악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디모데 후서 4:10)에 기록된 말씀의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를 연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까마귀는 무리의 우두머리가 없고 각각 제멋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러한 까마귀의 습성을 인용하여 “오합지졸(烏合之卒)”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부정한 동물로 분류되었던 까마귀를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음식을 날아다 주기 위해서 사용하기도 하셨는데, 이 때 사용된 까마귀의 종류는 팔레스타인 지방에 많이 서식하고 있었던 8 종류 중에 하나였고 음식을 저장하기 위해 날라다가 모아놓는 습성이 있는 “뿔 까마귀(Hooded crow)” 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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