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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첫번째 수난 예고 및 제자의 도 (마 16:21-28)

by 은총가득 2021. 10. 28.

 

죽음과 부활 예고(마16:21-23)

 

우리는 지난 시간에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에 만족하시고 그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반석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울 것이며,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분간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리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신학자들은 이것을 '메시아 은닉(비밀)사상'(the messianic secret)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까지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숨기셨습니다. 이 사실이 공개적으로 선포된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 때였습니다(행 2장). 그러면 왜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숨기셨을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숨기신 것은, 정치적인 메시아로 오해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정치적인 메시아로 오해를 받게 되면,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과 로마 당국의 견제를 받게 되고, 이로 인해 하나님 나라 운동에 방해를 받게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분간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숨기셨습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숨기신 것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제자들에게 참된 메시아에 대해서 가르치는 일이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참된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메시아께서 하시는 모든 사역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러한 모든 일들이 성취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숨기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에 예수님의 증인이 될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제자들에게 예고해 주셨습니다.

 

 

1. 죽음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언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마 16:2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막 8:31)..."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눅 9:2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3일에 살아나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야 했습니다. 이러한 일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 왕국을 세우면, 그 나라에서 한 자리 차지하려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종교 지도자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이 자기를 죽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보통 사람이었다면 다른 도시로 피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속죄 제물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고 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해야한다"(must)는 말이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야만 했고", 종교지도자들에게 "고난을 받아야만 했으며", 또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제 3일에 살아나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곳으로 피신하셨다면 예수님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한 일이 3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예고는 제자들의 그릇된 메시아관을 바로 잡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첫 번째 예고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오해했을 때에 주어졌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메시아가 고난을 당한 후에 영광에 이를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두 번째 예고는 제자들이 누가 더 큰 자인지 다투고 있을 때에 주어졌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자신이 인류를 섬기는 종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 번째 예고는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좌우 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청했을 때에 주어졌습니다. 이 때에 에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길이 영광이 아닌 고난의 길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신 것은 제자들의 그릇된 메시아관을 바로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제자들은 메시아가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해방하고 세계적인 국가를 세울 정치적인 지도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나라를 세우신 후에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그릇된 메시아관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구원할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인류의 속죄 제물이 되기 위해 고난 받고 죽어야 하며, 그 후에 다시 살아나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2. 인자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고난에 대해 언급하실 때에 자신을 '인자'(son of man)로 소개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자신을 메시아라고 소개하시지 않고 "인자"라고 소개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당시의 관습에 따라서.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G. Vermes) 예수님 당시에 '인자'라는 말은 '나'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나"를 낮추어서 "저"라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인자'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능욕이나 위험, 또는 죽음과 관계된 때'였다고 말합니다.(M. Black, An Aramaic  Approach to the Gospel and Acts, Oxford 1967). 이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예고하실 때에 자신을 낮추어서 '인자'라고 소개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메시아에 대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사용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신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시의 그릇된 메시아관으로 인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 메시아를 로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세계적인 정부를 세울 정치적인 지도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메시아라는 칭호대신 인자라는 칭호를 사용하심으로 자신이 정치적인 메시아로 오해 받지 않도록 배려하셨습니다.

 

 3) 자신이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임을 증거하기 위해 사용함.
  당시에 인자라는 말은 올바른 메시아관을 전달하기 위해서 적절한 칭호였습니다. 다니엘서를 읽어 보면 왜 예수님께서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셨는 지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성령님에 의해 감동되어 종말에 오실 '인자 같은 분'(메시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 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3-14)." 다니엘은 오래 전에 환상 중에 "인자 같은 분"이 구름을 타고 와서 하나님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인자'로 소개하신 것은 바로 자신이 다니엘이 말한 인자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로 소개함으로, 자신이 다니엘이 본 메시아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로 소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계시하신 후부터, 자신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예고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이스라엘을 로마의 손에서 구원해 낼 정치적인 지도자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속죄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메시아가 인류의 죄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릴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메시아를 다시 살리셔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계획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로마를 치고 유대인 중심의 세계적인 나라를 세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메시아가 어떤 일을 할 것인 지 미리 가르칠 필요가 있었습니다. 메시아는 인류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로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가 처형당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으심에 대해 예고할 때에 크게 당황했습니다.

 

 

1. 베드로의 만류와 예수님의 책망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

  "드러내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잡고 간하매(막 8:32)"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계시하신 후에,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메시아가 죽는다는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에 메시아는 로마를 치고 그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낼 영웅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메시아가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당하는 것은 메시아 운동의 실패를 의미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잠시 고난을 당할 수는 있지만 죽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무력하게 처형당하는 패배자를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는 최후의 승자가 되어 세계적인 신정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죽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님에게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말 성경에 "간하다"로 번역된 말은 헬라어 "에피티마오"를 번역한 말입니다. 이 말은 원래 비난하거나 꾸짖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한글 성경을 보면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부드럽게 요청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강하게 비난하고 꾸짖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향해 비난과 책망의 말투로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베드로는 메시아가 죽는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비난하고 책망했습니다. 베드로는 메시아가 죽으면 어떻게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질 수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지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죽음과 그 너머에 있는 궁극적인 승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먼저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서 자기 백성들을 영생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들도 종종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불평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2.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있다 하시고(막 8:33)..."

 

  예수님은 베드로의 말을 듣고 즉시 뒤로 돌아서서 제자들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통해서 속삭이는 사단의 계략을 간파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사단의 도구가 되어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유혹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사단을 향해 다음과 같이 명하셨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면 안된다는 사단의 유혹을 단호하게 거부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가 십자가에 처형되는 일은 있을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베드로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죄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생각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님의 인도를 거부하고 자기 뜻을 고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장애가 될 때가 많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십자가가 유대인들에게는 장애물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죄인을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님의 인도를 따를 때에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에 베드로는 성령님의 거룩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 생각을 주장할 때에, 그는 하나님의 뜻을 막는 방해자가 되었습니다. 이 때에 베드로는 사단의 악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은 십자가의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령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 성령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우리는 성령님의 거룩한 도구로 스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거부하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면 사단의 악한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막을 것입니다. 성령님은 천국 백성들이 희생과 섬김을 통해서 영광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단은 희생과 섬김이 없어도 영광스럽게 될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대가를 자불하지 않고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일을 위해서 항상 성령님 안에서 깨어 기도하며 성령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마16:24-28)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랐습니다. 베드로는 그 말을 듣고 놀라서 예수님을 붙들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여! 그렇게 하지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님에게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그 말을 듣고 뒤로 돌아서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사단이 베드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막는 것을 보셨습니다. 베드로는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막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생각으로 성령의 뜻을 거스리지 않기 위해서 성령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제자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제자의 도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좆을 것이니라(막 8:34)."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

  예수님은 베드로가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막는 것을 보시고,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제자도)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로 제자의 도는 '모든 사람들에게'("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주어진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 제자의 도가 목사나 장로처럼 특별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자의 길은 "예수님을 따르기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진 말씀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원하는 사람은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생각과 뜻을 포기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뜻을 내려놓지 않는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기 원하는 사람은 자기 생각과 뜻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예수님을 끝까지 따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생각을 내려놓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평안한 길로 인도하다가 어떤 때는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인도하십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포기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생각과 뜻을 부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자신의 생각과 뜻을 거부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가는 것은 자신이 못 박힐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순교할 각오를 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자신이 못박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다면, 인류의 구원은 완성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에 모범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러한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마가복음이 기록될 당시에 로마교회 성도들은 박해와 순교의 위협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순교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끝까지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따르기 원하는 사람은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베드로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의 뜻을 거부하고 자기 생각을 주장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2. 잃으면 찾으리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 8: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 9:24)."

  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해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마가 당시에 로마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박해와 순교를 각오해야 했습니다. 로마 당국은 기독교인들에게 황제 만세를 외치면 살려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황제에게 경배했습니다. 그들은 일시적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장차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후에 하나님 앞에서 목숨을 위해서 예수님을 부인한 일에 대해 엄중한 심판을 받게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에 많은 성도들은 박해와 순교를 각오하고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고, 사도 바울도 로마 군사의 칼에 목이 잘리고 말았습니다. 또한 수많은 성도들도 감옥에 갇히거나 사나운 짐승의 밥이 되었고, 또 공동체에서 쫓겨나서 가난하고 외롭게 살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이 오히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후에 로마는 공식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고,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예수님을 위해 피를 바친 순교자들의 희생으로 얻은 열매였습니다.

  이러한 일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따르기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뜻을 내려놓고 순교할 각오를 하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뜻을 내려놓지 않는 사람은 끝까지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세상의 영광과 이익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온전히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예수의 제자가 되기 원하는 사람은 자신을 부인하고숨교할 각오를 하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만이 사단의 유혹을 극복하고 능력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전적으로 헌신된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성령님을 통해서 그들이 자신을 따를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임을 알리신 후에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는 메시아가 죽는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을 들으시고 베드로에게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육신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ㄱ 때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막으려는 사단에 대해서 선전 포고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좆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뜻을 내려놓고 순교를 각오하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누리게 될 축복과 저주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가 당할 운명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36),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막 8:36-37)"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눅 9:25)"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서 기록 당시에 예수님을 믿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서 기록 당시에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으며, 심한 경우에는 순교까지 각오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때에 성도들은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포기하고 싶은 강한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인하면 생명을 연장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세상을 떠나갈 때에 모두 내려놓아야만 합니다. 세상의 영광은 영원히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잠시 사용하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모두 내려놓고 떠나야 합니다. 그 후에 예수님을 부인한 사람은 빈 손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될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을 부인한 사람은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한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 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부인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잃고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경고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일시적인 것을 위해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2. 예수님을 부끄러워 하는 죄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마 16:27)."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막 8:38)."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눅 9:26)."

 

  예수님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패역한 세대에서 나와 내 말(복음)을 부끄러워하면, 나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 하리라!" 마가복음을 기록할 당시에 로마 당국은 자신이 정복한 나라의 백성들에게 로마 황제를 주(Lord)로 고백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강요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기독교인들을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인들에게 로마 황제를 주로 경배하는 것은 우상 숭배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수많은 성도들이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로마 황제를 주로 고백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생명을 유지위해서 로마 황제를 주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로마 황제를 주로 고백한 댓가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상을 섬긴 일로 인해 양심의 가책 속에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들의 육신은 편했지만 영혼은 사망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음란하고 죄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 하면, 인자도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 하리라!" 그러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신실하게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로마 황제를 주로 고백하는 일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순교할 각오를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지금은 황제 숭배를 강요받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사단은 세상의 부와 명예를 가지고 천국 백성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부와 명예를 위해서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인간의 철학이나 과학 앞에서 복음을 부끄러워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보다 세상 나라를 더 사랑합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이러한 사람은 성령님의 감동과 평안이 사라져 버립니다. 이러한 사람은 가시밭에 떨어진 씨앗과 같아서 열매를 맺지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부와 영광을 위해서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다가 예수님을 배밴하고, 그 일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받다가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보다 세상을 앞세우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깨어 기도하는 사람만이 성령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세상의 유혹 앞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나라가 능력으로 임할 것을 볼 사람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 16:28)."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막 9:1)."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눅 9:27)."

 

  예수님은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본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해석들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첫째로 어떤 학자들은 이 일이 변화산에서 성취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얼마 후에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곳에서 예수님의 신적인 영광을 보고, 또 예수님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둘째로 어떤 학자들은 이 일이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서 성취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오순절에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의 성도들은 성령강림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셋째로 어떤 사람들은 이 일이 밧모섬에서 사도 요한을 통해 성취되었다고 주장합니다. 후에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밧모섬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섬에서 성령님에 감동되어 그리스도의 교회가 승리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것이라는 말씀'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박해와 순교의 위협 앞에서도 신실하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해서 순교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죽은 후에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곳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면서 예수님의 통치에 참여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보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계시를 통해서 성도들이 박해와 순교의 위협을 이길 수 있게 해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계시는 예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자신을 부인하고 순교할 각오를 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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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마 16:20)
                                                  
   언뜻보기에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는 말씀은 복음의 특성으로 보아 전혀 사리에 맞지 않을 것 같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 지상명령으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하지 않았는가?(마 28:19) 그밖에도 수도 없이 많은 신약의 구절들이 복음 증거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서는 왜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가?  몇 가지 해답이 가능하다.
  여기서 예수님이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말하지 말라는 말씀은 아직 그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많은 군중들은 예수님의 메시아직의 역할이 무엇임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심지어 베드로는 올바른 신앙고백을 했지만 그 역시 십자가와 부활을 목격하기까지는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정치적인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던 저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전파한다면 아마도 백성들이 그를 앞세워 로마를 대적해서 반란이라도 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아니었다. 만일 그렇게 민족적인 구원자로 잘못된 열광주로 흐르게 되면 예수님의 참된 사명을 아주 방해하고 말 것이다.1)  따라서 그때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선포할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2)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후에는 누구에게나 그의 그리스도되심을 선포해야 한다.  
  종종 예수님은 군중들의 흥분을 가라앉히셨다. 그렇게 해야 그의 사역을 지속하실 수 있으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적을 행하신 여러 경우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부탁하셨다(막 7:36; 눅 5:14).3)


  그러므로 여기서 예수님이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말씀은 땅끝까지 증인이 되라는 말씀과 모순이 아니다. 이 말씀을 하신 때에는 제자들과 백성들이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시기까지는 예수님의 그리스도이심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주
   1. R.T. France, Matthew(Leicester, IVP, 1985), p.257
   2. Ralph Earle, Matthew. B.B.C. Vol. 6(Kansas: Beacon, 1964), p.157
   3.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347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마16:28)

 

Matthew 16:27-28 (cf. Mark 8:38-9:1)

27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들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이 두 구절, 특히 28절은 마태복음 전체에서 가장 많이 토론 되는 부분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왕의 권한을 가지고 다시 오실 때까지 제자들 중의 몇 사람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그들은 역사 속에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두 질문이 발생됩니다.

 

첫째,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주님은 부활 때를 의미하는가?

왜냐하면, 부활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요 21:1, 14; 고전 15:4-8). 그러나 여기에는 예수님께서 왕권으로 통치하시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가 발생됩니다.

 

둘째, 그러면 이것은 세상이 끝나는 종말 때를 지칭하는가?

왜냐하면, 심판 날 이후에는 예수님께서 왕권으로 전 세계를 통치하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 20:6). 그러나 문제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역사 속에 모두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에 언급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대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두 천국 (Two kinds of kingdom of God)

 

성경은 두 종류의 천국을 언급합니다.

 

첫째는 “이미 임한 천국”으로, 예수님의 사역과 함께 시작된 천국입니다.

성경은 이 천국에 대하여 이렇게 밝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눅 11:20; 마 12:28).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1).

“제자들을 불러 모으사 . . .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눅 9:1-2).

이 천국 육체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인식되는 천국입니다.

 

두번 째 천국은, 앞으로 도래할 천국입니다.

아직 임하지 않았지만, 지구의 종말과 함께 예수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는 천국입니다 (살전 4:16).

성경은 이 천국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5).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 .

그런즉 깨어 있으라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 25:1-13).

 

성경 학자들은 이 두 천국, 즉 이미 임한 천국과 미래에 도래할 천국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Already, but not yet.”

천국은 예수님의 사역 시작과 함께 이미 임했지만, 아직 완성된 천국을 아니라는 것입니다.

완전한 천국은 예수님께서 심판의 날에 오실 때 완성됩니다.

이제 이 두 천국의 개념과 마태복음 16:27-28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봅니다.    

 

 

마태복음 16:27-28절 해석

 

27절은 미래에 임할 천국 (not yet kingdom)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 근거는 종말에 관한 사상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 . .  오리니”

는 예수님께서 심판자로 오시는 미래를 뜻합니다.

그 때는 예수님께서 “각 사람들이 (이 땅에 살면서) 행한 대로” 심판하십니다.

 

28절은 이미 임한 천국 (already kingdom)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 증거는 “보다”라는 동사의 시제에 있습니다.

제자들 중의 어떤이는 예수님께서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것을 “볼 (see)” 것이다는 문장에서,

“보다 (see)”는 “이미 진행 되고 있는 상황”을 표현하는 현재 완료입니다.

또 “보다”는 것은 육체의 눈 (eyes)로 보는 것이 아닌, 지적인 인식 (intellectual perception)을 뜻합니다 (참고. C. H. Dodd, The Parables of the Kingdom (London, 1935), 53).

 

그렇다면, 왕권을 가지고 통치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영어 성경 The New English Bible은 28절과 평행하는 마가복음 9:1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합니다.

“제자들은 권능으로 이미 임한 천국을 보고 있다” (they have see the kingdom of God already come in power).”

또 영어 성경 New King James 번역도 이미 임한 천국임을 밝힙니다.

“제자들은 현재 권능과 함께 임한 천국을 보고 있다 (they see the kingdom of God present with power).”

귀신이 쫓겨 나고, 병든 자가 고쳐 지고, 죽은 나사로가 살아 난 것은 예수님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8절의 실제적인 의미는 “부활 이후 성령의 오심으로 제자들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라고 보면 됩니다.

 

 

적용 (Application)

 

지구의 종말에, 인간은 모두가 재판장 되시는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영원한 천국의 입성과 함께 상급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원한 지옥으로 심판 받는 사람도 있게 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 22:12).

 

그 심판의 기준은 능력으로 이미 임한 천국에서 “제자로서 살았는가?”의 여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란 삶의 우선 순위가 예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내려 놓고 예수님의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마 16:24).

이미 임한 천국에서 제자로서 살지 않을 경우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27, 28절을 말씀하기 바로 전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이미 임한 천국에서) 온 천하를 얻고도, (미래에 도래하는 천국에서)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마 16:26).

 

오늘 (already kingdom) 십자가를 지는 제자로 살기를 결단하면,

내일 (but not yet kingdom) 상급을 받고 예수님과 함께 행복할 것입니다. 

 

참고 문헌

Hare, Douglas R. Matthew. Interpretation.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93.

Hooker, Morna D. 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rk. London: A & C Black Limited, 1991.

Green, Michael. The Message of Matthew: The Kingdom of Heaven. Leicester: Inter Varsity Press, 1988.

Wilkins, Michael J. Matthew: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Zondervan, 2004.

Lane, William L. The Gospel of Mark. Grand Rapids: W.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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