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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장 1-12절 연구

by 은총가득 2021. 10. 28.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 (마 16:1-4)

 

예수님은 이방의 데가볼리 갈릴리 해변에서 떡 7개와 생선 2마리로 4000명을 먹여주시고 일곱 광주리를 남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데가볼리의 갈릴리 해변에서 사흘 동안 이방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곳은 광야였기 때문에 먹을 것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이 집으로 가는 길에 크게 고생할 것을 염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남아 있는 떡을 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지고 온 떡 7개와 생선 2마리를 가지고 그 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멱여주셨습니다. 이 날 예수님께서 먹여 주신 사람들은 남자만 400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모아 보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을 가지고 자신을 찾아온 이방인들을 후히 대접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요구함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에 가시니라(39).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마 15:39-16:1)..."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10).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막 8:10-11)..."

  두로와 시돈, 그리고 데가볼리에서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하신 후에 배를 타고 갈릴리 서쪽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마태는 이 곳을 마가단 지경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반면, 마가는 이 곳이 달마누다 지방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서쪽 지방에서 또 다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서쪽 지방으로 오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가서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요구했습니다. 마태는 이 때에 바리새인 뿐 아니라 사두개인들도 함께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마 16: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당시에 유대교를 주도하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은 대제사장을 비롯한 종교 지도층 인사들로 주로 상류층이었고, 바리새인은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중산층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에 사두개인은 돈을 주고 대제사장 직분을 샀으며, 헬라의 문화와 로마의 권력을 수용했습니다. 반면에 바리새인은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통 교사였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을 비현실적인 사람들이라고 비난했고, 바리새인들은 세속화된 사두개인들을 증오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예수님을 대적하기 위해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의인을 대적하기 위해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2. 의인을 해치기 위해 하나가 된 종교 지도자들

  바리새인들은 정통 신앙을 믿는 보수주의자들로 종교 예식을 크게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성령님의 사역을 인정했으며, 또 초월적인 것을 인정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전통과 예식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전통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형식적이었기 때문에 외식으로 흘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비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에 대한 헌신 때문에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사두개인들은 전통신앙을 거부하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이고 초월적인 일보다 이 세상에서 잘 살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들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유대 종교에서 초월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유대 종교를 윤리 종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사두개인들과 상종하지 않았고, 사두개인들도 바리새인들을 시대에 뒤진 고리타분한 사람들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문제와 내세에 붙잡혀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교양 있고 부유한 사람들은 대부분 사두개인이었습니다. 유대 종교의 최고 지도자인 대제사장도 사두개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에 사두개인이 되는 것은 종교 지도자가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 동안에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에 대해 크게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통과 예식을 따르는 바리새인들을 비난하는 것을 보고 은근히 기뻐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자. 그들도 예수님을 반대하는 일에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완전히 다른 입장을 가진 두 종교 집단이 손을 잡게 되었습니다. 트라프은 이러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태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개들은 아무리 격렬하게 싸우며 서로 물어 뜯다가도, 산토끼 한 마리가 곁에 지나가면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함께 토끼를 쫓는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유대교의 전통과 예식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반발했습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서 영적이고 초월적인 것을 인정하는 비합리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했습니다.


 

3. 표적을 구하는 종교 지도자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손을 잡고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입증할만한 특별한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엘리야처럼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하거나, 여호수아처럼 태양이 멈추게 하는 것과 같은 특별한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하늘이 흔들리는 표적을 원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이고 초월적인 것들을 인정했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기적을 원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표적"(세메이온: sign)은 어떤 사람의 말이나 그 행동이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표시(token)를 말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얼마든지 그들이 원하는 표적을 보여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 12군단이나 되는 천사들을 동원하실 수도 있습니다(마 26:53). 만일 이 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해 명령하셨다면, 온 하늘은 천군 천사와 불말과 불병거로 뒤덮이게 되었을 것입니다.

  구약을 보면 예언자들은 자신의 말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기적들을 행했습니다. 모세는 바로 앞에서 10대재앙을 행했습니다. 엘리야도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서 제물을 태우게 하는 기적을 행했습니다. 또한 다른 선지자들도 여러 가지 기적들을 통해서 자신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이러한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은 어느 선지자보다 더 많은 기적(두나미스; miracle)을 행했습니다. 이 기적은 예수님의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표적(세메이온; sign)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정직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대했다면 그들은 더 이상 표적을 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기와 편견으로 예수님을 대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들을 보고도 예수님의 신적인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한 것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반대할 근거를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사두개인들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께서 초자연적인 기적을 보여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표적을 요구함으로 영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를 인정하는 예수님의 주장을 반박하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서로 다른 생각으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거부하고 반대하는 점에서 일치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러한 두 집단의 요구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우리는 이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의 땅에서 복음을 전하신 후에 배를 타고 갈릴리 서쪽의 달마누다(또는 마가단)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곳에서 자신을 시험하는 종교지도자들을 만나셨습니다. 이 때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하나가 되어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바리새인은 전통적인 종교관을 가진 보수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두개인은 현실을 중시하는 합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원래 이 두 집단은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반대하기 위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손을 잡고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떻게 대답하셨을까요? 오늘 우리는 표적을 요구하는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이 세대가 어찌하여 표적을 구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2),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2-3)"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손을 잡고 자신을 시험하는 것을 보시고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답변하셨습니다.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지 않느냐?" 예수님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기상 문제를 가지고 그들을 설득하셨습니다. 당시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저녁에 해가 붉게 물든 것을 보면 "내일은 날씨가 맑겠다"고 생각했고, 또 아침에 날이 붉고 흐린 것을 보면 "오늘은 날씨가 흐리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하늘을 보고 다음 날의 일기를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대의 표적을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이 없었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은 어떤 선지자보다 더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러한 기적들은 모두 다 선지자들이 메시아께서 오셔서 행하실 것이라고 예고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의 예고대로 앉은뱅이와 절름발이를 고치셨고, 여러 가지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들을 내쫓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셨고 죽은 사람도 살려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보리떡 5개와 생선 2마리로 5000명을 먹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다 메시아 시대에 이루어질 일이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구약 성경을 잘 아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러한 기적들을 보고 메시아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수많은 메시아 시대의 표적들을 보고도 메시아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매일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를 먹으면서, 끝없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불평했던 옛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았습니다.

2. 악하고 음란한 세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마 16:2-4)..."

  "예수께서 마음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막 8:12)..."

  예수님은 수많은 메시아 시대의 표적들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또 다른 표적을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수많은 표적들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또 다른 기적을 행해도 다른 핑계를 대고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표적이 아니라, 시대를 분별하는 영적인 안목이었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안목은 성령님께 도움을 구해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완악하고 오만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른 표적을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악하고 음란한 새대라고 평가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악을 행했고, 또 하나님보다 탐욕과 세상을 더 사랑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을 음란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악했을 뿐 아니라 음란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메시아 시대의 표적을 보고도 메시아를 믿지 않고, 메시아를 죽이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말합니다. 요나는 불수종하다가 바다에 던져져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죽음을 경험한 후에 3일만에 다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죽음과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3일 후에 자신의 불순종을 회개하고 물고기 뱃속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그는 니느웨 성에 가서 심판과 회개의 메시지를 외쳤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죽었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입니다. 요나는 완전히 죽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완전히 죽을 것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 속에서 다시 나왔지만, 예수님은 무덤에서 다시 나오실 것입니다. 요나는 동산 위로 올라갔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편으로 올라가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그 시대 사람들을 향한 메시아로서의 마지막 표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메시아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이 목격한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을 박해하고 위협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 시대의 징조를 분별할 눈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제자들을 박해했습니다.

  경건한 사람들은 표적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은혜로 만족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탄식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와 동행하시면서 하늘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악하고 음란한 사람들은 이러한 은혜를 통해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계속해서 또 다른 표적을 구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와 보호를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만 어려워지면 또 다시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했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사람들은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시험하고 의심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보시고 탄식하십니다. 경건한 성도들은 또 다른 표적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매일 자신과 함께 동행하시는 성령님께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3. 배척하는 바리새인을 떠나가심

  "저희를 떠나 가시다(마 16:4(하))."

  "저희를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막 8:13)."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을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의 징조를 보고도 계속해서 시험하는 사람들을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상대하는 것이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서 갈릴리 바다 건너 편에 있는 갈릴리 동편으로 가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들을 통해서 메시아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메시아 시대의 징조를 분별할만한 안목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수많은 메시아의 표적들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갈릴리에서의 공생애 사역을 마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수없이 많은 은혜를 경험하고도 계속해서 시험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은혜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 이 사건이 주는 교훈 >
1.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을 알만한 충분한 은혜르 주셨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2.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간다.
3. 이미 주신 은혜에 감사하지 않고 또 다른 표적을 찾는 사람은 불신의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결국 주어진 은혜마저 잃게 된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마16:5-12)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서로 연함하여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와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표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또 다른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날씨와 기상은 예측할 수 있었지만, 시대의 징조는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은 성경에 예고된 메시아 사역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러한 일들을 보고 메시아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알고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메시아 시대의 징조들을 분별할 수 있는 눈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지도자로 자처했지만 사실은 영적 시각장애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른 표적을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눈이 멀어서 아무리 많은 표적을 보아도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른 표적을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는 3일동안 물고기 뱃 속에 있다가 나온 것처럼, 예수님도 장차 죽었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이 세대에게 주어진 마지막 메시아 표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건너가는 동안에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교훈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째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마 16:5-6)..."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 밖에 저희에게 없더라.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막 8:14-15)..."

  예수님은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 일행은 급히 길을 떠났기 때문에 음식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는 떡이 한 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이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을 보면 이 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안티파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헤롯의 누룩이라고 표현한 것을 마태는 사두개인의 누룩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러면 왜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을까요? 사실 이 두 사람은 여러 가지 점에서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둘 다 현실적인 합리주의자였습니다. 그들은 둘 다 초월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헬라 문화를 받아들이고, 또 로마 권력과 손을 잡고 현실적인 정치에 참여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권력과 탐욕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사람은 같은 부류로 취급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헤롯(또는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룩'은 밀가루에 들어가면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룩은 적은 양으로 많은 반죽을 발효시킬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누룩은 주로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첫째로 누룩은 긍정적인 의미로 '복음의 침투력과 영향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예) "천국은 가루 세 말에 넣은 누룩과 같으니..."). 예수님은 복음이 누룩처럼 세상에 들어가서 온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로 누룩은 부정적인 의미로 '죄와 부패의 영향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누룩은 종종 사람과 사회를 부패시키는 악한 영향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누룩은 두 번째 경우에 더 가깝습니다. 본문에 사용된 누룩은 사람들을 부패시키는 바리새인과 헤롯(또는 사두개인)의 악한 교훈이나 영향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헤롯(또는 사두개인)의 교훈을 "삼가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롯(또는 사두개인)은 당시에 백성들을 다스리고 가르치는 종교-정치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기 보다 오히려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의 교훈을 "조심하라"고 경계하셨습니다. 그러면 바리새인과 헤롯(사두개인)의 누룩은 무엇을 말할까요? 바리새인들은 전통을 강조하는 보수주의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정신보다 문자에 치우쳤고, 하나님 사랑보다 종교 예식을 더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종교 생활은 열심히 했지만, 하나님보다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헤롯(사두개인들)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내세와 같은 초월적인 일보다 현실 속에서 잘 살아가기를 원했습니다. 헤롯은 로마에 잘 보여서 정치 기반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그는 체면을 위해서 의로운 세례 요한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부활이나 영생과 같은 초월적인 일보다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영원한 것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권력과 탐욕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바리새인이 백성들을 외식주의자로 만들었다면, 사두개인들은 백성들을 세속화되게 만들었습니다. 이 두 사람들은 서로 다른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다 하나님보다 세상과 사람을 더 의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의 가르침을 삼가 조심하라고 경계하셨습니다.

 

  오늘날도 현대판 바리새인들과 헤롯(사두개인)이 많이 있습니다. 전통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열심히 종교 생활을 하지만, 형식과 외식에 빠져서 열매 없는 삶을 사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들은 매 주일 종교생활을 하지만, 하나님보다 사랑의 칭찬을 더 구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의를 자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판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님의 역사가 사라진 보수주의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처럼 되기 쉽습니다. 합리성과 현실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초자연적인 것들을 부인합니다. 그들은 인간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인 것들을 미신과 신화로 취급하고 성경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영원한 세계보다 일시적인 세상을 더 사랑합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권력과 탐욕을 더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익을 위해서 불법과 타협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지도자의 자리에 서서 성도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이러한 지도자들은 성도들에게 독버섯처럼 해로우며, 누룩처럼 퍼져서 교회와 사회를 부패시켜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러한 지도자들의 교훈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형식주의자와 세속주의자가 되어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사랑하고, 또 권력과 탐욕을 신으로 섬기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 영적 소경인 제자들에 대해 탄식하심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 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마 16:7-8)"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막 8:16-18(상))"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당시 종교 상황을 올바르게 읽을만한 안목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누룩을 주의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떡을 준비하지 못한 것을 책망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보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다고 서로 의논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자였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자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또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수많은 기적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그 시대의 영적 상황을 읽는 눈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5병2어의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떡이 없다고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탄식하시고 책망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지금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주 교회를 다니고 열심히 종교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 시대를 읽는 안목이 없습니다. 그들은 이 시대를 형해 외치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열심히 종교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과 전혀 다른 길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러한 성도들을 보시고 탄식하고 계십니다. 오늘은 여기에서 마치고,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바리새인의 누룩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시험하는 종교지도자들을 떠나서 배를 타고 갈릴리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의 일행은 급히 떠났기 때문에 음식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가진 음식은 한 개의 떡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제자들에게 "삼가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음식을 준비하지 못한 것을 책망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직도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의 상황을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종교지도자들의 교훈을 조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이 했던 말의 의미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1)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마 16:9-12)."

  "또 기억지 못하느냐? 내가 또 다섯 개를 오 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 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 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막 6:2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마가는 이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말한 '누룩'이 ''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떡 다섯 개로 5000명을 먹일 때에 남은 조각을 얼마나 되었느냐?" 그러자 제자들은 열두 광주리였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시 "내가 떡 일곱 개로 4000명을 먹일 때에 남은 떡을 얼마나 거두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일곱 광주리였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어찌 내가 한 말이 떡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은 떡 5개로 수천명을 먹일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떡이 부족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먹을 것이 필요하다면, 예수님은 언제든지 충분한 음식을 만들어 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나서 예수님은 다시 한 번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서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이 이 아니라, 그들의 악한 교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영적인 면에서 다른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떡을 위해 염려했습니다. 그들은 종교지도자들의 외식주의와 세속주의가 바이러스처럼 백성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백성들을 부패하게 만드는 영적인 버이러스에 대해서 경계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을 육신을 위한 떡에 대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2) 우리는 어떠한가?

  이러한 오해는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헤롯)의 교훈을 조심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현대 교회에도 여전히 외식주의와 세속화된 교훈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외식주의자들은 하나님보다 사람의 칭찬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만듭니다. 이러한 교훈을 따르는 사람은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처럼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세속화된 지도자들은 하나님보다 세상의 영광과 부를 더 사랑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은 권력과 부를 신으로 섬기고, 이긱을 위해서는 불법과 타협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고, 하나님보다 세상의 영광을 더 사랑하고 있다면, 우리들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에 감염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대할 때에 선령님의 인도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인처럼 "우리의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함을 보게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에 그 말씀을 깨달을수 있는 지혜와 순종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서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시고, 또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영적인 시각장애자들을 보시고 탄식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실수할 때가 많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 이 사건이 주는 교훈 >


1. 우리는 외식주의의에 빠져서 하나님보다 사람의 칭찬을 더 구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2. 우리는 세속화된 교훈으로 하나님보다 세상의 권력과 부를 신으로 섬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3. 우리는 말씀을 대할 때에 항상 성령님의 인도를 구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증거

 

마 16: 17-20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증거를 신적인 능력으로 증명하여 보이셨다고 했다. 신적인 능력이란 말은 인간이 할 수 없고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행하셨다는 의미이다. 즉 바람을 잔잔하게 하시고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여 자연을 지배하시는 능력을 보이셨고 나병이나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자들, 소경, 등의 죄를 사하시는 증거로 그들의 병을 고치셨고 보리떡 5개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떡 일곱 개 물고기 두 마리로 4000명을 먹이시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 화복을 지배하는 능력을 보이셨고 사단에게 결박된 자들을 자유 하게 하여 사단을 지배하시는 능력을 보이셨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구약성경에 약속된 메시아임을 증명해 보이셨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심을 말씀하시고 그의 나라를 세상 나라가 아닌 나라라고 말씀했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매시야이신 것을 증명해 보이셨다.

 

(요 18:33-36.)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35)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1. 주님은 부활하셔서 죽음을 지배하는 능력을 보이셨다.

 

빈무덤

[마 17:22-23]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23)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

 

(요 20:27-28)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 이다

 

그리스도는 생존해 있을 때에 자신이 십자가에 죽을 것과 삼일 후에 살아 날 것을 제자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한 대로 십자가에 죽으셨고 삼일 만에 살아 나셨다. 자신이 살아났다는 사실을 교회에 모여 있는 제자들에게 또는 부활을 믿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제자들을 찾아 만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모으고 40일을 함께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하늘로 승천했다. 승천 하는 날 제자들을 감남 산에 모으고 다시 세상에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제자들과 500여명의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했다.

 

[고전 15:3-8]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6)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7)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구약의 예언의 역사를 끝맺고 신약의 역사를 시작하셔서 역사의 지배자이심을 나타내셨다 예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기에 짧은 33년 동안에 상징적인 구약의 역사를 실체적인 신약의 역사로 바꾸셨다. 지금 A. D. 2020년이란 측정은 그리스도 탄생 이후로의 측정인 신약의 역사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능력은 사람이 할 수 없다. 사람이 할 수 없고 신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을 행하심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심을 믿도록 하신 것이다.

 

 

2. 죽은 자들을 살리시고 생사를 지배하는 자임을 보이셨다.

 

죽은자를살리심

하나님의 종교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종교임을 계시하여 믿게 했다.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죽은 자를 살렸고 예수님께서 친히 죽은 자를 살렸고 사도들도 죽은 자를 살렸다.

 

엘리아를 통하여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렸다.

[왕상 17:22-24]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23)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24)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엘리사를 통하여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리셨다.

[왕하 4:32-35]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33)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34)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35)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

(마 9:23-25)예수께서 그 직원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훤화하는 무리를 보시고 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들이 비웃더라. 무리를 내어 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 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다.

[눅 7:13-16]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다.

(눅 8:41)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아래에 엎 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눅 8:54-56]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55)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56)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베드로를 통하여 도르가를 살리셨다.

[행 9:40-43]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43)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사도 바울을 통하여 죽은 청년을 살렸다.

[행 20:9-12]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생사에 관한 것도 인간이 할 수 없다 태어나는 것도 인간의 마음대로 태어나지 못하고 죽는 것도 인간이 마음대로 죽지 못한다. 인간이 사람을 죽일 수는 있다. 그러나 살아나게 하는 일을 할 수 없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하나님의 아들로서 생명을 지배자임을 증거하여 보이신 것이다.

 

 

3. 천국 열쇠를 주어 하나님의 나라 왕권을 증명했다.

천국 열쇠를 주심

예수께서는 빌라도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이 천국의 왕이신 것을 말씀하셨다.

[요 18:35-38]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주님이 천국의 열쇠를 제자들에게 부여하여 주었다.

(마 16:19)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했다.

 

천국 열쇠란 말은 영혼을 살게도 하고 죽게도 하는 권세를 말한다. 이 열쇠는 천국의 왕 또는 주인만이 부여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 왕 메시야이며 주인인 것을 믿는 제자들에게 부여하였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천국의 메시야인 것을 보이셨다.

 

 

4. 예수님의 무죄하신 생애가 증명한다.

 

무죄하신 생애

(눅23:22-23)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대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법적으로 죄가 없음을 공인 앞에서 세 번이나 증언했다. 도덕적으로 죄가 없기에 빌라도 법정에서 정죄하지 못했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한결같이 자기 재산도 버리고 생명도 바쳐가며 따랐다.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죄가 있었다면 같이 동고동락(同苦同樂) 했던 유다가 증거 했을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생애는 무죄하여 거룩하셨다.

 

인간은 무죄할 수가 없다.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무죄할 수가 없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죄가 있었다면 유다가 자살할 필요가 없었다. 제자들 한두 사람이 아닌데 한결같이 자기 재산과 자신의 생명 아까워하지 아니하고 모두 바쳤다. 그들이 주님과 하루 이틀 지낸 것이 아니고 3년 동안이나 동고동락 (同苦同樂) 했다. 그의 험이 없는 언행(言行)에 압도되었고 거룩한 말씀의 권위에 압도되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인이기에 무죄(無罪)할 수가 없다. 그러나 죄를 다스리시는 예수님은 무죄하셨다. 예수님은 원죄가 없으시기에 죄 없이 거룩하게 사셨다.

 

 

5. 예수님의 희생적 사랑이 증명한다.

 

희생적 사랑

(마9:12-13)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했고.

 

(요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다.

죄를 짓지 말라 가르치는 선생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죄를 용서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죄를 지으면 책망하고 공정하게 벌하려는 선생은 많이 있다. 그 죄를 해결해 준 자는 없었다. 죄인을 교정하여 의로운 사람을 만들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 죄인을 위하여 희생하는 사람은 없었고 인간은 근본적으로 의롭게 만들지는 못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선생은 있었다. 그러나 실천한 사람 없었다.

 

선생은 많아도 아버지는 하나이다. 창조주 아버지가 아니고서는 인간을 진정으로 용서 할 수 없다. 부모만이 자식을 위하여 희생한다. 이유는 부모이기 때문이다. 자식이 선하거나 의롭거나 해서가 아니다. 자식이기에 무조건 사랑한다. 그 부모를 하나님이 주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물인 인간 자신의 아들들을 위하여 예수님으로 오셔서 희생하심으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다

 

성경을 상고 할수록 역사적인 책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역사 안에 그리스도는 중심이 되었고 그 중심 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는 것은 소나무를 보고 소나무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과 같다

 

 

6. 다니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다니엘 예언

다니엘을 통하여 장차 그리스도(뜨인 돌)가 역사를 지배한다고 말씀하셨다.

(단2:36-43)그 꿈이 이러한즉 내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 하리이다 왕이여 왕은 열 왕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인생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무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붙이사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금 머리니이다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세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네째 나라는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숴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숴뜨리고 빻을 것이며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철의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그 발가락이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숴질 만할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 이다

 

(단2:44)이 열 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 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위의 말씀을 구약 바벨론 제국주의 시대에 꿈을 통한 역사의 미래이다. 애굽 왕 바로의 꿈은 애굽의 장래를 보여 주었는데 요셉을 통하여 알게 하셨다. 바벨론 왕 벨드사살의 꿈은 다니엘로 하여금 역사를 미리 알게 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지배하심을 알리심이다.

 

바벨론 왕 벨드사살 왕의 꿈도 다니엘의 예언대로 이루어 졌다. 이것은 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만방에 알리신 것이다. 신상의 머리는 바벨론 가슴과 팔은 파사 제국이었고 배와 넙적 다리는 희랍제국이었으며 종아리는 로마 제국이었다. 발과 발가락은 두 사상으로 나뉘어진 분열 왕국을 말하였다. 로마를 마지막으로 하여 제국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분열 왕국 시대로 전환되었고 그리고 발가락이 흙과 철로 나뉘듯이 세계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두 사상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뜨인 돌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역사를 예언했다. 하늘에서 뜨인 돌은 유다 베들레헴에 탄생한 그리스도이다. 그 그리스도의 왕국은 점점 지상에서 확장되어 간다. 그 뜨인 돌인 그리스도는 지상에 오셔서 사생애가 30년이고 공생에의 단 3년 만에 역사를 바꾸어 놓으셨다. 모든 달력이 그리스도의 출생의 기점으로 계산하고 있고 일주일 제도도 성경에 근거한 일이다. 믿지 않은 사람들도 하나님 덕택에 일주일에 하루씩 쉬는 것이다. 주님은 역사의 지배자이신 것을 보이신 것이다.

 

이 사실을 보여주셨는데 믿지 않는 다면 또 들려 주셨는데 믿지 않는다면 가르쳐 주었는데 믿지 않는다면 권면하였는데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는 용서받을 길이 없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죄에서 인간을 구속하시는 구주이심을 알게 하여 믿게 하시려고 능력을 행하셨다. 능력을 보고 체험하고 좋은 믿음을 가지자. 지금도 성령의 하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는 것이다. 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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