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7, 예루살렘 함락 이전에 주어진 예언들(에스겔 12-19장)
본 단락은 3:16-32:32의 전기 심판 예언 중에서도 B.C. 586년 예루살렘 함락 이전에 주어진 예언들로서 주로 남유다 멸망 예언을 수록한 전반부 3:16-24:27의 연속 부분이다.
이러한 본단락을 계시가 주어진 시점에 따라 구분하여 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제12-13장은 3:16-7:27의 계시가 주어진지 약 1년 2개월 정도가 지난 B.C. 592년 6월 5일에 받은 계시를 수록한 제8-13장까지 이어지는 일련 기사의 후반부이다.
그리고 제14-19장은 제8-13장의 계시와 B.C. 591년 5월 10일에 주어진 계시인 제20-23장 계시 사이에 주어진 계시일 것으로 추정되기는 하나 그 주어진 시점이 정확하지 않은 일련의 기사를 다룬다.
이를 개관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전반부 12-13장은 앞서 언급한 대로 제8-11장의 소위 ‘성전 환상’이 주어진 날 성전 환상이 종료된 직후에 주어진 계시로서 선지자의 상징적 행위를 통한 예루살렘의 패망과 선민의 바벨론 포수 예언 및 선민의 패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거짓 예언자들의 행위를 지적하고 심판 예언을 보도한다.
이를 상술하여 보면, 먼저 12:1-20에서는 포로 이동 장면을 연출하고 공포 중의 식사 장면을 연출하는 상징적 행위를 통하여 선민의 포수와 유다 황폐를 예언한다. 에스겔은 먼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포로의 행장을 갖추고 벽을 뚫고서 밤에 포로처럼 이동하는 상징적 행위를 하며(1-7절) 그러한 상징적 행위와 관련된 백성들의 질문에 대한 설명을 통하여 선민의 바벨론 포수 사건의 전말에 대하여 예언한다(8-16절). 그리고 이어 역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공포 중의 식사와 그에 대한 설명을 통하여 유다 땅의 황폐를 예언한다.
다음 12:21-28에서는 ‘이스라엘 땅에서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사라지리라’는 속담을 사용하여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묵시가 실현 되지 않을 것이라고 폄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묵시가 패역한 당시 세대에 신속하게 성취될 것임을 거듭하여 경고한 사실을 보도한다.
다음 제13장의 두 문단에서는 선민의 패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거짓 예언자들의 행위를 지적하고 심판을 예언한다. 여기서 선지자는 먼저 일반 선민 대중을 향한 거짓 선지자들의 교활성과 이스라엘의 안전을 위하여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서 평강만 주장하는 무책임, 그리고 그들의 여호와 계시 사칭 행위를 지적하며 그들과 그들의 말을 믿고 따르는 선민 일반 대중을 향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한다(1-16절). 그리고 이어서는 임의로 지어내어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들 중에서도 특별히 사술(嗣術)로서 사람을 홀리며 겨우 두어 움큼의 보리와 두어 조각의 떡을 위하여 백성들의 영혼을 사냥하는 여자 거짓 선지자들의 악행을 지적하며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한다(17-23절).
다음 후반부 제14-19장은 B.C. 5921년 6월 5일에 주어진 제8-13장의 계시와 B.C. 591년 5월 10일에 주어진 제20-23장 계시 사이에 주어진 일련의 계시를 다룬다. 이 일련의 계시들은 선민의 멸망과 회복 과정에 대한 개략적 예언과 심판의 개별성에 대한 계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상술하여 보면, 14:1-11에서는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와 여호와 신탁 요구를 동시에 행하는 이중 신앙자들을 그들이 숭배하는 우상의 수효대로 보응하시되 그들을 직접 응대하며 선민 사회로부터의 축출하실 것이라는 단호한 의지를 천명하셨음을 선포한다.
이어 14:12-23에서는 심판 집행 중의 구원의 개별성과 남은 자를 통한 심판의 정당성 반증 예고를 보도한다. 여기서 하나님은 먼저 대기근, 맹수, 칼, 전염병이라는 각각의 방법을 통하여 불특정의 어떤 나라를 심판하실 경우를 가정하고 그 각각의 경우에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인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 자녀도 구원하지 못하고 오직 그들 자신만 구원할 수 있음을 말씀함으로 인간 각자의 믿음 유무에 따른 구원의 개별성을 사중적(四重的)으로 강조하신다. 이는 온전히 타락하여 믿음을 찾아볼 수 없게 된 예루살렘의 멸망의 필연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12-20절). 그리고 계속해서 앞서 언급한 네 가지 재앙 모두를 예루살렘에 보내실 것과 그로 말미암아 그 해가 극심할 것임을 말씀하시고 그러한 혹독한 심판 중에도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과 그들의 행실을 통해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혹독한 심판이 정당한 것임이 입증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다음 15:1-8은 무익한 포도나무의 소각에 비유된 무익한 예루살엠 거민에 대한 불가피한 심판 예고를 보도한다. 여기서 무익한 포도나무란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할 그 본래의 정체성을 상실한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무익한 포도나무가 타다 남았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의 일환인 앗수르와 애굽 등 주변 강대국들의 침공으로 인하여 국력이 피 폐되고 그들의 심장부인 예루살렘마저도 바벨론에 의해 침공을 받아 황폐하여진 사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이와 같이 타다 남은 무익한 포도나무 잔해와 같은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불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선언하시고 있다.
다음 제16장의 세 문단은 타락한 선민의 징계와 회복의 전과정을 조망하는 일련의 ‘음란한 부녀의 비유’ 기사를 보도한다. 제15장의 무익한 포도나무의 소각 비유가 ‘하나님께서 왜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가?’라는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불가피성을 보여주기 위한 첫번째 비유라면, 제16장의 일련의 음란한 부녀의 비유는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불가피성을 보여주기 위한 두번째 비유이다. 이를 보면 먼저 가나안 땅에 버려진 신생아와 같았던 예루살렘을 구하시고 키워 단장하여 왕후로 삼으셨던 여호와의 은혜를 회상하고(1-14절) 이어 화려함과 명성에 취한 예루살렘의 이방 및 우상과의 가증한 음행 행각을 폭로하고 이들에 대한 심판의 정당성을 천명한다(15-52절). 그리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한 예루살렘을 심판한 후에 다시 회복시켜 새 언약을 체결할 것임을 약속하신 사실을 보도한다(53-63절).
다음 17:1-24은 두 독수리 및 백향목과 포도나무 비유를 통한 유다 멸망 전후 사건과 회복 예언을 보도한다.
이를 좀더 상세히 살펴보면, 1-21절에서는 두 독수리와 백향목과 포도나무 비유와 그에 대한 해석을 통하여 바벨론 왕에 의해 폐위되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유다 제19대 왕 여호야긴을 대신하여 유다의 왕으로 임명된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대적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 애굽을 의지하여 자신을 유다 왕으로 임명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나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포위될 때 애굽 왕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결국 바벨론 군대에 의해 체포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거기서 죽게 되며 유다 백성들은 살육과 흩어짐을 당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리고 22-24절에서는 앞서 언급한 백향목 비유와는 다른 백향목 비유를 통하여 선민의 회복을 예언하고 있다. 이 백향목 비유는 예수님의 천국 비유 중 겨자씨 비유(마 13:31.32)를 연상케 하는 것으로서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구약 선민의 회복을 예언한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나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왕좌를 차지하시고 그 나라를 번성케 하시며 뭇 영혼으로 그 안에서 영적 평강을 누리게 하실 것임을 예언한 것이다.
다음 18:1-20은 아비와 아들 각자의 행위에 따른 심판의 반복 강조를 통하여 심판의 개별성(個別性)을 천명한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는 아비와 아들의 책임 연계를 말하는 속담이 회자되고 있었다. 곧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것이었다(2절 ; 렘 31:29, 30). 이는 조상들의 죄의 책임을 당시 유다 백성들이 담당하고 있다는 의미의 속담이었다. 즉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이 그 조상들의 죄에 있다고 전가함으로 자신들의 무죄함을 주장한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먼저 그러한 속담의 진실성을 부정하시고 영혼의 독립성에 근거하여 심판의 개별성을 천명하신다(1-4절). 또한 부자 관계에서의 의인과 악인의 여러 사례를 들어 심판의 개별성 원칙을 명확하게 설명하신다(5-18절). 그리고 각자의 행위 에 따른 심판 구분의 사례의 최종 요약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심판의 개별성을 천명하신다(19,20절).
다음 18:21-32은 일시적 선악을 불문한 궁극적 선악에 따른 심판의 반복 강조와 회개 촉구를 보도한다. 즉 과거에 의인이었든지 악인이었든지 상관없이 심판 날을 기준으로 한 행위에 따른 심판의 원칙과 그러한 심판 원칙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그에 근거하여 선민 만인을 향하여 회개와 영적 갱신을 촉구한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시고 회개하고 구원을 얻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밝히심으로써(23절) 선민들이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당신의 간절한 소망과 당신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죄에서 돌이키지 아니함으로 파멸로 달음질하고 있는 패역한 선민을 향한 당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표출하시고 있다.
끝으로 19:1-14은 유다 말기 세 왕의 몰락을 나타내는 한 어미 암사자에게서 난 젊은 두 사자의 비유와 한 포도나무 가지의 비유를 보도한다. 여기서 선지자는 먼저 한 어미 암사자에게서 난 두 사자의 비유를 애가 형식으로 언급하여 유다 말기의 두 왕의 몰락을 나타내고 있다(1-9절) . 여기서 한 어미 암사자는 유다 왕국 혹은 유다 제16대 왕인 요시야 왕을 가리키며, 두 젊은 사자 중 전자는 요시야의 셋째 아들로서 B.C. 609년 애굽 왕 느고에 의해 폐위되어 애굽으로 끌려간 유다 제17대 왕인 여호아하스를, 후자는 요시야의 둘째 아들로서 여호아하스를 이어 유다 제18대 왕으로 즉위한 여호야김의 아들로서 B.C. 597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폐위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다 제19대 왕인 여호야긴을 각각 가리킨다. 이어 선지자는 한 포도 나무 가지 비유를 애가 형식으로 언급하여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의 몰락을 예언하고 있다 (10-14절). 이 포도나무 비유는 17:3-10의 포도나무 비유와 아주 유사한데, 포도나무는 남유다 왕국을, 무성한 가지들은 남유다의 열왕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가지들 중 하나로서 높고 뛰어나 보인 가지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여호야긴을 대신하여 유다의 왕으로 즉위하였으나 자신을 높이는 교만함으로 인하여 바벨론 왕을 배신함으로써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포로로 잡혀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게 될 유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가리킨다.
이상과 같은 내용에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이 주어지고 그 예언이 역사 속에서 그대로 정확하게 성취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레미야와 에스겔 같은 참 선지자들의 거듭된 심판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묵시(默示)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포로 이동 장면과 공포 중의 식사 장면 연출이라는 상징적 행위를 통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폐하게 되고 백성들은 이방 땅으로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이 예언은 6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그대로 성취된다. 실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과 달리 공허하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성취된다(12:25 ; 왕상 8:56 ; 마 5:18).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 예언이 단지 인간들의 생각에 그 성취가 지체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에스겔 당시의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사라지리라'고 하며 하나님의 최후 심판 예언의 진실성을 부정하는 자들에게 엄정한 경고가 된다. 하나님의 최후 심판 예언이 인간들의 생각 이상으로 지체되는 것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회개에 이르러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사 그 심판을 최대한 뒤로 미루셨기 때문이다(벧후 3:9). 그러나 패역하고 미련한 인간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자비에서 비롯된 인내를 오해하여 하나님의 최후 심판 예언은 거짓이라고 부정하며 죄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고 있다. 그러나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면 하나님의 최후 심판의 한 중심에 서서 하나님의 모든 심판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하나님의 심판 예언의 진실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둘째는 거짓 선지자들과 그들의 말을 따르는 자들에게 공히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의 원수 사탄(요 8:44)은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도 유혹하여 멸망에 빠뜨리려고 항상 기회를 엿본다. 이를 위하여 사탄이 주로 취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일으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미혹하는 것이다. 유다 왕국 말기에도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여호와의 계시를 사칭한 거짓 메시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였다. 실로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칭하여 다가오는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에 넘어가기 쉽다. 그것은 거짓 선지자들의 배후에서 그들을 사주하는 사탄은 인간을 속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킬 수 있는 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무흠하였던 태초의 인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한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던가! 하나님은 사탄의 사주를 받아 당시의 택한 백성들을 미혹하여 죄의 길로 이끄는 거짓 선지자들을 심판하여 멸하실 것이다. 특별히 성경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영영한 불이 예비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마 25:41 ; 계 20:10). 문제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아 죄의 길로 간 자들의 운명이다.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들은 물론 그들에게 속아 그들의 말을 따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심판을 선포하시고 있다. 즉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아 그들을 따르는 자들도 모두 그들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지 않기 위하여 영을 잘 분별해야 한다(요일 4:1). 그리고 베뢰아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의 모든 계시의 완성인 성경을 날마다 상고하며 성경에 근거하여 모든 메시지의 진위를 판단해야 한다(행 17:11).
셋째는 성도들의 정체성은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맺음으로 비로소 확립된다는 사실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은 자주 포도나무에 비유된다. 그런데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음으로서 그 가치를 지니는 나무이다.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것은 화목(火木) 이외에 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처럼 이스라엘은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음으로써만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들이 맺은 것은 마치 들포도와 같이 악한 죄악의 열매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의 심판을 받아 소멸될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구약 이스라엘이 예표하는 오늘 교회와 성도들도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무익한 존재로 여겨져 베임을 당하고 살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즉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야 할 것이다(마 5:16; 갈 5:22,23 ; 엡 5:9).
넷째는 각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은 철저하게 개별성을 띤다는 사실이다. 이스라 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처한 위기와 고통의 상황과 관련하여 두 가지의 매우 잘못된 생각과 태도 를 취하고 있었다. 먼저는 자신들이 당면한 위기와 고통은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그들 조상들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생각과 태도를 보이며 하나님께서 공평하지 않다고 주장 하며 불평한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생각과 태도는 그들 사이에 마치 속담과 같이 회자되었던 말인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는 말에 잘 반영되어 있다(18:2 ; 렘 31:29). 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영혼의 독립성을 근거로 하여 각 개인 및 아비와 아들의 사례를 통한 심판의 개별성(個別性) 원칙을 명확하게 말씀하신다(18:1-20).
한편 유다 백성들은 이렇게 자신들의 위기와 고통은 조상들의 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신들은 의로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심판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모순적 생각과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즉 유다 백성들은 조상들의 죄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하면서 조상 아브라함의 의의 혜택은 누리고자 하는 매우 모순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의인으로 추앙을 받는 노아, 다니엘, 욥 세 사람이 그들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오직 자기들만 구원할 것임을 거듭하여 강조하심으로 심판뿐만 아니라 구원 역시도 심판과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개별성을 띠게 됨을 분명히 하신다(14:12-23). 실로 모든 사람은 구원과 심판에 대하여 철저하게 단독자(單獨者)로 하나님 앞에 선다. 즉 모든 사람은 오로지 자신의 행위에 따라 구원과 심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 각자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 있음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사실은 구원과 심판은 하나님의 심판 날을 기준으로 하여 현재적 성격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즉 구원과 심판은 과거의 상태 곧 과거의 행위에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의 상태 곧 행위에 근거하여 결정된다. 바벨론 포수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이 그 조상들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처럼 조상들의 죄의 대가를 자기들에게서 찾으시는 하나님의 행위는 공의롭지 못한 것이라고 불평하였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상태와 상관없이 심판 날을 기준으로 한 행위에 따른 심판의 원칙을 분명하게 말씀하심으로 그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이 그들의 죄로 말미암은 것임과 그들의 주장과 불평이 합당치 않은 일임을 선언하신다(18:21-32).
이러한 구원과 심판의 현재성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은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할 두 가지 태도를 명확히 한다. 우선은 성도들은 의를 행함에 있어 일시적이 되어서는 안되고 끝까지 의를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약함으로 죄를 범하였을 때에는 즉시 회개하고 다시금 의의 길로 돌이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심을 아는 에스겔과 모르는 이스라엘(에스겔 12:1-16)
[ 성경묵상 ]
12:1-20에서는 포로 이동 장면을 연출하고 공포 중의 식사 장면을 연출하는 상징적 행위를 통하여 선민의 포수와 유다 황폐를 예언한다. 에스겔은 먼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포로의 행장을 갖추고 벽을 뚫고서 밤에 포로처럼 이동하는 상징적 행위를 하며(1-7절) 그러한 상징적 행위와 관련된 백성들의 질문에 대한 설명을 통하여 선민의 바벨론 포수 사건의 전말에 대하여 예언한다(8-16절). 그리고 이어 역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공포 중의 식사와 그에 대한 설명을 통하여 유다 땅의 황폐를 예언한다.
'하나님의 본심을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요? '하나님의 본심을 아는 것'의 반대말은 '하나님의 본심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심에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 질문 1 ]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어떤 행동을 하라고 하시는가?(3-4절)
하나님의 본심을 아는 에스겔(1-7)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상한 행동을 명하십니다. 포로의 행장을 꾸려 낮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포로처럼 끌려가는 모습을 연출하라고 하십니다(3a). 그런 후 밤에 다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진짜 포로가 된 것처럼 포로의 행장을 매고, 성문이 아니라 성벽에 구명을 뚫고 도망치듯이 나가라고 하십니다(4-5). 소위 행위 예언을 하라는 말입니다. 선지자의 품위로 볼 때 참 민망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두 말 없이 기꺼이 순종합니다. 패역한 백성을 깨우치시려는 하나님의 본심을 알기 때문입니다(3b). 이스라엘에게 징조 곧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 단 한 사람이라도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알기 때문입니다(6b). 하나님의 본심을 알면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늘 자신의 본심을 보여주십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꼭 하나님의 본심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결정하십시오.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의 본심을 생각합니까? 잘 모르겠으면 꼭 물어봅시다.
[ 질문 2 ] 이스라엘에게 내리실 하나님의 징계 세 가지는 무엇인가?(16절)
하나님의 본심에 관심이 없는 이스라엘(8-16) 이스라엘 백성은 일단 에스겔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질문을 합니다(9), 다음 날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에스겔이 설명합니다(10a).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이 모두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다. 특히 왕은 포로로 끌려갈 뿐만 아니라 바벨론에 이르러 죽게 될 것이다."(13) 하나님의 본심은 징계를 통해서라도 이스라엘을 고치고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새롭게 하실 그 날의 그 역사를 위해 칼과 기근과 전염병의 징계를 벗어나게 될 사람들을 남겨두겠다고 하십니다(16a). 남은 자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힘이 약해서 자기 백성을 포로로 끌려가게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할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징계를 통해 자기 백성을 다시 열방을 향한 제사장 나라로 세우시는 여호와이심을 중명할 사람들입니다(15, 16b). 문제는 이런 하나님의 본심을 아무리 말해도 왕도, 백성도 하나님의 마음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에 관심이 있습니까? 신앙의 선배들은 하나님의 본심에 집중했습니다.
[ 복있는사람, 2018년 11,12월호 ]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제8-11장에서 선지자 에스겔은 환상 중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우상 숭배가 성행한 것과, 이처럼 우상 숭배로 더럽혀진 성전과 예루살렘을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고 있음을 목격한 사실을 보도하였다. 그리고 에스겔은 이러한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로 돌아온 이후(11:24-25) 그가 활동한 바벨론 포로 공동체에서 또다시 예언 활동을 시작한다.
제12장부터 24장까지는 이 시점에 에스겔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한 예언 묶음이다.
이 가운데서 첫 장인 12장은 에스겔의 두 가지 상징적 행위를 통해 당시 포로 공동체에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는 내용을 다룬다.
여기에서 에스겔은 제4장과 5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을 받아 일반 사람들의 생각에 기이하게 보이는 상징적인 행위를 수행한다. 그러나 본장에 기록되어 있는 행위는 4,5장에 기록되어 있는 행위에 비하면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으며 마치 연극이나 마임의 한 부분 같아 보이기도 한다.
에스겔은 먼저 낮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포로의 행장을 꾸리고 해가 저물 때에 밖으로 나가 포로 되어 가는 것처럼 행동하였다(1-7절). 이와 같은 행위는 여호와께서 장차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때에 그곳에 있던 예루살렘 정치 지도자들이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밤에 도망칠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하는 행위였다.
그리고 이러한 상징적 행위에 이어 에스겔은 물과 음식을 먹되 심히 근심하고 떨면서 먹는 행위를 하였다(17-19절).
이와 같은 행위 역시 에스겔이 포로 공동체의 동족들에게 여호와의 메시지를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취한 행위였으며, 장차 예루 살렘이 멸망하는 과정에서 그곳 거민들이 두려움과 공포에 떨면서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몸부림칠 것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예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징적 행위로 장차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예언케 하심으로 거둘 수 있는 효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 거민들 및 바벨론 포로 공동체의 사람들이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진실로 여호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에스겔은 이것을 15,16,20절 등 세 구절에 걸쳐 명백히 표현하고 있다. 이는 적어도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 에게만큼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는 사실, 아울러 그가 진정으로 온 세상의 운명을 쥐고 계시는 참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분명한 회개의 기회를 제공하시는 것이다.
한편 포로 이동 장면의 연출과 공포 가운데 식사하는 장면의 연출을 통하여 바벨론 포수와 유다 땅의 황폐를 예언한 1-20절에 이어지는 본장 21절부터 28절까지는 여호와 묵시의 신속한 실현에 대한 이중 경고이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 땅에 거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의 영적 무감각함 및 여호와의 예언을 무시하던 교만한 태도가 잘못되었음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전지하신 여호와께서는 그같은 성향에 대해 매우 잘 알고 계셨으며, 그가 선지자들을 통해 친히 전파하신 그 심판이 결코 먼 일이 아니며, 매우 임박해 있고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점을 23,25,28절을 통해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강조하신다.
예루살렘 심판의 예언은 B.C. 8세기부터 간헐적으로 계속 전달되어 왔으며, B.C. 7세기 말엽에 집중적으로 반복되었다. 이러한 예언의 진정성은 실제 예루살렘이 두 차례에 걸쳐 바벨론의 침공을 당하며 포로로 잡혀가는 큰 피해를 입음으로(B.C. 605,597년) 더욱 분명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반복적으로 경고되었으며 실제적으로도 그 분명한 징조를 나타낸 하나님의 예언에 대하여 그곳 거민들은 너무나도 무감각하였다. 그들은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오히려 그들은 여호와께서 기업으로 주신 예루살렘이 어떤 일이 있어도 멸망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으며(11:15), 멸망의 확실성을 예언하는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가 예언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박해하고 감옥에 가두었다(렘 32:2).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행위가 크게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시면서 에스겔을 통해 그들의 입에서 다시는 ‘그들의 날이 더디고 묵시가 응험이 없다’는 말이 나오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 선언하신다.
그리고 실제 이 예언이 선포된 지 채 5년이 지나지 않아 문자 그대로 당신께서 선언한 예언 그대로 심판을 단행하신다.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2. 인자야 네가 반역하는 족속 중에 거주하는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라
"사람아, 너는 반항하는 백성 가운데 살고 있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려고 하지 않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반항하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3. 인자야 너는 포로의 행장을 꾸리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끌려가라 네가 네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그들이 보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
그러므로 너 사람아, 그들이 보는 앞에서 포로로 끌려가는 사람처럼, 대낮에 짐을 싸 가지고 길을 떠나거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포로로 끌려가는 것처럼, 네가 살고 있는 그 곳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가거라. 그들이 반항하는 백성이기는 하지만, 혹시 그것을 보고서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4. 너는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네 포로의 행장을 밖에 내놓기를 끌려가는 포로의 행장 같이 하고 저물 때에 너는 그들의 목전에서 밖으로 나가기를 포로되어 가는 자 같이 하라
또 너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네 짐은 포로로 끌려가는 사람의 짐처럼 대낮에 내다 놓고, 너는 저녁때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포로로 끌려가듯 나가거라.
5. 너는 그들의 목전에서 성벽을 뚫고 그리로 따라 옮기되
너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성벽에 구멍을 뚫고, 네 짐을 그 곳으로 내다 놓아라.
6. 캄캄할 때에 그들의 목전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며 얼굴을 가리고 땅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내가 너를 세워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게 함이라 하시기로
너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어깨에 짐을 메고, 어두울 때에 나가거라. 너는 얼굴을 가리고, 다시는 더 그 땅을 보지 말아라. 내가 너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징조로 삼았기 때문이다."
7. 내가 그 명령대로 행하여 낮에 나의 행장을 끌려가는 포로의 행장 같이 내놓고 저물 때에 내 손으로 성벽을 뚫고 캄캄할 때에 행장을 내다가 그들의 목전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니라
그래서 나는 명을 받은 그대로 하였다. 내 짐을, 포로로 끌려가는 사람의 짐처럼, 대낮에 내다 놓았다. 그리고 저녁때에 손으로 성벽에 구멍을 뚫고, 어두울 때에 나가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어깨에 짐을 메었다.
8. ○이튿날 아침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튿날 아침에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9.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 곧 그 반역하는 족속이 네게 묻기를 무엇을 하느냐 하지 아니하더냐
"사람아, 저 반항하는 족속 이스라엘 족속이 네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하고 너에게 묻지 않았느냐?
10.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것은 예루살렘 왕과 그 가운데에 있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 대한 묵시라 하셨다 하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짐은 예루살렘에서 다스리는 왕과 그 도성 가운데 사는 이스라엘 족속 전체에 대한 징조다 하여라.
11. 또 말하기를 나는 너희 징조라 내가 행한 대로 그들도 포로로 사로잡혀 가리라
너는 또 그들에게, 네가 그들의 징조라고, 네가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을 그들이 하게 될 것이라고, 그들이 추방되어 이렇게 짐을 메고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고,
12. 무리가 성벽을 뚫고 행장을 그리로 가지고 나가고 그 중에 왕은 어두울 때에 어깨에 행장을 메고 나가며 눈으로 땅을 보지 아니하려고 자기 얼굴을 가리리라 하라
왕도 그들과 함께 어깨에 짐을 메고, 어두울 때에 성 바깥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고, 사람들이 성벽에 구멍을 뚫고, 짐을 내다 놓을 것이며, 왕은 눈으로 그 땅을 안 보려고 얼굴을 가릴 것이라고 말하여라.
13. 내가 또 내 그물을 그의 위에 치고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그를 끌고 갈대아 땅 바벨론에 이르리니 그가 거기에서 죽으려니와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
내가 그물을 쳐서 왕을 망으로 옭아 그를 바빌로니아 백성의 땅 바빌론으로 끌어 가겠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그 땅도 못 보고 죽을 것이다.
"내 그물을 그의 위에 치고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갈 때 하나님이 친히 그물을 치고 올무를 놓아 단 한 명도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누구도 하나님이 정하신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14. 내가 그 호위하는 자와 부대들을 다 사방으로 흩고 또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내가 왕의 경호원과 경호부대를 다 사방으로 흩어 버리고, 뒤에서 내가 칼을 빼어 들고 쫓아가겠다.
15. 내가 그들을 이방인 가운데로 흩으며 여러 나라 가운데에 헤친 후에야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내가 그들을 이방 사람들 가운데로 흩어지게 하며, 모든 나라 가운데로 쫓아 버릴 그 때에야 그들이 비로소, 내가 주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16. 그러나 내가 그 중 몇 사람을 남겨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서 벗어나게 하여 그들이 이르는 이방인 가운데에서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자백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그러나 나는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을 남겨서 전쟁과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죽지 않게 하고, 그들이 이르는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자기들이 전에 저지른 역겨운 일을 모두 자백하게 할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청지기>